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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독립성의 상실

 

요약

고정된 시간이 존재 한다는 생각은 19세기 전신과 기차가 생겨나며 생긴 얼마 안된 개념이다.

정통적인 시간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 변화의 척도라고 주장했고, 

뉴턴은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 없이 '진짜' 시간은 흐른다고 주장했다.(아무것도 없어도 시간과 공간은 존재한다)

누가 맞는 것인가?

단순한 사물 외에 무엇이나 존재한다는 것은 뉴턴이 옳았다. 그러나 시간이 사물과 관련이 없으며 규칙적으로 꾸준히 흐른다는 추측은 틀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무언가와이 관계 속에서 정해진다는 의견은 맞았다.

이 두 의견들을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통합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결론은 독립적으로 존재 하는 것은 없다이고 이렇게 완벽해 보이던 아인슈타인 체계도 1년만에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중력장도 양자적 특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양자 역학이 필요해 졌다.

 

 

 

 

 

04 독립성의 상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인간은 수 세기 전에 시간을 하루 단위로 '나누었다'. '시간'이라는 말은 인도유럽어로 '나누다'라는 뜻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류는 13세기가 되서야 유럽에서 사람들의 일상이 기계식 시계를 통해 조율되기 시작했다. 종탑에 자리 잡은 시계가 공동체 생활에 리듬을 부여했다. 시계로 조절되는 시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시계의 유용함은 모두에게 같은 시간을 표시해준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시간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된 개념인것 같지만, 실은 거의 현대에 들어와 발생한 것이다. 19세기에 전신이 상륙하고 기차가 일반화되고 그 속도도 빨라지면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할 때 시계를 그런잘 맞추는 일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사물이 어떻게 바뀌는지 계산하는 수단, 이것이 인간이 오래전부터 생각한 전통적인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우리가 아는 한, 시간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문제 삼은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 변화의 척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사물은 계속 변화하고,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측정하고 계산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

 

'언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떤 사건을 기준으로 한다. "사흘 뒤에 돌아올 거야."라는 말은 출발해서 돌아오기까지 태양이 하늘에서 세 번 회전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무 움직임이 없으면 시간은 없다. 시간은 움직임의 흔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턴은 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뉴턴은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 없이 '진짜' 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진짜' 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른다고 보았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인류 역사상 다시 없으리만치 예리하고 심오한 두 연구자가 시간에 대해 정반대의 사고 방법을 제시했다. 두 거장이 우리를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시간은 단순히 사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측정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사물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흐르는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뉴턴의 생각에 반발했다. 라이프니치는 시간은 발생한 순서일 뿐, 자율적인 시간 같은 것은 없다는 기존의 논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뉴턴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류에게 시간은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헤아리는 방식이었다.

 

두 거장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조하를 이루려면 제3의 거장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간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은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시간은 '때'를 물을 때와 관련된 것이다. 공간은 '어디'를 물을 때와 관련된 것이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가?"의 대답은 그 무엇의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만약 "나는 사하라에 있다."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내가 드넓은 사막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한 물체의 공간은 그 물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뉴턴은 다른 방식의 개념을 제안했다.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위에 있는 것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정의한 공간이 "상대적이고 겉보기이며 통속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간 그 자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존재하는 공간이 "절대적이고 참되며 수학적"이라고 했다.

 

뉴턴은 두 물체 사이에 '빈 공간'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공간은 사물의 정렬 상태일 뿐이므로 '빈 공간'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사물이 없고 이 사물들이 확산되어 있지 않으며 접촉하지도 않으면, 공간도 없는 것이다. 뉴턴은 사물은 어느 한 '공간'에 위치해 있고, 이 공간은 사물을 치워도 빈 상태로 여전히 계속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뉴턴의 공간이 정말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정말 무정형일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시간에 대한 의문과 거의 흡사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흐르는, '절대적이고 실재하는 수학적'인 뉴턴의 시간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이 세상의 사물과 전혀 다른 것일까? 그래서 사물과 관계가 없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면 세 번째 거장이 개입 해야한다. 

 

세 거인의 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과 뉴턴의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보석 같은 연구로 통합되었다. 앞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뉴턴이 물질 저 너머 세상에 존재한다고 예상한 시간과 공간이 현실 속에 '존재한다'이다. 뉴턴의 시간과 공간이 실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뉴턴이 상상한 것처럼 절대적이거나,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들과 무관하거나, 세상의 물질들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최선의 지식에 따르면, 이 세상의 물리적 현실의 씨실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물리학자들은 '장 field'이라고 부른다. '전자기장'은 빛을 이루는 씨실로, 전기 모터를 회전시키고 나침반의 바늘을 북쪽으로 돌리는 힘들의 원천이다. '중력장'이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중력의 근원이지만, 뉴턴의 공간과 시간을 형성하고 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이 그려지는 직물이기도 하다. 시계는 이러한 중력장의 외연 크기를 측정하는 메커니즘이다.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다. 뉴턴이 예상한 것처럼 물질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하지만이 세상의 여타 사물들과 다른 존재자(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는 아니고, 다른 장들과 같은 장이다. 이 세상은 캔버스 하나의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들의 층으로 뒤덮여 있고, 중력장은 그러한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중력장 역시 절대적이지도 균일하지도 고정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구부러지기도 펴지기도 하고, 다른 것들과 서로 밀고 당기기도 한다.

 

질량이 큰 물체 근처에서는 시계가 느려지는 것도 그곳엔 더 많은 중력장이 있기 때문에 시간도 더 느려진다. 즉, 시간이 더 적어지는 것이다.

 

시간은 공간 기하학과 함께 구성된 복합적인 기하학의 일부가 된다. 아인슈타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개념과 뉴턴의 시간 개념을 합성한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둘 다 옳았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단순한 사물 외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뉴턴의 예상은 옳았다. 그러나 시간이 사물과 관련이 없으며 규칙적으로 꾸준히, 그 어떤 것과 아무 상관없이 흐른다는 추측은 틀렸다.  '언제'와 '어디'가 항상 무언가와의 관계 속에서 정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은 옳았다.

 

이 세 명의 위대한 연구자들의 춤 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아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중력장이라는 실제적인 구조가 존재하고 이것이 다른 물리학과 동떨어지지 않으며, 세상이 그냥 한번 흘러 지나가는 무대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중력장은 다른 것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우리가 미터기나 시계라고 부르는 것들의 리듬과 모든 물리적 현상의 리듬을 정하는, 이 세상의 위대한 춤을 구성하는 역동적인 요소다.

 

성공은 항상 그렇듯 단명할 운명에 있다. 인슈타인은 1915년에 중력장 방정식을 썼는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16년, 이 방정식이 공간과 시간의 본성에 대한 최종적인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중력장도 다른 모든 사물들처럼 양자적 특성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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