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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기원 2부 복잡계 경제학

 

2부 복잡계 경제학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경관을 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얻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4. 큰 그림 : 설탕과 향료

필리핀 마닐라 바로 외곽에 위치한 이 쓰레기 집적지는 어울리지 않게도 '약속의 땅'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 곳을 베르나르도 신부는 이렇게 표현한다. "여기서 원시적인 자본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수백만 페소가 매일 여기서 회전되고 있다."

경제는 어디서 오는가? 약속의 땅 경제와 같은 복잡한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쓰레기 더미에서 마술처럼 나타나게 된 것인가? 경제의 밑바탕을 이루는 행태들, 관계들, 기구 및 제도들, 그리고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나오며, 이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발전하는가? 어떤 대상의 원천에 관한, 즉 원천적인 질문들은 모든 과학에서 탁월한 역할을 한다. 

 

전통 경제학은 경제적 파이가 우선 어떻게 여기서 생겨났느냐보다는 경제적 파이가 어떻게 배분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경제 형성의 과정은 지금 우리에게 1급 수준의 과학적 수수께기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통 경제학과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게될 복잡계 경제학 간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가상의 설탕 섬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들은 1995년, 사람들이 맨 처음 출발선에서부터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 살펴보기 위한 실험을 실시해 보기로 한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인 실리코로 경제 생명체를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전통적인 미시 경제학 모델은 소비자, 생산자, 기술,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거시 경제학 모델 역시 화폐, 노동 시장, 자본 시장,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런 것들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초기, 즉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서 단지 기본적인 몇 가지 능력을 가진 사람들, 자연 자원이 조금 있는 환경만으로 구성된 모델을 갖고 싶었다. 그들은 경제 활동의 체인을 출발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발견하고 싶었다. 경제 시스템이 경제적 질서를 증가시키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컴퓨터상의 시뮬레이션 섬을 준비 했다. 이 컴퓨터 섬은 거대한 체스판처럼 그 위에 가로세로 각 50개씩의 격자 눈금이 그려진 완벽한 정사각형이다. 이 가상의 섬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자원인 설탕이 있다. 그리고 격자의 각 칸에는 서로 다른 양의 설탕이 쌓여 있다. 각 설탕 더미의 높이는 가장 높은 4(설탕 단위)에서 0(설탕이 전혀 없는 경우)의 범위에 있다. 모양새를 그려 보면 두 개의 산 같은 설탕 더미가 존재 하는 이 설탕 섬을 '슈거스케이프'라고 명명했다.

 

슈거스케이프는 실제 섬을 아주 단순화한 것이지만 현실 세계의 섬이 갖고 있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첫째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즉, 동서남북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다. 둘째는 설탕이라는 에너지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땅이 차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산, 계곡, 비옥한 땅과 황무지 등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슈가스케이프에 난파된 가상의 사람들도 매우 단순화한 것이지만 실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주요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 가상의 사람들 각자는, 즉 행위자는 슈거스케이프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코드를 통해 정보를 고속 처리한 다음 의사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하나의 독립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슈거스케이프의 각 행위자는 오로지 세 가지를 할 수 있다. 설탕을 찾고, 움직이며, 설탕을 먹는다. 그게 전부다. 음식을 찾기 위해 각 행위자는 설탕을 찾아다닐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고, 그다음으로 에너지원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각 행위자는 또한 설탕을 소화할 수 있는 물질 대사 작용이라는 기능을 갖는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 단순한 환경에서 단순한 행위자들경제와 같은 특별한 것을 과연 창조해 낼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 행위자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시각이 허용하는 한 앞을 바라본다.(대각선은 못본다)
  • 행위자는 시각의 범위 내에서 어떤 비점유 지역이 가장 많은 설탕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한다.
  • 행위자는 해당 칸으로 이동해서 설탕을 먹는다.
  • 행위자가 먹은 설탕의 양은 크레디트로 잡히지만 물질대사에 의해 소비된 설탕의 양은 그만큼 차감된다. 더 많은 설탕을 먹으면 그 양만큼은 저축 계좌에 쌓아 놓는다.
  • 행위자가 저축 계좌에 쌓아 놓은 설탕이 0 이하 수준으로 내려가면 이 행위자는 굶어 죽은 것으로 간주돼 이 게임에서 제거된다. 그렇지 않으면 미리 결정돼 있는 최대 수명만큼 살 수 있다.

이런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각 행위자들은 시각과 물질대사를 위한 일종의 유전적 소질(형질 또는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각 행위자는 앞에 위치하고 있는 칸들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는지, 매회 얼마나 많은 설탕들을 소비하는지 설명해 주는 컴퓨터 코드, 일종의 컴퓨터 DNA가 부여되어 있다. 매우 좋은 시각을 가진 행위자는 그 앞에 놓여 있는 여섯 개까지의 칸들을 볼 수 있고, 반면시각이 나쁜 행위자는 단지 바로 앞에 놓인 한 개의 칸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느린 물질대사를 하는 행위자는 매회 살아남기 위해서 단지 1단위 설탕을 필요로 하는 반면, 빠른 물질대사를 하는 행위자는 4단위를 필요로 한다. 각 능력은 무작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행위자들이 동일한 게 아니란 얘기다. 어떤 행위자는 시각이 나쁘지만 대단히 좋은 물질대사 기능을 갖고 있고, 반대로 시각은 좋지만 열악한 물질대사 기능을 갖는 행위자도 있다.

 

행위자들이 설탕을 먹어 치움에 따라 설탕은 곡물처럼 다시 자라난다. 그 성장 속도는 주어진 기간(시간 단위)당 1단위씩이다. 만약 4단위의 설탕을 다 먹어 없애버리면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오는데, 시간적으로 4기간이 걸리게 된다. (한정적 자원을 의미)

 

행위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방목 가축과도 같다. 오랫동안 설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더라도 행위자들은 매우 간단한 규칙만으로 그 환경에서 최대의 가치를 빨아들인다. 설탕 더미가 다시 자라나 최대 용량에 이르자마자 곧바로 방목하는 행위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조직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곧바로 볼 수 있다. 행위자들은 스스로 두 개의 집중된 부족으로 재빠르게 조직화된다. 각자 설탕 산에 거주하며 효율적으로 설탕이라는 곡물을 수확하면서 말이다.

 

부익부 원리

이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다양한 통계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이들이 추적했던 변수 중 하나는 행위자의 부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부의 분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지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 했다. 시뮬레이션 초기에 슈거스케이프는 꽤 평등한 사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분포는 크게 바뀐다. 행위자들이 두개의 설탕 산에 집결함에 따라 평균적인 부는 상승했지만 부의 분포도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형태(편중된 분포)로 변화한다.

 

간단한 슈거스케이프 모델이 보여 준 부의 분포는 바로 현실 세계의 파레토 분포(80-20법칙)와 같은 종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밝혀야 한다. 왜 슈거스케이프에서조차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 지는가?

 

슈거스케이프라는 통제된 세계에서 다양한 가설들을 검증하기는 매우 쉽다. 첫째, 이것은 본성인가? 다시 말해 각 행위자의 유전적 형질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대답은 "아니오"다. 유전적 형질은 균등한 임의의 분포로 나누어졌다. 부가 만약 슈거스케이프의 유전적 형질과 상관관계가 있다면 부의 분포 또한 매우 균등해야 한다. 

 

본성이 아니면 양육 때문인가? 다시 말해, 행위자들의 태어난 환경이 원인인가? 설탕이 쌓여 있는 산꼭대기에서 태어난 행위자들은 모두 부를 다 가지고, 황무지에서 태어나는 나쁜 운을 가진 행위자들은 모두 가난하게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도 "아니오"다. 유전적 형질과 마찬가지로 행위자의 출생지 역시 완벽하게 임의적으로 주어졌다. 따라서 이것이 정말 각 행위자들의 궁극적인 경제적 위치를 결정하는 원인이라면 그 분포 또한 매우 균등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임의적인 초기 상태에서 어떻게 불균등한 부의 분포에 이르게 되었는가?

 

대답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다. 편중된 분포는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거시적인 행태는 행위자들의 집단적인 미시적 행태들로부터 출현한다. 물리적 환경, 유전적 형질, 자신들이 태어난 곳, 따라야할 규칙들, 서로 간 또는 환경과의 상호 작용, 그리고 행운 등이 결합돼 편중된 분포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처음의 조그만 우연적 행위가 게임의 흐름 과정에서 확대되면서 두 행위자 간에 매우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이 결과는 경제학자들이 '수평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전통 경제 이론에서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전통 경제학의 균형 세계에서는 똑같은 능력, 똑같은 선호도, 태어날 때 똑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똑같은 수준의 부를 가지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임의로 분포된 잡음이나 오류 때문일 따름이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라는 불균형 세계에서 수평적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다.

 

핵심은 어떤 한 지점에서의 조그만 차이(즉, 행운이나 불운 같은 것)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가 나는 길로 접어들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조그만 차이들이 가속화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부유한 쪽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넝마로 전락하는 그런 추세가 나타난다.

 

슈거스케이프라는 이 단순한 모델에서조차 가난과 불평등을 이끄는 인과 관계가 결코 간단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난과 불평등은 매우 복잡한 요소들의 혼합된 결과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슈거스케이프는 여기서 현실 세계의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구체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기에는 너무나 단순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델이 한 가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있다. 가난은 이들을 착취하는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좌파적 진단, 그리고 당신이 가난하다면 당신은 멍청하거나 게으르거나 아니면 이 둘 다라고 생각하는 우파적 진단은 모두 잘못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새와 꿀벌처럼

이 모델에 요소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이른바 섹스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각 행위자에게 나이와 성별을 표시하는 표를 부여하기로 했다. 행위자가 임신이 가능한 나이에 이르고 그 행위자가 최소한 설탕 저축 계좌를 갖고 있다면 번식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매회 이 가임 행위자는 동서남북으로 한 칸 범위에 있는 이웃들을 탐색한다. 그래서 반대 성을 가진 다른 가임 행위자를 발견하면 바로 출산한다. 그 결과 출생한 아기 행위자의  DNA 는 엄마로부터 반, 아빠로 부터 반을 임의로 부여받는다. 또 이 아기 행위자는 양쪽 부모로부터 부를 상속받는데 아버지의 부 반, 어머니의 부 반을 더한 것이다. 아기 행위자는 엄마,아빠와 인접한 빈 칸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부모가 풍부한 혹은 열악한 설탕 근처에 사느냐에 따라 그 아기 역시 그곳에서 인생을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행위자들은 부를 수확하는 행위자 주변으로 분주하게 모여들었고, 가임 행위자들은 재빨리 상대방을 발견, 로맨스가 결실을 맺었다. 그러면서 다음 세 가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첫째, 거의 적응을 하지 못한 행위자들은 그냥 죽어 사라진 반면, 가장 적응을 잘한 행위자들은 점점 더 많은 후손을 가지게 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각과 물질대사 효율성의 평균치가 상승하기 시작 했다. 이 평균치가 상승함에 따라 부 역시 상승했다.

 

둘째, 출생과 사망이라는 이 새로운 역동성이 추가되면서 인구 변화가 일어났다. 섹스가 도입되기 전에는 인구가 항상 일정했고 환경이 허용하는 용량과 균형 수준을 이루었다. 그러나 섹스와 함께 풍요로움과 궁핍이라는 사이클이 일어났다. 잘 적응한 행위자들은 저축 계좌를 늘리고 다수의 후손들을 갖게 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환경적인 수용 용량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행위자들이 설탕 비축 분을 가지고 과잉 방목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근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 기근은 인구 감소를 초래했다. 그 결과 환경은 재생되었고 사이클은 또다시 반복됐다.

 

셋째, 부유한 행위자와 가난한 행위자 간 격차가 훨씬 더 벌어졌다. 섹스를 추가 하니 부의 불평등이 더 가속화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등장

지금까지는 순수한 수렵, 채집민이었다. 즉, 자신들이 발견한 설탕을 수집하고 소비했다. 그러나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이 인공적인 세계에 현실적인 요소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설탕 외에 향로라는 두 번째 상품을 도입했다. 이 모델에서 행위자들의 물질대사 기능과 관련하여 조금 변경을 하는데, 각 행위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설탕뿐 아니라 향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어떤 행위자들은 설탕을 많이 필요로 하는 반면 향료는 조금만 필요로 하고, 다른 행위자들은 설탕보다는 향료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것은 DNA로 사전에 결정된다. 이런 수요의 차이는 행위자들의 선호와 같은 것이다. 또 전처럼 각 행위자들은 자신들이 소비하지 않는 설탕이나 향료는 저축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위자들이 서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전통 경제학 모델 처럼 시장이나 경매인에 대한 가정은 없었다. 대신 개인들 간의 물물 교환이 허용됐다. 

 

다시 스위치를 눌렀다. 행위자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곧 활발한 비즈니스가 시작됐다. 거래의 패턴은 많은 측면에서 전통 경제학이 예측했던 것과 매우 비슷했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사회를 더 부유하게 한다는 점을 알았다.한 행위자는 설탕을 가지고 있지만 향료 부족으로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황이고 다른 한 행위자는 그 반대 상황이다. 만약 거래가 금지되면 둘 다 죽는다. 물론 거래가 허용되면 둘 다 산다. 이렇게 거래는 환경 수용능력을 증가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므로 모든 행위자에게 이익이 된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거래 네트워크의 발전을 추적했다. 추적 결과 지역별로 거래 네트워크상의 집적 효과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있는 행위자들과 더 빈번하게 거래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거래의 이익은 자기 강화적이기 때문에 거래가 거래를 낳는다.

 

집중된 거래 네트워크 집적지들이 출현했다. 마치 지역별 장터 처럼 말이다. 게다가 향료라는 두 번째 상품의 도입은 행위자들의 움직임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었다. 행위자들은 더 이상 두 개의 설탕 산 위에 부족을 형성하며 모여 살 수 없게 됐다. 이들도 밖으로 나가 향료와 거래 파트너를 찾아야 했다. 지역과 인구의 역동성이 결합되면서 복잡한 거래 경로가 생겼다. 행위자들이 설탕과 향료가 집중된 산들을 오가면서 고대 실크로드와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각 행위자들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련의 가격 범위에서 기꺼이 매도하거나 매입하는 설탕 또는 향료가 어느 정도인지 측정한다. 모든 행위자들을 통틀어 이 수치들을 합산하면 각 상품별로 공급,수요 곡선이 만들어 진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델에서 공급과 수요에 관해 그 무엇도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이 공급과 수요 곡선들은 행위자들의 단순한 상호 작용에서 나온, 순전히 밑바닥에서부터 형성된 현상으로 나타났다.

 

 

균형의 실종

 경제가 순간적으로 근사한 X자 형태의 공급,수요 곡선을 만들어 냈지만 거래가 이루어진 실제의 가격과 수량은 결코 이론적으로 예측된 균형점이 아니었다. 균형에서 벗어난 가격의 변동 폭은 모델을 아무리 길게 돌려보아도 그대로였다. 슈거스케이프에서 가격은 어떤 끌어당기는 것, 즉 유인체 주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실제로 균형에 안착하는 일은 결코 없다.

 

또 시스템이 균형으로 향하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거래가 일어난다는 점도 발견했다. 균형 가격에 대한 전통적인 예측에 따르면 자연스레 도출되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급과 수요가 균형으로 이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거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상품 시장, 금융 시장 모두에서 거래량이 이론에서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똑같은 의문이 슈거스케이프에서도 반복되는데, 전통 이론에서 예측된 것보다 가격 변동성이나 거래량이 더 크다. 

 

슈거스케이프에서 전체 행위자들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은 없다. 행위자들은 물리적 거리에 의해 분리되어 있고, 따라서 움직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이웃에 있는 행위자들과 거래를 할 뿐 전체적인 균형을 찾아 나서는 일은 없다. 따라서 거래의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경우는 행위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우연히 다른 행위자를 만날 때다. 그결과 거래량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의 또 다른 핵심적인 예측은 일물일가 법칙이다. 상품은 균형 가격에서만 거래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에서는 특정 시점에 가격 변동의 폭이 넓다. 모든 일이 단 한 번에 일어나는 균형 모델과 달리 슈거스케이프에서는 시간에 따라 일들이 전개되고 있고 또 거래 상대방을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역동성이란 경제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화를 행위자들이 결코 쫓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가격은 이론에서 생각하듯 결코 완전하게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

 

전통 경제학의 또 다른 기본적인 원칙은 파레토 최적이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 시장은 파레토 최적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작동한다. 모든 사람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한 그런 거래가 항상 있다. 이 역시 행위자들의 거래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약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서쪽 구석에 있는 행위자 A는 북동쪽 구석에 있는 행위자 B가 큰 거래 파트너일 수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더구나 설사 이를 알았다고 해도 그들이 서로 만나기 위해 가는데는 시간이 걸리는 데다 그때쯤에는 가격이 또 변해 있을지 모른다.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의 거래는 슈거스케이프와 더 닮았다. 다른 말로 하면 거래가 두 당사자 간에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쌍방간 거래에서는 가격의 범위가 보다 넓긴 하지만 훨씬 효율적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거래가 경매 시장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한 유일한 이유는 그런 가정이 있어야만 수학적으로 균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가 도입되자 모두가 더 부유하게 되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에 따르면 부의 편중된 분포 정도가 현실 세계 경제의 모습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계층 구조의 진화

슈거스케이프 경제는 개인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경영자나 노동자, 또는 공급자, 중간 거래자, 그리고 소매업자 등과 같은 계층은 없다. 그러나 계층은 현실 세계 경제에서는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그래서 행위자들의 행태에 한 가지 더 추가적인, 간단한 변화를 주었다.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슈거스케이프에서 차용자가 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가지기 위해서다. 엡스타인과 액스텔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도입했다. 어떤 행위자가 너무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양육에 쓰고도 남을 정도의 저축이 있다면 그러한 행위자는 대여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자식을 가지기에는 지금의 저축이 불충분하지만 설탕과 향료 소득이 지속 가능하다면 이 행위자는 차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화를 위해 이자율과 대출 기간을 고정했고 채무 불이행에 대한 기본적인 조치도 만들었다.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를 통해 단순히 상당한 차용과 대출이 일어났다는 점이 아니라 복잡하고 계층적인 자본 시장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차용자와 대여자의 관계를 추적해 보니 어떤 행위자들은 차용자이면서 동시에 대여자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사실상 중간 거래자들이다. 슈거스케이프에서 은행이 출현한 것이다!

 

어떤 가상 실험에서는 계층 구조가 5단계로 늘었다. 이 가상 실험에서 단순히 은행이 출현한 것뿐만 아니라 제도권 투자자들, 투자 은행, 상업 은행, 그리고 소매 은행들도 출현했다.

 

이런 대규모 거시적 패턴들은 국지적으로 각종 미시적 가정들이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밑에서 부터 분출됐다.

