제 11 장 밈 풀 속으로
당신은 나의 두뇌를 감염시킨다
나는 밈meme을 생각할 때
종종 두뇌에서 두뇌로 건너뛰면서
"미me, 미me!"라고 소리치는
불꽃의 덧없이 깜박이는 패턴을 떠올린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1983)
1970년 자크 모노는 이렇게 썼다. "생물권은 이제(코드와 함께 시작된) 그 구조의 보편성 덕분에 특별한 사건의 결과처럼 보인다. 우주는 생명으로 가득하지 않았고, 생물권은 인간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몬테카를로 게임에서 우리 번호가 당첨된 것이다.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모노는 생물권을 개념적 장소 이상으로 보았다. 단순하고 복잡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로 구성되고, 정보로 가득하며, 복제와 진화를 거치며, 하나의 추상화 단계를 다음 추상화 단계로 코딩하는 하나의 실체로 본 것이다.
이런 생명관은 다윈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추상적이고 수학적이었지만, 그 기본 원칙만큼은 다윈도 인정했을 것이다. 자연선택은 전체 쇼를 이끈다. 이제 통신과학의 방법론과 용어를 흡수한 생물학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정보 자체를 이해하는 데 나름의 기여를 했다. 모노는 하나의 비유를 제시했다. 생물권이 무생물의 세계 위에 서 있듯이 "추상적 왕국"이 생물권 위로 떠오른다. 이 왕국의 주민들은 누구일까? 바로 관념이다.
관념은 유기체의 속성을 일부 지닌다. 관념은 유기체처럼 구조를 영속시키고 번식하는 경향을 지닌다. 또한 관념도 내용물을 융합하고 재조합하고 분리할 수 있다. 실제로 관념도 진화할 수 있으며, 이 진화에서 선택이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노는 관념이 "파급력"(이른바, 전염성)이 있으며, 몇몇은 다른 것들보다 더 강력하다고 지적했다. 전염성 있는 관념의 한 가지 사례는 대규모 집단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종교적 관념이다. 생리학자 로저 스페리도 비슷한 생각을 내놓은바 있었다. 관념은 이 관념들이 거주하고 있는 뉴런만큼 "실재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관념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관념은 관념을 낳고 새로운 관념의 진화를 돕는다. 관념은 서로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같은 두뇌 그리고 이웃한 두뇌의 정신적 힘과 상호작용을 한다. 아울러 지구적 통신 덕분에 멀리 떨어진 외국의 두뇌와도 상호작용을 한다. 또한 관념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여 완전히 폭발적인 진화를 한다. 이는 이제껏 진화론적 장면에 족적을 남긴 것은 무엇이든 훌쩍 넘어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진화와 관념의 진화 사이에 나름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은 복제자가 맡았는데, 복제자가 핵산으로 구성됐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생명은 복제하는 존재의 차별적 생존에 의해 진화한다." 이게 도킨스의 규칙이다. 생명이 어디에 있든 간에 반드시 복제자가 있다. 아마 다른 세계라면 복제자가 규소 기반의 화학물질이나 아예 화학물질이 없는 곳에서 등장할지도 모른다.
화학물질 없이 존재하는 복제자라는 건 무슨 뜻일까? 도킨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최근에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이 행성에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아직 유아기에 있고, 원시 수프 속을 어슬프게 떠다니고 있긴 하지만 이 복제자는 이미 옛 유전자들을 한참 추월하는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달성하고 있다." 여기서 '수프'는 인간의 문화이고, 전달 매개체는 언어이며, 번식지는 두뇌였다.
이 몸체 없는 복제자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은 바로 '밈meme'이었다. 도킨스는 이렇게 썼다. "밈은 넓은 의미에서 모방이라고 볼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두뇌에서 두뇌로 건너뛰면서 밈 풀 속에서 자신을 번식시킨다." 밈은 두뇌 시간이나 대역폭 같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 무엇보다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관념 : 관념은 평지돌출적으로 등장하든 여러 번 재등장하든 간에 밈풀 속에서 번성할 수도 있고 쇠퇴하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 도킨스가 제시하는 사례는 신에 대한 믿음이다. 이는 아주 오래된 관념으로 말뿐만 아니라 음악과 그림 속에서 자신을 복제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믿음 역시 생존을 위해 다른 것과 경쟁하는 밈이다.
