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261UCG4dkEA?si=tVoKaGlpkrBvC5GR
뇌과학과 철학 인터뷰 5편을 정리
인간의 뇌가 어떻게 동작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 하면서 수천 년전 부터 발전해 온 철학과 비교 하면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영상임.
1부 뇌는 환상을 만든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많은 대답이 있다.
러셀의 정의 : 철학은 신학과 과학 사이의 무인지대에 있는 학문.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고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알듯 모를듯 한 것이 철학.
그것을 알게될때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인류가 미토스(Mythos, 신화)의 세계에서 로고스(Logos)의 세계로 이행되었고
17, 18세기 근대에 과학이 등장
신화(미토스) - 이성(로고스) - 과학
다신론에서 유일신앙으로 이행
중세는 합리적 사고와 초월적 사고가 혼합된 시기가 지속
과학은 감각이 끝나는데부터 시작
현미경과 망원경이 출현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관찰하면서 과학이 시작
과학의 세계는 논리적 세계이다.
과학은 고대 로고스 출현의 근대적 버전이다.
철학의 시작은 탈레스 : 우주의 근본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근본 원리가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 신학
근본 원리를 가정하는 것이 철학과 과학
논리적 추론으로 찾아 가는 것이 철학
실험과 증명으로 찾아가는 것이 과학
철학의 시작은 탈레스 : 탈레스는 자연현상의 원인을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 했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이유는 신이 노했기 때문에서 자연현상이 이유라고 생각의 변화)
이러한 사고 패턴의 변화가 현대에도 반복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현실/가상의 구분의 원형이다.
뇌과학의 한계를 지적할때 사용하는 사고실험
우리가 뇌의 프로세스를 안다고 해서 인간의 마음, 감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건 감각질은 뇌과학의 마지막 문제이다.
감각질 문제는 의식 연구 분야의 핫 토픽
감각질은 뇌과학의 의식분야의 연구주제
의식이론은 많지만 에델만의 의식이론에 주목
감각질 문제는 막다른 상황과 같다. 거대한 심연일 수 있겠다고 생각
감각질 문제란?
무지개색, 시큼함, 가려움과 같은 감각 이것이 어떻게 뇌의 작용과 연결이 되느냐? 어려운 문제
최근에 새로운 관점에서 감각질 문제를 해결
존재론적 접근으로 생각해보자.
"착각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착각했다"는 말은 착각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실체를 본다는 말이다.
"착각했다"는 말은 "착각하지 않음"을 전제, "착각했다"는 말은 "실체가 있다"는 말
최근의 주장은 "착각은 착각이다"
뇌과학자들은 뇌는 실재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
착각이 있다는 말은 착각이 아닌 것(실재)이 있다는 말과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이 착각일 수 있다고 생각
예시) 아무도 듣지 않는 소리는 존재할까? 아무도 듣지 않으면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재는 존재 한다. 실재는 공기의 압력의 변화
실재는 있지만 귀가 없으면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냄새나 맛은 분자적인 것, 음식물 분자의 진동에너지와 같은 것.
결국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은 실재가 아니라 뇌가 만들어 낸 것.
실재가 아니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어냈다는 입장인데 이 것과는 조금 다르다.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지만 실재는 있다는 입장.
소리의 실재는 공기의 압력의 변화, 색깔의 실재는 진동수, 냄새나 맛의 실재는 분자.
실재와 뇌가 만들어낸 감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감각질 문제를 이런 접근방법으로 풀 수 있다.
착각과 착각이 아닌 것이 혼재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착각이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신경 세포가 얼마나 필요한가? 대략 200억개의 신경 세포가 시각처리를 한다.
시냅스의 숫자는 10의 14승개 정도 필요하다.
움직임은 존재할까?
영화는 스냅사진을 연결한 것일 뿐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스냅사진 한장 한장이 실재이다. 스냅사진 1초에 30장을 보여주면 우리는 그것을 움직임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움직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움직임은 뇌가 만들어낸 차이일 뿐. -> 변화를 운동으로 인식한것일 뿐
공간상의 변화를 운동으로 인식
시간상의 변화를 상태의 변화로 인식
움직임의 실체는 스냅 사진
그 움직임은 뇌가 만들어 낸 것
색의 진동수는 자연에 존재하지만 색깔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움직임의 실체는 없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가 운동과 변화를 부정.
"있는 건 있고 없는건 없다"
뇌과학과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이 만난다.
움직임은 뇌가 만들어 낸 것이다. 색깔과 움직임은 설명이 된다.
그러면 형태는 어떤가?
형태에 실체는 있는가?
형태에 실체가 없다면 왜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해야 하는가?
복잡한 문제이다.
돌멩이도 에너지 덩어리이고 나도 에너지 덩어리이다.
내가 돌멩이에 맞는 현상은 두 개의 파동이 엉켜버린 것
엉킨 것이 분리될때 돌멩이는 그대로이지만 나는 쪼개진다.
그것이 내가 죽었다는 현상이다.
형태는 존재하는가? 뇌과학의 시각 문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
게슈탈트 심리학에 따르면 선분들이 폐회로를 그릴때 형태로 인식된다.
따라서 실재는 끊어진 짧은 선분일 뿐
실재는 작은 화살들일 뿐
작은 화살들이 폐루프를 그릴때 뇌는 그것을 형태로 인식한다.
결국 시각이 처리하는 것은 형태, 색깔, 움직임이다.
이 모든 것은 뇌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것을 못 느끼는가?
그것은 그것을 처리하는데 사용된 자원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얼굴 이미지를 처리하는데 200억개의 뉴런이 관여한다.
눈은 보는 기관이 아니다.
눈과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별 관계가 없다.
일부만이 외부로 부터 촉발되는 것이며 대부분은 뇌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칸트의 관점과 너무 비슷하다.
칸트의 입장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원래 그 자체의 세계가 아니라
뇌가 구성한 세계일 뿐이다.
결국 뇌과학에서 이야기한 형태, 색깔, 움직임은 뇌가 구성한 것일 뿐이다라는 말과 유사하다.
우리가 이 문제를 감각질 문제로부터 시작
감각질은 실재가 아니므로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뇌과학은 물리적 실재가 있다는 입장
칸트의 입장도 두 파로 갈린다.
있다는 입장(간접실재론)과 없다는 입장(관념론)으로 구분된다.
뇌과학은 간접실재론 입장으로 본다고 할 수 있다.
과학에서 실재는 다음 이야기가 있고 그것은 관계로써 뒤에 다시 이야기 할 것이다.
뇌는 실재를 보지 않게끔 진화되었다.
왜 그럴까?
실재는 있다. 하지만 뇌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왜 안보는 쪽으로 진화를 했을까?
생존하기 위해서 안 봤다.
실재를 보는 순간 생명이라는 정의가 사라진다.
예시) 압핀을 밟았을때 실재는 어디에 있는가?
실재는 발가락이지만 통증은 머리가 느꼈다.
통증은 머리가 느꼈지만 붕대는 발가락에 매야 한다.
왜 발가락에 매어야 하는가?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
아픔은 뇌가 느낀 것이다. 그 아픔을 우리는 실체로 본다.
뇌가 실재를 보지 못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실재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칸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박쥐, 외계인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를 본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실재를 볼 수 없다고 본다.
바퀴벌레의 예시
바퀴벌레도 시각이 있다
바퀴벌레의 시각은 명암은 구별하지만 이미지는 만들지 못한다.
이미지는 바퀴벌레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이미지가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
결국 생명체가 만드는 감각은 생태환경과 관련 (물고기는 눈은 퇴화)
생존을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대한 모델을
뇌가 만들어 내야 한다.
"뇌는 생태계다"
뇌는 우리가 어느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가상세계를 만들어낸다.
강하게 이야기하면 생명체는 가상의 세계에 사는 거네요
따라서 어느 것이 가상이고
어느 것이 실재인지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착각은 착각이다"
칸트의 입장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가상의 세계이다.
거기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실재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세계는 뇌가 구성한 세계이므로
그 자체가 착각이므로
실재를 못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감각질 문제도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
2부. 기억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한다.
중요한 뇌의 기능 중의 하나가 기억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에서
두 가지 기억을 언급
언어/신체와 관련된 절차 기억과 이미지 기억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은 이미지 기억에 관한 소설
주인공인 마들렌을 먹다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
기억에는 감정과 느낌을 동반한다
기억과 느낌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뇌과학의 분야 : 감각, 운동, 기억
기억에 관한 연구는 50년간 축적되었으나
최근에는 더욱 어려워짐
기억을 명쾌하게 알게 된다면 인간을 새롭게 보게 될것
호모사피엔스의 기억은 감정과 링크되어 있다.
파충류부터 포유동물로 진화하면서 감정이 출현
호모사피엔스에서 감정은 굉장히 중요
왜 감정이 중요해졌는가?
브레인은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사는 환경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기억은 우리가 행동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근데 100년 전의 생활 환경은 지금에 비해서 단순했다.
기억은 동적 다이나믹스이다.
기억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이다.
기억과 감정이 결합되었다.
"기억이라고 적고 감정이라고 읽는다"
기억은 알기 어렵지만 감정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감정을 보면 기억이 보인다.
근데 감정은 왜 진화되어 왔는가?
만약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면 하루하루를 살 수 없다
왜냐하면 감정은 선택 메커니즘으로 진화되었기 때문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매순간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행동을 선택한다.
감정과 기억이 강하게 링크되어 있으므로
기억이 없으면 울 수도 없다.
