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플레이션은 자국 통화의 구매력이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한 나라에서 모든 물가가 계속 오르면 통화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전 국민을 덮친다.
한국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가 매년 2퍼센트씩 상승한다. 2퍼센트라는 수치만 보면 심각성이 느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년 이 추세로 물가가 상승하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실감할 수 있다. 100만원을 저축했다고 하자. 20년 후면 가치가 68만으로 떨어진다. 3퍼센트라고 가정하면 42만원 밖에 안 된다. 인플레이션은 지갑 속에 몰래 숨어 들어와 당신의 자산과 소득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
지난 2000년 동안 발생했던 인플레이션의 패턴은 동일하다. 그런데 최근 20년간 인플레이션의 패턴에 변화가 생겼다. 물가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 부동산 및 자산 가격도 동반 상승한 것이다.
나는 이책을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알아야 할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그다음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과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 부자들을 빈털터리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폐 가치를 조작하고 우리를 빈곤에 빠뜨린 장본인이 누구인지, 인플레이션을 조장한 범인이 누구인지 세계적인 석학들의 이론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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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불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제3제국을 건설한 인물이 바로 히틀러다.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소시민들의 삶을 황폐하게 하는지, ...
요즘은 5만 원을 들고 나가도 장바구니가 무겁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애써야 하는 고생에 비하면 지불하는 돈의 가치는 그에 결코 못 미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디플레이션임을 잊어선 안 된다.
케인즈는 여러 가지 새로운 학설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돈에 대한 착각'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내년도 물가상승률이 2퍼센트가 될 것을 예상한 기업이 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도 2퍼센트 올리기로 결정하여 통보한다. 그런데 근로자들의 누넹는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게 보이는데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임금이 올라간 만큼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그들은 노동시간을 늘린다. 늘어난 노동시간으로 인해 생산력은 높아지고 그만큼 경제는 더 성장한다.
돈에 대한 착각은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경제 현상이다. 필자의 경험칙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2퍼센트는 명목경제성장률 5퍼센트와 함께한다. 3퍼센트의 소득 증가인 것이다.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좋은 것이다.
경제와 금융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가와 돈이 가지는 몇 가지 속성을 잘 살펴야 한다. 첫째는 물건만큼이나 돈도 갚어치가 있다는 것이다. 물건의 가치와 돈의 가치는 반비례한다. 쉽게 말해 '물건 값 올랐네'와 '돈 가치 떨어졌네'는 사실상 같은 말인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올것이라고 기대되면 금값은 오른다. 인플레이션은 그 정의상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 금이라는 물건 값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물건 값에는 소비자 물건 값과 투자자 물건 값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소비자 물건 값은 소비자 물가이고, 투자자 물건 값은 주가나 부동산 가격 같은 자산 가격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물건 값이 서로 다르다고 착각한다. 소비자 물가는 내려가기를 바라고, 자산 가격은 올라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가격이 움직이지 않는다.
해당 물건의 본질가치가 정해져 있다고 본다면, 물건 값은 시중에 풀린 통화량으로 결정되는데,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즉 금리가 내려가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건 값은 올라간다. 소비자 물건이나 투자자 물건이나 마찬가지다. 자산 투자의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이다.
셋째는 돈이 몰리는 곳의 값이 더 올라간다. 돈이 풀리면(즉 돈 가치가 떨어지면) 물건 값은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소비자 물건 값과 투자자 물건 값 중 어느 것이 더 올라갈 것이냐는 돈의 쓰임을 봐야 한다. 돈의 쓰임은 두 가지다. 현재의 소비를 위해서 소비재를 사거나 미래의 소비를 위해서 투자 자산을 사는 데 쓰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당장의 소비냐 미래를 위한 투자냐, 이 두 가지 선택에서 고민한다. 소비자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돈이 투자자산으로 몰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세계 경제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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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운명을 지배해온 검은 숫자의 역사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에게는 지옥, 채무자에게는 천국이다."
돈의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많은 양의 화폐가 유통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독재주의든 민주주의든 간에 국가는 항상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화폐를 찍어낸다. 인플레이션은 날씨처럼 우리 생활의 일부인 셈이다.
전 세계 통화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융 역사상 전례 없이 많은 양의 화폐를 찍어내고 있다. 화폐의 대량 유입으로 주식 및 채권, 부동산, 기타 자산까지 폭등했다. 금융시스템과 유로를 구제하기 위한 처방은 일종의 마약과 같다. 이 마약을 끊었을 때 세계 금융시장이 차질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이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경제 이론에서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전략을 짜야 이러한 위기로부터 소중한 자산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줄 것이다.
1부 돈의 발명,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다
: 인플레이션이 좌우해온 부의 흥망사
인플레이션은 근래의 발명품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런데 왜 20세기 들어 갑작스럽게
세계 경제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걸까?
바로 지폐 때문이다.
"지폐의 탄생과 함께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장 인플레이션, 2000년 역사의 시작
01 화폐 파괴의 시작
돈이 녹는다
지난 수천 년간 매일 누군가 돈을 훼손시키고 있다면 어떨까?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지폐가 훼손되면 다시 찍으면 된다. 하지만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돈에 대한 지배권을 남용할수록 경제는 더 불안해진다. 그런데 수천 년이 넘도록 통치 계급들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죄를 저질러 왔다. 이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화폐발행량을 늘려 빚을 갚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형 건축물을 세우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화폐를 남용하여 재정을 충당하고 백성을 수탈했다. 결국 화폐의 가치는 떨어졌다. 권력은 황산보다 쉽게 돈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인플레이션 역사의 10가지 명제
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끝났다'는 말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화폐가 파괴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발생했던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다음 열 가지 명제로 정리할 수 있다.
1. 돈은 그 자체로 신뢰다.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화폐도 무너진다.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남용을 막는 것이 정치의 우선적 의무다.
2. 화폐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국가나 통치자가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과도한 채무가 생기면 국가나 통치자는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유혹은 언제나 존재한다. 돈과 통치자가 존재하는 한 인플레이션도 사라질 수 없다.
3. 인플레이션은 거대한 면도칼 위를 달리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대개 인플레이션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도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여 경제는 황폐해진다. 이것이 화폐 시스템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4. 20세기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초인플레이션이었고 대개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동기에 발생했다. 일종의 정치적 인플레이션인 셈이었다.
5. 경제학파들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다. 경제학파 내에서도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학파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고수하는 고전학파로 나뉜다. 케인스학파는 인플레이션이 생산력을 방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전학파는 돈은 실제 경제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두 학파의 주장이 모두 옳다.
6.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7. 2000년부터 '금융위기 발생과 통화 대량 투입' 주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통화량 급증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다음 위기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8. 인플레이션은 물가에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 인플레이션도 동시에 발생한다.
9. 인플레이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빈곤 계층이다. 인플레이션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세금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10. 지금까지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부채를 없애려고 해왔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종말이 예상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이 책은 위의 열 가지 명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먼저 역사적 사례를 통해 돈이 소각장 신세가 되어버린 이유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02 역사를 움직여온 종잇조각
돈, 쓰레기 소각장 신세가 되다
국가들의 화폐를 붕괴시킨 건 바로 인플레이션이었다.
화폐유통량은 인위적으로 늘릴 수 있다. 인위적으로 유통량을 늘리면 화폐로 측정되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은 상승한다. 일반인들은 모든 것의 물가가 오르는 경우를 인플레이션이라고 이해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이란 대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의미한다.
통화량 부풀리기는 가장 효과적으로 화폐를 붕괴시키고 나라 전체와 국민경제를 망치는 수단이다. 인플레이션은 모두를 파멸로 몰아 넣은 주범이었다.
좀벌레는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보이지가 않아서 잡기 어렵다. 빈털터리가 된 후에야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숫자의 위력을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하급수적 증가'에 잠재된 엄청난 파괴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온건한 인플레이션의 파괴력
인간은 기하급수적 변화를 인식하는 데 서투르다.
사람들은 대개 25세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40년 후쯤 퇴직을 한다. 40년 동안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2퍼센트라고 가정하면 구매력은 절반으로 감소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율을 4퍼센트라고 가정하면 어떨까? 구매력은 25퍼센트 수준으로 감소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노후 대비가 가능하겠는가? 온건한 인플레이션은 슬금슬금 다가오기 때문에 체감하기조차 어렵다.
지폐의 탄생
인플레이션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런데 왜 20세기에 들어 급작스럽게 세계 경제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걸까? 바로 지폐 때문이다.
종이를 돈으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숨겨져 있었다.
이전 화폐는 물건의 실질가치를 완전히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와는 달랐다. 종이에 명시된 가치가 언제 어디서나 보장되는, 놀라울 정도로 가치가 안정적인 형태의 화폐였다.
그러나 중국의 화폐도 순식간에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졌다. 지폐의 위력을 알아챈 국가가 은행권 발행을 독점한 것이 문제였다. 최초의 지폐 인플레이션이었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은 국가였다.
앞으로도 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물론 최악의 인플레이션은 지폐가 유발하는 인플레이션이다. 지폐는 별도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마음껏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03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정치 실패의 역사
돈이 지닌 가치의 파괴
최초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시기는 돈이 지불수단으로 도입된 직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돈이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돈이라는 물질 자체의 가치가 사라진 순간이다.
인류 최초의 동전은 2700년 전 리디아왕국에서 탄생했다. 동전 일렉트론은 금과 은의 혼합물인 일렉트룸으로 만들었는데, 이것 역시 희소성이 있고 금속으로 된 물질이었다. 금과 은은 희소성이 유지되는 한 앞으로 펼쳐질 수천 년 동안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될 것이었다.
모래나 조약돌은 지불수단이 되기에 부족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희소성이다.
희소성이 있고 가치 있는 물건들이 지불수단이 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됐다. 쉽게 말해 돈의 가치를 조작하거나 파괴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은 특히 지폐에서 많이 나타났다.
지불수단으로 유통되던 지폐에는 가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 가치는 불에 태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와 물건의 가치를 종이에 적고 이 종이에 적힌 만큼 물건을 내준다면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는다. 종이에 적힌 금액은 그만큼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정치인들이었다.
정치 하수인으로서의 돈
화폐 가치 하락의 역사는 정치 실패의 역사다. 항상 그랬듯이 돈은 정치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왕, 황제, 제후, 대통령, 수상,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화폐 조작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지폐에 적혀 있는 숫자는 어떤 상품에 대해 일정한 가치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물론 처음에 국가는 국민들에게 일정한 가치를 약속하는 지폐를 주고 국민들은 이 지폐에 적힌 가치만큼 상품을 구매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결론적으로 화폐 발행권을 갖고 있던 국가는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화폐에는 명시된 금액만큼의 가치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화폐 주조 비용이 공제된 금액이다. 이것을 화폐주조차익이라고 한다. 모든 시대의 통치자들은 더 많은 돈을 주머니에 챙기려고 이 방법으로 화폐의 가치를 조작했다.
다행히 국민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국민들은 화폐의 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고 돈이 정치적 이탈 행위에 약용되기 쉽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화폐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신뢰인 것이라고 해보자.
모든 사람들이 화폐를 신뢰해야 화폐는 제 기능을 한다. 차용증은 발행자의 상환 능력만큼 가치가 있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면 차용증은 가치가 없어진다. 이 경우에는 아무도 차용증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차용증이 있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지폐는 차용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발행자가 이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라는 것이다. 지폐에 명시된 가치는 그만큼 되돌려주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다. 지폐의 가치는 국민이 벌어들일 수 있는 GNP, 즉 화폐의 범위 안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통해서 보장된다.
당신이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내면 'GNP'라고 부르는 케이크의 큰 조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이때 당신은 이 돈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GNP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실적이 점점 떨어지면 이 돈으로는 재미를 볼 수 없다. 당신은 이 화폐를 기피하고 다른 화폐나 다른 지불수단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으려고 할 때 보여주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도 유사한 행동을 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방법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현대 화폐의 맹점이다. 국민들이 화폐가 제 기능을 하는지 신뢰할 때만 화폐의 가치는 유지된다. 화폐는 곧 신뢰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화폐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2장 돈의 파괴, 새로운 시대가 열리다
"전쟁, 약탈, 방화보다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죽음을 몰고 다닌다."
