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정말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했지만
가장 아름답고 신기한 생명들이
끝없이 출현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종의 기원>
10. 디자인 공간 : 게임에서 경제까지
이번 장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를 이콜라이 모델로 하여 단순 게임에서의 전략을 디자인하는 데 어떠한 혁신적 방식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내용은 생략)
경제에서 협력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와 같은 변절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죄수의 딜레마 경연 대회
액설로드는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시도했다.
라포포트의 전략은 '눈에는 눈' 전략으로, 일단 처음 만난 상대에게는 무조건 협조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내린 결정을 보고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팃포탯 전략이 우승을 차지했다.
액설로드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단순한 전략이 어떻게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전략을 누르고 계속해서 우승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팃포탯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몇몇 특정 전략과 대응했을 때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 사실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만약 두 참가자가 모두 팃포탯 전략을 구사한다고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이 모두 협조했을 경우에는 뛰어난 점수를 쌓을 수 있지만, 어느 한순간 한 명의 실수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두 참가자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협조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국가 간 핵무기 조절 협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액설로드는 이런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될 수 있는 재앙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실리코 전략
린드그렌의 모델은 컴퓨터상에서 동시에 두 명 이상을 대상으로 집단 실험을 수행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복잡한 실물 경제 체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정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린드그렌의 시뮬레이션에는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경쟁과 협조 간 내재적인 상충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와 시스템을 상시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협력적 구조는 실물 경제에서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개인적 구도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린드그렌의 모델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실험하는 행위자들에게는 최적화된 결정을 내릴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방의 과거 선택을 기억해 내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셋째, 행위자들의 다양한 상호 작용은 종종 예상치 못한 복잡한 창발적 패턴의 행태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 모델이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칼 심스의 '진화하는 가상 생물체' 연구처럼 린드그렌 역시 죄수의 딜레마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진화적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린드그렌 모델은 죄수의 딜레마에 관해 가능한 모든 전략이 포함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담은 방대한 디자인 공간을 진화적 방법으로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린드그렌 모델의 전체적인 구조는 사실상 죄수의 딜레마와 인생 게임이라는 두 가지 게임이 혼합된 체제다.
인생 게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단순한 게임 규칙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셀의 패턴이 마치 아슬아슬하게 삶을 지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4가지 전략
- 항상 변절한다.
- 항상 협조한다.
- 팃포탯
- 반팃포탯 - 항상 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내린 결정과 반대로 따라하는 전략
린드그렌은 게임을 시작할 때 임의적으로 각 행위자들에게 위의 4가지 전략을 고루 부여한 후 진화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고 주기적으로 임의적 변화(돌연변이)를 주어 그 결과를 추적했다.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는 3가지 변화가 가해졌다.
첫째는 '점 돌연변이'로 행위자의 컴퓨터 DNA 일부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예: 00 -> 01) 둘째는 '유전자 복제'로 DNA 일부가 복사되어 꼬리에 첨가된다. (예 : 01 -> 011) 유전자 복제 효과 중 하나는 행위자가 과거의 결정 패턴을 더욱 많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자는 바로 전 라운드의 결과뿐 아니라, 그 이전 라운드에 있었던 일까지도 기억해 내어 게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이 확장될수록 행위자는 더욱 복잡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셋째는 '분할 돌연변이'로 DNA의 어느 한쪽을 모두 삭제하는 것이다. 분할 돌연변이는 기억력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하고 전략의 복잡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편, 린드그렌은 이런 변이에 덧붙여 협조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변절을 택하게 하는 등 행위자들이 가끔씩 실수를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바둑판 위의 우림
린드그렌은 가로세로 각각 128칸의 게임판을 제작했다. 한칸에 한 명의 행위자가 자리 하고 각 행위자는 4가지 전략중 하나를 택하여 게임을 시작한다. 전략들이 진화하기 시작하고, 가장 우수한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서 근접한 셀에 자리한 행위자들에게 자신의 전략을 전파시킨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생태계가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4가지 전략이 상호 작용한 끝에 최초에는 아무렇게나 질서 없이 흩어져 있던 행위자들이 점차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팃포탯'과 '항상 협조 전략'을 택한 행위자가 함께 고득점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곧 항상 변절하는 행위자의 대다수가 게임판에서 사라진 반면, 협조하는 행위자들의 규모가 크게 늘어나 하나의 섬을 이룬듯한 모양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조적인 섬이 항상 이 모습 그대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때로 변절 전략을 택한 행위자들이 협조적 무리를 파고들어 인근 협조 전략가를 침몰시키는 경우도 있고, 협조 무리들의 규모가 마치 박테리아와 같이 빠른 속도로 증대되어 변절자들의 무리를 몰아내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계속 진화하듯이 변화 한다는 이야기....
숲의 제왕
그렇다면 승자는 누구일까? 린드그렌의 모델처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시스템에서는 단 한 명의 승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최적, 최고의 전략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특정 시기에 생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순간 특정 전략이 등장하여 한동안 게임판을 지배하는 등 화려한 나날을 보내다가도 새롭게 등장한 다른 전략에 의해 결국 소멸되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일부 전략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게임판을 함께 독식하다가 새로운 전략의 등장으로 게임판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함께 등장한 두 전략이 공생 관계처럼 협조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러한 경우 한 전략에 문제가 생길 경우 나머지 한 전략도 동시에 침몰하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게임판에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도 있다. 팃포탯과 같은 단순 전략을 구사하면서 게임판을 독식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상관없이 근근이 삶을 이어 나가는 전략 말이다.
한편,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게임은 또한 앞에서 설명한 이른바 '단속 균형'이라는 불연속적 패턴으로 흘러간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승리 전략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이들이 게임을 지배하게 되면서 상대적인 안정기가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시기에는 모두가 공생하는 가운데 일부 행위자들의 전략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구가하게 되어 아무도 전략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또 다른 작은 혁신이 일어나 발전 모멘텀을 얻게 되면 게임판의 패턴은 순식간에 뒤바뀔 수도 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협조 위주의 전략이 우세를 보이는 등 가끔씩 모든 행위자들이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경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변절과 실패의 시대가 도래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은 특정 환경과 시간에서 어떤 전략의 성공과 실패 여부가 다른 전략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판은 제인과 크리슈나의 '핵심종(키스톤) 모델'과 아주 유사한 하나의 거대 생태학적 그물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스템의 일부분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는 널리 전파되어 반대편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팃포탯 전략가들에게 둘러싸인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떠올려 보자. 팃포탯 전략가들은 '항상 변절' 전략가들로부터 '항상 협조' 전략가들을 보호하는 형국을 띠고 있다. 그러나 팃포탯 전략가들에게 작은 돌연변이가 발생해 이들이 일종의 축소 악순환에 빠져 드는 일이 발생한다고 가정하자. 이 틈을 타서 '항상 변절' 전략가들이 섬 내부로 침입을 시도하면 '항상 협조' 전략가들의 섬은 급속히 붕괴되어 게임판에서 사라지고 만다.
변화에 민감한 성향으로 인해 그 누구도 방정식을 사용하여 모델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실제 경제예측만큼이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이 임의적 오류 같은 것들 때문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에 프로그램된 모델은 사실상 완벽하게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돌연변이율이나 오류를 임의로 작성한 후 두 차례에 걸쳐 프로그램을 돌려 보면 두 번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행위자의 출발점, 행동 규칙, 심지어 임의적 요소들의 수치가 무엇일지까지 정확히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델의 정확한 행태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마디로 너무 복잡하다는 얘기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델을 돌리고 진화시키는 것이다. 비록 모델의 행태를 정확히 예측해 낼 수는 없지만,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모델을 이해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모델의 행태를 조절하는 특정 모수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돌연변이의 등장 횟수, 오류 발생 비율, 그리고 게임 내의 상대적 보상 체계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게임의 거시적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수들의 값에 따라 행위자들은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도 있고, 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침체된 비협조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또한 가장 혁신적인 신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수들의 값은 어떤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결과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돌연변이의 비율이 0.001 이하이면 혁신과 협조 수준은 매우 낮다" 혹은 "돌연변이의 비율이 0.001 이상 0.01 이하일 경우 게임 환경은 매우 역동적이고 혁신적으로 변화하며 협조 수준과 이익 또한 상승한다" 등과 같은 표현들이 가능해진다.
모수들의 값에 따라 게임 환경은 특정 전략들에 우호적 또는 적대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친절하지만 터프한 전략은 비록 많은 오류가 발생하지만 협조적 환경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반면, 강철주먹 전략은 매우 비협조적인 환경에서 돋보였다" 등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린드그렌의 모델에서는 경제 문제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기 위해 진화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최고의 전략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과 같이 오히려 진화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전략이 등장한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 생태계와 같다.
그렇다면 더욱 복잡한 게임들 속에서도 전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100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는 세계 경제라는 거대한 게임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바벨의 도서관
만약 세계 경제라는 디자인 공간이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면, 가능한 모든 문헌들로 구성된 디자인 공간을 떠올려 보자.
특정 레고 세트를 사용하여 만들 수 있는 레고 디자인은 한정되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후 쓰일 책들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그것이 우주의 수명이 다하는 기간까지도 탐색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디자인 공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작품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디자인 공간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틀렸다고만 볼 수 없다. 디자인 공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디자인 공간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장 길게 만들어질 수 있는 도식의 가장자리 둘레가 늘어나거나 축소될 수 있으므로 디자인 공간은 시간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지구상에서 DNA를 가지고 있는 생물체의 디자인 공간은 확대돼 왔다. DNA는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지고 해당 종족이 '테크놀로지(기술, 예컨대 난자, 자궁 등)'를 통해 길어지는 디자인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문헌상의 디자인 공간의 크기 역시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석판에 상형 문자를 새겨 넣던 시기의 책은 당연히 짧았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 초고속으로 책의 내용을 바로 우리의 뇌로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된다면 프루스트의 작품도 간결해 볼일 수 있을 것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디자인 공간에 관해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을 상기 시켜 준다. 알파벳, 숫자, 그림 혹은 DNA의 화학적 코드 등 일련의 기호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디자인 공간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디지털화되어 컴퓨터에 저장될 수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 공간의 자격 조건을 갖춘 것이다.
스미스의 박물관
그렇다면 사업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스미스의 도서관에 있는 사업 계획서가 사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테스트는 이른바 사업 계획서 식별자가 그 계획을 활용해 계획서에 설명되어 있는 대로 경제적 활동을 조직화하고 창출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 계획서의 식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기업의 경영 팀이다.
상상의 사업 계획서도, 그것이 비록 수천 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세세한 측면에서 시스코를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식을 디자인으로 바꾸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도식이란 결국 이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디자인을 간단히, 압축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내용들이 세세하게 계획서에 기술될 필요는 없다.
사업 계획서는 식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묵시적인 지식, 문장, 기술 등에 크게 의존 한다. 마치 레고의 도식에서 어린아이들이 플라스틱 벽돌들을 선택하여 쌓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처럼, 또 DNA 도식에서 정말 필요한 능력을 갖춘 난자와 자궁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시스코 경영 팀이 이 계획서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지니고 있으면 충분하다.
생물학적 시스템에서처럼 사업 계획서의 도식과 식별자들은 함께 진화 한다. 사업 계획서는 다시 관리 팀의 미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식의 '공진화' 과정으로 나가는 것이다. 시스코 관리팀에게 야노마모족의 사냥꾼 모임에 관한 사업 계획서를 줘도 의미 없는 사업 계획서일 것이다.
경제의 진화 모델
진화적 알고리즘을 통해 혁신, 성장, 창조적 파괴라는 과정이 발생하는 것처럼 스미스 도서관을 통한 진화 역시 실물 경제에 혁신, 성장, 창조적 파괴라는 동일한 패턴을 가져다준다.
보편적 진화 모델로 돌아가 보면 사업 계획서라는 '기질'에서 변이, 선택, 그리고 복제의 과정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우리는 앞으로 4장에 걸쳐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찾기 위한 진화 과정을 조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실험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사업 전략과 조직 디자인을 창안하면서 이른바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선택은 경제의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일부 사업을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디자인이 더욱 많은 자원을 제공 받고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경제 시스템에서 복제가 일어난다.
경제의 진화는 하나의 단일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3개의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물리적 기술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기술'로서 물질, 에너지, 정보 등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용도에 맞게 변환시키기 위한 디자인과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적 기술은 인간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디자인, 과정 혹은 규율 등을 말하며 마을, 군대, 매트릭스 조직, 지폐, 법률, JIT 재고 관리 방식 등이 그 예이다.
사업 계획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혼합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한다. 사업 계획서,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은 각각 독특한 적합도 함수를 가지고 있는 만큼 3개의 디자인 공간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업 계획서는 경제적 목적에 맞게 선택되는 경향이 있지만, 물리적 기술 및 사회적 기술의 경우는 다른 목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많은 중요한 물리적 기술들이 군사, 보건 혹은 기타 사회적 필요에 의해 탄생되었거나 단순히 과학자나 발명가들의 호기심에 의해 개발되었다. 법률이나 대학 교육 등 사회적 기술의 많은 부분도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갖고 있지만, 당초에는 다른 목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진화 시스템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원래 한 가지 목적으로 진화된 혁신이 향후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 이른바 전용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모델은 경제의 진화를 물리적 기술 공간, 사회적 기술 공간, 사업 계획 공간이라는 이 세 공간에서의 합동적인 진화의 산물로 본다. 세 공간은 별개의 개념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각 공간마다 진화가 작동한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적합 디자인을 찾아내 증폭시키는 한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은 도태시킨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술, 사회, 경제 세계의 질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11. 물리적 기술 : 석기에서 우주선으로
도구를 만드는 지식이 미래 세대에게 자연적인 방법(유전자를 통한 기억)이 아닌 문화적인 방법으로 전달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진화가 육체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 문화에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기술이 태동되는 순간이다.
영화에서 큐브릭의 의도는 명료하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그 제조 기술을 문화적으로 전달하게 되면서 인간의 진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오늘날 우주선을 포함한 많은 현대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의 탄생
경제는 두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물리적 기술과 그러한 재화를 생산하고 거래를 원할히 하도록 사람들을 유인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초기 인간의 도구 제작은 초보적인 논리적 추론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한 돌로 연한 돌을 치면 연한 돌이 깨진다는 등의 추리를 바탕으로 강도가 다른 여러 돌을 이용하여 실험하였을 것이다. 실험에서 성공하면 "이런 종류의 돌이 도끼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는 등의 법칙이 성립하게 된다.