 

 

인 실리코 경제

엡스타인도, 액스텔도 슈거스케이프가 그 자체로 모든 경제 이론을 설명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 자신들의 모델이 '부의 기원/원천'에 대한 질문에 완전한 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는 대응 원리에 따라 우리에게 흥미로운 새로운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 법칙은 현실 세계에서 그런 것처럼 비슷하게 작동했고, 거래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흥미로운 것은 슈거스케이프가 전통 경제학에서 발견된 주요한 예외적인 현상들도 일부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일물일가 법칙의 위반, 수평적 불평등의 존재, 그리고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더 큰 가격 변동성과 거래량 등이 그것이다.

 

슈거스케이프는 균형 상태로 갈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부족, 장터, 거래 경로, 자본 시장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해 복잡한 질서, 구조, 그리고 다양성 등을 자생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들 중에 사전에 기획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시스템에 부여한 단순한 출발 규칙에서 시작해 아래서부터 형성, 출현했다.

 

 

복잡계 경제학의 정의

 

 

 

 

5. 동태성 : 불균형의 즐거움

20세기 초 물리학에서는 커다란 방향 변화가 일어났다. 그다음 100년간에 걸쳐 발라와 그 동료들이 빌려 온 바로 그 물리학 이론들은 파기되고 그 자리에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비선형 시스템의 열역학, 카오스 이론, 복잡계 이론 등이 들어선다. 

 

5장에서는 경제란 무엇이며 경제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규정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다듬을 것이다.

 

 

동태성과 피드백

경제는 하나의 동태적인 시스템이라고 보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으로 유용하다고 본다. 이 말은 경제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의미다. 가격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임금도 변한다. 그리고 기업들은 시장에 진입하고 또 퇴출된다. 이런 동태성은 전통 경제학에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외부적인 요인, 예컨대 기술 변화, 정치적 사건들, 그리고 소비자 취향의 변화와 같은 것들로부터 생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질문은 이런 동태성이 어떻게 경제 그 자체의 구조에서 비롯되는지, 다시 말해 내생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동태적 시스템을 표현하는 가장 편리한 하나의 방법은 스톡(축적)과 플로(흐름) 개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경제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가지 스톡들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화폐 공급량이라든지 취업자 수 등이 그것이다. 이들 스톡들은 그에 상응하는 플로들, 즉 시간에 따른 변화율들을 각각 갖고 있다. 예컨대, 중앙은행은 화폐 공급을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또 기업은 신규 사원을 고용할수도 있고 해고할 수도 있다. 플로는 언제나 특정 시간 단위당으로 움직인다. 덜 유형적이지만 중요한 스톡들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소비자 신뢰 같은 것은 시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스톡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경제를 스톡과 그와 관련된 플로의 집합체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스톡과 플로들이 복잡한 방법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예를 들어 고용 스톡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 정책 결정자들은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결정할지 모른다. 금리 인하로 대출이 촉진되면 투자를 위한 돈의 공급이 확대되는 것이고, 그러면 기업들은 이 돈을 새로운 생산 설비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신규 고용을 유발해 고용 스톡을 다시 올라가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돌아가 미래의 금리 정책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동태적 시스템에서 스톡과 플로 간의 이 연쇄적인 관계가 바로 피드백(되먹임) 고리다.

 

그것이 선순환이든 좋지 않은 쪽으로 연쇄적으로 변동하는 악순환이든 상관없이 일이 진행되면서 보다 강화되거나 가속화되고 증폭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동태적 시스템의 세 번째 요소는 시간 지체다.문제는 수도꼭지에서 당신이 취한 조치와 온도로 이어지기까지의 피드백 간에 시간 지체가 조금 있다는 점이다. 이런 지체가 당신으로 하여금 바람직한 온도로부터 너무 벗어나도록 하거나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물론 결국 당신이 이를 파악하게 되면 바람직한 온도에 이를 때까지 진동은 점점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간 지체가 너무 길어지면 물의 온도를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당신이 겪어야 할 진동도 더 커지거나 많아질 것이다.

 

양과 음의 피드백 고리를 통해 상호 작용하는 스톡과 플로가 여러개 존재할 경우 동태적인 시스템이 얼마나 재빠르게 복잡해질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양의 피드백이 시스템을 움직여 그 흐름을 가속화시키지만 동시에 음의 피드백은 이를 줄이거나 통제하는 방향으로 힘을 가한다. 여기에 지체가 끼어들면 밀어 붙이는 힘과 이를 줄이려는 힘이 균형을 벗어나고 동조성을 잃게 되면서 시스템은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진동한다.

 

 

코끼리를 제외한 동물들에 대한 연구

경제에 관한 두 번째 관찰경제는 비선형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비선형 방정식을 하나 만들어 보면 상수  r를 자동차의 가속 페달 처럼 활용 할 수 있다.  r=4 로 하면 카오스 형태를 얻게 된다. 카오스 시스템은 세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재, 외견상으로는 임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확정적인 것이다. 둘째, 주기적 시스템과 달리 이 공식을 아무리 계속 돌리더라도 결코 반복되는 법이 없다. 셋째, 이 시스템은 제한적이다.

 

이렇게 변수 하나를 미세 조정할 경우 매우 다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른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다. 한편 비선형 동태적인 시스템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경로 의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역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살펴본 두 가지 특성, 즉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과 경로 의존성 때문에 비선형 시스템을 가지고 작업하기는 너무도 어렵다. 많은 경우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런 시스템이 어떤 형태를 보여 줄지 알아보는 유일한 길은 실제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비선형 시스템은 자연에서 너무도 흔하다. 예를 들어 비행기 날개상에서의 난기류에서부터 기후, 레이저, 그리고 뇌에서의 시냅스들의 분출에 이르기까지 비선형은 수많은 현상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선형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드문 현상이기 때문에 수학자 이안 스튜어트는 "비선형 시스템"이라는 분야가 물리학에 따로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라고 했다. 이는 마치 동물학에서 코끼리를 제외한 모든 동물에 대한 연구라는 분야를 따로 두는 것과 같이 바보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경제, 복잡하지만 카오스는 아니다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경제를 비선형적이고 동시에 동태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경제는 무질서한 것인가? 현재까지의 결론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무질서한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적은 변수, 적은 자유도를 갖는 경향이 있다. 경제는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경제는 엄청난 수의 스톡과 플로를 갖고 있으며 이 스톡과 플로들은 양 또는 음의 피드백 관계들로 이루어진, 정교한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이런 피드백 관계들은 시차를 가지며 서로 다른 시간 단위에서 움직인다. 또 이 시스템은 어려운 비선형 행태를 보인다. 그런 시스템이라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자유도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행태들을 보여 줄 수 있다. 

 

경제는 때때로 어떤 차원에서 무질서한 행태를 보여 줄수도 있겠지만 성장, 쇠퇴, 주기적 사이클, 유사 주기적 제한 사이클, 그리고 그 외에 여러 가지 다른 행태들도 보여 준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경제의 완전한 동태적 복잡성은 과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n체문제'라는 관점에서 경제를 생각해 보면 훨씬 확실해진다. 푸앵카레는 그 당시 알려진 8개의 행성과 태양에 대해서는 고사하고 심지어 3체 문제조차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제는 규모가 매우 큰 n체 문제다. 경제에 참여하는 개별 사람들은 각자의 고유한 스톡(저축, 부채, 기술 등)과 플로(소득, 지출, 학습 등)를 갖고 있다. 슈가스케이프와 같은 고도로 단순한 경제에서도 개별 행위자들은 각자 고유한 설탕 스톡과 설탕의 소비와 소화라는 플로를 갖고 있었다.

 

현실 경제의 동태성은 수십억 명의 비선형적 상호 작용의 산물이다. 이 시스템의 복잡성을 생각해 보면 푸앵카레의 태양 시스템 분류는 차라리 쉽게 보일 정도다.  다시 말해 현실 경제의 시스템은 n=64억인 그런 문제다.

 

이제 우리는 경제 예측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기상 예보자들보다 왜 더 평판이 나쁜지 그 이유를 알 듯하다.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 경로 의존성, 엄청난 동태적 복잡성 등이 결합되면 경제는 기후처럼 극히 단기간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에서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이것이 경제학의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과학은 예측이 아니라 설명에 관한 학문이다. 경제의 동태적인 특성을 이해한다면 수많은 경제 현상들에 대한 검증 가능한 설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때때로 흔들린다

존 스터먼은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을 활용해 경제와 경영 현상을 새로이 설명하는 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연구자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질문은 이 수많은 상품들이 복잡한 흥망성쇠라는 사이클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사이클이라는 순환을 보여 주는 산업은 모든 법위에 걸쳐 있다.

 

이 다양한 산업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가격과 산업 생산의 순환적 변화가 그 밑바닥에 있는 수요 변화나 경제 전반적인 변화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사실이다. 별다른 원인 없이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다. 

 

사이클은 또 꽤 정규적인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크게 임의적이지도 않은 흥미로운 특성을 갖고 있다. 즉, 뭔가 분명한 주기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사이클이 정확히 정규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이클들이 복잡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스터먼은 그렇게 정규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임의적이지도 않은 이런 행태가 어떻게 해서 나오는지 조사하기 위해 모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음의 피드백 고리는 공급과 수요에서 가격이 하는 역할이다. 즉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올라서 공급이 늘게 만들고, 이는 다시 공급과 수요가 일치할 때까지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마치 자동 온도 조절 장치와 똑같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자들은 대개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한다. 다시 말해, 시간 지체 같은 것은 무시한다는 얘기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균형을 이루지만 현실 세계는 재고, 초과 생산 능력, 그리고 불균형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는 여러 가지 다른 스톡들로 가득 차 있다. 스터먼은 여러가지 완충 역할을 하는 스톡들의 조정 속도 차이가 상품 사이클의 변화 근저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터먼은 자신의 가정을 한번 검정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간단한 상품 시장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사이클의 통계적 특성을 재생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전통적 모델들과 달리 그의 모델은 하나의 시스템 역학 시뮬레이션이다. 재고와 생산 능력과 관련한 스톡들, 양과 음의 피드백 고리들, 시간 지체, 그리고 비선형 관계식 등 우리가 살펴보았던 특징을 모두 가졌다. 이제 스터먼의 모델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아보자. 

 

첫째, 당신은 이 제품의 재고를 갖고 있다. 이 재고는 당신의 고객으로부터 불확실한 수요와 공장으로부터의 생산 사이에서 하나의 완충 역할을 한다. 수주와 배송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 지체가 있을 수 있지만 재고는 거의 바로 조정이 이루어진다. 

 

둘째,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한 생산 능력의 스톡이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장은 100%보다 낮은 수준인 80% 정도로 가동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생산을 늘리는 데 걸리는 시간 지체는 몇 시간에서 수개월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경우에는 조정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재고 조정보다는 조정이 더 천천히 이루어진다.

 

셋째, 마지막 스톡은 장기적인 생산 능력의 총량이다. 생산 활용률이 100%라면 산출물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추가적으로 생산 라인을 설치하거나 공장을 더 짓는 것이다. 이는 기존 생산 능력의 활용률을 높이는 일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스터먼의 모델은 이 세 가지 피드백 고리들이 각기 서로 다른 속도로 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이제 이 구조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여 주는지 알아보자.

 

재고는 항상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는 수요의 임의적인 변동 때문이다. 이때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첫 번째 질문은 생산 증가를 공장에 요구할 것인지 말지이다. 생산 증가 주문하기 전에 지금 수요 증가가 계속될지, 아니면 일시적 변동인지 알아보기 위해 잠시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 다음 질문은 가격을 올려야 하는가이다. 가격을 올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뒤따른다. 그리고 가격 인상은 자칫 고객들을 이탈시킬 위험도 수반한다. 그래서 당신은 좀 더 기다려 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그다음 재고 보고서에서 수요 증가가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한 당신은 이것이 확실한 추세라고 믿는다. 그결과 당신은 곧바로 행동을 취해 생산 증가 요구서를 낸다. 기업 본사의 의사 결정에는 관료주의 요소가 있어 생산은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증가한다. 그러는 사이에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재고는 바닥이 나버린다. 수요는 확실하고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이 이어지면, 당신은 지금이 가격을 인상할 때라고 결정한다.

 

가격 인상이 즉각적으로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수요자들이 곧바로 대체재나 대안적인 제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고 할 것이다. 공장이 거의 100%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당신은 보다 많은 생산 능력을 가진 경쟁 기업들에게 주문을 빼앗기거나 시장 점유율에서 밀린다. 그러면 당신은 또 다른 공장을 만들기 위하여 설비 투자 제안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새로운 공장의 완공 예정일을 6개월 앞두었을 때쯤 당신은 걱정스러운 추세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수요가 다시 둔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의 고객이 몇 가지 대체재를 발견하는 동시에 상품을 적게 사용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신이 공장을 열심히 가동하는 동안 당신의 경쟁 기업 또한 그렇게 했다. 때문에 이제는 재고가 많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는 곧 가격을 내리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판매 팀으로부터 들려온다. 당신은 결국 가격 인하에 동의한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공장의 오픈 기념일이 다가왔다. 당신은 소름 끼치는 보고서를 받아 본다. 수요는 계속 둔화되고 있다. 해당 산업 종사자들 모두 재고 더미에 앉아 대폭적인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점점 나빠지는 손익 계산서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새 공장도 가동한다. 이미 모든 것이 설치된 상황에서, 다시 말해 대부분이 매몰 비용이 된 상황에서 이 시설들을 달리 활용할 수도 없다. 가격이 저가라고 해도 최소한 노동 비용과 재료비는 건질 수 있다.

 

그다음 해에 이르자 산업은 과잉 설비로 시달리면서 가격은 폭락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 사이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실이 불어나자 산업계에서는 일부 생산 라인을 폐쇄하고, 생산 능력을 축소하는 일이 생겨난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면서 어떤 기업들은 공장 문을 닫고 대규모 해고를 단행한다. 과잉 설비가 모두 해소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그러나 이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관심사가 아니다. 당신도 이미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한 신출내기 관리자가 당신 자리로 온다. 그리고 수요 증가 추세에 흥분한다. 그러면서 사이클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스터먼 모델의 핵심이다. 모델을 돌리자 현실 세계와 통계적으로 유사한 그런 상품 사이클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 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피드백 고리상의 여러 가지 다른 시간 단위인간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겹치면서 앞서 말한 사이클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복잡한 피드백과 다양한 시간 지체가 일어나는 시스템들을 처리하는 시간이 사람들마다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사이클을 완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규 설비를 추가하는 데 시간 지체를 줄이고, 큰 공장 보다는 소형 설비 형태인 미니밀들을 짓는, 다시 말해 생산 능력을 다소 유연하게 하며, 고객 주문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고, 산업 전반에 관한 정보력도 향상 시키는 것이다.

 

스터먼 연구가 던진 가장 흥미로운 시사점 중 하나는 비선형 동태적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뚜렷하게 보여준 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두뇌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게끔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인간 인식의 약점과 결점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 볼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인간의 행태와 경제의 동태적 구조를 결합할 경우 경제 전반의 성장과 침체 사이클에서부터 주식 시장의 가변성에 이르기 까지 복잡한 경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6. 행위자들 : 심리 게임

모든 경제 이론의 핵심에는 인간 행태 이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제는 궁극적으로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경제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가? 우리는 어떤 종류의 정보를 활용하는가? 그리고 의사 결정 중에서 우리가 제대로 하거나, 잘못을 범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인간 행태에 어떤 기본적인 규칙성이 존재하는가이다. 그런 미시적인 규칙성이 존재한다면 이를 통해 경제의 거시적 움직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살펴보겠지만 인간 행태는 규칙성으로 가득 차 있다.

 

슈거스케이프에서 행위자들의 행태는 실제 사람들의 행태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슈거스케이프 행위자들은 단지 먹고, 움직이고, 재생(출산)하고, 거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그런 일을 하는 방식도 너무나 단순하다. 그렇지만 물리적 움직임이나 재생, 거래는 모두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현실 세계의 인간 활동들이다. 

 

 

스폭이 쇼핑을 하다

<스타 트랙> 시리즈에서 벌컨 출신 스폭은 완벽한 합리적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폭은 전통 경제학이 인간 행태를 묘사하는 좋은 보기다. 

 

당신은 좋아 보이는 빨간 토마토를 응시하면서 서 있는 동안 이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는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최적화 계산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살지 안 살지에 대해 완벽하게 최적인 해답을 찾아낸다. 이 같은 스폭과 같은 방식이 '완전 합리성' 모델로 알려져 있다. 완전 합리성 모델은 바로 전통 경제학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가정의 하나다.

 

 

인식의 부조화

완전하게 합리적인 경제를 모델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럴 경우 실제 세계가 그런 이상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사이먼은 완전 합리성과 경쟁하는 의사 결정 이론을 제시했다. 바로 '제한적 합리성'이론이다. 사이먼 이론은 완전 정보의 부재, 그리고 크지만 여전히 제한적인 인간 뇌의 처리 용량을 고려했다. 사이먼은 완전 합리성 대신에 인간은 작은 성과에 만족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존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얘기다.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사이먼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사이먼의 연구는 전통 경제학 이론에 단지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대부분의 표준 경제학 교과서는 사이먼 또는 제한적 합리성에 대한 언급조차 안 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이 '행동경제학'으로 알려진 분야를 만들어 냈다. 이 연구들 역시 실제 사람들은 전통 경제학 이론에서 설명하는 방식대로 선호도를 만들어 놓고 위험을 판단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행동경제학의 등장으로 경제학은 '인식의 부조화'라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즉, 많은 경제학자들이 완전 합리성에 대한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하며서도 여전히 전통 경제학의 가정들을 사용한다. 공식적인 모델로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들, 심리학자들, 그리고 컴퓨터 과학자들이 서로 협력을 확대하면서 대안적인 모델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기적인 돼지!

최후통첩 게임을 여러 형태로 나누어 실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았다.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실제 사람들의 결정은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사 확실한 금융적 이득을 거둘 수 있는 제안이라고 하더라도 불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제안은 거절했다. 이런 결과는 과연 사람들이 감성적이거나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일부 경제학자들은 10달러를 거절하는 것은 여전히 완전하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반복 게임이다. 당신은 사업가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를 통해 이 사업가를 벌함으로써 묵시적으로 미래의 상호 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엄밀히 따져 보면 타당하지 않다.

 

전통 모델은 사람들이 단지 경제적 의사 결정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묵시적으로 가정한다. 협상, 공평성, 강압 등과 같은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또한 전통 모델에서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무슨 이익을 보고 무슨 손해를 보는지에만 관심이 있지, 다른 사람들의 결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가정한다. 최후통첩 게임의 실험 결과는 이런 가정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증이다.

 

인간은 계산된 합리성을 무시할 만큼 공평성과 상호주의에 대한 아주 뿌리 깊은 규칙을 갖고 있다. 긴티스와 그 동료들은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아량을 보이는 한 이쪽에서도 아량을 보이는 '조건부 협력자'라는 점을 알아냈다.  또 인간은 불공평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한방 먹이려는 '이타적인 징벌자'라는 점도 발견했다.

