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적인 변화가 어떻게 전체 시스템을 교란시키는가?
머리말
과학은 "하나의 개념적 세계관이 다른 것에 의해 대체되어 버리는, 지적으로 격렬한 혁명들이 불연속적으로 있었고 그 사이에 일련의 평화로운 막간들이 존재하는 그런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쿤은 이런 격동의 시기들을 "패러다임 이동"이라고 불렀다.
경제학적 아이디어들은 우리 사회의 지적 체계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실제로 경제학적 아이디어는 우리 개인들의 다양한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모기지를 선택할 것인가에서부터 은퇴 이후를 대비한 투자,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경제학자들과 정치철학자들의 아이디어는 그것이 맞을 때나 틀릴 때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정말 세계는 조그만 차이에 의해 좌우된다." (케인스) 역사적으로 보면 나쁜 경제학적 아이디어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반면 좋은 아이디어는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
이 책은 '복잡계 경제학 혁명'에 관한 이야기다.
복잡계 경제학은 진실로 첨단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직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어떤 사례나 도구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기보다는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다시 바꾸어 놓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것, 다시 말해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는 데 있다.
옮긴이의 말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경제도 복잡 적응 시스템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경제란 주체 간에 서로 교류하고 이로부터 얻은 정보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의사 결정하는 인간 활동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를 정태적인 균형 시스템이 아니라 역동적인 활동으로 북적대는 그야말로 '벌통'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 모델들은 현실 경제에서도 수많은 주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다양하고 복잡한 성공과 실패의 패턴이 만들어지고,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이러한 모델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제 시스템에 외생 변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제의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는 시장과정이 만들어 낸 것이다. 기술혁신, 심지어는 자연환경의 변화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둘째, 좋든 나쁘든 경제적 성과는 바로 주체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변화의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환경에 맞게 잘 적응하고 혁신하는 주체가 승자가 된다는 얘기다.
문제의 배후에 있는 본질을 찾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복잡 적응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직접적인 원인에만 주목하지 않고 그 사건을 만들어 낸 구조를 탐구하는 자세를 말한다. 사건들 간의 관계도 단선적 인과 관계보다는 각 요인 사이의 상호 연결관계(피드백 고리)들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단선적 인과 관계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구조를 보고 패턴을 읽어 내는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시점에만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굴러가려면 새로운 성장엔진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했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가와 이를 알아보는 금융이 만나 기술혁신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혁신이 제대로 꽃을 피울지 말지는 결국 시장이라는, 진화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최고의 플랫폼이 결정한다. 시장과 기술혁신은 자본주의의 양대 축이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왜 어떤 나라에서는 혁신이 잘 일어나는데 반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할까? OECD의 큰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국가 혁신 시스템이고, 더 세부적으로는 지역 혁신 시스템, 부문별 혁신 시스템, 산학연 협력 시스템, 기업, 대학, 연구소의 개별적 혁신 시스템이다.
결론은 혁신이 일어나는 복잡 적응 시스템과 각 혁신 주체 간 또는 혁신 요소 간 상호 작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의 모든 것이 틀렸을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 줄 최상의 시기다. - 톰 스토퍼드, <아카디아>
1부 패러다임의 이동
1.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부의 미스터리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부라는 것은 고정된 개념이 아님을 보여 준다. 가치는 누군가가 특정 시점에 이를 얻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것에 달렸다는 것이다.
부는 맨 처음 어디에서 오는가? 이마의 땀과 머릿속의 지식이 어떻게 부의 창출로 이어지는가? 세계는 왜 시간이 갈수록 부유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소를 교환하다가 마이크로 칩을 교환하는 데까지 이르게 됐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우리는 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떻게 보다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이르게 된다.
"우리 사회의 부를 어떻게 더 증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경영자들은 어떻게 회사를 성장시켜 더 많은 일자리와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정부는 어떻게 부를 증대시키고 가난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전 세계의 모든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교육과 건강, 기타 중요한 목표를 위해 필요한 자원을 방출할 것인가? 그리고 세계 경제는 어떻게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부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난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이 탐색하고자 하는 문제, 즉 "부는 무엇인가? 부는 어떻게 창출되는가? 부를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는가?"는 오랜 경제학의 질문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 특히 진화 이론과 '복잡 적응 시스템'은 앞에서 지적한 오랜 경제학적 숙제에 대해 과격할 정도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의 가장 복잡한 창작품
모든 활동의 복잡성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 전체를 다루기 위한 리스트는 과연 어떠할지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럼에도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바닥에서부터 스스로 조직화되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는 정말 경이로울 만큼 복잡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를 설계하지 않았다. 운영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경제의 특정 부분을 관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36조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경제 전체를 바라보면 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경제가 여기에 이르게 됐는가? 과학은 우리 역사가 자연의 상태, 말 그대로 우리 몸에 걸칠 셔츠 하나도 없는 그런 상태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주고 있다. 인류는 어떻게 자연 상태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기 조직화된, 복잡한 지금의 글로벌 경제로 옮겨 온 것일까?
250만 년의 경제 역사
사람들은 인류경제의 발전이 천천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실상은 이와 다르게 훨씬 극적이다.
첫 번째 인류의 경제 활동은 주로 가까운 친척들로 이루어진 유랑민 사이에서 식량을 구하거나 기본적인 도구를 제작하는 일에 국한됐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3만 5천 년 전쯤에 이르러서야 무덤, 동굴 벽화, 장식품 등 좀 더 정착된 생활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초기 인류들의 '집단 간' 거래의 증거를 보기 시작한다.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큰 이익 중 하나가 전문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친척들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협력적인 거래는 인간만의 독특한 활동이다. 그 어떤 종도 이방인과의 거래와 노동 분업의 결합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인간 경제의 특징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능력인 거래는 다른 원시 종족들과의 경쟁에서 큰 우위로 작용했고, 그 결과 우리 조상들은 생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두 부족 이야기
두 부족이 있다. 하나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경계에 있는 석기 수렵,채집민인 야노마모족이고 다른 하나는 휴대폰을 쓰고 카페라테를 즐기는 뉴요커들이다. 이 두 부족은 똑같은 약 3만 개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양식은 엄청나게 다르다.
평균적인 뉴요커들의 경제적 선택의 수는 엄청나다. 뉴욕과 야노마모 경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지 1000배나 차이 나는 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과 야노마모 경제 간의 수억 배 차이 나는 복잡성과 다양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 25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현상이 무엇인지 감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추가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 경제처럼 복잡하고 고도로 구조화된 체계가 어떻게 창출될 수 있고 또 어떻게 자기 조직화되고 상향식으로 작동될 수 있는가?
- 경제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시간에 따라 증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경제의 복잡성과 경제의 부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부의 증가와 복잡성이 완만하게 증대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부는 무엇이며, 어떻게 창출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라면 이런 질문들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는 진화한다
현대 과학은 바로 그런 이론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부를,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한 3단계 공식, 즉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공식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진화는 하나의 '알고리즘'이다. 이는 혁신에 이르는 만능의 공식, 다시 말해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가는 공식이다. 진화는 DNA라는 특정 기질에서만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처리와 정보 저장의 특성을 갖는 모든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요약하면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간단한 처방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한 형태로 새로움과 지식, 성장을 창조하는 프로그램이다. 진화는 정보 처리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정신, 인간 문화, 경제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경제를 진화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최근의 연구는 은유법보다는 진화의 보편적인 알고리즘이 어떻게 인간 경제 활동이라는 정보 처리 기질에서 실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물학적 시스템과 경제학적 시스템이 진화의 핵심 알고리즘을 공유하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고 있지만 진화의 구체적 실현은 사실상 서로 매우 다르다. 때문에 각각의 상황을 감안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글로벌 경제를 은유적인 진화 시스템으로 보는 것과, 말 그대로의 진화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경제 시스템이 생물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반면 경제 시스템과 생물학적 시스템 모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진화 시스템의 부분 시스템이라고 보는 것이 과학적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이 가진 특징들을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자연스러운게 좋은 거야 라는 의미)
경제가 정말 진화 시스템이고, 또 진화 시스템의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면 일반적인 경제학적 법칙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것은 많은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제학적 법칙이 있다는 말이 우리가 경제에 대해서 언제나 완벽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19세기 후반에 철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을 사회, 경제적 영역에 무턱대고 적용하려고 했다.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원칙을 계급 불평등, 인종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기타 사회적 불공정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우리가 논의할 경제적 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옛날의 사회적 다윈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왜냐하면 경제 발전에서 협력은 적자생존이라는 개인주의만큼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리로 어떤 이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른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 변혁이 초래한 수많은 재앙들을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논의할 새 이론은 경제 현상이 왜 예측하기 어려운지, 동시에 사회 변혁을 위한 대대적인 시도가 왜 역사적으로 실패했는지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최적 디자인의 창조
진화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진화에 대해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을 만드는 다목적용 알고리즘이라고 말한다.