01 꿈틀거리는 인플레이션
위조지폐를 유포하는 정권
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으라는 지령. 이것이 이른바 '작전명 베른하르트'다.
경제 파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우요크스는 영국에 위조지폐를 대량 유통시켰다.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대대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국민은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화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상 최초의 화폐 가치 하락
금과 은이 아닌 값싼 재료로 만든 돈 자체가 인류의 역사에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파탄난 로마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먼저 그는 모든 재화에 최고가를 적용하고 최고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형에 처한다는 명문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대형 돌판에 새겼다. 다음올 그는 물가 상승을 법으로 억제시키려 했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이후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각국에서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돌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교훈은 최고가 규정을 도입한 국가에는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02 검은 죽음과 유럽 최초의 인플레이션
전쟁보다 무서운 '쉰더링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농노제와 봉건제가 해체되었다. 수많은 농부들이 죽어나간 나머지 대지주가 소유한 땅을 경작할 노동력이 점점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화폐의 가치는 흑사병과 함께 사라져갔다. 모든 영역의 물가가 하락하면서 고통이 시작되었다. 생산 제품의 잠재적 소비자가 흑사병으로 사망하여 재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때를 디플레이션 시기라고 말한다.
다행히 흑사병으로 인한 1차 쇼크가 잠잠해지는가 싶을 때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죽지만 동전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감하면서 상품생산량이 감소했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정부는 로마제국이 했던 것과 똑같은 정책을 실시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긴급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찍은 것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졌다. 흑사병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이다.
유럽의 통치자들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릴 방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통치자들은 혼자서도 재정난을 척척 해결했다. 15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리드리히 폰 슈타이어마르크와 알브레히트 폰 슈타이어마르크의 왕위 계승과 유산 상속을 둔 알력 다툼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알력 다툼에 필요한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조달했을까?
자금 조달을 위해 두 사람은 간단한 아이디어를 냈다. '뮌츠레갈(동전진열장)'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뮌츠레갈이란 한 통치자가 독점적으로 동전을 유통시키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착복할 수 있는 권한을 일컫는다. 단순한 동전 주조 수익과는 차이가 있다. 동전주조권보다 더 지능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들이 뮌츠레갈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을 동안 동전주조권을 소유한 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들 역시 통치자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동전의 은 함량을 줄이고 구리와 납 함량을 늘렸다. 이 화폐는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되었고 사람들은 이 화폐를 '쉰더링에'라고 불렀다.
쉰더링에는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었다. 쉰더링에 시대는 유럽 최초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시기다.
"동전에서 은을 모조리 빼버려라!"
당시 경제는 '귀금속 보유량이 많을수록 국가가 붕하다'고 보는 중상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금과 은이 있으면 군대를 정비하고, 교회와 성을 건축하고 장식하며, 상품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귀금속을 다량으로 유입하고 소유한 자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통치자들은 이런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다. 금과 은의 유통량이 증가하자 물가가 상승했고, 사람들은 온갖 이론을 동원하여 물가 상승의 원인을 밝혀내려 했다. 고려해야 할 대상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통화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논의 대상에 오르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개념에 익숙하지 않던 16세기 스페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나 국민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스페인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그 발생 원인이 쉰더링에의 경우와는 달랐다. 과잉 수요나 통화 상태의 악화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불수단인 화폐유통량이 과도하게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16세기말 스페인 국왕이자 포르투갈 국왕인 펠리페 3세는 무역을 강요했다. 왕국에는 금화 1억 두카트의 부채가 있었고, 향후 4년 치 국가 재정 수입까지 저당 잡혀 있는 상태였다. 펠리페 3세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말았다. 그는 시중에 유통되는 동전을 주조할 때 은을 아예 빼버렸다. 이렇게 빼돌린 은은 고스란히 그의 차지가 되었다. 새로 만드는 동전 중량을 맞추려면 구리 함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었고, 구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강제로 그것을 신화로 교환해야 했다.
그런데 펠리페 3세는 사소한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동전의 액면 가치가 동전을 만드는 재료와 동전을 주조하는 가치보다 높았던 것이다. 그 결과 해외에서 동전을 주조하여 스페인으로 수입하고 해외의 스페인 동전 소유자들을 통해 저질 동전을 양질의 금화와 은화로 교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스페인에는 저질 구리 동전이 넘쳐나는 반면, 양질의 금화와 은화는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 금화와 은화의 가치는 계속 올랐다.
전쟁이 양산한 저질 동전
17세기 초반 독일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전쟁준비자금이 부족해지자 통치 계급인 제후들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제국의 화폐주조규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주조하던 동전에서 은 함량을 줄이고 차익을 몰래 챙겼다. 시중에는 은 함량을 줄인 저질 동전이 넘쳐났고 은 수요가 증가하면서 은값이 올랐다. 은값이 동전 한 개의 가치보다 높아졌다. 사람들은 은 함량이 높은 동전을 녹여서 은 함량이 적은 동전을 새로 주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동전들이 주조되자 초기에는 경기가 좋아지는 가 했고, 그덕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저질 동전이 쏟아지면서 침체 국면으로 돌아섰다. 물가는 상승하고 노동자가 벌어들인 수입의 구매력은 감소했으며 은 함량을 줄인 '키퍼 동전'에 대한 불신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이는 신성로마제국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이었다.
지금까지 동전으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배 계급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저질 화폐를 만들고 화폐 주조 비용과 저질 화폐의 명목가치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자기 주머니에 챙겼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 발의 피였다. 동전이 아닌 지폐를 사용하면서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2부 누가, 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이용하는가?
: 화폐의 가치를 조작해온 검은 손
인플레이션이 만드는 희곡에서
재정 적자와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는 배우다.
국가는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폐를 발행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불안정한 통화 체제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엄벌한다.
"발버둥 쳐봤자 소용이 없다
재앙이 올 시기가 미뤄질 뿐이다."
3장 악마의 화폐체계
01 판도라의 상자
돈 한 푼 없이 돈을 버는 남자
국가에서 관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폐 역할을 했던 동전이나 상품화폐와 달리 지폐는 권위나 명성을 가진 사람이 지폐에 명시된 금액을 내줄 것이라는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만 가치가 있었다.
이런 돈을 명목화폐라고 하는데, 이러한 화폐는 누군가가 이것이 돈이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지폐를 받은 사람이 지폐의 가치를 신뢰해야 비로소 돈이 된다. 즉, 신뢰를 잃는 순간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700년대 프랑스에는 종이화폐의 발행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인플레이션의 대서사시를 쓴 주인공이 있었다. 돈 한 푼 없이 돈 버는 법을 발견한 사람,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재정가 존 로다.
그는 자신에게 금을 맡기는 고객들에게 영수증을 발행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수증은 일종의 화폐처럼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종이 영수증은 보관하고 휴대하기에 편리했다. 일정한 금액을 분할하여 여러장의 영수증으로 재발행할 수도 있었다.
존 로를 '지폐의 발명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만 그가 위험천만한 사기 수법을 많이 개발한 것만은 사실이다.
최초의 지폐발행 은행 설립, 거대한 붕괴의 서막
존 로는 대출과 통화량을 늘리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국가에서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15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빈털터리가 된 프랑스 국왕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자청했다.
제1막은 1716년에 존 로가 프랑스 국왕으로부터 은행 설립 허가를 받으며 시작되었다. 이 은행이 바로 최초의 지폐발행은행 뱅크 제너럴이다. 뱅크 제너럴은 고객에게 대출을 승인하고 예금을 받고 은행권을 발행했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자금 출자를 위해 정상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주식을 발행한 것인데, 다만 주식 지분의 일부는 국왕의 소유였다.
존 로는 일반은행에서 대출한 자금으로 국가의 부채를 상환했다. 국가 부채의 일부를 은행에서 인수하고 은행에서 발행한 은행권이 담보가 된 것이다. 은행에서는 시민들에게 언제든 이 은행권의 가치 만큼 은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꼼수였다.
사실 뱅크 제너럴은 그만큼의 자금력이 없었다. 은행권 전액을 은으로 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예금도 자본도 없었다. 하지만 존 로는 금 세공사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그는 은행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와 은으로 교환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않는다면 그만큼의 금액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은행권을 찍어낼 수 있다. 고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행권이 가치가 있다고 믿어주기만 하면 리스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금융 및 화폐 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편 프랑스 국왕은 시민들의 은행권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은행권으로 세금을 납부하게 했다.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은 프랑스의 합법적인 지불수단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은행권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부채도 순환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대 채무자였던 국가는 은행으로부터 은행권을 대출받고, 국민들에게는 이 은행권으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은행권을 확보했다. 그러고 나서 이 은행권으로 국가의 부채를 정리했다.
프랑스 국왕은 이 사업 모델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은행은 상당한 흑자를 냈다. 1718년 뱅크 제너럴은 뱅크 로얄(왕립은행)로 승격되는 동시에 국영화되었다. 국왕이 은행권의 가치를 보장하면서 드디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조폐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제2막은 1717년 존 로가 서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식민지의 자원을 개발하고 약탈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고 있었던 서인도회사는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자본을 축적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식을 발행했고 수익이 보장되는 주식이라며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를 권장했다.
사람들은 서로 주식을 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이 돈으로 국가의 부채를 지불할 수도 있고 지금껏 그렇게 해왔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국가의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차용증과 사실상 국가의 소유물을 착취하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맞바꿨다. 국가의 채권자들에게는 투자를 통해 돌려받기 바라는 금액이 있다. 서인도회사 주식에 명시되어 있듯이 식민지 투자에서 얻은 수익을 돌려달라고 청구 할 수 있었다.
국가와 서인도회사 간의 모종의 사업 진행 방식은 이랬다. 국가는 서인도회사에 식민지, 흡연자, 납세자를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팔고 서인도회사는 그 대가로 채무를 변제해주었다. 결국 국가는 향후 수입원을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회사에 팔아넘기고, 시민들이 이 주식을 사들인 꼴이었다. 물론 시민들은 로의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로 주식을 매수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벼락부자가 되는 하녀들, 1700년대의 폰지게임
제3막은 1719년에 막을 올렸다. 존 로가 재무장관이 되면서 서인도 회사와 은행이 합병됐다. 이렇게 탄생한 새 회사는 국가부채관리기관이 되었다. 이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의 돈과 주식을 끌어들였다. 국가의 부채를 이 회사에서 전부 떠안은 셈이다.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의 부채를 회사의 주식과 맞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주식을 무엇으로 사들였을까? 물론 존 로의 은행에서 열심히 찍어낸 돈으로 지불했다. 이 계획의 마지막 수순은 금과 은을 지불수단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었다. 국가의 부채는 주식과 지폐로 전환되면서 프랑스 경제는 원활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1720년부터 제4막이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현금거래에서 금리가 인하되면서 경제는 활성화됐지만 존 로의 체제 자체에서 이미 몰락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몰락의 첫 번째 신호는 은행권에서 나타났다. 금과 은, 값어치 있는 천연자원 등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 약속했던 식민지는 질퍽하고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야생의 불모지였다. 이런 곳에서 부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던 존 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대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어떻게 돌려준단 말인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여 그 수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폰지게임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존 로의 주식을 사겠다고 몸싸움을 벌였다. 주식 덕을 본 하녀들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일도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프랑스 시민들은 과열된 주식의 가치, 부를 가져다주지 않는 식민지의 실상, 은행권의 가치, 은행의 안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민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자 현금이 부족해진 중앙은행은 지폐를 발행하여 적자를 메웠다. 그러자 경기는 과열되고 물가는 상승했다. 물가뿐만 아니라 주가도 폭등했다. 거액을 잃은 프랑스인들은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존 로는 은행과 무역회사가 파산하자 베네치아로 도주했다.
존 로의 대서사를 겪고 난 프랑스는 1720년 10월 금과 은을 다시 지불수단으로 돌려놓았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 볼테르가 지적하듯 지폐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지폐의 내재가치는 제로에 가까웠다.