 

우리의 원시 조상들은 협력적 행동과 생존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소규모 무리로 살면서 약 200만 년간이나 존재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전히 상호주의가 중요한 사회적 상호 작용의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모두 서로를 도우면 더 좋아질 수 있지만, 되돌려주는것 없이 자기 이익만 취하는 사람들에 의한 악용 가능성도 물론 있다.

 

만약 그것이 만연한다면 서로 등을 긁어 주는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더 나빠진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협력을 보상하고 무임승차자는 벌하는 뿌리 깊은 행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런 행태에 대해 비합리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뒤의 장들에서 이런 행태들이 실은 부의 창출에 긴요한 사회적 협력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과오는 인지적 오류다

현실 세계 사람들이 전통 모델에서 이탈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는 점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과오는 인지적 오류'로 생각한다. 심지어 "전혀 편견 없는 인식적 평가를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임상적으로 의기소침한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한다.  연구자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적인 실수나 편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프레임 편견 : 어떤 이슈를 정확히 어떤 틀로 표현하느냐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생각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 대표성 : 사람들은 매우 작고 치우친 표본에서 큰 결론을 도출하려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 가용성 편견 :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실로 필요한 자료들을 발견하기보다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 위험 판단의 어려움 : 사람들은 확률로 추론하고 위험을 평가하느라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 미신에 사로잡힌 추론 : 우리는 단지 순서나 발생 등에서 가장 가까운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종종 임의적으로 발생한 일을 인과 관계로 혼동하기도 한다.
  • 정신적 회계 : 전통 경제학에선 돈을 모두 같이 취급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을 서로 다른 칸막이에 넣어 두는 경향이 있다.

 

계산이 안 된다

완전 합리성은 경제 이론에서는 가능한 얘기일 수 있지만 계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실제 완전 합리성이 요구하는 계산량이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이다.이는 앞서 우리가 보았듯이 경제가 균형에 도달하기까지는 1000의 6제곱의 몇 배가 걸린다는 얘기와 관련이 있다. 계산의 규모와 그 형태로 보아 우리 뇌가 거의 처리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서의 술집

여기서 당신은 이곳에 올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방법은 갖고 있지 않다. 또한 그날 얼마나 붐빌지 엘 파롤에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다. 오로지 각자가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의 기대에 따라 이곳에 올지 안 올지를 결정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곳에 갈 것인가, 집에 머물 것인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합리적인 솔루션은 없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여기에는 하나의 무한한 '순환성'이 존재한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할지에 대한 예측에 의존하고,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예측에 의존하는 식의 끝없는 반복이 있다. 분석적인 대답 대신 엘 파롤 문제에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참가자들이 과거에 자신이 이곳에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패턴이 있는지 살펴보고는 '지난 두 목요일에 갔는데 붐비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가겠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고객 수의 높은 변동성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내생적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 수는 언제나 심하게 오락가락하며 변동할 것이며, 어떤 균형점으로의 수렴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서는 이런 문제처럼 동태적이고, 일종의 자기 참조적 또는 자기 준거적이며, 정의하기가 모호한 경제적 의사 결정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기술 표준 채택, 새로운 제품의 시장 출시, 그리고 주식 가치 평가에는 이런 의사 결정을 별다른 묘책 없이도 그럭저럭 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패턴이라든지 법칙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경험에서 법칙을 도출하고, 상호 작용하고, 어떻게 보면 우물쭈물하는 행위자들의 세계는 결코 균형에 이를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변동성의 많은 부분이 외생적이거나 임의적인 충격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의사 결정 규칙의 역동성 때문에 초래되는 것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게 바로 아서의 술집 문제이다.

 

 

귀납적 합리성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바로 근대 인지과학 이론들이 있다.

 

근대 인지과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을 바라본다. 첫째, 마음은  MIT 의 스티븐 핑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보 처리 기관', 다른 말로 하면 '계산을 하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우리의 마음은 계산을 하되 인간이 만든 컴퓨터와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한다. '정보 처리 기관'이라는 용어는 인간 마음을 담고 있는 뇌가 당신의 생물학적인 장비의 한 부분이지만 정보의 처리라는 전문화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용어는 또한 우리의 뇌가 특이하게 복잡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술적이거나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무엇을 갖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뇌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물질적 대상이다. 인지과학이 마음을 바라보는 두 번째 관점은 진화다. 우리의 마음은 설계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진화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인지과학 연구는 인간의 마음은 정보 처리와 학습이라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인간은 긴 방정식을 계산하는 데는 총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놀라운 이야기꾼이자 동시에 이런 이야기에 대한 경청자이기도 하다. 로저 쉥크는 이해, 기억, 그리고 소통을 위한 우리의 정신적 과정에서 이야기가 중심적 역할을 함으로 보여 주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

 

우리는 왜 그러는가? 이야기 하기이야기 듣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주된 방법이 귀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귀납법은 본질적으로 패턴 인식에 의한 추론이다. 이는 증거 우위의 원칙에 따른 결론을 활용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우리의 귀납적 사고 기계에 들어가 그 속에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우리가 학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은 특히 두 가지 측면의 귀납적 패턴 인식에 뛰어나다. 첫째, 새로운 경험을 은유와 유추 만들기를 통해 옛날 패턴에 연결시킨다. 당신이 회의에 참석하면 "이는 1987년 산업의 재편과 비슷하다" 등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유추를 통해 논리를 펴는지 보라. 

 

둘째, 우리는 좋은 패턴 인식자일 뿐 아니라 매우 훌륭한 패턴 완성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은 잃어버린 정보의 간극을 채워 넣는데는 전문가적이다. 패턴을 완성하고 매우 불완전한 정보로부터도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 덕분에, 빠르게 움직이면서 동시에 모호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패턴 인식과 이야기 하기인간의 인식에 핵심적인 요소들로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임의적인 자료에서도 패턴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이게 무슨 패턴인지를 설명하려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딥 블루가 신발 끈을 맬 수 없는 이유

귀납의 반대말은 연역이다. 연역은 일단은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논리적으로 나오는 추론 과정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은 도덕적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도덕적이다."라는 식이다. 인간은 귀납만큼 연역을 사용한다. 그러나 귀납만큼 연역에는 그렇게 능숙하지 못하다. 흥미롭게도 인간은 귀납에는 상대적으로 능숙한 반면, 연역에는 상대적으로 미숙하다. 컴퓨터는 그 반대다.

 

우리는 강한 귀납적 능력에 연역적 능력을 덧붙여 활용해 이를 보완한다. 대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난처한 입장에 빠졌을 때, 패턴에 대한 우리의 데이터베이스가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때, 또는 우리의 귀납적 본능이 제공한 답에 대해 확신이 안 설 때 그렇게 한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도움을 얻고자 몇 가지 도구를 만들어 냈다. 연필, 종이, 대수학, 아바치(수학기법중하나), 계산기, 컴퓨터, 그리고 과학적 방법 등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이를 통해 수치 처리 등 문제를 해결하면 그 경험은 하나의 패턴으로서 우리의 인식에 쌓이게 되므로 그다음부터는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패턴에 기초한 판단의 성공 또는 실패를 끊임없이 평가하면서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해나간다.

 

딥 블루의 사례는 왜 우리가 연역보다 귀납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연역은 단지 장기의 수처럼 매우 잘 정의된 문제에서만 효과가 있다. 연역이 작동하려면 그 문제가 어떤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모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연역은 추론을 하는 데 매우 강력한 방법이지만 본질적으로 차갑고 냉담하다. 귀납은 연역보다 잘못될 경향이 있지만 보다 유연하고, 또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 상황에서는 더 적합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귀납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는 설득력이 있다.

 

인지과학적 관점은 실험경제학자들이 제기한 변칙적인 결과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앞에서 살펴본 프레임 짜기, 가용성 편견, 기준점 잡기, 그리고 기타 효과들은 빠른 패턴 인식자로서, 또 미흡한 패턴의 완성자로서 인간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때때로 귀납에 너무 성급한 나머지 실수를 하고 논리적 연관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빠르고, 유연하고, 대충은 옳은 존재로 발전했다. 이는 느리고, 냉담하고, 그러나 완벽하게 논리적인 존재와 대비된다.

 

 

행위자의 마음

지금 이 순간, 표준적이고 광범위하게 합의된 귀납적 추론 모델은 없지만 다양한 연구자들은 적어도 정확히 표현된 수학적 귀납 모델을 정립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패턴 인식과 학습을 특징으로 하는 모델들은 오늘날 컴퓨터 과학 연구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델들은 공항에서 테러리스트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신용 카드를 이용한 사기 패턴을 인식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많이 응용되고 있다.

 

홀란드와 그 동료들은 귀납에 관한 일반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모델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 행위자 : 다른 행위자 및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행위자가 있다.
  • 목표 : 행위자는 달성하려고 하는 한 가지 목표 또는 여러 목표들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상황과 자신이 바라는 상황과의 격차('나는 배가 고프다', '나는 위험한 상황이다')를 인식할 수 있다. 행위자의 일은 목표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다.
  • 경험의 법칙 : 행위자는 현 상태와 필요한 행동을 연결시키는 경험의 법칙들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조건-행동' 규칙으로 불린다. 예를 들면 "만약 스토브가 뜨겁다면, 그러면 만지지 마라"는 식이다. 특정 시점에서 행위자가 갖는 경험 법칙들의 집합은 그 행위자의 '사고 모델'로 불린다.
  • 피드백과 학습 : 행위자의 사고 모델은 어떤 규칙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됐고, 어떤 규칙이 목표로부터 더 멀어지게 했는지를 추적한다.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은 행위자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귀납은 행위자가 자신의 목표 달성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문제 해결 도구다.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으로 형성된 규칙들의 집합외부 세계에 대한 행위자의 내부 모델이다. 행위자는 이 내부 모델을 사용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최선일지를 예측한다.

 

이렇게 귀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하며, 유추를 통해 추론하는 방식은 꽤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이 방식은 생물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 같은 하등 생물조차 귀납적 문제 해결 시도를 한다. 즉 다양한 집적도의 음식물들을 만나면 집적도가 더 높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니까 그 방향 쪽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묵시적인 예측을 한다. 박테리아는 환경으로부터 바로 피드백을 얻는다. 즉, 규칙이 먹혀 들어가면 살아남아 증식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개구리 학습

해당 규칙을 적용했을 때 과거 커밋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기초해 점수를 부여받는다는 얘기다.

다른 규칙은 전혀 시도하지 않을 정도로 시스템이 경직화되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비용은 단기에 발생하고 이익 실현은 장기간이 걸릴 때 시스템은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학습할까?  "우리에게는 시장이 있다."

 

 

패턴 인식

여기서는 서로 경쟁하는 규칙, 점수,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 등으로 구성된 상대적으로 간단한 시스템어떻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습을 하는 유연한 패턴 인식 시스템으로 발전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이제 시스템의 성과를 크게 높이기 위해 가정을 한 가지 더 추가하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스템의 규칙들은 자기 조직화를 통해 '계층적 구조'가 된다고 가정한다. 커밋의 세계는 규칙성이 있기 때문에 커밋의 사고 모델에 나타나는 규칙의 패턴에도 규칙성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작다' '날아다닌다' '푸르다' 등을 다루는 규칙들은 동시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규칙들이 함께 나타나면 이들은 연관성이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 규칙들이 하나의 범주로 조직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커밋이 '작다' '푸르다'에 해당하는 것을 만날 때 떠오르는 여러 규칙들은 '파리'라는 범주에 들어올 수 있고, 마찬가지로 '크다' '날아다닌다' '날개를 퍼덕거린다' 규칙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새'라는 범주로 모일 수 있다. 커밋의 사고 모델은 파리와 새와 관련한 수많은 경험들과 반응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계층적 구조는 귀납적 시스템에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을 준다. 우선, 시스템이 새로운 현상에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사고 모델도 언제나 실제 세계보다는 더 단순할 것이다. 따라서 커밋은 항상 자신이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황을 만날 수 있고, 그 경우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커밋의 사고 모델은 '기본적으로 미리 내정된 계층 구조'로 정리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커밋이 어떤 패턴을 만나면 그의 사고 모델은 그 패턴에 맞는 특정한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조사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 없다면 그는 다시 미리 내정된 대응에 의지할 것이다.

 

규칙 계층 구조가 갖는 두 번째 이점은 유추에 의한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새에 대한 커밋의 경험 중 대부분이 바다 갈매기였고, 그 결과 '크다' '날아다닌다' '날개가 퍼덕거린다' 등을 탐지하면 발동되는 규칙들이 '새'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다고 하자. 어느 날 커밋은 '크다' '날아다닌다' 그러나 '날개를 퍼덕거린다'에는 해당되지 않는 어떤 것을 보았다. 이런 일에 직면하면 '새'라는 탐지기들의 일부만 작동하게 된다. 커밋에게 이 새로운 물체는 '새 같은 것 또는 새 비슷한 것'으로 지금껏 자신이 새에 관련해 갖고 있던 경험에 비추어 정확히 맞지 않는다.

 

커밋의 사고 모델은 무엇이 이 새로운 물체와 일치하는지 다른 범주들의 탐색을 돕고 이것이 파리나 강아지보다는 새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 준다. 커밋은 이미 정해 놓은 규칙의 계층 구조를 활용해 가장 일반적인 새에 대한 대응책, 즉 '도망간다' 쪽으로 향한다.

 

유추에 의한 이론 추론은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는 모호한 세계에서 커밋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금융 정보를 추적하는 스톡 봇

앞에서 파리를 잡는 개구리에 관한 모델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귀납적 모델은 인간의 경제적 의사 결정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아서는 실제 세계의 의사 결정 과정은 경제학 모델에서 말하는 참하고, 무미건조하며, 완벽한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일반적 귀납 모델을 따른다면 산타페 모델에서 행위자들은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작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이다. 이들은 환경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처리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고, 그다음 환경으로부터 그 결정에 대한 피드백을 얻는다.

 

슈거스케이프의 행위자처럼, 주식 시장 모델의 행위자들에게도 진화의 힘이 적용된다.아서, 홀란드, 그리고 그 동료들은 자신들의 모델에 또 하나의 진화를 추가했다. 주식 시장 모델에서 진화는 행위자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그들의 머릿속에서도 작동한다.

 

투자를 위한 시나리오에는 두 가지의 경쟁이 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시장 그 자체에서 투자 전략들 간의 일반적인 경쟁이다. 누가 더 잘할지, 성장 투자가들인지아니면 가치 투자가들인지, 또는 황소인지 곰인지 같은 경쟁을 말한다. 두 번째는 당신의 머릿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투자 전략들 간의 경쟁이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중개인인가 아니면 당신의 괴짜 삼촌 허비인가? 아서와 홀란드는 이 두 가지 모두 진화론적인 학습 과정을 따른다고 추측했다.

 

이 아이디어를 탐색하기 위하여 컴퓨터상에서 가상으로 거래되는 주식 환경을 만들었다. 임의로 배당금을 지급하는 단일 주식을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주식을 사고팔 100명의 거래 행위자들도 두었다. 주식 가격은 시장에서 행위자들의 매매에 의해 결정된다. 각 행위자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행위자들은 언제 사고팔지 결정해야만 했다. 행위자들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세 가지 정보를 참고했다. 주식의 과거 가격 패턴, 배당금 지급 기록, 안정적인 이자율이다.  다음으로 행위자들이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이들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개구리 모델에서처럼 연구자들은 시장에서의 패턴과 행위자의 주식 가치에 대한 기대를 이어 주는 '조건-행동 규칙'을 활용했다.예를 들면 <만약 '지난 기간에 비해 가격이 5% 오른다'면, 그러면 '다음 기간 가격은 현재 기간 가격 +5%로 예측하라'는 것과 같은 규칙이다. 이런 규칙을 따르는 행위자는 예측 가격과 현재 가격을 비교함으로써 주식을 살 것인지 팔 것인지를 간단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보다 규칙이 더 복잡해 질 수도 있다.

 

행위자들이 사용하는 경험 법칙들은 기본적인 조건(예를 들면, 이익 대비 가격 비율이 일정 범위에 있는 주식을 사라)이나 시장의 추세(계속 가격이 상승하는 주식을 사라) 또는 이 두 가지의 혼합에 근거할 수 있다. 이 모델에는 하나의 규칙이 얼마나 복잡해도 되는지에 대한 어떤 제한은 없다.

 

아서와 홀란드는 각 행위자에게 단지 하나의 경험 규칙이 아니라 100개의 규칙들을 부여했다. 그러니까 행위자는 주식 시장에서 무엇이 과연 성공에 이를지 머릿속에 있는 100개 규칙들을 서로 경쟁하는 가설들로 해석할 수 있다. 달리 설명하면 각 규칙은 하나의 잠재적인 투자 전략이고, 행위자가 할 일은 가능한 모든 잠재적인 전략들을 다 살펴본 뒤 어떤 것이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행위자들이 어떻게 100개나 되는 투자 전략을 다 살펴볼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답은 매우 간단하다. 개구리 커밋처럼 행위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사용한다. 아서와 홀란드는 행위자의 머릿속에서도 진화의 과정이 작동하도록 했다.

 

각 행위자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머릿속에 수많은 투자 전략 DNA를 갖고 있다. 각 전략  DNA마다 적합도(또는 적응도) 점수도 부여받는다. 따라서 어떤 전략이 행위자에게 돈을 벌어다 주었다면 그 적합도 점수는 증가하고, 반대로 돈을 잃게 했다면 점수는 내려간다.

 

매회 게임에서 행위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행위자는 과거 주식 가격, 배당금, 그리고 안정적인 기본 이자율 정보를 받았다. 그런 다음 이 정보를 자신들의 잠재적인 투자 전략과 시장의 패턴에 관한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일치 여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규칙들이 일치하면 행위자는 각 규칙들의 적합도 점수를 보고 가장 높은 점수를 가진 규칙을 선택한다. 따라서 과거에 잘 들어맞았던 규칙들은 더 자주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규칙이 일단 활용된 뒤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핀다. 행위자가 돈을 벌었다면 그 결과로 인하여 이 규칙은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 반대로 돈을 잃으면 이 규칙은 약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정된 수의 규칙들 안에서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 주식 시장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 전략을 고안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위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게 할 것인가?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모델 안에 집어넣었다. 때때로 중간중간에 각 행위자들이 보유한 100개 규칙들의 집합이 하나의 진화 과정을 겪도록 한 것이다. 즉, 성적이 밑바닥인 20개 규칙들은 제거되고 새로운 규칙들이 탄생해 이들 자리를 차지한다. 보다 성공적인, 남아 있는 80개 규칙들 중 일부의 경우는 컴퓨터  DNA의 개별 요소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이는 본질적으로 컴퓨터 섹스다. 하나의 DNA 열이 임의의 지점에서 싹둑 잘려 두 개가 되고 이것이 또 다른 열과 결합되었다가 다시 두 개로 잘리면서 새로운 다른 무엇을 탄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돌연변이와 재결합 과정의 결과로 행위자가 가진 100개의 규칙 풀에서 새로운 전략이 만들어진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전략들 중 많은 것은 말이 안 되거나 심지어는 해롭기까지 할 수도 있지만 그중 일부는 정말 성공적인 혁신일 수 있다.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른 많은 전략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그런 전략이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준비가 되자 일련의 실험을 시작 했다. 처음에는 모든 행위자가 똑같은 한 가지 규칙, 즉 완전 합리성을 가졌고, 학습률은 0인 단순한 시스템을 먼저 돌려 보았다. 결과는 전통 경제학이 예측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델은 빠른 속도로 이론적 균형 가격에 가까운 한 가격으로 안정되어 갔다. 이 실험은 모든 사람이 전통 경제학의 합리성에 따라 행동한다면 시장은 대체로 전통 이론이 예측한 대로 돌아간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이번에는 다른 모델을 돌려 보았다. 행위자 머릿속에 있는 100개에 달하는 경쟁적 규칙들을 작동시켰다. 임의로 분포한 전략들을 초기 값을 주었고, 학습률은 0 이상으로 높였다. 이는 모델의 행태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래량은 훨씬 높아졌고, 변동성은 커졌다. 그리고 주식 가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버블과 폭락 등 훨씬 더 복잡한 동태성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행위자들의 상대적인 성과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실질적인 금융 시장은 지금 말한 이런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

 

무엇이 보다 동태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시장으로 변화시킨 것일까? 여기에 이질성과 학습을 도입하자마자 상황은 훨씬 더 다양해졌고 더 복잡해졌다. 이 모든 가격 움직임은 여러 규칙들이 동태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촉발된다.