진화는 시행착오를 통해 디자인을 창조한다.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디자인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디자인들을 만들어 해당 환경에서 시험해 보고, 여기서 성공적인 디자인은 살아남아 반복되는 실험을 거쳐 수용되는 반면, 성공적이지 못한 디자인은 버려진다.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특정한 목적과 환경에 적합한 디자인이 나온다.
그리고 진화는 과거의 성공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의 디자인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적당한 조건이 충족되면 유한한 자원을 놓고 디자인 간 경쟁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조가 더 커지고 복잡해진다. 때때로 놀라울 정도로 변화한다. 진화는 수많은, 거의 무한대의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색해서 특정한 목적과 환경에 적합한 극소수의 디자인들을 찾아낸다.
진화는 가능성이라는 건초 더미에서 좋은 디자인이라는 바늘 몇 개를 발견하는 알고리즘이다.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합리성과 창의력이 부를 창조하는 주된 동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익숙해 있다. 부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 제품과 서비스를 생각해 내는 똑똑하고 혁신적인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판매하는 많은 노력들에 의해 창출된다.
인간의 합리성과 창의력이 부의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합리성과 창의력은 경제에서 진화 알고리즘의 작동에 영양분을 주고 그 형태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의 디자인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수많은 디자이너들은 셔츠는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이미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합리성과 창의력을 활용해 모든 다양한 종류의 셔츠를 창안해서 밑그림들을 그린다. 그다음에는 스케치를 보고 소비자들이 좋아할 디자인들을 골라내 샘플들을 만든다.
이 샘플들을 경영진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그중에서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으로 보이는 디자인들을 추려 낸 뒤 제조를 지시한다. 제품들을 만들어 여러 소매업자들에게 보이면 그들이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는 디자인을 골라낸다. 이 과정을 거쳐 주문을 토대로 생산을 늘려 소매업자들에게 셔츠를 공급한다.
그 뒤 당신이 이 가게에 들어와 다양한 셔츠들을 둘러본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산다. 이는 디자인의 차별화, 적합도의 기준에 따른 선택, 그리고 성공적인 디자인의 증식 또는 확산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당신의 셔츠는 디자인된 게 아니라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당신의 셔츠가 디자인된 게 아니라 진화된것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모든 가능한 셔츠 중에서 당신이 과연 어떤 종류의 셔츠를 선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힘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에서의 예측은 매우 단기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경제적 의사 결정을 할 때 두뇌를 가능한 한 최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실험을 하고 개선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헤쳐 간다. 그 과정에서 유용한 것은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도, 합리성, 그리고 창의성은 경제의 동력으로서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다 큰 진화 과정의 부분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경제적 진화는 단일 과정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된 다음 세 가지 과정들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기술의 진화다. 기술은 역사적으로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다. 진화경제학자 리처드 넬슨은 사실 두 가지 기술이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물리적 기술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기술이라고 생각해 오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기술이다.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법들이다. 정착 농업, 법규, 화폐, 회사, 벤처 자본 등이 그런 예들이다. 넬슨은 물리적 기술들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적 기술도 똑같이 중요하고 이 두 가지는 서로 공진화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은 모두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상호 작용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춤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의 공진화도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아직 하나가 더 있다. 사실 기술은 아이디어나 디자인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실제로 공장이라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누군가는 혹은 일단의 사람들이 물리적, 사회적 기술들을 개념이 아닌 현실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 영역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물리적, 사회적 기술을 함께 융합시켜 제품과 서비스라는 형태로 만들어 낸다.
기업은 그 자체가 디자인의 한 형태다. 기업의 디자인은 전략, 조직 구조, 경영 과정, 문화,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다른 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다. 기업 디자인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별화-선택-증식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진화한다. 이때 시장은 그런 디자인이 적합한지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경제에서 변화와 성장의 패턴을 보여 주는 기업 디자인, 이 세 가지의 공진화 현상이다.
복잡계 경제학
경제를 하나의 진화 시스템으로 보는 개념은 급진적 아이디어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진화 이론과 경제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인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 진화론적 사고는 주류 경제학 이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이후 경제학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은,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 특히 정지 상태의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경제학자들이 영감을 얻은 곳은 생물학이 아니라 물리학이었다. 그중에서도 운동과 에너지의 물리학이다.
지난 100년 동안 경제학의 주류 패러다임은 경제를 하나의 균형점에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 정치, 소비자 취향의 변화, 그리고 다른 외부적 요인들 때문에 새로운 균형점으로 이동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묘사해 왔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의 관심은 그런 균형 상태와는 거리가 먼, 역동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단 한 번도 정지 상태에 접어들지 않는 시스템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형태의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요약 하자면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수많은 요소들 혹은 입자들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그런 시스템에서 요소들이나 입자들의 미시적 차원의 상호 작용들은 거시적 차원의 행태 패턴으로 나타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고립되어 존재하는 물 분자는 좀 지루하다. 그러나 수십억 개의 물 분자를 모아 놓고 에너지를 가하면 소용돌이라는 복잡한 거시적 패턴이 나타난다. 이런 형태의 소용돌이는 개별 물 분자들 간 역동적인 상호 작용의 결과다. 하나의 물 분자로는 이런 소용돌이를 만들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물 소용돌이 시스템 그 자체의 집단적인 또는 창발적인 특성인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 과학자들이 복잡계의 행태에 대해 보다 많이 알게 되면서 이들의 관심도 그쪽으로 옮겨 갔다. 이들은 물 분자들처럼 고정된 형태를 갖는 단순한 것들이 아니라 지능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그런 시스템에 흥미를 갖게 된다. 물 분자들은 그 행태를 환경에 맞춰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개미들은 그럴 수 있다. 이들은 다른 개미와 주변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그에 따라 행태를 바꾸어 나간다.
하나의 물 분자처럼 개미 한 마리 그 자체로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수천 마리의 개미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그들은 서로 상호 작용도 하고, 화학적 신호를 통해 의사소통도 한다. 또한 정교한 개미탑을 쌓거나 공격자들의 공격에 대비해 복잡한 방어벽을 구축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들의 활동을 통합, 조정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정보를 처리하고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요소나 입자들을 '행위자'라고 부르고, 이 행위자들이 상호 작용하는 시스템을 '복잡 적응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 면역 체계 내의 세포들, 생태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유기체들, 그리고 인터넷 이용자들도 복잡 적응 시스템의 또 다른 사례들이다.
과학자들이 이 시스템을 더욱 잘 이해하자 이런 시스템들이 공통점을 많이 갖는 하나의 보편적 그룹을 형성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회과학자들 역시 경제도 복잡 적응 시스템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경제의 가장 확실한 특성은 서로 교류하고, 정보를 처리하며, 행동을 환경에 맞게 적응시키는 인간들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 연구자들은 전통적 모델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경제 현상 모델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델들은 경제를 정태적인 균형 시스템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균형은 보이지 않고, 역동적인 활동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는 마치 '꿀벌 통'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물 분자의 상호 작용으로 소용돌이라는 형태가 일어나듯, 현실 경제에서도 수많은 행위자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경제에 흥망성쇠의 복잡한 패턴, 그리고 혁신의 파고 등이 일어난다는 점을 이 모델들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렇게 경제를 하나의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노력들은 지난 10년 동안 급속히 증대되었다. 나는 이런 작업들을 '복잡계 경제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말을 붙였다고 해서 복잡계 경제학에 대한 유일하고 종합적인 이론이 현재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통합된 이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이정표
경제가 정말 복잡 적응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이는 네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지난 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으로 경제를 잘못 분류했다.
둘째, 경제를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보는 것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도구, 기법, 그리고 이론을 제공해 준다.
셋째, 부는 진화의 산물이다. 경제적 진화 역시 자연 상태에서 출발해 새로운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증대시키면서 지금의 글로벌 경제로 이끌어 냈다.
넷째,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이론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 진동은 학계 차원을 훨씬 뛰어넘었다. 애덤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19세기 자유 무역의 증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의 전망은 혁명에 영감을 주었고 사회주의의 등장을 가져왔다. 신고전 경제학은 20세기 후반 수십 년 동안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상과 일치한다.
