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창발성 : 패턴들의 퍼즐
불경기, 경기 후퇴, 물가 상승 등은 근대에 와서 나타난 현상들이 결코 아니다. 역사의 기록이 시작된 이래 반복돼 왔다. 경제학에서도 똑같이 오래된 다른 패턴들이 있다. 1인당 부의 장기적인 성장, 부의 분배 등이 그것이다. 이런 패턴들이 그렇게 오래됐다는 것은 경제의 작동에 깊은 뿌리를 둔 원인들, 즉 특정 시대의 기술, 정부 정책, 사업 행태 등과는 무관한 요인들의 결과임을 보여 주는 것이 분명하다.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패턴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는 경제의 뿌리 깊은 구조적 특성은 무엇인가?
전통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이 질문들에 답하려 노력해 왔다. 우리는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이슈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경기 사이클은 꼬물거리는 젤리인가?
경기 사이클의 진동 현상은 전통 미시 이론에 기본적인 도전과제를 던진다. 신고전파 균형 모델은 저절로 춤을 추거나 파동을 치거나 진동하는 일이 없다. 그 모델은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질 때만 활기를 찾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것이 젤리 모델.
그러나 전통적인 젤리 모델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전통 이론은 보통 외생적 투입을 임의적인 것(최소한 예측이 가능한 패턴을 갖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젤리에 대한 투입이 정말 임의적인 것이면 그 산출 또한 임의적일 것이다. 신호는 전파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될 수 있지만 그 산출은 그래도 임의적일 것이다.
젤리 스스로 임의적이고 무질서한 투입을 취하거나 거기에 복잡한 질서를 추가할 수 없다. 젤리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다. 두드리기를 멈추면 젤리는 안정을 되찾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젤리가 진실로 질서 있는 파동을 만들어 낼 유일한 방법은 두드리기로 투입을 질서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해달 사이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설명을 외부 요인들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이제 신케인지언
거시 경제학자들은 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했다. 합리적 균형이라는 경제학 이론의 계곡으로부터의 이탈은 케인스의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 출판으로 중요한 전기를 맞이했다. 1930년대 동안 케인스는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불균형 사건 중 하나인 대공황을 목격했다. 케인스가 제시한 해법, 즉 일반 이론은 이에 대한 하나의 동태적인 스토리였다.
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예컨대 정치적 불확실성, 자연재해, 또는 전쟁 등으로 말이다. 소비자들과 사업가들은 보다 보수적으로 변하고, 덜 쓰고, 현금에 보다 집착하기 시작한다. 특정 시점에 경제에 있는 현금의 양은 고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행태들이 나타나면 유통되는 현금이 줄어든다. 이는 농부, 제조업자, 상점 주인, 그리고 다른 생산자들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스스로 소비도 줄이고 투자도 줄인다. 그 결과 또 누군가의 소득이 줄어든다. 결국 소비와 투자의 급감으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는 또 다시 불안감으로 이어져 소비는 더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안 좋은 방향으로의 악순환이 가속화된다.
균형 경제학은 그러한 화폐 공급의 위축에서 오는 문제들은 결국 자체 교정된다고 말한다. 즉, 물가와 임금은 화폐 유통량의 감소를 반영해 떨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정상적인 완전 고용 균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공황 때 물가와 임금은 분명히 떨어졌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은 소비를 그전보다 훨씬 덜했고(디플레이션 환경에서 돈은 미래에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그 결과 상황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확산되어 갔다.