곡조 : 아래의 곡조는 수 세기 동안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다음 곡조는 수명은 더 짧았지만 악명 높은 두뇌의 침입자로서 몇배나 빠른 속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문구 : "적자생존"은 다른 밈들처럼 빠르게 돌연변이를 만들어낸 밈이다.
이미지 : 뉴턴은 당시 영국의 대표적인 유명 인사였지만 얼굴을 아는 사람은 수천 명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이 뉴턴의 얼굴을 분명하게 안다. 다소 형편없이 그려진 초상화의 복제본 덕분이다. <모나리자>의 미소와 뭉크의 <절규> 그리고 다양한 외계인들의 실루엣이 있다. 이 이 이미지들은 어떤 물리적 현실과 별개로 고유의 삶을 살아가는 밈이다. 길버트 스튜어트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워싱턴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긴 겁니다." 이게 맞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나온 밈은 종이, 셀룰로이드, 실리콘, 그리고 정보가 갈수 있는 모든 곳에 교두보를 놓고 외부로 나간다. 밈은 기본 입자가 아니라 유기체로 여겨져야 한다. 단일 뉴클레오타이드가 유전자가 될 수 없듯이 숫자 3이나 파란색 혹은 어떤 단순한 생각은 밈이 아니다. 밈은 복잡하고 독특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단위이다.
또한 물건은 밈이 아니다. 훌라후프는 밈이 아니다. 훌라후프는 비트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1958년 훌라후프가 광적으로 유행하면서 전세계로 퍼졌을 때 이 장난감은 제품이었고, 하나의 밈 혹은 밈들이 물질적으로 구현된 것이었다. 훌라후프에 대한 갈망이었고, 돌리고 흔들고 휘두르는 훌라후프 기술의 집합이었던 것이다. 훌라후프 자체는 밈의 이동수단이다. 같은 맥락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도 대단히 효율적인 밈의 이동수단이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바퀴살을 단 마차는 여기서 저기로 곡물이나 화물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 머리에서 저 머리로 바퀴살을 단 마차라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옮긴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은 훌라후프의 밈을 위해 훌라후프를 돌린다. 그리고 훌라후프 마차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빠르고 멀리 메시지를 보내는 방송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전달 매체를 얻게 된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들의 영상은 수백 수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밈은 무용수가 아니라 무용이다.
우리는 밈의 운반자이자 조력자이다. 밈은 주로 이른바 "입소문"을 통해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후 점토판, 동굴 벽, 종이 같은 확고한 실체에 고착된다. 밈은 펜, 인쇄기, 자기테이프, 광디스크를 통해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중계탑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퍼진다. 밈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조리법일 수도 있고, 기술일 수도 있고, 전설일 수도 있고, 패션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씩 밈을 복제한다. 혹은 도킨스의 밈 중심 관점에 따르면 밈이 자신을 복제한다. 도킨스는 밈에게 인간처럼 욕구와 의지 그리고 목표를 부여할 생각이었을까? 이기적 유전자가 다시 등장한 셈이었다.
도킨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밈이 의식적 행위자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가진 독립체로 자연선택에 의해 움직일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밈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와 다르다. 데닛은 이렇게 말한다. "밈은 정보 묶음으로 태도를 갖고 있다." '원칙을 위해 싸운다'라거나 '이상을 위해 죽는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율과 리듬은 사람들이 텍스트의 비트를 기억하도록 돕는다. 혹은 운율과 리듬은 텍스트의 비트들이 기억되도록 돕는다. 힘과 속도가 동물의 생존에 유리하듯, 운율과 리듬은 밈의 생존에 유리한 속성이다. 패턴화된 언어는 진화론적으로 장점이 있다. 운율과 리듬 그리고 이유는 패턴의 한 형태이다.
밈은 유전자처럼 표현형 효과를 통해 자신을 넘어서 넓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몇몇 사례의 경우(불을 피우는 방법에 대한 밈이나 옷 입는 법에 대한 밈 혹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밈) 표현형 효과는 실로 강력하다. 밈은 세상에 영향력을 전파하면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바꾸는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모스 코드를 구성하는 밈 혹은 밈들은 강력한 긍정적 피드백 효과를 발휘했다.
