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창조하는 21세기 과학 원리
‘만들어진 것이든 태어난 것이든 생명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는 시스템’은 모두 비비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살아 있는 세포, 사람의 뇌 그리고 증권거래소, 이들은 과학적 주제로서 공통점이 없는 듯하지만 복잡성 과학의 이론가들은 적어도 두 가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첫째, 이들은 단순한 구성 요소가 수많은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복잡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이들은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구성 요소를 재조직하면서 능동적으로 적응한다. 예컨대 사람의 뇌는 끊임없이 신경세포의 회로망을 재구성하면서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환경에 적응한다.
복잡 적응계의 행동은 얼핏 보아 무질서해 보인다. 왜냐하면 구성 요소의 상호작용이 고도로 비선형적인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선형계에서는 초기 조건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화가 출력에서는 엄청나게 큰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한 현상의 하나가 혼돈chaos이다. 혼돈은 바다의 난류 또는 주식 가격의 난데없는 폭락처럼 불규칙적이며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복잡 적응계는 혼돈 대신에 질서를 형성해낸다. 혼돈과 질서의 균형을 잡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자연 세계와 사회 현상을 복잡 적응계로 간주할 수 있다.
복잡성 과학의 기본 전제는 복잡 적응계가 자발적으로 질서를 형성하는 이른바 자기 조직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조직화에 의해 단순한 구성 요소를 모아놓은 전체 구조에서 새로운 특성이나 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창발emergence이라 한다. 창발은 복잡성 과학의 기본 주제이다.
인공 생명은 ‘생명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행동을 보여주는 인공물의 연구’라고 정의
동물행동학에서는 곤충의 복잡한 행동이 나타나는 까닭은 한 행동의 결과가 다음 행동을 차례대로 유발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로 다른 단순 행동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복잡한 행동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창발적 행동이라 부른다. 요컨대 동물행동학의 기본 전제는 곤충의 창발적 행동이 의식적인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켈리는“어떤 기관이든 기업이든 공장이든 생물이든 경제든 로봇이든 중앙 통제식으로 설계될 경우 번영하기 힘들다.”
진짜 몸 안에서 하루 하루 자신의 힘으로 생존하는 로봇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공 지능 내지는 진짜 지능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브룩스 연구진들은 수백만 개의 모기 로봇이 민들레 꽃씨처럼 바람에 실려 화성에 착륙한 뒤에 메뚜기처럼 뜀박질하면서 여기저기로 퍼져나가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처럼 협동하여 우주를 탐사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모기 로봇의 집단으로부터 지능이 창발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능을 떼지능이라 불린다. 떼지능은 개미, 흰개미, 꿀벌 따위의 사회성 곤충에서 보편적으로 창발하는 집단 지능의 일종이다.
사람의 게놈은 2만여 개의 유전자로 구성된다. 이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게놈의 조절 체계에서 유전자의 활동이 제어되는 과정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카우프만은 게놈의 조절 체계를 비선형계로 상정하고 반혼돈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창안했다. 비선형계가, 무질서에서 자발적으로 질서가 형성되는 반혼돈 특성을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이다.
카우프만은 생물체의 진화는 자연 선택과 자기 조직화의 결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독창적 이론을 개진했다. 생물체가 갖고 있는 질서는 오로지 자연 선택의 결과라고 믿고 있는 생물학의 통념에 도전한 것이다.
카우프만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로 작용하는 자연 선택이 질서의 유일한 원천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자기 조직화가 자연선택보다 더 중요한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조직화에 의해 나타나는 자발적인 질서가 모든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질서 대부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카우프만은 생명은 자발적인 질서와 그 질서를 정교하게 하는 자연 선택의 상호 협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말하자면 생물체가 우연의 산물임과 동시에 질서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한 셈이다.
생명체와 같은 복잡 적응계는 혼돈의 가장자리로 진화한다. 카우프만은 구성 요소가 완전히 고정되거나 완전히 무질서한 행동을 할 경우에는 복잡 적응계에서 생명이 솟아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질서와 혼돈 사이에 완벽한 평형이 이루어지는 영역에서 생명의 복잡성이 비롯된다는 것이다.
1. 만들어진 것들과 태어난 것들
인간이 창조한 인공물의 세계가 극도로 복잡해짐에 따라, 그 세계를 다룰 방편을 찾기 위해 다시 생명체의 세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에서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오로지 생물 논리로만 가능하다.
생물학으로부터 생물 논리를 추출하고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다.