케인스는 이런 동태성으로 인해 경제가 아주 오랜 기간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완전 고용으로 되돌리려면 정부가 화폐를 경제 시스템에 투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의 투입으로 소비 감소를 막고, 실업률 상승을 멈추게 하면 신뢰가 다시 회복돼 악순환 사이클을 선순환 사이클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전후 수년간 서방국가 정부들은 케인스의 이런 아이디어를 널리 채택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수십 년 동안의 경제 사이클을 보면서 케인스의 아이디어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 논쟁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점에 달했다. 당시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가 주장했던 정부 지출과 같은 것으로는 장기 성장에 이르지 않고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이 주장은 1970년대 고인플레이션, 저성장 기간 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프리드먼의 동료 루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케인스 이야기의 동태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경제가 나쁜 쪽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며, 이에 따라 자신들의 행태를 스스로 조정해 경제를 다시 완전 고용 균형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합리적인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은 정부의 개입 시도를 미리 간파하여 정부의 조치를 예상하고 그 정책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쪽으로 행동한다. 그리 되면 결국 정부 개입은 불경기를 막는 데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루카스의 이론은 수학적으로 근사했다.(노벨상 수상) 그러나 그의 과도한 합리성 버전은 전통 경제학자들의 신뢰마저 한계에 이르게 하였다.
2001년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허버트 사이먼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런 주장을 내놨다. 애커로프는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토마토를 사면서 정부의 미래 재정 적자를 추정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실제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그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소비해야 하는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얘기다. 귀납적인 합리성 모델을 정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을 보여 주었다.
즉, 소비자와 생산자가 완전 합리성에서 약간 모자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정확히는 사람들이 결정을 어떻게 내리든 상관없이) 케인스가 말한 동태성이 작동되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로 빠져 드는 데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애커로프는 또한 시간 지체가 경제의 동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가격과 임금의 경직성과 즉각적인 조정을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시간 지체에 주목했다.
그의 모델은 또 정부가 시장에 유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악순환에 반작용을 가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애커로프의 연구는 펠프스, 블랑샤르, 맨큐와 같은 인물들의 연구와 합쳐져서 오늘날 '신케인지언 경제학'의 영역으로 발전했다. 신케인지언 경제학이 경제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정부와 월 스트리트 등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자율과 재정 적자 같은 요소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거시 경제학에 토대를 둔 신케인스주의는 전통적 정통성에서 뒤로 물러나 완전하지 않은 합리성, 동태성, 그리고 시간 지체 등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측면에서 신케인스주의는 복잡계 경제학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신케인스주의는 균형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되었다. 그 결과 이론의 실증적 성공은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다.
모아 놓으면 다르다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 행위자들의 미시적 상호 작용이 어떻게 거시적 구조와 패턴을 유발하는지 논의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슈거스케이프에서 매우 단순한 행위자들조차 그 상호 작용이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 같은 패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복잡계 경제학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업적은 행위자, 네트워크, 진화의 이론에서 시작해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거시적 패턴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창발성은 신비로운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 이루어진 단일 물 분자는 젖은 느낌이 없다. 그러나 컵에 있는 수십억 개의 물 분자들은 젖은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젖었다는 느낌은 특정한 온도 범위에서 물 분자들 사이의 미끄러운 상호 작용 결과 나타나는 집단적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의 온도를 낮추면 분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상호 작용을 한다. 즉, 물은 수정 구조의 얼음을 형성하고, '젖었다'는 창발적 특성 대신에 딱딱한 특징을 갖는다.
우리가 신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포들이 협력함으로써 그 어떤 세포도 단독으로는 스스로 할 수 없는 보다 높은 차원의 기능을 제공한다.
복잡계 경제학 역시 경기 사이클, 성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경제적 패턴들을 시스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내생적으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로 본다. 복잡 적응 시스템들은 많은 형태의 시스템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창발적 패턴들을 갖고 있다. 이 패턴들을 분석하면 그런 시스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그런 대표적인 세 가지 패턴, 즉 진동, 단속 균형, 거듭제곱의 법칙 등을 살펴볼 것이다.
진동 : 맥주 업계의 호황과 불황
경제는 경제 전반의 경기 사이클, 산업 차원의 상품 사이클, 그리고 보다 장기에 걸친 파동 변화에 따라 진동한다. 이런 진동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런 진동이 그렇게 끈질기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동은 복잡 적응 시스템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예를 들어, 생물의 생태계에서 개체 수는 진동의 패턴을 따른다. 20세기 초반, 우크라이나 화학자 알프레드 로트카와 이탈리아 수학자 비토 볼테라는 생태계에서 약탈자와 먹잇감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하는 진동을 묘사하기 위해 유명한 모델을 만들었다.