이 법칙은 그 후 다른 사람 혹은 후대에 전수되어 다시 실험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은 기술의 사회적 확산은 인간의 물리적 기술 능력의 발달을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확산 과정에서 각각의 세대는 전 세대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 온 것이다. 도구의 발전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가속화되어 왔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물리적 기술과 우주
현대의 기술도 옛날의 기술 진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각기 다른 기술 간의 관계는 종의 분화 과정과 유사하다.
물리적 기술은 물질, 에너지 및 정보를 어떠한 목적을 위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환하는 방법과 디자인이다.
예를 들어 유인원 래리가 몇 개의 돌(물질)에 약간의 힘을 들여(에너지) 조각을 내고 그것으로 동물의 뼈를 자를 수 있는 손도끼를 만든다(목적). 혹은 프로그래머가 자판기 식품을 먹고 그의 뇌에 영향을 보급한 다음 컴퓨터에 전기를 연결하고(에너지) 소프트웨어 정보를 활용(정보)하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목적) 비디오 게임을 만든다(디자인).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물리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기술은 유형의 제품(도끼,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만들고 어떤 기술은 서비스를 창출한다. 유형의 제품과 같이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도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다. 안마는 에너지(안마사의 힘)를 일정한 동작으로 전환하여(디자인) 고객의 근육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다(목적).
물리적 기술 그 자체는 제품(도끼, 소프트웨어, 마시지 등)이 아니라 그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자 지침 혹은 방법이다. 물리적 기술은 마치 제품을 만드는 절차, 방법 등을 설명하는 지침서와 같다.
예를 들어, 돌도끼 제조 지침서에는 완성된 도끼의 그림, 제조에 필요한 돌의 종류, 제조 방법에 대한 안내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앞서 '스미스 도서관'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는 물리적 기술에 대해서도 하나의 도식을 정의할 수 있다. 자연 언어, 수학적 부호, 그림, 청사진, 제조 시범 비디오 등으로 된 도식이다. 무엇이든 이론적으로 신화화할 수 있다면 도식으로 표현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구전된 지침과 암묵적 지식도 기술 도식으로 코드화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물리적 기술은 여러 측면에서 전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술과 유사하다. 전통 경제학 이론에 '생산 함수'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원재료, 자본, 그리고 노동을 제품 혹은 용역으로 전환하는 체계를 말한다. 그리고 기술이란 그러한 전환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말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의 경우 기술을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알 수 없는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 기술을 일종의 진화의 산물로 보고 그 진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제 상상 가능한 모든 기술에 대한 도서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도서관도 주어진 시점에서는 유한하다. 그리고 그 규모는 보유한 기술 중 가장 길고 복잡한 도식의 길이로 정의될 수 있지만 거의 무한대에 가깝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규모는 계속 불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이 도서관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청사진, 디자인, 지침서와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다양하게 변환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무의미하고 실용성이 없는 것일 수 있다. 네모난 바퀴의 자전거, 구멍 뚫린 물병, 치즈로 만든 도끼 등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은 그중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기술도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 진화는 마치 거대한 건초 더미에서 쓸 만한 기술인 바늘을 찾아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술을 찾아내는 것은 경제가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리적 기술의 식별자들
다른 디자인 공간들처럼 물리적 기술도 도식으로서의 요건을 갖추려면 도식 식별자가 이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물리적 기술에 담겨 있는 정보를 읽어 내고 이를 물질, 에너지, 정보로 이루어지는 실제 경제 활동으로 바꾸려면 특별한 사람, 또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 즉, 설계 도면을 알아보고 실제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식은 누구나 그것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격을 갖춘 식별자만이 그 계획을 읽고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중요한 원칙은 그러한 기술 설명 자료가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되거나 정리되고 식별자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멘델의 도서관, 스미스의 도서관에서와 마찬가지로 물리적 기술에 대한 도식과 그 식별자는 상호 작용하면서 진화, 다시 말해 공진화를 한다. 즉, 주택 건설자의 기술과 방법이 변하면 주택의 디자인이 변하고, 주택의 디자인이 변하면 그런 주택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기술자의 요건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암묵적 지식의 경우 도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기술이나 지식이 표현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 확산될 수 없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지식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떤 형태로든 코드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래리가 아주 멋있는 도끼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술을 어떤 형태로든 코드화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면 그 기술은 래리와 함께 사라지고 더 이상 진화할 수 없을 것이다.
초기의 물리적 기술의 전달 과정에서는 오류들도 불가피하게 끼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가 적절하게 작동하려면 정보 전달에 최소한의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언어의 출현은 보다 규모가 크고 복잡한 기술을 코드화하고 이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일들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정확하게 수행하는 데 엄청난 돌파구 역할을 하였다.
인간의 언어 능력이 정확하게 언제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도구 디자인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확산은 인간의 언어 능력 형성의 강력한 증거라는 역추론이 가능하다.
물리적 기술은 스스로 자란다
인간이 만든 물리적 기술이 가진 놀라운 특성은 바로 그 스스로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내연 엔진의 개발이 자동차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고 자동차의 확산으로 고무 타이어, 와이퍼, 아스팔트 포장, 모텔, 패스트푸드, 고속도로 요금소, 심지어는 라스베이거스의 드라이브 인 예식장 등의 관련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명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을 열어 줄 뿐 아니라 그러한 발명에 사용된 부품 소재 또한 새로운 재발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자동차 같은 경우 그러한 기술 효과가 엄청난 반면 어떤 경우에는 그 영향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카우프만은 그 규모는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발명이든 작더라도 리플 효과(파급효과)는 있기 마련이다. 어찌하여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스스로 급증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기술은 어떻게 스스로 성장하는가?
물리적 기술도 다른 도식들과 마찬가지로 앞서 살펴보았듯이 모듈화된 빌딩 블록의 특성을 갖고 있다. 모든 물리적 기술은 요소와 구조인 전체적 디자인, 이 두 가지를 코드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은 방, 배관, 창문 등으로 되어 있고,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집 모양(예를 들어 튜더 양식 등)을 갖추게 된다. 안마도 개별 근육을 어떻게 이완시키느냐 하는 개별적 요소들과 이들을 적절히 결합한 하나의 디자인으로 구성된다.
손도끼와 같이 원시적인 물리 기술도 마찬가지다. 돌도끼의 경우 요소는 깎는 돌과 도끼로 깎인 돌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구조는 전체적인 디자인 그 자체다. 따라서 요소들과 구조를 다양하게 결합하면 다양한 디자인들의 수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도끼의 손잡이를 어떠한 모양으로 하느냐에 따라 손바닥으로 움켜쥐는 원형 도끼와 손가락으로 싸고 쥐는 나팔 모양 도끼로 나누어진다. 도끼날의 경우에도 돌 한쪽만 깨어 만든 것과 양쪽을 깎아 만든 것이 있다. 전체적인 구조 측면에서도 소형 도끼, 대형 도끼, 화강석 도끼, 부싯돌 도끼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요소와 구조의 결합적 특성 때문에 물리적 기술들의 공간은 우주보다도 큰 규모를 갖게 된다. 이는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 물리적 기술 공간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시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손도끼를 만드는 데 양날 만들기와 홑날 만들기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어느 날 유인원 '해리'가 도끼날을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을 개발했다고 하자. 또한 이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이 조그만 돌을 이용해 돌을 조금씩 더 정밀하게 깨서 더욱 날카로운 도끼 날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자. 이 기술의 개발로 우리는 세 가지 형태의 도끼날을 갖게 된다. 이 하나의 기술 혁신으로 가능한 손도끼 종류의 수가 16에서 24로 늘었다.
제품 구조에서의 기술 혁신 또한 SKUs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해리가 하루는 대형 나팔형 손도끼를 쥐고 도끼날을 세우는게 아니라 오히려 도끼날을 갈아 무디게 만들었다고 하자. 이건 어뜻 생각하기에는 요소에 대한 사소한 기술 혁신 같지만 사실 전혀 새로운 제품 구조의 혁신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약간의 변화가 손도끼를 견과류, 곡류 등을 찧는 전혀 다른 용도의 도구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은 제품의 복잡도에 따라 SKUs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리고 제품 구조의 혁신이 새로운 요소 혁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새로운 발명의 의의는 경제적으로 시장에 새로운 SKUs를 추가시키는 것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SKUs들로 이루어지는 공간도 확대시킨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발명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을 넓혀 주고, 이에 따라 물리적 기술의 공간은 손도끼로부터 규브릭이 영상화한 지구 둘레를 회전하는 우주선으로까지 확대된다.
연역적 추론에 의한 기술의 진화
진화의 환경은 지형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으로 알프스 산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물리적 기술 공간의 경우에도 진화의 환경, 즉 적합도 지형이 그와 같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진화가 물리적 기술의 탐색에 가장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는 물리적 기술 공간의 지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즉, 이 공간에서 서로 비슷한 물리적 기술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적합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리적 기술 공간의 적합도 지형 역시 서로 가까이 위치하는 경향이 있는, 높은 장점들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원도 있고, 움푹 파인 곳도 있는 그런 지형과 같을 것이다.
물리적 기술 공간이 알프스 산맥과 같은 그런 적합도 지형이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추가적인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 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진화는 그와 같은 지형을 추적하는 데 매우 유용한 방식이며, 또한 진화의 과정은 그러한 지형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들의 물리적 기술에 관한 혁신 과정이 진화적인 탐색 과정과 같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면 물리적 기술의 공간도 그와 같은 지형, 즉 알프스 산맥과 같은 적합도 지형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물리적 기술 혁신이 진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하면 당장 "진화는 맹목적이고 임의적인 과정인 데 반해 기술 혁신은 인간의 이성과 의도에 의한 것이다. 그 점을 어떻게 풀 것인가?
그러나 진화 알고리즘의 특성상 반드시 의도성이나 합리성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을뿐더러 진화가 반드시 임의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도 없다. 기본적으로 진화는 실험과 선택, 그리고 (선택된 것의) 확산의 반복적 과정이다.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서 임의적인 부분은 선택이 작동하기 위한 변종들의 창출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조차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돌연변이는 임의적일 수 있지만 양성 생물의 재조합은 그렇지 않다. 짝짓기를 위한 경쟁의 원리상 적합도 점수가 높은 것들끼리 맺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 유일한 필요조건은 알고리즘에서 선택을 위한 실험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형적으로 설명하자면, 실험은 최소한 진화의 알고리즘이 정점(가장 경쟁력이 있는 상태)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적합도 지형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그와 같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물리적 기술 공간을 추적하는 인간의 경우 연역적 추론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연역적 추론은 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의 아이디어들과 허버트 사이먼의 '의도적 적응'이라는 개념을 빌려 혼합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발명에서 두 가지의 인식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나는 연역적인 논리적 사고다. 두 번째는 궁리한다는 것, 즉 무언가 한 번 실험을 해 추론하는 것이다. 현대의 엔지니어들이 과학을 활용하듯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실험해 보자"고 하는 것이다.
듀크 대학교의 공과대학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를 두고 "실패를 해야 전적이 쌓이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궁리를 한다는 것 자체는 무의식적인 귀납적 인식 과정, 연상 그리고 유추 등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는 단순히 무작위적 행동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역적인 논리와 귀납적인 추론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에 열광하는 인간의 속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롱비치의 거의 전 지역에 정전 사태를 일으킨 사건. 그는 단지 그냥 한번 날아 보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야외 의자로 비행하는 실험에는 실패하였지만 무엇인가에 열광하는 사람들 때문에 물리적 기술 공간에서의 실험은 계속 확대되고 간혹 성공하는 기술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그림은 현재의 기술에서부터 마치 곤충의 촉수처럼 뻗어 있는 가지 모양인데, 그러한 가지는 연역적 실험의 영역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역은 이론, 과학 그리고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뻗어가게 되어 있다. 그 밖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점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그냥 실험을 해보는 점들을 나타낸다. 적합도 지형에서의 이러한 실험의 분포는 임의적인 돌연변이나 교배로 실험이 이루어졌을 때와 똑같은 모양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실험이 진화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기술 지형에서의 선택
따라서 연역적 추론은 물리적 기술의 변이를 위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기술 중에서 어떻게 적자가 결정되며, 물리적 기술 지형에서 적합도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이 경우 생물학적인 진화와는 그 과정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물리적 기술은 목적이 있고 어떤 기능이 있다. 휴대용 전화는 통신을 위한 것이며 커피 잔은 커피를 담기 위한 것이다. 물리적 기술을 선택하는 기준은 얼마나 그러한 목적에 적합하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목적한 바의 기능을 더 잘 수행하는 기술을 선호하는 것이다. '더 낫다'는 것은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눈 장갑을 만드는 기술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눈 장갑이 놀이뿐 아니라 기념품으로서의 기능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경쟁력이 있다는 뜻.
진화 시스템 속에서 선택이라는 과정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과임신' 상태가 발생하여야 한다. 즉, 주어진 환경에서 벅찰 정도로 많은 디자인들이 출현하여 이들 간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술의 경우,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기술의 종류가 더 많은 상황, 예를 들어 관광객의 수요보다 기념품 장신구가 더 많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경우 상호 경쟁적 기술이 동시에 존재하고, 또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목적에 가장 맞는 기술을 선호하기 때문에 선택을 통한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모방은 가장 진심 어린 칭찬이다
진화의 과정을 점검하는 마지막 단계는 복제의 과정이다. 성공적인 디자인이 다른 경쟁 디자인에 비해 눈에 자주 띈다는 것은 진화의 시스템이 실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생물의 경우 진화의 과정은 단순 명료하다. 살아남는 데 가장 필요한 유전자는 그렇지 못한 유전자에 비해 후대로 상속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기술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어떻게 적응력이 높은 기술이 복제되고 확산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에게 유용한 기술은 모방된다. 예를 들어 벽돌 만드는 기술은 기원전 5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그 후 널리 모방되었고 '연역적 추론'을 통해 여러 형태의 벽돌 기술이 이로부터 진화되었다. 벽돌 만드는 기술은 사람의 두뇌에 저장되었고 벽돌 그 자체에 체화되었을 뿐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겨졌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모방하였으며, 숙련 기술자는 도제들에게 가르쳤고, 또한 어떤 사람들은 벽돌 자체를 보고 어떻게 만들까 궁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는 기록되어 벽돌 기술은 급속도로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기술은 사람의 두뇌를 통해 전파되고 그 기술을 담고 있는 제품이 모방되면서 복제된다. 그리고 그 기술에 대한 기록이 돌에 새겨지거나, 책으로 인쇄되거나 웹 페이지에 올려지면서 복제된다. 성공적 기술은 확산되고 그렇지 못한 기술은 쇠퇴하면서 기술의 시장 점유율이 변한다.
