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새로운 전선, 새로운 논리
다른 어떤 것도 이보다 미지에 싸인 것은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국의 철사 울타리는 거미줄 형태나 네트워크가 아니라 부러진 격자 모양이었다.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는 데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선은 전선이었다.
분명 사람들은 연결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전기통신의 세 가지 거대한 파도가 차례로 절정을 구가했다. 바로 전신, 전화, 라디오였다. 사람들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전용 기계를 보유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 장치들은 사회구조를 해체해 재연결했고, 비어 있던 공간에 출입구와 교차로를 만들면서 사회적 지형을 바꿨다.
위스콘신 전화국장은 젊은 남녀들이 "전화선에다 끊임없이 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연애하려고 전화선을 남용하는 사례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벨은 특히 여성과 시종들이 쓸데없는 일로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섀넌은 게시판에 붙은 MIT의 대학원생 구인공고를 보게 된다. 버나마 부시가 미분해석기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새로운 기계를 운용할 연구조교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에서는 "기계 두뇌" 혹은 "생각하는 기계"라고 불렀다.
"생각하는 기계"는 고차원의 수학을 하며,
사람이 풀려면 몇 달이 걸릴 방정식을 푼다.
부시는 배비지와 마찬가지로 지루하기 짝이 없고 쓸데없이 힘을 허비하는 단순 계산이 싫었다. "수학자는 숫자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흔히들 잘 못한다. 수학자는 주로 고차원적인 기호논리학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고, 특히 직관적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다."
미분해석기는 비록 전기모터로 무거운 장치를 구동하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많은 제어용 전기기계식 스위치가 달리긴 했지만 배비지의 기관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기계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미분해석기는 배비지의 기관과 달리 숫자를 처리하지는 않았다. 미분해석기는 양을 다루며, 부시의 표현에 따르면 동역학계의 미래를 나타내는 곡선을 만들어냈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가까웠다.
릴레이는 전기로 제어되는 전기 스위치였다. 전신에서 핵심은 (릴레이의) 사슬을 만들면서 먼 거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섀넌은 거리가 아니라 제어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찾던 섀넌은 하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학부 4학년 때 기호논리학 강의를 들은 섀넌은 스위칭 회로를 배치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목록을 만들다가 갑작스럽게 기시감을 느꼈다. 아주 추상적인 방식으로 이들 문제들이 정리되었던 것이다. 회로를 서술하는 데는 기호논리학에서 사용되는 독특한 인위적 표기법인 불의 '대수'를 쓸 수 있었다.
특이한 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기와 논리학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섀넌이 깨달은 바에 따르면, 릴레이가 한 회로에서 다음 회로로 넘기는 것은 실제로 전기가 아니라 사실, 즉 회로의 개폐 여부에 대한 사실이었다. 회로가 열려 있으면 릴레이는 다음 회로가 열리게 할 수 있었다. 반대의 배열, 즉 부정의 배열도 가능했다. 이를 말로 설명하기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기호로 축약하는 편이 더 간단했고, 수학자에게는 방정식의 기호들을 조작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이 방정식들을 간단한 수학적 절차로 조작하는 계산법이 개발되었다." 1937년 섀넌이 쓴 논문은 이런 분명한 메시지와 함께 시작했다. 그때까지 방정식은 단지 회로의 조합을 나타낼 뿐이었다. 그러다 "방정식의 계산은 기호논리학에서 사용하는 명제의 계산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섀넌은 불처럼 자신의 방정식에 0과 1, 단 두 개의 숫자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였다. 0은 닫힌회로, 1은 열린회로를 나타냈다. 켜짐 혹은 꺼짐, 예 혹은 아니요, 참 혹은 거짓에 해당하기도 했다. (허용/회피의 뇌 구조와도 동일하다)
"릴레이 회로를 통해 복잡한 수학 연산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if, or, and 등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한정된 단계로 완전히 기술할 수 있는) 모든 연산을 릴레이를 가지고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 논리퍼즐을 푸는 기계는 실용성이 없었지만 가능성만큼은 무궁무진했다. MIT의 한 연구조교가 쓴 석사논문은 논리회로와 이진산술 같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컴퓨터 혁명의 핵심을 담고 있었다.
섀넌은 부시의 제안에 따라 전공을 전기공학에서 수학으로 바꿨다. 아울러 부시는 기호의 대수학(섀넌의 "이상한 대수학")을 신생 학문인 유전학에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해볼 것을 권했다. 섀넌은 <이론유전학을 위한 대수학>이라는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섀넌에 따르면 유전자는 이론적 구조물이었다.