여우와 토끼의 개체 수를 생각해 보자. 이 모델은 토끼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 여우는 보다 많은 토끼를 잡아먹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여우의 개체 수는 증가하고 토끼의 개체 수는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끼의 개체 수가 감소하면 결국 여우의 개체 수는 줄어들고 이로 인해 토끼의 개체 수는 늘어난다.
여우와 토끼 개체 수 진동은 이렇게 일어난다. 이런 동태적 시스템은 결코 정지하지 않고 무한히 진동한다. 이 모델에는 진동을 초래하는 외생적인 충격은 없다. 부침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경제 시스템의 구조에서 어떻게 내생적인 진동이 발생하는 것일까? 1950년대 MIT의 제이 포레스터는 '맥주 유통 게임'으로 불리는 게임을 만들었다.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과 동태적인 구조를 결합할 경우 이것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통하여 간단한 경제 시스템에서 진동을 만들어 내는지를 증명했다.
한 학생은 맥주 양조업자, 다른 세명의 학생은 맥주 유통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 역할을 각각 맡는다. 각 참가자는 맥주 상자들을 재고로 갖고 있다. 서로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 주문 흐름은 고객에서 양조업자로 공급 체인을 따라가지만, 맥주 흐름은 그 반대다. 주문이 제출되고 맥주가 공급되면 그다음 회의 게임이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보유한 재고에 대해 상자당 05달러를 지불한다.(맥주 보관 비용) 그리고 맥주의 재고가 바닥나는 경우에는 상자당 1달러를 내야 한다(화난 고객과 판매 손실을 감안). 따라서 참가자들은 재고가 바닥나는 일 없이 주문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재고를 보유하려고 한다. 비용의 대칭성 때문에(추가적인 재고 비용보다 부족 비용이 더 크다) 약간의 추가적 재고를 가지려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게임의 승자는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말은 쉽게 들리지만 몇 번의 곡절 또는 변화가 일어난다. 실제 생활에서처럼 맥주를 주문하는 시점과 주문된 맥주를 받는 시점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다. 예컨대, 맥주를 생산해서 트럭에 실어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문을 내는 시점과 그것이 처리되는 시점 간에도 조그만 시간 지체가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주문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상호 작용도 참가자들 간에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시간 지체들은 상황을 좀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유통업자인데 도매업자로부터 큰 주문을 받는다고 하자. 재고에 갑작스러운 감소가 일어나고 재고를 채우기 위해 제조업자에 큰 주문을 낸다. 그러나 맥주를 받으려면 몇 회가 걸릴 것이고, 그 사이 또 큰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다음에도 높은 수요가 이어질 것을 예상해 주문을 더 크게 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일시적인 하락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자칫 2회 뒤에는 당신의 재고가 맥주로 넘칠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동과 행동에 대한 반응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는 경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이 게임은 정확히 균형에서 출발한다. 1회 이후부터 참가자들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얼마나 주문할지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참가자들에 따라서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 회피적이냐에 따라 4개보다 좀 더, 혹은 좀 덜 주문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회에 이르러 소비자 수요가 4개에서 8개로 갑자기 늘어난다. 참가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소비자 수요 수준은 앞으로 남은 게임 동안 8개로 유지될 것이다. 한 번에 주문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주문의 증가는 공급 체인을 따라 예상치 못한 변화로 이어진다.
실제 사람들과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주문의 갑작스러운 점프로 재고 수준이 떨어지자 초과 주문을 하는 등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초과 주문의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전달되는 과정에서 확대된다.