끝으로, 우리가 부의 창출 과정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지식을 활용해 경제 성장과 보다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복잡계 경제학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인류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듯이 경제 현상에 대해서도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전통 경제학 : 균형의 세계
1984년 존 리드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시티코프의 회장이자 CEO로 선임되었다. 리드가 알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이런 위기가 발생했고, 어떻게 일어났으며,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시티뱅크와 다른 대형 은행들의 최고 브레인들은 어떻게 그토록 위험을 잘못 판단할 수 있었을까? 왜 아무도 그런 대출로 초래될지 모를 위험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멕시코 현지에서 일어난 일련의 국지적 사건들이 어떻게 글로벌 위기로까지 연쇄 파장을 몰고 온 것일까?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정부라는 존재는 그런 위기에 대해 왜 그토록 무력했을까?
리드는 이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세계 금융 시장에 관한 한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요정들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고 리드는 결론 내리고... 경제학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
지난 10년에 걸쳐 경제 이론에 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존 캐시디는 경제학이 데이터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은, 그리고 비현실적인 가정들에 둘러싸인, 고도로 이상적인 이론의 상아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경제학이 거대한 학술적 게임이 돼버렸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론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 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던 앨런 그린스펀조차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말로 몰라.... 옛날 모델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어." "놀라운 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 모델과 현실 세계를 제대로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거지."
경제학이 시장의 효율성에서 자유 무역의 이익과 개인 선택의 중요성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아이디어를 생산해 냈다는 점을 인정한다.
현대 경제학의 발전에 가장 핵심이 된 일련의 아이디어들을 집중 조명해서 그 장점과 약점을 따져 봄으로써 2부에서 우리가 살펴볼 복잡계 경제학의 토대를 만들려는 게 주된 목적이다. 경제학이 앞으로 갈 길을 모색하려면 우선 지나온 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전통 경제학인가
앞으로 지난 세기 동안 경제 이론을 지배해 왔던 일련의 아이디어들을 '전통 경제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무엇이 전통 경제학인지 그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핀 만들기와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의 영향력은 우리 논의의 출발점이 될 만큼 크다. 그는 프랑스 여행에서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의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정부가 경제에 대한 간섭을 제한하고 대신 시장에 대부분을 맡기라는 과격한 아이디어를 가진 부류의 학자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학자들이 씨름을 해왔던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는 어떻게 창출되는가, 다른 하나는 이 부가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것이다. <국부론>에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다 다루었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간단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경제적 가치는, 사람들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원료를 가져다가 노동력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으로 변환시킬 때 창출된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스미스의 가장 큰 통찰력은 바로 부의 창출 비밀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한 점이다. 보다 높은 생산성의 비밀은 노동의 분업과 이로 인해 가능한 전문화에 있다고 보았다. 스미스는 핀 공장을 예로 든다. 핀 제조 공정의 한두 단계에 전문화를 통해 근로자 1인당 4,800개의 핀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노동의 분업이 없었다면 이 공장은 하루에 단지 20개의 핀만 만들어 냈을 것이며, 숙련되지 못한 근로자들이라면 핀을 아예 하나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스미스는 추정했다.
인구 증가로 인해 가용 노동인력이 늘어나면 사회의 부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1인 기준으로 부를 늘리려면(개인 삶의 수준을 높이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전문화가 필요하다. 바로 이 논리는 스미스를 경제학의 두 번째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즉, 무엇이 한 사회에서 부와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가? 바로 그 의문이다.
부의 창출이 전문화를 요구한다면, 그 전문화는 거래를 필요로 한다. 여러 생산업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상품을 갖고 나와 거래를 할 경우 이 상품들이 배분되는 방법은 누가 결정하는가? 핀 몇 개가 과연 1부셸의 밀과 같은 것일까? 목공이 만든 의자를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고기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누가 더 부자가 될까? 핀 생산업자일까, 아니면 어부일까?
도덕철학자이기도 한 스미스에게 이 문제는 단순히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는가'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개인, 또 사회 전체적으로 공정하고 적정한 자원 배분은 어떤 것인가?
스미스는 자원을 배분하는 가장 공정한 메커니즘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최고의 판단가라는 얘기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최상의 자원 배분은 자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사회가 달성 가능한 부를 감소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설파했던 허치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관한 견해는 당시로 보면 과격했다. 다시 말해, 경쟁적인 시장이야말로 사회의 자원을 배분하는 데 가장 도덕적으로 공정한 메커니즘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내버려 두면 이기심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기대하는 저녁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에서 나온다."
더구나 이윤 동기와 경쟁의 결합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개인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자본(봉급)이 얼마든 간에 가장 유리한 일자리를 구하려고 계속 노력한다."
스미스는 개인들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 이 사회를 전반적으로 윤택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은 그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 행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자신이 애초 뜻하지 않았던 목적(사회적 이익)의 달성을 촉진하게 된다. ...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사회적 이익을 촉진하려고 하는 경우보다 더 효과적이다.
이 사회에 효과적인 자원 배분이라는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경쟁적인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다.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공급이 너무 적다면 가격은 올라가게 되고, 그 경우 생산자는 생산을 늘리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게 된다. 반대도 가능. 이렇게 해서 어떤 지점에 이르면 시장은 상호 반대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가격에 도달한다. 즉,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고 시장은 깨끗이 정리된다.
건강한 균형
경제가 자연스럽게 수렴되면서 균형점을 갖는다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 경제학의 핵심 개념으로 남아 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경제에 서로 상충하는 힘 또는 긴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17세기 금융가 캉티용에게, 경제의 핵심적인 긴장 관계는 인구와 가용한 토지 사이에서 비롯됐다. 캉티용은 과잉 인구와 기아라는 야만적인 메커니즘이 임금과 가격을 스스로 조정되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균형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18세기 프랑스의 지식인 케네에게 핵심적인 긴장은 농업, 제조업 그리고 토지를 소유한 상류 귀족 사회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경제표'(본질적으로 경제의 흐름도를 나타낸 것)를 가지고 경제를 균형 상태로 만들 가격과 생산 수준을 계산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18세기 의학에서 체액들이 균형 상태에 있으면 몸이 건강하다고 했듯이, 균형 잡힌 경제는 건강한 경제를 의미했다. 스미스는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비롯되는 핵심적인 긴장, 즉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고 봤다.
스미스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달성하는 데 시장의 역할을 설명해 냈지만 이기적인 공급자들의 공급량과 이기적인 소비자들의 수요량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자크 튀르고는 루이 15세 정부의 각료를 지냈으며, 이른바 자유방임주의, 즉 정부는 시장의 작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튀르고의 이런 견해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정부는 경제 운용에 매우 많이 간여하고 있었다. 당시 튀르고가 맡은 임무는 식량 부족 문제를 다루는 일이었다.
농부가 씨뿌리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땅을 갈면, 훨씬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농부가 땅을 열심히 가꾸면 가꿀수록 그가 얻게 될 수확량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농부가 투입한 추가적인 노력의 단위에 비해 그가 거두게 되는 수익은 점점 적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관찰에 기초해서 오늘날 '수확 체감의 법칙'을 설명해 냈다.
무엇이든 간에 대부분의 생산 과정에 한 특정 요소(노동, 원료, 기계류)를 보다 많이 투자해도 어떤 수준에 이르면서부터는 들어가는 돈(투입)에 부합되는 가치(산출)가 점점 더 적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수확 체감의 법칙은 경제가 균형을 달성하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가격이 주어지면 생산자는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말해 산출물 한 단위를 더 늘리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입보다 커질 때까지 투입을 계속 늘려 생산을 확대할 것이다. 튀르고의 법칙은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우선 공급과 생산자 비용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개념을 제공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수요 측면에서 튀르고와 비슷한 중요한 업적을 만들었다. 벤담은 이기심의 추구는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계산법을 토대로 한 합리적인 활동이라는 논리를 폈다. 벤담은 개인의 즐거움과 고통을 측정하기 위하여 '효용 utility'이라는 하나의 양적 지표를 생각해 냈다. 그는 경제적 선택이란 어떤 행동이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들의 계산 결과라고 주장했다. 당시 효용주의자들은 사회는 집단적 효용, 즉 행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조직화돼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하인리히 고센은 벤담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튀르고 법칙의 반대쪽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튀르고가 생산을 증대시켜도 이익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듯이, 고센은 소비를 증대해도 효용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배고파서 도넛을 하나 산다면, 그 소비는 꽤 큰 만족, 즉 큰 효용을 가져다 줄 것이다. 두 번째 도넛을 샀다면 이 또한 만족감을 주겠지만,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그 효용은 처음보다는 작을 것이라는 의미다. 마치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생산을 늘리고,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을 줄이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더 먹을 가치가 없다며 소비를 중단하는 바로 그 수준도 가격에 따라 더 높아지거나, 더 낮아진다. 따라서 수요는 가격이 오르면 떨어지고, 그 반대면 올라간다. 또 한계 수익 체감이 농부로 하여금 무한대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만들듯, 한계 효용 체감은 소비자들이 무한대의 도넛을 소비할 수 없게 만든다.