반려견이 죽으면 울어도 연결이 약한 친척이 죽으면 안 울수도 있다
그렇다면 감정과 기억은 왜 강하게 링크되었는가?
동물이 가지는 감정의 지속시간은 짧다
늑대와 사자의 감정은 1분 이상 지속을 못한다
인간의 생리가 가지는 감정의 지속시간도 짧다
재채기, 가려움과 같은 생리적 반응은 정동
정동은 감정이 아니라 생체 반응이다
정동이 개념의 옷을 입으면 감정이 된다
감정은 행동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선택이 복잡해지면서 감정이 기억과 링크되었다.
기억의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기억은 신경세포의 시냅스가 만든다 하지만 시냅스 자체가 기억은 아니다.
기억을 논의하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다
기억, 감정, 의식, 지각, 느낌을 다 알아야 한다.
모두 링크되어 있어서 따로 떼어서 이야기 할 수 없다
기억, 감정, 의식, 지각, 느낌을 통칭 인지라고 한다
인지 작용은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인지 작용의 바탕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인지 작용의 바탕은 접근/회피 반응이다
접근/회피 반응을 뇌과학적으로 말하면 비용/이득이다
이러면 경제와 만나게 된다
기억, 감정, 의식, 지각, 느낌의 바탕에 있는 것이 비용계산
그래서 기본을 비용계산으로 봐도 괜찮다
인지 작용을 비용/이득의 관점으로 보면 실재론과 만난다
우리가 실재를 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이득이 크기 때문
기억의 문제도 기억의 수준이 아닌 그 아랫 단계인
비용/이득 관점에서 보아야 이해가 가능해 진다
그러면 뇌는 이득/비용을 어떻게 계산(측정)하는가?
감정과 행동은 비용보다 이득이 클때 발생한다
이득이 없으면 행동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바로 보상 시스템
기억, 감정, 의식의 문제는 문화적으로 발생한 것
진화적으로 보면 비용/이득과 접근/회피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조절하는 것이 도파민 시스템
도파민 시스템은 매순간 비용/이득을 계산하는 보상 시스템
학습이란 비용/이득 계산을 수치화한 것
도파민 시스템이 운동으로 출력된다
결국 이득이 많으면 도파민이 행동하게 만들고
이득이 적으면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고 볼 수 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순간의 이야기고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봐야 한다
이 계산을 그대로 놔두면 잊어 버리게 된다.
한 순간의 비용/이득 계산을 기억해야
다음 순간에 인출하여 사용할 수 있다
결국 기억의 문제는 행동 예측의 문제이며
행동 예측의 문제는 비용/이득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보상 즉 도파민 시스템이다
행동은 현재에서 미래로 향한다 그래서 예측과 다시 만나게 된다
사실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현재화된 기억이다
기억의 왜곡은 왜 생기는가?
기억이 왜곡되는 사례는 많다
기억을 왜곡해야 그럴듯해지기 때문
기억이 왜곡되는 이유는 맥락을 갖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의 사고작용에서는 맥락이 왜 중요할까?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실에 약간의 각색이 들어가야 재미있다
우리의 기억은 왜 각색이 되는가(진화되어 왔는가)?
바로 뇌는 사실성보다 일관성을 선택 한다
뇌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실재를 안 보는 것이 이득이 더 크기 때문
뇌가 동작하는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
그래서 이야기가 생명력이 있는 이유는 그럴듯하기 때문
그럴듯하다는 것은 일관성이 있다는 의미
일관성은 100% 사실이라는 의미는 아님
사실에 1~2% 각색을 하면 그럴듯 해진다
그래서 기억을 시냅스의 연결로만 보면 해결이 안 된다
시냅스의 연결로만 보면 기억의 전체 그림이 이상해 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기억의 문제를 한 단계 낮춰 다른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
기억의 문제는 나레이티브, 은유, 신화와 링크된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공
정확하지 않아야 유용하다. 이유는 그것이 셀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바뀌어도 나는 나다. 그것이 셀프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대화를 해야
나의 정체성이 확보된다.
자아는 매순간 자전적 과거를 회상하면서
가까스로 유지되는 것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각색한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단절이 되면 정체성이 깨어지기 때문)
결국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색한다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색을 한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객관적인 과거 역사는 없다는 입장
모든 역사는 과거 사실을
현재의 상태로 해석한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나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조작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나라는 맥락을 갖도록 한다
우리의 기억과 감각은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행동의 특징은 현재에서 미래로 향한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억은 저장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미래를 여는 열쇠이다.
문을 열고 나면 열쇠는 필요없다.
기억은 현재의 행위를 위한 것
현재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스키마
예시
흑인 사진을 보면 범죄자를 연상하는 사례 : 이런 것이 스키마
스키마는 의식되지 않는 개념
기억이 스키마를 형성
기억은 즉각 사용하는 용도로 진화
기억은 미래를 여는 열쇠이다
그래서 기억은 인출용이다.
기억은 저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인출은 일을 할 때 즉각 사용하기 위한 것
그러면 어떤 기억이 인출이 잘 되는가?
인출하는 빈도수에 따라 결정된다.
기억을 많이 불러오면 인출이 쉬워진다
기억을 자주 불러오면 인출 비용이 0에 가까워진다.
결국 의식하지 않아도 기억이 인출된다.
사람들이 상투적 표현을 쓰는 이유가 이것이다.
인출비용이 적기 때문에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기억을 인출의 관점,
빈도수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기억에도 종류가 있다.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도 있고
학문과 같이 문자로서 기억되는 것도 있고
기억의 종류별로 메커니즘이 다른가?
기억의 메커니즘은 다르다
크게 두 가지 기억이 있다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
의미 기억은 문자로 된 기억 : 책을 보고 암기하는 기억
일화기억은 암기할 필요가 없는 기억
일화는 내러티브(narrative)를 번역한 말
일화기억은 자동으로 암기되는 것
공포의 경험은 자동적으로 기억
일화기억은 용량이 무한대
일화기억은 자동으로 기억(노력이 거의 안든다)
일화기억은 즉각적
일화기억은 자동적, 즉각적, 무제한적
일화기억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억
일화기억은 해마에서 만들어진다
절차기억, 기술기억은 해마와 관련이 없다
의미기억과 일화기억의 관계는
일화기억이 대뇌피질로 이동하여
공통 부분이 범주화되면서 개념기억이 된다.
일화기억이 개념화된 것이 의미기억이다.
출발점은 일화기억이다
의미기억보다도 열배 이상 중요한 것이 일화기억
왜냐하면 일화기억이 셀프를 만들기 때문!!
일화기억은 나에 대한 기억
일화기억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가 있다.
일화기억은 나의 경험이다
의식이 경험을 일으킨다
의미 기억은 경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의미 기억은 지식일 분이다.
일화기억은 개인적 은밀성을 가진 개체화 된 기억
일화기억을 통해서 개별성의 우주가 출현
의미기억은 개념과 언어를 통해서 통용
일화기억은 우주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기억
일화기억에서 나온 것이 상상과 몽상이다
일화기억은 하나 밖에 없는 특수한 기억
(이 순간은 지금-여기 밖에 없다)
특수성은 범주화가 안 된다
모든 일화기억을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범주화에서 의미기억으로 바꾼다
일화기억에는 시간정보와 공간정보가 붙어있다
그래서 일화기억은 무제한적이다
무제한적으로 인출할 수 있는 이유는
시간정보와 공간정보가 붙어 있기 때문
(언제나 인출할 수 있는 정보(인덱스,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
일화기억에서 시간정보와 공간정보를 떼면 의미기억이 된다
그러면 특수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유사성을 기준으로
범주화되고 개념화된다. 그것이 의미기억이다
다시 돌아가서
특수성을 떼기 전의 특수한 기억이 바로 셀프이다
일화기억의 특징은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나의 경험에 대한 기억
(어렸을때 내가 경험한 경험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기억이다 그래서 셀프(정체성)이된다)
이렇게 범주화된 기억이 이미지가 된다
(이렇게 특수성을 떼어낸 기억은 유사성을 모아 범주화가 가능)
뇌의 기본 단위는 이미지
청각 이미지, 시각 이미지, 촉각 이미지
이미지의 기반이 기억과 창의성
3부. 뇌과학으로 본 프로이트의 꿈
프로이트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음
인간의 의식 아래에 커다란 무의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의식 속에는 성적 욕망과 폭력적 충동이 있다는 것
그러한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이 드러나는게
꿈 속에서 드러난다보 봄
꿈이나 말실수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았고,
무의식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라캉은
우리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이야기
이때 말하는 언어는 우리가 말하는 일상 언어가 아니라
일종의 은유, 환유 이런 개념으로 설명
그래서 사실 우리의 꿈을 보면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기괴한 예술영화처럼 맥락 없이 나타나는 그런 이미지들의 연속인데
이런 꿈에 대해서 뇌과학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첫 편에 우리 브레인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게 시각이라고 그랬죠
여기서 시각을 '시각화한다'는 관점으로 보는 게 중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꿈은 시각적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많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좀더 면밀히 볼 필요가 있음
우리가 낮 동안에는 사실 바깥을 보지만 눈을 감으면 안 보임
그런데 우리가 꿈에는 아주 압도적으로
꿈처럼 생생하다는 말을 사용한다.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가 그냥 연속되어 쫙 나온다.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세계를 시각화해서 적응해 산다
이게 중요한 개념
실재론에서 꿈이 매우 중요해짐
최근 2,3년 사이 꿈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이 나오고 있음
이전까지는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굉장히 비판적으로 프로이트를 봤고
브레인과 꿈을 연구하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회의적으로 보았음
최근 좀더 엄밀하게 봤을때 프로이트가 재평가 받고 있다
꿈에 접근을 한다면
보상 시스템 즉 비용하고 이득,
이 문제가 사실은 우리 모든 인지 장소 그 밑에 있는 가장 핵심이라는 걸
대부분 생물학자나 브레인 하는 사람들이 동의
이 쪽과 프로이트가 연결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꿈은 우리의 보상시스템하고 관계있고
보상 시스템하고 관계 있고
보상 시스템의 케미칼이 도파민
그런데 우리 브레인에서 도파민이 만들어지는 곳이 주로
척추가 끝나고 이쪽에 있는 중뇌 영역들 가운데 뇌
신경세포에서 도파민을 만들어 가지고 두 곳으로 보낸다.