한편 1939년 늦겨울 섀넌은 부시에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디어를 장문의 편지에 담아 보냈다.
종종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전신 등 소식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시스템의 근본 속성들을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사실상 모든 통신 체계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f1(t) -> T -> F(t) -> R -> f2(t)
T와 R은 송신기와 수신기였다. 이 둘은 세 개의 "시간 함수"를 중계했다. f(t)는 "전달되는 소식", 신호, 최종 출력값으로, 당연히 출력값은 입력값과 가능한 한 거의 동일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의 시스템은 언제나 '왜곡'에 시달린다. 섀넌은 왜곡을 수학적 형식으로 엄밀하게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소음'(잡음)도 문제였다. 섀넌은 부시에게 몇몇 정리를 증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호로 수학 연산을 수행하는 기계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완전히 전기회로만 써서 미분해석기보다 더 많은 작업을 하는 기계였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이 문제의 여러 소소한 것들에 일부 진전은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여전히 미진합니다. 대부분의 함수에 대해 실제로 기호 미분을 수행하는 회로를 설계하기는 했지만, 방법이 흡족할 만큼 일반적이거나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이 기계에 내재한 몇 가지 일반 원리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기록의 발명은 추론을 논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사유의 흐름을 눈앞에 놓고 분석할 수 있게 됨으로써) 논리학을 촉발시켰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기호로 움직이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논리학이 다시 되살아났다. 추론의 가장 고차원적 형태인 논리학과 수학에서 모든 것이 합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공리, 기호, 공식, 증명의 체계 안에 논리학과 수학을 결합함으로써 철학자들은 일종의 완성, 말하자면 엄밀하고 형식적인 확실성에 손닿을 것처럼 보였다.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쓴 책 <수학 원리>는 뉴턴에 대한 웅장한 반향이었다. 이들의 야망은 바로 모든 수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흑요석 같은 기호와 확고한 규칙을 갖춘 기호논리학으로 인해 마침내 수학의 완성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임무는 모든 수학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적절하게 수행된 증명 과정은 기계적이어야 한다. 언어와 달리 '기호'는 "완벽하게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이들 모두는 추론의 완성은 사고의 완벽한 인코딩과 함께 간다고 믿고 있었다.
1678년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썼다. "사유들 간의 관계를 완벽하게 나타내는 특정한 문자." 이들 문자로 인코딩하면 논리적 오류가 바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역설이 발생 하고 러셀은 역설을 제거하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역설을 일으키는 요인은 문제의 진술 안에 존재하는 특유의 재귀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집합에 속한 집합이라는 개념 말이다.
이후 쿠르트 괴델이 등장하여 완벽한 논리체계라는 러셀의 꿈을 박살내려 했던 것이다. 괴델은 역설이 기이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했다. 역설은 근본적인 것이었다.
괴델은 러셀을 박살내기 전에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작업을 먼저 칭송하고 나선다. 수리논리학은 "다른 모든 학문에 선행하는 학문으로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사고와 원칙을 포함"한다. 짧은 시간에 매우 포괄적이고 엄청난 영향을 발휘한 형식 체계를 담고 있는 위대한 저작 <수학 원리>를 괴델은 짧게 PM이라고 불렀다. PM은 책이 아니라 체계를 의미했다. 1930년 무렵 수학자들은 어떤 것을 증명할 때 PM을 토대로 삼았다. 괴델이 말했듯 PM 안에서 "우리는 몇 개의 기계적 규칙만 가지고 모든 정리를 증명할 수 있다."
PM의 체계는 완전하기 (완전하다고 주장되었기) 때문에 '모든' 정리를 증명할 수 있다. 또한 논리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가차없이 작동했기 때문에 '기계적' 규칙이었다. PM의 기호는 의미를 담지 않았다. 누구나 증명을 이해하지 못해도 규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증명을 검증할 수 있었다. 이런 속성을 기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계가 숫자를 처리하고, 무엇이든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찰스 배비지와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꿈을 환기시켰다.
괴델은 PM이라는 그릇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수학을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졌다. 괴델은 자신의 의구심을 엄청나고도 충격적인 발견으로 뒤바꿔놓았다. PM 안에(모든 일관된 논리체계 안에)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괴물이 반드시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괴물은 바로 결코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진술이었다. 다시 말해 증명할 수 없는 '참'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괴델은 증명했다.