 

복잡한 패턴은 단순히 임의적인 노이즈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행위자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각 행위자들 간에 여러 가지 믿음들이 복잡한 양상으로 경쟁하고 있고 그 결과 시장의 변동성과 복잡한 패턴이 촉발된다.

 

경제라는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 개인들의 미시적 행태에 대한 이해는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거의 100년에 걸쳐 경제학의 인간 행동에 관한 모델은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듯이 과도하게 단순화시켰고, 수 많은 증거들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며, 단지 수학적으로 다루기 쉽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모델이 나오고 있다. 이 모델은 인간을 모호하고 빨리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습하는 귀납적으로 합리적인 패턴 인식자로 묘사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전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전히 이타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행태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을 이끌어내며, 협력의 대가를 보상하고 무임승차자를 벌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며, 결점과 편견을 갖고 있다.

 

인지과학은 아직 도입 단계에 있고 합의된 단일 방법론도 없다. 앞으로 인지과학은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모델링 기술도 계속 향상될 것이다. 그 결과 경제학이 결코 역사심리학이 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인간 행동이 경제를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에 대해 현재보다는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 네트워크 : 오! 너무나 복잡한 거미집

네트워크는 어떤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든 반드시 포함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행위자들 간의 상호 작용이 없다면 어떠한 복잡성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 세계는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분자들은 세포에서 상호 작용하고 세포들은 유기체에서 상호 작용한다. 그리고 유기체들은 생태계에서 상호 작용한다.

 

인간의 몸은 다른 네트워크와 상호 작용하는 네트워크 내부에 또 네트워크로 구성된 고도의 복잡한 구성체다. 뇌, 신경계, 순환계, 그리고 면역 체계 등을 포함한다. 인간 몸에서 이런 네트워크 구조를 다 떼어 내버리면 우리는 화학 물질을 담은 조그만 박스나 욕조 반 정도의 물에 불과할 것이다.

 

경제적 세계 역시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도로, 하수도, 수계, 전기 배선망, 철로, 가스 라인, 전파, 텔레비전 신호, 그리고 광케이블 등으로 꽉 차 있다. 이것들은 경제라는 개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방방곡곡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는 매우 복잡한 가상 네트워크들도 포함한다. 사람들은 기업에서 상호 작용을 하고,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상호 작용을 한다. 생물 세계에서처럼 경제 세계의 네트워크들은 네트워크 내부의 네트워크라는 계층별로 배열되어 있다.

 

네트워크가 경제학에서 이렇게 대접받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물리학에서는 수년간 관심을 끈 주제였다. 최근에는 새로운 수학적 도구와 컴퓨터의 발달에 힘입어 물리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과학적으로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가 크게 진전됐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네트워크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수많은 일반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이 장에서는 새로 발견된 그와 같은 '네트워크 법칙들' 중 일부가 경제 시스템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 볼 것이다.

 

랜덤 그래프: 노드에 랜덤하게 연결된 그래프

래티스 그래프 : 격자 무늬로 바둑판 처럼 연결된 그래프

랜덤 그래프와 래티스 그래프 모두 경제 현상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네트워크 중 일부는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형태이다.

 

네트워크의 폭발

이메일, 팩스, 전화 등과 같은 상품들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유용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네트워크 효과'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은 이런 형태의 제품들이 왜 갑자기 불이 붙어 인기를 크게 얻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론 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랜덤 그래프 이론이 그 답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계속해서 단추를 연결해 나가면 분리된 단추들의 클러스터가 갑자기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슈퍼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5개의 단추로 이루어진 클러스터 2개가 이어지면 10개의 단추로 이루어진 클러스터가 되고, 각각 단추 10개의 클러스터와 4개의 클러스터가 이어지면 단추 14개의 클러스터가 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시스템의 특성에서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상 변화'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증기를 가져다 온도를 한 번에 1도씩 낮추어 100도에 이르면 그 증기는 물로 변하고, 다시 0도에 이르면 얼음으로 바뀐다. 임의의 네트워크에서는 작은 클러스터에서 거대한 클러스터로의 상전이가 특정 시점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단추당 연결된 실의 비율이 1의 가치, 즉 단추당 평균 1개의 실이 연결된 경우를 넘어설 때다.

 

그렇다면 1의 비율은 '분기점(티핑 포인트)'으로 생각 할 수 있는데 이 분기점은 임의의 네트워크가 드문드문 연결된 상태에서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로 갑자기 바뀌는 시점을 말한다.

 

카우프만은 네트워크 형성에서 이 분기점은 생명을 위해 필요한 화학 반응 네트워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효과가 경제나 기술이라는 맥락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인터넷이야말로 이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랜덤 그래프 이론은 그런 현상을 모델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는 부드럽고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비선형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런 네트워크들을 분석하면 왜 갑자기 어떤 패션이 히트하는지, 왜 갑자기 정치적 운동이 뜰 수 있는지, 또 심지어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좁다

'6단계 분리 법칙' : 편지는 평균적으로 6번을 거치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내용

 

한마디로 세상은 이렇게 좁다.

마크 뉴먼은 이른바 '좁은 세계 효과'는 네트워크 그 자체의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 도시와 그 도시에 가장 가까운 4개의 이웃 도시들을 선으로 이어보자. 일종의 '래티스 네트워크'가 나온다.

그러나 이런 규칙성의 불리한 측면은 이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동하려면 너무 많은 단계를 거친다는 점이다.

 

이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을 연결하는 규칙 대신 도시마다 임의로 4개의 도시를 이어 준다고 하자. 모든 선은 임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짧은 거리, 중간 정도 거리, 긴 거리의 연결선들의 수는 같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단계의 수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두도시를 적절히 연결하기 위해 단, 중, 장거리 여행을 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래티스 그래프에서 랜덤 그래프로 옮겨 가면 분리된 단계의 정도가 확 줄어든다.

 

 

우연히 안 친구의 가치

사회적 네트워크는 래티스 그래프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질서와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같이 자란 사람, 학교를 같이 다닌 사람, 직장 동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 그리고 현재의 이웃 등일 것이다. 이런 클러스트의 존재는 네트워크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질서와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구조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연히 알게 된 몇 명의 친구들도 있다.  우리의 정규적인 클러스터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 사람들은 우리의 사회적 네트워크 밖에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에 연결해 준다. 만약 우리가 근사한 구조를 가진 래티스 그래프에다 몇몇 임의적인 연결 고리들을 집어넣으면 양쪽 세계의 이익을 모두 얻게 된다. 결국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은 비유를 하자면 샬럿에서 샌디에고까지 급행 항공 여행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세계를 매우 잘 알면 그 사람을 연결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와츠와 뉴먼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연결이 좋은 사람들은 접촉하는 그룹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고 모든 계층과 환경에서 친구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 연결이 잘돼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네트워크 구조는 개인에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조직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구성원들이 엄격한 경력 단계별로 올라가야 하고, 격납고나 저장고 형태의 사업 단위 내지 부서들을 가진 조직체라면 사회적 네트워크는 임의성이 충분하지 않으며, 과도하게 구조화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정보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위한 단계들의 연결 체인이 길어진다. 부족한 소통, 느린 의사 결정이 초래된다는 얘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떤 조직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여러 기능과 업무를 거치도록 한다. 이를 통해 회사 내에서 보다 다양한 연결성을 갖도록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든다.

 

 

네트워크는 컴퓨터다

컴퓨터는 사실상 네트워크이고, 네트워크는 현실에서 컴퓨터다. 컴퓨터를 열어서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네트워크로 서로 이어져 있는 칩 다발을 볼 것이다. 또 이 칩 중 하나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하나의 네트워크로 서로 이어져 있는 수천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볼 것이다. 이들 트랜지스터가 하는 유일한 일은 0과 1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개별 트랜지스터에서 동력을 얻는 게 아니라 이것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동력을 얻는다. 이것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동력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개별 컴퓨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 주면 보다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0 아니면 1의 상태에 있는 노드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불리언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경제를 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경제도 하나의 불리언 네트워크다.

 

30년이 넘는 불리언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 덕분에 그 특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이제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불리언 네트워크 WWW를 형성하고, 당신의 몸을 만들며, 정신을 불어 넣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단순한 피조물이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변수가 이 네트워크의 행태를 이끈다

 

첫째, 네트워크에 있는 노드의 수다. 둘째, 각 노드가 얼마나 많은 다른 노드들에 연결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노드의 행태를 이끄는 규칙들과 관련한 '치우침'의 정도다. 이제부터 이들 규칙들과, 그것이 경제와 다른 여러 형태의 조직들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다.

 

 

큰 것이 아름답다 : 정보의 규모

불리언 네트워크와 관련하여 첫 번째로 중요한 사실은 네트워크가 처할 상황의 수는 노드의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점이다. 2개의 노드를 가진 네트워크는 4가지, 즉 2의 2승개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 3개는 2의 3승개, 105개 노드를 가지면 클릭하는데 우주의 수명을 넘는 기간이 걸릴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긍정적인 측면은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면 이것이 취할 수 있는 정보량 또는 이것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은 네트워크 성장의 '파워'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출범 하기 전에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이 약 10만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을까 추정했었다. 막상 지도가 완성됐을 때 인간이 약 3만 개의 유전자만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미천한 회충은 1만 9천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어떻게 찬란할 정도로 복잡한 호모 사피엔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선충류보다 단지 33% 더 많은 유전자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다른 데 있다. 유전자는 불리언 네트워크에서 우리 몸의 성장을 조절한다. 그런데 이 1만 개 남짓한 유전자가 더 있으면 훨씬 더 복잡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가능한 모든 상태의 가지 수 측면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일어나면 정보를 처리하는 단위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에서는 강력한 규모의 경제가 일어난다. 불리언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면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가 경제 성장을 설명하는 유일한 요소라면, 단지 우리는 오늘날 석기를 200만 년 전보다 더 싸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직을 불리언 네트워크 일종이라고 생각한다면, 조직의 규모면에서 증가함에 따라 가능한 혁신의 공간은 기하급수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게임을 만들때 규모의 경제 요소만 사용하면 석기를 더 싸게 만들고 있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음)

 

인간의 경제 조직은 실제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규모면에서 증가해 왔다. 특히 조직의 점프가 일어난 것은 기술 변화와 일치했다. 정착 농업의 발전으로 그전 조직 단위로 볼 수 있는 수렵,채집 시대보다 확실히 큰 마을의 형성이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산업 혁명은 대규모 공장의 설립과 산업 도시의 형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정보 혁명은 거대한 글로벌 회사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선순환 고리가 생겨났다. 다시 말해, 기술 변화는 보다 큰 단위의 경제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경제 협력 단위는 큰 정보 규모를 활용, 미래의 혁신을 위한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불리언 네트워크 수학은 우리를 난처한 입장에 빠뜨린다. 큰 조직이 작은 조직보다 혁신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을 갖는다면 작은 조직이 큰 조직을 혁신에서 압도하는 비즈니스 신화들이 유효한 이유는 무엇이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친구들이 큰 골리앗 같은 기업들을 이기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큰 것은 나쁘다 : 복잡성의 불행

뉴먼의 이론은 규모가 커짐에 따라 또 다른 면, 보다 어두운 측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불리언 네트워크의 두 번째 변수, '연결의 정도'에 의해 발생하는 중요한 규모의 불경제가 있다. 

 

어떤 네트워크가 노드당 평균적으로 한 개가 넘는 연결을 갖는다면 노드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연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네트워크에서 상호 의존의 수는 네트워크 그 자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상호 의존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네트워크의 한 부분에 변화가 생기면 네트워크의 다른 부분에 그 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크게 높아 진다. 이러한 파급 효과(스필 오버)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네트워크의 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게 될 가능성도 증가한다.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소통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게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 부서의 장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각장들은 다른 부서장들과 정기적으로 직접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조정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갑자기 세 번의 미팅이면 충분하던 것이 열 번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조직의 규모는 그대로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유일한 이유는 소통 연결의 밀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점점 성장하면서, 예컨대 각자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적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  사실 당신이 하고 싶어 했던 것은 더 좋은 소통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당신 회사는 관료주의적인 수렁에 빠져들고 만다.

 

네트워크에서 이런 종류의 상호 의존은 카우프만이 말한 '복잡성의 불행'을 야기한다. 네트워크가 규모면에서 발전하고, 상호 의존의 수가 늘어나면 네트워크 한 부분에서는 긍정적이던 변화가 단계적 반응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인 변화를 야기할 확률이 노드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즉 밀도 있게 연결된 네트워크는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융통성이 떨어진다.

 

이런 복잡성의 불행은 관료주의가 잡초처럼 강인하게 자라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어느 주구도 관료주의를 고의적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네트워크에서 자신들의 담당 영역만을 최적화하려고 하면서 관료주의가 형성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나쁜 의도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네트워크 확장이 상호 의존성을 높이고, 이 상호 의존으로 인해 제약 조건들이 상충하는 일이 일어난다. 상충적인 제약 조건들로 인해 의사 결정은 느려지고 궁극적으로 관료주의적 정체로 이어진다.

 

 

가능성의 정도 대 자유의 정도

조직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힘이 작용한다. 노드 증가에서 오는 정보, 즉 '규모의 경제', 그리고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의 증가로 인한 '규모의 불경제'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힘은 큰 것이 왜 아름답기도 하면서 나쁘기도 한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조직의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가능성의 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자유의 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큰 조직은 작은 조직들에 비해 내재적으로 보다 많은 매력적인 기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기회들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충 관계에 직면한다. 조직의 네트워크가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이런 상충 관계는 더욱 심화된다. 조직 내의 정치적 관계로 인해 특정 부서의 어려움 때문에 조직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는 어떤 새로운 상태로 옮겨 가지 못하고 마는 상황도 생겨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이고, 수십억 달러의 자산, 전 세계에서 끌어 모은 수십만 명의 재능 있는 인력, 그리고 심지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의 연구 능력을 가진  IBM이 어떻게 우표 수집으로 번 용돈밖에 안 되는 돈을 가진 10대에게 질 수 있는가? (델 컴퓨터 이야기)

 

왜  IBM은 델이 시장 점유율에서  IBM을 앞지른 뒤 7년만에 고객에게 직접 컴퓨터 파는 일을 시작했을까? 그 이유는 IBM이 앞서 말한 '복잡성의 불행'의 희생물이 된 탓이다.

 

델이 빼앗아 간 시장 점유율을 다시 찾아오고 싶어 했겠지만 IBM 사업 시스템의 높은 상호 의존성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요"라고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무엇을 하나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상호 작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충돌과 제약의 확률은 더 높다.

 

대부분의 조직 실상을 보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아니요"라고 말하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IBM-델 전쟁 초창기에 IBM은 그 가능성의 정도로 보면 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예컨대, IBM은 델보다 훨씬 더 빠른 직접 주문 모델로 기업 시장을 침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오래된 기업은 그런 기회를 살릴 '자유도'면에서는 델에 훨씬 뒤졌던 것이다.

 

상호 의존성과 적응성 사이의 긴장은 네트워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특징으로 여러 형태의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프트웨어 설계자는 프로그램이 너무 복잡해져서 무엇을 개선하거나 버그를 고치면 새로운 5개의 버그가 일어나는 때가 언제인지를 살핀다. 건축가는 고객이 벽을 30센티미터만 옮겨 달라고 부탁할 때 그것의 연쇄반응으로 프로젝트 비용을 증가한다는 것을 안다. 스튜어트 카우프만 같은 일부 생물학자들은 이런 긴장이 유기체의 복잡성에 상한선을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경제 조직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복잡성으로 인한 조정 비용 및 제약 조건 사이의 상충 관계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블록체인이 어느 정도 해결 한것 아닌가? 단일한 개체들이 독자적인 무결성을 가지게 되고 서로 연결성만 가질 수 있으면 생태계처럼 성장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층 구조에 대한 두 찬사

네트워크 이론은 조직들이 두 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는 연결의 밀도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 결정의 예측성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각 노드마다 연결 패턴이 똑같은, 가령 각 노드마다 세 가지 연결 등과 같은 그런 네트워크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만약 네트워크를 계층적 구조로 배열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3명의 근로자 노드들은 하나의 관리자 노드에 보고하고, 세 명의 관리자 노드들은 하나의 경영자 노드에 에 보고하는 구조를 상상해 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네트워크는 그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밀도가 높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혼합체다.

 

카우프만은 조직의 적응성을 높이고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을 피해나가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조직을 쪼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네트워크를 계층적 구조로 바꾸면 연결의 밀도를 줄임으로써 네트워크의 상호 의존성을 감소시킨다. 계층적 구조는 규모의 불경제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네트워크가 더 큰 규모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것은 자연 세계와 컴퓨터 세계에서 그렇게 많은 네트워크들이 네트워크 안의 네트워크로 구조화 되는 이유다.

 

조직적 관점에서 볼 때 계층적 구조는 적응성을 줄이는 관료주의의 한 특징이라는 게 전통적인 생각이다. 관리자들은 계층을 없애는 등 조직을 되도록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반직관적으로 계층적 구조는 상호 의존성을 낮추고, 조직 전체가 자리 잡기 전에 조직이 더 큰 규모에 이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적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계층 구조가 미팅 수를 실제로 줄인다. 물론 계층 구조에는 문제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정보가 체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변질될 수 있고, CEO가 일선 현장과 유리될 수 있으며, 위 단계에서 누군가 일을 잘못 수행하면 많은 손실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계층적 구조는 원래 나쁘다고 바로 가정해 버리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상호 의존성을 줄이는 계층 구조의 핵심적인 역할을 놓치는 것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나타난 한 움직임은 계층적 구조 내의 조직 단위들에 보다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앞르레드 슬론의 위대한 통찰 중 하나로, 그는 자율적인 부서(조직)의 개념을 만들어 냈다. 슬론은 하나의 자동차 회사 안에 본질적으로 5개의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많은 회사들이 독자적인 손익 책임성을 갖는 보다 자율적인 조직 단위로 옮겨 간 것은 대부분 조직 확대에 따른 복잡성 문제에 대한 대응이었다.