도킨스의 말을 들어보자. "조건이 알맞게 주어지면 복제자들은 저절로 함께 뭉쳐서 자신들을 이동시키고 지속적인 복제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 혹은 기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일부 밈은 인간 숙주에게 분명히 도움이 된다('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인공호흡에 대한 지식, 요리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믿음). 그러나 밈의 성공과 유전자의 성공이 같은 것은 아니다. 밈은 특허약, 심령 수술, 점성술과 사탄 숭배, 인종적 편견, 미신,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부수적 피해를 주는 심각한 독성과 함께 복제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자살 폭탄 테러범들이 천국에서 보상받을 것이라는 관념처럼 숙주에게 해를 입히면서 번성하는 밈들이 가장 흥미롭다. 진화심리학자 니컬러스 험프리는 밈이라는 독립체를 "그저 비유적으로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이 번식력 강한 밈을 내 머리에 심을 때, 바로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적 메커니즘을 감염시키듯 그야말로 나의 두뇌를 감염시켜서 밈의 번식 수단으로 만든다. 이는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번 복제되면서 전 세계에 사는 개인들의 신경계에 형성된 구조로 사실상 물리적으로 구현되었다.
당시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밈을 나중에 덧붙인 색다른 내용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행동생물학자 해밀턴은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았다.
이 용어는 한정하기 어렵기는 하지만(어려운 유전자보다 확실히 더 어렵다), 곧 생물학자 그리고 철학자와 언어학자 그리고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될 것이며, 일상적 대화에서 많이 쓰는 '유전자'만큼이나 많이 쓰일 것이다.
밈은 심지어 언어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동할 수 있었다. 화살촉을 깎는 법이나 불을 피우는 법 같은 지식은 단순한 모방으로 충분히 복제한다. 동물들 중에서 침팬지나 고릴라도 모방을 통해 행동을 습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일부 종의 새들은 주변에 사는 새들의 노래를 듣고 이들 새의 노래 혹은 적어도 이 노래를 변형한 것을 '배운다'. 새들은 노래의 목록을 만들고 자기들만의 노래를 개발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새들은 인간의 문화보다 훨씬 앞선 새 노래 '문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밈과 언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이런 상투적인 문구도 밈이다). 언어는 문화의 첫 기폭제로 작용한다. 언어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추상화와 인코딩을 통해 지식을 퍼트린다.
어쩌면 질병에 비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정은 '감염'되고, 곡조는 '쏙쏙 들어오고', 습관은 '전염'된다. 1730년 시인 제임스 톰슨은 "표정에서 표정으로 군중을 통해 전염되면서 / 혼란이 내달린다." 또한 "이글이글 번지는 불과 같은 눈을 가진 이브"라고 쓴 밀턴에 따르면 욕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계가 전자 통신으로 얽히게 되는 20세기가 되어서야 역학의 언어와 정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제2의 본성이 된다. 우리의 시대는 바이럴 교육, 바이럴 마케팅, 바이럴 이메일과 비디오 그리고 네트워킹 같은 바이럴의 시대이다. 인터넷 자체를 매체로 보고 크라우드소싱, 집단적 관심, 소셜 네트워킹, 자원 할당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역학의 언어뿐만 아니라 수학적 원칙까지 활용한다.
윌튼은 논리적 사유를 통해 "말해!", "날 복제해!", "날 복제하면 소원 세 개를 들어주지!"를 진행하면서 자기를 복제하는 간단한 문장을 제안했다.
보시다시피 이제 윌튼의 바이럴 텍스트는 모든 잡지와 인쇄기 그리고 보급망이라는 매우 강력한 숙주의 능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바이럴 텍스트는 널리 퍼져나가, 이제 관념권 도처에서 맹렬하게 번식하고 있다.
호프스태터는 흔쾌히 자신이 '밈'이라는 밈에 감염되었다고 밝혔다.
우리 인간이 무대의 중심에서 밀려난다는 것에 대한 저항(혹은 적어도 거부)이 있었다. 사람은 그저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만드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했다. 이제 인간은 밈의 번식을 위한 수단으로도 여겨졌다. 데닛은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내 두뇌가 타인들의 생각의 유충이 (정보의 이주지로 자신들의 복제본을 내보내기 전) 자기를 재생하는 일종의 똥 무더기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꺼림칙했다. .. 이렇게 본다면 누가 주체인가? 우리인가, 우리의 밈인가?"
데닛은 좋든 싫든 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을 '주도'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질문에 답했다. 모차르트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머릿속이 생각으로 복잡해진다. .... 이 생각들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나는 잘 모를뿐더러 아무 상관도 없다. 나는 즐거운 생각들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흥얼거린다.
