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정말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했지만
가장 아름답고 신기한 생명들이
끝없이 출현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종의 기원>
10. 디자인 공간 : 게임에서 경제까지
이번 장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를 이콜라이 모델로 하여 단순 게임에서의 전략을 디자인하는 데 어떠한 혁신적 방식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내용은 생략)
경제에서 협력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와 같은 변절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죄수의 딜레마 경연 대회
액설로드는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시도했다.
라포포트의 전략은 '눈에는 눈' 전략으로, 일단 처음 만난 상대에게는 무조건 협조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내린 결정을 보고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팃포탯 전략이 우승을 차지했다.
액설로드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단순한 전략이 어떻게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전략을 누르고 계속해서 우승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팃포탯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몇몇 특정 전략과 대응했을 때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 사실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만약 두 참가자가 모두 팃포탯 전략을 구사한다고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이 모두 협조했을 경우에는 뛰어난 점수를 쌓을 수 있지만, 어느 한순간 한 명의 실수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두 참가자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협조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국가 간 핵무기 조절 협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액설로드는 이런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될 수 있는 재앙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실리코 전략
린드그렌의 모델은 컴퓨터상에서 동시에 두 명 이상을 대상으로 집단 실험을 수행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복잡한 실물 경제 체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정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린드그렌의 시뮬레이션에는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경쟁과 협조 간 내재적인 상충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와 시스템을 상시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협력적 구조는 실물 경제에서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개인적 구도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린드그렌의 모델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실험하는 행위자들에게는 최적화된 결정을 내릴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방의 과거 선택을 기억해 내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셋째, 행위자들의 다양한 상호 작용은 종종 예상치 못한 복잡한 창발적 패턴의 행태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 모델이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칼 심스의 '진화하는 가상 생물체' 연구처럼 린드그렌 역시 죄수의 딜레마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진화적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린드그렌 모델은 죄수의 딜레마에 관해 가능한 모든 전략이 포함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담은 방대한 디자인 공간을 진화적 방법으로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린드그렌 모델의 전체적인 구조는 사실상 죄수의 딜레마와 인생 게임이라는 두 가지 게임이 혼합된 체제다.
인생 게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단순한 게임 규칙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셀의 패턴이 마치 아슬아슬하게 삶을 지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4가지 전략
- 항상 변절한다.
- 항상 협조한다.
- 팃포탯
- 반팃포탯 - 항상 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내린 결정과 반대로 따라하는 전략
린드그렌은 게임을 시작할 때 임의적으로 각 행위자들에게 위의 4가지 전략을 고루 부여한 후 진화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고 주기적으로 임의적 변화(돌연변이)를 주어 그 결과를 추적했다.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는 3가지 변화가 가해졌다.
첫째는 '점 돌연변이'로 행위자의 컴퓨터 DNA 일부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예: 00 -> 01) 둘째는 '유전자 복제'로 DNA 일부가 복사되어 꼬리에 첨가된다. (예 : 01 -> 011) 유전자 복제 효과 중 하나는 행위자가 과거의 결정 패턴을 더욱 많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자는 바로 전 라운드의 결과뿐 아니라, 그 이전 라운드에 있었던 일까지도 기억해 내어 게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이 확장될수록 행위자는 더욱 복잡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셋째는 '분할 돌연변이'로 DNA의 어느 한쪽을 모두 삭제하는 것이다. 분할 돌연변이는 기억력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하고 전략의 복잡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편, 린드그렌은 이런 변이에 덧붙여 협조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변절을 택하게 하는 등 행위자들이 가끔씩 실수를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바둑판 위의 우림
린드그렌은 가로세로 각각 128칸의 게임판을 제작했다. 한칸에 한 명의 행위자가 자리 하고 각 행위자는 4가지 전략중 하나를 택하여 게임을 시작한다. 전략들이 진화하기 시작하고, 가장 우수한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서 근접한 셀에 자리한 행위자들에게 자신의 전략을 전파시킨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생태계가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4가지 전략이 상호 작용한 끝에 최초에는 아무렇게나 질서 없이 흩어져 있던 행위자들이 점차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팃포탯'과 '항상 협조 전략'을 택한 행위자가 함께 고득점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곧 항상 변절하는 행위자의 대다수가 게임판에서 사라진 반면, 협조하는 행위자들의 규모가 크게 늘어나 하나의 섬을 이룬듯한 모양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조적인 섬이 항상 이 모습 그대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때로 변절 전략을 택한 행위자들이 협조적 무리를 파고들어 인근 협조 전략가를 침몰시키는 경우도 있고, 협조 무리들의 규모가 마치 박테리아와 같이 빠른 속도로 증대되어 변절자들의 무리를 몰아내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계속 진화하듯이 변화 한다는 이야기....