존 로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를 나라를 망쳐놓은 도박꾼이자 사기꾼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다양한 사상을 앞장서 실천했던 최초의 금융이론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존 로의 일부 사상은 이후 국민경제에 편입되었다. 존 로는 지폐를 발명하지는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금, 은, 동을 본위로 하는 화폐는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는 화폐였다. 반면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은 액면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지폐의 담보가치는 약속, 믿음, 평판, 희망뿐이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화폐를 '위험화폐'라고 한다.
02 뿌리칠 수 없는 유혹과 덫
스웨덴의 지폐실험
유럽은 존 로의 체제하에서 프랑스 경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참상을 목격한 터라, 이후 수백 년 동안 지폐 도입을 망설였다. 20세기까지 인플레이션은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었다. 인플레이션은 지폐를 잘못 사용했을 때, 특히 자금이 부족할 때, 대개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한해 발생했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유럽 최초로 지폐를 도입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스웨덴의 동전은 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거웠다. 당시 구리 동전과 지폐는 등가관계에 있었다. 그래서 스웨덴 제국은행은 별 무리 없이 은행권 지폐를 발행할 수 있었다.
1756년 발발한 7년 전쟁은 지폐 발행량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스웨덴 황실은 일부 산업에 보조금을 퍼주느라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던 차에, 지폐 발행량을 늘려 국가의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되지 않는가? 구리 동전의 가치는 명목가치보다 높아졌다. 아무도 지폐를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웨덴은 전면적인 지폐본위제를 실시했다. 이제 지폐는 구리, 금, 은으로 교환할 수 없었다. 밤낮으로 조폐기를 돌렸다. 앞서 존 로의 체제에서 일어났던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 화폐를 대량으로 투입하여 일시적인 경기 부양 효과는 누렸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내수 경제가 무너지고 말았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하자 집권 여당은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우해 1765년 화폐유통량을 줄였다. 지금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디플레이션 정책을 도입했다'고 표현한다. 원칙적으로는 옳은 방식이다. 그러나 통화량을 줄이면 대개 내수 경제가 붕괴된다. 1772년에 선출된 새 정부는 1765년에 이미 권력의 힘을 맛본 터라 정권을 잡은 이후 빠르게 유권자들의 입장을 잊었다. 같은 해 일어난 쿠데타로 스웨덴의 대의 민주주의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올라선 새 군주인 구스타프 3세는 은본위제의 은행권을 발행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스웨덴에서의 지폐 제도 실험은 끝이 났다.
미국 남북전쟁이 만든 인플레이션 209퍼센트
미국 매사추세츠 정부는 신용전표로 부채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용전표 유통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통에 시중에서 은화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누가 값어치 있는 은화를 장래성이 없는 신용전표로 교환하려 하겠는가? 인플레이션은 밑도 끝도 없이 치솟았다. 결국 이 실험도 은화제로 복귀되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의회는 세금을 징수할 능력이 없었고, 각 주는 국가 예산을 지원할 재정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용의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남은 방법은 전쟁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발행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지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할 것이다. 매년 약 10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시절 돈을 빌린 사람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100년도 채 안 되어 1816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면서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부와 북부 모두 경쟁하듯 지폐 발행을 남발한 것이다. 그 바람에 북부의 인플레이션율은 28퍼센트, 남부의 인플레이션은 209퍼센트로 또다시 치솟았다. 이래서 역사를 교훈 삼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많을수록 좋다는 그릇된 판단, 혁명화폐 '아시냐'
전쟁과 혁명만큼 화폐를 무너뜨리기에 좋은 구실은 없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후손은 물론이고 이들이 사용하는 화폐도 몰락했다. 힘없는 왕, 떠오르는 신흥 중산계층, 가난에 찌들고 굶주린 하류계층, 텅 빈 국고... 민중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라는 거의 통제 불능 상태였다. 집권당인 국민의회는 성난 민중으로부터 더 이상 세금을 거둬들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정치인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70년 전 존 로의 수법을 또 써먹은 것이었다. 결국 정부는 지폐 발행량을 늘렸다.
사실 지폐의 장점과 유혹은 어마어마했다. 재정이 바닥난 정부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존 로가 던진 덫에 빠졌을 때처럼 이번에도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그렇게 주장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첫째, 정부는 경제가 그 지경으로 파탄이 나는 것은 군주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민중이 이끄는 공화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장담했다. 둘째, 영어로 'TINA', 즉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폐를 발행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에도 대안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화폐발행량이 증가하여 화폐가 휴지 조각이 될까 봐 겁이 난 사람들은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국유화시킨 교회 재산을 재정 확보를 위해 발행한 혁명화폐인 아시냐의 담보로 삼았다. 국가에서 몰수한 재산 중 일부를 취득하려면 아시냐로 거래해야 했다. 물론 국가에서 발행한 아시냐를 먼저 사야했다. 이 방법으로 사람들은 말 그대로 몰수된 재산이 팔리기도 전에 현금화했다.
존 로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아시냐에도 다음 두 원칙이 적용됐다. 첫째, 소유물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했다는 점이다. 몰수한 교회 재산 한 건당 서류를 한 장 발행했고, 이것은 현금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몰수한 교회 재산의 가치가 지폐에 명시되는 금액보다 크다면 리스크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듯했다. 초창기에 아시냐를 가진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이자는 심지어 3퍼센트였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개발된 금융상품이 현재의 담보 대출이다.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영미권에서는 이런 현상을 '미끄러원 경사면 slippery slope'이라고 표현한다. 경사면에서 한번 미끄러지면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다. 아래로 미끄러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아시냐에 대한 수요는 점점 증가했다. 그러나 첫 번째 장벽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화폐발행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멈출 수가 있겠는가?
처음에는 아시냐 도입이 성공적인 듯했다. 생산이 증가하고 정부는 부채 상환 능력을 갖춰나갔으며 고용이 증대됐다. 화폐 발행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자 정부는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하면 경제적으로 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적당한 시기에 발행을 중단했다면 아시냐는 대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럽에서는 '많을수록 좋다'는 정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아시냐의 경우 '많을수록 좋다'는 그릇된 판단의 결과였다. 혁명 세력들은 정신없이 조폐기를 돌렸다. 삽시간에 아시냐의 실질 가치는 몰수된 교회 재산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만큼 떨어졌다. 아시냐를 발행한 지 불과 7년 만에 프랑스의 통화량은 20배나 증가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시민들은 아시냐로 거래하기를 거부했다. 더 많은 귀족의 재산을 몰수했지만 화폐의 명목가치는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진 상태였다.
아시냐에 대한 신뢰를 되찾으려면 아시냐 발행을 중단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결국 화폐 조판과 조폐기를 수많은 대중이 모인 축제에서 폐기했다. 집권계층은 지폐가 정상적으로 유통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뢰만으로 이 모든 사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조치는 갑작스런 화폐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역보족이었다. 그래서 집권계층은 '토지위임권'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었다. 토지위임권의 경우, 국가의 소유물을 경매를 거치지 않고 감정가로 매각할 수 있는 권리가 소유자에게 있었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소유물을 헐값으로 매각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인 토지위임권의 가치가 완벽하게 보장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토지위임권도 아시냐처럼 급속도로 가치가 하락했다. 이제 프랑스에는 지폐를 신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젠 놀랍지도 않다. 1790년과 1796년 사이 물가는 매년 157퍼센트씩 폭등했다. 드디어 유럽 역사상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03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인플레이션 게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친숙한 사건들
대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정해진 다음 수순을 따른다. 일단 정부는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가격 동결 조치를 시행한다. 그다음에는 원치 않는 화폐 인수 강요, 해외 귀금속 제조 금지, 금화 및 은화 거래 금지, 금은 및 재산 몰수와 같은 조치를 실시한다.
프랑스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재산을 해체하고 분배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혁명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민중의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혁명 후에 반혁명이 일어났다. 국민의 권한을 장악하던 독재자와 지폐가 사라지고 금속 화폐가 재등장했다. 1795년 화폐개혁이 단행되면서 등장한 프랑스의 새 금속 화폐의 이름은 '프랑'이었다.
1796년이 되자 아시냐 사용금지령이 내려졌다. 시민들이 움켜쥐고 있던 금속 동전으 차츰 경제순환의 사슬로 편입됐다. 나폴레옹 정복 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부를 쌓으며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화폐 시스템은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았다. 이는 나폴레옹의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 정부는 새로 발행한 지폐는 언제든 금속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정부는 지폐를 대량으로 발행했다. 지폐의 가치가 하락하자 정부는 지폐를 경화(금속으로 만든 화폐)로 교환하는 것을 그미했다. 그러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친숙한 사건들은 유럽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11세기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폐 발행, 예산 적자, 지폐 발행량 증가, 인플레이션의 순서로 진행되는 이 게임은 왕조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주연배우는 국가, 인플레이션이 만드는 5막 희곡의 세계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만성적 재정 악화에 시달리는 국가에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 유형도 거의 유사하다. 재미있게도 고전 희곡과 구성도 일치하여 총 5막으로 구성된다.
제1막에서는 배우들이 소개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희곡에서는 재정 적자와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가 배우인 셈이다. 국가는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폐를 발행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처음에는 토지, 건물, 귀금속, 세수, 식민지 혹은 기타 국가사업에서 얻은 수입으로 지폐의 가치가 정상적으로 보장된다. 지폐 도입이 성공한듯 보인다. 국가가 채무를 정리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덕분에 경제가 활성화되고, 생산과 복지는 증대된다.
제2막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국가는 경솔한 판단을 한다. 통화량을 늘리기에 바빠 통화의 실질가치와 명목가치가 일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동시에 국가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화폐발행량을 늘린다.
제3막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초반에 누리던 행복은 사라진다. 부채가 증가하고 정부에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발행량을 증가시키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 3종 세트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면서 경제 및 신용 위기로 이어진다. 화폐발행량이 증가하고 수입이 감소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다 보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다.
하강 국면에 돌입할 무렵 제4막이 시작된다. 정부는 재앙을 막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가격 동결을 선포하고, 시민들에게 '가치를 잃은' 화폐를 사용할 것을 강요하며 금은 거래를 금지하고 재산을 몰수한다. 이제 국민이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불안정한 통화 체제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엄벌에 처한다. 이렇게 해봤자 대개 소용이 없다. 재앙이 올 시기가 미뤄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5막에서는 경제가 붕괴한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가 무너지면서 정부는 고통스런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아보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대개 이런 것들은 높은 경제 비용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경제 회생 조치를 감행한다.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을 감수해야 하며 도중에 중단될 위험도 있다 이런 정책을 도입해봤자 경기 부양 효과는 별로 없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 동안 유사한 일이 너무 자주, 많이, 빠르게 반복되어 왔다.
혹시 당신은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은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 광기를 제대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오신걸 환영한다.
4장 20세기, 초인플레이션의 광기가 시작되다
인플레이션의 소꿉놀이는 이제 끝났다.
20세기에 들어서면 광기를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
일 인플레이션율 207퍼센트,
월 인플레이션율 3억 1300만 퍼센트,
"초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오신걸 환영한다."
01 초인플레이션 시대가 열리다
연 인플레이션 720퍼센트, 베네수엘라의 비극
19세기까지는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다가도 어느 정도에 이르면 멈췄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플레이션율 상승은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화폐 가치는 밑도 끝도 없이 추락했따.
화폐는 오랫동안 광기의 역사를 지속해왔다. 베네수엘라의 금융위기는 그중 가장 최근의 사건일 뿐이다.
대체 초인플레이션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매달 5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경우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한계값 5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초인플레이션은 1년 이상 지속되지는 않는다.
20세기 최초의 초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재정난,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의 재정난이다. 그러나 초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는 다르다. 물론 약한 정부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 국가가 불안정하고 정치인들이 무능하면 전후사정을 살피지 않고 화폐발행량을 늘리기 때문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전쟁배상금 지불 판결을 받았는데, 이 전쟁배상금이 1920년대 독일에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한마디로 전쟁배상금이 사실상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독일은 대량으로 화폐를 찍어댔지만 재정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리하여 5800여개 도시, 지역,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비상화폐를 찍어 시장에 유통시켰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했기 때문에 임금은 하루 단위로 지불됐고 노동자의 아내들은 수레를 가지고 와서 지폐 더미를 실어 날랐다.