생산에서의 한계 수익 체감과, 소비에서의 한계 효용 체감을 결합하게 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가격이라는 균형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가격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결론적으로, 경제학의 고전파 시대는 시장이 어떻게 소비자의 수요와 생산의 경제학이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양쪽을 만족시키는 어떤 지점에 이르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어떤 상품과 효용 구조, 그리고 생산 과정이 모두 주어졌다고 가정할 때 가격은 정확히 얼마인가? 우리는 이 가격을 계산해 낼 수 있는가? 또는 예측할 수 있는가?
새로운 과학을 향한 꿈
고전파 경제학의 연구에 뒤이어 등장한 것이 이른바 한계주의자 시대다. 이 시기의 핵심 인물은 레옹 발라다. 대단한 과학 숭배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19세기에는 두 가지 큰 도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완전한 이론의 창출과 경제학에 관한 과학적 이론의 창출이었다. 발라의 아버지는 미분학을 경제학에 응용할 경우 '천문학적인 힘에 관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힘에 관한 과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발라는 이 영감을 기반으로 1872년 <순수 경제학 요론>을 완성했다. 그 동안 경제학은 수학적 영역이 아니었다. 발라와 그의 동료 한계주의자들은 이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그들은 위대한 진보의 시대에 살았다. 17세기 뉴턴의 기념비적인 발견에 뒤이어 라이프니츠, 라그랑주, 오일러, 해밀턴 등 일련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미분 방정식을 이용한 새로운 수학적 언어를 개발하여 놀라울 정도로 넓은 영역에 걸쳐 자연현상들을 설명해 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인류를 좌절케 했던 문제들, 예컨대 행성의 이동에서부터 바이올린 줄의 진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가 갑자기 풀려 버렸다. 이런 성공은 과학자들에게 어떤 자연현상도 방정식으로 설명해 낼 수 있다는 무한한 낙관론을 갖게 했다. 똑같은 수학적 기법을 응용할 경우 경제에서도 인간 심리의 움직임을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발라는 경제 시스템의 균형점과 자연에서의 균형점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자연의 많은 시스템들은 균형점을 갖고 있다. 수학을 경제학에 도입한 발라의 의도는 경제 시스템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불안정한 균형은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조그만 변화가 와도 시스템을 흔들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이 여러 균형점들을 갖고 있을 경우 그 시스템이 어떤 균형점에서 머물게 될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고, 많은 경우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발라는 예측 가능성을 원했다. 그것은 그가 단일의 안정적인 균형점을 필요로 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발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 상징적으로 물리적 균형 시스템에서의 힘의 균형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마치 공이 그릇의 매끄러운 바닥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듯이 시자에서의 가격도 하나의 균형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일부 비판가들은 물리학에서 균형을 차용한 것이 경제학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과학적 실수였다고 이야기 한다.
제품들은 저마다 효용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거래를 원하게 된다. 발라는 거래에 대한 이런 욕망을 시스템이 균형에 있지 않다는 하나의 신호로 간주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만족하는 상품의 배분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처음 상태에서 보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옮겨 갈 수 있도록 거래를 위한 가격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렇게 이동한 새로운 상태는 균형을 이룰 것이다.
발라는 경매 과정을 탐색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타톤망이라고 불렀다. 경매인이 서로 다른 제품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가격들을 시험해 보면서 일반 균형점을 모색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효용을 가지며, 또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서 효용을 최대화할 것이라는 발라의 가정을 수용한다면 수학의 정밀성을 활용해 사람들이 어떻게 거래를 할 것인지와 경제에서 설정될 상대 가격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과 같은 경매인의 존재, 그리고 어떻게 개인들의 효용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등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발라는 이런 이슈들은 미래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쨌든 발라가 수학적인 예측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상추 관계를 적극적으로 설정한 것은 다음 세기에 걸쳐 경제학자들이 따르는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력과 같은 수준의 예측 가능성
당시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겠다는 영감을 가지고 물리학을 파고든 경제학자는 발라뿐이 아니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경제학이 하나의 수리과학이 될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제번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중력과 매우 흡사한 하나의 힘으로 보았다.
효용은 한쪽에는 원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원하는 물건이 있을 때만 발생한다. ..... 물체의 중력이 질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의 질량들, 그리고 상대적인 위치와 거리 등에 의존하듯이 효용도 원하는 존재와 원하는 물건 사이의 끌어당김이다.
제번스는 벤담의 효용 개념과 고센의 한계 효용 체감 이론을 소비에 적용했고, 1871년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물리학의 '장이론'으로부터 유래된 방정식을 사용해 철학적 개념에서 나온 벤담과 고센의 아이디어들을 수학적 모델로 바꾸어 놨다.
요약하자면 제번스는 인간의 행동을 중력처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떤 물체가 중력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예측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 그리고 그 물체의 이동과 관련한 제약 조건의 형태가 그것이다.
제번스의 개념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바로 그 중력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복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한 자원을 가진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제약 조건이 된다. 따라서 유한한 자원이라는 제약 조건에서 우리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조합을 찾아내는 요령이 필요하다. 발라의 모델은 거래를 통해 바로 그런 조합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와인과 치즈라는 두 가지 상품으로 구성된 경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 각자는 와인과 치즈의 전체 양이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한 가장 큰 만족을 제공하는 와인과 치즈의 양을 보유할 때까지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경제적 선택을 제약 조건하의 최적화, 다시 말해 여러 제약 조건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화 문제로 표현한 것도 제번스의 업적이다. 즉, 가용한 양이 주어지면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줄 상품들의 조합을 계산해 낼 것이라는 얘기다. 제번스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개인 간 효용의 차이는 거래를 위한 일종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저서 <경제학의 이론>에서 "우리의 과학(경제학)에서 가치의 개념은 기계학에서의 에너지 개념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릇에 있는 공이 그릇 표면들이라는 제약 조건하에서 최소한의 에너지 상태를 찾아가듯이 인간들은 유한한 자원이라는 제약 조건하에서 최대한의 행복 상태를 추구하며, 그런 행복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거래를 한다.
팡글로시안 경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을 균형 상태, 즉 모든 가격이 조정되면서 거래가 이루어져 시장이 깨끗이 정리되는 안정 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발라는 이런 균형 상태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하나의 균형점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제번스는 사람마다 효용이 다르고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각자 자신의 행복을 최대화하려고 불가피하게 스스로 거래에 나서면서 시장은 균형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사실은 더 멀리까지 나갔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 이기심이 시장을 균형으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이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파레토는 당시 물리학에 대해서는 발라와 제번스만큼이나, 아니 그들보다 훨씬 정통했다. 파레토는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파레토 최적'에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붙임으로써 경제학의 세계에서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이래로 경제학자들은 내내 경쟁적 시장이 사회적 후생을 정말 최대화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제번스가 효용에 관한 이론적 분석을 크게 발전시켰지만 효용은 측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사람들의 두뇌 안에 들어가 효용을 측정하고 또 이를 합산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적 후생이 정말 상승했는지, 또는 최대화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파레토는 독창적인 논리적 주장을 펴면서 이 문제를 극복해 냈다. 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래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윈윈 거래로서,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 이득을 보는 경우다. 이 경우 후생은 증가한다. 두 번째, 한쪽은 이득을 보고,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지 않는 거래다. 이 경우에도 후생은 증가한다. 세 번째, 누구도 이득을 보는 이가 없는 가운데 특정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경우다. 이 경우 후생은 감소한다. 네 번째, 어떤 이는 이익을 보고 어떤 이는 손해를 보는 거래다.
