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임계 질량, 책디자인을 보면 정말 읽고 싶지 않아 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복잡계를 알아 가는데는 정말 좋은 책입니다.
서론 - 정치 산술
1690년 즉위식을 마친 영국의 윌리엄 3세에게 책 한 권이 전달되었다.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나라임을 밝히겠다는 내용의 책이다. 내용은 영국은 위대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페티는 어떤 근거로 그런 과감한 주장을 했을까? <정치 산술>이라고 부르는 그의 책은 정치학의 효시였다.
페티는 영국 사회의 건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숫자를 사용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상대적이고 과장된 언어와 학문적 추론에만 의존하는 대신, 내 생각을 숫자, 무게, 또는 측정치로 표현하고, 상식을 근거로 하는 추론만을 이용하며,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근거만을 고려하는 길을 선택했다.
페티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에 대해서는 측정하거나 정량화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 산술의 과학을 이용하면 국가의 지도자들이 인간의 비합리성에서 벗어나서 건전하고 검증할 수 있는 통치 원칙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정치학자들이 인간사는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변덕과 편견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한탄하는 사실을 안다면 페티는 정말 실망할 것이다.
케네스 월츠는 <개인, 국가, 전쟁>(1954)에서 언젠가는 국가들이 독선이나 논쟁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론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밝혔다.
월츠는 페티가 생각했던 일종의 뉴턴적 물리학과 같은 단순함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페티의 그런 시도가 오늘날에는 놀라울 정도로 순진해 보이지만 현대 물리학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는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물리학에서는 정말 특별한 일이 진행되어 왔다.
본래 우주의 맹목적인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개발했던 도구와 방법과 아이디어들이 이제는 전혀 뜻하지도 않았고, 언뜻 보기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는 분야에서 응용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이 사회의 과학에서 유용해 진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런 사실을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있으며, 앞으로 그런 노력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상당히 잘못 응용될 가능성이 있는 사회의 물리학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1980년대에 무르익었던 카오스 이론은 지금까지는 비교적 견고해 보인다. 카오스 이론은 시장경제의 모델로 알려지게 되었고, 유인자라고 부르는 안정적인 동력학적 상태의 개념을 이용해서 어떤 사회적 거동이나 조직이 작은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조차도 사회의 과학과 비슷한 수준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이제는 복잡성이 유행이다. 여기서의 전문어는 "창발"과 "자기 조직화"이다. 복잡성 이론은 여러 부분들의 상호작용에서 몇 가지 간단한 규칙에 따라 질서와 안정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복잡성 이론이 설명하려는 주제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물리학자들이 연구하면서 개념과 기법들이 개발되었다. 복잡성 과학이 사회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할 이야기가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복잡성 과학은 "집단적 거동"에 대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무감각한 입자들의 거시적 성질들이 많은 사람들의 거동과 무엇이 닮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물리학자들은 계(system)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부분들이 서로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반복되는 특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새로운 사회의 과학이 페티가 무시해도 좋을것이라고 여겼던 "특정한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사고방식, 의견, 욕구, 열정"과 같은 인간의 특성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더라도 여전히 그들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회에 대한 예측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자유의지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페티와 같은 시대의 토머스 홉스도 사회의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홉스는 그것이 단순한 숫자 이상의 것으로 메커니즘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가를 물어보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우리는 홉스의 메커니즘적 접근과 페티의 산술적 접근이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런 접근들이 19세기의 물리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재미 있는 문제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물리학에서 동시에 서로 상호작용하는 많은 부분들로 이루어진 계를 어떻게 취급하고, 겉보기에는 혼돈스럽게 보이는 것에서 규칙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거동이 어떻게 "통계적" 인 형식으로 창발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사람을 무감각한 물질(또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물리학을 근거로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우선 "생명" 자체가 통계물리학의 응용 범위를 넘어설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박테리아도 그렇고, 세상도 그렇다.
그렇다고 이 책이 "사회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만약 사회의 물리학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숫자를 넣어주면 사회의 거동에 대한 결정론적인 설명을 쏟아내는 보편적인 방정식의 형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열린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여 다니는가, 어떻게 결정을 하고, 투표를 하고, 연합과 집단과 조직을 형성하는가에 대해서 물리학이 어떤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경제시장의 거동 중 일부를 설명하고, 사회적, 상업적 접촉의 네트워크에 감춰진 구조를 드러내어 보여주는 데에 사용되는 물리학을 살펴볼 것이다. 갈등과 협동의 정치학에서 일종의 물리학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훨씬 더 어려운 의문이 자리잡고 있다. 물리학이 단순히 우리의 설명과 이해를 도와주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물리학을 이용해서 어려움을 미리 회피하고, 우리의 사회를 발전시키고,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또는 과거 유토피아를 꿈꾸던 다른 주장들처럼 또 하나의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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