 

최종적으로 조직을 스핀 오프하거나 회사를 분리함으로써 궁극적인 자율성을 조직에 부여하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지루함이 더 낫다

카우프만과 그 동료들이 맨 처음 연구를 수행했을 때 비계층적 네트워크들은 각 노드당 평균 1~2개의 연결을 갖는 자연 발생적인 질서를 보여 주지만, 노드당 4개의 연결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카오스 상황에 빠진다.(단계적인 연쇄 변화와 복잡성의 불행을 일으킨다) 뒤이어, 물리학자 베르나르 데리다와 제라드 바이스부흐가 상전이가 일어나는 지점을 결정하는 모수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치우침이다.

 

A와 B가 꺼지면 C도 꺼지는 크리스 마스 전구들 예시

 

조직적 맥락에서는 이런 치우침을 예측성의 잣대로 간주할 수 있다. 조직의 의사 결정에 예측성이 있다면(크리스마스 전구의 규칙성 같은 것을 말한다), 이 조직은 더 밀도 높은 네트워크를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 결정이 예측할 수 없다면 밀도가 덜한 연결, 보다 계층적인 구조, 보다 작은 관리 범위 등이 요구된다.

 

군대를 예로 들어 보자. 군대처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행동이 중시되는 조직에서는 가령 창조적인 광고 회사보다 더 큰 조직 규모에서도 문제점들을 피해 나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요소들, 가령 사무실 내의 정치나 감성은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규모를 제한하여 규모가 복잡성에 압도될 정도로까지 성장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기능 장애 조직이 되는지 그 처방을 알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 평평한 계층 조직, 그리고 매우 밀도 높은 상호 연결을 혼합하라. 그러면 무슨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가능성은 거의 제로가 될 것이다.

 

 

질서의 선

카우프만과 그 동료들의 연구는 직관과는 다른 통찰력을 제시한다. 델에 대한 IBM의 문제변화에 둔감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에 너무 민감했던 데 있다. 밀도 높은 상호 연결, 혼란스러운 상호 작용을 가진 사업 시스템은 조그만 변화도, 예컨대 "우편으로 컴퓨터를 팔자"와 같은 변화조차 조직 전반에 결쳐 연쇄적 변화를 야기해 큰 문제들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의미했다. 그래서 왜 우편으로 컴퓨터를 팔 수 없는지에 대해 수천 가지의 이유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복잡계 이론을 단순히 은유적 차원에서 해석할 경우 위험한 이유 중 하나이다. 많은 경영학 서적과 논문들이 카오스의 경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질서와 혼돈의 경계선인데, 이 지점에서 자연은 가장 잘 적응하는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에 대한 통속적인 해석은 이런 것이다. 조직이 너무 질서 잡힌 체제에 깊이 박혀 버리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으므로 혁신을 더 자극하려면 카오스의 요소를 좀 조직에 집어 넣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과학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실제로 이보다 더 미묘한 것이어서 이와는 다른 의미들을 제시한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카우프만의 전구 네트워크로 다시 돌아가 보자. 만약 각 전구가 다른 전구와 평균 두 번 정도 연결돼 있으면 그 네트워크의 행태는 꽤 질서를 갖춘 상태가 된다. 조그만 변화가 발생한다고 해도 깜박거리는 전구의 패턴에 큰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각 전구를 4개의 다른 전구에 연결하면 그 행태는 크게 달라진다. 네트워크의 어느 한 부분에서 조그만 변화가 있으면(가령, 전구의 패턴을 결정하는, 켰다 껐다 하는 연결 규칙들 중 하나를 조금만 수정하면) 연쇄적 변화로 이어져 전구의 패턴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조직적 맥락에서 이런 연쇄적인 변화들은 상충하는 제약 조건들로 이어진다. 전구당 2개의 연결에서 4개의 연결로 옮겨 가면 네트워크가 경직적이고 변화에 둔감한 상태에서 혼란스럽고 지나치게 변화에 민감한 상태로 갑작스러운 상전이가 일어난다.

 

진화 시스템은 변화에 대한 중간 수준의 민감도, 다시 말해 앞에서 말한 두 상태의 사이의 범위에 있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만약 진화 시스템이 변화에 너무 둔감해서 변화하지 못하면 환경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스템이 과도하게 변화에 민감하면 조그만 변화라도 커다란 의미를 가지거나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과도한 민감성이 문제인 것은 어떤 시스템이 과거에 성공적이었다면 어떤 큰 변화도 이 조직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큰 변화는 조직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높다. 

 

카우프만은 불리언 네트워크에 있는 각 전구가 평균적으로 2개와 4개 사이의 연결을 가질 때 시스템은 고도로 적응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상태에서 시스템은 구조를 갖춘 큰 섬들로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질서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 구조들의 경계선 주변에서 무질서가 꿈틀대며 조직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런 네트워크다. 

 

시스템의 연결 규칙에 조그만 돌연변이는 일반적으로 그 결과도 조그만 변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간혹 작은 변화가 보다 큰 연쇄적인 변화를 불러와 때로는 전체 조직의 성과를 저하시켰고, 때로는 향상시키기도 하였다. 이 특별한 네트워크는 고도로 적응성이 높았지만 노드당 2개에서 4개의 연결은 자연과 인간 조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네트워크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듬성듬성한 그런 연결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때문에 카우프만은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카우프만의 초기 연구 결과를 그 뒤의 계층적 구조와 치우침에 관한 연구들과 결합하면 국면 전환은 6개에서 9개의 노드 범위로 이동한다. 흥미롭게도 불리언 네트워크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 이 수치들은 인간 조직에서 효과적인 워킹 그룹의 규모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꽤 근접한 것이다.

 

예를 들어 CEO 아래 5~8명, 미국 대법원은 8명의 부심과 1명의 주심을 둔다.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는 5명의 부위원장과 1명의 위원장을 둔다. 어떤 인류학자는 이런 전형적인 구조와 규모는 수렵,채집민으로서의 오랜 진화의 유산이라고 추측했다. 이런 전형적인 워킹 그룹의 규모는 이것이 규모의 경제라는 이점과 복잡성의 불경제 사이에서 균형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그 수준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만약 30명 정도로 구성된 집단들로 나뉘어 그날 들소를 사냥할지, 영양을 사냥할지를 의논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면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오랜 기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8. 창발성 : 패턴들의 퍼즐

불경기, 경기 후퇴, 물가 상승 등은 근대에 와서 나타난 현상들이 결코 아니다. 역사의 기록이 시작된 이래 반복돼 왔다. 경제학에서도 똑같이 오래된 다른 패턴들이 있다. 1인당 부의 장기적인 성장, 부의 분배 등이 그것이다. 이런 패턴들이 그렇게 오래됐다는 것은 경제의 작동에 깊은 뿌리를 둔 원인들, 즉 특정 시대의 기술, 정부 정책, 사업 행태 등과는 무관한 요인들의 결과임을 보여 주는 것이 분명하다.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패턴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는 경제의 뿌리 깊은 구조적 특성은 무엇인가?

 

전통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이 질문들에 답하려 노력해 왔다. 우리는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이슈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경기 사이클은 꼬물거리는 젤리인가?

경기 사이클의 진동 현상은 전통 미시 이론에 기본적인 도전과제를 던진다. 신고전파 균형 모델은 저절로 춤을 추거나 파동을 치거나 진동하는 일이 없다. 그 모델은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질 때만 활기를 찾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것이 젤리 모델.

 

그러나 전통적인 젤리 모델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전통 이론은 보통 외생적 투입을 임의적인 것(최소한 예측이 가능한 패턴을 갖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젤리에 대한 투입이 정말 임의적인 것이면 그 산출 또한 임의적일 것이다. 신호는 전파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될 수 있지만 그 산출은 그래도 임의적일 것이다.

 

젤리 스스로 임의적이고 무질서한 투입을 취하거나 거기에 복잡한 질서를 추가할 수 없다. 젤리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다. 두드리기를 멈추면 젤리는 안정을 되찾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젤리가 진실로 질서 있는 파동을 만들어 낼 유일한 방법은 두드리기로 투입을 질서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해달 사이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설명을 외부 요인들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이제 신케인지언

거시 경제학자들은 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했다. 합리적 균형이라는 경제학 이론의 계곡으로부터의 이탈은 케인스의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 출판으로 중요한 전기를 맞이했다. 1930년대 동안 케인스는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불균형 사건 중 하나인 대공황을 목격했다. 케인스가 제시한 해법, 즉 일반 이론은 이에 대한 하나의 동태적인 스토리였다.

 

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예컨대 정치적 불확실성, 자연재해, 또는 전쟁 등으로 말이다. 소비자들과 사업가들은 보다 보수적으로 변하고, 덜 쓰고, 현금에 보다 집착하기 시작한다. 특정 시점에 경제에 있는 현금의 양은 고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행태들이 나타나면 유통되는 현금이 줄어든다. 이는 농부, 제조업자, 상점 주인, 그리고 다른 생산자들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스스로 소비도 줄이고 투자도 줄인다. 그 결과 또 누군가의 소득이 줄어든다. 결국 소비와 투자의 급감으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는 또 다시 불안감으로 이어져 소비는 더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안 좋은 방향으로의 악순환이 가속화된다.

 

균형 경제학은 그러한 화폐 공급의 위축에서 오는 문제들은 결국 자체 교정된다고 말한다. 즉, 물가와 임금은 화폐 유통량의 감소를 반영해 떨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정상적인 완전 고용 균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공황 때 물가와 임금은 분명히 떨어졌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은 소비를 그전보다 훨씬 덜했고(디플레이션 환경에서 돈은 미래에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그 결과 상황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확산되어 갔다.

 

케인스는 이런 동태성으로 인해 경제가 아주 오랜 기간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완전 고용으로 되돌리려면 정부가 화폐를 경제 시스템에 투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의 투입으로 소비 감소를 막고, 실업률 상승을 멈추게 하면 신뢰가 다시 회복돼 악순환 사이클을 선순환 사이클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전후 수년간 서방국가 정부들은 케인스의 이런 아이디어를 널리 채택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수십 년 동안의 경제 사이클을 보면서 케인스의 아이디어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 논쟁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점에 달했다. 당시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가 주장했던 정부 지출과 같은 것으로는 장기 성장에 이르지 않고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이 주장은 1970년대 고인플레이션, 저성장 기간 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프리드먼의 동료 루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케인스 이야기의 동태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경제가 나쁜 쪽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며, 이에 따라 자신들의 행태를 스스로 조정해 경제를 다시 완전 고용 균형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합리적인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은 정부의 개입 시도를 미리 간파하여 정부의 조치를 예상하고 그 정책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쪽으로 행동한다. 그리 되면 결국 정부 개입은 불경기를 막는 데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루카스의 이론은 수학적으로 근사했다.(노벨상 수상) 그러나 그의 과도한 합리성 버전은 전통 경제학자들의 신뢰마저 한계에 이르게 하였다.

 

2001년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허버트 사이먼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런 주장을 내놨다. 애커로프는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토마토를 사면서 정부의 미래 재정 적자를 추정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실제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그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소비해야 하는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얘기다. 귀납적인 합리성 모델을 정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을 보여 주었다.

 

즉, 소비자와 생산자가 완전 합리성에서 약간 모자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정확히는 사람들이 결정을 어떻게 내리든 상관없이) 케인스가 말한 동태성이 작동되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로 빠져 드는 데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애커로프는 또한 시간 지체가 경제의 동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가격과 임금의 경직성과 즉각적인 조정을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시간 지체에 주목했다. 

 

그의 모델은 또 정부가 시장에 유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악순환에 반작용을 가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애커로프의 연구는 펠프스, 블랑샤르, 맨큐와 같은 인물들의 연구와 합쳐져서 오늘날 '신케인지언 경제학'의 영역으로 발전했다. 신케인지언 경제학이 경제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정부와 월 스트리트 등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자율과 재정 적자 같은 요소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거시 경제학에 토대를 둔 신케인스주의는 전통적 정통성에서 뒤로 물러나 완전하지 않은 합리성, 동태성, 그리고 시간 지체 등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측면에서 신케인스주의는 복잡계 경제학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신케인스주의는 균형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되었다. 그 결과 이론의 실증적 성공은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다.

 

 

모아 놓으면 다르다

복잡 적응 시스템에서 행위자들의 미시적 상호 작용이 어떻게 거시적 구조와 패턴을 유발하는지 논의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슈거스케이프에서 매우 단순한 행위자들조차 그 상호 작용이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 같은 패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복잡계 경제학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업적은 행위자, 네트워크, 진화의 이론에서 시작해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거시적 패턴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창발성은 신비로운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 이루어진 단일 물 분자는 젖은 느낌이 없다. 그러나 컵에 있는 수십억 개의 물 분자들은 젖은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젖었다는 느낌은 특정한 온도 범위에서 물 분자들 사이의 미끄러운 상호 작용 결과 나타나는 집단적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의 온도를 낮추면 분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상호 작용을 한다. 즉, 물은 수정 구조의 얼음을 형성하고, '젖었다'는 창발적 특성 대신에 딱딱한 특징을 갖는다.

 

우리가 신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포들이 협력함으로써 그 어떤 세포도 단독으로는 스스로 할 수 없는 보다 높은 차원의 기능을 제공한다.

 

복잡계 경제학 역시 경기 사이클, 성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경제적 패턴들을 시스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내생적으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로 본다. 복잡 적응 시스템들은 많은 형태의 시스템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창발적 패턴들을 갖고 있다. 이 패턴들을 분석하면 그런 시스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그런 대표적인 세 가지 패턴, 즉 진동, 단속 균형, 거듭제곱의 법칙 등을 살펴볼 것이다.

 

 

진동 : 맥주 업계의 호황과 불황

경제는 경제 전반의 경기 사이클, 산업 차원의 상품 사이클, 그리고 보다 장기에 걸친 파동 변화에 따라 진동한다. 이런 진동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런 진동이 그렇게 끈질기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동은 복잡 적응 시스템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예를 들어, 생물의 생태계에서 개체 수는 진동의 패턴을 따른다. 20세기 초반, 우크라이나 화학자 알프레드 로트카와 이탈리아 수학자 비토 볼테라는 생태계에서 약탈자와 먹잇감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하는 진동을 묘사하기 위해 유명한 모델을 만들었다.

 

여우와 토끼의 개체 수를 생각해 보자. 이 모델은 토끼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 여우는 보다 많은 토끼를 잡아먹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여우의 개체 수는 증가하고 토끼의 개체 수는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끼의 개체 수가 감소하면 결국 여우의 개체 수는 줄어들고 이로 인해 토끼의 개체 수는 늘어난다.

 

여우와 토끼 개체 수 진동은 이렇게 일어난다. 이런 동태적 시스템은 결코 정지하지 않고 무한히 진동한다. 이 모델에는 진동을 초래하는 외생적인 충격은 없다. 부침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경제 시스템의 구조에서 어떻게 내생적인 진동이 발생하는 것일까? 1950년대  MIT의 제이 포레스터는 '맥주 유통 게임'으로 불리는 게임을 만들었다.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과 동태적인 구조를 결합할 경우 이것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통하여 간단한 경제 시스템에서 진동을 만들어 내는지를 증명했다.

 

한 학생은 맥주 양조업자, 다른 세명의 학생은 맥주 유통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 역할을 각각 맡는다. 각 참가자는 맥주 상자들을 재고로 갖고 있다. 서로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 주문 흐름은 고객에서 양조업자로 공급 체인을 따라가지만, 맥주 흐름은 그 반대다. 주문이 제출되고 맥주가 공급되면 그다음 회의 게임이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보유한 재고에 대해 상자당 05달러를 지불한다.(맥주 보관 비용) 그리고 맥주의 재고가 바닥나는 경우에는 상자당 1달러를 내야 한다(화난 고객과 판매 손실을 감안). 따라서 참가자들은 재고가 바닥나는 일 없이 주문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재고를 보유하려고 한다. 비용의 대칭성 때문에(추가적인 재고 비용보다 부족 비용이 더 크다) 약간의 추가적 재고를 가지려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게임의 승자는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말은 쉽게 들리지만 몇 번의 곡절 또는 변화가 일어난다. 실제 생활에서처럼 맥주를 주문하는 시점과 주문된 맥주를 받는 시점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다. 예컨대, 맥주를 생산해서 트럭에 실어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문을 내는 시점과 그것이 처리되는 시점 간에도 조그만 시간 지체가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주문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상호 작용도 참가자들 간에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시간 지체들은 상황을 좀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유통업자인데 도매업자로부터 큰 주문을 받는다고 하자. 재고에 갑작스러운 감소가 일어나고 재고를 채우기 위해 제조업자에 큰 주문을 낸다.  그러나 맥주를 받으려면 몇 회가 걸릴 것이고, 그 사이 또 큰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다음에도 높은 수요가 이어질 것을 예상해 주문을 더 크게 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일시적인 하락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자칫 2회 뒤에는 당신의 재고가 맥주로 넘칠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동과 행동에 대한 반응 사이에 시간 지체가 있는 경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이 게임은 정확히 균형에서 출발한다. 1회 이후부터 참가자들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얼마나 주문할지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참가자들에 따라서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 회피적이냐에 따라 4개보다 좀 더, 혹은 좀 덜 주문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회에 이르러 소비자 수요가 4개에서 8개로 갑자기 늘어난다. 참가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소비자 수요 수준은 앞으로 남은 게임 동안 8개로 유지될 것이다. 한 번에 주문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주문의 증가는 공급 체인을 따라 예상치 못한 변화로 이어진다.

 

실제 사람들과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주문의 갑작스러운 점프로 재고 수준이 떨어지자 초과 주문을 하는 등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초과 주문의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전달되는 과정에서 확대된다. 

 

과잉 반응 사이클은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일부 참가자들은 주문을 줄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일부는 아예 주문을 하지 않기도 한다. 과잉 주문과 과소 주문의 진동 파장은 공급 체인을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이에 따라 가상의 맥주 산업도 매우 값비싼 부침의 사이클을 겪는다.

 

이 맥주 게임을 수백번 다양한 사람들에게 실험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다시 말해 마찬가지로 거친 진동의 파장을 관찰하였다. 전통 경제학 이론은 참가자들이 완전하게 합리적일 경우 거친 진동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종류의 행태로 인해 그렇게 단순한 실험에서 거친 진동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인가? 스터먼은 참가자들이 활용한 의사 결정 규칙을 통계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이 규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준점을 정하고 조정한다"는 행태에 기반을 둔 것이다. 참가자들은 재고 수준을 살피고, 시간 지체의 효과를 고려해 자신의 미래 수요를 연역적으로 계산하기보다는 단순히 주문과 재고 수준에 대한 과거의 패턴을 보고 귀납적으로 추론해 정상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패턴으로 기준점을 정한다. 이때 시간 지체가 있는 환경에서는 일단 기준점을 정하고 조절한다는 규칙이 개인들을 과잉 반응하도록(과잉 주문하거나 과소 주문하는) 만들고, 그 결과 사이클 행태라는 '창발적 패턴'이 발생한다. 