효용을 직접적으로는 측정하지는 못하지만 효용의 순 증가 내지 순 감소 등 그 영향이 어떠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파레토는 거래에 동의하는 두 명의 사람이 있을 경우, 또 그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그들은 윈윈 또는 최소한 한쪽이 이득을 보더라도 다른 한쪽은 손해를 안 보는 거래에만 관여할 것이고, 그 결과 참여자들의 전체 후생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래는 후에 '파레토 우위' 거래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파레토는 자유 시장에서 모든 파레토 우위 거래가 소진될 때까지 사람들은 거래를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손해를 보게 되면 그 지점에서 거래는 멈출 것이고 시장은 하나의 균형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다. 이 균형점을 '파레토 최적'이라고 불렀다. 파레토 최적은 어느 누군가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는 균형점을 가리킨다.
한계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시장 경제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가용한 자원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한 만족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자유롭게 거래를 한다. 이런 거래를 통해 경제는 자연스럽게 정지 지점인 균형에 이르게 된다. 발라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의 순수한 경제학 이론은 모든 면에서 물리수리과학과 닮은 과학이다." 제번스는 자신이 '도덕적 결과에 대한 계산법'을 만들어 냈다고 믿었다. 그리고 파레토는 이렇게 선언했다. "경제과학의 이론이 이로써 합리적인 기계학의 엄격함을 획득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한계주의자들은 경제학을 진정한 수리과학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신고전파적 종합
20세기에 들어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신전은 한계주의자들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더욱 굳건해졌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제번스의 고립된 단일 시장 모델(부분 균형)과, 서로 연결된 시장을 대상으로 한 발라의 모델(일반 균형)을 연결시켰다. 마셜은 또 공급과 수요 곡선을 그래프로 처음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후 미국인들과, 히틀러의 유럽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의 세대가 오늘날 '신고전파적 종합'이라고 불리는 현대 경제 이론의 핵심을 만들어 낸다. 그 시대의 가장 저명한 두 명의 인물은 폴 새뮤얼슨과 케네스 애로다.
새뮤얼슨은 본질적으로 힉스의 종합 이론을 채택하고, 여기에 자신의 독자적인 창의력을 추가함으로써 현란한 수학적 이론을 완성했다. 이는 바로 시장의 작동에 관한 표준 모델이 되었다. 새뮤얼슨이 만들어 낸 핵심적 돌파구 중의 하나는 벤담 이래로 경제학자들을 괴롭혀 왔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사실 효용은 경제 이론의 핵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고, 관찰할 수 없으며, 측정할 수 없는 양적 개념이었다. 파레토와 힉스는 효용은 단지 상대적인 의미, 예를 들어 '나에게 사과는 오렌지에 비해 효용이 두 배다'라는 식의 의미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상대적인 효용조차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뮤얼슨이 내놓은 답은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며 효용을 직접 측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선호를 드러낸다고 새뮤얼슨은 생각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 행동이 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는 가정뿐이라고 했다.
사과는 오렌지보다 효용이 두 배다 라는 식의 얘기는 못해주지만 그 사람이 '사과를 오렌지보다 선호한다'고는 분명히 알려 준다. 새뮤얼슨은 수요 이론을 정립하는 데는 이런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새뮤얼슨은 사람들의 선호에 순서를 매기는 기본적이고 논리적인 규칙들을 가지고 기존의 효용 이론을 대체시켰다. 이 규칙들은 전통 경제학에서 소비자 행태 이론의 기초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경제적 선택을 할 때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개념의 중추가 되었다.
애로와 드브뢰는 일반 균형에 대한 발라의 개념과 파레토의 최적성 개념을 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일반 균형에 대한 신고전파 이론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정리를 통해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시장들은 경제 전체적으로 파레토 최적인 가격 체계 위에서 함께 자동적으로 조정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는 시장에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도 마찬가지임을 증명했다. 이런 자동 조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시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들은 다른 제품들의 대체재 역할을 할 능력을 갖고 있고, 또한 다른 제품들이 이 제품의 보완재로서 함께 소비되는 경향도 보인다.
이는 상품들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애로와 드브뢰는 가격은 경제 전반에 걸쳐 공급과 수요에 관해 신호를 보내는, 마치 신경 체계와 같이 움직인다고 봤다. 그리고 이기적인 인간은 그런 가격 신호에 반응하게 되고, 이것이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최적인 균형점으로 유도해 간다는 얘기다. 보이지 않은 손은 정말 강력하다.
애로와 드브뢰가 일군 일반 균형 이론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이렇게 강력한 결과들이 몇 가지 공리를 토대로 나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가정들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정리는 모든 사람은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을 최소한 어느 정도씩은 갖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또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선물 시장이 존재한다는 가정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의사 결정 대안들을 따질 때 지극히 합리적이며, 미래에 일어날 모든 상황에 대한 확률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들은 단순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며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다루어질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몇 가지 간단한 공리들만 가지고 엄격하게, 수학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결과, 즉 경쟁적인 시장에서 작동하는 합리적인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를 최적 상태로 이끈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는 점이다.
1954년 두 사람의 정리가 발표됐을 때 경제학자들은 큰 돌파구가 마련됐다며 매우 환호했다. 이 정리는 시장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수학적 증명으로 해석됐다. 애로와 드브뢰의 모델이 현실 경제를 고도로 단순화한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모델은 독점적 산업, 노조, 정부 규제, 세금 등 현실의 경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빠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가 왜곡이나 간섭 없이 완전 경쟁이라는 이상적인 상태에 가까이 도달할수록 최적 균형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는 점이다.
1960~1970년대에 밀턴 프리먼, 로버트 루카스와 같은 이른바 시카고 경제학자들은 신고전파 미시 경제학의 기법들을 거시 경제학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소비자들이라든지 최적 균형과 같은 개념들이 전통적인 거시 경제 이론에서도 핵심 부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분배에서 성장으로
1장 전반부에서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큰 문제, 즉 부는 어떻게 창출되며, 그 부는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해 쭉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시대에서 새뮤얼슨과 애로의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실 첫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에 의해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발라, 제번스, 그리고 파레토의 모델들은 경제는 이미 존재하고, 생산자는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들 모델들이 다룬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주려면 경제에 존재하는 유한한 부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유한한 자원의 배분에 초점을 맞춘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물리학에서 차용한 균형 방정식의 경우 배분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는 이상적이었지만 이를 성장에 적용하는 것은 그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균형은 그 정의상 정지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성장은 변화와 역동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균형과 성장 사이의 모순을 인식한 중요한 인물은 바로 조지프 슘페터였다. 슘페터는 부의 배분에 관해 동시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균형 개념에 대해 동조적이었지만 성장의 문제를 답하는 데도 이것이 딱 맞는 이론적 틀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생산에 대한 신고전파적 견해는 매우 정태적이었다. 기업들의 기술 및 제품 세트는 고정적이라 가정했다.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생산량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슘페터는 경제 성장은 단순히 이미 생산되고 있는 제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관찰해 냈다. 즉, 혁신의 역할이 있다는 얘기다.
신고전파는 혁신을 외부적인, 또는 외생적인 요소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연구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는 임의의 변수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슘페터는 혁신을 경제의 내부적이고 내생적인, 그리고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슘페터는 성장이 일어나려면 "달성될 수도 있는 모든 균형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 경제 시스템 내에"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슘페터에게 그런 에너지의 원천은 기업가였다. 기술 진보는 일련의 돌발적인 발견들로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들을 상업화하려다 보면 자금 수요에서부터 견고한 관습과 고정관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슘페터의 이론에서 기업가는 댐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혁신의 홍수를 터뜨리고 이를 시장으로 쏟아 보낸다.
이렇게 성장은 지속적인 흐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슘페터의 유명한 표현처럼 '질풍처럼 밀려오는 창조적 파괴' 형태로 경제에 다가온다. 그러니까 슘페터식 부의 창조는 포드, 에디슨, 잡스 같은 사람들이 악조건과 싸워 기술을 마침내 상업화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킬 때 일어났다.
슘페터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역사의 이론'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단지 기술적으로만 표현했을 뿐 엄밀한 수학적 형태로 바꾸지 못했다. 이는 슘페터의 아이디어가 수학적인 신고전파의 분석 틀과 융합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런 수학적 결여로 인해 솔로가 나타날 때까지 40년 동안 성장 이론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솔로는 신고전파 이론의 예측 가능성, 다시 말해 그릇 안에 있는 공의 사례와 같은 그런 예측성과 성장 문제를 융합하려고 했다. 성장에 관한 초기의 수학적 연구는 꽤 단순했다. 자본의 생산성, 즉 투자가가 도구, 기계 그리고 장비와 같은 자본재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수익은 일정하다고 가정했던 것이다. 이 가정은 명백히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변화는 자본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혁신을 균형을 파괴하는 힘으로 보았던 슘페터와 달리 솔로가 제시한 모델은 신고전파 이론과 일치하고, 경제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혁신을 설명하고자 했다.