괴델의 정리는 책을 참고 ^^;
PM을 비롯하여 기본적인 산술을 할 수 있는 모든 일관된 논리체계 안에는 언제나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저주받은 진술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괴델은 일관된 형식 체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완전하고 일관된 체계는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역설이 다시 돌아왔고, 또 단순히 기이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 역설은 러셀과 화잉트헤드의 기획의 핵심을 강타했다. 나중에 괴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논리적 직관(즉, 참, 개념, 존재, 부류 같은 관념에 대한 직관)이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청천벽력이었다. 이것의 힘은 이것이 쓰러뜨리려는 체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수, 기호체계, 인코딩에 대한 교훈에서 나왔다.(PM 체계로 이를 증명했다는 의미)
1930년 괴델은 이 발견을 공식 발표한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괴델의 발견이 갖는 의미를 곧 이해했다. 큰 충격을 받은 폰 노이만은 이에 대해 연구했고 괴델의 발견에 빠져들게 된다. 불완전성은 사실이었다. 수학이 절대 자기모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폰 노이만은 이렇게 말한다. "아울러 중요한 점은 이 사실이 철학적 원칙이나 그럴듯한 지적 태도가 아니라 정교함의 극에 있는 엄밀한 수학적 증명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참이 지나고 노인이 된 러셀은 괴델이 자신을 당혹스럽게 했음을 시인했다. 러셀은 이렇게 썼다. "더 이상 수리논리학을 연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주어진 공리의 집합이 모순으로 이어진다면 최소한 하나의 공리는 거짓이어야 함이 분명합니다." 근본적으로 수학을 믿지 않았던 비트겐슈타인은 불완전성 정리를 속임수라고 일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학은 '지각'이 불완전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불완전할 수 없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틀림없다.
괴델은 한꺼번에 두 사람을 응수하고 나섰다. "러셀은 확실히 저의 결론을 오해했습니다. 다만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 지극히 사소할 뿐만 아니라 흥미롭지도 않은 오해를 제시했습니다."
엘리샤 그레이는 편지에서 전화는 거의 연구할 가치가 없다며 이렇게 썼다. "말하는 전신에 벨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기술은 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런 상업적 가치가 없습니다. 기존 방식으로도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못 생각한 데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접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상상력 부족이 있었다. 전신은 문해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화는 말로 하는 것이었다. 전신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먼저 기록을 해야 했고, 인코딩을 하고, 숙련된 중개자의 조작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화를 쓰면 그냥 말만 하면 됐다. 전화는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텔레폰'이 신문 이름으로 사용될 가망은 없었다. 사업가들은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신이 사실과 숫자를 다루는 곳에서 전화는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벨은 이를 판매 포인트로 삼았다. "살아 있는 목소리는 영혼을 움직인다"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는 얼마나 달콤한가". 반면 목소리를 담아 사물화한다는 생각에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방문과 창문을 닫고 수건과 담요로 열쇠구멍과 환풍구를 틀어막아도 우리가 하는 말을 모두 엿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갇힌다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
누구나 전화의 미래를 예언했지만 탁월한 선견지명을 담은 예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호연결의 힘에 주목한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전화 사용자들이 조그만 무리를" 형성하는 것에 주목했다. 네트워크가 커지고 관심사가 다양해질수록 잠재력은 더 커질 것이다.
전신이 수년에 걸쳐 이룬 일을 전화는 몇 달 만에 해치웠다... 서로 연결되면서 회사와 부유한 가정의 전유물이 아니라 필수적인 물건이 될 것이다. 이로써 사회는 새롭게 조직될 것이다. 아무리 외진 곳에 살더라도 모든 개인은 지역사회의 다른 모든 개인들과 연락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회적, 사업적 문제, 쓸데없이 오고 가는 문제, 낙담, 지체 그리고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불상사와 성가신 일들을 피할 수 있다. 즉각적인 전화통신이 이루어지면 문명사회에 흩어져 있는 구성원들이 다양한 신체 부위가 신경계에 의해 연결되듯이 밀접하게 연결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이렇듯 유례없는 네트워크의 급속한 확장이 가능하려면, 전화에 새로운 기술과 과학이 필요했다. 하나는 전기 자체와 관련있는 전기량을 측정하고, 전자기파를 제어하는것(진폭과 전파수를 변조)이고 두 번째는 연결을 조직하는 스위칭, 넘버링, 로직처럼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기술들이었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전화번호가 비인격적이라며 분개했고, 엔지니어들은 네다섯 자리 이상의 번호를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교환수들을 고용하였지만 수많은 교환수로는 네트워크의 성장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스위칭은 자동으로 이뤄져야 했다.