벽돌 기술이 전성기를 가가하다가 20세기에는 유리 혹은 철강 기술에 밀려 시장에서의 위치가 크게 약화되었다. 따라서 벽돌 기술이 한동안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였으나 다른 우월한 기술이 등장하면서 퇴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논의한 물리적 기술의 진화 모형을 바탕으로 지금부터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낼 것이다. 첫째, 알프스 산과 같은 지형이 이른바 기술 S커브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둘째, 물리적 기술과 모듈성과 기술 간 상호 관계가 파괴적 기술의 영향을 어떻게 설명해 내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이 물리적 기술의 진화 과정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기술 S커브
포스터의 이론은 범선으로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이르는 기술에 대한 관찰과 이들 기술에 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개별 기술에 대한 연구와 자료를 통해 놀랍게도 일관성 있는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기술의 초기에는 기술의 성과가 부진하고 발전 속도도 더디다. 그러나 투자기와 다양한 시험기가 지나면 기술의 성과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인 상승 곡선을 타게 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연구 개발 투자가 기술의 성과를 개선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기술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성과 곡선은 완만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투자 수익이 체감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포스터는 이와 같이 투자에 따른 기술성과의 변화 패턴이 S자와 유사하다고 하여 이를 'S커브'라 명명하였다.
포스터 두 번째 이론은 한 기술에 대한 투자 수익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기업가들은 다른 새로운 기술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초기의 발전 속도는 더디지만 결국 이륙 단계를 지나면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술을 대체하게 되고 시장은 새로운 'S커브를 타게 된다'는 얘기다. 포스터의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S커브와 새로운 S커브 간의 단절 기간이 기업에게는 매우 어려운 취약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미 자리 잡은 기업은 기존 기술로부터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대개 그러한 기업들은 과거의 성과가 장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기존 기술의 성과가 퇴조하는 데도 불구하고 새로 진입하는 신기술의 위협을 과소평가한다. 이러다 보면 기존 기업은 새로운 기술에 바탕을 둔 혁신 기업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자전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앞바퀴가 큰 것, 뒷바퀴가 작은 것, 다양한 방향 조절 손잡이 등 실험적인 디자인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앞뒤바퀴 크기가 같은 요즘 자전거가 등장하면서 자전거의 기본 디자인이 급속히 개선되고 성능도 크게 좋아졌다. 그 후 기술이 S커브의 윗부분에 이르렀고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줄어든 채 기본 디자인은 고정된 상태에서 개선 노력이 기어, 경량화 등 부분적인 기술 변화에 국한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경주용 자전거, 산악용 자전거 등이 등장하면서 자전거 기술은 새로운 S커브를 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진화를 설명하는 지형, 즉 적합도 지형을 이용해서 살펴보자.
자전거를 만드는 나쁜 방법의 수가 좋은 방법의 수를 압도하는 까닭이다. 그러다 일단 좋은 디자인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처음 얼마간 헤매다 보면 디자인을 찾게 된다. 그 후 얼마간 등산은 순조롭고 속도도 빠르다. 결국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속도는 떨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전과 달리 정상으로 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의 수가 줄어든다. 처음에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등산로의 선택은 줄어들고 만다는 것이다.
만약 물리적 기술의 진화 과정을 나타내는 적합도 지형이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라면, 기술 발전 과정에서 S커브와 같은 패턴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후지산과 같이 하나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 단순한 지형이라면 가장 좋은 자전거 디자인 하나만 존재할 뿐 디자인간 경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S커브 현상은 높은 산 낮은 산 등 여러 산이 어울려 있는 알프스 산맥과 같은 적합도 지형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파괴적 기술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은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왜 하나의 S커브에서 새로운 S커브로 옮겨 가는 것이 성공적인 대기업에게조차 위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크리스텐슨은 기술의 조그만 변화도 때때로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크리스텐슨은 기술이 파괴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기술 진보의 급진성보다 기술 변화가 S커브상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새로운 기술이 주어진 S커브상에서 성과를 급속히 제고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S커브로의 환승을 초래하지 않는 한, 그 기술은 현재의 기술 경쟁 관계를 깨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성과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S커브로의 환승을 요구한다면, 이 기술은 파괴적인 기술이며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 적합도 지형을 편의상 3차원으로 도식화하여 설명하였으나 기술은 여러 가지 부분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실제 기술의 진화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다차원적 현상이다. 만약 한 디자인에서 5개의 구성 부품을 바꾼다면 이것만 하더라도 5차원의 그림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범선에서 증기선으로의 발전, 경주용 자전거에서 산악용 자전거로의 발전과 같은 구조 자체의 혁신은 많은 것들이 동시에 변할 때 일어난다. MIT의 헨더슨과 하버드의 클라크는 반도체 장비 산업 연구를 통해 산업 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구조적 혁신이 부품 혁신보다 훨씬 파괴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기존 기술로 성공한 기업일수록 기술 적합도 지형에서 새로운 기술로 갈아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가나 신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진입자 입장에서 보면 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길도 많고 도전할 수 있는 정상도 많다. 한편 계곡에서 산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정상에 이르기도 전에 깊은 계곡으로 잘못 빠져 들거나 낮은 봉우리에서 끝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그 많은 기업 중에 결국 어떤 기업은 정상으로 가는 좋은 길을 찾아내게 마련이다.
과학 혁명 : 진화의 재프로그램화
물리적 기술 진화의 특징은 과학적 이론 등에 근거한 연역적 탐색이 임의적인 탐색이나 실험적 추론에 비해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연역적 능력은 어떤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고(실제로 실험하기보다) 두뇌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인간이 그동안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러한 기술들이 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간의 발명은 천천히 끊임없이 계속되고 늘어났다.
1750년경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때 물리적 기술 공간이 크게 확대되면서 SKUs의 수도 급증한 것이다. 그것을 촉발한 것은 과학 혁명이었다.17세기 과학자들에 의한 엄청난 발전이 가능하였다. 그 후 과학은 기하급수적인 곡선을 그리며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 발전의 영향으로 인간의 연역적 통찰력은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러면서 '연역적 추론(연역적 논리와 실험적 추론의 혼합)'에서 앞부분인 연역적 논리 과정이 갑자기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론이 현실에 다 맞는다고 하는 엔지니어가 없듯이 연역적인 과학 이론이 실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이론의 중요성이 점점 증대되면서 물리적 기술의 적합도 지형에서 진화가 새로운 정점을 찾을 수 있는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기술 진화는 물리적 기술 공간이 담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는 인간의 연역적 추론의 결과다. 여기에서 차별화, 선택 그리고 복제 과정의 성격은 생물적 진화와는 전혀 다르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진화 과정이다. 이는 물리적 기술의 진화가 다른 진화의 경우에 적용되는 일반적 진화의 법칙을 따른다는 얘기다.
따라서 물리적 기술의 진화 또한 다른 경우와 같이 혁신은 또 다른 혁신을 촉진한다든지 기술 변화가 이른바 단속 균형을 나타낸다든지 하는 행태를 보인다. 그러나 물리적 기술 진화의 특성은 인간 사회의 시스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진화의 알고리즘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의 발명은 인류로 하여금 물리적 기술 공간을 매우 빠르게 탐색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이로 인한 산업 및 정보 혁명은 우리 사회외 지구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물리적 기술이란 인류 생활의 반쪽 이야기에 불과하다.
12. 사회적 기술 : 수렵, 채집민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한 나라를 다른 나라보다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국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들 중에는 부존 천연자원, 정부의 정책 역량, 그리고 국가의 물리적 기술의 상대적인 정교함 등이 포함된다고 추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어느 정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요소는 국가의 사회적 기술 상태이다.
법률 규정, 재산권의 존재, 잘 조직된 금융 제도, 경제의 투명성, 부정부패 척결 그리고 그 외의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이 국가의 경제적 성공을 결정하는 데 다른 범주에 속하는 요인들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정부가 무능한 국가라 할지라도 강력하고 잘 개발된 사회적 기술이 있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1990년대 말에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물리적 기술을 통해 이를 설명하려고 했다. 이전 20년 동안 엄청나게 투자했으므로 경제가 아주 오랜만에 그 투자의 결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 주된 가설이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주요 항목인 생산성 지표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생산성을 증가시킨 실제 요인은 회사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변화, 바꿔 말하면 사회적 기술의 혁신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월마트와 같은 소매업 부문에서 나타난 이런 사회적 기술 혁신 경쟁은 같은 기간 미국 전체의 생산성 증가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나머지 생산성 증가는 대부분 다섯 가지 다른 산업 부문에서 이루어진 비슷한 사회적 기술 혁신 경쟁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월마트의 정교한 물류 프로세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이 주된 역할을 했다기 보다는 그러한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엄청난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것은 정작 조직과 프로세스의 혁신이었다.
조직하라
사회적 기술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법 및 디자인이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회사를 시작하고 종교를 형성하거나 금요일 밤 볼링 리그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 조직화 행위는 항상 목표를 추구한다. 그 목표는 이익일 수도 있고, 영적인 계몽일 수도 있고, 약간의 재미일 수도 있다. 물리적 기술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물리적인 영역에서 질서를 구현하는 방법인 것처럼, 사회적 기술 역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회적 영역에서 질서를 구현하는 방법이다.
사회적 기술이라는 용어는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제도라는 용어와 아주 비슷하다.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를 '사회 내에 존재하는 게임의 규칙'으로 정의한다. 제도는 조직화의 한 가지 구성 요소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사회적 기술의 정의에서는 의미를 다소 확대하여 구조, 역할, 프로세스 및 문화적 표준과 같은 다른 구성 요소를 포함하고자 한다. 즉, 사회적 기술에는 조직화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포함된다.
축구 팀의 사회적 기술에는 게임의 규칙만이 아니라 골키퍼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 팀의 문화적 규범, 그리고 팀이 전방에 스트라이커를 세 명 세울 것인지 아니면 전방에 두 명을 넣고 후방에 스위퍼를 둘 것인지 등과 같은 내용도 포함된다. 축구 팀의 사회적 기술에는 팀, 조직, 방식에 대한 모든 설명이 포함되지만 팀이 사용하는 전략은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상황에서 보면, 그런 전략은 비즈니스 사업 계획에 속한다.
사회적 기술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사회적 기술의 이론적인 디자인 공간, 즉 모든 가능한 사회적 기술 도서관을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도 물리적 기술 디자인 공간을 구상하면서 거쳤던 과정을 다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사회적 기술 도서관에는 사회적 구조를 구현할 수 있는 특정한 디자인과 명령을 규정하는 도식들이 있다. 야노마모족의 사냥 파티를 조직하는 규정, GE의 조직적 구조의 규정, 유럽의 금융 관련 규정을 수립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명령의 집합체에는 자연어로 된 텍스트, 차트, 도표가 포함된다. 그중에는 조직 구조, 역할, 의사 결정 프로세스, 공식적인 규칙, 인센티브 시스템, 품행 규정 등이 있다.
일부 사회적 기술은 문서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사회적 기술도 많다. 사회적 기술은 기록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자격이 있는 식별자가 그에 따라 행동하면 규정된 대로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명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다른 디자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술의 도서관은 세 가지 중요한 속성을 갖추고 있다. 첫째, 물리적 기술처럼 사회적 기술 디자인 공간은 자급자족형이며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다. 사회적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때마다 그다음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더 많은 디자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돈이 발명되자 회계학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주식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로 인해 주식 시장이 생기게 되었다.
둘째, 사회적 기술은 모듈형의 빌딩 블록의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조직 디자인은 사업부를 조직하는 디자인, 회계 및 통제 시스템 디자인, 위원회 구조 디자인, 그리고 문화적인 행동 규범의 디자인 등이 포함된 모듈의 집합체이다.
셋째, 사회적 기술 디자인 공간과 관련된 적합도 지형은 '개략적으로 상호 연관된' 지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회적 기술 디자인이 서로 약간 다르면 상대적 적합도도 약간 차이가 있게 되지만, 때때로 조금만 변경해도 사회적 기술이 전혀 실행 불가능한 것이 되거나 훨씬 더 잘 작동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 적합도 지형은 개략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는 알프스 산맥과 같은 형태가 된다.
이 가정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 기술 공간에 S커브와 파괴적인 기술이 있었던 것처럼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도 그에 해당하는 것이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역사는 이런 사실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사회적 기술 공간의 연역적 추론
사회적 기술 적합도 지형이 정말 알프스 산맥과 같은 지형이라면, 그것을 찾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은 인류 사상 최고의 검색 알고리즘인 진화이다. 사람들이 '연역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물리적 기술 공간을 탐색하는 것처럼,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도 연역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적합한 사회적 기술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포드와 그의 팀이 생산 라인을 개발했을 때, 단순히 앉아서 연역적으로 이론화하여 문서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임의적으로 실험을 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했다.
포드는 대중이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자동차를 제조하고 싶다는 마음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제조 공정에서 숙련공의 수를 줄여서 기능과 경험이 부족한 작업자가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했다. 포드는 제조 공정에서 표준화되고 상호 교환이 가능한 부품을 미국 군수부의 스프링필드 아머리가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또 그와 그의 팀은 이론적인 경제학 서적을 많이 읽지는 않았겠지만, 일반적으로 노동 전문화의 장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련의 연역적 가설들을 세운 포드는 1908년부터 1912년 사이에 공장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실험하기 시작했다. 1013년에 그는 작업자가 아니라 자동차 자체가 생산 라인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1914년에는 완전하게 작동되는 이동식 조립 라인을 구현했다.
사회적 기술에서 연역과 실험적 추론 방식의 비율은 물리적 기술에 비해 실험적 추론 방식 쪽으로 더 기울어진다. 경제학과 조직이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제트기를 제작하거나 새로운 심장약을 만드는 것에 비해, 회사의 조직을 재디자인하거나 중앙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같은 활동에는 과학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학문이 관련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진행된 사회적 기술 공간의 적합도 지형에 대한 탐색 패턴을 보면 방향을 알려 주는 비교적 적은 수의 연역적 논리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시행착오적 실험이 그 특징을 이룬다. 복잡계 경제학이 약속하는 것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기술에서 예술과 과학의 경계선을 과학 쪽으로 한 걸음 더 밀어넣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 연역이 더 적은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연역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적합한 사회적 기술을 찾는 과정은 진화적 프로세스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기술로 실험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적인 디자인은 계속 지속되고 덜 성공적인 디자인은 사라지게 된다. 성공적인 디자인은 계속 지속되고 덜 성공적인 디자인은 사라지게 된다. 성공적인 디자인은 복제되어 더 많은 자원을 끌어당기고 확산되면서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 사람은 물리적 기술의 적합도 지형 내에서 이동하면서 사회적 기술 지형 내에서 굉음, 지진, 그리고 그 외의 격변을 일으키고, 그 반대의 현상도 일어난다. 황소가 끄는 쟁기와 같은 물리적 기술의 진보는 촌락을 중심으로 하는 농경이라는 사회적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사실, 농업 혁명, 산업 혁명, 그리고 정보 혁명은 물리적 기술의 진보가 각각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술로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물리적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공진화적인 회전목마라고 볼 수 있다.