솔로는 경제 역시 성장을 하더라도 균형 상태에서 평형을 이루는 것으로 봤다. 그는 자신의 모델에서 두 가지 중요한 변수를 외생 변수로 놓았다. 인구 성장률과 기술 변화율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성장률을 좌우한다. 비유를 하자면 이 두 가지는 사람이 페달을 밟는 에너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솔로는 저축률과 자본 총량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은 인구 성장과 기술 변화에 반응하여 자동적으로 이에 균형을 맞추어 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치 서커스 배우가 균형을 잡기 위해 장대를 이동하듯이 말이다.
솔로 모델에서 균형을 잡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역할은 바로 노동과 자본 시장이 떠맡고 있다. 이들 두 시장은 경제가 성장할 때에도 모든 것이 파레토 최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도록 작동한다.
솔로의 모델은 국가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본이 얼마나 생산적이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솔로에 따르면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은 기술이다. 기술 향상이 자본을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것이 다시 높은 저축률로 이어져 보다 많은 자본 투자를 하게 하는 그런 선순환을 통해 부유해진 것이다. 기술 진보가 없다면 자본은 단지 인구에 비례해서 증가할 뿐이고, 1인당 부는 똑같을 것이다. 오늘날의 지식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기 오래 전인 1956년에 솔로는 이미 지식 경제를 발견했던 것이다.
1980년대 경제학자 폴 로머가 이끄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은 솔로 모델에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이끄는 기술이 외생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로머 역시 성장을 위한 에너지는 경제에서 내생적인 변수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0년에 발표된 로머의 한 논문은 '내생적 성장 이론'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로머는 성장을 위한 에너지의 원천을 영웅적인 기업가가 아니라 기술 그 자체의 특성에서 찾았다. 기술은 누적이고, 가속화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의 지식 기반은 더욱 확대되고 다음에 올 발견으로 얻게 될 수익도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지식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수확 체증 현상'을 말한다. 18세기에 자크 튀르고는 대부분의 생산 공정은 '수확 체감'이라는 반대의 특성을 보여 준다고 했다.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간에 대부분의 생산 공정을 보면 많이 투입할수록 한계 수익은 점점 더 적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술을 생산하는 경우에는 이 논리가 뒤집어진다고 로머는 주장했다. 즉, 지식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식이 누진적으로 축적되고, 그리 되면 수익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로머는 자신의 모델에서 이른바 '양의 되먹임 고리'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일종의 '선순환'으로 사회가 기술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사회는 더 부유해지고 수익도 더욱 많아져 기술에 더 많이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결과는 '무한대의 기하급수적 성장'이다.
전통 경제학의 유산
20세기말쯤 신고전파 패러다임은 완전히 전통 경제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합리적이고 최적화하려는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진 경제 세계에서 선택을 하고, 이런 선택들은 수확 체감에 의해 제한을 받는(기술 투자는 예외적이지만) 개념들이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과 제약 조건은 경제를 파레토 최적에 해당하는 균형으로 이끌게 된다.
경제적 분석의 방법론으로는 수학적 증명이 지배적이었다. 솔로가 개척한 '신성장 이론'은 부의 창출에 관한 큰 의문에 답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애로와 드브뢰의 신고전파적 일반 균형 이론도 부의 배분에 관한 의문에 표면상으로는 답을 내놨다.
결론적으로 20세기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작동을 묘사할 수 있는 엄격하고, 잘 정의된 수학적 모델들을 창출하겠다는 야심을 실현했다. 미시와 거시적 관점들을 신고전파 패러다임 아래 완벽히 통합하겠다는 꿈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일관된 하나의 분석 틀과 가정으로 개인들의 의사 결정에서부터 국가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전통 패러다임은 의심의 여지없이 공공 정책, 기업, 그리고 금융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 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자,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전통 경제학과 모델에 의존하여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큰 영향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힐덴브란트는 일반 균형 이론을 '고딕 대성당'에 비유한 적이 있다.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뛰어난 건축가'라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성당은 너무도 불안한 기반 위에 세워졌다.
3. 비판적 고찰 : 혼란과 쿠바의 자동차
역사적으로 과학은 우주를 가능한 한 가장 작은 조각으로 쪼개는, 위에서 밑으로의 요소 환원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여 은하수 수준에서 시작해 원자핵을 이루는 아원자 입자들로 이동하면서 궁극적인 법칙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산타페 연구소 과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접근법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은 그 성질상 복잡계 또는 복잡 시스템들로서 집단적이고 창벌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으므로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유기체를 연구하는 화학에서 하듯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그룹은 판단했다. 유기체는 요소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전체가 개별 요소들의 합보다 더 큰, 복잡 시스템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에 답하려면 유기체를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수십억 개의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해 생명이라는 복잡한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아래에서부터 위로 가는 방식의 이해가 필요하다.
뇌, 생태계, 인터넷, 그리고 인간 사회를 비롯한 광범위한 현상들에서 이렇게 전체는 구성 요소들의 단순한 합보다 더 크기 때문에 앞서 말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고 이 그룹은 느꼈다.
리드는 산타페 연구소에 대한 애덤스의 설명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1987년 리드와 시티코프는 경제학에 관한 학제적인 워크숍을 지원하기로 했다.
거장들의 충돌
미팅 한쪽 편에는 케네스 애로를 팀장으로 한 10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진을 쳤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필 앤더슨을 팀장으로 물리학자, 생물학자, 그리고 컴퓨터 과학자 등 10명이 배치됐다. 나중에는 쟁쟁한 학자들이 더 참가하였다.
양쪽은 각각 해당 분야의 현재 동향을 설명한 다음 열흘 동안 경제적 행태, 기술 혁신, 경기 사이클, 그리고 자본 시장의 작동 등에 관한 논쟁을 펼쳤다. 경제학자들은 물리과학자들의 아이디어와 기법에 흥분했지만 과학자들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순진하고 약간은 거만하기조차 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과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수학적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동시에 경제 문제의 어려움에 진정으로 놀라워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정말 충격을 준 것은 경제학이 또 다른 시대로 후퇴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물리학자에게는 바로 쿠바 자동차와 유사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과학자들 눈에 경제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적 진보와의 접촉 없이 그 자신의 지적 엠바고 아래서 나름대로 이론을 수정, 확장 또는 갱신하면서 굴러온 것처럼 보였다. 물리학자들이 본 것은 바로 발라와 제번스의 유산들이었다. 경제학에서 패커드와 데소토 같은 수학적 유물들을 100년 전에 물리학 교과서에서 한계주의자들이 차용하였던 바로 그 방정식과 기법들이었던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단순화시킨 가정들을 자신들의 모델에 사용하는 방법에 또 한 번 놀랐다. 갈릴레이 시대 이후부터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분석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완벽한 구, 이상적인 기체와 같은 단순화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것이 현실 세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할 정도로 신중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또 이 가정들이 자신들의 이론에서 도출된 결론에 중요한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검정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과학자들이 보기에 극단적으로 가정을 활용하거나 가정에 너무 의존했다.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 중 하나는 경제학자들의 완전 합리성 가정이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이 모든 정보들을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계산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토대로 기초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함으로써 인간 행태를 단순화했다.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충격을 받았다. 가정에 대한 테스트는 현실과 부합하느냐가 아니라 이 가정이 이 분야의 공통적인 흐름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필 앤더슨이 "경제학자들 당신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궁지에 몰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가정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곧바로 응수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당신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가정들
푸앵카레는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은 인간을 무한히 이기적이고 무한히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첫 번째 가정은 그런대로 인정될 수도 있지만 두 번째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시 선도적 과학자들은 경제학이 보다 수학적이고 엄격해지려고 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방정식을 풀릴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을 던져 버리는 것은 가야 할 길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런 비판들을 무시했으며 신고전파 경제학을 구축하는 프로그램은 빠른 속도로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밀턴 프리드먼은 이 논쟁을 다시 촉발시켰다. 경제 이론에서의 비현실적 가정은 그 이론이 예측을 정확히 하는 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몇 년 후 허버트 사이먼은 이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과학적 이론의 목적은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하는 데 있다. 예측은 이 설명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대한 테스트다. 그러나 테스트하려면 궁극적으로 도출된 결론만이 아니라 설명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를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판가들의 눈에는 전통 경제학의 많은 가정들이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적합한 큰 단위의 지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발라와 제번스를 시작으로 경제학자들은 완전한 합리성, 신과 같은 경매자의 존재 등과 같은 가정들을 임의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오로지 균형이라는 수학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너무도 단순한 세계, 굉장히 영리한 인간
전통 경제학의 모든 가정 중에서 아마 가장 강력하고,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델이다. 종종 완전한 '합리성'을 가리키는 이 모델은 두 가지의 기본적인 가정 위에 세워졌다. 첫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그 이기심을 대단히 복잡하고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제학자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사람들이 계산해 정보를 처리한다고 가정한다는 이야기.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종종 불완전하거나 모호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또 정보가 더 필요한 경우 시간과 돈을 들여야 그것을 얻을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복잡한 논리적 계산에는 사실 꽤 서툴지만 패턴을 재빨리 인식하거나 모호한 정보를 해석하고 학습하는 데는 매우 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잘못하기도 하고, 편견 때문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사이먼이 말한 "적당한 만족"에 관심이 있다. 즉, '절대적인 최선'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결과를 찾는다는 얘기다. 정보가 그 획득에 비용이 들고, 불완전하며,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우리의 뇌가 '완전한 최적'보다는 '충분히 좋은' 것을 빨리 고르는 의사 결정 쪽에 맞추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최근 들어 주류 경제학자들도 전통 경제학자 가정들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연구 결과들을 동시에 수렴해 정말 현실 세계에서 현실적인 사람들을 전제로 한 모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균형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한두 개의 가정을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균형 수학의 한계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진실로 현실적인 모델을 원한다면 전통 경제학의 이론적 틀로부터 보다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
전통 경제학이 균형을 위해 지불한 또 다른 대가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이다. 대부분의 전통 경제 모델은 실제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는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순간적으로 이동하며, 균형 간의 이행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고 간단히 가정해 버린다.