한 곳은 브레인 안에 있는 운동을 담당하는 선조체라는 영역으로 보냄
선조체로 가는 이게 도파민을 만드는 뉴런이 60%이상 죽어서 생기는 현상이 파킨스 병
도파민이 안 가니까 운동을 못하는 군요
그래서 파킨스 병을 뭐라고 하냐면
운동이, 움직임이 몸에 갇혀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움직이려면 도파민이 나와야 하는데 ..
도파민이 이 뿌리에서 만들어져서 두 군데로 가는데
하나는 운동을 만드는 영역으로 가고
또 하나는 우리 욕망을 읽고 생각하는 전전두엽으로 간다.
도파민이 운동 족으로 가는 게 문제가 생기면 파킨슨병에 걸리고
전전두엽으로 가는 것이 시원찮으면 꿈이 사라진다.
전전두엽으로 가는 도파민은 중독, 욕망, 보상하고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을때 도파민이 나온다
결국 꿈이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 프로이트를 재평가하는 이유
꿈을 꿀 때 핵심적인 화학물질이 아세티콜린이다.
심지어 낮 동안에 보다 2배 이상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아세티콜린은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한다
그래서 꿈속에서 이미지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걸 연결하는 화학물질(케미칼)이 아세티콜린이고
그 아스틸콜린이 낮 동안에 나와서도 기억을 연결한다
그래서 낮동안에 몽상, 공상을 하는 것이다
아세틸콜린은 브레인에서 이미지를 연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도파민은 예측이 깨어졌을 때 나온다
우리가 예측한 게 깨질때 "예기치 않다"고 표현한다
그러면 놀람 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꿈속에서는 놀람 반응이 상당히 많다
쥐의 행동에서 도파민이 하는 역할을 실험해보면
보상 시스템, 예측이 깨어졌을때
보너스를 만원 정도 생각을 했는데 사장이 10만원을 주면 예측이 깨진것이다
좋은쪽으로 깨진경우는 포지티브로 예측이 깨졌다고 하고
실망한 쪽은 네거티브로 예측이 깨졌다고 한다
실망을 하든 기뻐하든 나의 예측이 벗어났다는 것이다
벗어날 때 도파민이 나온다
음악 심리학에서 보면 도-미-솔-도가 기본 화음인데
도-미-솔-레 하면 사람들이 어떤 감정이 생기는데
이런것도 일종의 예측이 깨졌을 때라고 볼 수 있다
예측이 깨졌다는 것을 놀람 반응이라고 한다
놀람이라는 말은 뇌과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도파민은 예측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고
포지티브든 네거티브든 도파민은 예측이 깨졌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포지티브로 깨지면 좋잖아요
예측이 깨지는데 좋은 쪽으로 깨지는 쪽으로 행동이 자꾸 간다
그걸 강화학습이라고 그런다. 즉 행동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점점 유혹을 하니까 유혹을 따라간다는 것
꿈은 왜 꾸는가?
꿈은 왜 진화되어 왔는가?
기억 진화의 한 방편이다. 기억하기 위해서...
기억을 진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라는 학문도 지금 기억이라는 학문 속에 들어간다.
꿈 중에 서파수면 2단계에서 파형(슬립 스핀들)이 나온다.
낮 동안에 경험했던 기억이 일화 기억으로 만들어지는데
일화 기억은 낮 동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가서 만들어진 건데
일화 기억의 특징이 뭐냐면 관계입니다.
바로 맥락입니다.
그래서 장면을 만듭니다.
모든 감각이 연합됩니다.
자기 경험했던 것이 낮 동안에 그대로 코딩이 되고 다른 데 이동하지 않고 해마속에 있다가
해마에 있는 걸 실어 나르는 트럭이 옵니다. 그게 세타파라고 하는데 그 파에다 싣습니다.
실어 가지고 대뇌피질로 이동시켜 줍니다.
그 다음에 램수면(꿈꾸는 수면)일 때는
이동을 하면 이전의 기억하고 유사한 기억을 결합시켜야 되잖아요. 그래야 장기 기억으로 바뀐다.
장기 기억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 내가 밤에 꿈을 꾼 것하고
이전 기억들하고 믹싱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근데 함부로 섞으면 안 되잖아요? 유사한 것을 결합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야 나중에 범주화 되고 개념화 돼서 의미 기억으로 바뀔 거 아닙니까
일화 기억은 시간 정보, 장소 정보가 있기 때문에 유니크하다.
유니크한 거는 다른 공통점이 없다.
그러면 시간 정보, 공간 정보를 떼어 버리면 일반화 되어서 다른 경험하고 결합을 시킬 수가 있다.
여기서 결합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주화된 거 하고 요하고의 맥락이 같아야 결합이 된다.
서파 수면은 기억을 이동시키는 과정과 연관이 있고,
램 수면은 절차 기억하고 관련이 있다.
이 과정을 리플레이 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쥐가 트랙을 달리는 실험을 하면
막 훈련을 시켰다가 피곤해서 곤히 잠들었을 때
해마의 뉴런(신경세포)에다가 탐침을 꽂아놓습니다.
이때 뉴런들이 어떻게 활동하는 걸 봤더니
낮 동안에 트랙을 갔던 그 순서대로 파이어링 하는 게 보였다.
바로 리플레이를 통해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서
특성을 떼어내고 범주화하고 맥락을 맞춰서 개념화 시키는 것이다.
다시 정리를 하면
꿈꾸는 잠(램 수면)이 있고, 꿈을 안 꾸는 잠(논램 수면)이 있는데,
꿈꾸는 잠일 때는 낮 동안에 한 운동 기억들을 리플레이하면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이고,
꿈 안 꾸는 잠일 때는 낮 동안에 보았던 일화 기억을 링크해서 대뇌피질로 보내는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이 현상은 세 개의 범주화된 세계로 봐야만 한다.
깨어있는거, 서파 수면, 꿈꾸는 수면
이 세 개가 각각 다른 용도로 진화되어 왔다.
왜 꿈을 꾸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면 더 놀라운 궁극적인 대답이 나온다.
우리의 생각이 뭔가 힌트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은 뭘까? 우리의 상상은 뭘까?
이것의 답은 깨어있는 상태만 봐서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답은 따른 곳에 있을 수 있다. 바로 램 수면이다.
우리 생각은 뭡니까?
생각은 연상이죠.
생각은 연결되어 있죠.
이미지가 흐르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 이미지가 흐르는 거 연결이 됐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낮 동안에 과연 이미지를 연결할까?
낮만 있다면 이미지가 연결 안 되는 상황이 있을까? 라고 물어봐야 한다.
그 상황이 동물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낮 동안에 하는 행위들은 실행 모드이다.
실행 모드의 대표적인 것은 그냥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이다.
책을 읽든지, 일을 하든지, 대화를 하든지, 이게 다 실행 모드이다.
실행 모드의 특징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낮 동안 하는 모드 중에, 목적이 없는 모드가 있다.
그걸 몽상, 상상이라고 한다.
목적이 있냐 없냐를 가지고 우리의 낮 동안의 각성 상태를 설명할 수가 있다.
여기다가 또 셀프를 집어넣어 보면 달라진다.
상상하고 공상할 때 셀프가 있나요?
내가 일을 할 때 셀프가 있나요?
일할 때 셀프가 없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운동선수가 대가급이 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운동을 잘하려면 "힘 빼라"
"힘 빼라"는 말은 뭐죠?
내가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를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행 모드에서 최고의 능률은 몰입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몰입 상태의 정의가 뭐냐면
셀프가 작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걸 아는 것도 벌써 의식이고 셀프가 작동해야만 아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하는 작업, 실행 모드에서는 셀프가 작동하지 않는다.
실행 모드는 특징이 뭐냐면 주의 집중을 해야 되죠.
어탠션 한다는 말은 바로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바로 명상가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지금 여기에 주목한다는 말은 이미지가 흘러가요? 안 흘러가요?
안흘러가는 것이다.
그럼 지금 여기만 있다면 이미지가 연결 안 되면
이미지가 연결되는 건 뭐라고 그러죠? 생각이라고 그러죠?
결국 생각이 출연하지 않게 된다.
이미지가 연결하는 공상, 망상은 어쩌면 인간밖에 못한다.
동물은 할 수 없다.
동물은 실행 모드밖에 없다고 보시면 된다.
먹이를 향해서 그냥 돌진만 한다. 무서운게 나오면 도망간다.
접근/회피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접근/회피만 있을 때는 셀프가 존재할 수가 없다. 운동 밖에 없는것이다.