생물 논리가 기계로 도입되고 있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공학 논리가 생명체로 도입되고 있다.
생물 논리를 통째로 기계에 이식한다는 개념에 우리는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 사이의 결합이 완료되면, 그 구조물은 스스로 배우고, 적응하고, 치유하고, 진화해나갈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꿈조차 꾸어보지 못한 힘이다.
우리가 생명의 힘을 창조된 기계에 불어넣으면 우리는 기계들을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생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띠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이다.
2. 벌떼 마음
벌집에 사는 벌들의 무리 전체가 하나의 동물 같다는 개념은 최근에야 등장했다.
바보들의, 바보들에 의한, 바보들을 위한 투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자 분산 통치의 사례이다.
윌리엄 모턴 휠러는“벌떼 전체가 선택한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논문에서 곤충 군집은 단순히 하나의 생물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과학적인 의미에서 진짜로 하나의 생물이라 주장했다.
“하나의 세포나 한 사람처럼 곤충 군집은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서 행동한다. 공간 속에서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해체에 저항한다…. 하나의 물건이나 개념이 아니라 연속적인 흐름 내지는 과정이다.”
또 다른 지적 존재를 느꼈다.그것은 바로 고함치는 군중이었다.
수천 마리의 물고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짐승처럼 물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들은 한 몸처럼, 가차 없이 같은 운명에 속박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통일성은 어디에서 나올까?
배트맨리턴즈에 거대한 검은 박쥐떼가 날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각각의 박쥐들에게 스크린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되 알고리즘으로 설정된 몇 가지 단순한 규칙을 지키도록 한다. 다른 박쥐와 부딪치지 않기, 옆에 있는 박쥐들과 보조 맞추기, 혼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기 등. 그런 다음 이와 같은 알고리즘을 가진 박쥐들을 스크린 위에 풀어놓으면, 그들은 진짜 박쥐떼와 흡사하게 무리지어 행동했다.
생물학자들이 고속 촬영한 동물 무리의 영상을 다시 검토한 후 진짜 새나 물고기의 무리 짓기 행동 역시 단순한 규칙으로부터 창발한 것이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 한때는 이와 같은 무리 행동이 생명체가 지닌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레이놀즈의 알고리즘은 무리 짓기 행동이 생물이든 인공물이든 모든 종류의 분산 비비시스템에 적합한 적응 전략임을 입증했다.
이제 우리는 각각의 음에서 음악을 이끌어내는 것이 인간 뇌의 복잡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흐적 속성’–우리가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속을 침투해 들어오는 것- 은 각각의 음과 일반적인 정보로부터 어떻게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이 출현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시적 이미지이다.
개미 역시 집단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집단 마음의 경이로운 점은 아무도 통제권을 쥐고 있지 않는데도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전체를 통치한다는 사실이다.
벌을 백날 들여다보고 분석해도 거기에서 벌집을 찾아낼 수는 없다.
낮은 수준의 존재로부터 높은 수준의 복잡성을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시스템 안에 잠재되어 있는 창발적 구조를 알아내는 가장 빠르고, 짧고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은 직접 그 시스템을 운영해보는 것이다.
가장 불가해한 것들이 모든 종류의 마음에서 생성된다.
만일 뇌의 각 부분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면 기억은 어느 부분에 저장되어 있을까?
복잡한 마음은 업무를 어떤 식으로 배분할까?
뇌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업무를 배분한다.
지식이 우리의 뇌에 어떻게 분류되고 저장되는가 하는 문제는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공 지능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이제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의 영역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벌떼 마음의 기억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가장 먼저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기억이 재현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인지과학의 관점은 새로운 이미지에 좀 더 기대고 있다.
기억이란 뇌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 같지 않은 수많은 개별적인 작은 조각들을 그러모아 거기에서 창발되는 사건과 같다는 관점이다.
지금 내가 톡톡 튀는 유성의 모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이것은 기억의 테이프를 재생시킨 것은 아니다. 튀는 유성의 이미지가 나의 마음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경험을 재구성할 때 그것을 새롭게 조합해내는 것이다. 그 장면을 기억할 때마다 매번 각 부분을 다시 조합한다.
의식은 마음에 흩어져 있는 분산된 단서로 현재를 조립한다. 과거 역시 그런 방식으로 조립한다.
우리의 기억(그리고 우리의 벌떼 마음)은 그와 마찬가지로 흐릿흐릿 하고 무계획적이며 되는 대로 식으로 창조되었다.