이러한 경제적 재앙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의 과잉 부채와 무분별한 지폐 발행에 있었다. 독일 경제학자들은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독일은 수출을 늘려야 했고, 수출을 증가시키려면 마르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중산층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상점은 화폐를 받지 않고 물물거래를 했다. 이것은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하는 산업화 된 국민경제체제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이 틈을 타 돈을 번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가물(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소유한 자가 곧 왕이었다. 유가물은 해외로 반출되었고 약삭빠른 투기꾼들은 대출받은 돈(몇 달 후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므로)으로 재산과 지배권을 얻었다.
얼핏 보면 독일 정부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화폐를 마구 찍어 부채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정부가 정말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면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플레이션은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과세다.
02 미친듯이 날뛰는 숫자들
1일 인플레이션율 207퍼센트, 월 인플레이션율 3억 1300만 퍼센트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에서 1984년까지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잠잠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초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너무 잘 안다. 빚더미에 쌓인 국가와 무분별한 화폐 발행이 주 원인이었다. 이 두 가지 사실 외에 그동안 발생했던 초인플레이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초인플레이션을 해부하다
첫 번째 공통점은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변기에 발생했다.
정치적 변혁기는 대개 불안정하고 국가의 통제 기능이 제한적이다. 조세 수입은 물론이고 다른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국가는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린다. 자금 압박이 심하기 때문에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 방법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반발이 적고 유일한 해결 방안일 때도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향후에도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율은 마지노선을 넘으면 가속이 붙어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다. 화폐가치가 추락하기 시작하면 멈출 방법이 없다.
세 번째 공통점은 인플레이션과 통화량은 같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통화량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화폐유통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관관계는 살짝 더 복잡하다. 화폐량과 화폐의 액면가치가 증가하면 구매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은 증가하지만 은행권의 명목가치에 비해 구매력이 극도로 낮다. 그만큼 물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 이런 상황까지 상상할 수 있다. 화폐를 더 많이 찍어내도 물가가 화폐발행량보다 빨리 상승하므로 화폐가 부족해진다. 화폐량이 2배 증가했는데 물가가 4배 상승한다면, 구매력의 관점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돈은 더 적어지는 셈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가격 변동 추이가 반영된 실질 통화량이 감소했다"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100만 마르크 지폐 한 장으로 단독주택 한 채 대신 치즈 크래커 하나밖에 못산다는 얘기다.
03 어떻게 혼란을 잠재울 것인가
물가 상승의 원리
물가는 어떻게 상승할까? 구매력의 관점으로 볼 때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적을수록 화폐 소유주는 자주 바뀐다. 전문 용어 중 '화폐의 유통 속도'라는 표현이 있다. 화폐의 주인이 자주 바뀔수록 그 화폐는 빨리 처리하고 싶은 골칫덩어리다.
국민경제와 관련된 지표를 기준으로 보아도 고인플레이션인 경우에는 GNP, 소비, 투자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고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에 해가 된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화폐 제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희생시켰다.
어디 그뿐인가.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대개 빚을 내서 소비를 한다. 이 빚을 어디서 마련했을까? 주로 화폐발행량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초인플레이션은 국가의 예산 적자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세금 수입의 실질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고인플레이션은 한 나라의 자본시장을 교란시킨다. 인플레이션율이 높고 예측 불가한 금융시장일수록 사업을 하거나 장기 계약을 성사시키거나 투자하기가 어렵다. 장기적으로 국민의 복지는 침해당하며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외투자자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역 파트너들도 사업을 철수한다. 경제활동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장기 계약도 끊긴다. 계약에 물가를 연동시켜 지수화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면 임대료가 저절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수화한 계약은 합리적인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면 임대료, 임금은 저절로 인상된다. 그 결과 물가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율도 상승한다. 인플레이션이 계속 반복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셈이다.
어떻게 해야 이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 답을 찾았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더 나쁜 것으로 나쁜 것을 쫓아내는 격이 되고 말았다.
야수를 잠재우는 법
독일 화폐개혁은 종종 '렌텐마르크의 기적'이라고 불린다. 신화폐인 렌텐마르크가 도입되자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이 멈췄기 때문이다.독일인들은 1조 마르크당 렌텐마르크 1장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독일인들이 렌텐마르크를 받아들였다는 자체가 기적이다. 사람들은 렌텐마르크가 독일의 토지와 땅을 담보로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부동산이 새로 발행하는 화폐인 렌텐마르크의 담보였던 셈이다. 화폐로서 가치를 상실한 마르크화에 대한 렌텐마르크의 환율은 1대 1조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렌텐마르크를 도입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진 것이다.
라이히스마르크를 발행하는 라이히스방크는 정부가 지폐발행권을 남발하여 과도한 채무를 해결하는 것을 금했다. 이는 렌텐마르크가 이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다. 여기에는 '무분별한 화폐 발행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폐 발행을 중단한다'는 아주 단순한 공식이 적용됐다. 당시 기록을 보면 초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중단된 듯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화폐 발행 중단을 계기로 국가가 그동안의 잘못된 지출 행위를 수정하고, 신규 채무량을 감소시키고, 금융 질서가 재편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을 때 화폐발행량을 늘려 빚을 해결해온 시간들을 국가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국가에서 새로운 정책을 더 많이 시행할수록, 정치인들이 기념행사에서 제도 혹은 구조 개혁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할수록, 화폐의 광기를 막을 가능성이 높다.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돈은 정치와 관련된 돈이다. 돈의 가치는 돈을 발행하는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책이 잘못되면 돈이 가치를 잃는다.
화폐개혁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아무리 강렬하다고 해도 한 가지가 빠지면 소용이 없다. 바로 신뢰다. 역사학자들의 표현을 빌면, 독일인들은 경제적 대혼란이 지나가고 경제 질서가 잡히며 렌텐마르크가 안정되기를 바랐다.
렌텐마르크 비판론자들은 1923년 프랑스에서 아시냐와 후속 통화인 토지위임권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쨌든 렌텐마르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독일 국민들이 렌텐마르크를 신뢰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신뢰가 있어야 힘을 얻는다.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과 의지가 강할수록 국민의 신뢰는 커진다. 국민의 신뢰가 클수록 새로운 통화는 제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신뢰가 다시 국민에게 힘을 실어준다.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방향을 틀어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진정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20세기의 두 번째 경제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가 복구되자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 물론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행운이 찾아왔다고 기뻐할 새도 없이 세상은 단순해지기는커녕 더 복잡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30년 만에 더 끔찍한 악몽이 되어 인플레이션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초대형 인플레이션이었다.
5장 예고된 재앙, 초대형 인플레이션
고전경제학파에서는 장기적으로 경제 위기는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돈은 실물경제를 감싸고 있는 베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케인스학파에서는 수요 부족이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은 실업률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전 세계에서 케인스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을 선호했다.
인플레이션율을 높여 고용을 증대시키는 금융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01 하루 아침에 세계의 운명이 바뀌다
"하룻밤 사이에 체리가 익었다!"
1948년 2월부터 4월 사이에는 약 2만 3000개 상자가 하역됐다. 운반된 상자 속에는 총 60억 마르크에 달하는 지폐가 들어 있었다. 이 거금은 신생 국가 독일연방공화국의 건국 자금이었다.
1948년 6월 20일, 드디어 화폐개혁이 개시됐다. 명목가치 57억 도이치마르크, 총 중량 500톤 상당의 은행권 지폐가 시중에 투입되어 시민들의 지갑 속으로 들어갔다.
식량배급표를 제시하고 40라이히스마르크를 새로운 화폐 도이치마르크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예금액이 있는 경우 라이히스마르크대 도이치마르크를 10대 1의 비율로 교환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시중에 유통되던 구 화폐 라이히스마르크의 94퍼센트가 회수됐다. 현금 자산 중 예금액은 6.5퍼센트만 남았다.
패전국으로 가난에 시달리던 독일은 도이치마르크로의 화폐개혁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경제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상점의 진열대에 물건이 다시 채워졌고 비로소 돈을 주고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드디어 물물교환의 시대가 끝이 났다.
독일 경제의 황금기
도이치마르크가 자리를 잡은 덕분에 독일 경제에 기적의 초석이 다져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20년도 채 안 되어 독일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독일의 경제모델은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었다. 도이치마르크는 모든 통화의 가치를 병가하는 잣대인 기축통화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상황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물가와 실업률은 상승했지만 임금은 그대로였다. 국민들의 불만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다. 1948년에는 통화개혁과 에르하르트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일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액 예금자가 대부분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액 예금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노조에서는 에르하르트를 두고 '경제 독재자'라며 맹렬히 비판했지만 그는 끈질기게 버텼다 임금동결 조치가 총파업 이전에 철폐된 덕분에 1949년 봄이 되자 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도이치마르크가 평가절하되면서 수출 경기는 호황을 이뤘다.
195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 기적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어우러져 나타난 성과였다. 마셜 플랜, 자유 무역 붐, 탄력적인 노동 공급, 독일 경제의 높은 생산성, 시장경제의 충격요법 등의 흐름을 타고 상승효과가 일었고 1950년대 중반에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투자재 및 생산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코리아붐' 덕울 톡톡히 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일 경제에 평화의 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세계 경제의 새로운 도전이 잔잔한 평화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02 세기의 경제 사상가들
고전경제학에 대한 반박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케인스만큼 명쾌한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케인스가 등장하기 전에는 고전경제학이 경제 이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고전경제학에서는 경제 위기가 원천적으로 불가하다고 본다. 고전경제학파들이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것이 '세의 법칙'이다. 세의 법칙에서는 '공급은 수요를 스스로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장기적으로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으로는 폐쇄된 순환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세의 법칙대로라면 공급된 제품의 가치와 수입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이때 생산과 수입은 항상 대응관계에 있으며, 생산된 제품을 살 수 있을 만큼 유지된다. 이때 생산과 수입은 항상 대응관계에 있으며, 생산된 제품을 살 수 있을 만큼 유지된다. 이 관점에서는 수요가 줄어들고 고용이 감소하여 생기는 불황은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로 삐걱거리는 현상이 나타나도 임금과 가격이 탄력적이기 때문에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의 법칙이 지배하는 체계에서는 수요가 사라질 수 없다. 국민의 저축이 증가할수록 소비 수요는 감소한다. 한편 이율이 감소하면 투자가 촉진되기 때문에 결국 투자재에 대한 수요가 다시 증가하는 셈이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학자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그는 1929년 세계대공황을 겪으면서 경제 위기는 원천적으로 불가하다는 세의 법칙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고전경제학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소비자가 수입을 전부 지출하지 않거나 이자 수익을 얻기 위해 은행에 저축하는 일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돈을 그냥 움켜쥐고 아예 지출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기존의 생산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생산자가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생산량을 줄인다고 하자. 결국 수요 부족으로 인해 실업이 발생한다. 케인스의 진단이 옳다면 경제정책으로 금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민간 수요가 감소하여 경기가 침체되면 국가가 개입하여 빚으로 지출을 늘리고 부족한 수요를 채워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경기를 급상승시킨법
1950년대만 해도 독일 정부는 소유권, 자극, 자유시장, 경쟁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표방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케인스의 처방에 따라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경기를 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독일 경제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이에 슈트라우스와 실러는 수요 부족이 원인이라며 국가에서 경제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스식 처방을 내리면서 두 가지 경기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공공지출을 늘려 부족한 수요를 메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1967년에 '경제안정 및 성장촉진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 법에는 국가는 경기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인 책무를 갖는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케인스식 통제 정책을 공적으로 허용한 셈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국가의 경제통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1967년에 벌써 경기 회복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실업률이 감소하고, 1968년이 되자 독일 경제는 다시 7퍼센트 이상 상승했다.