과잉 반응 사이클은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일부 참가자들은 주문을 줄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일부는 아예 주문을 하지 않기도 한다. 과잉 주문과 과소 주문의 진동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이에 따라 가상의 맥주 산업도 매우 값비싼 부침의 사이클을 겪는다.
이 맥주 게임을 수백번 다양한 사람들에게 실험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다시 말해 마찬가지로 거친 진동의 파장을 관찰하였다. 전통 경제학 이론은 참가자들이 완전하게 합리적일 경우 거친 진동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종류의 행태로 인해 그렇게 단순한 실험에서 거친 진동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인가? 스터먼은 참가자들이 활용한 의사 결정 규칙을 통계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이 규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준점을 정하고 조정한다"는 행태에 기반을 둔 것이다. 참가자들은 재고 수준을 살피고, 시간 지체의 효과를 고려해 자신의 미래 수요를 연역적으로 계산하기보다는 단순히 주문과 재고 수준에 대한 과거의 패턴을 보고 귀납적으로 추론해 정상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패턴으로 기준점을 정한다. 이때 시간 지체가 있는 환경에서는 일단 기준점을 정하고 조절한다는 규칙이 개인들을 과잉 반응하도록(과잉 주문하거나 과소 주문하는) 만들고, 그 결과 사이클 행태라는 '창발적 패턴'이 발생한다.
맥주 게임은 앞에서 얘기했던 단순히 꾸물거리는 젤리와 같은 전파 과정이 아니다. 물론 이 게임에도 하나의 외생적인 충격을 받는다. 주문이 4개에서 8개로 증가하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번의 두들김을 받은 젤리와 달리, 맥주 게임에서는 진동이 시작되면 시스템이 결코 균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맥주 게임에서 진동의 궁극적인 원천은 외부적인 충격 그 자체가 아니라(사실 이것은 단지 시스템을 출발하게 한다는 것뿐임) 참가자들의 행태와 시스템의 반응(feedback)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외생적인 동력을 전파하는 게 아니라 내생적으로 동력을 창출한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별 행태의 예측불허한 변화들이 모이면 거시적 차원에서는 큰 창발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제는 결국 공급 체인, 재고, 시간 지체 들로 가득 차 있다. 거시 경제의 실제 진동의 원인은 가지각색이지만 맥주 게임이 주는 교훈은, 사이클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서 활용하는 귀납적 규칙들이 경제 시스템의 동태적 구조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거대한 맥주 게임과 같은 것이라면 이것이 던지는 한 가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금리 인하, 재정 지출 증가와 같은 표준적인 해법들은 사이클의 근원을 다룬다기보다는 단지 그 증상을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기 사이클을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지만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사이클의 영향을 감소 시키고자 한다면 경제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경제의 동태적 구조는 명시적인 정부의 개입이 없다고 하더라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맥주 게임의 사이클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간 지체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가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양조업자가 소매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방안 등).