이 말은 사람의 음성뿐만 아니라 번호를 발신자와 기계적으로 연결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10개의 손가락 구멍을 달고 회선을 따라 펄스를 보내는 다소 불편한 회전 다이얼을 썼다. 그러면 코드화된 펄스가 중앙교환소에서 제어 중개역할을 했는데, 여기서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일련의 회로를 선택하여 회선을 연결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 숫자와 회로 사이의 유례없이 복잡한 수준의 변환이 이루어졌다. 벨연구소는 자동 스위치를 '전기 두뇌'로 홍보하고 다녔다.
수학자에게는 어떤 주장이 모든 세부적인 면에서 완벽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수학자는 이것을 '엄밀한 사고'라고 한다. 반면 전형적인 엔지니어는 이를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다. 또한 수학자는 자신이 맞닥뜨린 모든 상황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수학자에게 기체는 "이상적"이고, 도체는 "완벽"하며, 표면은 "평탄"하다. 수학자는 이를 "본질에의 접근"이라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이것을 "사실의 무시"라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수학자와 엔지니어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이다. 전기 엔지니어들이라면 이제 정현파 신호로 처리된 파동을 기초 분석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어려움이 발생하자, 이를 수학적으로 다루는 네트워크 정리들이 나왔다. 수학자들은 통화적체에 대기이롬을 적용했고, 도시 간 중계 회선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그래프와 계통도를 개발했으며, 조합론을 활용해 전화 확률문제를 해결했다.
게다가 잡음 문제도 있었다. 처음에 잡음은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잡음을 오실로스코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이 잡음을 측정하고 싶어 했다. 대단히 무작위적이고 유령 같은 이 성가신 존재를 측정한다는 게 다소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를 측정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이 그 존재가 증명된 분자의 열에너지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꽃가루처럼 아주 극미한 입자는 분자 충돌의 충격을 받으며, 매우 가벼워서 이리저리 무작위적으로 흔들린다. 입자의 요동은 개별적으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통계역학의 법칙들로 표현할 수 있다. 유체가 정지해 있고 시스템이 열역학적 평형상태에 있다하더라도 온도가 절대영도 이상이라면 불규칙한 운동은 지속된다.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은 무작위적 열교란이 모든 전기전도체의 자유전자에 영향을 미쳐서 잡음을 만든다는 사실도 밝혔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에서 전기와 관련된 측면에 관심을 기울인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다. 1927년에야 비로소 벨연구소에서 일하던 두 명의 스웨덴 사람에 의해 회로의 열잡음은 엄밀한 수학적 기반 위에 놓이게 된다. 존슨은 잡음이 설계의 결함이 아니라 회로에 고유한 것임을 깨닫고 이를 처음으로 측정했다. 뒤이어 해리나이키스트는 이상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전류와 전압의 요동을 구하는 공식을 도출했다.
전신에서 메시지 전달의 근본 단위는 처음부터 이산적인 점과 선이었다. 반면 전화에서 유용한 정보는 주파수 스펙트럼을 따라 긴밀하게 섞이면서 서로 변해가는 소리와 색깔처럼 연속적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나이키스트 같은 물리학자들은 이산적인 전신 신호를 전달할 때도 전파를 파형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당시는 전신선을 흐르는 전류 대부분이 낭비되고 있었다. 나이키스트 말대로라면, 이 연속적인 신호들이 음성처럼 복잡한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다면 전신의 단순한 신호는 특수한 사례일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신 신호는 '켜짐'과 '꺼짐'의 진폭에만 관심을 갖는 진폭 변조의 특수한 사례였다. 엔지니어들은 전신 신호를 파형의 형태를 지닌 펄스로 취급함으로써 전송 속도를 높이고 단일 회로 그리고 음성 채널과 통합할 수 있었다. 나이키스트는 '얼마나 많은' 전신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나이키스트는 연속적인 파동을 이산 데이터 혹은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기발한 방법을 찾아낸다. 파동을 일정한 간격으로 추출하여 사실상 셀 수 있는 조각으로 바꾼 것이었다.
"소식의 전달 속도" 공식을 계산한 나이키스트는 소식을 특정한 속도로 전달하려면 특정한, 측정할 수 있는 대역폭을 지닌 채널이 필요함을 증명했다. 대역폭이 너무 작으면 전달 속도를 늦춰야 했다. (하지만 복잡한 메시지도 대단히 작은 대역폭을 가진 채널을 통해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예를 들어 두 가지 높이의 음만 내는 손으로 두드리는 북이 그렇다.)