협력을 위한 경쟁
인류가 사회적 기술 공간을 연역적 추론 방식으로 탐색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조직화 하면서 더 나은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찾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논제로섬 게임'의 마법에 있다.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실이 되는 제로섬 게임과 두 사람이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논제로섬 게임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논제로섬 게임에서의 협력은 1+1 = 3이라는 논리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둘이 하여 함께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논제로섬 협력은 생물학적인 진화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생존 요령 중 하나다. 개들은 떼를 지어 사냥을 하고, 흰개미는 집단적으로 흙만들기를 만들며, 물고기도 떼를 지어 헤엄친다.
하지만 논제로섬 게임에서 협력하는 것은 상당한 장점이 있지만, 죄수의 딜레마에서 볼 수 있듯이 더 큰 선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좁은 의미의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것 사이에서 종종 긴장이 존재한다.
<논제로> 저자 로버트 라이트는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협력과 이기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핵심적인 긴장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단순한 수렵, 채집민 종족에서 조직화된 마을로, 또다시 국가와 세계적인 기업으로 사회적 복잡성이 확산되는 과정은 사람들이 점점 더 큰 규모로 협력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고, 더 복잡하고 수익성이 있는 논제로섬 게임을 하는 방법을 고안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주어진 한 시점에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세계에는 경쟁으로 인해 협력하라는 압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혁신을 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협력하게 만드는 경쟁이다.
결국 사회적 기술의 적합도 지형 전체에 대한 연역적 추론 방식의 탐색은 사람들이 논제로섬 게임을 하면서 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기술의 적합도는 세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 첫째, 사회적 기술에는 논제로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람들이 그 게임을 하고 싶어 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결과를 할당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셋째, 사회적 기술은 변절이라는 문제를 관리하는 메커니즘을 갖추어야 한다.
논제로섬 게임의 마법
1+1=3이 되는 마법의 4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 첫째는 분업이다. 둘째는 사람들의 이질성이다. 사람들은 필요와 취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를 할 기회가 생긴다. 셋째는 돌아오는 몫이 증가한다는 장점이다. 넷째는 협력이다. 협력은 시간 경과에 따른 불확실성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협력은 위험 부담을 완화시키는 생존 요령이다. 자급자족하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친다면 굶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로 협력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면, 동료들이 살아남도록 도와줄 것이며 나중에 되갚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수확물의 배분
이러한 논제로섬 게임 이득의 4가지 요인을 다양한 상황에서 혼용하고 서로 짝을 맞추면 사람들이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협력하는 방법을 거의 무한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서로 협력할 동기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 수확물에서 약간의 몫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협력의 결과를 분배하는 방식은 중요한 문제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분배하는 경우, 협력은 무너지고 논제로섬 이득은 사라지게 된다.
존 내시가 1950년대 '계약의 문제' 라는 논문으로 유명해진 것이 바로 협력에서 얻은 결과를 할당하는 방법이었다. 이 논문에서, 내시는 "두 명의 계약자가 합의에 어떻게 도달하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을 했다. 해리는 래리에게 손도끼를 받는 대가로 고기를 얼마나 줄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게 들리지만, 여러 세대 동안 경제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문제였다.
내시는 두 명 이상의 계약자들이 교환에서 얻는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은 각각이 거래의 이익을 어느 정도 평가하느냐, 그리고 계약자들의 대안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정리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는 다른 모든 사람도 역시 가장 좋은 거래를 찾고 있다는 가정하에 자신에게 가장 좋은 거래를 찾게 되며, 다른 사람의 행동을 고려하더라도 그 어느 누구도 위치를 변경할 이유가 없는 지점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지점은 '내시 균형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해리와 래리는 도끼를 놓고 흥정할 때, 결국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거래할 수 있고 누구든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는 자신의 입장을 개선할 수 없는 합의점을 찾아내게 된다. 즉, 거래가 성사된다. 두 사람 모두 전혀 거래를 하지 않은 경우보다 더 나은 상태로 헤어지게 되므로, 협력의 논제로섬 이득을 얻게 된다.
내시의 공리는, 협력하게 만드는 논제로섬 게임의 경우 각자가 최상의 반응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결과를 구조화해야 하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반응을 조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예를 들어, 그 죄수들에게 증언하는 사람은 누구든 죽여 버릴 것이며 침묵을 지킨 사람은 석방된 후에 보상해 줄 것이라고 약속을 한 마피아 보스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과 구조는 바뀌게 되며 내시 균형점은 두 사람이 모두 침묵을 지켜 풀려 나오는 지점으로 옮겨진다.
마찬가지로, 그 죄수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여 상대방에게 제안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들은 협력하고 대응하여 변절의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해결 방법의 경우 한 죄수가 이득을 얻기 위해 상대를 팔아 먹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쨌든, 도둑들 사이에 명예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적 기술 적합도의 세 번째 중요한 요소로 연결된다. 즉, 사회적 기술이 적합하려면, 게임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 사람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기꾼과 승리자의 차이
속이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는 것은 협력이란 본질적으로 이루기 어려우며 설령 협력이 이루어진다 해도 잠재적으로 불안정함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진화의 이기적인 논리는 속이는 사람이 속임수를 써서 이득을 얻게 되면 그 속이는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임수는 진화에서 유리한 특성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선택에서 속이는 유전자가 잘 속는 유전자보다 우위에 있다면, 집단 내에서 협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 대답은 협력하여 얻는 이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협력하는 유전자가 속이는 유전자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전자가 순진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잘 속지 않게 해야 하며 속이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협조적인 유전자가 생존하려면 정교한 방어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번만 게임을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밀고할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게임이 반복되며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그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해진다.
다른 게임들과 실험들에서도 인간의 협력-상호이익(상호주의) 행동 방식은 일관성이 있고 뿌리 깊은 특성임이 확인되었다. 진화는 논제로섬 이득의 재물을 획득하기 위해 협조적이 되게끔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로 인해 속임수에 대한 민감한 반응, 공정함에 대한 기대, 그리고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처벌하려는 의지등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진화는 우리의 정신적 소프트웨어에 정교하면서도 직관적인 내시 균형점 탐지 능력과 공정성 감지 능력을 프로그래밍해 넣었다. 이런 특성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집단은 최소한 합리적이고 안정적이며 불로소득자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의 공격에 저항하는 연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내장된 상호 이익 소프트웨어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즉, 지역적인 상황에 맞추어 적응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험에 다른 사람들의 협력과 상호 이익이 관련되어 있고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하는(즉, 사람들이 자기희생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유형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회적인 규범이 존재하는 환경이라면 정신적인 협력 소프트웨어는 협력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또 이런 환경에서 이 소프트웨어가 변절이나 속임수의 예를 보게 될 경우 더 놀라고 더 관용적으로 치우친다. 이런 환경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협조적인 경우에 만약 속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행동 방식이 아마도 실수나 오해로 인한 결과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선진국이 될 수록 관용이 커지는 이유 겠군, 관용이 없는 사회로 가는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쩌나)
반면, 덜 협조적이며 협조를 지지하지 않는 사회적 규범이 있는, 다시 말해 속임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경험에 입각한 협력 소프트웨어가 우리를 의심하는 쪽으로 치우치게 만든다. 즉, 속임수를 쓴다는 증거가 처음 나타날 때 거칠게 반응하며, 용서한다 해도 천천히 용서한다. 그리고 상대 측에서 먼저 협조한다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협력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
상호 이익 규범을 국지적으로 조정하면 모집단의 수준에서 매우 복잡한 구조가 생길 수 있다. 협력을 잘하는 사회라 해도 속임수가 한계 수준에 도달하면 협력이 붕괴될 수 있으며, 협력을 잘 안하는 사회는 비협조적이고 경제적으로 헐벗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협력하는 전통이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섞이게 되면, 오해와 혼란이 유발될 수 있다.
동일한 문제가 조직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회사 내에 협조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문화가 있으면 경제적인 성과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회사를 합병하여 신뢰도 변수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모이게 되는 경우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제로섬 이득이 생기는 요인들을 이용하고 그런 이득을 할당하는 협조적인 내시 균형점을 찾아내고, 변절 문제를 관리하는 등의 일을 잘하는 사회적 기술은 그렇지 못한 사회적 기술에 비해 적합도 지형에서 더 높은 곳에 존재하게 된다. 사람들이 적합한 사회적 기술을 찾기 위해 그 지형에서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연역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인류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더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적 구조를 발전시켰다.
가족 단위에서 비즈니스 단위로
사회적 기술의 진화 과정은 가까운 친척과 가장 밀접하게 협조하는 유전적인 경향에서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들이 유전 인자를 공유하며 그들을 돕는 것은 그 유전 인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의 가장 오래된 협조적인 사회적 구조는 가족이다.
초기 인류는 일부다처제가 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침팬지와는 달리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배우자와 자식들을 떠나지 않고 그들에게 투자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족 단위가 형성되었다. 일부 사회들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구조 이상으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사회적 구조의 사다리에서 첫 번째 계단은 협조적인 사냥단이었다. 먹을 것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대부분의 초기 사회에서 이런 형태의 협력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사회에서 협조적인 사냥단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으며 대부분 친족이나 친족에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사회적 협력에서 빅뱅은 정착 농경이 도래하면서 시작되었다. 정착 농업으로 인해 획득되는 칼로리가 증가하고 위험 부담이 줄어들면서 정착 생활은 더 영구적이 될 수 있었다. 인간 집단의 규모는 커졌다. 이것은 협력이 가족 구성원들의 씨족 이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였다. 더 나아가 이로 인해 많은 새로운 논제로섬 게임이 가능하게 되었다.
협조적인 그룹은 주거지를 건축하는 것과 같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할 수 있었고, 몇 명의 가족 구성원들만으로는 지을 수 없었던 다른 구조들의 경우에는 인공물을 만드는 인력을 세분화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었으며, 멀리 떨어진 마을과의 무역도 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협력과 관련된 이 모든 혁신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즉, 생성된 부를 분배하는 방법이라는 이른바 '내시의 문제'였다. 영장류에 배경을 두고 있는 성적인 계층 구조는 이 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답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빅맨 소사이어티'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인 접근 권한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 크고 강하고 똑똑하고 공격적인 남성이 약한 남성을 밀어 내고 여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차지하기 때문에, 크고 강하고 똑똑하고 공격적인 유전자가 그 이후 세대로 전달되게 된다. 이로 인해 신분이 높은 남성과 신분이 낮은 남성의 계층 구조가 생겼다. 초기 인류의 집단이 서로 합쳐져서 비친족 사회가 되면서, 이런 성적인 계층 구조가 협력의 수확물을 분배하는 사회, 경제적 신분 계층 구조로 바뀐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물론, 이 두 가지 계층 구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즉, 우리 선조들의 환경에서 성적인 지배력의 특성(즉, 크기, 지능 및 공격성)은 경제적인 성공으로 구현되는 경향이 있었다. 부유한 사람이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층적 구조는 인기가 별로 많지 않다. 독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네트워크 이론은 계층 구조가 정보 처리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정보 처리 시스템이 컴퓨터 칩이든, 인터넷이든, 인간의 뇌든, 경제든 관계없이 그러하다.
분업과 규모의 경제적 장점을 이용하려면 업무를 분할하고 그 실행을 조정하고 상황을 다시 결합해 그 결과물을 할당해야 한다. 초기 사회에서,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적으로 지배적인 남자였다. '빅맨' 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현대 CEO와 정치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단 인류가 계층 구조를 만들자, 계층 구조 내에 계층 구조를 중첩시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계층 구조가 생기면 분업과 정보 처리가 촉진된다. 이것은 수렵, 채집민 부족에서부터 지역 볼링 리그,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사회적 구조에 스며들어 있다.
평화, 사랑, 그리고 이해
사회적, 경제적 계층 구조는 정보 처리 면에서 중요한 장점이 있지만, 그런 구조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최상위 지점에는 항상 경쟁이 있고, 빅맨이 그 능력을 상실하거나 죽으면 계승 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조직적인 동요는 손해가 매우 크며 안정성은 이득이 많다.
안정적인 조직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지식과 기능을 축적하고, 더 장기적이고 이익이 있는 논제로섬 게임을 하며, 참여자들에게 더 많은 확실성을 제공하여 더 낮은 비용으로 협력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영장류의 무리에서, 계층적 구조의 관리 방식은 상당히 단순하다. 크고 똑똑하고 공격적인 남자가 집단을 지배하며, 더 크고 더 똑똑하고 더 공격적인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면 폭력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끌어내린다. 불행하게도, 이런 방식의 계층적 구조 관리는 지금까지도 독재 정권, 조직화된 범죄 단체, 그리고 그 외의 불미스러운 사회 조직에서 사용되고 있다.
농업과 함께 더 크고 더 영구적인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희생이 크게 따르는 폭력 없이(또는 최소한 더 적은 폭력으로) 계층적 구조의 권력 이동을 관리하는 일련의 혁신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혁신 중에는 장자상속권과 장로들에 의한 지도자 선출이 포함되었다. 비교적 최근의 혁신 중에는 보통 선거 방식의 민주적인 선출과 기업 주주 지배 구조가 포함되었다. 흥미롭게도 현대화된 이런 프로세스의 형태에는 문명성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그표면 아래에는 항상 물리적인 힘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
계층 구조 내에서의 경쟁을 관리할 필요도 있지만 서로 다른 계층 구조의 구성원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한 위협과 기회도 관리해야 한다. 인간 집단에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극복해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서로 신뢰할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직계 혈족 이외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마을 밖으로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최초의 그런 사회적 기술은 의문의 여지없이 부족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즉, 외부인들과 나의 사람을 구분함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공유할 가능성이 더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부족 내에서의 상호 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용당하거나 파괴적이고 잘못된 의사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적다.