1960년대 시작된 정보 기술 혁명은 이 두 가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경기 사이클 변동성은 1959년 이후 계속 줄어 왔으며, 특히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컴퓨터 덕분에 기업들은 신속한 주문 처리, 저스트인 타임 재고 관행 채택, 생산자와 부품 등 공급 체인 간 전자적 연결이 가능해졌다. 줄어든 사이클 변동성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기술 및 산업 관행의 변화로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맥주 게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속 균형 : 핵심 기술이 있는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뒤 한 세기 동안 생물학자들은 진화는 천천히 선형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종의 형성과 소멸이 순탄한 패턴을 보일 것으로 가정했다. 그 뒤 고생물학자인 제이 굴드와 엘드리지는 1972년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기존의 이런 관념을 뒤집었다. 그들은 화석 기록은 진화가 순탄한 경로를 결코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히려 진화는 오랜 기간 동안의 정체 상태와 더불어 폭발적인 혁신과 대량 소멸 기간들이 곳곳에 가미된 과정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굴드는 고요와 폭풍이 교차하는 패턴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속 균형(단선적, 불연속적 균형)'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단속 균형의 패턴은 생물학적 진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눈사태에서부터 주식 시장의 폭락에 이르는 다른 복잡 시스템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행태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네트워크 구조이다. 네트워크들이 매우 밀도 있는 연결과 매우 듬성듬성한 연결을 서로 혼합해 놓은 구조로 자기 조직화한다는 점을 앞장에서 보여주었다. 산제이 제인과 크리슈나는 생물 생태계에서 단속 균형이 출현한 밑바탕에는 그런 네트워크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화 생태계에 관한 가상 실험에서 이따금 어떤 종들의 경우는 이를 제거하면 일련의 연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대량 소멸로 이어졌다. 이런 종들은 먹이사슬과 생태적 지위의 경쟁 측면에서 다른 종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런 종들을 '핵심 종'이라고 부른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인과 크리슈나는 단속 균형에는 세 가지의 뚜렷한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임의의 국면이다. 네트워크가 퍼져 나가지만 특정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임의의 변화들이 일어나지만 이 단계에서는 큰 효과를 수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국면은 균형의 기간이다. 그 뒤 어떤 혁신이 일어나면서 네트워크는 성장 국면으로 바뀐다. 국면 전환을 가져오는 이런 혁신은 양의 되먹임 고리를 통해 다른 혁신들을 촉진시킨다. 혁신이 추가적인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 생태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먹이와 생태 지위 네트워크에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성장 국면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성장 국면이 완화되면서 조직화된 국면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변화들이 통합되고 네트워크는 고도로 구조화된다. 그리고 핵심 종들은 상호 작용 네트워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지점은 항공기의 비행 경로를 그린 지도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와 같다. 네트워크는 조직화된 국면에서 한동안 그대로 유지된다(균형의 또 다른 기간이다). 그러나 그 뒤 어떤 혁신이나 돌연한 변화가 핵심 종들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핵심 종에 영향을 주는 변화는 전체 조직 구조로 퍼져 나가고 네트워크는 멸종의 파고 속에서 무너진다. 이런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임의의 국면이 전개되고, 그다음에는 성장 국면이 오는 식으로 반복된다.
많은 관찰자들은 기술 혁신은 정적과 폭풍이라는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수년에 걸쳐 기술 개발을 하나의 진화 과정으로 보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다. 이 연구에서 제기된 두 가지 중요한 관찰은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단속 균형과 관련이 있다.
첫째, 어떤 기술도 독립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모든 기술은 다른 기술들과의 관계에 의존한다. 예컨대, 이동 전화의 발명은 라디오 기술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기술과 코딩 기술 등 다른 많은 분야를 활용했다. 이러한 상호 관계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다.
두 번째는 기술은 본질적으로 모듈러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엔진, 변속기, 차체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모듈들이 조립돼 만들어진 게 이른바 '아키텍처'다. 자동차의 경우 아키텍처는 차 자체의 디자인이다. 모듈의 혁신은 새로운 아키텍쳐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마이크로 칩이 PC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후속적으로, 연관되는 혁신들을 촉진하는 등 큰 파급 효과를 갖는 경우는 아키텍처 혁신이다. 이제 우리는 제인과 크리슈나 모델에서 단속 균형 패턴을 가져오는 중요한 특징 두 가지를 알았다. 상호 작용을 하는 네트워크와 개별 노드의 촉매 효과다. 11장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지만 기술 연계망이 어떻게 연쇄적 변화와 연계되면서 단속 균형이라는 창발적 패턴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어떤 특정 기술들은 이 연계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듭제곱 법칙 : 지진과 주식 시장
전통 경제학의 예측 중 하나인 주식 가격은 랜덤워크를 따른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IBM 주식 차트는 모호한 랜덤워크와 그렇게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식 가격 움직임은 랜덤워크를 많이 닮은 게 아니라 이와는 다른 현상, 즉 지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진의 경우 모든 규모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나 지진이 클수록 빈도는 드물다. 이 결과는 가장 규모가 작은 지진에서부터 가장 규모가 큰 지진 쪽으로 기울기가 쭉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관계를 거듭제곱 법칙이라고 부른다. 분포가 지수 또는 거듭제곱을 갖는 방정식으로 표현된다는 이유에서다.