회의론자들은 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독일 경제는 이미 회복세로 돌아선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강력한 법이라고 해도 제정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거대하고 육중한 유조선과 같은 한 나라 국민경제의 방향을 돌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필립스곡선의 거북한 메커니즘
독일의 경제정책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독일뿐만이 아니었다. 1960년대 영미권 국가에서는 케인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정책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대담한 실험정신으로 성공을 꿈꾸고 컴퓨터 신기술을 이용해 거대한 국민경제 모델을 제시하며 경제정책을 경영 문제로 강등시켰다.
케인스주의를 지지했던 국민경제는 거대한 엔진이나 다름없었다. 경제학자들은 엔지니어가 기계를 고치듯 경기침체와 경제 위기를 다루려 했다. 이러한 사고를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로 표현한 것이 바로 '필립스곡선'이다. 필립스곡선에 의하면, 경제가 활성화되면 고용이 증가하고 수요가 부족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그런데 필립스곡선에서 주장하는 내용 중 상당히 거북한 메커니즘이 있다.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의 수입은 증가하지만 임금의 구매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필립스 곡선의 논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가가 상승하고 기업의 이윤이 증가해도 임금은 인상되지 않는다. 근로자들은 실질 임금이 감소한다는 사실, 즉 자신들이 받는 임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더 적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고 실업률이 떨어진다.
필립스곡선에서 강조했던 인플레이션과 고용의 상관관계는 심심찮게 왜곡되곤 했는데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수상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였다. "실업률 5퍼센트보다는 인플레이션 5퍼센트가 낫다."
필립스곡선은 정치인들에게 '고용을 증가시키려면 인플레이션을 높여야 한다'는 잘못된 환상을 심어줬다.
1960년대 세계 경제정책을 지배했던 저신을 한 문자으로 요약해보라고 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다. '경제 이론은 전지전능해 보이는 신무기를 공급하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맞바꾸려고 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는 경제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 유용성만 따지던 시절이었다. 정치적 이용 가치만 좇다 보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왔다. 초대형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03 석유 파동과 스태그플레이션
70년대를 떠도는 인플레이션 유령
1970년대는 경제적으로도 격동의 시대, 현대 경제사의 침체기였다. 1950년대에는 제한적으로, 1960년대에는 대체로 안정적인 성장률과 온건한 인플레이션을 보였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자 우려할 만한 상황이 터지고 말았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성장이 멎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상승가도를 달려온 경제에 제동이 걸리며 1990년대 후반까지 이 흐름이 이어졌다.
1970년대를 총결산하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고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플레이션은 잠시 진정되는 듯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OECD 국가에 또다시 인플레이션의 유령이 떠돌기 시작했다. 고인플레이션과 고실업이라는 위험한 조합이 등장하며 스태그플레이셔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필립스곡선을 퇴출시킨 주범
스태그플레이션은 전 세계 정치인들과 경제이론가들이 자초한 일이다. 필립스곡선이 말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이 버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중 하나를 선택해ㅑ 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고통이 시작됐다. 결국 필립스곡선은 경제서가의 서랍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0년대 경제를 뒤흔든 핵심 축은 원유 가격이었다.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들에서 경기가 과열되고 수용가 급증하고 생산능력은 한계에 달하며 인플레이셔니 상승했다. 1970년대에 인플레이션은 그동안 숨겨놓았던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하게도 생산량이 증가하는데 인플레이션은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선진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주원료 중 하나가 원유였는데, 원료비가 상승하면서 물가도 함께 상승했던 것이다.
6년 후인 1979년에는 제2차 석유파동이 터졌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불었던 바람이 경제계에 휘몰아쳤다. 인플레이션과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1960년대 미국은 무모하게 베트남 전쟁을 벌이느라 빚더미에 앉았다. 독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일은 '경제 위기가 터졌을 때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처방한 케인스주의에 입각해서 지출 위주 정책을 추진해왔다.
실업률이 증가하면 국가의 재정 지출을 늘려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실업 문제를 해결한다는 필립스곡선 이론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국가에서 지출을 늘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지출 위주의 경제정책도 그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그 이유를 밝혀낸 자가 있었으니, 시카고의 작은 거인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04 금융정책이 주도한 세계 경제의 안정기
필립스곡선에 반기를 든 두 남자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와 쌍벽을 이루는 위대한 사상가였다. 케인스주의자들이 국가의 지출 정책과 경기 부양책을 강조한 반면, 신자유주의자인 밀턴 프리먼은 더 작은 국가, 더 많은 자유, 국민들의 더 많은 결정을 부르짖었다.
프리먼은 필립스곡선의 핵심 이론을 강력히 반박했다. 케인스주의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 필립스곡선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고용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노동자는 임금의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낮아지므로 기업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감소하고, 실질 임금이 감소하여 고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노동자가 자신의 실질 임금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처음에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필립스곡선 이론을 반박했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임금 인상 요구로 인건비가 상승하면 기업의 인력 고용 의향이 감소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래의 고용 효과는 사라진다. 이렇게 필립스 곡선에서 말했던 고용 효과는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프리드먼은 중기적으로 필립스곡선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95년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가 등장하면서 필립스곡선에 대한 비판이 더 심해졌다. 루카스는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면 실업률도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프리드먼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완성시켰다. 프리드먼은 일시적으로 고용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본 반면, 루카스는 노동자들이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고용이 증대하는 효과는 없어진다고 보았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했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임금과 실업률만 증가한다. 실질 임금이 증가하므로 고용이 감소하는 것이다. 잘못된 예측이 한 나라를 경기침체로 몰고 갈 수 있음을 통찰한 루카스의 주장은 탁월하다.
1970년대에는 스태그플레이션,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이 나타나고 국가의 경기 개입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며 각국은 빚더미에 쌓이기 시작했다. 경제와 정치에 관한 사고가 전환되고 새로운 원칙이 절실히 필요했다. 초대형 인플레이션의 폭풍이 지나고 세계경제는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경제 안정기의 원인
1980년대 중반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의 거시경제는 잠잠해졌다. 인플레이션은 후퇴하고 성장률은 호조세를 보였다.세계 경제가 드디어 잔잔한 항로에 진입한 이 시기를 대 안정기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대 안정기로 접어든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한다. 선진국의 GNP에서 서비스 영역 비중 증가로 인한 경기 안정, 정보기술의 발달, 재고 관리 주기 감소, 공급 상황 개선 위주의 정책 증가 등을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1980년대 공급 경제학을 바탕으로 한 보수주의 정책을 레이거노믹스 혹은 대처리즘이라고 하며, 각국은 감세정책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자기책임과 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 안정기의 핵심은 금융정책이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1970년대의 쓰라린 경험과 케인스주의,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된 필립스곡선 이론에 대한 비판을 교훈으로 삼으며 안정적인 금융정책으로 방향을 돌렸다.
프리드먼과 루카스가 옳다면 중앙은행의 지휘봉은 국민이 잡고 국민의 결정이 반영되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금융정책의 효과가 약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필립스곡선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고용을 증대시킨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측이 잘못되면 최악의 경우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다. 금융정책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의 기대를 안정화시키고, 가계에 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이 원칙을 지키며 신뢰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변화 대신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중앙은행들이 1980년대에 금융정책 원칙을 세웠다. 중앙은행은 정해진 비율로만 통화량을 증가시킨다는 원칙을 지키며 금융정책이 난관에 봉착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각국은 자기희생(게임이론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는 의미)을 정책의 기조로 삼으며, 거침없는 스톱 앤드 고 정책(국제수지가 악화되면 긴축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 경기가 호전되면 긴축조치를 철폐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방법,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이 정책을 반복 실시했다)을 추진하는 대신, 국민이 중앙은행을 완전히 신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치중해왔다.
이러한 기대치 관리는 계획에 따른 안정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대 안정기 금융정책에는 루카스의 사상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 결과물이 인플레이션율의 고삐를 당겨 쥐고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앙은행의 정책이다. 그러나 금융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업 퇴치에 기여해야 한다. 특히 성격이 다른 두 문제에는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하는 경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금융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시켜야 할 경우에는, '하녀 한 명이 두 명의 주인을 모실 수 없다'는 틴버겐의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즉, 정책 목표의 수만큼 정책 수단이 존재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사상이 담겨 있을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전 세계가 경제적 안정기를 누릴 수 있었던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금융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중앙은행의 공식 보도를 들으면 금융정책이 마치 기적의 방패라도 되는 듯, 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주인을 모셔야 하는 듯한 인상이 든다. 금융정책이 기적의 방패가 될 수 있을까?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3부 무엇이 자본주의의 판도를 움직이는가?
:금융 위기 시대 인플레이션이 결정하는 부의 기회
6장 다시 찾아온 금융 위기
인플레이션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양적완화 정책은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인 해결 방안응로 보기 엉렵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은 형형색색의 종이 위에
'돈'이라는 것을 찍어내기에 바쁘다.
"여기에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엄청난 괴물 말이다!"
01 금융 위기의 예고편
위기의 10년
그날에는 알아채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는 사건이 있다. 2016년 6월 14일이 바로 그런 날이다. 독일 사상 최초로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마디로 독일에 돈을 빌려주면 손해를 본다는 뜻이었다.
이날의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년 전 이 무렵, 독일의 국채 수익률을 마이너스 국면으로 접어들게 한 사건이 있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러한 조짐이 나타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인플레이션률과 성장률이 전반적으로 안정세가 보였던 90년대 초반 대 안정기 무렵인 것으로 짐작된다. 대 안정기는 경제적으로 평온한 시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00년대 광풍처럼 휘몰아 닥칠 위기의 예고편이었을 뿐이다.
금융 위기는 시장에 화폐가 과잉 공급된 탓이었다. 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금융정책을 평가하는 주요 공식 중 하나를 살펴봐야 한다. 경제에 화폐가 과잉 공급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질문에 답을 주는 공식이 바로 '피셔의 방정식'이다.
화폐가 담긴 양팔저울과 피셔의 방정식
화폐 수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화폐의 유통 속도가 감소하면 화폐가 담긴 접시가 다시 가벼워질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다른 쪽 접시에 담긴 재화량이 증가한다.
양팔저울 개념에 따라 계산한 결과는 양팔저울 대신 등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등식이 거시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공식 중 하나인 피셔의 교환 방정식(일정한 기간에 거래된 돈으이 총액은 그동안 지급된 돈으이 총량과 같다는 내용의 방정식)이다.
가령 25유로짜리 와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 공식에 따르면 좌변이 '25유로 x 2 = 50'이고 우변이 '10병 x 단가 5유로 = 50'이면 좌변과 우변의 값이 일치한다. 이렇게 방정식과 좌변과 우변이 일치하면 양팔저울은 평형을 이루고 이 국가의 통화 시스템은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방정식의 한 변에 변화가 나타나면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이 방정식을 통해 화폐량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교환방정식의 계산 결과로 평가하면 지난 10년은 위기의 시대였다.
교환 방정식의 의문점
이처럼 고전적 화폐수량설에서는 통화량이 지나치게 많고 재화가 적은 경우를 간단한 공식으로 설명했다. 화폐가 담긴 양팔저울의 왼쪽 접시가 무거워지면 저울이 왼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경제는 평형을 잃고, 유통 속도가 변하지 않고 재화의 수량이 증가하지 않으면 물가는 반드시 상승한다고 보았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의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화량이 증가한다고 해도 물가가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생산과 고용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화가 담긴 오른쪽 접시가 생산량 증대로 인해 무거워지면 통화량이 증가해도 균형이 유지된다. 이는 화폐를 많이 발행한 결과 물가가 상승한 것이 아니라, 생산, 고용, 복지가 증대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제적으로는 최적의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두고 케인스주의자들과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통화주의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여기서 잠시 케인스 학파의 이론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케인스주의자들은 통화량이 증가하면 생산이 증대된다고 보았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국민들의 수중에 더 많은 돈이 쥐어진다. 그러면 국민들은 이 돈을 은행에 맡길 것이고 이 자금으로 기업에 더 많은 사업 자금을 대출해줄 수 있다. 대출이자가 인하되면 투자 활동이 촉진되면서 경기는 활기를 띤다.