역사적으로 무역망은 최초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부족, 민족, 종교 집단 내에서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다. 방대한 무슬림 무역망, 아이비리그가 지배하는 월 스트리트의 회사들을 생각해 보라. 외부인들과 나의 사람들이라는 이 꼬리표의 추한 측면은 바로 차별 대우다. 차별 대우는 본질적으로 자기 제한적인 것이다. 즉, 다른 정보가 없는 경우,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위험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더 큰 세계를 제외시키는 역할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배타적인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동일한 브랜드의 컴퓨터만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폐쇄형 컴퓨팅 환경을 만드는 것과 같다. 통신과 그 작동 방식에 대한 표준 프로토콜을 두는 것은 장점이 있지만 그 대신 확장성을 양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에서 주된 혁신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개방적인 약속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법률의 규칙이다. 법률이 있으면 배경, 역사, 민족성 및 사회적 규범 등이 서로 다른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비즈니스를 수행하면서도 위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택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큰 투자는 재산법, 건축 법규 및 보험 등의 모든 보호 수단에도 불구하고 겁나는 일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런 보호 수단조차 없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사회의 부와, 법 집행과 판결을 위한 메커니즘이 포함된 성문법의 존재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은 가난한 국가에서 성장을 자극하려고 하는 개발 경제학자들에게는 중요한 과제로 간주되었다. 강력한 법률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결국 꼬리표와 같은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덜 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 불화를 일으키는 대용품이다. 물론 법률은 신뢰를 완전히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사람들이 법률 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사회는 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법률과 규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협력을 위한 프로토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복잡하고 대규모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사소통도 협조적인 행동 방식을 발생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개발되면서 사회적, 경제적인 협력 잠재력이 극적으로 증가하였고 무수하게 많은 새로운 논제로섬 이득을 얻게 되었다. 언어가 물리적 기술을 생성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언어는 사회적 기술의 생성도 바꾸어 놓았다.
어휘가 증가하면서 유익하고 협조적인 사회적 게임의 공간이 폭발적인 속도로 열리게 된다. 끙끙대는 소리, 몸짓, 얼굴 표정만을 사용하여 누군가와 복잡한 거래를 하려 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형편없는 관광객 수준의 프랑스어 50단어를 사용하여 협상 한다고 생각해 보라. 또한 원어민 수준의 유창한 언어 능력으로 협산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일단 언어가 개발된 다음, 일련의 물리적 기술 혁신으로 인해 협조적인 활동에서 언어의 가치는 더욱 강화되었다. 문자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지식을 보다 널리 보급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도 보다 정확하게 지식을 보존할 수 있었다. 만약 문자가 없었다면 고대 이집트, 그리스 또는 로마의 복잡한 사회가 유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부족적인 암흑시대에서 유럽 사회가 등장한 것은 분명히 인쇄기로 인해 촉진된 것이며, 산업 혁명의 사회적 혁신도 신뢰할 수 있는 우편 서비스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보여 주는 그 복잡성도 전화기, 팩스 및 전자 메일이 없었다면 제대로 관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나온 컴퓨터
많은 수의 주요 사회적 기술 혁신은 정보 처리라는 의미가 있으며 '정보 처리 제품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회적 기술의 발전이, 많은 사람들이 협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의미 있는 데이터를 전달하고 저장하는 수단을 가지는 단계에 이르자 인간 조직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즉, 새로운 형태의 계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원유를 찾아내고 뽑아내고 정제하여 배포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는 매일매일 고도로 분산된 형태로 해결된다.
개미집이나 두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조직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새로운 지능 형태를 보여 준다. 허친스는 조직들이 집단 내에서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합적인 새로운 기능을 보유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본질적으로, BP 는 그 구성원 하나하나보다 더 총명할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 전체의 합보다도 더 총명하다.
강경한 기업 비평가라 할지라도 BP와 같은 조직은 인간 협력의 경이로운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직원들의 대부분은 서로 전혀 만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만나지 않겠지만, 그들은 공동 목표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구조, 규범, 프로토콜, 법적 구조 및 인센티브로 이루어진 망 안에 함께 묶여 있다. 그 협력의 망을 BP의 직속 직원들 밖으로 확대하여 130만 명의 주주와 수천 명의 공급 업체 및 기타 파트너 회사들까지 감안한다면, BP와 같은 사회적 구조의 규모는 훨씬 더 주목할 만한 것이 된다.
이런 혁신 중에는 돈과 같은 사회적 기술이 포함된다. 돈이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경제적 필요와 욕구를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욕구와 동일한 단위로 변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BP는 13세기 이탈리아 상인들이 처음 개발한 복식 기장 회계라는 사회적 기술이 제공하는 금융 정보로 이루어진 중앙의 신경 시스템이 없었다면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또 1800년대에 일련의 법령으로 영국 의회에서 창안한 유한 합자 회사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BP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BP는 효용이 있는 사회적 기술의 유산에 의존하지만, 경제적인 진화 시스템에 참여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BP의 매니저들은 연역적으로 실험을 시도하면서 새롭게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고, 여기서 나온 성공적인 사회적 기술은 채택되어 BP 내부와 외부로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장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생물학적인 전통으로부터, 우리는 상호 이익이 되도록 협력하려는 경향과 지배적인 계층 구조에서 경쟁하고 싶은 충동을 물려받았으며, 결국에는 인간의 두뇌가 발전하면서 언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이 초라한 출발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조직화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면서 수만 년 동안 이른바 '연역적 추론'의 진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협력에서 발견된 본질적인 논제로섬의 이익은 이를 위해 활용된 사회적 기술에 보상을 해주었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인류는 점점 더 효과적이고 조직적인 성공을 위한 생존 요령을 발견하였다.
인류는 이렇게 알프스 산맥과 같은, 사회적 기술이라는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효용이 있는 생존 요령을 찾아낼 수 있었고, 성공적인 혁신이 나올 때마다 훨씬 더 많은 미래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 혁신으로 인해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의 능력이 개선되면서, 사회적 기술이라는 적합도 지형에서 점점 더 풍부한 영역이 열렸다. 동시에, 사회적 기술 공간은 물리적 기술 공간과 공진화하였다. 각 공간에서 나온 발견들이 다른 공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토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13. 경제적 진화 : 빅맨에서 시장으로
지금까지는 대략 진화의 일반적인 모형을 설명하고 그 모형을 경제 시스템들에 접합시키고자 하였다. 10장에서는 경제적 진화를 모든 가능한 사업 계획, 즉 이른바 '스미스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디자인 중에서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11장과 12장에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의 진화가 어떻게 경제적 진화에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경제적 진화 과정이 기업과 시장의 세계에서 펼쳐지면서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 결합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을 갖춘 하나의 완전한 모델을 갖고 있다. 즉, 경제적 진화를 위한 디자인 공간(스미스 도서관), 이런 디자인들을 코드화한 도식(사업 계획), 그러한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일단의 요소들(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식별자들(경영 팀), 진화적 경쟁이 일어나는 환경(시장) 등을 이미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설명하지 못한 중요한 두 가지가 남아 있다.
첫째, 경제적 진화 과정에서 상호 작용하는 주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 진화의 경우에는 생물 개체들이 상호 작용의 주체가 된다. 생물 개체들 상호 간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생존하고 사멸하는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존과 사멸'이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경제적 진화에서 선택의 단위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 진화의 경우, 선택은 유전자 단위에서 일어난다. 경제적 진화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사업은 생존과 사멸을 거듭한다
진화의 일반적인 모형에서 도식은 상호 작용자의 구조를 결정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DNA 도식은 상호 작용자의 역할을 하는 유기체를 코드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업 계획도 경제 시스템에서 하나의 도식으로서 사업의 구조를 코드화한 것이다. 결국 경제에서 상호 작용자는 사업이고, '생존하고 사멸하는 것'도 다름 아닌 사업이다.
그러면 사업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개념인 사업과, 법적 실체이자 하나의 사회적 기술로 볼 수 있는 기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의 : 사업이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하나의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 전환하는 개인 혹은 다수가 조직화된 그룹이다.
정의 : 기업이란 한 개인 혹은 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단일 혹은 다수의 사업을 말한다.
진화 시스템에서 상호 작용자는 기업이 아니라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의 핵심적 특성은 바로 상호 작용의 거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과, 제품 혹은 서비스 상품을 구별할 때는 고객, 경쟁자, 사업 지역, 관련 기술, 공급자 등 상호 작용의 대상이 일치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앞서 본 신문 잡지 가판대를 우유 사업, 신문 사업 등을 취급하는 복합 사업 기업이 아니라 단일 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우유와 신문을 사는 고객은 같고 다른 가판대와 경쟁하여 시장에서의 상호 작용이 제품보다는 상점 단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약 회사는 심장약 사업, 암 치료제 사업 등을 가질 수 있는데, 이때 이들 사업들은 각기 고객, 경쟁자, 기술이 다르다.
따라서 경제적 진화에서 상호 작용자는 기업이 규정하는 사업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의 단위
사업은 경제적 진화 과정에서 적자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상호 작용자다. 그렇다고 해서 생물계에서 진화의 선택이 생물 개체 단위에서 일어난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사업이 바로 진화 과정에서 선택의 단위라고 할 수는 없다.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확실하게 알려면 한 단계 더 구체적인 단위로 내려가 보아야 한다.
생물의 경우 도식의 구성 단위들은 유전자들이다. 그러면 경제적 진화에서 선택의 단위는 무엇인가? 진화의 일반적 모델에서 선택 단위가 도식의 조각들이라고 한다면 경제적 진화에서 그건 사업 계획의 구성 단위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어떠한 부분을 말하는가? 그 부분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느 정도 세분하여 보아야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선택의 단위가 판매 전략인가? 아니면, 제품과 관련한 물리적 기술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례에서 경쟁에서 성공한 사업의 다른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점포의 형태 때문에 보더스 서점이 반스앤노블 서점의 시장을 일정 기간 잠식할 수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는 점포의 형태가 바로 선택의 단위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재고 관리 시스템이 사업의 성패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면 이는 진화의 선택 단위가 아니었다는 의미다(그러나 언제든 재고 관리 시스템도 진화의 선택 단위가 될 수 있다).
결국 선택의 단위라는 것은 환경이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이 순환 논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로서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적합도 함수라는 것은 극도로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가변적이다. 사전적으로 아무도 무엇이 선택될지 알 수 없다. 단지 뒤돌아보고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선택의 단위는 시간이 지난 다음 경험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생물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사후적, 경험적 방법 외에는 선택의 단위를 알 방법이 없다. 유전자의 정의도 똑같이 모호하다. '긴 다리'라는 특질만을 코드화한 구체적인 DNA 배열이란 것은 없다. DNA는 단순한 청사진이라기보다는 촘촘히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망에 더 가깝다. '긴 다리'라는 특질은 잠재적으로 유전 가능한, 예컨대 뼈의 성장을 다스리는 호르몬, 근육의 생성 절차 등과 같이 상호 작용하는 일단의 구성 모듈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모듈들 또한 하위 모듈들로 이루어지고, 그런 식으로 내려가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개별 단백질 그 자체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모듈들은 동시에 다른 특질을 규정하는 과정에도 관련될 수 있다.
따라서 생물학자들도 유전자를 판별하기 위해 사후적, 경험적 방법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은 특정 단백질 결핍이 원인이라고 하자. 과학자들은 그 단백질의 결핍 원인이 되는 DNA 배열을 찾아서 그러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발견한 DNA의 특정 배열은 그 질병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메커니즘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제적 진화에서 선택 단위를 식별하는 데도 앞서 논의한 것과 유사한 실용적, 경험적 접근법을 쓸 것이며, 그 과정에서 '모듈'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모듈'은 과거에 제시되었거나 아니면 미래에 제시될 수 있는 사업 계획의 한 구성 요소로서, 경쟁적 환경에서 다수의 사업들 중 선택의 근거가 되는 부분을 말한다.
모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내가 한 사업의 관리자라면 그 사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하여 어떤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어떤 것이든 사업의 성과를 차별화 하는 기반이 된다면 이를 모듈이라고 할 수 있다(좀 더 정확하게는 사업 계획 중 그러한 활동을 코드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경험을 바탕으로 모듈을 식별할 수 있다. 컨설팅 전문가들, 경영대학 교수들, 그리고 그 바닥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은 사업에서 모범 사례를 찾고 이를 확산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바로 이 모범 사례라는 것이 실상은 모듈이다. 이들은 과거에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을 찾기 위해 기업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문서화하거나 설명 자료로 만든다(즉, 이것들을 도식으로 코드화한다). 그러고는 이를 경영 팀(코드화된 도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으로 넘긴다. 경영 팀은 그러한 사례를 차별적인 경쟁 우위를 얻을 목적으로 경영 조직에 적용하는 시도를 한다(선택의 단위로서 활용한다).
사업들 간에 성과 차이가 나는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마치 생물체의 환경 적응 능력이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듯이). 과거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모범 사례가 반드시 미래에도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진화적인 선택은 사업 계획 전체는 아니지만 사업 계획의 일정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택의 단위에 대한 질문은 경제학과 생물학 모두에서 여전히 논쟁과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 시스템,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에서 선택의 단위와 관련한 다양한 이론적 제안이 있었다. 예를 들어, 경제 시스템의 경우 넬슨과 윈터의 '일상적인 과정', 사회 시스템의 경우 도킨스의 '생물의 유전자처럼 재현 모방을 반복하는 사회 현상'의 개념, 혹은 로버트 보이드와 피터 리처슨의 '문화적 변이'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개념은 각기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모듈의 개념은 바로 그런 아이디어로부터 도출한 것이다. 여기서 모듈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목적은 우리가 지금까지 구축해 온 일반적인 진화 모형과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경제적 관점에서 '도식', '상호 작용자', '선택의 단위' 간의 구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전략이라는 접착제
'모듈'이라는 말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진화의 도식은 하나의 빌딩 블록 같은 것으로 짜 맞추는 조립의 특성을 갖고 있다(이 때문에 디자인 공간이 한없이 넓어진다). 따라서 '모듈'이라는 용어는 사업 계획이 여러 가지 모듈의 혼합체이고 이들 모듈을 조립하여 여러 가지 사업 계획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시장 환경, 전략, 제품 및 서비스, 운영, 마케팅과 판매, 조직 등
사업 계획은 개별 단위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결합된 모듈(부분 계획)들이 다시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모듈을 결합시키는 접착제가 바로 전략이다. 전략은 어떤 주어진 여건하에서 모듈들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이익이 더 많이 날 것인가에 대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은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그는 사업 계획을 만들고 이 계획서를 실리콘 밸리의 모험 자본가에게 가져가 사업 자금을 조달한다. 사업 계획서는 새로운 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전략이라는 우산 아래서 결합되는 만남의 장소와도 같다.
차별화 : 기업가에서 관료까지
진화라는 연극에서 연기자가 누구인지는 알았으니, 이제 극의 구성을 정하고 경제라는 무대에서 진화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볼 차례이다. 우리는 연역적 추론(연역적 논리 + 실험적 추론)이 어떻게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 차별화의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는지 보았다. 사업 계획에서도 이와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사업의 운영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을 합리적으로 도출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설명한 것처럼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시험을 거쳐 제대로 된 것만을 취하는' 방법밖에 없다.