하틀리는 국제학회에서 '정보imformation'라는 색다른 단어를 썼다. 하틀리는 청중들에게 정보에 대한 근본 정리와 새로운 정의들을 제시했다. 하틀리가 제시한 정리는 나이키스트의 공식을 확장한 것으로, 특정 시간에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최대치는 가용한 주파수 범위(하틀리는 '대역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에 비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틀리는 벨연구소 문화의 일부가 되어가던 견해와 가정들을 끄집어냈다. 첫 번째는 정보 자체에 대한 견해였다. "흔히 사용하는 정보라는 용어는 너무 탄력적입니다." 정보는 의사소통하는 것으로, 결국 직접적인 말이나 글 혹은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또한 의사소통은 기호를 통해 이뤄졌다. 기호는 공통의 합의에 따라 "의미"를 전달한다.
만약 "포함되어 있는 심리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순전히 물리적 수량에 따른" 척도를 확립하는 것이 목표라면, 하틀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하고 셀 수 있는 어떤 것이다. 하틀리는 기호를 세는 일부터 시작했다. 기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전달이 됐든 기호의 수는 셀 수 있다. 각각의 기호는 선택을 나타냈다. 즉, 각 기호는 특정 기호 집합(이를테면 알파벳)에서 선택되며, 가능성의 수도 셀 수 있었다. 가능한 단어의 수를 세는 일은 그리 쉽지 않지만, 심지어 일상 언어에서도 각각의 단어는 가능성의 집합에서 선택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사과는 빨갛다 Apples ard red'라는 문장에서 첫 단어 '사과'는 다른 종류의 과일과 다른 모든 일반적 대상들을 배제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사과의 일부 속성이나 조건에 주목하게 하며, 세 번째 단어는 다른 가능한 색깔들을 배제합니다.. 하나의 선택에서 쓸 수 있는 기호의 수는 사용된 기호의 유형,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전 이해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틀리는 다른 단어들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단어들처럼 몇몇 기호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예'나 '아니요' 같은 단어는 오랜 논의 끝에 나오게 되면 이례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요점은 공식에서 인간의 지식을 빼는 것이었다. 전신과 전화는 결국 바보이다.
정보의 양이 기호의 수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명료해보였다. 기호가 두 배 많으면 정보도 두 배 많아야 한다. 하지만 하나의 점 혹은 선은 알파벳의 한 글자보다 적은 정보를 지니며, 천 단어가 들어 있는 사전에서 고른 단어 하나보다 훨씬 적은 정보를 지닌다. 가능한 기호의 수가 많을수록 각각의 선택은 더 많은 정보를 지닌다. 얼마나 더 많을까? 하틀리가 만든 공식은 다음과 같다.
H = n log s
여기서 H는 정보량, n은 전달되는 기호의 수, s는 알파벳의 개수를 뜻한다. 점-선 체계의 경우 s는 2에 불과하다. 한자 한 글자는 모스부호의 점이나 선보다 훨씬 더 많은 무게와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정보량은 알파벳의 개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로그함수적이다. 즉, 정보량을 두 배로 늘리려면 알파벳의 개수를 네 배로 늘려야 한다.
전화는 사람의 음성을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곡선의 아날로그 파동으로 보냈다. 이 파동의 어디에 기호가 있는 것일까? 기호는 어떻게 셀 수 있을까?
하틀리는 연속적 곡선은 이산적 단계의 연속이 근접하는 경계로 생각해야 하며, 파형을 일정한 간격으로 추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 단계들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나이키스트의 뒤를 이었다. 이런 방식대로라면 전화는 전신과 마찬가지로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하틀리는 거칠지만 설득력 있는 분석을 통해 전화와 전신 모두 전체 정보량은 두 가지 요소에 좌우된다는 점을 증명했다. 바로 가용한 전달 시간과 채널의 대역폭이었다.
섀넌은 나이키스트와 하틀리의 논문을 읽게 된다. 이 논문의 수학적 통찰을 접한 섀넌은 희미한 목표를 향한 힘겨운 첫걸음을 내딛는다. 섀넌은 또한 두 사람이 용어를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소식 전달의 속도는 특정 시간 안에 전달할 수 있는 여러 글자나 숫자 등을 나타내는 기호의 수를 뜻합니다." 섀넌이 보기에 기호, 글자, 숫자는 세기 어려웠다.
섀넌은 이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뿐만 아니라 소리와 이미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전기를 사용하여 세계 전체를 기호로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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