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바이어던의 출현 - 토머스 홉스의 잔인한 세상
크롬웰 당시 일반 백성들이 안정보다 더 원했던 것이 또 있었을까? 20년에 걸친 전쟁과 흥망성쇠를 지켜본 사람들은 왕정만이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8년 전 철기군의 손아귀에서 겨우 도망쳤던 찰스 2세가 프랑스에서 돌아왔을 때는 충성스러운 군대와 기쁨에 찬 백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토머스 홉스가 추구했던 아주 특별한 목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수백 년에 걸친 계급사회에 대한 왕권 지배는 1649년 찰스 1세의 처형으로 확실하게 무너져버렸다. 신성하고 윤리적인 법으로 유지되었다고 믿었던 과거의 지배체제가 이제는 무작위적이고 불확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사회가 그런 체제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했을까? 그런 주제는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다른 나라와의 전쟁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세금이나 징병의 부담이 주어지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어나는 내란은 달랐다. 영국의 내란은 대체로 백성들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었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홉스를 비롯한 당시의 사람들에게 사회적 평화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부유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중세의 봉건제도는 힘을 잃었다. 의회와 성실청으로 구성된 지배체제는 중세 엘리자베스 시대로 돌아갔지만, 시대정신은 훨씬 더 민주화되었다. 종교개혁이 유럽을 두 동강이로 분리시켜버렸다. 하나의 교회가 기독교 전체를 지배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공격은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반종교개혁, 예수회, 무자비한 종교재판을 탄생시켰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도 그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 세상의 본질은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뉴턴이 케임브리지에 입학했던 17세기 중엽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계론적 과학으로 마술과 미신을 추방하는 것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홉스의 걸작인 <리바이어던>은 그런 기계론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정치학(정치과학) 이론을 정립하려던 시도였다. 홉스는 갈릴레오가 운동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수준의 논리와 이성으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자명하다고 믿는 공리로부터 인간의 상호작용, 정치, 사회에 대한 과학을 정립하려고 했다.
홉스는 기본적인 법칙들을 먼저 밝혀낸 후에 그런 법칙들이 어떤 결과를 뜻하는지를 살펴보는 이론과학자의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이론에서는 어떤 결론도 가능하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가장 안정한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공산주의, 민주주의, 또는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바이어던>은 편견이 없는 명백한 논리에만 의존했다는 주장 때문에 정치학 이론의 역사에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성과는 그 이상의 것이다. 오늘날 홉스의 업적은 역사적, 철학적으로도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학은 전혀 다른 괴물로 변해버렸다. 이제 정치학에서는 아무도 홉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데 <리바이어던>은 현대 물리학의 첨단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혁명적인 발전에 대한 직접적이고 놀라운 선견지명을 담고 있다. 과학자들도 현대 물리학의 이론적 구조가 교통량의 변화에서 경기의 변화와 기업의 구조에 이르는 사회의 구조와 행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홉스는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인간의 행동을 몇 가지 간단한 가정이나 우리가 "자연의 힘"이라고 생각한 것의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 점은 오늘날 물리학자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지켜보던 홉스에게 핵심적인 힘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권력에 대한 힘이 그것이었다.
리바이어던의 출현
헌신적인 고전학자였던 홉스가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논리의 힘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그가 마흔 살이던 1629년부터였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고는..
홉스는 기하학자들이 기본적인 정리에서 시작하는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확실성을 보장하는 처방이었다.
사회의 불안정성을 경험했던 홉스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처럼 절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할 만한 통치 이론을 찾아내고 싶었다. 갈릴레오를 만나기 위해 피렌체로 떠났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밝혀낸 관성 법칙을 이용해서, 물체의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게 만들려면 물체를 계속 밀어주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잘못된 '상식'임을 밝혀냈다. 갈릴레오는 물체는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직선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무한히 움직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홉스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찾고 있던 공리가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일정한 운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자연적인 상태였다. 그는 인간의 모든 감각과 감정이 운동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다. 홉스는 그런 기본적인 원리에서 시작하면 사회의 이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홉스는 인간의 의지를, 계속 움직이는 방법을 찾으려는 욕구인 "기호"와 움직임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욕구인 "혐오"로 구분했다. 기호에는 배고픔처럼 본능적인 것도 있지만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다. 우리는 기호와 혐오를 적절하게 저울질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의 과정을 결정하고 움직인다.