수도 없이 많은 사업 계획들이 실험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업 계획 공간에서 연역적 추론은 진화적 선택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대안 혹은 대안의 과임신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성공적인 사업 계획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보다는 기예에 가깝다. 그러므로 생물의 경우처럼 진화의 과정이 완전히 관측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공할 수 있는 사업 계획을 판별하는 데는 연역적 추론 가운데서도 연역적 논리보다 실험적 추론이 훨씬 유효할 수 있다.
다양한 기업가 스펙트럼의 한 끝에는 전혀 새로운 사업 계획을 들고 나오는 혁신적인 기업가가 있다. 기업가적 의사 결정 과정은 연역적 추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즉, 기업가는 다양한 사업 계획의 모듈을 새로운 방법으로 뒤섞거나 새로운 물리적 기술 혹은 사회적 기술을 도입, 가미하여 새로운 사업 계획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가만이 혁신의 주역이라고 할 수 없다. 중간 관리자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중간 관리자도 역시 담당 사업 활동을 합리적으로 기획하고 이에 대한 주변(고객 및 상급자)의 반응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연역적 추론 방법을 활용한다는 점은 기업가의 경우와 다를 게 없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중간 관리자는 기업가만큼 사업 계획의 다양성을 높이는 중요한 원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원천이다.
이른바 적합도 지형이 산악과 같은 곳에서 진화를 하려면 탐색을 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는 일정한 범위의 점프가 필요하다. 여기서 대부분의 혁신은 소소한 뜀뛰기 정도이다. 왜냐하면 지형상 과격한, 큰 점프를 노린 혁신들은 대부분 실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중간 관리자가 과감한 사업 계획을 추진하는 기업가에 비해 훨씬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이를 잘 설명하여 준다.
그러나 진화가 어떤 국지적 정점에 처박히지 않고 계속 진행되기 위해서는 중간 혹은 높은 수준의 점프 시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진화를 위해서는 끈기 있게 일하는 관료도 필요하고, 무모하다 싶은 계획을 추진하는 과격한 기업가도 필요하다.
선택 : 통치자 대 시장
기업가, 관리자 그리고 관료 등이 연역적 추론을 통해 사업 계획들을 차별화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 문제는 그중에서 어떤 사업 계획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이다. 유사 이래로 인류는 두 가지의 경제적 선택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즉, 통치자와 시장이다.
초기 경제에서 선택의 과정은 명료하였다. 즉, 살아남는 것 자체가 바로 선택되는 것이었다. 만약 물리적 기술(예:활과 화살)과 사회적 기술(예: 사냥 모임)을 어떤 전략(예: 강변에서 영양을 사냥하기 위해)하에 결합하는 사업 계획에 성공하였다면 사냥하는 데 쓴 칼로리보다 사냥감으로부터 얻는 칼로리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이 남은 칼로리는 아이들을 먹인다든지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칼로리의 측면에서 수지맞았던 이 사업 계획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더 복제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산되어 다음 세대들이 채택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다른 사업 계획( 새총으로 들판에서 타조 사냥하는 계획)의 경우 칼로리 수익이 신통치 않았다면 다른 성공적인 계획에 자원을 점점 뺏기게 되고, 결국 그 사업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선택의 과정도 매개 단계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선택이 중요해지는 등 과거와 달라졌다. 진화적 선택과 사회 간의 마찰이 처음 일어난 것은 어느 날 통치자가 "이 기름진 옥토를 아무개(농사를 잘 짓는)에게 줄 게 아니라 나의 셋째 부인의 사촌(농사 못 짓기로 유명한)에게 주자" 라고 했을 때였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하는 문제.
불량 사업 계획(첩의 사촌의 사업 계획)을 우수한 사업 계획(아무개의 계획)보다 더 선호하는 의사 결정은 생존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만약 통치자가 이러한 결정을 과도하게 반복하면 부족이 망하거나 반란이 일어나 통치자가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생존의 단계를 넘어서면서, 특히 사회가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선택 과정의 사회적 왜곡은 그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더욱 심화되었다.
만약 한 부족이 대체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고 통치자의 실정, 부패 혹은 무능이 극심한 정도가 아니라면 부족이 얼마나 많은 손실을 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쟁은 이러한 상황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발동한다.
사업 계획의 선택 과정에 정치가 개입한다는 것은 진화의 과정을 지체시키는 것과 같다. 극한적인 상황에서는 추장, 왕, 독재자 그리고 다른 통치자들이 경제적 진화를 정지시키고, 국민들의 생존이 궁핍하나마 유지될 수만 있다면 그러한 진화의 정지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사업 계획의 선정에서 통치자(빅맨)가 개입하는 시스템의 문제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통치자는 적합도 함수 자체를 왜곡시킨다. 진화 알고리즘의 특징 중 하나가 어떠한 적합도 기준이 주어지든 거기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칼 심스가 수영에 대한 적합도를 기준으로 자신이 만든 인조 물체를 선택하였더니 수영을 잘하는 물체들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 그를 놀라게 하였다. 적합도의 기준을 대륙 횡단 능력으로 바꾸었더니 지느러미와 꼬리는 사라지고 다리와 뱀과 같은 몸통이 발달하였다. 엔지니어들이 반도체를 디자인하거나 소프트웨어나 신약을 개발하는데 인공적 진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 적합도 함수를 어떻게 구체화할지에 대해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적합도 함수가 잘못 설정되면 디자인도 잘못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에서 적합도의 기준은 그 사회 전체 경제적 부의 증진이 아니라 통치자의 부와 권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국민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 그리고 연역적 실험 능력은 온통 통치자를 즐겁게 하는 데 집중되기 마련이다.
통치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의 대안으로서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시장이다. 전통 경제학의 큰 업적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선택에 따라 적응하면 그것이 바로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복지를 향상시키게 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통치자 경제(통치자가 선택권을 가진 경제)에서 사업은 정치적 호불호에 따라 죽고 산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는 고객의 제품 선호도와 수요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통치자 경제에서는 통치자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쪽으로 자원 배분이 일어난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는 경제적 효율이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자원이 배분된다.
사실 역사상 모든 경제는 통치자 경제와 시장 경제의 혼합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통치자가 사업 계획의 성패를 결정하였고, 시장은 부차적인 혹은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여 왔다.
시장 경제에서 진화의 선택
통치자 경제에서 선택은 간단명료하지만 시장 경제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장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장이 사업 계획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 경제에서 빅맨 같은 계층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마르크스나 요즘의 반세계화 세력들이 주장하듯이 자본주의 사회에는 악덕 자본가도 있고 기업 총수도 있고 자기 잇속만 채우는 기업주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려면(자기 잇속만을 채우는 방식이라도) 자기의 사업 계획이 시장에서(따라서 사회로부터) 다른 대안들보다 선호되어야만 한다.
시장 경제의 사업 계획 선택 시스템은 두 단계로 작동한다. 대부분의 경제적 의사 결정은 계층 조직, 특히 기업 계층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기업 계층 조직의 맨 위에는 아주 얇지만 매우 중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기업의 계층 조직이 시장과 만나는 곳이다. 시장 경제는 진화를 위한 경쟁하는 기업 계층 조직으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여기서는 시장이라는 상황에서 차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거쳐 사업 계획이 선택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대기업 고위급 임원은 자기 사업부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사업 계획의 수정을 고려하고 있다. 그 첫 단계로서 그가 생각하는 일은 사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대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산 라인 A를 확장할 수도 있고, 새로운 서비스 B를 출시할 수도 있고, 생산비 절감 혹은 조직 개편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각 대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사업 계획서상의 특정 모듈들을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데 그 임원은 그의 모든 인지 능력을 동원할 것이다. 어떤 경우는 연역적 사고를 통해서, 어떤 대안은 유추나 다른 경험을(예: 전 회사에서 해보니 되더라는 등) 바탕으로, 어떤 경우는 모방을 통해(경쟁사가 이런 걸 했는데 성공하더라), 그리고 어떤 대안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도 있다( 영업부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좋은 아이디어 같다).
사업부의 책임자가 대안을 도출하면 그중 어떤 대안이 가장 좋은가에 대한 판단을 위해 고민한다. 대안을 대략 몇 개로 압축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가서 다시 추가적인 아이디어 도출과 시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동료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거나,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그것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그와 직원들은 대안을 다시 수정 보완하여 이들 대안에 대한 가상 시험을 해볼 것이다. 예를 들어, 실행 모델을 작성하고, 시험 가동을 해보고, 비용 분석을 하고, 판매 전망에 대한 연구 조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그러고 난 후에 각 대안은 각 관련 팀의 평가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그 대안들은 회사 본부의 고위급 임원 회의에서 토론과 평가 과정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을 사업 계획에 추가, 수정하게 된다. 사업 계획이 수정되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예산과 인력이 재분배되고 제품이 바뀌거나 영업 전략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 시장이 판단할 차례가 된다. 매상이 늘거나 줄 수도 있고, 이익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계획의 성공 여부에 대한 반응을 시장으로부터 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여기서 설명한 것처럼 가시적이고 정해진 형식을 따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안의 도출, 시험, 선택이라는 반복적 과정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안 선택은 여러 단계에서 일어난다. 즉, 개인의 사고 모델에서, 조직의 계층 구조 내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시장에서 선택이 이루어진다.
복제 : 성공의 확산
진화 알고리즘의 마지막 단계는 복제다.
생물계에서 출현 빈도라는 것이 축약된 기본적인 측정 단위라는 점. 몇 퍼센트의 개체들이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는가를 묻는 대신 동일하게 그 종의 생물 총량(어떤 환경 내에 현존하는 생물의 총수)에서 몇 퍼센트가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유전자 중심의 관점에서 본다면 후자가 더 사실에 근접하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한정된 화학 및 에너지 자원(생물 총량으로 측정한 것) 중 몇 퍼센트가 특정 유전자의 통제 혹은 영향을 받고 있는가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측정은 단절된 것이 아닌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업 계획 모듈은 복제된다기보다는 확산 내지 증폭된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특정 사업 계획 모듈이 자원에 미치는 영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진다면 그 사업 계획 모듈은 사업 계획 공간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는 선택에 대한 논의를 좀 바꾸어 어떻게 성공적인 사업 계획 모듈이 확산되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게 되는지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가상 사업 책임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 책임자는 자기 사업 계획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고려함으로서 자기가 성공할 것으로 믿는 모듈을 정하고 이를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그런 다음 그 모듈을 실행하면서 거기에 사람, 돈, 그리고 다른 자원을 투입한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그 모듈은 더욱 확산되고 가용 자원도 늘어나게 된다.
채택하지 않은 다른 10개의 대안은 자원을받지 못한 채 최소한 그의 사업부에서는 사멸되고 만다. 그 후 매출이 늘고 이윤이 증가하는 등 그의 사업 계획이 상당히 고무적인 초기 성과를 보였다고 하자. 회사 본부의 고위 임원들은 이에 감복하여 그와 같은 모듈을 채택하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돈 그리고 자원이 그 모듈을 실행하는 데 투입되어 그 모듈은 더욱 확산되는 것이다.
몇 달 후 그의 경쟁자가 사업 계획이 변한 것을 알고 이를 모방하면 이 모듈은 더욱 확산되어 다른 회사에서의 자원도 끌어들이게 된다. 그 모듈의 성공으로 이 두 회사가 성장하게 되면 은행이나 자본 시장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이 이들 회사로 모이게 되고 그 모듈의 영향은 더욱 확산된다. 결국, 그 사업 책임자는 그 모듈을 채택하지 않은 조그만 기업을 매입하기로 했다. 매입 목적은 그 모듈을 적용할 기회를 확대하고 그 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새로 매입한 기업에 그 모듈을 적용하면서 모듈의 영향은 더욱 확대된다. 즉, "복제를 잘하는 생물이 복제된다"는 생물학에서의 말과 같이 경제에서는 "확산을 잘하는 자가 확산된다"는 말이 성립된다.
경제적 진화의 핵심
사업 계획이라는 것은 그 내용을 식별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추진할 수 있는 지침서들이다. 이 지침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적으로 결합하여 사업 모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설명한다.
사업 계획의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시장의 몫이다.
결국 성공적인 모듈은 보다 많은 자원에 대한 영향력 확대로 보상을 받는다. 모듈의 성공은 두 단계에서 결정된다. 첫째, 사업 계획이 조직 내부에서 선택되는 단계로서, 이때 사업 계획의 실행을 위해 사람과 자원이 배분된다. 둘째는 모듈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성장하는 단계로서, 이때는 더 많은 자원이 고객과 자본 시장으로부터 흘러 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적자를 걸러 내는 과정이다.
진화의 선택 과정이 일어나면서 승자는 더 많은 자원을 향유하게 된다. 이러한 진화는 매우 동태적인 과정으로서 오늘의 승자가 내일도 승자가 된다는 법이 없다. 그래서 진화의 과정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새로운 모듈이 부침하면서 사업은 흥하거나 망한다. 그러면서 시장의 수요에 맞게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진화 알고리즘의 기본적인 구조 외에는 경제적 진화와 생물적 진화간에 특별한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생물의 진화에서 선택 단위는 세대 간의 '하향식 개량'이라는 패턴을 따르는 반면 경제적 진화에서는 제각기 다른 사업 계획을 두고 수평적인 선택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나 경제적 진화도 진화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며 다만 그 패턴이 다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두뇌를 활용하고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 인간이 개입되어 있는 경제 시스템에서의 적자 선별과 선정 과정이 생물계에서와 같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경우 다 진화의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다를게 없다.
더욱이 저자가 제시한 진화의 이론적 틀은 시장, 화폐, 사유 재산, 주식회사 혹은 문자와 같은 사회적 기술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떻게 도끼를 더 많은 고기와 교환할 것인가 하는 유인원 '해리'의 선택 과정이나 중국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한 다국적 대기업 임원의 선택 과정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시장 예찬의 또 다른 이유
전통 경제학자들이 모두 의견을 같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의 우월성이다. 물론 시장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시장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 효율성에서 이를 따를 시스템은 없다. 이러한 결론은 지금도 글로벌 자본주의의 핵심 논거가 되고 있다. 진화론적인 경제관도 시장이 우월하다는 데는 다름이 없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다르다.
