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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위 게임 : 이념이라는 영토, 신념의 전쟁

18. 이념이라는 영토, 신념의 전쟁

타인의 믿음은 왜 '사악'한가

 

오늘날 모든 SNS 플랫폼은 웰의 뼈대 위에 구축된 것이다. 

웰의 기본 개념은 지극히 단순했다. 좋아하는 와인이나 음악 취향과 같은 임의의 주제로 연결되면서도 그런 연결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서로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다 '임의의 연관성'으로 모인 사람들이 지위 게임을 시작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은 온라인 포럼에서 "클럽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상과 전문 지식을 나누면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했다.

 

우리의 믿음과 반대로 믿는 사람을 만나면 몹시 불편해진다. 신경이 쓰이고 혐오감이 들고 지배하려는 상태로 넘어간다. 신념은 우리를 전쟁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모르는 누군가가 틀린 말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

인터넷에서 분노하는 행위야말로 그 어떤 무의미한 선택만도 못해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사적으로 반응할까?

 

사실 인생은 상징으로 이루어진 게임이고, 신념은 침략자의 깃발 못지않게 상징적일 수 있다.

 

우리는 지위 게임을 통해 현실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와 경쟁하는 다른 게임에 속한 사람을 만나면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와 충돌하는 규칙과 상징에 따라 산다면 우리의 규칙과 상징 -지위를 얻기 위한 기준- 은 무가치해지고 현실에 대한 우리의 꿈은 거짓이 된다. 우리가 평생 쌓아 온 가치관이 부정당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지위는 자원이고 그들이 우리에게서 소중한 자원을 빼앗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짐벨 교수가 참가자에게 각자의 정치적 신념이 틀렸다는 증거를 제시하자 그들의 뇌에서 "숲에서 곰을 만났을 때 나올 법한 반응과 상당히 유사한" 반응이 관찰되었다.

 

이럴 때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편하다. 이런 자리에서는 세상에 대한 환상에 생긴 상처를 광적인 대화로 어루만지고 서로에게 지위를 주는 말로 상처에 약을 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꿈이 위험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와 경쟁자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하고, 그 차이에 관해서 경쟁자들이 단순히 잘못된 자들이 아니라 사악한 자들이라고 말해주는 도덕적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비방도 허용된다. 그리고 적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정당화해주는 증거를 찾아내려 한다.

 

"그들이 어떤 실수를 하든, 그것이 정치와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 사회 계급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그들이 농구장에서 파울을 범하면 '부농의 정신 상태가 표출된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현실에 대한 병든 꿈이 계속되어 혐오를 지속시킬 때 우리는 언제든 혐오를 정당화할 새로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혐오를 더 정당화해주는 근거는 우리의 지위 게임이 상상의 행위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는 신념에서 나온다. 지위를 얻기 위한 우리의 기준이 현실이라면 모든 사람이 그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을 우리의 규칙으로 판단하는, 악의적이고 속물적인 습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인은 길에서 침을 뱉는 중국인을 경멸하고, 일본인은 코를 푸는 그 미국인을 경멸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중요하고 진실한 상상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끌어내리려 한다.

 

반론을 제기하면 우리는 터무니없을 만큼 강력한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우리의 주장에서는 터무니없을 만큼 약한 증거도 인정한다.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 상대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을 잠재운다.

 

우리는 도덕성을 명백한 선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선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따르는 도덕 규칙은 우리의 지위 게임, 곧 우리가 사는 꿈의 세계를 이루는 요소다.

 

현대는 폭력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신념의 전쟁을 벌인다. 인간에게 이념은 영토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로 전쟁을 벌이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유동적이고 창조적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정의해주는 것은 성별 이나 인종이나 국적과 같은 기본적인 표지가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게임이다.

 

우리는 씁쓸하게도 동족에게는 놀라운 수준으로 비폭력적이면서도 게임과 게임의 대결에서는 '유난히' 폭력적이다.

전쟁의 개념을 이념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싸움으로 확장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공격적인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이런 공격에서 우리는 남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그들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의 게임을 하고 우리의 꿈을 꾸도록 바꿔놓으려 한다.

 

그리고 모든 전향자에게는 도둑질이 선물로 바뀐다.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지위를 빼앗는 자에서 우리에게 지위를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누구나 신경계의 제국주의자로서 남들의 마음에 급습해서 우리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싸운다.

 

우리가 계속 전쟁을 벌이며 승리하려는 이유에 관해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집단을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기 때문"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우월성에 중점을 두는 경쟁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싶어 한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이기면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어도 단지 우리 집단이 승리한다는 사실 자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더 많이 얻기를 바라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경쟁자 사이에 커다란 승리의 격차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 집단의 구성원이 얼마나 가졌는지가 아니라 다른 집단의 구성원보다 얼마나 더 많이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지위를 요구하는 상대와는 함께 살수 없었다. 반드시 어느 한쪽이 이겨야 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인생 게임의 불가피하고 끔찍한 결과다. 이런 집단들은 '모두를 위한 공정'에 관해 환상적인 꿈을 만들지만 그 꿈은 거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