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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07편

요약

공통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 관점에서 현재만이 존재한다. 각자의 현재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허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이다.

세상에는 변화가 있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들에는 시간 구조가 있다.

 

 

 

 

 

 

 

07 문법의 부적당함

보통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사물들을 '실재'한다고 한다. 과거나 미래의 사물들은 실제로 '있었다'라거나 실제로 '있을 것이다'라고 하지, 실제로 '있다'고 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현재만 실제이고 과거와 미래는 실제가 아니며, '실재성'이 현재에서 그다음 현재로 연속적으로 진행한다고 보는 생각을 '현재주의'라 부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는데, '현재'가 전체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우리 인근 주변에서만 근사적인 방식으로 규정되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의 현재가 규정되지 않으면 이 우주 속에서 '실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주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이 그림에서는 '현재'와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제의 '지금'일까?

객관적이고 범세계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대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움직이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보는 현재이다. 그런데 이 경우 나에게 실제인 것과 여러분에게 실제인 것이 다르다. 우리는 객관적인 의미로 '실제'라는 표현을 되도록 쓰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현재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이 우주를 통일된 단 하나의 시간 순으로 정리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러 변화들이 단일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되지 않을 뿐이다. 세상의 시간 구조는 순간들이 단일한 선형 형태로 연속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허상이 아니다. 이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다.  그러나 세상의 일시적 구조가 현재주의의 시간 구조는 아니다. 사건들의 시간적 관계는 우리가 예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적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친밀 관계가 세계의 질서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허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한 줄로 놓여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관계도 없는 게 아니다. 변화와 사건은 허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하나의 세계적인 질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실재'일까? 무엇이 '존재'할까? 이 질문은 '모든 것을 뜻할 수도 아무것도 뜻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잘못된 질문'이다. 왜냐면 '실제'라는 형용사의 의미가 애매해 수많은 뜻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돌, 국가, 전쟁, 신, 위대한 사랑, 숫자 등 이 실체들 모두 다른 실체들과 서로 다른 의미로 '존재'하고 '실재'한다. 보통 '무엇이 존재하는지', 혹은 '무엇이 실재인지'를 묻는 것은 동사와 형용사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은지를 묻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문법적인 질문이지 자연에 관한 질문은 아니다.

 

문법은 우리의 한정된 경험에 의해 만들어졌고, 점점 거대한 이 세상의 풍부한 구조를 포착하면서 이러한 문법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의 혼란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는데, 이는 우리의 언어 문법이 부분적으로만 적절한 '과거-현재-미래'의 절대적 구분으로 조직되어 있는 데서 기인한다. 현실의 구조는 이러한 문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지구는 공 모양이고 '위'와 '아래'의 의미가 이곳과 저곳에서 서로 다르다는 새로운 발견에 일치시키려 싸우고 있었다. '위'와 '아래'는 통합된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과거'와 '미래'의 의미가 보편적이지 않고 이곳과 저곳에서 달라진다는 새로운 발견에 합치시키려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세상에는 변화가 있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들에는 시간 구조가 있다. 이 시간 구조는 환상이 아닌 어떤 것이다. 단일한 세계 질서로 설명될 수 없는 지역적이고 복합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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