전통 경제학은 시장이 균형 상태에서 사회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 대로 문제는 현실에서 균형 상태는 달성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통 경제학의 균형 조건에 대한 가정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를 근거로 시장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논리 구조를 따르면 시장을 진화를 위한 탐색 메커니즘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장은 사업 계획의 선별을 위한 '연역적 추론'이 일어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은 사회 구성원의 광범위한 수요를 반영하는 적합도 함수와 선택 과정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시장은 선택된 사업 계획으로 자원을 몰아 주어 승자는 더욱 번성하게 하고 패자는 도태시키는 역할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시장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오겔의 제2법칙', 즉 "진화는 당신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통치자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지적이고 자비롭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적합도 지형에서 적합도가 가장 높은 정점을 찾아가는 데는 진화의 알고리즘을 당할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이 명령, 통제보다 우월한 것은 시장이 균형 상태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불균형 상태에서 기술 혁신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들 역시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이 효율적이며 통치자에 의한 배분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본다. 그러나 전통 경제학자들은 균형 상태에서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라고 보는 반면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효율성을 상대적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완벽한 효율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는 실제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존재한다 하더라도 시장의 불균형성 때문에 그러한 효율적인 상태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동차 엔진이 열역학적으로 100% 효율적일 수 없듯이 시장 역시 완벽하게 효율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이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신화 같은 전체적인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분산 처리 시스템과 같은 시장의 계산 능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은 여러 가지 신호 중에서 적합한 신호를 적합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자유로운 시장들은 역사적으로 혁신 제조기였다.
대부분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혁신은 시장 경제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 경제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소득 격차, 환경 파괴, 보건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들 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가 국민을 반드시 행복하게 한다는 증거도 없다. 피폐해진 통치자 경제도 똑같은 문제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시장경제보다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 배분은 부진하고, 기술 혁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이 통치자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경제 체제의 이행은 사회적 변화를 강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복잡계 이론은 시장의 혁신 및 성장 촉진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인생의 본질은 무한히, 그리고 오묘하게 다양하다. 따라서 어떠한 중앙 정보 체제를 통해서도 이를 통제하거나 계획할 수 없다."
메타 혁신 : 다시 보는 1750년
인류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은 1750년경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폭발적인 부의 증가와 경제의 복잡성 증대다. 이 기간 중 일어난 일련의 사회적 기술의 혁신은 경제적 진화 자체를 엄청나게 가속화시켰다.
첫 번째 메타 혁신은 과학 혁명, 두 번째 메타 혁신은 시장의 조직화와 함께 일어났다. 이러한 진화의 핵심 동인으로는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발전과 미국 혁명을 들 수 있다.
1690년에 이르러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 변보 하였고 이때 국가 재정권이 의회로 넘어갔고 통화 관리를 위해 영국 중앙은행이 설치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 동안 법치주의의 정착과 사유 재산권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제도도 도입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기술의 본질적인 변화는 그 후 수 세기에 걸친 사회 변화, 즉 봉건적, 계급적, 통치자 중심의 사회로부터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였고, 이에 따라 상인 계급의 부상, 경쟁적인 민간 부문의 성장, 자본 시장의 출현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1776년(애덤 스미스 명저가 나온 해) 시작된 미국 혁명은 시장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두 번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국가 미국은 이미 한 세기의 경제적 자유를 경험하였고 1인 통치가 불가능한 평등한 대중적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미국에는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미 미국은 자유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18세기 말 미국, 영국 그리고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는 시장 경제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기술이 터를 잡았다. 그러나 아직 시장 경제라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은행 제도는 매우 원시적인 단계에 있었고 주식회사 제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 계획의 선택 과정에서 통치자의 자리는 사라지고 기업가 정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또한 이 지역에서 과학도 뿌리를 튼튼히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이 산업 혁명의 중심지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를 통해 과학은 엄청난 물리적 기술을 창출하였고, 시장은 이러한 기술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사업 계획의 진화를 촉진하였다.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사업 계획 혁신 간의 선순환이 일어나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대한 경제 발전 시대를 열었다.
14. 부의 새로운 정의 : 적합한 질서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라는 칭송을 받았던 뢰겐은 기존의 경제 이론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학계의 이단아로 돌변했다. 그는 진화적 이론 및 물리학을 통해 전통적 경제학의 오류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으며, 그 결과 1971년 <엔트로피와 경제>를 발표했다.
이번 장을 통해 우리는 뢰겐이 시대를 앞선 경제학자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열역학 법칙과 경제 과정의 기본적 원리는 다음과 같다. 경제 활동은 본질적으로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며, 진화란 질서가 창조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점검해 보고 현재의 과학과 결부시키는 한편, 앞 장에서 본 진화 모델들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최종 목적지, 즉 부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계의 괴짜들과 허풍쟁이들
뢰겐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인체 내의 유전자를 통해 천천히 이루어지지만, 외부적으로는 문화를 통해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화의 진화 속에서 기존 경제학의 오류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고자 했던 경제학자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케네스 볼딩 등이 있다. 그러나 뢰겐은 진화론과 열역학 이론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등 과학과 경제 이론을 접목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는 궁극적으로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대로 두면 세계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화하는 것이다. 만약 열린 시스템에 에너지를 주입할 경우,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엔트로피에 맞서 싸울 수 있고, 그 결과 우주의 일부분에서는 질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열린 시스템 내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모두 열과 노폐물의 형태로 엔트로피를 우주 밖으로 배출시켜야 한다. 따라서 우주의 총 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또한 열린 시스템이 엔트로피와 맞서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 만약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질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고 시스템은 점차 쇠퇴하여 사라지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근본적으로 생물계에 진화를 가져왔다. 열역학적 관점에서 유기체란 고도의 질서를 가진 분자들의 집합체이다.모든 유기체들은 외부의 무질서에 대항하여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포막, 피부, 내관 등 다양한 형태의 방어막을 갖는다. 이와 같이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유기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다.
경계 내부의 분자들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예기치 못한 일부 분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유기체 내부에서 특정한 화학적 패턴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돌연변이 분자들이 자연스레 하나의 완벽한 박테리아로 결합될 가능성이 극히 낮은 경우와 같다.
따라서 모든 유기체는 복잡한 내부 질서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되며, 엔트로피는 열과 노폐물을 통해 우주로 배출된다. 이러한 과정이 중단되면 유기체의 분자들은 무질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를 가리켜 열역학 제2법칙에서는 열역학적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모든 생명체에 기본적인 제약을 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 투입량이 에너지 소모량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유기체들은 생존과 재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 열역학적 '이익'을 창출해 내야만 한다. 각 유기체들은 열역학적 이익을 통해 생존과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전략적으로 디자인되었다.
물론 질서 창출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나무등과 같은 식물은 땅, 물, 햇빛을 두고 경쟁할 것이며, 동물들은 먹이 사슬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습득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경쟁적이며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생물들은 열역학적 이익을 얻기 위해 30억여 년 동안 진화를 지속하여 왔다.
뢰겐은 <엔트로피와 경제>에서 생물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경제 과정 역시 본질적으로 고엔트로피에서 저엔트로피로의 변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신고전주의 이론은 열역학적 제약을 인정하지 않는 등 물리적 법칙을 사실상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고전주의가 말하는 생산 함수는 "환각에 의한 속임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뢰겐이 내린 결론 중 하나는 경제가 엔트로피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오염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경제학사에서 잊힌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경제학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경제학에서 엔트로피와 에너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폴 새뮤얼슨은 1970년 그의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엔트로피와 에너지에 상응하는 표현을 찾는 따분한 논문을 얼마나 심사해야 했는가?" 1972년 논문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물리학의 엔트로피에 상응하는 개념을 사회 시스템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사회과학계의 괴짜이거나 설익은 학자가 하는 짓이다."
그러나 뢰겐은 괴짜가 아니었으며 경제학의 엔트로피 개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앞서 3장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경제 시스템이 실물 세계에 존재하는 만큼 우주 내의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제안 : 가치 창조를 위한 세 가지 조건
뢰겐은 진화를 거듭하는 복잡한 시스템인 경제와 우리의 숙제인 부의 기원을 근본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세 가지의 중요한 관찰을 했다.
첫째, 그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불가역적이라고 했다. 경제 시스템에서 시간이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화살과 같다.
둘째, 그는 "의복, 목재, 도자기, 구리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물질들이 고도의 질서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경제적으로 누리는 모든 것들은 1차적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이용하고 있음이 증명된다"고 하였다. 경제 과정은 에너지 소비를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질서를 가지고 있는 1차적인 물질과 정보를 보다 높은 질서를 가진 상품이나 서비스로 변환시키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셋째, 상품과 서비스를 창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와 같으나, 모든 질서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뢰겐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는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정확한 조건을 말해 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공식적인 용어로 G-R 조건이라 부르자.
물체, 에너지, 그리고 정보 등의 어떤 패턴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때에만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 불가역성 :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전환 혹은 거래는 열역학적으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 엔트로피 :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전환 혹은 거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는 국지적으로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반면,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를 증가 시킨다.
- 적합도 :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전환 혹은 거래는 인간의 목적에 적합한 인공제(제품 등)나 행동을 만들어 낸다.
불가역성 : 계란을 깨 오믈렛을 만든다
우리는 사업을 가리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재료, 에너지, 정보 등을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시키는 사람이나 조직화된 공동체"라고 정의 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물리적, 사회적 기술을 변환 개념으로 정의했다. 어떠한 물체를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시키는 것은 열역학적 개념이다.
우리의 삶과 경제 현상을 거시적으로 볼 때, 현재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우리의 머리는 본능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에너지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질서의 창조는 저절로 일어날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깨진 유리병을 다시 붙이고 우유를 채워 넣어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놓는다면, 이는 누군가가 시스템에 에너지를 부여하여 질서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역성은 엔트로피 및 질서 창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연관성은 확률 법칙을 통해 일어난다. 질서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분자의 돌발적인 움직임을 통해 사물의 상태가 변할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묻는 것이다.
질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 나노봇이 그 일을 하게 하려면 에너지를 주입해야만 하며, 나노봇은 일의 대가로 열을 방출한다. 따라서 컵 안의 엔트로피는 점차 감소하겠지만, 컵 주변을 둘러싼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셈이다.
뢰겐이 주장하는 본질은 만약 우주가 열역학 제2법칙을 피할 수 없다면 경제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다. 변환 과정을 포함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여러 과정들은 열역학적으로 불가역적이다. 이는 가치 창조 과정을 역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기 보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거나 원 상태로 돌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예시로 이야기.
1982년 물리학자 찰스 베넷은 가역적 컴퓨터(열역학적 손실 없이도 양 방향으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한 기계)가 이론적으로 가능함을 입증해 보였다. 이러한 가역적 컴퓨터가 존재하려면 무한한 용량의 메모리가 필요하다. 메모리 용량이 한정된 컴퓨터가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보를 삭제해야만 하는데, 이는 불가역적 과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경제(경제 역시 우주의 하부 조직에 불과할 뿐 우주 그 자체는 아니다)에 유한한 한계가 있는 한, 뢰겐의 이론은 안전하며 앞서 제시된 경제적 불가역성의 조건 역시 위배되지 않는다.
경제적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뿐만 아니라 거래를 통해서도 얻어질 수 있다. 교환은 사람들의 선호도 차이에서 일어나고, 무역은 사람들의 선호도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한다. 가치 창조적 생산이 불가역적인 것처럼, 가치 창조적 거래 역시 불가역적이다.
불가역성은 가치 창조의 필수 요소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가치가 파괴되는 불가역적인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허리케인, 폭발, 무능한 관리 팀 등은 모두 가치를 파괴시키는 동시에 에너지를 역전시킨다. 첫 번째 G-R 조건에 따라 시간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일방성을 갖지만, 우리는 변환 및 거래가 가치를 창조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엔트로피라는 두 번째 조건을 필요로 한다.
엔트로피의 감소 : 분홍색 자동차와 폭탄은 가치를 창조하는가?
두 번째 G-R 조건,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경제적 변환 혹은 거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국지적으로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반면,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창문제 돌을 던지는 것과 창문을 수리하는 것의 확연한 차이점을 설명해 준다.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은 어떠한 과정이든 불가역적이어야만 하고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야만 한다.
대부분의 경제적 변환은 엔트로피를 분명히 감소시킨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경제적 변환은 존재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건물을 붕괴시키는 행위가 가치를 파괴시키는 변환은 아닐까? 군대용 폭탄을 제조하는 것은 또 어떨까?
건물을 붕괴하는 행위는 가치 창조의 중간 단계일 뿐 그 자체로 변환이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창조 과정의 중간 단계로서 파괴 역할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도 존재한다. 신체가 세포 및 조직 내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면 우선 소화기 조직들이 음식 속에 정리된 화학 요소들과 에너지들을 잘게 분해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폭탄의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폭탄을 제조하는 행위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고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다(값을 치르고 폭탄을 구입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증거다). 그러나 폭탄을 사용하여 적의 자산 등을 폭파시키게 되면, 이는 적과 관련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 행위는 경제적 가치를 창조한다기보다는 파괴하는 것에 가깝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가 된다.
미시간주 앤아버의 차들을 모두 분홍색으로 칠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행동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일은 엔트로피를 감소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결과는 가능성이 낮은 가치를 위해 에너지를 쓴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가 실질적으로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모든 차를 분홍색으로 칠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를 분홍색으로 칠하는 행위는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일까, 아니면 정보를 파괴하는 행위일까?
이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질서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질서와 무질서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질서의 상대적 특성은 열역학 이론에서는 잘 알려진 이슈다.
당신은 마술사와 마찬가지로 확률로 카드를 뒤섞어서 어떤 특정한 하나의 상태로 만든다. 우리는 똑같은 가능성을 가진 수많은 카드 배열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였을 뿐이며, 카드에 명기된 숫자와 그림에 임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는 이를 가리켜 "질서가 있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무엇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낮은 엔트로피가 필수적이지만, 어떠한 종류의 질서가 가치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다소 주관적인 문제다. 따라서 두 번째 G-R 조건 역시 가치 창조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적합도1 : 선호도에 관한 진화적 관점
불가역성과 질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가치 창조와 연결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특정 질서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전통 경제학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사람들은 각각의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가 논리적인 순서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선호를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자.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사람들의 선호가 무엇인지 미리 알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거래하고 소비함에 따라 저절로 나오게 돼 있다. 그리고 이 선호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부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그게 무엇이든지 각자가 선호하는 질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좀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행위들이 선호라는 수수께끼 같은 상자 안에 숨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제 그 상자를 살짝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고, 그 상자를 진화의 이론적 틀과 연결시켜 보자. 우리는 어떠한 일을 왜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우리는 근사한 저녁, 새 옷들, 열대 섬으로의 여행, 빨간색 스포츠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더 선호하는 걸까?