그러나 시간은 현실 세계의 경제 현상에서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중요한 변수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수송하고, 팔고, 정보를 얻고,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젊은 경제학자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20달러짜리 지폐를 보고는 "저기 보세요. 20달러짜리 지폐가 땅에 떨어져 있어요!"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노숙한 경제학자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돼. 만약 20달러 지폐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면 누군가가 벌써 주워 갔을 거야."
물론 그동안 동적인 측면을 전통 이론에 도입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 행동에 관한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동적인 측면과 현실 세계의 시간 척도를 전통 경제학의 균형 개념과 결합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외생 변수로 돌려라
전통모델이 시간에 관한 명시적 개념을 포함하지 않고 경제의 변화를 어떻게 다루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단순화를 위해 하나의 외생적 투입 요소로서 인구 전망표를 만들고는 끝내 버린다. 전형적인 외생 변수로는 소비자 취향 변화, 기술 혁신, 정부의 새로운 조치, 기후 등이다.
하나의 충격이 가해지면 새로운 균형이 생기고, 또 다른 충격이 가해지면 또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경제는 하나의 임시적 균형에서 또 다른 임시적 균형으로 이동해 간다.
그러나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하나의 피난용 비상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자들은 이런 접근 방식을 이용해 가장 어려우면서도 종종 가장 흥미로운 궁금증들을 경제학의 경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술 변화를 돌발적인, 외부의 힘(기후처럼)으로 취급하면 기술 변화와 경제 변화 간의 상호 작용에 관한 근본적인 이론은 필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경기 사이클도 외부의 힘, 예컨대 소비자 신뢰의 변화라든지 뉴스에 따른 주식 시장 폭락 등과 같은 신비스러운 바깥의 힘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내생적인 요소들이 정말 중요한 경제적 행태를 몰고 온 것처럼 보인다. 내부적인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 못 하면 시장 붕괴나 침체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어디엔가 모델의 경계선을 그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 전통 경제학이 균형이라는 엄충한 굴레에 묶이는 한, 모델들은 가장 흥미롭고 근본적인 의문들을 외생이라는 이름의 담장 밖에 방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뚜껑을 덮어라
전통 경제학 이론은 장기 개념을 들고 나와 이 기간 내에 모든 수확 체증이 스스로 소멸되면서 경제는 안전하게 균형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장기라는 게 끝내 끝나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한 패션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패션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어찌 되는가? 누군가가 웹을 서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구글을 만들어 내면 어떻게 될까? 어떤 투자가들이 여전히, 심지어 버블 붕괴를 목도한 이후에도 자신들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또 어떻게 될까? 경제와 같은 시스템에는 항상 활기를 북돋울 양의 되먹임을 불러오는 새로운 원천들이 있다. 현실 세계에는 장기란 없다. 케인스는 이런 유명한 표현을 했다.
이 장기란 것은 현재의 일들을 자칫 오도하는 역할을 한다. 장기로 가면 우리 모두는 죽고 없다. 경제학자들은 지금 폭풍우 치는 계절에 폭풍이 지나간 뒤 한참 시간이 흐르면 바다가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는 정도를 말할 수 있는 너무도 쉽고, 쓸모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세계 경제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균형이라는 박스 안에 집어넣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증거 없는 전제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경제 시스템처럼 보이는 모델을 만들려면 최근까지도 전통 경제학이 전혀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특별한 개념, 즉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성 테스트
많은 사람들은 경제학의 과학적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 성장, 이자율,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같은 것들에 대한 예측에서 보여 준 너무도 나쁜 성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과학에 대한 보증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설명하는, 다시 말해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 주는 능력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과학은 연구자들이 반드시 정확한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고 또 그 설명의 타당성을 검정할 수 있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생물학자는 단백질의 굴곡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물리학자는 요동치는 유체의 정확한 움직임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연속적인 학습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설명들의 주장은 검정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거들이 축적된다. 과학은 다양한 설명을 제안하고 검정이 가능한 방법으로 엄격히 표현하며, 검정에서 떨어진 이론은 제거당하고, 이를 통과한 이론은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 보자. 전통 경제학의 예측은 데이터에 의해 얼마나 잘 뒷받침되는가? 대답은 "별로"다. 키르망의 지적처럼 전통 이론이 데이터와 모순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많은 이론들이 적절한 검정을 받은 적이 없다. '계량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경제학의 한 영역도 통계적 상관관계는 현상들에 대한 인과적 상관관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종종 이론을 테스트해 볼 적시에 이용 가능한 데이터가 없고, 이용 가능한 데이터들이 있다고 해도 잡음이 끼여 있거나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 경우가 빈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분야에서 전통 이론은 엄격한 테스트를 거쳤다. 우선 하나는 금융 이론이다. 금융 시장에서 매분 나오는 데이터와 엄청난 계산 능력은 전통 이론에 대한 전례 없는 수준의 검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통 경제학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데이터와의 만남을 계기로 전통 이론들이 제시했던 기초적 예측들을 반박하는 일련의 연구들이 계속 쏟아지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실험 경제학이다. 실험을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 전반에 걸쳐 실험을 행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소규모로 경제에 관한 실험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연구자들은 협상, 경매, 게임, 가상 주식 시장에서의 투자, 가상 상점에서의 쇼핑, 기타 인위적으로 만든 모든 종류의 상황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인간 행동의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한다. 그 결과 풍부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데이터와의 만남은 전통 경제학의 많은 핵심적 아이디어에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공급과 수요, 법칙인가?
전통 경제학의 가장 오래된 원칙 중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현실에 대한 1차 근사적 차원에서 보면 이 이론은 꽤 잘 작동한다. 그러나 보다 세밀한 수준으로 들어가면 현실 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같아지는 상황에 결코 있지 않으며 시장은 거의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은 결국 법칙이 아니다. (최소한 과학적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보다는 '공급과 수요에 대한 개략적인 근사적 표현' 정도가 적절하다.)
일물일가 법칙
수송 비용과 거래 장벽이 없다면 동일한 제품들은 모든 시장에서 같은 가격에 팔려야 한다는 법칙이다.
유럽 연합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유로가 도입된 이후 가격 차이는 더 벌어졌다. 유로 지역 내 가격의 표준 편차는 1999년 12.3%이던 것이 2003년에 13.8%로 증가했다. 일물일가 이론의 예측과는 정반대가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소비자들이 합리적이지 않은 탓으로 돌렸다.