 

맥주 게임은 앞에서 얘기했던 단순히 꾸물거리는 젤리와 같은 전파 과정이 아니다. 물론 이 게임에도 하나의 외생적인 충격을 받는다. 주문이 4개에서 8개로 증가하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번의 두들김을 받은 젤리와 달리, 맥주 게임에서는 진동이 시작되면 시스템이 결코 균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맥주 게임에서 진동의 궁극적인 원천은 외부적인 충격 그 자체가 아니라(사실 이것은 단지 시스템을 출발하게 한다는 것뿐임) 참가자들의 행태와 시스템의 반응(feedback)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외생적인 동력을 전파하는 게 아니라 내생적으로 동력을 창출한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별 행태의 예측불허한 변화들이 모이면 거시적 차원에서는 큰 창발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제는 결국 공급 체인, 재고, 시간 지체 들로 가득 차 있다. 거시 경제의 실제 진동의 원인은 가지각색이지만 맥주 게임이 주는 교훈은, 사이클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서 활용하는 귀납적 규칙들이 경제 시스템의 동태적 구조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거대한 맥주 게임과 같은 것이라면 이것이 던지는 한 가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금리 인하, 재정 지출 증가와 같은 표준적인 해법들은 사이클의 근원을 다룬다기보다는 단지 그 증상을 다룬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기 사이클을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지만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사이클의 영향을 감소 시키고자 한다면 경제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경제의 동태적 구조는 명시적인 정부의 개입이 없다고 하더라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맥주 게임의 사이클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간 지체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가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양조업자가 소매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방안 등). 

 

1960년대 시작된 정보 기술 혁명은 이 두 가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경기 사이클 변동성은 1959년 이후 계속 줄어 왔으며, 특히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컴퓨터 덕분에 기업들은 신속한 주문 처리, 저스트인 타임 재고 관행 채택, 생산자와 부품 등 공급 체인 간 전자적 연결이 가능해졌다. 줄어든 사이클 변동성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기술 및  산업 관행의 변화로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맥주 게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속 균형 : 핵심 기술이 있는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뒤 한 세기 동안 생물학자들은 진화는 천천히 선형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종의 형성과 소멸이 순탄한 패턴을 보일 것으로 가정했다. 그 뒤 고생물학자인 제이 굴드와 엘드리지는 1972년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기존의 이런 관념을 뒤집었다. 그들은 화석 기록은 진화가 순탄한 경로를 결코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히려 진화는 오랜 기간 동안의 정체 상태와 더불어 폭발적인 혁신과 대량 소멸 기간들이 곳곳에 가미된 과정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굴드는 고요와 폭풍이 교차하는 패턴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속 균형(단선적, 불연속적 균형)'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단속 균형의 패턴은 생물학적 진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눈사태에서부터 주식 시장의 폭락에 이르는 다른 복잡 시스템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행태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네트워크 구조이다. 네트워크들이 매우 밀도 있는 연결과 매우 듬성듬성한 연결을 서로 혼합해 놓은 구조로 자기 조직화한다는 점을 앞장에서 보여주었다. 산제이 제인과 크리슈나는 생물 생태계에서 단속 균형이 출현한 밑바탕에는 그런 네트워크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화 생태계에 관한 가상 실험에서 이따금 어떤 종들의 경우는 이를 제거하면 일련의 연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대량 소멸로 이어졌다. 이런 종들은 먹이사슬과 생태적 지위의 경쟁 측면에서 다른 종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런 종들을 '핵심 종'이라고 부른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인과 크리슈나는 단속 균형에는 세 가지의 뚜렷한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임의의 국면이다. 네트워크가 퍼져 나가지만 특정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임의의 변화들이 일어나지만 이 단계에서는 큰 효과를 수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국면은 균형의 기간이다. 그 뒤 어떤 혁신이 일어나면서 네트워크는 성장 국면으로 바뀐다. 국면 전환을 가져오는 이런 혁신은 양의 되먹임 고리를 통해 다른 혁신들을 촉진시킨다. 혁신이 추가적인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 생태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먹이와 생태 지위 네트워크에 질서가 형성된다. 이런 성장 국면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성장 국면이 완화되면서 조직화된 국면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변화들이 통합되고 네트워크는 고도로 구조화된다. 그리고 핵심 종들은 상호 작용 네트워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지점은 항공기의 비행 경로를 그린 지도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와 같다. 네트워크는 조직화된 국면에서 한동안 그대로 유지된다(균형의 또 다른 기간이다). 그러나 그 뒤 어떤 혁신이나 돌연한 변화가 핵심 종들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핵심 종에 영향을 주는 변화는 전체 조직 구조로 퍼져 나가고 네트워크는 멸종의 파고 속에서 무너진다. 이런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임의의 국면이 전개되고, 그다음에는 성장 국면이 오는 식으로 반복된다.

 

많은 관찰자들은 기술 혁신은 정적과 폭풍이라는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수년에 걸쳐 기술 개발을 하나의 진화 과정으로 보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다. 이 연구에서 제기된 두 가지 중요한 관찰은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단속 균형과 관련이 있다.

 

첫째, 어떤 기술도 독립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모든 기술은 다른 기술들과의 관계에 의존한다. 예컨대, 이동 전화의 발명은 라디오 기술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기술과 코딩 기술 등 다른 많은 분야를 활용했다. 이러한 상호 관계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다.

 

두 번째는 기술은 본질적으로 모듈러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엔진, 변속기, 차체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모듈들이 조립돼 만들어진 게 이른바 '아키텍처'다. 자동차의 경우 아키텍처는 차 자체의 디자인이다. 모듈의 혁신은 새로운 아키텍쳐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마이크로 칩이  PC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후속적으로, 연관되는 혁신들을 촉진하는 등 큰 파급 효과를 갖는 경우는 아키텍처 혁신이다. 이제 우리는 제인과 크리슈나 모델에서 단속 균형 패턴을 가져오는 중요한 특징 두 가지를 알았다. 상호 작용을 하는 네트워크와 개별 노드의 촉매 효과다. 11장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지만 기술 연계망이 어떻게 연쇄적 변화와 연계되면서 단속 균형이라는 창발적 패턴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어떤 특정 기술들은 이 연계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듭제곱 법칙 : 지진과 주식 시장

전통 경제학의 예측 중 하나인 주식 가격은 랜덤워크를 따른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IBM 주식 차트는 모호한 랜덤워크와 그렇게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식 가격 움직임은 랜덤워크를 많이 닮은 게 아니라 이와는 다른 현상, 즉 지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진의 경우 모든 규모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나 지진이 클수록 빈도는 드물다. 이 결과는 가장 규모가 작은 지진에서부터 가장 규모가 큰 지진 쪽으로 기울기가 쭉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관계를 거듭제곱 법칙이라고 부른다. 분포가 지수 또는 거듭제곱을 갖는 방정식으로 표현된다는 이유에서다.

 

거듭제곱 법칙은 여러 가지 광범위한 현상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물 소멸의 규모, 태양 표면의 폭발 강도, 규모별 도시 순위, 교통 혼잡, 면사의 가격,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섹스 파트너의 분포 등이 모두 그렇다. 거듭제곱 법칙은 진동과 단속 균형과 더불어 복잡 적응 시스템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성이다.

 

이 법칙의 첫 발견은 경제학에서였다. 바로 1895년 빌프레도 파레토다.

파레토와 망델브로 발견에서 놀라운 특성은 1980년,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경제물리학자들이 주식 시장 데이터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주식 가격의 변동은 분포의 꼬리 부분에서 거듭제곱을 따른다는 게 분명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변동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시장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를 경우 블랙 먼데이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0의 -148승이 아니라 10의 -5승에 더 가깝다.(100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

 

 

주식 시장은 왜 변동성이 큰가?

주식 시장이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변동성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또 그런 변동성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파머와 그의 팀은 큰 가격 변동의 원인은 주문서 자체의 구조라는 점을 발견했다. 주문서에 쌓인 주문들 간의 가격 수준 차이가 클 때 큰 변동이 일어났다. 큰 시장 가치의 변화는 단지 주문 장부에 쌓여 있던 주문 패턴의 인위적 구조에 따른 결과다. 

 

파머와 그 동료들의 연구가 나오기까지 이런 고르지 못한 주문 패턴이 주식 변동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들은 주문 예약의 수학적 모델을 만들고, 임의의 거래를 할 때(다시 말해 아무런 실제 뉴스가 없을 때) 예약 주문의 구조는 그 자체로 중요한 변동성의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예상한대로 거래량이 적은 소형 주식들의 경우 유동성이 높은 대형 주식보다 가격 변동성이 더 크다는 점도 보여 주었다.

 

앞서 살펴보았던 맥주 게임에서의 거듭제곱 법칙은 시스템 그 자체의 구조에서 파생된다는 얘기다. 파머의 연구 결과는 개별 주식에서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많은 측면에서 맥주 게임과 파머 연구 팀 모델이 던지는 시사점들이 같다. 경기 사이클과 주식 가격 변동 등 복잡한 창발적 현상들은 세 가지 근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시스템 참가자들의 행태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제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 규칙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맥주 게임 참가자들이 보여 준 '일단 기준을 정한 다음 조절하는 규칙'일 수도 있고, 주식 주문에서 '학생 분포'가 보여 주는 규칙성일수도 있다. 

 

둘째, 시스템의 제도적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맥주 게임에서 제조업자와 소매업자들 간의 공급 체인 구조는 참가자들의 행태와 결합해 진동을 일으키는 역동성을 만들어 냈다. 주식 시장의 경우에는 제한 주문 시스템의 구조가 거래자들의 행태와 결합, 거듭제곱 법칙이라는 변동성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시스템에 대한 외생적 투입 요소들이다. 맥주 게임에서는 고객 주문이 한 번 만에 뜀박질할 경우였고, 주식 시장에서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외생적인 충격이 시스템의 역동성에 불을 붙이고 촉발에 기여한다는 것은 물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외생적 충격이 하나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히도 전통 경제학에는 이른바 균형이라는 굴레 때문에 이 요소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 바람에 앞의 두 가지 요인이 희생되고 말았다. 

 

복잡계 경제학이 모든 경제 패턴들의 수수께끼에 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은 새로운 분석의 툴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해서 우리가 관찰한 행태들을 낳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현실 경제는 전통 경제학이 상상하는 균형 세계에 비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멈추지 않는 진동, 단속 균형, 거듭제곱 법칙, 이것들은 모두 이른바 복잡 적응 경제에서 작동하는 대표적인 행태들이다.

 

 

 

9. 진화 : 그건 바로 저기에 있는 정글이다

 

"그건 정글이야", "적자 생존이다" 이런 얘기들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사람들은 경제를 말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태계와 진화의 이미지를 곧잘 사용한다. 복잡계 경제학은 이 표현이 단순한 비유나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 시장, 경제는 생태 시스템과 단순히 비슷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진화 시스템들이라는 의미다.

 

이 장을 통하여 진화는 단지 생물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진화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혁신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다목적용의, 고도로 강력한 처방전이다. 이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지식을 축적해 가는 하나의 학습 알고리즘이다. 진화는 자연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공식이다.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

대니얼 데닛은 진화를 '디자이너 없이 디자인을 창조하는' 방법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어떤 무엇이 디자인된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다시 말해 어떤 과업에 적합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망치는 못을 박거나 뽑도록 디자인되어 있고, 박테리아는 특정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우리는 또 디자인을 가진 것들에 대해 거기에는 어떤 수준의 복잡성, 질서, 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변에 있는 임의의 모래알이 디자인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잡한 구조를 갖는 제트 엔진, 나선형 방으로 된 조개껍데기, 복잡한 음들의 배합으로 이루어진 음악 등은 모두 디자인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디자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 짓는 것은 바로 목적에 대한 적합성과 복잡성의 결이다. 줄무늬 있는 암석은 우리 눈에 아릅답게 보이고, 복잡한 패턴도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예술 작품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기능을 갖고 있거나 어떤 특정한 목적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임의의 지질학적인 힘들의 작용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디자인된 것들은 엔트로피가 낮다. 다시 말해 디자인된 것들은 결코 임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가 디자인을 보는 영역은 두 가지다.(사실 이 두 가지뿐이기도 하다) 생물 세계에서, 그리고 생물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 산물들에서다. 생물 세계를 보면 점핑을 위한 캥거루 다리, 어둠 속에서도 뭔가를 발견하는 박쥐의 음파 탐지기, 그리고 수분을 촉진하기 위해 꿀벌 성기로 교묘히 위장한 꽃 수술 등이 있다.  인간 세계에서는 나사를 돌리기 위한 드라이버, 팬케이크를 뒤집기 위한 주걱, 사람들을 수송하기 위한 점보제트기 등이 있다. 인간 뿐 아니라 흰개미들은 정교한 집을 만들고 해리는 복잡한 둑을 만든다.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에서 시계처럼 복잡하고, 디자인된 특별한 것은 시계 제조업자를 전제로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로 디자인된 것들은 저절로 이 세계로 튀어나온 게 아니다. 디자인은 목적, 지능, 그리고 문제 해결을 보여 준다. ('지적 디자인 이론'과 똑 같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진화가 하는 일이다. 진화는 스스로 디자인을 창조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를 "앞이 보이지 않는 눈먼 시계 제조업자"라고 불렀다. 진화는 맹목적이고, 기계적이며, 단순한 공식이지만 영리한 디자인을 창조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인공적 생물

칼 심스는 1994년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연구해 보고 싶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박테리아와 과일 파리를 가지고 하는 실험이 아니라 좀 더 빠르고 더 많이 통제할 수 있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그래서 그는 슈퍼컴퓨터에 인공적인 컴퓨터 생물들이 사는 가상의 진화 세계를 만들었다. 

 

이 블록 생물은 움직임을 조절하는 간단한 컴퓨터 칩의 힘으로 관절이 달려 있는 블록 몸체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이 인공적 생물에게 주어진 목표는 가상의 강을 빠르게 헤엄쳐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블록 생물들의 세계에 생물학적 변화를 주었다. 바로 컴퓨터 DNA를 부여한 것이었다.

 

심스는 제1세대인 임의의 생물들에게 간단한 진화의 공식을 적용해 봤다. 가장 성공적으로 수영을 한 생물들은 그대로 남았고, 수영에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생물들은 제거됐다. 그 뒤 수영에 가장 성공적인 블록 생물들은 자신들의 컴퓨터 DNA를 서로 교환하는 컴퓨터 섹스를 통해 양 부모의 특성들을 그대로 이어받는 새로운 생물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새로운 생물들은 자신들의 DNA를 변화시키는 임의의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정리를 해보면, 블록 생물들의 집단은 서로 다른 특성, 즉 변이를 보여 주었다. 특정한 시점에서 생물들의 수영 능력은 다양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들은 선택되었고, 성공적인 생물들은 재생해 그 디자인을 확산시키는 과정이었다. 변이, 선택, 그리고 재생(복제)이라는 이 단순한 공식이 약 100세대까지 계속 반복되었다. 20~30세대를 거치자 볼품없이 이리저리 허우적거리고 넘어지던 블록 생물들이 실제로 수영을 할 수 있는 그런 생물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몇몇 생물들의 경우 다양한 물고기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몸을 안정화시키는 지느러미가 돋아나기도 했다. 또 다른 생물들은 길고 가느다란 몸체로 발전했는데, 많은 부분들이 서로 연결돼 마치 뱀처럼 꼬리를 휘둘렀다.

 

진화의 알고리즘은 수영을 잘하기 위한 단 하나의 최고 방법, 최적의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데닛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화 공식들은 여러 가지 '생존을 위한 좋은 기술'을 찾아냈다

 

물에 관한 기초 물리학은 무한하지는 않지만 많은 수의 운동 방식을 허용한다. 물속에서 작전을 펴려면 또한 지느러미나 유체역학적인 몸체로 균형을 잡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물의 물리학은 수영하는 데 성공적인 몸의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제약 조건들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것은 모든 수생 생물들이 인간이 만든 잠수함과 기계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목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다른 특성, 즉 변이들로 구성되는 이유다. 또한 심스의 블록 생물들이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재빠르게 성공적인 디자인들을 발견한 이유다.

 

심스는 각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생존 해법들 중 그 어떤 것도 사전에 전제하지 않았다. 진화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각 블록 생물들에 대해 어떤 디자인도 하지 않았다. 즉, 지느러미, 꼬리, 다리, 발톱 등에 관한 것은 프로그램에 없었다. 이런 디자인들은 많은 세대에 걸쳐 진화 과정을 겪으며 발견되고 출현한 것이다.

 

지난 수백만 년에 걸쳐 생물들에게 눈알, 방호를 위한 위장술, 악취를 뿜어내는 기술, 날개, 다른 손가락과 마주할 수 있는 엄지손가락 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져다준 것도 똑같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어떻게 다양한 종류의 생존을 위한 혁신적인 좋은 기술을 생산해 내는 것일까?

 

 

혁신을 위한 알고리즘

이 책에서 여러 번 진화의 알고리즘을 말했는데 정확히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토너먼트 과정은 꽤 일반적인 알고리즘으로 꼭 테니스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골프, 축구, 컴퓨터 게임, 원반 튕기기, 그리고 다른 수많은 기질에도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기질이란 알고리즘이 작용하는 물질 또는 정보를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알고리즘은 '기질 중립적'이다. 즉, 이런 알고리즘을 분해해 보면 어떤 기초적인 환경 조건이 충족되는 한 기질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작동하는 기본적인 핵심이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분류하는 알고리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알고리즘은 사과를 분류하거나 이름의 길이를 분류할 때 유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알고리즘을 정의하는 것은 특정 기질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논리다.

 

분류 알고리즘은 사과나 이름을 물리적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사과의 무게나 이름 철자의 길이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작업한다. 알고리즘은 정보를 처리하는 공식이다. 이것들은 사실상 컴퓨터 프로그램들이다.

 

진화는 기질 중립적인 하나의 알고리즘이다. 디자인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정해진 대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정보를 처리한다. 진화는 또한 순환적이다. 즉, 한 사이클의 산출물은 다음 회에 투입물이 된다. 이런 순환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화를 멈추게 하지 않는 한 계속 돌아간다는 얘기다. 

 

 

레고 도서관

레고의 가장 큰 매력단순하고 여러 색깔을 가진(다양한) 프라스틱 블록들이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조합되어 흥미롭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가장 간단한 블록들조차 수많은 치환 또는 변환을 통해 여러 가지로 조립될 수 있다. 적당한 크기의 레고 세트라고 해도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가능한 구조물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유한하다. 진화 이론가들은 이런 가능한 변환의 집합을 '디자인 공간'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레고 도서관에서 흥미를 가진 특정 디자인을 발견하기란 현실세계의 대양에서 특정한 물 한 방울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당신이 특정한 디자인을 위해 레고 도서관을 찾아야 하는 정말 마특치 않은 일을 떠맡았다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 광활한 디자인 공간에서 신뢰할 수 있고 또 재빠르게 좋은 디자인을 발견 할 수 있는 그런 알고리즘을 필요로 한다. 진화가 바로 알고리즘이다. 사실상 진화는 '그랜드 챔피언'이다.