선호는 심리적 현상이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물질적 욕구가 자아의 동물적 충동에서 비롯되지만, 초자아에 의해 지속적으로 검열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제적 선호는 "나는 저 비싼 자동차를 지금 갖고 싶어!"와 "그러나 향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지금은 저축을 해야만 해" 사이의 투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스키너는 선호는 본래 배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리가 고가의 자동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고가의 자동차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며, 자동차 제조사들이 설득력 있는 마케팅 문구로 우리를 현혹하여 고가 자동차를 구입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경 매슬로는 중간쯤에 해당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인간이 음식, 물, 섹스, 안식처, 잠 등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에서부터 자기 존중과 사회적 존경 등의 보다 고차원적 욕구에 이르기까지 욕구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미 음식과 보금자리 등에 대한 욕구가 해결된 중산층 가정의 사람들은 고급 자동차나 옷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싶어 하게 된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자기완성'이다. 백만장자가 되어 모든 것을 가지게 되면, 사람들은 물질 우선주의를 접어 두고 선행을 하거나, 자신을 찾기 위해 티베트로 향하거나, 뜨거운 욕조에 누워 삶의 의미를 음미하려 할 것이다.
비록 매슬로가 우리의 욕구를 유용한 구조로 조직화하여 설명했지만, 그의 이론도 이러한 욕구가 어디에서 오는지, 왜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다른 제품보다 선호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에는 해답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최근의 진화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 뇌 속의 유전자가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생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후세대에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의 행위 대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10만 년에서 5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남고 또 후손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행위 대부분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를 '조상 환경'이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수렵,채집민 생활 방식의 진화된 흔적이 근대 경제의 선호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이 소비 지출의 약 90%가 다음의 7가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주거(총지출의 32%)
- 교통 운송(총지출의 20%)
- 음식(총지출의 14%)
- 생명 보험과 연금(총지출의 9%)
- 건강 관리(총지출의 5%)
- 의복(총지출의 5%)
- 오락, 미디어, 통신(총지출의 5%) : 심지어 우리가 놀이라고 정의하는 것들조차 진화적 이익과 관계가 있다.
적합도2 : 즐거움의 단추를 누르는 것
과거에서부터 생존과 번식 능력의 증대에 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 우리의 필요, 욕망, 감정 등과도 부합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오늘날의 소비 사회에서 무엇을 왜 원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지출하는 이유는 진화적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왜 그림을 구입하거나 음악을 듣기위해 돈을 지출하려고 하는 걸까? 역사를 통틀어 예술을 후원하는 일에 가장 열심이었던 이들은 부유층이었다.
예술에 대한 갈망은 우리 조상 환경의 진화적 이점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답은 "연관성이 없다"이다.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진화론에서 예술은 '굴절 적응'이라고 일컬어지며, 이는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시킨 무언가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장면, 매력적인 얼굴, 듣기 좋은 음악 소리 등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본디 다른 목적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물, 높은 곳의 대지,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등이 펼쳐진 그림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심미학만큼이나 과거 조상 환경에서의 생존 방식과도 많은 연관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음과 다산을 가능케 하는 건강함의 상징인 대칭적인 얼굴을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여긴다.
핑커는 예술을 가리켜 '정신적 치즈 케이크'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영혼은 조상 환경에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기쁨과 고통의 단추를 진화시켜 왔으며, 그 단추들은 인간들의 생존과 번식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우수한 두뇌와 재주 있는 손을 가진 인간들은 후천적 방법을 통해 맥도날드에서 고급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포르노그래피에서 수준 높은 예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신적 즐거움의 단추를 누르는 법(그리고 고통의 단추를 피하는 법)을 체득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적으로 64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사람들은 왜 서로 비슷한 선호도를 나타내는 걸까? 진화심리학자들에게 그 이유는 명백하다. 달콤한 음료, 지위를 표시하는 물품, 섹시한 외모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진화해 온 정신적 즐거움의 단추를 누르게 만든다. 진화심리학을 경제적 선호도 및 소비자 행동에 관한 연구에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다소 추론에 의존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특정 질서가 왜 다른 질서에 비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다시 경제적 진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의 선호가 진화할수록 사업 계획의 진화에도 적합도의 제약이 가해짐을 알 수 있다. 사업 계획과 선호는 공진화를 한다. 이를 가리켜 진화론자들은 '틈새구성'이라고 했다. 유기체는 진화하면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주변 환경도 함께 진화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면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는 반면 호기성 동물들은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유기체들이 오랫동안 함께 진화해 오면서 원생대에 단 1%의 산소만을 함유하고 있던 대기의 성질이 오늘날에는 21%의 산소를 함유하게 되는 등 미래 진화에 대한 이른바 적합도의 제약을 가하고 있다.
경제학의 영역에는 필요와 기호(또는 취미)의 공진화,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진화하는 사업 계획이 있다. 예를 들면 청력은 태초에는 생존의 도구로 진화하였고, 사방의 포식자들을 경계하기 위해 주변의 유용한 소리들을 알아챌 수 있도록 진화하였으며, 이는 인간이 언어 능력을 습득하게 됨에 따라 더욱 진화하였다.
즉 MP3 플레이어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앞서 묘사했던 이유들로 인해 인간은 음악에 대한 기호를 발전시켜 왔으며, 그 이후로 이러한 고객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업 계획서 역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우리의 선호도가 사업 계획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사업 계획의 발전 역시 우리의 선호도를 촉진시킨 셈이다.
보편적 효용 함수
3가지 G-R 조건(비가역성, 엔트로피, 적합도)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경제 활동은 본질적으로 질서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무질서와 임의의 세계가 마주치게 되면 인간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주변 환경을 우호적이고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등의 질서 복구를 위한 노력에 사용하게 된다. 우리는 에너지, 물질, 정보 등을 우리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변환시키면서 주변 환경의 질서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진화적으로 우수한 기술들을 발견해 왔는데 특히 협력, 특화, 거래 등을 통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욱 많은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질서를 창조하려고 바쁘게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일까? 왜 그래야만 할까?
당시 뢰겐은 모든 질서 창조적 행위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며 다소 추상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과거 벤담의 효용에 관한 정의에 귀결된다. 뢰겐은 '영혼의 흐름'이라는 신비한 영기가 지속적으로 인간의 몸에 흐르고 있으며 이는 그때의 즉각적인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고 주장했다. 뢰겐은 이를 진화적 용어로, 모든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우리의 모든 행위의 적합도 함수가 인간의 개인적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이제부터는 덜 추상적이면서도 보다 과학적 근거를 갖춘 대안을 다룰 예정인 만큼, 그와 작별을 고한다. 진화생물학 이론에 따르면 범용적으로 유용한 기능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 즉 유전자 복제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유전자는 그들 자신을 복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인체를 구성한다. 복잡하고 협력적인 사회 환경에서 살아가고 도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체 중 뇌 부분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것 또한 유전자 전략 중 일부이다.
뇌는 자신을 형성하는 유전자들을 복제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그 결과, 뇌는 오늘날 과거 조상 환경의 생존, 짝짓기, 자녀 양육 등과 일치하는 목적, 선호도, 욕구 등을 발달시켰다. 우리는 이러한 목표, 선호도, 욕구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두뇌를 이용하여 환경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진화는 우리의 행복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우리를 행복한 상태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목표, 선호도, 욕구 등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진화를 통해 우리에게 제공되는 것은 단지 조상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사용되었던 전략들이 전부다.
진화는 현대 생활의 한 가지 의문점만은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가?" 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행복의 원인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왔다. 그들은 행복의 약 50%가 강력한 유전적 연관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과학자들이 뇌에서 행복을 관장하는 강력한 생화확적 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감안하면 유전학이 개개인의 뇌의 화학 작용에 따른 상대적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카너먼과 그의 동료들은 연구를 통해 결혼, 사회적 관계, 고용, 사회적 지위, 물리적 환경 등 모든 요소들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진화적 관점에서 다시 표현하자면 배우자, 사회적 결속, 높은 지위, 편안한 환경 등을 소유하는 것이 -조상 환경에서 유전자의 성공적인 복제를 가능토록 했던 중요한 요인들- 뇌에서 '행복'의 화학 물질을 배출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부의 절대적 단위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선형적인 관계는 아니다. 가난하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가 일단 충족되고 나면 부와 행복 간의 상호 관계는 현저하게 평등해진다. 이 시점을 지나면 사람들은 부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관점으로 보려는 경향이 생긴다. 부의 증가,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부의 증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기존에 느끼던 만큼의 행복을 느낄 뿐이다.
부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진화적으로 타당하다. 경쟁 사회에서 투쟁하고, 부를 축적하고, 쉬지 않고, 결코 만족하지 않는 유전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유전자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한번 상상해 보라. 탐욕은 자신과 주변인 모두의 행복에 좋을 것이 없지만, 적당한 욕심은 역사적으로 유전자 복제에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
부는 적합한 질서다
모든 부는 열역학적으로 불가역적이고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부를 창출하는 행위는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이지만, 질서를 창조하는 모든 행위가 부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조직, 시장 등은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질서를 추구하는 사업 계획을 개발해 낸다. 시장은 제안을 하고 소비자는 소비를 한다. 이들은 오늘날의 필요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요구와 선호도를 충족시키는 질서 형태를 선호하지만 그 역사적 뿌리는 유전자의 보편적인 효용 함수에 있다.
부는 반엔트로피의 형태다. 부는 질서의 한 형태이기는 하나 다른 질서와는 다르다. 부는 적합한 질서이다. 상품과 서비스의 형태를 띤 경제적 질서의 패턴들은 소비자들의 필요, 욕구, 심지어 갈망 등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우리는 경험과 선례를 참고하여 우리의 선호도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경제적 질서의 패턴을 적합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적합한 경제적 질서를 창조하는데 기여한 사업 계획 모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폭된다. 종과 환경이 공진화하듯이, 사업 계획과 소비자 선호도의 경쟁적 생태계 또한 공진화하면서 오늘날의 적합한 질서가 미래에도 적합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 적합도를 중요한 개념으로 만들었다.
적합한 질서로서의 부의 개념을 전통 경제학의 경제적 가치 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무한한 가치는 공급 측면에 있으며 가치는 생산 요소들로부터 파생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캉티용은 가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한정된 땅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며,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가치의 궁극적인 원천이라고 보았다. 리카르도는 노동 못지않게 자본도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제번스와 한계 효용주의자들에 따르면 가치는 수요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들은 가치란 한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상대적 효용의 차이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신고전주의 이론은 두 관점을 모두 수용하였다. 즉, 한정된 생산 요소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소비자의 개별적 선호도를 충족시키게 되며, 가치는 간단히 말해 두 사람이 거래를 통해 서로 얻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는 가치 역시 공급과 수요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낮은 엔트로피를 가진 사물이 경제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당연하게도 낮은 엔트로피를 지닌 사물은 흔치 않으며 이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 물질, 정보 등이 요구된다.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우리의 선호도에 따라 경쟁 중인 두 개 이상의 제품 및 서비스의 상대적 매력도가 결정된다.
전통적 경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측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만나게 되며, 사업 계획은 개인적 선호도와 부족한 질서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화폐는 이러한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부와 생물학적 부는 은유적으로뿐만 아니라 열역학적으로도 같은 종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낮은 엔트로피 시스템들이며 적합도 함수의 제약하에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해 온 질서의 패턴들이다. 두 경우 모두 적합한 질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경제의 적합도 함수(기호 및 선호도)는 생물학적 세계의 적합도 함수(유전자 복제)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제는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복제 전략이다." 이는 표범의 위장 무늬, 박쥐의 레이더, 초파리의 눈 등과 같은 또 하나의 진화적으로 우수한 기술이다. 경제는 우수한 두뇌, 도구를 만드는 재주 좋은 손, 협력적 성향, 언어, 문화 등의 복잡하고 뛰어난 기술에 근거하여 형성된 엄청나게 복잡하고 뛰어난 기술이다.
물리학에서 질서란 정보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부를 가리켜 적합한 정보, 달리 말하면 지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보란 그 자체로는 효용이 없다. 반면 지식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특정한 목적에 부합될 수 있는 유용한 정보이다.
부의 기원은 바로 지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복잡계 경제학적 관점은 지식을 가설, 외적 주입, 경제학 경계 밖의 이해할 수 없는 과정으로 취급하기보다 경제학 내부의 가장 중심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진화는 지식을 창출하는 기계, 즉 학습 알고리즘이다. 생물학적 세계의 고유한 디자인들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지식들을 생각해 보자. 메뚜기는 공학적으로 경이로운 생물체이며 물리학, 화학, 생물역학의 지식(현재 인간이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지식)의 창고이다. 메뚜기는 또한 그가 진화한 환경, 주된 먹이, 경계의 대상이었던 천적, 이성을 유혹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 효과적 번식 방법 등의 지식에 대한 일종의 스냅 사진이다. 메뚜기 한 마리에 내포된 지식은 테라바이트에 달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생물권 전체에 내포된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방대함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질서와 복잡성, 모든 지식들은 가장 단순한 알고리즘, 다시 말해 차별화, 선택, 복제, 그리고 이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조합된 것들이다.
우리는 이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부는 지식이며, 부의 기원은 바로 진화다.
우리는 시험을 통과했을까?
부의 창조를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일정 수의 사람들과 천연자원이 있는 자연 상태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엔트로피의 감소와 복잡성, 조직, 다양성, 부의 증가를 보여 줄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불연속적이고, 폭발적이며, 소위 단속 균형 패턴을 보이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 말이다. 또한 외부에서 핵심 동력을 끌어오지 않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도 최소한의 가설만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다른 과학 이론들과도 일치해야 하고,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은 엄청난 질서를 요구하는 일이며 이러한 이론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종합적 이론의 가능성을 점쳐 보았다.
유일한 외생적 요소들은 에너지 및 물질의 물리적 주입과 열과 노폐물의 배출이다. 그리고 유일한 외생적 동력은 연역적 추론을 하는 인간 두뇌의 성장, 언어의 발달, 기초적인 선호도의 진화 등 생물학적인 것들이다. 일단 갖추어지고 나면,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이라는 세 공간들을 통한 탐색이 시작되고 이것이 계속 진행되면서 서로에게 동력을 부여하는 등 공진화를 하고, 새로운 발견이 일어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
이 세 디자인 공간을 통해 점진적인 1차적 발달 패턴 발생을 볼 수 있는데, 기간에 따라 변화의 속도에 차이가 나는 단속 패턴이 나타난다. 그러나 엔트로피 감소, 복잡성과 다양성을 향한 추세가 가속화하고 이에 따라 부가 크게 증가한다.
진화는 수백만 개의 작은 사건 사고들이 누적된 결과이다. 역사상의 아주 작은 변화라도 미래의 결과상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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