나중에 데닛은 이 유명한 글이 결국 모차르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문장은 자기 자신만의 삶을 이어나갔다. 꽤나 성공적인 밈이었던 것이다.
도킨스가 1976년 "인간의 두뇌는 밈이 사는 컴퓨터"라고 쓰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 2판이 나온 1989년 무렵, 도킨스는 이렇게 예측을 수정했다. "대량으로 생산된 전자 컴퓨터 역시 결국 정보가 형성하는 자기 복제 패턴의 숙주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정보는 "소유자들이 플로피디스크를 돌릴 때"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전달됐다. 도킨스는 또 다른 현상이 부상하고 있음을 보았다. 바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였다. .... 이는 자기 복제 프로그램이 번성하기에 완벽한 환경이다." 실제로 당시는 인터넷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인터넷은 밈에게 영양이 풍부한 문화적 매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밈이라는 '개념'에 날개를 달아줬다. '밈' 자체가 빠르게 인터넷의 유행어가 됐다. 밈에 대한 관심은 밈을 더욱 확산시켰다.
인터넷 이전의 문화에서는 나올 수 없었던 밈의 유명한 사례 하나는 "상어를 뛰어넘었다 jumped the shark"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품질이나 인기의 정점을 지나 돌이킬 수 없는 하락세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이 표현은 이듬해에 보다 전통적인 미디어로 퍼져나갔다. <뉴욕 타임스> 컬럼에서 이 표현을 "올해의 대중적 문구"로 꼽았다. 곧 사람들은 별다른 의식 없이, 즉 따옴표나 설명 없이 말과 글에서 이 문구를 썼으며, 결국 여러 문화관찰자들은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상어를 뛰어넘었다'라는 표현이 상어를 뛰어넘었는가?" 다른 뛰어난 밈들처럼 이 표현도 변종을 낳았다. "소파에서 뛰다", "냉장고를 핵폭탄으로 날리다"
이런 것을 학문으로 다룰 수 있을까? 호프스태터는 밈적인 명칭인 '밈학'을 제안했다. 밈에 대한 연구는 컴퓨터공학과 미생물학만큼 거리가 먼 분야의 연구자들을 끌어들였다. 생물정보학에서는 행운의 편지를 연구했다. 행운의 편지는 밈으로서 나름의 진화사가 있다. 행운의 편지의 목적은 바로 복제이다. 다른 내용은 차치하고 행운의 편지에는 메시지 하나가 들어 있다. 바로 '나를 복제하라'라는 것이다. 행운의 편지의 진화를 연구하는 대니얼 반아스데일이 행운의 편지 그리고 이전에 나온 텍스트들에서 찾은 많은 변종들 목록을 보자. "이 내용 그대로 일곱 부를 작성하시오"(1902), "이 내용 전체를 베낀 다음 아홉 명의 친구들에게 보내시오"(1923),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어떤 것을 빼면 하느님께서 생명의 책에서 그의 부분을 빼버릴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2장 19절).
행운의 편지 유행은 너무나 빨리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면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나머지 1935~1936년 사이 우편국은 여론기관들과 협력하여 규제에 나서야 했다." 행운의 편지는 운반자 인간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자극하는 밈이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신의 가호를 믿습니다.
F.스트로이젤 부인 - 미시간
A.포드 부인 - 시카고
K. 애드킨스 부인 - 시카고
등등
첫 번째 나오는 이름을 빼고 위의 이름들을 베끼세요. 당신의 이름을 마지막에 넣으세요.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다섯 명에게 보내세요. 이 행운의 편지는 한 미국 대령에게서 시작됐으며 받은 후 24시간 이내에 보내야 합니다. 편지를 보낸 후 9일 안에 당신에게 행운이 깃들 것입니다.
샌퍼드 부인은 3,000달러를 벌었습니다. 안드레스 부인은 1,000달러를 벌었습니다. 편지를 보내지 않은 하위 부인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습니다. 행운의 고리는 여기서 했던 말들에 대해 분명히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행운의 고리를 끊지 마세요.'
이후 두 가지 기술이 폭넓게 사용되면서 행운의 편지는 엄청난 생산력을 갖게 된다. 바로 복사기와 이메일이었다. "이 편지들은 숙주에서 숙주를 거치면서 변이하고 진화한다."