숲의 제왕
그렇다면 승자는 누구일까? 린드그렌의 모델처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시스템에서는 단 한 명의 승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최적, 최고의 전략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특정 시기에 생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순간 특정 전략이 등장하여 한동안 게임판을 지배하는 등 화려한 나날을 보내다가도 새롭게 등장한 다른 전략에 의해 결국 소멸되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일부 전략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게임판을 함께 독식하다가 새로운 전략의 등장으로 게임판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함께 등장한 두 전략이 공생 관계처럼 협조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러한 경우 한 전략에 문제가 생길 경우 나머지 한 전략도 동시에 침몰하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게임판에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도 있다. 팃포탯과 같은 단순 전략을 구사하면서 게임판을 독식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상관없이 근근이 삶을 이어 나가는 전략 말이다.
한편,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게임은 또한 앞에서 설명한 이른바 '단속 균형'이라는 불연속적 패턴으로 흘러간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승리 전략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이들이 게임을 지배하게 되면서 상대적인 안정기가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시기에는 모두가 공생하는 가운데 일부 행위자들의 전략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구가하게 되어 아무도 전략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또 다른 작은 혁신이 일어나 발전 모멘텀을 얻게 되면 게임판의 패턴은 순식간에 뒤바뀔 수도 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협조 위주의 전략이 우세를 보이는 등 가끔씩 모든 행위자들이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경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변절과 실패의 시대가 도래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은 특정 환경과 시간에서 어떤 전략의 성공과 실패 여부가 다른 전략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판은 제인과 크리슈나의 '핵심종(키스톤) 모델'과 아주 유사한 하나의 거대 생태학적 그물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스템의 일부분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는 널리 전파되어 반대편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팃포탯 전략가들에게 둘러싸인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떠올려 보자. 팃포탯 전략가들은 '항상 변절' 전략가들로부터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보호하는 형국을 띠고 있다. 그러나 팃포탯 전략가들에게 작은 돌연변이가 발생해 이들이 일종의 축소 악순환에 빠져 드는 일이 발생한다고 가정하자. 이 틈을 타서 '항상 변절' 전략가들이 섬 내부로 침입을 시도하면 '항상 협조' 전략가들의 섬은 급속히 붕괴되어 게임판에서 사라지고 만다.
변화에 민감한 성향으로 인해 그 누구도 방정식을 사용하여 모델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실제 경제예측만큼이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이 임의적 오류 같은 것들 때문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에 프로그램된 모델은 사실상 완벽하게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돌연변이율이나 오류를 임의로 작성한 후 두 차례에 걸쳐 프로그램을 돌려 보면 두 번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행위자의 출발점, 행동 규칙, 심지어 임의적 요소들의 수치가 무엇일지까지 정확히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델의 정확한 행태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마디로 너무 복잡하다는 얘기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델을 돌리고 진화시키는 것이다. 비록 모델의 행태를 정확히 예측해 낼 수는 없지만,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모델을 이해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모델의 행태를 조절하는 특정 모수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돌연변이의 등장 횟수, 오류 발생 비율, 그리고 게임 내의 상대적 보상 체계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게임의 거시적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수들의 값에 따라 행위자들은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도 있고, 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침체된 비협조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또한 가장 혁신적인 신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수들의 값은 어떤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결과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돌연변이의 비율이 0.001 이하이면 혁신과 협조 수준은 매우 낮다" 혹은 "돌연변이의 비율이 0.001 이상 0.01 이하일 경우 게임 환경은 매우 역동적이고 혁신적으로 변화하며 협조 수준과 이익 또한 상승한다" 등과 같은 표현들이 가능해진다.
모수들의 값에 따라 게임 환경은 특정 전략들에 우호적 또는 적대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친절하지만 터프한 전략은 비록 많은 오류가 발생하지만 협조적 환경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반면, 강철주먹 전략은 매우 비협조적인 환경에서 돋보였다" 등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는 경제 문제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진화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최고의 전략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과 같이 오히려 진화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전략이 등장한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 생태계와 같다.
그렇다면 더욱 복잡한 게임들 속에서도 전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100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는 세계 경제라는 거대한 게임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바벨의 도서관
만약 세계 경제라는 디자인 공간이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면, 가능한 모든 문헌들로 구성된 디자인 공간을 떠올려 보자.