거듭제곱 법칙은 여러 가지 광범위한 현상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물 소멸의 규모, 태양 표면의 폭발 강도, 규모별 도시 순위, 교통 혼잡, 면사의 가격,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섹스 파트너의 분포 등이 모두 그렇다. 거듭제곱 법칙은 진동과 단속 균형과 더불어 복잡 적응 시스템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성이다.
이 법칙의 첫 발견은 경제학에서였다. 바로 1895년 빌프레도 파레토다.
파레토와 망델브로 발견에서 놀라운 특성은 1980년,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경제물리학자들이 주식 시장 데이터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주식 가격의 변동은 분포의 꼬리 부분에서 거듭제곱을 따른다는 게 분명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변동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시장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를 경우 블랙 먼데이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0의 -148승이 아니라 10의 -5승에 더 가깝다.(100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
주식 시장은 왜 변동성이 큰가?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변동성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또 그런 변동성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파머와 그의 팀은 큰 가격 변동의 원인은 주문서 자체의 구조라는 점을 발견했다. 주문서에 쌓인 주문들 간의 가격 수준 차이가 클 때 큰 변동이 일어났다. 큰 시장 가치의 변화는 단지 주문 장부에 쌓여 있던 주문 패턴의 인위적 구조에 따른 결과다.
파머와 그 동료들의 연구가 나오기까지 이런 고르지 못한 주문 패턴이 주식 변동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들은 주문 예약의 수학적 모델을 만들고, 임의의 거래를 할 때(다시 말해 아무런 실제 뉴스가 없을 때) 예약 주문의 구조는 그 자체로 중요한 변동성의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예상한대로 거래량이 적은 소형 주식들의 경우 유동성이 높은 대형 주식보다 가격 변동성이 더 크다는 점도 보여 주었다.
앞서 살펴보았던 맥주 게임에서의 거듭제곱 법칙은 시스템 그 자체의 구조에서 파생된다는 얘기다. 파머의 연구 결과는 개별 주식에서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많은 측면에서 맥주 게임과 파머 연구 팀 모델이 던지는 시사점들이 같다. 경기 사이클과 주식 가격 변동 등 복잡한 창발적 현상들은 세 가지 근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시스템 참가자들의 행태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제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 규칙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맥주 게임 참가자들이 보여 준 '일단 기준을 정한 다음 조절하는 규칙'일 수도 있고, 주식 주문에서 '학생 분포'가 보여 주는 규칙성일수도 있다.
둘째, 시스템의 제도적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맥주 게임에서 제조업자와 소매업자들 간의 공급 체인 구조는 참가자들의 행태와 결합해 진동을 일으키는 역동성을 만들어 냈다. 주식 시장의 경우에는 제한 주문 시스템의 구조가 거래자들의 행태와 결합, 거듭제곱 법칙이라는 변동성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시스템에 대한 외생적 투입 요소들이다. 맥주 게임에서는 고객 주문이 한 번 만에 뜀박질할 경우였고, 주식 시장에서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외생적인 충격이 시스템의 역동성에 불을 붙이고 촉발에 기여한다는 것은 물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외생적 충격이 하나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히도 전통 경제학에는 이른바 균형이라는 굴레 때문에 이 요소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 바람에 앞의 두 가지 요인이 희생되고 말았다.
복잡계 경제학이 모든 경제 패턴들의 수수께끼에 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은 새로운 분석의 툴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해서 우리가 관찰한 행태들을 낳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현실 경제는 전통 경제학이 상상하는 균형 세계에 비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멈추지 않는 진동, 단속 균형, 거듭제곱 법칙, 이것들은 모두 이른바 복잡 적응 경제에서 작동하는 대표적인 행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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