운동은 셀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에게 와서 상상/공상이 가능해졌다.
상상/공상은 '상'(image)이다.
그게 밤에 꾸는 생각이 꿈이라는 이야기다.
낮에 꾸는 꿈을 상상, 공상이라고 한다.
그게 바로 램수면이 각성 상태로 침투해 들어왔다는 의미다.
램수면이 없었으면, 꿈이 없었으면, 꿈을 이룰 수도 없는다.
꿈을 이루는 건 우리 생각을 통해서 이룬다.
바로 꿈이 생각이니까
다시 정리를 해보면
우리가 깨어있는 상태는 두 가지 상태이다.
하나는 실행 모드, 즉 자동차가 달려오면 내가 도망가야하는것. 먹이가 있으면 찾아가는것.
이때는 나를 잊는다.
실행 모드에는 자아(셀프)가 없다.
자아라는 건 언제 생기냐면 몽상할때
이때 자아가 들어오는 것이다.
내일 뭐 먹을까? 내년에 뭐하고 오늘 여자친구 만날까?
이런 옛날 과거를 회상하면서 무언가를 생각할 때 내가 들어온다.
과거의 기억을 자전적 기억, 일화 기억을 매 순간 회상하는 그 현상을
그걸 회상해서 만들어지는 브레인의 상태를 셀프라고 한다.
그러한 생각이 밤으로 들어가면 꿈으로 나타난다.
꿈은 이미지의 연쇄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우리의 브레인이 구성한 가짜 세계이다.
꿈도 우리의 브레인이 구성한 가짜 세계이다.
이 둘의 차이는 뭔가요?
왜 전자는 리얼이라 인식하고 후자는 꿈이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현실이라는 말하고 실재라는 말을 구분해야 된다.
이때 실재는 자연이다.
자연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우연이다.
자연에는 의도가 없다. 의미도 없다.
자연에는 확률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확률밖에 없다는 말은 우연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연의 세계에서는 예측을 못한다.
예측을 못하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꿈은 예측과 관련이 있다.
꿈은 예측한 내용을 은유로 표현을 한다.
꿈에서는 각각의 도시들은 작동을 하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다 단절 돼 있는 것이다.
즉 장거리 연결이 끊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각자 아우성 치지만 맥락은 존재 한다.
내부의 맥락에 응집성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꿈은 두 가지가 확실하다.
감정이 확실히 있고 낮 동안의 감정보다 더 강합니다.
두 번째는 셀프가 있습니다.
실재, 자연의 특징이 뭐냐 하면 확률만이 존재하고, 전부 다 우연이라는 겁니다.
물론 자연에서는 인과 법칙은 존재한다.
그런데 전부 다 우연이라는 말은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꿈하고 꿈의 가상 세계하고 어떻게 다른지 물었을 때
꿈하고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꿈은 예측적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왜 예측적 메시지가 있느냐 하면
꿈을 보상계로 본다는 쪽이 굉장히 중요하다.
도파민이 언제 나오느냐 바로 예측이 깨졌을 때 나온다.
예측이 깨졌을 때 나온다는 말은 예측이 있다는 말이다.
미래를 예측 하는데 결론이 나왔습니다.
<꿈의 인문학>의 저자는 책 전체 결론을 꿈은 확률적 예측론이다. 확률적 예언이다 라고 주장했다.
꿈 꾼 내용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다.
꿈은 기억의 진화의 한 방편이다.
꿈은 보상 시스템하고 링크되어 있다.
보상 시스템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바로 예측하는 게 딱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상 시스템은 항상 예측이라는 말하고 같이 가게 되는 것이다.
꿈이 예측 시스템이기 때문에 예측은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예측을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지난 수천 년 동안 꿈을 꾸고 나서
꿈을 해몽하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꿈이 그렇게 명확하게 안 드러나느냐 하면
꿈은 은유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은유는 개념의 효용성을 갖고 온다.
은유는 B로 갖고 A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B는 A의 공통 부분도 있지만
B 자체의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항상 확장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해석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 이야기는 해석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우리의 생각의 뿌리가
어쩌면 낮 동안 상상/공상일 수 있다.
셀프가 없는 디폴트 모드에서 이미지를 연결하는 능력이
꿈에서 왔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태아 때, 출산 바로 직전까지는
24시간이 거의 램 수면 상태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꿈꾸는 시간이 초기에는 한 4시간쯤 된다.
그러다가 10대부터 보면 확 줄어든다.
중장년층을 거치면서 노인이 될 때까지도
1시간 반에서 1시간 정도로 줄어든다.
하지만 줄어들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사라지지 않는가가 바로 새로움이다.
이런 점을 보면 우리 브레인은 늙어 죽을 때까지
브레인이 발달하고 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즉 늙어 죽을 때까지 새로운 학습을 하도록
형벌 받은 종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학습을 해야 되는데
그 학습할 수 있는 백업 장치가 바로 렘수면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면서 새로움을 학습한다는 것인가?
꿈은 쉬는 법이 없네요
여러가지 새로움도 학습해야 하고
기억도 저장해야죠
연상도 해야죠
운동 시물레이션도 해야죠
그러면 꿈의 또 다른 특징은 뭐가 있을까요?
램 수면은 꿈을 만든다.
그리고 인류의 문화는 꿈을 달성하는 게 인류의 문화이다.
모든 사람이 달을 바라봤는데 우리는 달까지 가게 된 것이다.
꿈을 꾸는 것은 램상태이지만
그걸 이루는 것은 각성 상태에서 이루는 것이다.
이 두 개가 결합하면서
인류는 우주를 나가게 되고 우주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말이다.
4부 꿈이 이루어지는 과학적 이유
도파민이 많이 나오는 시스템만 따라가면 된다.
크게 두 가지인데
운동을 만드는 시스템하고
욕망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뭐냐하면
욕망이 운동 출력으로 갈 때라는 것이다.
이게 다 도파민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개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시대 집단이 기차도 만들고 잠수함도 만들고
이런 발전을 그냥 과학이 발달해서 이렇게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조금 시선을 바꿔서 보면
어쨌든 많은 사람이 꿈을 갖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되는가?
예를 들면 고등학생이 서울대를 가고 싶다는 꿈은
아주 구체적인 꿈이다.
그래서 천 명 중에 한 명이 들어 간다고 합시다.
그럼 그 중에 대다수는 못가고 한두 명이 가는 것이다.
그러면 가는 사람은 어떻게 갈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하게 되는가?
이 문제가 개인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성리학이나 양명학이 있는데
지행합일
아는 대로 행동을 해야지.
그래 아는 것은 중요해, 꿈을 이루는 데까지
단 그것은 전투의 50%, 반인 것이다.
실제로 봤더니
아는 대로 행동을 하지 않거나
아예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르다는 이야기
다섯 살 쯤 애들한테
엄마가 "너 이거 하지 마라" 이렇게
가르쳐 주잖아요.
하지만 아이는 매번 그렇게 한다
그러면 너 지난 번에 하지 마라고 그랬지 않냐
그러면 얘가 안다고 그런다.
이게 나쁜 일인지 알고 이걸 하면 안 되는 거 까지 알아요.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고 아는데
왜 계속 행동을 하게 되느냐?
이걸 설명하려면 브레인 과학이 필요하다.
다 알면서도 스탑을 못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예를 들어 이야기 하면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로 간다면
이걸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단계는 시동을 걸어야 한다.
바로 엔진이 작동을 해야 한다. 바로 이 단계가
안다는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단계인데 시동만 걸어서
목적지 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기어를 넣어줘야 된다는 것이다.
브레인 지식으로 알았다 하면
이게 운동하고 결합해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합하는 과정을 작업기억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창의성이나 능력을 발휘하는 거하고
우리의 언어 능력하고 관계가 있는가?
사회성하고 관계가 있는가?
지능하고 관계가 있는가?
최근 합의가 모아지는 쪽은 작업 기억(working memory)하고 관계가 있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이 결합을 하는가?
작업 기억이라는 말은 간단히 말해서 행동 전용 기억이다.
즉 행동할때 사용되는 기억.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 해도
내가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타인한테 사회에 영향을 못 끼치잖아요
아무리 좋은 스토리가 있어도
내가 소설로 쓸 수 있는 기법이 없다면 안 되는것이다.
조각가 머릿 속에 아무리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해도
대리석 속에서 내가 끄집어 내야된다.
정으로 쳐갖고 다 끄집어 내야 된다.
그러니까 작업 기억이라는 말은
기억을 사용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근데 우리가 행동을 안하고 사고만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주로 행동을 동반한 기억을 작업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행동의 대전제는 뭐냐 하면
우리가 미래로 나가는 것이다.
기어를 넣었기 때문에 앞으로 가는데
그러면 그걸로서 다 되느냐?
자동차의 목적이 있을 거 아닙니까?
목적지에 도달해야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근데 목적지까지 길이 직선이냐? 하나만 있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시동을 거는게 우리의 생각이고 사고면
기어를 넣고 매 순간 핸들을 돌려야 된다.
목적지를 향해서 핸들을 돌려야 된다. (즉 선택)
이 세 가지가 결합을 해야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르게 설명하면
우리의 정신 작용이 뭐하고 비슷하냐면
흘러가는 강물에서 날아가는 기러기를
활로 쏘아서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뗏목도 움직이고 날아가는 기러기도 움직인다.
정신 작용은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대해서
잘 매칭적으로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는가?
센스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센스 있는 사람이 과학적으로 엄청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센스가 있으려면 타인의 마음을 읽어야죠.