이런 흥미로운 비유에서 끝나지 않고 이들은 행운의 편지를 진화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알고리즘의 "시험대"로 삼는다. 이 알고리즘들은 다양한 현대 생물의 게놈을 취한 다음 추론과 연역을 통해 계통발생과정, 즉 진화의 나무를 역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설계됐다. 과학자들은 이런 수학적 방법론을 유전자에 적용할 수 있다면 행운의 편지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두 경우 모두 연구자들은 변이율과 근연도를 검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화적 요소들은 대부분 너무 쉽게 변하고 모호해져서 안정적 복제자로서는 무리가 있다. 문화적 요소는 DNA의 서열처럼 깔끔하게 정해진 경우가 드물다. 유전자와 비교했을 때도 밈은 수학화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엄밀하게 정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유전자와 밈을 비유하는 것은 거부감을 낳았고, 유전학과 밈학의 비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유전자는 적어도 물리적 실체가 있다. 하지만 밈은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으며, 측정할 수 없다. 유전자는 완벽에 가까운 충실도로 복제를 하며, 진화는 이에 달려 있다. 일부 변이는 필수적이지만, 돌연변이는 드물어야 한다. 하지만 밈은 정확하게 복제되는 일이 거의 없다. 밈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며, 생물학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정도로 심한 유연성을 가지고 변이한다. '밈'이라는 개념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온갖 의심스러운 대상에 적용될 수 있다. "밈은 아직 그들의 왓슨과 크릭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의 멘델조차 없다."
그럼에도 밈은 여기에 존재한다. 정보의 흐름이 유례없이 큰 연결성을 만들어내면서 밈은 더 빨리 진화하고 더 멀리 퍼진다. 밈의 존재는 군중행동, 뱅크런, 정보 캐스케이드, 금융 버블에서 보이거나 느껴진다. 다이어트의 인기는 달아올랐다 사그라지고, 사우스 비치 다이어트, 애킨스 다이어트, 스카스데일 다이어트, 쿠키 다이어트, 드링킹 맨스 다이어트 처럼 모두 영약학과는 상관없는 힘에 의해 복제되는 그 이름 자체가 유행어가 된다.
"의료 유행병"도 생겨난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표지도 밈이다. 곧바로 우스운 변종들('자기, 심심해', '전처가 트렁크에 있어요')을 낳았다. 또한 밈은 20세기 마지막 해에 컴퓨터 안의 시계가 2000년에 이르면 세상의 컴퓨터들이 마비되거나 먹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전 세계인들에게 회자되었을 때도 느껴졌다.
우리의 두뇌와 문화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에서 효과적인 전투원은 메시지이다. 유전자와 밈에 대한 새롭고, 완곡하며, 순환적인 시각은 우리를 풍요롭게 했다. 이런 시각은 우리에게 뫼비우스의 띠에 적을 역설들을 주었다. "인간 세상은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야기가 자신을 말하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일단 알고 나면 알기 이전에 어땠는지 상상할 수 없다. 무대 마술처럼 알기전의 지식은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데도 당신은 보지 못한다." 죽음을 앞둔 존 업다이크는 이렇게 반추했다.
생이 글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 누가 봐도 분명한 낭비 소진된 것을 보존하려는.
철학자 프레드 드레츠키는 1981년 이렇게 썼다. "태초에 정보가 있었다. 말씀은 나중에 왔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해 이 정보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유기체가 발생하면서 전환이 일어났다." 이제 우리는 도킨스 덕분에 생존과 종족 보존을 하면서 유기체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정보 자체에 의해 전환이 일어났다고 덧붙일 수 있다.
생물권은 대부분 정보권을 보지 못한다. 정보권은 보이지 않으며, 유령 같은 거주민들로 바삐 돌아가는 평행우주이다. 하지만 정보권의 거주민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유령이 아니다. 우리 인간들은 지구상의 유기체들 중에서 유일하게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간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와 공존해온 우리는 필요한 초감각적 지각 능력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많은 정보의 종(밈)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공조 설비가 갖춰진 서버 팜에서 키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소유할 수 없다. CM송이 우리 귀에 머물거나, 유행이 패션을 거꾸로 뒤집거나, 거짓말이 몇 달 동안 전 세계인의 화젯거리였다가 나타날 때처럼 갑자기 사라질 때,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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