대체 어느 편의 주장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양측 주장이 모두 옳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국민경제의 생산능력이 고갈되지 않는 한 여유 생산능력이 있다. 따라서 화폐량이 증가하고 금리가 감소하면 투자가 촉진되므로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생산자들은 왜 물가를 인상시키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는 생산자들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요가 증가하면 물건이 많이 팔려서 창고가 가벼워지니까 바로 대출을 받아 모험을 걸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도 되지 않을까? 돈이 풀리면서 투자가 촉진되었으나 이 투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유로 위기가 스페인의 금융 위기로 번지면서 생긴 쓰라린 경험을 기억해보자.
밀턴 프리먼은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만 상승시킨다고 했다. 충분히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이론에서 한 가지 오류가 발견됐다. 인플레이션이 예상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통화량ㅇ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1990년대에 미국의 통화량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도 없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화폐수량설의 어느 부분에 오류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 10년간의 금융 위기를 들여다보면 좀 더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97년 금융 위기부터 시작해보자.
02 대규모 현금 소진 사태
세기 말 예고 없는 주가 폭락
1990년대 말 거의 세계 전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새천년을 맞이하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첫 번째 금융 위기가 터졌다.
금융 위기를 부른 마법의 주문
1997년에 이어 2008년에도 대사건이 터졌다.
화폐수량설 지지자들은 세 차례의 금융 위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바로 마법의 주문, 자산 인플레이션이었다.
피셔의 교환방정식을 보면 인플레이션을 계산할 때 주식, 채권, 금, 수집품, 파생상품 혹은 기타 투자 상품의 가격은 반영하지 않고 재화와 용역의 가격만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폐 유통량을 증가시키면, 즉 양팔저울의 왼쪽 접시가 더 무거워지면, 자금이 투자되지 않기 때문에 GNP가 증가하지 않는다. 즉, 유통 속동에 변함이 없다. 이 경우에는 원래 물가가 상승해야 한다.
뜬금없이 중국이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저가와 물량 공세로 재화의 가격을 떨어뜨리거나 국민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으면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딘가 다른 곳에 잉여 자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이 재화와 용역 대신 금융자산에 투자하면 금융자산 가격은 상승하지만 재화의 가격에는 변동이 없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재화가 아닌 금융자산이 증가하는 경웨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자본재 가격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양팔저울을 평형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첫째, 통화량이 증가했는데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수 있고 둘째, 2015년까지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호황기가 아니라도 자본시장 경기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경기가 좋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 자금이 재화 시장이 아닌 주식시장응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교환방정식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통화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자본시장이 과열되엉 결국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부동산 거품이 부른 스페인 금융 위기
자산 인플레이션 이론이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1999년 유로존 회원국으로 입회하면서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처럼 가치가 안정적인 통화체계에 편입되었다. 국제 투자자들은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했다. 더 이상 환율 위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유럽연합의 감독하에 견실한 부채정책이 수립되었으며, 서유럽 선진국과 유대관계도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투자의 엘도라도를 찾은 듯했다.
투자자들은 스페인에 돈을 대량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스페인 국민들은 기회를 놓칠 새라 투자에 열을 올렸다. '의미심장한' 투자 프로젝트 수가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면서,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아무도 예약하지 않는 호텔, 승객이 없는 공항 등 어처구니없는 건설 프로젝트에 점점 더 많은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해외에서 스페인으로 저금리 자본이 유입되면서 부동산 시세는 급등했다. 부동산 시세 차익을 노린 사람들로 인해 대출 수요가 증가한 결과, 부동산 시세가 폭락하면서 자산도 붕괴하고 말았다.
신경제 거품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 부동산 위기를 살펴보면 유사한 메커니즘을 찾을 수 있다. 경제에 통화가 대량으로 투입되었으나, 해당 국가의 보행자 궁역(자본재, 생산 부문)이 아니라 주식, 채권, 리스크가 큰 부동산과 같은 기타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엉가면서 주가가 상승했던 것이다.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다가 결국 증시가 붕괴되어,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중앙은행은 저금리 자본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 물가는 안정적이고 인플레이션도 없다면 굳이 화폐를 더 많이 발행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국가는 중앙은행에 기대는 걸까?
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책들이 추진되고, 이 정책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한 국아의 금융정책의 사령탑인 중앙은행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비록 약해빠진 닻이긴 하지만 말이다.
03 금융 정책의 새로운 강자
중앙은행에 짐을 떠넘겨온 정치인들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과 '똑같은 폭탄'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경제시스템에 생긴 균열을 돈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중요 중앙은행들은 세계 금융시장읭 막강한 승부사가 되었다. 경제를 망쳐놓은 장본인인 정치인들은 경제를 회생시킬 의지도 보이지 않고 중앙은행에 자신들의 짐을 떠넘겨왔다. 대체 정치인들은 오애 유권자들의 환심응ㄹ 사기 위해 환영받지도 못할 정책을 내놓는 걸까?
앞서 다뤘던 4개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 있다. 부채 위기, 부동산 위기, 통화 위기, 수요 붕괴 등 금융 위기가 발생할때마다 중앙은행이 개입하여 구제 정책을 수립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화폐를 발행해왔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은 공식발표 시 '양적완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사실 국가의 부채를 은행권과 교환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국가의 부채를 사들이는 셈이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이 금융 부문의 안정과 불황 극복을 비롯하여 20세기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디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0년 동안 화폐의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전 세계 중앙은행의 주요 고민은 물가 수준 하락이다. 디플레이션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을 중앙은행과 정치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때문이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소비자들은 지출을 자제한다. 두 달 후면 가격이 인하도리 것인데 굳이 비싼 돈을 주고 휴대포능을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회 전반에 소비 기피 현상이 확산되면 기업은 더 이상 투자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경기는 점점 더 침체된다. 물론 물가는 더욱 하락한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되면 물가가 계속 하락한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인플레이션은 돈줄을 죄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통화를 추가로 투입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화폐수량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디플레이션은 금융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겁을 낸다.
중앙은행이 경기안정화를 위해 제시하는 정책은 단순하다. 대개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결곡 화폐수량설을 바탕으로 수립된다.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과 국민에게 디플레이션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일단 통화량을 늘린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우려 심리를 잠재우려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실패에 가깝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앞다투어 통화량을 늘린 결과, 금리는 곤두박질쳤고 일부 국가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양적완화 정책의 성공 여부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알 수 있다. 시장에는 돈이 넘쳐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잘못 날아간 총알, 양적 완화 정책
버냉키는 "양적완화 정책은 이론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통한다"며 미국의 금융정책을 변호했다. 하지만 이론적 오류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
통화 과잉공급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관해 몇 가지 이론이 있다. 금리 인하는 한편으로는 투자 활동을 활성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를 촉진시켜 수출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물론 통화 과잉공급은 인플레이션율을 상승시켜 디플레이션의 유령을 몰아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화폐수량설이 환영받는 것이다.
이론은 거창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까지는 양적완화 정책의 결과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린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경험적 판단의 차이가 크고 우리가 아는 것은 지극히 적다는 말이다. 금융 정책의 영향력은 불안정하고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듯하다.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결과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양적완화 정책은 충격을 완화시키는 방안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갑자기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 될 수 있을 뿐, 장기적인 해결 방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정황을 따져보니 중앙은행과 정치인들이 금융 위기의 파급효과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이 간다. 비판론자들은 이것이 금융정책의 본래 목적이 아닐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여기에는 분명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엄청난 괴물 말이다!
04 국가 부채 폐기물 리사이클링
중앙은행의 사업운용 방식
유럽중앙은행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인 EAPP는 괴물이라 불린다.2017년 4월부터 600억 유로를, 그전까지는 매달 800억 유로를 먹어치웠다. 국채를 특히 좋아하는 EAPP라는 괴물이 먹어치운 양은 유가증권으로 환산하면 2조 유로가 훌쩍 넘는다.
유럽중앙은행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양적완화 정책'이라고 발표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은 채권, 즉 유럽연합 회원국의 국가 부채를 시중은행에서 매입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시중은행에 유럽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를 제공했다. 명분은 화폐발행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유럽연합 회원국의 시급한 현안인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적완화 정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행위다. 사실상 채권은 국가의 부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자본시장에 자금을 빌려주고, 빌려준 자금에 대해 유가증권을 발행한다. 유가증권에는 상환 시점과 대출 이율이 명시되어 있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결국 국가의 부채를 인수하여 관리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국가의 부채와 현금을 교환하는 꼼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국가의 부채를 처리하기 위한 통화 부양'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화폐발행량을 늘려 국가의 부채를 운용하는 속임수다.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경험해봤으니,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잠시 중앙은행의 사업 운용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채권을 판매하고, 시중은행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돈을 빌려준 대가로 채권을 매입한다. 국가의 부채는 국가가 지불능력을 상실할 가능성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은행은 리스크가 큰 부채 대신 은행권을 택하는 것이다. 은행권을 보유하면 국가에 추가로 대출해줄 수 있고 그 대가로 신규 채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국가에 채무 상환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서 채권에 문제가 생기면, 중앙은행의 장부에는 '국가 부채 폐기'라고 쓰인다. 이 모든 과정을 '국가 부채 폐기 리사이클링'이라고 한다.
은행과 국가 입장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은 현금을 확보하고 건실한 재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국가는 계속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중앙은행은 유로존의 구원자 행세를 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은 그동안 해왔듯이 무리한 개혁을 추진하여 유권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직접적인 인플레이션 혹은 자산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화폐수량설이 ㅇ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부수적 피해를 주는 정책 수립이 불가피 하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때문에 국가가 이러한 문제의 원인 제고자가 되고,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 이를테면 부채 상환, 지출 상한선 제한, 개혁 요궁에 대한 압박이 심해진다. 비판론자들은 현재 유럽중앙은행이 국가 재정의 건실화를 추구하는 대신 대량으로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론자들의 주장처럼, 유럽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책임감 있는 국가 재정 정책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론자들 사이에서는 이 방안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화폐발행량을 늘려 쉽게 자금을 확보하는 식의 금융정책은 순진한 국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금융정책 결산
2000년대는 모순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시대였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사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동시에 걱정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다. 세계 경제에는 디플레이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부실하고 금융 위기에 취약한 은행 및 금융시스템, 국가의 과도한 채무,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놓을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에 놓인 정부, 창고나 기계 구매를 위한 신규 대출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 등 향후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한편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과잉 공급하여 자본시장 시세와 금융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경제계의 금융정책과 마찬가지로 정치계에서도 해결 방안을 내놓고 있다. 정치인들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더 많은 자금을 유입하고 국가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을수록 좋다는 희망만으로 말이다.
지출 위주 정채게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이러한 정책은 의사가 응급 상황에 진통제를 처방하듯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고 파산을 막기 위한 긴급 구제 방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화폐발행량과 부채를 늘려 디플레이션의 위기에서 벗어나겠다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야심차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사람은 화폐가 광기를 부리던 시대를 끝내고 국민경제의 가장 중요한 스위치박스인 노동 시장, 사회 및 조세 제도, 국가 기구에 건실한 국가 재정과 회생 조치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이러한 요구의 바탕에는 화폐수량설과 '복지는 화폐 발행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탄생한다'는 국민경제학에서의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가 깔려 있다.
이처럼 혼란스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7장 피해자는 언제나 소시민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더 많은 타격을 입을까?
가난한 사람들은 집도, 금도, 유가물도 없다.
통장에 현금이 조금 들어 있을 뿐이다.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 현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의미다."
01 왜 가난할수록 더 타격을 입을까?