자기의 욕망이 올라오는 걸 억제 해야 되죠.
더 중요한 거는 타이밍을 맞춰야 되죠.
그럴려면 상대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어야 되죠.
이게 간단치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모든 걸 담당하는 기억을 작업 기억이라고 한다.
<Psycho Cybernetics>라는 책에서
인간의 브레인은 사실은 목표가 주어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예를 들어서 유도 미사일이 한 번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매번 방향을 틀어서 목표를 찾아 간다.
그런 것처럼 인간의 마음 자체는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자동 항법 장치라는 말이 있어요.
적절한 비유인데
여기서 좀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작업 기억의 무엇이 우리를
달까지 가게 하고 인공위성을 가져 왔느냐 하면
작업 기억의 게이팅이라고 그래요
분자 세포 생물학이나 발생학 쪽에 들어가 보면
스위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정자 난자가 만나 가지고 수정란이 된다.
수정란 세포 하나가 인간의 다양한 세포로 분화해야 한다.
간 세포, 근육 세포, 브레인 신경 세포, 다 만들어 내야된다.
근데 출발 세포는 하나 밖에 없다.
이때 단백질의 발현의 스위칭 작용으로 다양한 세포를 만들어 낸다.
그걸 연구하는 분야를 분자 세포 생물학이라고 한다.
그 브레인 버전이 바로 게이팅입니다.
게이팅은 결국 문을 열고 닫는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 것이고
이 스위치가 다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게 수억 년 동안 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주로 운동 쪽에서
스위칭은 온/오프.
이게 운동 쪽에서는 GO/ NO-GO로 된다.
운동에서 GO/STOP 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GO/STOP 은 접근/회피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 또 하나가 더 있다는 거예요.
더 근본적으로 만약에 목숨이 위험하다면
전면적으로 STOP 해요. 그걸 Hyperdirect Pathway라고 한다.
그래서 세 가지로 진화되어 온 것이다.
Hyperdirect Pathway가 무엇이냐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얼어붙어 버린다.
분위기가 얼어 버린다고 한다.
바로 얼어붙기 반응하고 GO/STOP
이 세 가지 운동이 진화되어 왔다.
호모 사피엔스에 오면서 전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운동 피질은 뒤쪽에 있고 전전두엽은 앞쪽에 있다.
전전두엽에서 목적 지향성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가 영장류를 거쳐 가면서 전전두엽이 확장되었다.
전전두엽이 커지면서 운동 피질하고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목적 지향성의 계획을 잡는 전전두엽이
GO/STOP 운동의 스위칭 기능하고 오버랩이 되니까
운동의 스위칭이 기억의 스위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서울에서 대전을 갈 때
방향을 매 순간 틀어야 된다는 것은 스위칭이라고 느껴진다.
작업 기억은 운전을 하다가
옆에서 갑자기 차가 끼어 들어오는 것하고 똑같다.
빨리 핸들을 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사고를 안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생존하기 위해서 출연한 게 작업 기억이다. 운동 측면에서
이것이 거의 한 삼억 년 정도 발달을 해 왔다.
목적은 그 자체는 운동이 아니다.
목적은 욕망에서 오는 것이다.
그 욕망은 바로 내 자신의 일화 기억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제 드디어 기억하고 욕망이 만난다.
의미 기억은 욕망에 물들지 않는다. 나와 관계가 없다.
일화 기억은 나의 욕망이다.
그래서 일화 기억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나의 내면의 욕망에 항상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화 기억에서는 항상 셀프가 작동하는 것이다.
바로 내가 무엇을 했는가가 일화 기억이니까
일화 기억 그 자체는 운동이 아니다.
일화 기억에서 욕망이 명확해 지면서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이 출연 하는 것이다.
그게 전전두엽으로 가서 목적 지향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그 목적 지향성이라는 게
뭐 되고 싶다는 말도 뒤집어보면 사회에서 생긴 것이다.
사춘기될 무렵에 "나는 문학을 할 거야." "나는 과학자가 될꺼야."
마음속에서 정해진다.
왜냐하면 사춘기 때 바로 사회적 셀프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셀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운동성을 동반한 셀프가 맨 처음 출현한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대 태동이 일어난다.
이것도 일종의 운동성을 동반한 셀프의 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춘기 때 출현한 사회적 셀프는
사회가 나에게 욕망을 심어 준 것이다.
다른 말로 내가 되고 싶은 모델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와서 전전두엽을 장악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바로 사회적 아이콘이 브레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운동이 아니다. 순수한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다.
상상이고 꿈일 뿐이다.
근데 이 꿈이 어떻게 실현 되는가?
그러니까 꿈이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전전두엽이 하는 일은 세 가지이다.
첫 번재는 목표.
목표는 사회를 동반한 나의 자전적 기억에서 나온다.
그걸 미래 일화기억이라고 한다.
미래에 내가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만든다.
그래서 청소년기 부터 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근데 그 꿈을 달성하려면 3~4년 걸린다.
그럼 몇 년 동안 걸리는 동안에 다른 유혹도 있고 하는데
그걸 유지하려고 하면 정확한 계획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계획이 있고 목표가 있는 그 정보를
바로 운동하고 결합시키는 그 상태가 작업 기억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요약하면
처음에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일화 기억과 문자 기억(의미 기억)을 이야기 했는데
문자 기억에는 자아가 없다고 했고
일화 기억에 자아가 들어가는데
이 자아가 욕망이 생기게 되고
그 욕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무언가 되겠다는
무엇을 갖고 싶다는,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설정이 되면
그 목표가 전전두엽의 임무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전전두엽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것이 행동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전전두엽이 운동영역 부분과 링크가 되면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
달성하기 어려운 꿈 같으면 계획이 치밀해야 되죠.
서울대 가려면 3년 동안 월별 계획 정도까지 나와야 한다.
계획은 목적을 나눈 것이다.
그래서 오늘 달성할 거 다음 달에 달성할 걸 연결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계획의 핵심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어려운 거는 나중에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는 것이다.
난이도 별로 목표를 나누어서 결합하는 걸 위계적 맥락이라고 한다.
우선 내가 금방 달성할 수 있는 거는 곧장하고
어려운 건 뒤로 미루고
그럼 내가 실력이 쌓이게 되면 어려운 걸 하게 되고
그런 과정 중에 난이도 별로 목적을 분해해 갖고
난이도 별로 배열하는게 바로 계획입니다.
각각 하나 하나 달성해야 될 부분 목표가 바로 맥락이 됩니다.
그 연결하는 과정을 맥락이라고 한다.
그게 전전두엽에서 하는 일이죠
그러면 쉬운 일을 다 달성하고 나면 그 다음 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게 공짜로 넘어가는 게 아니다.
게이팅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거군요.
기타를 배우는지 다른 기술을 배울 때
한 단계가 끝나면 난이도를 높여서 올라가잖아요
운동에서는 항상 그게 일어난다.
그게 바로 운동의 GO/STOP, 운동 스위칭이다.
전전두엽의 목표는 운동이 아니다.
근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 목표를 분해해서 배열을 해놨잖아요.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하나 하나 스위칭을 해줘야 된다.
이 스위칭을 운동영역에서 거의 삼억 년 동안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았던 GO/STOP을
바로 운동의 스위칭을 기억의 스위칭으로 바꾼것이다.
다른 말로
운동 루프 속으로 인지 루프가 스며 들어왔다는 것이다.
인간이 결국 위대한 과학을 만들어내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동 스위치 기능을 기억의 스위칭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운동 스위칭은 신체 동작에 관한 스위칭인데
그걸 기억에 관한 스위칭으로 응용이 된 것이네요.
기억의 스위칭이 왜 생겼냐 하면
내가 달성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 꿈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셀프이고
셀프가 완벽하게 동작할 때는 바로 꿈에서 일어났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그런데 깨어 있을 때도 일화기억을 통해서 셀프가 항상 작동하잖아요.
셀프가 작동한다는 말은 내 욕망이 작동 했다는 말이다.
그 욕망이 바로 내가 되고 싶은 꿈이 되고 목표가 됐잖아요.
근데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걸 실행하는 파일로 바꿔준게 바로 계획이 된 것이다.
그러면 계획의 하나하나 토막이 기억이잖아요 바로 일화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계획은 기억 영역인 것이다.
기억 영역은 원래 GO/STOP을 할 수가 없는데
운동에서의 스위칭 기능을 차용해서 쓰게 됐다는 것이다.
기억은 GO/STOP가 있을 수 없다. 기억은 연결만 하기 때문에
근데 GO/STOP 한다는 말이 뭐냐하면
어려운 부분을 하나 갖고 하나 하나 각계 약진을 하라는 것이다.
반도체 레이저를 만드는데 250개 스텝이 존재한다.
그 중에 실제로 난이도가 높은 건 한 10개 스텝 밖에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10개만 따로 떼어내서 반복 훈련을 한다.
그래서 바로 뭐냐하면
우리가 굉장히 달성하기 어려운 큰 목표를 정하면
순서대로 나열을 하고 연결해서 계획을 잡고
그 중에 진짜 어려워서 못 푸는 문제는 떼어 내서 따로 연습을 한다.
그걸 의도적 연습이라고 한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의도적 연습을 안 하면 프로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떼어 내는 걸 맥락 분리라고 한다.
맥락 분리를 해서 문제 해결을 하고 다시 꼽으면 됩니다.
이런 원리 같으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있다.
요걸 바로 범용 지능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범용 지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맥락을 분리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다.