 

 

진화의 구조

모든 알고리즘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구조를 필요로 한다. 알고리즘들은 정보를 처리한다. 따라서 우선 모든 가능한 레고 디자인들을 '정보'로 전환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레고 디자인을 표시할 특정한 코드가 어떤 형식으로 돼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을 신뢰할만하게 정확하게 코드화하고, 또 풀어 낼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디자인 코드화를 '도식'이라고 한다. 일단 도식을 정립하고 나면 디자인 공간에 있는 임의의 모든 디자인은 이 도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다음에는 도식으로 표현된 정보를 저장하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도식으로 표현된 이론적 디자인을 현실 세계에서 진짜 플라스틱 레고 구조물로 바꾸는 메커니즘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도식 식별자이다. 생물학적 세계에서 도식 식별자는 DNA를 생명체로 바꾸는 메커니즘이다.

 

예를 들어 새들의 경우 새끼에 대한  DNA 디자인을 실제 살아 있는 새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것은 수정란이다. 인간과 다른 포유동물의 도식 식별자는 여성 자궁 속 수정란이다. 

 

단순하고 다양한 블록 -> 디자인 공간-> 알고리즘(진화)

알고리즘(진화 구조) : 블록 디자인을 정보로 전환 하는 방법(정보화) -> 디자인 코드화 (도식) ->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DNA) -> 구조물로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 (도식 식별자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도식 코드가 그 자신의 고유한 도식 식별자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경우 여자 태아가 20주가 될 때면 이미 난소와 함께 그 안에 수백만 개의 알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출산을 하기 전에 자궁 안에 자기 자신의 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딸 안에 그녀의 미래 손자들을 위한 알도 갖고 있는 것이다.

 

레고 장난감은 아직 스스로 복제하는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레고 도식 식별자는 해당 도식 코드를 알고 있는 일곱 살 어린이다. 이 어린이 앞에 레고 블록이 담겨 있는 박스를 던져 주고 이를 디자인하기 위한 코드를 담은 카드를 넘긴다고 하자. 이 어린이는 충실하게 필요한 플라스틱 부분들을 다 꺼내 놓고선 종이에 적혀 있는 코드대로 이들을 조립해 디자인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이 어린이를 '식별자'라고 부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식별자가 하는 일을 표현할 적절한 용어가 필요하다. 즉, 디자인 공간에 있는 이론적이고 잠재적인 디자인과, 실제로 만들어진 살아 있는 디자인을 구별할 용어가 필요하다.  바로 '상호 작용자'다. 상호 작용자는 디자인 공간에서 추출되어 어떤 환경에서 실재화된real 디자인을 말한다. 상호 작용자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진화체제이서는 디자인이 만들어져 실재화 되면 그것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선택의 압력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진화의 구조에서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적합도 함수'다. 지금까지 레고 도서관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흥미로운 디자인을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 누구에게, 무엇이 흥미롭다는 말인가?

 

칼 심스 모델에서 적합도 함수는 수영 속도를 의미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디자인은 목적을 나타낸다. 따라서 레고 장난감의 목적은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레고 디자인 적합도에 대한 중재라로서 역할을 할 두 번째 일곱 살 어린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식별자는 다양한 도식에 따라 레고 장난감을 조립하고 이를 적합도를 결정하는 어린아이('심판자'로 부르겠다)에게 넘긴다. 이 심판자는 자신에게 넘어온 여러 장난감들을 보고, 예컨대 0('따분하다')에서 100('정말 멋있다')의 척도로 평가를 한다.

 

 

진화의 과정 : 어린이들의 놀이

진화가 작동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정보 처리 기구들이 갖추어지면 우리는 이 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레고 조각들이 식별자 앞의 바닥에 쏟아져 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레고 도서관에서 디자인의 도식이 적혀 있는 100개의 카드를 임의로 꺼내어 식별자에게 건넨다. 그는 카드에 적혀 있는 대로 충실히 장난감을 조립해 심판자 앞에 그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러면 이 심판자는 장난감을 따분한 것에서 멋있는 거세 이르기까지의 척도를 이용해 평가를 한다. 

 

이 장난감은 완전히 임의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에 평가 점수는 대부분 0이거나 0에 가깝다. 그러나 일부 장난감은 다른 장난감들에 비해 좀 더 흥미롭다는 이유로 약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심판자들이 이렇게 적합도 함수를 적용해 장난감을 평가하는 과정을 '선택'이라고 말한다.

 

식별자는 최고로 높이 평가받은 2개의 장난감을 선택해 이들의 디자인 변종을 시도한다. 그는 이들의 도식 카드를 꺼내 임의로 반을 뚝 잘라서 서로 바꾸어 끼운다. 그러면 새로운 변종은 가장 높이 평가를 받은 두 장난감 각각의 특성들을 갖게 된다. 진화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렇게 도식의 부분을 서로 바꾸는 것을 '(염색체의) 교차'라고 한다. 

 

진화 알고리즘의 중요한 필요조건 중 하나는 어떤 디자인 적합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평균적으로 보다 많은 변종들이 여기서 만들어질 것이란 점이다. 디자인의 적합도를 높게 만드는 특징들이 그 집단내에서 '증폭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레고 모집단의 규모에는 제약 조건이 있다. 식별자가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레고 조각들의 수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모집단 안에서 적합도가 떨어지는 장난감의 특성들은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실행할 것이다. 즉, 최고로 적합도가 높은 20개의 디자인들은 '교차'하는 짝당 4개의 변종을 갖게 된다. 그다음 20개의 경우는 3개, 그다음 20개는 2개, 그다음 20개는 1개의 변종을 각각 갖게 되고, 가장 적합도가 낮은 20개의 디자인은 단 하나의 변종도 갖지 못한다. 적합도 점수가 같으면 동전을 던져서 결정을 한다. 처음 100개의 디자인을 가지고 우리는 전체 100개의 변종들을 만들 것이다.

 

일단 변종들이 만들어지면 처음 100개는 파괴해서 그 부품들을 박스 안에 도로 집어넣는다. 우리는 또 높은 점수를 받은 디자인을 위해 박스에서 이용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부품들이 필요할 경우 가장 점수가 낮은 디자인을 분해해 필요한 부품을 제공한다는 규칙을 도입할 것이다. 레고 세계에서조차 유한한 자원 때문에 경쟁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식별자 어린이가 완벽하지 않다고 가정할 것이다. 때때로 진행 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질 것이다. 한 카드에 있는 도식을 다른 카드에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 이런 실수의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임의의 실수 하나가 후속적으로 나오는 장난감의 적합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임의의 실수가 바로 '돌연변이'다.

 

자, 이제 두 어린이가 수십 번 이 사이클을 따라간다고 하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처음에는 임의의 낮은 적합도의 디자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보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한동안 수많은 흥미 없는 디자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한두 디자인이 심판자의 눈에 띄게 될 것이고, 그 디자인은 변종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할 것이다. 곧 보다 적합도가 높고, 보다 흥미로운 디자인들이 나타난다. 장난감 집단 전체적으로 적합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장난감들에서 공통된 특징들이 나타날 것이다. 심판자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이른바 '좋은 기술들'이다. 

 

예를 들어, 만약 심판자가 사람과 동물들의 이미지를 갖는 장난감을 좋아한다면 사자 얼굴을 가진 장난감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심판자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면 전체적으로 노랑 색조가 많이 흐르는 장난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복잡한 구조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레고 인간, 레고 말, 레고 강아지 등 적합도를 결정하는 심판자의 기호에 맞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나타날 것이다. 레고 도서관을 임의로 찾아 나설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디자인에 대한 발견이 훨씬 재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상호 작용자 집단에서 공통된 특징과 좋은 기술들이 출현하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복잡한 디자인은 내재적으로 모듈러이다. 우리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시스템, 부분 시스템, 그리고 요소들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심장 혈관 시스템에는 심장과 적혈구가 있고, 이는 다시 또 시스템과 부분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인간 몸의 디자인은 자동차의 브레이크 시스템, 브레이크 그 자체, 그리고 개별 브레이크 패드와 똑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복잡한 디자인은 모듈과 부분 모듈들이 계층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 진화 시스템에서 이들 시스템, 부분 시스템, 요소들은 각각은 도식에서 그에 상응하는 코드 정보들을 갖고 있다. 진화적인 건축을 위한 도식은 빌딩 블록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빌딩 블록들은 보다 높은 차원의 빌딩 블록으로 결합되고, 이는 다시 더 높은 차원의 빌딩 블록으로 결합된다. 생물학에서  DNA 도식을 구성하는 빌딩 블록은 바로 개별 유전자들이다.

 

이 개별 유전자들은 눈색깔에서부터 유독성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꾸는 화학적 사이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코드화한 것이다. 레고 사례에서 레고 사지와 노란색 등을 코드화하는 도식의 덩어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빌딩 블록이 상호 작용자의 적합도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시간이 갈수록 그 빌딩 블록은 집단 내에서 보다 확산된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암모니아를 분해하는 매우 유용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심판자가 노란색을 정말 좋아한다면 모든 도식들에서 노란 빌딩 블록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도킨스가 지적했듯이, 선택은 상호 작용자 그 자체가 아니라 빌딩 블록에서 작용한다. 심판자는 어떤 특징을 선호하고(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 진화의 과정은 심판자 앞에 서로 다른 결합들을 매달아 놓고 어떤 특징이 심판자의 눈을 사로 잡는지 시험해 그런 특징을 가진 것들을 더 많이 채택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특징들은(그리고 이를 코드화한 빌딩 블록들은) 집단 내에서 보다 확산된다. 따라서 사실상 진화 과정은 개별적인 장난감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심판자는 사지가 있는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심판자를 제거하고 다른 심판자(심판자 2)로 바꾼다고 생각해보자. 갑자기 레고 환경에서 적합도가 높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전 심판자의 기호를 충족시켰던 많은 장난감들이 이제는 심판자 2에 의해 '따분한 것'으로 평가받게 되는 등 적합도의 붕괴가 일어난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되면 진화 알고리즘이 안착하면서 좀 더 나은 디자인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일단 이런 일이 일어나면 더 좋은 디자인의 변종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고, 결국 레고 장난감 집단들의 적합도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진화는 모든 가능성의 공간에서 시작하는 변화의 과정이다. 많은 디자인들을 시험해 보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그중 좋은 것은 더 많이 채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여기에는 어떤 예측, 계획, 합리성, 그리고 의도적인 디자인 같은 것들은 없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알고리즘만 있을 뿐이다.

 

 

복제자는 복제를 원한다

"그것이 정말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인가?" 알고리즘이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계속 진행된다면 이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전에 이루어진 모든 준비 과정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모든 프로그래밍을 만든 심스에 대해서는 또 뭐라고 할 것인가? 인간 식별자와 인간 심판자를 레고 사고 실험에서 낙하산 인사로 앉힌 것은 또 무엇인가?

 

내생적인 진화의 논리 또는 외부의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지 않는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유일하게 알려진 진화, 즉 지구상에서 생물의 발전을 살펴보는 것이다. 초기 지구는 풍부한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다. 격랑이 일면서 땅덩어리가 만들어졌고, 화산 등 대기권으로의 분출도 일어났다. 천문학적으로는 많은 수의 분자들이 열을 받고, 냉각되고, 이리저리 튀겨지고, 전기적으로 충전되면서 상호 작용을 하고 서로 반응했다. 이를 통해 점점 더 복잡한 자들이 생성되었다.

 

이런 과정을 겨쳐 약 30~35억 년 전에 이르러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분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맨 처음 복제하는 분자의 수준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떤 자기 복제 분자가 아마도 주변의 다른 화학 물질 집단에서 정반대 분자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이 다시 자신들과 정반대인 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초기 분자의 복제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자기 복제 분자조차 우연히 일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어떤 과학자들은 또한 그 가능성이 열역학 법칙적으로 크게 높아졌다고 믿는다. 초기 지구는 화산과 다른 여러 가지 지열 활동, 그리고 신진 대사의 기초인 반응 네트워크와 복잡한 유기 분자들로 인해 엄청난 양의 자유 에너지를 가졌다. 따라서 자기 복제는 이 모든 에너지가 대양의 화학 작용을 통하여 퍼져 나가는 자연스럽고도 가능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킨스가 지적한 대로 어떤 복제 과정도 완벽하지않다. 결국 오류가 끼어들고 이로 인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자기 복제 분자는 원래와 거의 비슷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은 것을 만들어 낸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화학 물질들의 집단은 조금씩 서로 다른 다양한 자기 복제 분자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 화학 물질 집단 내에 있는 다양한 자기 복제 물질들은 똑같다고 봐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분자들은 다른 분자들에 비해 화학적으로 좀 더 안정적일 것이고, 그 결과 이 분자들은 더 오래 살아남거나 자기 복제에 더 빠르다. 어 오래 살아남고 더 좋고 더 빠른 자기 복제자들이 집단 내에서 더욱 퍼지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자기 복제를 하는 분자들의 바로 이웃에서 이들의 복제에 쓰이게 될 유한한 원료들이 공급된다. 임의의 변화가 발생해 어떤 분자가 다른 분자에 비해 화학적으로 이런 원료를 끌어들이는 데 더 능숙하게 된다면 그 분자는 보다 많은 자기 복제를 하게 될 것이다. 유한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맨 처음부터 진화의 테마였다.

 

결국, 어떤 분자들은 다른 동료 자기 복제자들의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거나 분해하는 화학적 구조를 우연히 갖추게 되고 이로 인해 공격하는 분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물이 된 분자들을 편입할 수 있다. 이런 우연한 혁신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다. 혼자서 원료를 발견하고 조립하는 것보다 동료 복제자들로부터 미리 조립된 원료를 취하는 게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붕괴에 취약하고 자신의 화학 물질을 도둑맞은 분자들은 집단 내에서 급격히 쇠퇴하는 반면 훌륭한 파괴자들은 재빠르게 자기 복제를 해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일부 자기 복제 분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자기 복제 장치와 외부 세계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는 화학 물질, 예를 들어 지질을 외층부에 우연히 갖게 될지 모른다. 파괴자들을 대비해 방어 장치를 가진 분자들은 성공적으로 보다 빈번하게 자기 복제를 할 것이고, 그만큼 집단 내에서 확산된다.

 

일단 밖의 세계에 대비한 장벽을 갖추고 복제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지금 살고 있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바로 바이러스다. 어떤 바이러스는 지금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도 생명체로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분자들의 전쟁 밑바닥에 흐르는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순환적인 논리는 가장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진화의 동인이다. 우연히 복제 능력에 어떤 격차가 발생하면 복제를 촉진시키는 요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집단 내에서 더욱 보편화될 것이다. 진화는 궁극적으로 복제를 지원하는 빌딩 블록들을 선택한다. 이것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핵심이다.

 

도킨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복제의 논리였다. 자신의 복제를 지원하는 데 능한 유전자들(빌딩 블록들)이 복제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는 논리.

 

이렇게 해서 약 38억 년 전 자기 복제 분자 전쟁은 훌륭한 복제자들이 오늘날 RNA와 비슷한 자기 복제 과정, 그리고 분자들과 외부 세계 사이의 기초적인 막을 갖는 정도로 진전됐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세포핵, 또는 보다 고등 유기체 세포에서 발견되는 다른 세포 기관 등은 갖추지 못한 수준이었다. (바이러스 이야기)

 

일단 자기 복제 분자가 이 정도에 이르면 진화는 경주를 향해 출발한 것이나 다름없다. 보다 복잡한 내부 조직을 갖추고, 이동하고 햇빛을 처리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수많은 단세포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18억 년 전에 이르면 진화는 다세포 생물 형태라는 디자인을 발견한다. 이것이 식물, 동물,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의 폭발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어떠한 외부적 요소들이 필요하지 않다. 도식과 도식의 식별자, 그리고 적합도 함수가 있으면 바로 진화의 논리는 정립될 수 있다. 생명 이야기에서 도식과 도식 식별자는 똑같은 하나다. 자기 복제 분자들이 코드이면서 동시에 식별자인 것과 같다. 복제를 위한 기술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를 해왔다. 이 과정을 거쳐 DNA와 DNA를 보호하는 핵막, 성적 재생, 그리고 상대방 성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많은 전략들과 같은 혁신들을 만들어 냈다.

 

레고 실험에서 적합도 함수는 심판자에 의해 외생적으로 주어졌다. 생물학에서 적합도 함수는 내생적이다. 적합도를 결정하는 어떤 제약 조건은 고정적이다. 예컨대 물리나 화학 법칙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적합도 함수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은 시스템과 더불어 공진화를 한다. 하나의 유기체를 둘러싼 환경 중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은 다른 유기체들이다. 각 유기체의 진화를 향한 움직임과 그 반대의 움직임은 다른 유기체들의 적합도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약탈자라면 매우 빠른 스피드 쪽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먹잇감은 위장술을 발전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약탈자의 시력은 보다 향상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맞물려 진화하는 일종의 군비(확장) 경쟁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각 움직임마다 적합도 함수가 변한다. 적합도의 또 다른 요소인 지구의 기후조차 생물이 진화하면서 변해 왔다. 예를 들어, 식물의 발전은 대기권에 산소량을 증가시켰다. 이는 산소를 들이마시는 생물들을 위한 길을 만든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인간의 진화가 기후는 물론이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적합도 함수를 더욱 바꿔 놓고 있다.

 

진화를 위한 준비는 결국 정보 처리로 귀결된다. 진화가 발판을 마련하려면 정보를 처리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는 도식을 저장하고 수정하고 복사하기 위한 것이다. 생물 세계에서 진화가 출발하려면 열역학과 우연히 결합돼 분자 디자인을 저장하고, 수정하고, 복제할 수 있는 첫 자기 복제 분자가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3부에서 경제 세계에서는 진화에 발판을 마련해 주는 정보 처리 매개체가 말과 문서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정보 처리 매개체가 정립되면 차별화, 선택, 그리고 복제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좋은 복제자가 복제되고, 무엇이 적합한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데, 여기에는 다른 복제자들과의 경쟁이 포함된다. 그렇게 진화는 보다 더 좋은 복제자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디자인 공간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다.

 

우리는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았다. 그다음 큰 질문은 진화가 그렇게 잘 이루어지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적합도 지형 탐색

DNA로 코드화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디자인 공간을 생각해보자.  DNA 알파벳은 4문자, 즉  C, G, A 그리고 T다.

 

지구에서 생물의 역사를 보면 단순한 박테리아에서부터 보다 복잡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DNA 가닥의 길이가 확장돼 왔다. 이는 곧 DNA 디자인 공간 규모의 확장이다. 디자인 공간을 풍선의 표면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정 시점에서는 유한하지만 공기 등이 들어가면서 표면이 팽창하듯이 이것도 늘어난다.