전통 미시 경제학의 이론적 세계에서 그런 기회는 즉각 차액을 노린 거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차액 거래의 기회를 발견하고 왔다 갔다 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실제로 그런 거래를 할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며, 또 차액 거래를 하는 데 여러 가지 거래 장벽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장벽이건 거의 존재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가격 수렴을 둘러싸고 과학적으로 제기되는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차액 거래를 하려는 유인과 변화하는 다양한 장벽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가이다. 그러나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이 요구하는 수학적 조건들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이런 복잡성을 떼어 내버리고 일물일가 법칙이라는, 예측력이 의문스러운 이런 '법칙'만 남겨 둔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균형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예측은 전체 경제 어디에선가 균형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경제가 균형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균형에 머무르는 시간은 또 얼마일까? 스카프의 연구 결과를 사용하면 경제가 외부 충격을 받은 후 균형에 도달하기까지는 4.5 x 10의 18승 년이 걸린다. 이 우주가 나이로 따질 때 약 120억 년밖에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나는 셈이다.
비랜덤워크
전통 금융 분야에서 잘 알려진 예측 중 하나는 주식 시장이 '랜덤워크'를 따른다는 이론이다. 랜덤워크란 가격의 움직임에는 어떠한 패턴도 없으며, 과거의 가격을 보더라도 미래의 가격과 관련한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수십 년간 연구자들은 가격은 실제로 랜덤 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보다 좋은 데이터, 보다 강력한 도구를 활용한 최근의 분석들은 가격이 랜덤워크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주식 가격 데이터에는 확실히 동적인 구조와 정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정보로부터 누가 체계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없는지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전통 경제 이론의 예측들이 대개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공급은 근사적으로 보면 수요와 일치한다. 가격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때로 수렴한다. 시장은 현실적으로 보면 결코 균형에 도달할 수 없지만 마치 균형이란 형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다. 시장이 더 이상 조용하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 때까지는 마치 랜덤워크를 따르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나타난다.
프리드먼의 대항마로서 허버트 사이먼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이 고도로 복잡한 수학적 법칙들의 구성체로 발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법칙들은 실증적인 현상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그것도 대개 정성적인 관계만을 보여 줄 뿐이다.
전통 경제학은 취약한 가정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으며, 따라서 여기서 나온 결론도 똑같이 취약하다.
잘못된 은유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데 뛰어나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 대해 이해를 하거나 논리를 펼 때 은유법을 활용한다. 과학도 은유법을 활용한다. 창의성을 자극하거나 복잡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발라가 푸앵소의 물리학 교과서를 읽고 나서 물리 시스템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에 관한 개념과 경제 시스템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에 관한 개념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은유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학의 균형 개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학과 경제 시스템 간 피상적인 유사성에 기초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경제 시스템은 정말 말 그대로 균형 시스템인가? 그렇다면 균형 시스템들의 보편적인 특성들을 과연 공유하고 있는가? 달리 말하면 전통 경제학에서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은 단지 하나의 은유에 불과한가, 아니면 과학인가?
설익은 물리학
불행히도 발라가 경제학을 과학으로 바꾸겠다는 사명을 가졌을 당시의 과학은 중요한 개념들이 아직 나오지 않은 때였다.
전통 경제학은 흔히 가치를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되는 고정된 양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뀐다는 것은, 예를 들어 자원이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이 돈으로 교환되며, 돈이 다시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이 소비되고 효용을 창출한다는 그런 의미다. 그러니까 새로운 부는 창출되지 않는다.
발라와 제번스에게 은유적으로 영감을 주었던 열역학 제1법칙의 유산은 오늘날 전통 경제학에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러나 제1법칙은 열역학 얘기의 단지 반에 불과한 것이다. 그 시기에 물리학에서 빠져 있던 제2법칙 엔트로피가 발견되면서 물리학이 우주를 보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열려라 참깨
열역학의 1,2법칙에 대해 이해하면 또 다른 개념으로 옮겨 갈 수 있는데, 이 역시 발라나 제번스 시대에는 없었다. 바로 닫힌 계와 열린 계 개념이 그것이다. 닫힌 계는 어떤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이나 소통이 없는 시스템이다. 닫힌 계에서는 어떤 에너지, 물질 또는 정보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닫힌 계다.
두 번째 행태의 시스템은 열린 계다. 에너지와 물질이 들어가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열린 계는 에너지와 물질을 활용, 일시적으로 엔트로피와 싸우면서 한동안 질서, 구조 그리고 패턴을 창조한다. 우리 행성은 하나의 열린 계다.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에너지의 강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런 에너지의 흐름은 크고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 내고, 이는 생명을 가능하게 하며, 질서와 복잡성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생물권 창조로 이어진다.
엔트로피는 어디로 가버린 게 아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고장이 나거나 쇠퇴하고, 모든 유기체들은 궁극적으로 죽는다. 그러나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항상 새로운 질서의 창조에 동력을 제공한다. 열린 계에서는 에너지의 힘에 의한 새로운 질서 창조와 엔트로피에 의한 질서 파괴 사이의 끝없는 싸움이 있다.
자연의 계산법은 매우 엄격해서 열린 계에서 질서가 만들어질 때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질서가 창출되면 다른 어딘가에서 질서가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순 효과는 엔트로피의 증가, 다시 말해 질서의 감소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는 에너지를 수입하고 대신 엔트로피를 수출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에너지의 일부를 엔트로피와 맞서 싸우는데 투자해 집을 깨끗이 치우기로 결정한다. 고도로 질서가 집힌 그런 상태로 당신 집에 유입된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이 사용하는 모든 기기들이 열을 환경 속으로 방출할 때 이 우주는 엔트로피를 다시 얻게 된다. 더구나 당신이 이용하는 전기는 발전소에서 폐열과 굴뚝을 통한 가스 배출을 수반한다. 그리고 물질은 당신 집에서 다시 나와 쓰레기 형태의 무질서한 상태로 밖으로 배출된다.
정리하자면, 당신의 집이라는 시스템이 에너지와 물질을 도입하면 이는 다시 그 한계 범위 내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데 쓰이고, 그다음에 열과 무질서한 물질로 바뀌어 우주 속으로 다시 나간다. 다시 말해 이런 과정을 통해 엔트로피를 내보내는 것이다.
이 개념을 이용하면 시스템이 균형에 이른다면 그 시스템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를 잘못 분류하다
제2법칙을 몰랐다는 것은 한계주의자들과 그들의 계승자들이 근본적으로 경제를 잘못 분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불균형 시스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잡 적응 시스템이다.
닫힌 균형 시스템에서는 순간적으로 자기조직화를 하는 일도 없고, 또 패턴이나 구조, 복잡성이 발생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새로움이란 게 창조되지도 않는다.
(우주는 닫힌 계인데 창조가 되는데 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회 시스템은 경제학자들의 마음속이나 교과서의 방정식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수학적 모델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시스템들은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 들로 이루어진 현실적인 물리적 시스템들이다. 실물경제는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엄청난 에너지를 매일 그 속에 쏟아붓고 있다. 이 덕분에 경제가 작동한다.
에너지는 경제에 들어와 엔트로피에 대항할 힘을 주고 질서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제2법칙에 순응한다.
경제는 단순히 은유적으로만 열린 계와 비슷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열린 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에 속하는 한 시스템이다. 누가 경제에 공급될 에너지를 끊어 버리면, 다시 말해 음식물, 석유, 가스, 그리고 석탄 등을 끊어 버리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저항자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경제는 정말 균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고립될 때 이런 상황을 본다.
엔트로피가 이기기 시작하면서 경제는 쇠퇴를 피할 수 없고, 결국 비참과 기아의 균형으로 향한다. 반면 성장하는, 활기 있는 경제는 정의상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부를 창출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은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물질과 정보의 조작에 관계한다. 경제적 활동은 현실의 물리적인 세계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있고, 따라서 경제 이론은 열역학 법칙들을 피할 수 없다.
과학이 서로 다른 현상들에 대해 서로 다른 수준의 추상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이 물리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그리고 물리학의 법칙에 대한 명시적인 참조 없이 높은 수준의 추상화를 통해 만들어 낸 개념들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경제 이론은 기본적인 물리적 법칙과 불일치할 수 없다.
수학은 언어의 한 형태이고, 현실 세계를 상징적 시스템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 이 수학을 활용한다.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음. 전통 경제학은 닫힌 계로 가정하고 있지만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일 수 없다. 그래서 틀렸다.
나는 믿는다. 전통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신고전파 모델은 잘못된 은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다.
발라의 대성당을 넘어서
과학은 한 세대가 아이디어를 만들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교체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경제학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발라의 대성당'을 만든 사람들이 남긴 유산을 가장 빛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2부는 복잡계 경제학은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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