맥락 분리가 원할하게 되는 걸 학습 전이라고 그런다.
수학 잘한다고 미술 잘 그리는 거 아니잖아요.
이런것은 맥락 전이가 원할하지 않다는 것이다.
맥락을 분리하고 의도적 훈련을 하고 다시 갖다 꼽아야 되잖아요.
다시 꼽을 수 있으려면 분리해서도 맥락을 유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맥락 정보를 유지하지 않으면 다시 못 꼽죠, 번지수를 못찾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일관성이다.
왜 사실성하고 일관성이 기억에서 싸우면
결국 일관성이 이긴다고 그랬잖아요.
이게 기억이 왜곡되는 이유.
그런데 목표가 있고 운동과 결합하면 가장 능률이 좋다.
능률은 좋은데 목표를 달성하는 즉시 감옥에 간다.
사기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기를 쳐서 돈을 벌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면 감옥에 간다.
무엇이 빠졌느냐 하면 규칙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이룬다는 거는 세 가지 전제가 있다.
목표는 내가 만들고 맥락은 내가 만들 수가 있는데
규칙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다.
바로 시험 출제자가 만들고 그게 바로 사회라는 것이다.
(문화도 될 수 있다)
사회가 여기서 들어온다.
내가 욕망을 일으키고 내가 꿈을 갖는 것은 자유이다.
그래서 그 목표를 이루었어요.
이루었는데 타인을 희생하고 목표를 이루면 감옥에 가게 된다.
그래서 꿈을 이루는데 압도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규칙을 지키고 이루라는 것이다.
근데 그 규칙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브레인 현상을 사회학적 현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면 전전두엽 역할도 사회화와 관련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전두엽 중에
사회적 정서를 처리하는 부분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한테 최악의 형벌은 사회적으로 배척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거의 90% 정도가
사회적 안정감 속에서, 사회적 규칙 속에서 이루어진 건데
이 사회적 규칙, 사회적 맥락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걸 벗어나서 목적을 달성하는 건 쉽다. 사기꾼이 되면
그러면 어느정도 욕망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꿈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의 90%는
사회적 룰을 적용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걸 잘 하기 위해서도
나하고 같이 있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인정을 받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뭘 하고 싶어도
가까운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그 도움을 어떻게 유도해 내는가?
이게 작업 기억의 가장 핵심이다.
그래서 감정의 컨트롤, 대화의 기법,
인간의 지능이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운동의 스위치가 기억의 스위치로 바뀌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의 스위치는 속도가 생명이다.
빨리 피하고 빨리 접근해야 된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이다.
이건 초단위로 일어나는 일이다.
근데 우리가 목표를 이루는 것은 몇 년씩 걸릴 수가 있다.
두 개의 시스템의 속도차가 천 배가 난다는 것이다.
이걸 맞춰줘야 된다는 것이다.
도파민이 운동 쪽으로 가면 파킨슨 병하고 관련되어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이것은 속도가 빠르다.
이게 전전두엽으로 갔을 때는 목표를 삼 년 동안 잡고 있어야 된다.
운동 스위칭은 빠른 걸 요구하고 있고
목표를 계속 장악하고 있는 거는 고정적이어야 된다.
그게 바로 집중력이고 인내력이다.
그 인내력을 담당하는게 전전두엽이다.
인내력은 욕망하고 비례한다.
기필코 저걸 달성하겠다는 강한 욕망이 있으면
그 목표를 꽉 잡고 있겠죠
꽉 잡고 있는 동안에
맥락을 분리해 갖고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이 전체를 하나 하나 스텝별로 처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걸 오랫동안 잡고 있는 능력에 따라서
전문가가 되느냐, 성공하느냐가 결정되지 아이큐가 아니다.
얼마나 잡고 있고 잡고 있다가
다음 단계로 넘겨줘야 되는 걸 뭐가 판단 하냐 이거예요.
딱 하나 밖에 없다.
잡고 있거나 뭘 문제를 풀 때 에너지와 시간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비용하고 이득. 즉 동기가 나온다.
한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는데 다른 문제를 자꾸 주면
아무것도 안된다.
두 마리 토끼는 못 잡는다.
어떻게 해야 하냐면
한 마리 토끼를 빨리 잡고 그 다음 토끼를 노려야 한다.
근데 한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놨는데도
계속 그 토끼만 바라보고 있다면
문제가 발생 한다. (스토커, 미련)
이득의 맥시멈 포인트가 지나 갔는데도
스위칭을 못할때까지 완고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브레인 과학에서 뭐라고 그러냐 하면
전전두엽에서는 고정적으로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고
큰걸 하려면
그 다음에 스위치는 빨리 빨리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두 개의 리듬을 조율해줘야 된다.
이게 바로 작업 기억의 핵심입니다.
오래 잡고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적당하게 일을 처리하고 이 정도면 됐다 할 만하면 넘겨줘야 되는데
대부분은 전전두엽이 나빠지면(술을 마시면 발생하는 현상)
새로운 단어를 못 불러 온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했던 말을 되풀이 하는 현상이 발생 하는 것이다.
결국 전전두엽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작업 기억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걸 너무 오래 잡고 있다는 것은
맥시멈 포인트가 끝나서
새로운 용어를 갖고, 새롭게 설명해야 되는 포인트가 왔는데도
옛날 방식으로 계속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꼰대식으로 올드 스타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전전두엽으로 가는 도파민은 목표를 고정시키고
선조체로 가는 도파민은 빠른 속도를 요구하고
이 두 개를 정합시켜줘야 된다는 것이다.
장기 목표를 실현한다는 것은 목표를 끝까지 붙잡고 있고
그 다음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절차에 대한 운동의 게이팅이
계속 순간적으로 일어나야 되니까
두 가지를 다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부 이게 순간에 다 조율을 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스위칭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총명한가 물으면
작업 기억이 원할히 돌아가는 사람이다.
갈 때 가고 스탑할 때 스탑하는 사람
그걸 뭉뚱그려서 표현하면 리듬이 있다고 한다.
다른 말로 센스있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면 원론적으로는 어떠한 문제도 다 풀게 돼 있다.
문제가 굉장히 어려우면 전전두엽이 오래 장악 해야 된다.
전문가가 되려면 십 년 동안 장악해야 된다.
근데 왜 전문가 되는 비율이 그렇게 줄어 드느냐 하면
장악력이 붙잡고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잡고 있는 시간이 1년 쯤 되면
즉각적 보상이 유혹을 해버린다.
"아 피곤한데 그냥 오늘은 쉬지..."
그래서 전문가가 되려면 10년 동안 고정적으로
그 목표를 장악을 해야 되는데
그 중간에 이거의 대안들, 즉각적 보상 쪽으로
눈이 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럼 놔 버리는 것이다.
결국 보상 시스템의 욕망이 얼마나 강한가에서 결판이 난다.
그래서 크게 되는 사람은 욕망이 강해야 된다.
욕망이 없으면 이루어지는 게 없다.
이 모든 게 비용하고 이득 관계의 이야기로 된다.
그러니까 덩어리가 들어와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겨줘야 되잖아요.
너무 빨리 넘겨주면 결과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걸 매 순간 결과가 있느냐 없느냐 관점에서
비용하고 결과를 계산 한다는 것이다.
도파민 시스템이
이 타이밍으로 이 정도 속도로 일주일 만에 보니까
효과가 가장 좋았어 라고 하면
그 값을 세팅해서 기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학습이라는 것이다.
최적의 배합 조합을 찾아 냈잖아요.
도파민이 찾아 냈잖아요. 결과를 보고
그래서 도파민 하고 기억이 링크 됐다는 말이 학습이라고 한다.
꿈은 일화 기억인데
미래를 향한 일화 기억을 상상이라고 한다.
상상이든 일화 기억이든 다 기억이다.
기억 시스템하고 운동 시스템이 결합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운동 시스템의 GO/STOP을 스위칭이라고 한다.
운동의 스위칭이
일화 기억의 스위칭으로 가져와야 된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영장류에 들어오면서 두 배로 커졌다.
때문에 운동 피질하고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운동에서 하는 스위칭 기능에
전전두엽 인지 기능이 침투해 들어갔다.
그래서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거의 3억 년 이상 진화되어 온
운동의 게이팅이 기억 일화의 게이팅으로 결합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식으로 꿈을 이루는가 하면
바로 목표 되고 싶은 꿈을 난이도 별로 분해를 하라는 것이다.
난이도 별로 연결을 하면
그 연결의 선이 바로 맥락이 된다는 것이다.
단계가 열 단계라고 가정하면
내가 첫 번재 단계를 해결했어.
그러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야 되잖아요.
두 번째 단계는 미래잖아요.
바로 미래로 갈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 번째 단계하고 두 번째 단계를 연결 한 것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맥락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단계는 미래이기 때문에
미래로 들어갈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적 존재이기 때문에
미래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바로 예측을 통해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미래로 들어가는 예측은 뭘 근거로 예측을 하느냐 이거예요.
예측을 못하는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게 우연이다.
자연은 우연으로 봐야 한다.
내일은 미래고 미래는 예측 못한다.
예측 못하는 사건은 우연 밖에 없다.
그러면 오늘하고 내일의 연결 줄이 맥락이다.
맥락은 그럴 듯 함이다.
그걸 일관성이라고 그랬다.
그래서 일관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일관성이 있어야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일관성이 중요해지고 그 일관성이 덩어리가 바로 그럴 듯함이고
그럴 듯한 것의 행위가 바로 스토리이다.