늑대들 틈바구니에서
팔라다의 2부작 소설 <늑대들 틈바구니에서>에서 신즉물주의를 고수하며 1923년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팔라다의 작품은 대부분의 시민을 파탄지경으로 몰아간 경제 위기와 인플레이션 시대를 관찰자적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현금의 저주
정치인들은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거창한 정책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소시민들은 정치가 짊어져야 할 짐의 대부분을 짊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생긴 짐은 적게 가진 자가 더 많이 짊어지게 되어 있다. 정치인들은 소시민들이 덤터기를 쓰게 될 것을 걱정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도, 금도, 유가물도 없다. 지갑 속에 현금이 조금 들어 있을 뿐이다.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 현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은 세금에도 영향을 준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이 적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주식, 부동산, 임야, 귀금속 등 소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적게 받는 것들을 산다. 하지만 매달 20유로밖에 저축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투자를 한단 말인가? 이 푼돈응로 재산을 불려야 한다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고소득자들보다 저소득자들으이 주름살이 더 깊어진다. 왜 그럴까?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현금이 아니라 소득이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연금이나 사회 복지 수당도 소득에 속한다. 그런데 사회 복지 수당이 인플레이션 상승률에 맞춰 조정되지 않는 경우, 인플레이션의 타격이 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가난한 가정의 경우 식료품비, 주유비, 임대료 등 생활 물가 지출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러한 생활 물가가 상승하면 가난한 가정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특히 심각하다.
다만 납세에 관해서라면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다. 물가가 상승하면 소득도 상승하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세 시스템은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이 올라가는 누진세율을 채택하고 있어서 세율에 따라 조세 부담액이 증가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재정적 견인(완전 고용을 이루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총수요가 증가해야 하는데, 조세의 증가가 총수요의 증가를 막는 현상)이라 한다.
예를 들어 독일 납세 의무자의 절반 정도가 소득세 납부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과 빈곤의 상관관계
하지만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했는데 빈곤율이 감소했다는 연구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빈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소득의 구매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플레이션과 빈곤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오랜 기간의 연구가 필요하고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영향과 단기적 영향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플레이션율이 증가하면 고용이 증대될 수 있다. 필립스곡선에 의하면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의 매출이 증가한다. 물가는 상승하지만 이에 맞춰 임금이 상승하지 않으므로 기업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률도 감소한다.
물론 인플레이션 상승은 빈곤을 감소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상승의 여파로 고용이 증대되면 임금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진다는 점이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고용은 다시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의 긍정적인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플레이션과 장기 성장률 사이에는 음의 상관 관계가 성립한다.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낮을수록 빈곤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인플레이션에는 단기적응로는 빈곤을 완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빈곤을 악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놓치지 말고 살펴봐양 할 부분이 또 있다. 초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은 다르다. 초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적 혼란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더욱 허리를 펴고 살날이 없다.
시대, 상황, 기초 자료, 정치, 날씨 등 경제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매우 다양해서 경제 연구 결과가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 결과와 견해가 공존하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포커의 패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02 인플레이션 게임의 승자는 누구인가?
빚을 부추기는 셈법
독일은 1974년부터 대출 규제가 대폭 완화되었다. 2016년에는 약 700만 명의 독일인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렸다. 낮은 대출 금리는 사람들에게 빚을 내서 일러스트 벽지를 사라고 유혹한다. 어디 일러스트 벽지뿐이겠는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채무장에게 이득이다. 그래서 과거에 채무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아군'이라고 여겼다.
성패를 가르는 의외의 변수들
이 게임에서 패자는 채권자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플레이션 게임의 승자는 채무자, 패자는 채권자다
그러나 이 셈법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10년 후 구매력이 얼마나 감소할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스스로 예상하고 합당한 이자를 요구해야 한다.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을 경우 이 게임의 패자는 채권자, 승자는 페터다. 바년 채권자가 이자를 70유로 이상 받을 경우에는 페터가 지는 게임이다.
이 간단한 고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플레이션 게임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인플레이션 자체가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인플레이션이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예상 인플레이션을 낮게 평가하면 채무자가 이기고, 높게 평가하면 채권자가 이긴다. 인플레이션의 재분배 효과는 향후 인플레이션율을 얼마나 정확하게 진단하는지에 좌우된다.
예금자도 채권자와 같은 상황이다. 수익률이 예상 인플레이션을 밑도는 경우 예금자는 이 투자에서 돈을 잃게 된다. 예상 인플레이션율보다 실질 인플레이션율이 더 높으면 예금자는 인플레이션 게임의 패자가 된다.
인플레이션 게임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중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인플레이션율에 영향을 끼칠 위치에 있지 않다면 인플레이션율의 변동 추이와 범위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쪽이 승자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율은 어떻게 예측할까? 예상이 가능할까? 또 얼마나 정확할까?
03 한 사람은 잘못된 게임을 하고 있다
예측을 의심하라
구체적으로 미래에 관한 일을 예측하기란 특히 어렵다. 전문적으로 자본시장을 관찰하는 경제 예측가들도 이 사실을 안다. 경제 예측가들은 시계열 해석, 회귀 분석,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여타의 정량적 프로세스를 이용하여 최대한 '학문적 정확성'을 기하며 예측한다. 그러나 수정 구슬로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만 못할 때도 많다.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다. 국가와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그렇다.
국가는 인플레이션 게임의 승자일까?
채권자의 예상보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채무자에게 이득이다. 인플렝이션으로 인해 화폐 가치가 떨어지므로 부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인플레이션율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의론자들은 비열한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것이다. 오로지 국가만이 이 일을 벌일 수 있다.
일단 국가는 최대한 빚을 많이 지고 본다. 그다음에 빚더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그러니까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서 부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릴 방안을 찾다가 최악의 경우에 파산 신청을 할 것이다. 국가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다. 먼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상한다.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에 몰리면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유권자인 국민에게는 좋을 것이 없다.
그런데 국가에는 한 가지 카드가 더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국가는 적당히 빚을 지고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 국가에 돈을 빌려준 국제 자금 시장과 국민은 예상치 못했던 고인플레이션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경제는 예상 시나리오대로 돌아간다. 국가의 부채가 평가절하되면서 실질 부채 부담이 감소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세계화되고 자본 이동성이 높은 시대에는 금융 억압으로 재정을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조장 정책ㅇ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인플레이션으로 국가의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회의 결의안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공식 인플레이션 수치는 조작도 가능하다.
국가가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결정할 수 있을까?
인플레이션을 국채 해결사로 보는 이유가 또 있다. 제2차 세계대전후 국채는 국가적 사안에 가까웠다. 각국은 특히 자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이는 정치라는 명목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는 자국민에게 돈을 빌려서, 즉 내국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세금을 인상하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국가는 국민에게 돈을 빌리고 세금을 인상시켜서 세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셈이다. 신사적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 방법으로 국채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일본의 국채 빙율이 300퍼센트에 달하는데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일본은 다른 국가에 비해 국민에게 지고 있는 빚이 특히 많다.
그러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빚을 지기 시작하면 이 방법으로는 국채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국가는 자국의 경제 소득을 포기하고 해외로 보내야 한다. 다른 국가에 빚을 지면 상품이나 서비스로만 상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은 상품이나 서비스 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을 원치 않으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다. 해외 부채를 처리할 때도 인플레이션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중앙 은해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1923년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쓴맛을 한번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또다시 인플레이션을 조작하라는 유혹잉 손짓을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앙은행은 정부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정치적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법은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다. 이러한 까닭에 유럽중앙은행은 유럽연합 부채국의 부채를 경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이 끝까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고집했더라면 유로는 붕괴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국가 부채가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을 올리는 데 중앙은행은 동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INFLATION STORY
왜 통화량이 증가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까?
중앙은행에서 본원통화를 증가시켰다고 해도 그 돈은 아직 시장에 투입된것이 아니다. 시중은행은 추가로 투입된 본원통화를 대출이라는 형태로 시장에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시중은행에서 추가 자금을 사용하지 않고 중앙은행이 움켜쥐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은 소위 초과 지급준비금(실제 보유한 지급 준비금에서 필요로 하는 지급준비금을 뺀 금액)의 형태로 추가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의 통화량이 증가했는데 아직까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유독 일본, 미국, 영국, 유럽의 경우, 추가로 투입된 자금이 시중은행의 대출을 늘리는 데 사용되지 않고 각국 중앙은행의 초과 지급 준비금으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유럽중앙은행은 시중은행의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시켰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추가 자금을 예치해두는 경우 일정 금액을 지불하도록 말이다. 결국 시중은행의 고객이 이 예치금을 부담하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4부 어떻게 인플레이션의 흐름에 올라탈 것인가?
: 인플레이션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법
8장 제로 금리, 제로 수익
각국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전 세계를 저금리 자금에서 시작하여
제로 금리로 판치게 만든 장본인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가설과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은 하나다.
"제로 금리 시대에 접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01 제로 금리 시대의 도래
이자와 윤리의 그늘
애초부터 이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와 유대교에서는 이자 거래를 금지했다.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도 이자 제도를 폐지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자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이자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던 주제다. 이자를 받는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지난 수십년간 금리는 급격히 떨어졌을까?
지난 30년간 이례적으로 실질 금리가 감소하는 현상이 전 세계에서 관찰되었다. 실질 금리 예측에서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리라는 걸 간파하지 못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 부채, 금융 억압, 고인플레이셔닝 맹위를 떨칠 때 실질 금리가 낮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관찰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간 금리가 급격히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설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버냉키는 '글로벌 저축 과잉'을 꼽았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중국이 자본 투자 규모를 축소하고 있고, 인구 고령화로 인해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가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 모드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 결과 자본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금리는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현상이 발생한 두 번째 원인이 '구조적 장기 침체'에 있다고 보았다. 세계 경제의 생산성과 혁신력이 줄어들면서 세계 경제가 마비되어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에 투자 자본 수요가 감소했고 금리도 동반 하락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경제 위기, 2007년 부동산 위기, 유로 위기 등 2000년 대에 발생한 금융 위기도 금리 하락에 일조했다. 이후 많은 기업과 은행들이 리스크는 피하는 대신, 부채와 투자를 줄이고 안정성 있는 투자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이러한 분위기 역시 자본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고 금리를 하락시키는 데 한몫했다. 근래 각국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전 세계를 저금리 자금에서 시작하여 제로 금리로 판치게 만든 장본인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가설과 해석이 다양한 만큼 주안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은 하나다. 제로 금리 시대에 접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경제 리스크가 더 심해지리라는 전망은 확실하다.
02 삐걱 거리는 연금 제도
저금리 고위험
모두 한때 부와 명성을 쌓았으나 결국 빚더미에 올라 파산했다. 이는 비단 유명 인사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 할지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대출을 받고 있다. 그나마 예전에는 대출의 문턱이 높았다. 채무자들은 비싼 대출이자가 무서워 대출 받기를 주저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저금리 시대에 대출은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제는 대출을 받지 않아야 할 형편의 사람들에게까지 저금리로 유혹하며 대출을 받게 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 파산 상태에 내몰리고 은행은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개인 채무 위기로 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저금리로 몸살을 앓는 생명보험
03 직장 연금의 종말
노후 위기 시대
은행을 지탱해온 3대 6대 3법칙
독일의 은행 시스템은 세 기둥이 지탱하고 있다. 슈파르카세(관영은행으로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여 신용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독일 중소기업이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기반이 되고 있다), 폴크스방크(협동조합 은행)와 라이프아이젠방크(농업 협동조합에서 유래한 은행), 민영 시중은행이다.
이 은행들의 사업 모델은 거의 모든 은행과 마찬가지로 '3 대 6 대 3 원칙'을 따른다. 과거에는 이러한 금융상품에 저축을 하면 고객은 은행으로부터 3퍼센트 이자를 받았다. 은행은 예금자에게 돈을 빌리고, 빌린 돈에 대해 3퍼센트 이자를 지급했다. 은행은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은행은 돈이 필요한 가정에 이자를 받고 장기 대출을 해주었다. 은행은 대출이자로 대개 6퍼센트를 요구했다.
쉽게 말해 은행은 고객이 단기 예금으로 맡긴 돈으로 장기 대출을 운용하여 이자 수익을 올려왔다. 이 시스템을 속칭 3 대 6 대 3 원칙이라고 했다. 은행은 이 3퍼센트 수익으로 편하게 놀고먹으며 사업을 했다.