홉스의 움직임은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자유에 해당한다.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곧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정신의 메커니즘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 생각하는 자유도 역시 본능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계적 설명에 자유의지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을까? 홉스의 입장에서는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는 엄격한 결정론자였다.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하다. 그러나 홉스는 그런 삭막한 설명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살펴보는 "자기반성"을 통해서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적이고 확실한 가정에 도달했다고 믿었다.
기계론적 철학
만약 우주가 시계와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조각으로 분해해서 과학의 환원주의적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정확하게 홉스가 사회의 작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상주의자들
과학적 이론을 근거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인물은 홉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등장하는 지배층의 철학자들도 검소한 생활을 하고 사유 재산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병사와 서민을 비롯한 하층계급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론은 귀족들만의 유토피아에 대한 것이었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이상적이다. 소유권도 없다. 모두가 똑같은 집에서 살고, 개인이 집을 소유한다는 인식을 막기 위해서 10년마다 서로 집을 교환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소박한 옷을 입었고, 모두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일을 하고,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여러 종교들이 모두 허용되고, 사람들은 모두 소박하고 절제된 생활을 한다. 한편으로는 상쾌할 정도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공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맥빠지고, 풀이 죽은 생활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후고 그로티우스(1583-1645)는 <전쟁과 평화의 법>을 통해서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로티우스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과학적 또는 수학적 법칙이 아니라 천부적 권리라고 여기는 것에서 더 나은 "자연법칙"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너그러움이 좋은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동료와 함께 있으면서 행사할 수 있는 천부적 권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이 부당하게 공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공격을 당하는 경우에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보존에 만족하고 아무 이유 없이 남을 해치지 않으려고만 한다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상태에 해당하는 "자연 국가"이다. 일반적으로 문명은 그보다는 조금 나아서, 예절, 우정, 배움, 예술 등을 강조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선택적이다. 사회는 그런 것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로티우스의 "최소 사회"는 잔인한 것이고, 천부적 권리에 대한 그의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진보주의 전제조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공격은 보장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누가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식량이 부족할 경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웃을 죽이는 것은 정당화되겠는가? 내년에 닥쳐올지도 모를 기아에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그렇게 한다면 정당화되겠는가? 모두가 동료의 천부적 권리를 인정하기로 동의하더라도, 그런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 그래서 사회의 안정이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세 유럽의 계급사회 사람들은 상관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서 그런 확실성은 무너져버렸다. 사람들이 인도주의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접하게 되고,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사회의 엄청난 다양성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된 것도 그 이유가 되었다. 갑자기 사회의 기본 법칙이나 합의된 행동규범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홉스는 천부적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에서 나타나는 그런 상대주의가 결국 "자연 국가"가 권리 이상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화국을 건설하는 방법
자유가 없는 사람은 권리도 없다. 홉스는 권리를 개인의 안녕이나 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의 명백한 이익"을 얻기 위한 힘으로 정의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도록 해주는 일종의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육체적인 힘, 설득력, 분별력과 같은 천부적인 품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재산, 명성, 영향력 있는 친구를 비롯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해당하는 "수단적 권리"를 얻기 위해서 그런 품성을 이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홉스의 사회 모델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권리를 축적하려고 노력한다는 가정을 근거로 했다. 그 수준은 개인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스코틀랜드 정치학자 로버트 맥키버는 인간의 좋은 점과 가치 있는 점은 모두 무시되었다고 비판했다. "홉스는 가족의 삶으로부터 퍼져나가는 모든 것,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모든 전통과 가르침, 인간 본성의 사회화 경향을 보여주는 모든 관습과 수많은 조화를 무시해버렸다."
"삶은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19세기의 낭만주의자 랠프 월도 에머슨도 인간 본성에 대한 홉스의 해석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홉스의 견해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거나에 상관없이 그런 가정을 전제로 한다면 어떤 결론이 얻어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성립된다. 만약 인간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어떤 사회가 등장하고 유지될 것인가?
권리는 상대적이다. 한 사람의 권리가 주변의 다른 사람의 권리를 "넘어서는"정도가 진정한 규모가 된다. 그래서 홉스는,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어떻게 지배할까? 자본주의 시장 사회에서는 그 답이 간단했다. 구매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
"그 사람의 권리를 사용하는 것만큼에 대해서 값을 치르면 된다"는 그의 주장은 인간을 기계로 보는 것만큼이나 냉혹하다. 경쟁을 구매해버리는 것은 자유시장의 윤리이다.