내가 내일 어떤 행동을 할까?
누가 알겠어요?
오직 나의 셀프를 보면 알죠.
내가 평생 일관성이 있게 유지한 셀프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흘 만에 달성해야 하는 조그만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면
그걸 열흘로 나누었을
오늘 한 거에서 내일 할 걸로 넘어갈 때는 예측이 필요하다.
그 예측은 오늘하고 내일을 연결했던 그 맥락에서 답이 있다는 것이다.
맥락에서 예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인의 욕망, 그 욕망이 대부분 내면의 나레이티브로 전개가 된다.
그래서 내가 뭐가 되고 싶다는 것은
나의 셀프를 동반해 가지고
그걸 맥락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플랜 속에서
오늘 내가 달성한 거에서 내일이란 미지 세계에 들어갈 때
유일하게 랜턴 빛을 비출 수 있는 곳은
예측으로 투사가 된 곳 우리는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곳은 모두 깜깜하다
그러면 예측은 어떻게 하느냐
바로 맥락이라는 일관성을 바탕으로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아세티콜린은 브레인 전체를 덮는다.
여러 군데에서 작동을 하는데
도파민은 주로 전전두엽에 특화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근데 도파민은 왜 예측이 깨졌을 때 나오는가?
도파민은 확률이 낮은 일을 계속 하게끔 하는 시스템이다.
확률이 낮은 일이 무엇인가?
질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게 도박이죠.
그 다음은 스포츠 게임이죠
도박하고 스포츠는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나서 나왔잖아요.
근데 그 전부터 있었던 건 뭐냐 하면
그러니까 확률은 늦은데 계속 하게끔 하는 중요한 활동이 사냥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도파민(보상시스템)의 힘으로
우리는 우주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걸 학습이라고도 한다. 학습은 실패해도 계속 하는 것이 학습입니다.
5부. 존재는 관계의 그림자이다
마음이 출현하기 위해서도
두 개 이상의 브레인이 필요하다.
두 개 이상의 브레인이 있어야 관계가 성립이 되니까
결국은 지금 브레인 과학이나 생물학도
사회하고 접목하기 시작합니다.
사회를 빼버리고 나면 이 모든 관계가 사라져 버립니다.
오늘은 시간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해볼 것입니다.
시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세 가지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뉴턴의 시간과 공간론은 시간을 어떤 실체로 보죠.
그래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입자들이 운동을 하는 어떤 콘테이너 역할을 하는 시간, 공간으로 보기도 하고
라이프니츠는 시간과 공간을 물질들 사이의 관계라고 봤어요.
예를 들어서 "신은 빅뱅 이전에 뭐하고 있었냐?" 라는 질문에
이런 질문은 성립이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며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함께 생겨났으니까.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빅뱅 '이전'이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라는 대답을 했고
세번째 입장은 칸드인데
칸트는 시간과 공간은 네 머릿속에서 나온 거야. 라는 입장
이 대상 세계에는 시간이 없어.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떤 감각 자료를 받아들일 때 촉발한다고 하는데
받아들일 때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써 받아들인다고 이야기를 한다.
어찌 보면 세 번째 입장 내지는 두 번째 입장도
브레인 사이언스 입장에서는
조금 유사한 관점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물리학적으로 시간에 대한 논지는
아직 인류에게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시간이라는 의식이 분명히 있는데
이 문제는 대부분 이런 사고를 전개하거나
공부하는 모든 학인들에게 궁극의 문제이다.
근데 오늘 꿈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인류의 과학이 참 묘한 게 뭐냐면
계속 공략을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가정을 한다는 것예요.
그래서 이 가정이라는게 브레인 과학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어떤 큰 범주들이 있느냐 하면
맨 처음에 가장 큰 범주는 실재, 리얼리티,
그것은 자연을 대표하죠.
자연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게 과학이 밝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실재는 있다는 것이다. (원자로 구성된 실재는 있다는 것)
그 다음에 뭐가 있느냐 하면
가정, 최근 버전으로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있는 게 뭐냐면 지각.
그 다음에는 인지 작용
그래서 실재, 가정, 지각, 인지. 4개를 설정했잖아요
그런데 이 4개의 상황을 조합을 해도 해결 안 되는 무엇이 또 있어요.
이러한 것들을 다 포괄하는 것이 관계이다.
그래서 브레인은 실재를 다루는 게 아니다.
실재의 세계는 반드시 안정적(stable)이고 정확해야 된다.
그런데 브레인은 정확한 것 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기관이다.
브레인은 오직 관심 있는 게 살아남는 것.
유효한 것이냐
이것이 지표이기 때문에 가상을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100% 가상이라는 게 지난 영상의 주져였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지각을 조금 터치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지각은 과거 지각의 표상이다"라고 해요
표상은 re-presentation 인데
're'라는 건 반복한다는 말이고 'presentation'이라는 거죠.
내가 소설을 읽으면 그게 지각인 것이다.
바로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지각이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내 머릿속에 자음, 모음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을 내가 책을 보면서 re-presentation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상이라는 말이 브레인 과학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데
그러면 기억은 표상이냐 아니냐?
에델만이 강조했는데 기억은 표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표상이 아니라는 말 속에는 우발성, 우연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표상이 아니라는 말은 동적 다이나믹스라는 말이고
현상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러면 지각은 표상이라는 것이다.
뭐에 대한 표상이냐면
모든 지각은 과거 지각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맨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현재가 미래에 속해 있을까? 아닐까? 를 물으면
미래는 벡터 화살표로 표시할 수 있다.(시간의 방향)
현재는 미래의 시작임으로 현재는 미래에 속한다.
그러면 현재는 과거에 속할까?
끝점으로 속한다.
현재를 다루는 기억을 작업 기억이라고 한다.
현재를 장악하고 현재를 잘 처리한다는 말은
미래의 방향이 정확해질 수 있고 과거가 완결될 수가 있다.
그러면 과거에서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가는데
이것을 과거와 미래는 동시에 만들어진다 라고 표현 할 수 있다.
현재를 통해서
그래서 우리의 언어와 행동은 반드시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로 향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미래를 향한다.
미래로 갈때 헷갈리지 않고 가는
전체 메커니즘을 예측이라고 한다.
결국 예측을 투영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행동은 미래로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측을 통과해야만 행동을 할 수 있다.
뇌과학자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면
행동은 예측의 자기 실현 과정이다.
심지어 운동조차도, 행동조차도 예측의 부분집합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기 예측, 내가 스스로 예측한 것이다.
예측을 증명을 해 보이는 과정이다.
자기 예측의 실현 과정이라고 표현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행동도 예측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사실은 미래에 대한 어떤 예측한 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실현하는 과정이었던 것이군요.
우리의 행동은 오직 예측이라는
서치 라이트가 비추는 그 길밖에 못가는 것이에요.
그러면 완벽하게 예측을 못하는 시스템이 딱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연이다.
자연은 모두 우연이고
우리에게 들어오는 감각도 다 우연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생명의 진화는 뭐냐면
외부의 우연을 내부의 필연으로 바꾸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외부의 우연을 내부의 필연으로 어떻게 바꾸는가?
그게 바로 조건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 바로 가정입니다.
세포로 보면 좀 명확해지는데
세포는 자연에서 출현했잖아요.
이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에너지와 공간을 확보해야 된다.
세포는 자연으로부터 독자적으로 되려면
이게 하나의 자연이면 하나의 원을 그려야 된다.
그러면 이게 자연하고 분리가 될 수 있다.
자연하고 분리되면 둘이 됐죠
둘이 되면 세포는 굶어 죽는다. (에너지를 못받아들여서)
그렇지 않으려면 둘인데 다르지 않아야 된다.
다르지 않으려면 하나만 되면 되죠.
그럼 열어주면 전체하고 하나가 된다.
그러면 나는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면 하나가 됐는데 같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현이 된 것이 세포이다.
이중 세포막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영양 물질이 들어오면 열어줘야 하고
독성 물질이 들어오면 막아야 한다.
받아들일 때는 하나가 되고
거부할 때는 막으면 된다.
이것을 세포막은 확률로 합니다.
확률적 바이브레이션을 한다.
이걸 동적 다이나믹스라고 한다.
영양물질이 들어오냐 독성물질이 들어오냐가 바로 조건이다.
그럼 세포막은 뭐냐하면, 생명은 뭐냐하면
조건별로 상대를 바꾸는 것 그게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의 우연을 내부의 필연으로 바꾸는 것.
그 조건이 우리의 브레인에서 일어나는 그걸 가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생명체가 바로 조건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 바로 가정이다.
그러면 바로 지각도 가정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드디어 심각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각이 그냥 일어날 수가 없고
지각은 항상 어떤 조건 하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 가정.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나한테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갔어.
굉장히 친한 사람인데
그럼 내가 저 사람 나한테 화가 났나?
내가 무슨 싫은 소리 했나?
바로 무엇을 하고 있냐면 조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왜 조건을 찾을까?
바로 저 사람의 행동을 내가 지각했잖아요.
그 지각은 반드시 조건하에 일어난다는 걸 알고있다.
그러면 장소나 시간에 따라서 조건이 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센스 있는 사람이 되려면
저 사람의 행동에 조건이 뭔가를 빨리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본인이 어떤 주장을 하거나
어떤 걸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그 위에 어떤 조건하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건은 가정이 된다는 것이다.
가정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가정을 지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가정하고 지각을 하는데
항상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거네요.