 

인간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모든 가능한 디자인들에 대한 완전한 탐색을 위해서는 수많은 우주들의 수명을 다 합한 것보다 더 긴 시간을 요한다.

 

자, 이제 서로 다른 막대 높이를 가진 산 같은 경관을 보자. 어떤 디자인이 다른 디자인보다 더 좋은지 알 수 있도록 디자인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을 생물학자들은 '적합도 지형(경관)'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진화 이론가인 시월 라이트가 1931년 처음 개발한 개념이다. 적합도 지형은 디자인 공간에서 좋은 디자인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연구자들에게는 수학적으로) 보여준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디자인 공간에서 좋은 디자인을 발견하는 문제는 적합도 지형에서 높은 정점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앞 장에서 우리는 생태계에 있는 수많은 종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구조를 논하면서 단속 균형(불연속적 균형)을 설명하는 모델을 살펴보았다. 크러치필드에 따르면 평평한 지역, 스위스 치즈의 구멍, 그리고 관문 등 적합도 지형의 특징들은 유전적 변화에 비선형성을 갖게 함으로써 단속 균형에도 기여한다. 대부분의 변화들은 거의 또는 아무 영향이 없지만 어떤 변화는 적합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촣든 나쁘든), 그 결과 다양한 종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식상에 조그만 변화를 나타내는 대부분은 적합도에 미치는 영향이 작거나 거의 없지만 그중의 일부가 큰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 공간은 그림에서 본 바와 같이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모양의 생물학적 적합도 지형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바로 그런 특징이 진화를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알고리즘으로 만든다.

 

 

탐색 알고리즘의 그랜드 챔피언

이제부터는 높은 정점을 향해 멘델의 산 같은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과제는 가장 높은 정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단 하나의 명확하게 가장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똑같은 높이의 여러 개 정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똑같은 높이의 여러 개 정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막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적합도 막대가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점의 높이도 계속 변한다. 따라서 어떤 '글로벌 최적점'을 탐색한다기보다는 주어진 시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점들을 찾는 것이 과제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탐색과 관련하여 세 가지 추가적인 조건들을 소개하겠다.  첫째, 진화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다. 진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 뭔가를 시도해 보는 것뿐이다.

 

둘째, 지형은 상당히 위험한 특징을 갖고 있다. 만약 당신이 헤매다가 너무 낮은 곳으로 가면 안개 속으로 내려가 질식해 숨지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안개는 자연의 선택을 나타낸다.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당신의 적합도가 너무 낮으면 당신은 솎아져 나올 것이다.

 

셋째, 적합도 지형은 정태적이지 않다.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한다. 환경이 변하면 적합도 함수도 변하고, 이에 따라 오늘은 적합도가 높은 정점인 곳이 내일은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소행성의 지구 충돌과 이로 인한 기후 변화처럼 적합도 지형의 일부 변화는 환경에 대응한 임의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그러나 움직이고 솟아나는 일의 대부분은 종 자체의 진화 결과다. 앞서 모든 종은 다른 종들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약탈자, 먹잇감, 공생, 기생 등의 관계들이다. 종들은 공진화를 하면서 공격과 방어, 협력과 경쟁 등 일종의 군비 경쟁을 벌인다. 그 결과 어느 한 종의 진화적 변화는 다른 종들의 적합도에 연쇄적 영향을 유발할 수 있다. 

 

지형을 탐색하기 위하여 먼저 임의의 한 출발점을 선택한 뒤 다음과 같은 간단한 규칙을 따른다. 임의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서 더 올라간 것이면 다시 임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 전 위치로 돌아와 다시 시도한다. 이 규칙을 따른다면 처음에는 이리저리 헤맬 것이다. 그러나 결국 위로 올라가는 경로를 발견할 것이고 꽤 빠르게 가장 가까운 정점으로 기어오를 것이다. 이런 규칙을 '적응적 보행'이라고 부른다. 

 

적응적 보행은 개별적인 정점으로 올라가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중요한 한계가 있다. 일단 정점의 꼭대기에 이르면 거기서 멈추어 국지적인 어떤 최고점에 박혀 버린다. 더 높은 정점이 그 계곡 건너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결코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그곳으로 가려면 다시 처음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적응적 보행 모델은 에베레스트산들로 이루어진 지역의 중간에 있는 한 흙 두둑 위에 멈춰버리고 마는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제 또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임의의 출발점을 선택하자. 이번에는 보행이 아니라 매우 강력한 스카이 콩콩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이 전략은 '랜덤 점프'로 불린다. 랜덤 점프는 적응적 보행 모델과 비교하여 국지적인 최고점들에 박히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즉, 낮은 정점에서 보다 높은 정점을 향해 중간에 있는 계곡들을 넘어 계속 뜀박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불리한 점이 있다. 즉, 어떤 죽음의 계곡 밑에 당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적응적 보행 전략의 경우는 최소한 당신을 가장 낮은 지역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유독성 안개를 피하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랜덤 점프는 적응적 보행 전략에 비해 좀 위험한 전략이다. 랜덤 점프는 또 실제로 높은 정점을 발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지형의 보다 큰 표면적은 높은 적합도보다 낮은 적합도를 갖는 영역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적으로 볼 때 랜덤 콩콩 점프를 하면 적응도가 낮은 곳에 당신이 위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운 좋게도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가능성 측면에서는 그렇다. 

 

이제 우리는 위험도는 낮지만 매우 높은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작은 전략을 택하든지, 아니면 높은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은 있지만 잘못하면 유독성 안개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위험도가 큰 전략을 택하든지 해야 한다.

 

이제 다음으로 두 가지 선택을 혼합한 알고리즘을 시도해 보자. 적응적 보행을 함으로써 지형에서 계속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또한 국지적 최고점에 박혀 버리지 않도록 몇 번의 랜덤 점프도 하는 알고리즘이다. 이는 국지적 최고점에서 멈추는 일을 막는 데 도움이 되면서도 정말 낮은 계곡에서 종말을 맞을 가능성을 줄여 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변화를 추가한다. 단 한 명이 아니라 적합도 지형을 탐색하는 일단의 보행자들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모델은 어떻게 작동할까?

 

우리는 양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취한다. 하이킹 참가자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적응적 보행 쪽으로 할당돼 지형을 탐색해 간다. 그러나 군데군데서 베팅도 한다. 일부 참가자들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채 흩어져서 수색하고 그중 몇명은 정말 멀리 떨어져 탐색한다. 이러한 전략은 불가피하게 일부 참가자들의 손실도 가져오지만 국지적 고원에 박히지 않고 보다 높은 적합도 지역을 발견할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이렇게 한 집단 전체에 걸쳐 분산 베팅을 하는 것은 정확히 진화가 하는 일이다. 각 상호 작용자 또는 생물에서의 유기체는 하나의 보행자로 볼 수 있다. 복제 과정은 적응적 보행에 에너지를 준다. 만약 높은 적합도를 보이는 보행자가 다른 높은 적합도를 가진 보행자와그 도식을 다시 결합하고 그 결과 낮은 적합도를 가진 보행자들 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가지는 경향을 보인다면, 보행자들의 구름은 보다 높은 고도에서는 커지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줄어들 것이다.그러나 차별화 과정은 지형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보행자들이 있다는 의미다.

 

만약 멀리 외딴 첨병들이 어떤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면, 가령 새로운 높은 적합도 지역으로 가는 관문이 되는 육교를 건너간다면, 이들은 빠르게 스스로 복제하여 그 지역에서 새로운 구름 집단을 만들것이다. '신의 눈'으로 보면 어떤 다른 고원 위에서 와글거리는 구름집단이 보일 것이다. 이 와글거리는 구름 집단은 다른 말로 하면 새로운 종이다.

 

차별화를 통한 베팅의 분산은 적합도가 높은 지역을 향해 새로운 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지형이 변하더라도 일부 보행자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적 다양성이 집단에서 갖는 중요한 역할이다. 

 

진화가 보다 높은 고원을 발견하면 그 집단 구성원의 대부분은 그 지역 주변에 모여들어 재생을 하며 성장한다. 

 

흥미롭게도 진화가 탐색과 활용 간의 적절한 균형을 자동적으로 맞춘다는 점을 홀란드는 보여 주었다. 상황이 좋으면, 높은 고원을 발견했다면 그런 환경에 맞추어 진화는 집단의 보다 많은 자원을 활용쪽에 투입한다. 그러나 상황이 나쁘면, 집단이 계곡 밑에 위치해 있으면 보다 많은 자원이 탐색 쪽을 향한다.

 

진화가 적합도 지형의 새로운 부분을 점유할 때면 언제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 베팅을 할당한다. 그러나 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여느 다른 베팅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유명해 보이는 베팅에 자원을 증강하고 싶어 한다. 홀란드는 활용과 탐색 간 균형을 위한 최적의 공식을 만들어 냈고 진화는 최적 균형을 달성하는 데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진화는 하나의 도박꾼이지만 가능성을 매우 잘 활용하는 도박꾼이다.

 

 

좋은 기술, 강요된 움직임, 그리고 경로 의존성

데닛의 이른바 '좋은 기술' 개념은 소멸의 고통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매력적이어서 진화적 탐색이 반복적으로, 독립적으로 찾아낼 가능성이 높은 조치들이다.

 

예를 들어, 적합도 지형에서 '눈을 가진 생명체'로 불리는 크고 높은 산 지역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여기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DNA 책은 빛을 탐지하는 센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담고 있다. 지역의 규모, 높이 그리고 안정성을 보아 진화적 탐색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여기에 이르는 다수의 진화 경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좋은 기술은 여러 종들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그 종들은 포유류의 눈 디자인, 곤충의 눈 디자인처럼 어느 정도 다른 디자인들을 가질 것이다.

 

데넷은 또 다른 요소도 설명하고 있다. '강요된 움직임'이다.  바로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어떤 다른 움직임도 자살적 행위가 되는 상황을 말한다. 강요된 움직임은 물리학이나 화학 법칙들에 의해 부과된 제약 조건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적합도 지형도의 마지막 결론은 '경로 의존성'이다. 진화 시스템에서는 역사가 중요하다. 당신이 앞으로 갈 길은 당신이 과거에 왔던 길에 의존한다. 차별화는 집단들을 적합도 지형 주변으로 흩어지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형태의 어류 디자인을 위한 정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디자인 사이에 어떠한 경로도, 육교도 없다. 랜덤 점프로 이어지기에는 두 디자인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첫 번째 어류 디자인과 두 번째 어류 디자인 사이를 이어주는 지속 가능한 중간적 생태 지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류는 자신이 가진 '역사의 포로'가 되고 만다. 특별한 정점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특별한 경로, 그리고 미래를 위한 선택 방안들은 그 과거에 의해 제한받는다.

 

수학자들과 진화 이론가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지형도에 관하여 다양한 종류의 대안적인 탐색 알고리즘을 탐구해 왔다. 어떤 알고리즘은 완전히 임의적인 지형들을 탐색하는 데 더 좋고, 또 어떤 알고리즘은 고도로 질서가 잡히거나 규칙적인 지형을 탐색하는 데 더 좋다. 그러나 그 중간에 있는,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수준이고 고원, 구멍, 고나문 등과 같은 복잡한 특징들을 가진 그런 지형들의 경우는 진화를 이기기 어렵다. 그리고 지형이 계속 변할 때, 탐색 문제가 동적인 것일때, 탐색과 활용 간의 긴장을 감안해야 할 때, 진화는 모든 알고리즘 중에서 진정 그랜드 챔피언이다.

 

 

진화의 기본 요소들

 

진화가 작동하기 위한 필요조건들

  • 모든 가능한 디자인들을 담고 있는 디자인 공간이 존재한다.
  • 이들 디자인들을 신뢰성 있게 코드화하여 하나의 도식으로 만들 수 있다.
  • 이 도식들을 신뢰성 있게 해독해 이들을 상호 작용자로 만들 수 있는 어떤 형태의 도식 식별자가 있다. 내생적 진화에서 도식은 자신의 고유한 식별자를 코드화한다.
  • 상호 작용자는 모듈과 모듈의 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도식에서 빌딩 블록들 형태로 코드화된다.
  • 상호 작용자는 하나의 환경으로 바뀐다. 그리고 환경은 상호 작용자들에게 제약 조건들을 부여한다. 물리학의 법칙들, 기후, 또는 레고 심판자 등 이 제약 조건들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특히 중요 제약 요소는 유한한 자원을 놓고 상호 작용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이다.
  • 하나의 환경에서 제약 조건들은 집단적으로 적합도 함수를 만들어 낸다. 이에 따라 어떤 상호 작용자는 다른 상호 작용자보다 더 적합한 일이 일어난다.

 

진화의 과정은 제약 조건이 주어진 상황에서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는 알고리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디자인 공간을 다음과 같이 탐색한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식들에 변이의 과정이 일어난다. 도식자들은 수많은 작용자들, 예를 들어 염색체 교차나 돌연변이 등으로 인해 변할 수 있다.
  • 도식은 하나의 집단을 만들어 내는 상호 작용자들로 바뀐다.
  • 선택의 과정이 상호 작용자들에게 작용한다. 이에 따라 어떤 디자인은 적합도 함수에 의해 다른 디자인들보다 더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적합도가 낮은 상호 작용자는 집단에서 제거될 확률이 보다 높다.
  • 복제의 과정이 있다. 적합한 상호 작용자들은 평균적으로 보다 큰 복제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적합도가 낮은 디자인보다 적합도가 높은 디자인에서 보다 많은 변종들이 만들어진다.
  • 상호 작용자의 적합도에 기여하는 빌딩 블록들은 시간이 갈수록 보다 빈번히 복제되고, 이에 따라 해당 집단에서 더욱 퍼지게 된다.
  • 마지막으로 변이, 선택, 그리고 복제의 알고리즘 과정은 순환적으로 일어난다. 한 단계에서 나온 산출물은 그다음 단계에서 투입물 역할을 한다.

 

진화의 알고리즘이 적절히 준비된 정보 처리 기질, 적합한 모수들을 가지고 작동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 임의성에서 질서가 나온다. 단순한 임의의 디자인에서 출발, 적합도 함수의 관점에서 지시된 복잡한 디자인을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다. 모든 진화의 과정은 개방형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그 결과 알고리즘은 국지적인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임의성을 질서로 바꾸어 나간다.
  • 적합 디자인들의 발견이다. 알고리즘은 적합 디자인을 찾아 매우 광할한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내생적인 진화에서 어떤 디자인들이 살아남아 환경의 제약 조건하에서 복제를 해나간다면 그것들은 적합한 디자인들이다.(좋은 디자인이 복제된다)
  • 연속적인 적응이다. 알고리즘은 적합도 함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학습하고 그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디자인들을 추구한다. 적합도 함수가 변하면 진화는 새로운 선택 압력을 반영하는 디자인들을 생산해 낸다.
  • 지식의 축적이다. 진화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식을 축적한다. 우리가 레고 진화 과정을 멈추고 특정 시점에 모든 장난감들에 대한 도식 카드들을 분석하면 카드들에 들어 있는 정보는 역사적으로 장난감들이 진화해 왔던 적합도 환경에 관한 학습 또는 지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DNA는 생물학적 디자인들이 과거에 작업을 해왔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 당신이 만약 다른 행성에서 떨어진 외계인이고 지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떻게 해서 지구의 한 유기체로부터 DNA를 얻었다면 그 DNA 코드만으로도 지구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DNA 식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도식들은 진화 과정에서 일종의 하드 드라이브와 같은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보들을 채워 나간다.
  • 새로운 것의 출현이다. 진화 과정 동안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새로운 변종의 디자인들을 창조한다. 이론적 의미에서 보면 모든 가능한 디자인들은 이미 디자인 공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발견하고 실제로 만들어 냄으로써 진화는 새로운 디자인을 현실 세계로 이끈다. 레고 사례에서 진화 알고리즘은 틀림없이 어린이 스스로는 그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디자인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상의 가상적 진화를 이용해 제트 엔진의 팬블레이드에서 컴퓨터 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해 보는 실험도 새로운 디자인들을 만들어 냈다.
  • 성공적인 디자인에 기여하는 자원의 증가다. 성공적인 디자인 집단들은 성장한다. 성공적인 디자인들이 경쟁에서 이겨 자원을 획득해 감에 따라 성공하지 못한 디자인들은 사라져 간다. 집단들이 크다는 것은 성공적인 도식들이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 측면에서 비성공적인 도식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관리한단는 얘기다. 그러나 그러한 증가는 평탄한 패턴을 따르는 게 아니라 공진화에서 오는 네트워크 효과와 적합도 지형 그 자체 간의 결합에 따른 단속 균형 패턴을 따를 것이다.

 

진화는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수준의 적합도 지형을 가진 광활한 디자인 공간에서 적합 디자인들을 찾아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 진화는 병행 탐색을 활용한다. 사실 집단의 각 멤버는 개별적인 디자인 실험이다. 많은 보행자들이 밖에서 높은 정점을 찾아다닌다.
  • 진화는 점프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낸다. 진화는 국지적 최고점에서 옴짝달싹못하게 할 위험이 있는 짧고 점진적인 점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모할 정도로 긴 점프를 많이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진화는 연속적인 혁신의 과정이다. 알고리즘의 순환적 특성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지형이 계속 변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한 이는 중요하다. 진화는 탐색과 활용의 균형을 맞추어 가기 때문에 기간에 따라 보다 활발하거나 그렇지 않은 탐색 기간이 있을 수 있지만 탐색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시스템은 균형이 없다. 진화 시스템에서 정지는 소멸을 위한 처방이다.

 

실제로 진화는 말한다. "나는 많은 것들을 시도해서 그 결과를 보고 도움이 되는 건 더 많이 하고 그렇지 않은 건 덜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알고리즘은 적합도 함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학습한다. 그리고 그 학습의 지식이 도식에 쌓여 간다. 그리하여 진화 과정은 더욱 적합한 디자인을 탐색하면서 새로운 것을 생성해 낸다.

 

진화는 놀이와 같다. 배역과 각본은 정해져 있지만 구체적인 배우, 세팅, 그 외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진화 과정은 생물학, 컴퓨터 가상 실험, 레고 장난감 게임에 적용될 수 있다. 보편적인 진화 과정은 구체적인 기질이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조건만 구비되면 바로 앞에서 기술했던 그런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

 

 

진화 이론에서 경제 현실로

진화와 경제학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제학의 많은 거장들이 진화를 경제학에 포함시키는 문제로 씨름해 왔지만 그들은 결국 다음 두 가지 제약과 마주했다. 우선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이해를 경제적 진화에 그대로 일대일로 대응시키려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예컨대, 유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경제에서는 무엇인가? 기업들의 그룹도 하나의 개체의 총수인가?(인구와 같은) 경제에서 부모와 그 후손들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초기의 노력들은 은유적 추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3부에서는 진화에 대한 현대의 알고리즘적 관점이 주장하는 것은 진화 시스템은 보편적 법칙들을 따르는 하나의 보편적 클래스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도 이 클래스의 한 부류이고 이런 법칙들을 따르는지 물을 것이다.

 

 

3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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