권리에 대한 욕구가 다양한 사회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적당한 수준의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강한 욕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홉스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입장이다. 권력에 굶주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보호의 본능 때문에 착취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서로 협력할 준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연 국가의 평화와 안정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협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에 대해서 끝없는 욕구를 가진 인간은 이익을 얻을 가능성만 있으면 그런 계약을 파기해버리기 때문이다. 홉스는 300년이나 앞서서 현대의 가장 중요한 행동 딜레마 중의 하나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위해서 단순히 자신의 천부적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그 권리를 권력에 "넘겨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은 필요하다면 강제로 그런 계약을 부과할 의무를 가진다.
누가 그런 권력을 가져야 할 것인가?
홉스의 선출된 군주의 권력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절대적이다. 사회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자의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선출된 군주의 몫이다. 홉스는 시민들이 폭군에게도 세금 납부와 복종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런 전제주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화국, 즉 리바이어던으로 단결시킨다.
홉스에 따르면, 리바이어던은 "편리함 또는 평화와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 때문에 정당화된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제안한 방법을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 목표 자체는 현대의 모든 민주주의에서 숭배되고 있다. 홉스는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단이 어떻게 통합되어 독립국가를 이루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제시했다. "홉스는 사회를 발견했다."
따라서 토머스 홉스는 자신이 과학과 논거만을 이용해서 왕정이 가장 좋은 지배제도라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믿었다.
사회의 계산법
왕이 최고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책을 보고 찰스 2세가 반가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왕도 평민 중에서 나오고, 하원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선거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 때문에 찰스 2세는 <리바이어던>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왕은 성스러운 법에 의해서 다스리고, 그 권력은 어떤 사회계약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왕당파의 입장에서 그 책은 반역적이었다.
홉스의 주장은 의회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홉스의 최고 권력은 누가 그런 권력을 이어받게 될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도 가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한번 적용되고 나서 사라져버리는 셈이다.
<리바이어던>의 내용을 실천에 옮긴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홉스의 주장은 영원성과 혁명을 모두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확실한 힘과 정확성을 가진 것이어서 후세의 정치철학자들 모두에게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리바이어던>은 정치학에서도 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홉스가 제안했던 사회계약은 존 로크나 장 자크 루소의 주장의 전주곡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로크와 루소에게도 국가의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서민의 이익을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홉스의 경우에는 서민들이 지배자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계약을 맺는다. 홉스에게는 무정부 상태가 두려웠지만, 로크에게는 권력의 남용이 문제였다. 로크가 독재를 막기 위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홉스는 왕정의 지지자였지만 부르주아 자본주의와 진보주의를 지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논리도 제공했다. 그는 부유해지는 목표를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장에게 맡겨버렸다. "계약을 하는 모든 것의 가치는 계약자의 욕구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정당한 가격은 사람들이 지불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런 자유시장 철학은 한 세기 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다시 등장한다.
인간과 메커니즘
이론정치학자들은 사물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물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새로 등장하는 사회의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관찰된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간단한 가정으로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 모델을 가지고 있어야만,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을 수 있다.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결정은 공개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더 이상 과학적 의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사회의 물리학"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제와 지배의 조직을 만들려는 시도도 아니고, 과학적 논리를 이용해서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을 맹목적인 수학에 따라 이리저리 뒤섞어야 하는 영혼이 없는 균일한 인형으로 상상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많은 개인들이 서로 돕거나 속이고, 협력하거나 다툼을 벌이고, 사람들을 따라가거나 홀로 길을 걷는 것처럼 자신들의 개성에 따라 행동하는 통계적 혼란 속에서 어떻게 행동의 유형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유형은 실제로 창발된다. 그런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소수의 설계자, 정치가, 또는 도시 설계자들이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방식이 아니라 사물이 그래야 하는 방식에 맞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에 꼭 맞는 조직의 형식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이웃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더라도, 다시 말해서 "좁게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집단적으로 일관적이고 전반적인 결과를 알아낼 수 있다.
과학은 처방이 아니라 설명을 제공한다. 그런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더욱 명백한 비전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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