특정 레고 세트를 사용하여 만들 수 있는 레고 디자인은 한정되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후 쓰일 책들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그것이 우주의 수명이 다하는 기간까지도 탐색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디자인 공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작품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디자인 공간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틀렸다고만 볼 수 없다. 디자인 공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디자인 공간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장 길게 만들어질 수 있는 도식의 가장자리 둘레가 늘어나거나 축소될 수 있으므로 디자인 공간은 시간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지구상에서 DNA를 가지고 있는 생물체의 디자인 공간은 확대돼 왔다. DNA는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지고 해당 종족이 '테크놀로지(기술, 예컨대 난자, 자궁 등)'를 통해 길어지는 디자인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문헌상의 디자인 공간의 크기 역시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석판에 상형 문자를 새겨 넣던 시기의 책은 당연히 짧았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 초고속으로 책의 내용을 바로 우리의 뇌로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된다면 프루스트의 작품도 간결해 볼일 수 있을 것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디자인 공간에 관해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을 상기 시켜 준다. 알파벳, 숫자, 그림 혹은 DNA의 화학적 코드 등 일련의 기호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디자인 공간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디지털화되어 컴퓨터에 저장될 수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 공간의 자격 조건을 갖춘 것이다.
스미스의 박물관
그렇다면 사업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스미스의 도서관에 있는 사업 계획서가 사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테스트는 이른바 사업 계획서 식별자가 그 계획을 활용해 계획서에 설명되어 있는 대로 경제적 활동을 조직화하고 창출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 계획서의 식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기업의 경영 팀이다.
상상의 사업 계획서도, 그것이 비록 수천 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세세한 측면에서 시스코를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식을 디자인으로 바꾸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도식이란 결국 이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디자인을 간단히, 압축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내용들이 세세하게 계획서에 기술될 필요는 없다.
사업 계획서는 식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묵시적인 지식, 문장, 기술 등에 크게 의존 한다. 마치 레고의 도식에서 어린아이들이 플라스틱 벽돌들을 선택하여 쌓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처럼, 또 DNA 도식에서 정말 필요한 능력을 갖춘 난자와 자궁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시스코 경영 팀이 이 계획서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지니고 있으면 충분하다.
생물학적 시스템에서처럼 사업 계획서의 도식과 식별자들은 함께 진화 한다. 사업 계획서는 다시 관리 팀의 미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식의 '공진화' 과정으로 나가는 것이다. 시스코 관리팀에게 야노마모족의 사냥꾼 모임에 관한 사업 계획서를 줘도 의미 없는 사업 계획서일 것이다.
경제의 진화 모델
진화적 알고리즘을 통해 혁신, 성장, 창조적 파괴라는 과정이 발생하는 것처럼 스미스 도서관을 통한 진화 역시 실물 경제에 혁신, 성장, 창조적 파괴라는 동일한 패턴을 가져다준다.
보편적 진화 모델로 돌아가 보면 사업 계획서라는 '기질'에서 변이, 선택, 그리고 복제의 과정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우리는 앞으로 4장에 걸쳐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찾기 위한 진화 과정을 조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실험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사업 전략과 조직 디자인을 창안하면서 이른바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선택은 경제의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일부 사업을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디자인이 더욱 많은 자원을 제공 받고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경제 시스템에서 복제가 일어난다.
경제의 진화는 하나의 단일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3개의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물리적 기술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술'로서 물질, 에너지, 정보 등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용도에 맞게 변환시키기 위한 디자인과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적 기술은 인간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디자인, 과정 혹은 규율 등을 말하며 마을, 군대, 매트릭스 조직, 지폐, 법률, JIT 재고 관리 방식 등이 그 예이다.
사업 계획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혼합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한다. 사업 계획서,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은 각각 독특한 적합도 함수를 가지고 있는 만큼 3개의 디자인 공간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업 계획서는 경제적 목적에 맞게 선택되는 경향이 있지만, 물리적 기술 및 사회적 기술의 경우는 다른 목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많은 중요한 물리적 기술들이 군사, 보건 혹은 기타 사회적 필요에 의해 탄생되었거나 단순히 과학자나 발명가들의 호기심에 의해 개발되었다. 법률이나 대학 교육 등 사회적 기술의 많은 부분도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갖고 있지만, 당초에는 다른 목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진화 시스템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원래 한 가지 목적으로 진화된 혁신이 향후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 이른바 전용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모델은 경제의 진화를 물리적 기술 공간, 사회적 기술 공간, 사업 계획 공간이라는 이 세 공간에서의 합동적인 진화의 산물로 본다. 세 공간은 별개의 개념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각 공간마다 진화가 작동한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적합 디자인을 찾아내 증폭시키는 한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은 도태시킨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술, 사회, 경제 세계의 질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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