금리인상이 미치는 여파
이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자 수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괴롭고 불확실하다. 모두가 원하듯 금리가 인상되어야 이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 금리 인상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금리가 인상되어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첫째, 금리가 인상되면 채권 시세가 하락한다. 이유는 채권은 사실상 대출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금리가 너무 빨리 상승하면 채권 시세는 떨어진다. 그리고 은행에서 이러한 채권에 너무 많이 투자하면 채권 시세, 즉 투자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 경우 은행이 심지어 지불 불능 사태에 빠지지는 않더라도 재무제표상으로는 은행 위기 상태다.
둘째, 금리가 인상되면 3 대 6 대 3 원칙이 흔들린다. 장기 대출 금리에는 장기 계약을 한 것이므로 금리 변동이 없다. 따라서 이 상황은 은행의 사업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제로 금리 정책 분석 결과를 보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이지 않는가? 일반 국민의 예금 및 연금 시스템은 제로 금리인 상태로 운용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시장에 투입하는 자금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고 채권을 판매하는 금융정책은 앞뒤 가리지 않고 정신 없이 추진해왔다.
잘못된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예금 및 연금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제로 금리 정책까지 리스크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가계와 투자자들은 수익ㅇ이 불안정하고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9장 금융 위기 시대의 투자
인플레이션은 구조적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다.
한마디로 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빗겨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01 금융 위기 시대의 수익률 높이기
500만 권의 책
인플레이션의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유가물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런 것들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리면 인플레이션 전쟁의 승자가 되는 것일까? 정말 그럴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유가물도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가가 상승하여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모두 유가물을 사려 할 것이므로 유가물의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산 인플레이션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더 헤어나오기 힘들다.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라고 할까.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까?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네 가지 시나리오
첫 번째 시나리오다. 유가물로 도피 전략.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에 유가물을 매도하면 도피 전략은 성공한 것인데, 대개 자산 인플레이션은 우연히 발생하기 때문ㅇ에 매도 시점을 판단하기 어렵다.
두 번째 시나리오. 자산 가격이 상승하기 전에 유가물을 매수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 가격이 붕괴되기 전에 유가물을 매도하는 전략. 첫 번째 보다 더 나은 전략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상태에서는 새로운 유가물에 다시 투자를 할 수 없다. 이미 모든 유가물이 자산 인플레이션에 빠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융 자산 가격이 오를 대로 올라 다른 투자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건 소비재뿐이다.
세번째 시나리오. 소비재에 눈을 돌려도 당신은 '우연히' 인플레이션을 만나게 된다. 자산을 처분한 수익을 소비재에 지출할 경우 지출 시점은 소비재 가격이 상승할 때다. 소비재 투자 수익은 유가물 투자 수익에 비해 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투자 수익 손실이 크다.
마지막 네 번째 시나리오가 있다. 건전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금융 자산 투자가 막을 내리기 전, 즉 투기 거품이 생기기 전까지 금융 자산에 투자를 한다. 그리고 거품이 터지기 전에 금융 자산을 처분한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소비재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여 거품이 생기기 전까지 금융 자산 처분 수익을 소비재에 투자한다. 이 시나리오대로 하면 자산 인플레이션과 물가 인플레이션을 모두 피할 수 있다. 시세 수익도 챙기고 그 돈으로 물가가 오르기 전에 소비재를 사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02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위험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인플레이션
사람들은 유가물에 투자하면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유가물에 투자하면 일단 확실한 수익을 챙기고 끝내면 그만이니까 자산 인플레이션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주식시장에는 하차 신호가 울리지 않는다).
둘째, 유가물에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인플레이션보다 높기 때문에, 투자에서 얻은 수익이 상품 시장에서 원래의 구매력 이상으로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독일과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투자 방식이 잘 통했다. 그러나 일본만 하더라도 이 방식이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투자 방식을 '골디락스 시나리오(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도 물가 상승은 거의 없는 이상적인 상태, 금융시장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유가물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적고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높을수록, 당신이 얻은 수익을 소비재에 투자했을 때 구조적 위험의 원인인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인플레이션이 덮쳐올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인 위험은 마구잡이로 유가물을 사들인다고 해결 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똑똑하고 신중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후 대책과 같은 장기적인 문제는 더 복잡하다. 유가물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가물을 처분하여 다른 유기물에 투자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 인플레이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의 대상이 바뀔 뿐이다.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인플레이션은 구조적 위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따라서 유가물에 투자하여 인플레이션을 피하고 보겠다는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못해 순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조적 위험을 피해갈 수 없다. 그 구조 내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하여 인플레이션을 구조적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금융 위기 또한 구조적 위험이다. 금융 위기 혹은 경제 위기가 광기처럼 덮칠 때마다 국가는 파산을 하고, 은행은 붕괴하고, 통화 가치가 급락하거나 전쟁이 터진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용는 없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고민할 필요는 없다. 금융 위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며 자본주의의 일부다. 경제 위기와 금융 위기는 가치, 사업 모델, 꿈을 파괴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마련해준다.
마법의 삼각형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기준 수익성, 안정성, 유동성으로 이뤄진 '마법의 삼각형'이다.
첫 번째 구성 요소인 안정성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모은 재산을 유지하거나 일정한 한계치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안정성의 걸림돌은 투자의 두 번째 기준인 수익성과 갈등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수익률을 잡아먹는 제1요인은 아마 세금일 것이다. 세 번째 기준은 유동성이다. 여기서 유동성이란 투자 자본의 가용성, 쉽게 말해 투자 상품을 얼마나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유동성이 높은 투자일수록 리스크가 적다. 그러나 리스크가 낮은 만큼 수익률도 낮다. 따라서 유동성이 낮은 투자인 경우, 투자자들은 대개 매도 가능성이 낮은 것에 대한 보상금을 프리미엄으로 받는다.
03 시멘트로 된 금, 부동산
투자로서의 부동산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부동산 투자다. 유가물로서 부동산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시기를 잘못 타서 자산 거품이 꺼지면 금쪽 같은 돈을 투자해봤자 수익을 올릴 수 없다.
부동산과 유가증권의 상관관계
04 투자대상으로서의 주식과 금
기업의 수익을 누리는 수단
주식은 물가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과열된 주식시장에 투자할 마음을 먹었다면 손해를 봤다고 놀라면 안 된다. 손해를 봤다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앞으로 최고의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의 세 가지 기준
주식은 금융 위기에 매우 민감한데다 주식시장에는 정기적으로 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 당신이 주식 투자의 리스크를 줄이고 싶다면 장기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투자 기간을 길게 10년으로 잡으면 리스크는 80퍼센트 감소하고, 20년으로 잡으면 연 수익의 변동폭이 약 90퍼센트 감소한다. 투자 기간이 길수록 리스크가 적은 셈이다.
두 번째 기준인 수익률 세번째 기준인 유동성
금
금 역시 인플레이션을 직접 막아주지는 못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금 투기를 하기 시작하면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 투자에서는 이자와 배당금을 지불하지 않는 덕분에 이자의 배당금 문제로 밥그릇 싸움을 할 일이 없다.
금 시세는 공업 수요, 보석 산업 수요, 달러 시세, 금융 위기, 중앙 은행의 금 보유고를 이용한 투기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는 시장을 동요시키는 요인이어서 항상 중앙은행에서 금을 매입하거나 매각한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 이런 소문에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화폐개혁, 화폐 가치 평가절하, 화폐 질서 몰락 등의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05 이자 상품
채권
주식과 달리 이자 상품은 원금 회수 및 고정 수익, 즉 이자가 보장된다.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놓은 대출의 한 종류인 채권과 금융시장 상품, 저당 증권, 이외 유사 투자 상품이 이자 상품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상품들에는 일정한 금액을 투자하면 원금에 고정 이자를 추가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자도 인플레이션의 구셩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때 주의할 점은 채권은 수익성이 있고 이자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을 때만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투자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자 상품에서는 확실한 원금 및 이자 수익 보장을 강조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자 상품이 매우 안전하다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든 이자 상품에는 손실 위험이 있다.
더큰 수익을 노린다면
헤지펀드
사모펀드
원자재
재난 채권
자기계발
창업
남을 위한 소비 : 감정적인 관점에서의 수익이다. 남을 위해 지출하고 좋은 목적으로 돈을 소비하는 행위로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INFLATION STORY
09 주식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
주식에는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의 보호 장치가 삽입되어 있다. 유가물이 한 기업의 가치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모든 상품의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기업의 매출도 함께 증가한다. 수익률이 안정적인 상태에서는 기업 이윤도 함께 증가한다. 그래서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의 명목가치가 상승한다. 단기적으로 주식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가 상승하면 상승된 금리가 주가를 압박한다. 인플레이션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 처음에는 기업의 이윤이 감소하고 주가가 하락한다.
10장 인플레이션의 시대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
01 포트폴리오 작성법
적을 알아야 이긴다
병법은 국가의 핵심이다. 병법에 국가의 생사가 걸려 있고, 병법에 의해 국가의 안정과 몰락이 좌우된다. 병법을 익히는 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
최고의 팀을 구성하라
02 포트폴리오 분산하기
분산화의 원칙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포트폴리오는 없다.
03 투자의 심리적 함정
심리적 취약점 극복하기
1. 따라하기
이러한 심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와 반대되는 주장과 의견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2. 우연
우리는 우연이면 껌뻑 죽는 경향이 있다. '도박사의 오류'는 우연에 대한 인간의 맹신을 보여준다.
3. 쓸데없는 집착
100유로에서 20유로로 떨어졌으니까 언젠가는 다시 100유로로 상승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기다린다. 그래서 절대 이 주식을 팔려 하지 않는다.
4. 처분 효과
투자자들은 손해를 본 주식은 보유하고 수익을 낸 주식은 파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5. 객관성을 잃은 희망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경제학 원칙이 있다. '잃은 것은 잃은 것이다'.
6. 과도한 낙관주의
운전자의 80퍼센트가 자신이 평균 이상 수준의 운전자라고 생각한다.
11장 돈의 미래
국가는 너무 오랫동안 금융정책에 손대왔다.
중앙은행은 정치인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화폐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화폐를 조작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앞으로 화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01 꿈꾸지 못한 미래
인류의 성숙
소말리아는 국가가 없는 상태인데, 인플레이션이 없는 통화를 보유하고 있다니 이 상태를 뭐라고 해야 할까?
해적들은 위조지폐라고 해도 사람들이 인정만 해준다면, 화폐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화폐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알았따. 해적들은 국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국가에서 개입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국민들은 화폐 가치 평가절하에 관심도 없었다. 위조지폐 제조 비용과 명목가치에서 발생한 차익을 챙겼을 뿐이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처럼 말이다.
앞으로 화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첫 번째 대안이 플라스틱 화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돈의 종말
디지털 화폐 옹호론자들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이 아이디어를 지지한다. 첫째, 디지털 화폐는 빠르고 실용적이다. 둘째, 이 화폐는 범죄에 사용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셋째, 현금이 없으면 마이너스 금리도 없으므로 금융 위기에 더 쉽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현금이 사라진다고 해서 범죄가 사라질 리 없다는 것이다. 대안 화폐가 나올 것이다. 또 현금이 사라지면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가 쉽게 발생할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현하고 있다.
현금 폐지 정책이 현실화된 순간을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국민들이 국가에서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기피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제학자들은 이 상황을 '화폐 경쟁'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통화들이 서로 경쟁 관계에 얽히고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와도 경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가장 낮은 최고의 화폐가 될지도 모른다.
치열한 통화 간 경쟁
유토피아처럼 들리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통화 간 경쟁 때문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디지털 공동체의 발전 속도와 혁신력이 엄청난 만큼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몇 년 후 우리는 어떤 통화로 지불하게 될까? 구글, 애플, 이베이, 아마존 등 사이버 머니에도 환율이 생기지 않을까?
사용자의 신뢰가 기반된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 인정 받는다.
얼핏 보면 화폐 간 경쟁은 매력적인 듯하다. 국민들이 더 안정적인 대안 화폐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자국 화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의 비파괴성
단일 화폐가 지배하던 시대는 끝이 나고 화폐는 가치를 잃을 것이다. 언젠가는 화폐의 종말이 올지도 모르지만, 화폐라는 아이디어 자체에는 강력한 힘이 있음이 분명하다.
화폐의 형태, 모습, 발행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화폐는 우리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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