내가 유성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그 사건을 기억할 때마다 실제로는 매번 완전히 서로 다른 경험을 하는 셈이다.
뭔가를 지각하는 행위와 뭔가를 기억하는 행위는 사실은 같은 것이다. 둘 다 수많은 분산된 조각들로부터 창발하는 전체를 조립하는 행위인 것이다.
심리학자 데이빋드 마르는 1970년대 초에 인간의 대뇌에 기억이 저장되는 방식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했다. 기억이 신경세포의 망 전체에 결쳐서 무작위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축약 분산 기억’알고리즘
축약 분산 네트워크에서 기억은 일종의 지각이다. 기억하는 행위와 지각하는 행위는 둘 다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존재 가능한 패턴 가운데 한 패턴을 검출해내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기억할 때, 우리는 처음의 지각 행위를 다시 창조해낸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원래의 패턴을 지각하는 데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절차를 통해 패턴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측면은 단순히 과거에 경험한 뭔가를 찾아내거나 재생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단서만 주었을 때 방대한 가능성의 집단 가운데에서 적절한 뭔가를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처럼 상당 부분 분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억은 지각의 재현이 되고 애초의 학습 행위와 구별하기 어렵다. 기억과 학습 모두 뒤죽박죽 복잡하게 상호 연결된 부분에서 창발하는 패턴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 있는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를 영속하게 하는 패턴이다.”
소용돌이는 창발적 현상이다. 마치 날아가는 새떼의 모양처럼 소용돌이의 힘과 구조는 하나의 물 분자의 힘과 구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온도는 분자들의 집단이 갖고 있는 집단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온도는 창발적 속성이지만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특성이다. 다시 말해 실제이다.
연결의 수준이 높아지고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군중의 동력이 힘을 얻는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우리가 우주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것들은 모두 두 극단 중 그물망 모형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생명의 그물망, 얽히고 설킨 경제 활동, 사회의 군중들, 우리 마음의 정글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분산된 존재만의 네 가지 뚜렷한 특징
l 중심적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l 각 하부 단위가 자율성을 띠고 있다.
l 하부 단위들은 고도로 연결되어 있다.
l 동등한 구성원들이 비선형적 인과 관계의 그물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스웜 시스템의 이점
적응할 수 있다.
진화할 수 있다.
회복력이 있다.
무한히 펼쳐진다 :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질서는 더 높은 수준의 질서 창조를 돕는다. 생명이 생명을 낳고, 부가 부를 창조하며, 정보가 정보를 생성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요람을 터뜨리고 나와 무한히 성장한다. 그 성장에서는 어떤 경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새롭다.
스웜 시스템의 단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스웜 시스템은 중복되어 있고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통제가 출현하여 비효율성을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선형 시스템만큼 깔끔하게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없다. : 권위를 가진 주체가 없다. 경제는 외부에서 통제할 수 없다.단지 내부에서 살짝 비틀고 변화를 줄 수 있을 뿐이다. 마음이 꿈을 꾸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단지 꾸므이 결실을 맛볼 수 있을 뿐이다. ‘창발’이라는 단어가 나타날 때마다 인간의 통제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예측할 수 없다. : 스웜 시스템의 복잡성은 시스템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창발적 새로움은 엄청난 재미를 준다.하지만 공항 관제 시스템에 나타나는 창발적 새로움은 국가 수준의 재난이다.
이해할 수 없다 : 특정 사건을 촉발한 원인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사건들은 그저 발생한다.
즉각적이지 않다.
우리는 인터넷의 뛰어난 유연성을 누리는 대가로 메시지가 다수의 경로로 전송되는 방식의 비효율성을 기꺼이 감수한다.
높은 통제력이 필요한 작업에서는 믿을 만한 기존의 시계 장치와 같은 방법을 택한다.
높은 적응성이 필요한 작업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스웜웨어가 정답이다.
스웜 논리는 변칙을 이해하고, 불규칙을 측정하며,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려고 시도한다. “형태가 없는 것들에 대한 형태학”
망(net)이라는 상징은 중심이 없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여러 개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속의 동물들의 무리 짓기의 복잡성에 어떤 면에서든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새로운 새들이 추가되어 과부하에 걸리는 일은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제 상품을 서비스처럼 다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 한다. 고객에게 무엇을 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무엇을 해주는지가 중요하다.
앨런케이는 개인이 소장한 책이 르네상스 시대에 개인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데 주된 역할을 했다면,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는 미래의 인간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합쳐져 영광스러운 네트워크 문화, 벌떼와 같은 놀라운 존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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