바로 이래서 물리학이 생긴게 뭐냐 하면
뉴턴 역학까지는 에너지가 연속으로 봤던 거예요.
근데 막스 프랑크가 바로 그 가정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결과가 없는 것들은
가정 자체가 잘못됐을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연속이라는 가정이 바뀌지 않으면 양자역학은 나올 수가 없다.
이걸 한 개인의 이야기로 돌리면
궁극적으로 왜 창의적인 질문을 못하느냐
바로 가정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이 바로 지각하고 질문까지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답을 갖고 회의에 임하지 말고
내가 지금 토론하고 있는 이 가정을 의심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영역이 열린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지각, 정신작용은
조건, 다시 말해서 가정하에 전개되는 것이다.
꿈에도 그 가정을 의심하지 않아요.
푸코가 말하는 에피스테메 개념이 뭐냐면
각 시대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갖고 있는 지식이 있다라는 것이다.
일종의 지식일 수도 있고 가정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게 이상하다는 걸
그냥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시대가 바뀌면서 그 가정이 바뀌는데
지식이 바뀐다는 것인데
16세기에는 16세기 에피스테메가 있고
17세기에는 17세기 에피스테메가 있다는 이야기.
그 에피스테메의 창으로 세계를 보는데
정작 그거를 보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 창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이야기한 무의식적인 가정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은 안 보이기 때문에 가정이 형성이 되고
나머지 지각이나 많은 작용이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 가정을 건드리기 전에는 그 방향이 안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에서 시각이든 청각이든
특히 시각 쪽에서 들어오는 거는 범주화되고 개념화됩니다.
그런데 운동은 개념화가 잘 안된다.
감각은 기본적으로 이미지로 처리하기 때문에
촉각 이미지든, 시각 이미지든, 청각 이미지든
다 범주화되고 이미지로 바뀝니다.
범주화가 되면 개념이 나타날 수 있다.
범주화가 되면 유사성을 찾게 된다.
유사성을 찾는 게 바로 범주화이다.
그런데 범주화가 어려운 것이 있다는 것이다.
욕망은 범주화가 안된다.
물론 조금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는데
운동하고 욕망은 범주화가 안 된다.
운동도 범주화 되는거 아닌가요?
습관 운동 같이 일부 있기는 하죠.
궁극적으로 욕망은 범주화가 어렵다.
왜 어렵냐 하면
욕망의 뿌리는 어디에 있어요?
도파민이잖아요.
도파민은 예측이 깨질때 나온다 했죠
그럼 예측이 100% 깨지는 사건은 뭔가요?
우연이다.
우연은 범주화 할 수 없다.
결국은 자연을 대표하는 이 우연성이라는 거
그걸 수학에서 확률이라고 본다.
우연을 다루는 학문이 확률이고
그럼 자연과학에서는 궁극적으로 입자 물리학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은 확률밀도의 흐름일 뿐이다.
그래서 입자 물리학의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전부 확률 밀도를 계산하는 것이다.
결국은 확률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연의 근본이 확률입니다.
그래서 확률이 뭐냐면
이쪽에서 가정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관계라는 건 어디 쪽으로 들어가느냐 하면
확률적 랜덤이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여기에서 생성되는 관점들이 있어야 되는데
관계는 연산입니다.
그럼 더하기 연산은 5+3=8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관계는 실재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관계가 실재를 만드는 걸 수도 있고요.
3과 5는 실재라고 보면
그 관계, 더하기라는 관계를 통해서
8이라는 다른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이다.
그럼 8은 실재죠.
관계를 통해서 실재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관계의 가장 구체적인 것은 계산입니다.
인류가 AI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실리콘 테크놀로지이다.
그러면 반도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의 인지 시스템이
실리콘이라는 광물 결정 속으로 스며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럼 무슨 과정으로 스며들어가냐 하면
궁극적으로 반도체 메모리칩은 계산을 할 수 있잖아요.
계산은 연산이고 연산은 관계라고 보면
궁극적으로 무생물인 반도체 속에 있는
전자들의 흐름을 통해서 계산을 했잖아요.
계산은 관계이다.
그럼 관계는 뭐냐면 실재냐, 자연이냐, 가상이냐
이 모든 것도 계산을 통해서, 계산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투영된
두 개의 다른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실재와 가상은 같은 것이군요.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실재나 가상이랑 같은 것이다.
바로 가상을 만드는 실리콘 속에도 계산을 했고
우리는 계산을 인간의 브레인만 하는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계산은 인간 브레인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
반도체 전자회로에서 전자가 흐르면서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럼 계산은 연산이고 연산에서는 새로운 결과가 나온다.
새로운 실재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실재는 어디서 왔냐면 연산에서 나왔고
연산은 뭐냐 하면 관계라는 것이다.
수학에서는 관계가 된다.
그러면 브레인에서 관계는 뭐냐하면
비교, 예측, 추론, 판단이 전부 다 관계라는 것이다.
관계의 특징은 정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계는 뭐냐 하면
그 관계가 바뀌면 결과는 항상 바뀌는 거예요.
여기서 브레인 과학이 오랫동안 이야기했던 핵심이 들어온다.
브레인은 전적으로 관계를 처리하는 기관입니다.
그럼 그 관계가 바로 뭐냐 하면 관계는 차이입니다.
어떤 차이를 보느냐 하면, difference를 본다는 것이다.
소리는 기계적 에너지의 차이죠
맛하고 냄새는 화학적 에너지의 차이죠.
시각은 광자 분포의 차이죠. 망막에 맺히는
그러면 포톤 에너지의 차이가 바로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 브레인은 관계를 처리하는 기계입니다.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 눈이 시각을 보잖아요.
시각은 빛 에너지의 차이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눈만 마취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눈동자 움직임만 딱 고정해요
나머지 모든 정신작용은 정상이에요.
눈동자를 움직이는 6개의 근육을 동시에 마비시킬 수 있다.
마비시키면 눈동자가 고정이 된다.
그 다음에 앞에 환하게 조명을 비추고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면 처음에는 보이는
조금 지나면 희미해지고 그 다음은 깜깜해진다.
차이가 없는 건 안 보는 것이다.
이걸 미세 도약이라고 하는데
안구가 거칠게 도약하는 거 말고도
마이크로 조금씩 떠는 게 있다.
안구가 살짝 떨면서
초점이 달라짐에 따라서 밝고
어둠의 차이를 보고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그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 그 차이조차 딱 고정시키고 이미지를 보여줘도
이미지가 캄캄해지고 사라져 버린다.
결국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브레인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머신인 거죠
그래서 브레인은 절대값에 관심이 없고
오직 관계를 보는 것이다.
그럼 관계가 왜 중요하냐면
사람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그게 바로 사회고
그래서 관계에 흔들림이 없고
관계를 매 순간 잘해서 꿈을 달성하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시간과 공간차원에서
브레인이 모든 관계를 적절하게 스위칭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위에 있는 것은 관계이다.
그래서 존재는 관계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가 리얼 자연하고 가상 세계도
관계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로 모두 통합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관계들이 여러 가지 많은데
상관관계, 인과관계, 수반관계
이런 관계 중에 자연에서 독보적인 관계는 인과관계이다.
인과관계는 반드시 필연성을 동반한다.
인과관계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가 원인을 앞설 수 없다는 그 순서관계이다.
이 순서관계가 브레인 안에 들어와서
시간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자연에서 우리가 훔쳐온 관계는 뭐냐면
인과관계를 훔쳐왔다. 인과관계를 통해서 시간의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인과관계는 바로 핵심 변화입니다.
그래서 바로 어떤 대상이 관계를 하면
반드시 하나만 관계가 존재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브레인 과학자가 말하기를
마음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두 개 이상의 브레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두 개 이상의 브레인이 있어야 관계가 성립이 되니까요.
결국은 지금 브레인 과학이나 생물학도
사회하고 접목하기 시작합니다.
사회를 빼버리고 나면 이 모든 관계가 사라져 버린다.
사회가 만들어 준 언어적 관계를 맥락이라고 그러죠.
맥락이다. 관계다. 사회다 이런 말 속에 있는 것은
우리는 사실 존재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관계라는 것이다.
존재는 관계의 연산에서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거라는 거예요.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실재가 바로 자연이고
그 자연 속에서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서
자연에서 촉발됐지만
자연하고 완전히 다른 내면의 세계를 만들어냈는데
바로 자연에서 뭘 훔쳐와서 만들 수 있었냐면
자연의 인과관계를 브레인이 내면화 했다는 것이다.
자연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필연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자연의 인과관계를 내면화해서
예측이라는 필연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측을 통해서 미래의 세계로 나갈 수 있
꿈을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을 흘러가게끔 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고
그게 바로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통해서 동시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현재에서 정합적으로 살아가는 그 기억을 작업기억이라고 하고
작업기억이 원활하면 미래는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약간 다른 철학하고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칸트의 시간이론을 이야기 했는데
칸트는 우리가 시간 개념을 통해서
인과관계를 만든다 라고 이야기 했다.
대상세계에는 인과관계가 없는데
인간이 인과관계를 만든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박사님 이야기는 자연속의 인과관계를 통해서
시간의식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네요.
그 매개체가 바로 예측이다.
왜 예측을 할 수 있었냐면
자연에서는 기본적으로 랜덤, 우연성이 폭발하고 있는데
자연 속에서 인과관계로 된 그걸 모델링한 것이다.
그럼 인과관계는 예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예요.
그럼 그 예측을 통해서 미래를 뚫고 들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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