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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지위 게임 : SNS속 부족 전쟁

3부. 극단의 게임

19. SNS속 부족 전쟁

지위 게임은 강력한 유기체다. 때로는 그 자체로 지능이 있어서,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지능을 압도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개인에게는 이런 집단행동의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능력이 없었다. 게임의 면역계가 참가자의 마음에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게임의 면역계가 참가자의 마음에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게임이 참가자들에게 내리는 명령은 전쟁 상태로 전환될 때 강해진다. 참가자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해진다. "사회적 위협이 강할수록 사회적 유대가 더 커진다."

 

하지만 이처럼 결속력이 강한 전쟁 모드는 승리하면 돌아오는 지위가 있을 때 발동한다. 

"자원을 획득할 기회"는 "집단의 화합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조건"이었다.

 

게임이 치열해지면 개별 참가자들은 서로 융합하고, 게임의 꿈은 더 강력해진다. 그러면 우리는 점차 게임 안에서 자기를 잃고 게임에 헌신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게임이 치열해지는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무섭게도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강제하기 시작한다.

 

바로 지위 게임은 어느 한 사람이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시대에는 리더십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물론 수렵채집 사회가 계층을 중심으로 조직되기는 했지만 한 사람의 '거물'이 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간혹 지혜로운 누군가가 잠시든 영구적이든 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해야 한다. 모든 이의 의견을 겸허히 경청하고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온화하게 조력해야 한다. 심각한 일탈자를 처리할 방법을 처리할 때도 지도자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집단 전체를 위한 결정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권위를 지니는 당사자는 지도자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 전체다.

 

우리가 이렇게 진화한 데는 어느 정도는 집단 내부의 지배적인 구성원을 다루기 위한 방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배적으로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고 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게임이라면 그런 게임은 플레이어가 참여하기 어렵다. 골칫거리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경쟁자의 부당한 행위를 비난하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라서 게임이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플레이어들은 생각하는 유기체를 이루었고, 그 안에서 합의에 도달해야만 살인이 허용되었다. 우리의 친족 기반의 게임에서는 친족들은 원치 않는 사람을 살릴지 죽일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했다.

 

누구나 독재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우리의 '사촌들'도 독재자 못지않게 잔혹할 수 있다.

우리가 "전통이라는 사회적 우리" 안에서 "순응하겠다는 의지에 따라 살거나 죽는" 존재라고 표현한다. 사촌들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사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위험에 처했다."

 

우리 집단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인상이 중요하다. 엄밀한 의미의 합의일 필요는 없었다. 집단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그 행위를 지지한다는 전반적인 인식이 중요했다. 

 

대개는 소문이 들끓고 과거의 죄가 낱낱이 밝혀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죄인을 향해 도덕적 분노가 폭발했다. 집단은 죄인을 처형할 뿐 아니라 모멸감을 안겨줄수도 있었다. 

 

앉을 자리를 내주지도 않고 앉으려 하면 "짐승은 맨바닥에서 잔다"는 핀잔을 받는다.

이렇듯 사촌들은 무시무시하고 막강했다. 사촌들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 깊이 박혀 있다. 

우리는 사촌들을 두려워하고 규칙이라는 사회적 우리에 순응하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촌들은 우리 마음속에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놀이 친구를 거부하는 이유를 알아본 연구에서는 상대 아이가 주로 그들이나 친구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이런 사람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우리는 게임을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압제와 혐오를 지우고 타락한 지도자와 사악한 계략에 책임을 넘기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이런 순진한 발상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면 유토피아가 창조될 거라고 기대한, 인터넷과 SNS의 선구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이버 공간 독립 선언문

"우리가 건설하는 지구적 사회 공간은 자연히 당신들이 우리에게 가하려는 독재로부터 독립 할 것이다. .. 우리가 만들어 갈 세상에서는 어디에 사는 누구든, 얼마나 특이한 신념을 지녔든, 침묵하거나 순응하라고 강요당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SNS에서는 아무런 악의가 없는 발언에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분노를 표출한다. 온라인 군중은 지배-도덕 게임을 한다. 지배-도덕 게임에서는 집단 안이든 밖이든 모든 사람에게 자기 집단의 규칙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온라인 군중은 사촌들의 무시무시한 권력을 등에 업고 맹렬하게 흥분한다. 

 

21세기의 SNS에서 벌어지는 부족 전쟁은 비록 현실이 아닌 온라인이지만 일탈자를 배척하는 방향으로 무섭게 합의가 이루어지는 정서, 그리고 소문이 퍼지고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고 수치심을 주는 과정에서도 그렇다. 혐의가 지극히 '국부적'이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템플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꿈에서는 그들의 표적이 어떤 규칙을 어겼는지가 명백해 보였다. 하지만 외부인의 눈에 템플러의 죄는 모호했다. 사촌들은 템플러를 배척하기로 합의했고 합세해서 템플러의 죄를 단죄하기 위해 공격했다. 모두 그들의 정의와 열망에서 비롯된 일이다.

 

온라인 군중은 희생자를 설득해서 자기네 쪽으로 포섭하려 하지 않는다. 희생자의 지위와 상징을 최대한 제거하려 하고, 가장 이상적인 목표로 평판을 죽이려 한다. 명성의 게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살인 방법이다. 말소의 궁극적인 표적은 그 당사자가 아니라 그의 신념이다.

 

포상에 끌린 야심 찬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가서 게임은 그 자체로 지배의 황홀경에 도취된, 공격하는 짐승이 된다.

 

군중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은 전체 사회에서 소수 집단 중에서도 소수라는 뜻이다. 하지만 SNS에서 이들의 우세한 목소리가 민주주의의 우세한 목소리가 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 진보 활동가들은 두려움을 전파하여 비대한 지위를 차지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이 퍼트리는 소문과 비난과 무자비한 분노는 사회 전체가 여기에 합의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사촌들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을 일깨우고 결국 우리를 협박하여 사회적 우리 안에 가둔다.

이렇게 군중 심리가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