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편향
Chapter 4 무엇이 믿음을 통제하는가
생각과 정보도 믿음이 형성한 패턴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그 길을 더 깊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대개 무의식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은 개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경험은 서로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경험은 고유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믿음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믿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 선상에 놓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동일시한다. 따라서 믿음을 위협하는 것은 곧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면 믿음을 보호해야 한다.
같은 경험을 해도 모두가 다르게 해석하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감각을 통해 흘러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현실을 구성해낸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 정보는 주의를 기울일 만한 정보를 선택하고 정리해 의미를 부여하는 복잡한 정신 과정에서 이미 선별 처리된 정보다. 경험, 가정환경, 교육 수준, 문화, 규범 등 모든 것이 우리가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사건을 다르게 바라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 증거를 본능적으로 찾아낸다.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증거를 마련한다.
믿음이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라고 생각해보자. 편견은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이 필터에 통과시킨다. 인간은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모순되는 정보는 거부하는 독특한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을 가리켜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믿음을 보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므로, 믿음의 방어기제를 장려하는 신경학적 기능이 개발된 것이다.
<죽어도 안 믿어>에서 이러한 편향에는 생리학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책에서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처리할 때는 도파민이 분출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우리가 틀렸다고 해도 믿음을 고수할 때는 기분이 좋다."
인지편향은 복잡한 세상에서 믿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놀라운 방어기제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것들이 비합리적이거나 파괴적이거나 명백하게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성향에 빠져들기 쉽다.
믿음은 고유함을 만들고, 편향은 고유함을 유지시킨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학생과 반대 하는 학생을 반반 모집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두 가지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학생들은 연구가 거짓으로 날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 연구는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제공했고, 또 다른 연구는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이터를 제공했다. 두 연구 모두 동등하게 설득력 있는 통계를 제시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학생들은 범죄 억제 효과가 높다는 데이터의 신뢰성은 매우 높지만, 범죄 억제 효과가 미미하다는 데이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완전히 반대로 평가했다. 실험이 끝난 후 연구진은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기존 의견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효과를 '역화 효과'라고 명명했다. 역화 효과는 믿음과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가 눈을 멀게 할 때 발생하는데, 새로운 정보는 기존 견해를 약화하기보다는 역으로 강화한다. 또 다른 연구팀은 MRI로 실험 참가자의 뇌를 촬영했다. 연구진은 강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실험 참가자에게 반론을 제시했고, 정치적 신념이 틀릴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을 때 신체적 위협에 대응할 때와 동일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반박하는 근거를 마주할 때, 뇌는 자동을 투쟁-도피 반응을 보이고 몸은 자신을 보호할 준비를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데이터를 완벽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석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연구 결과일지라도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여긴다. 예로 백신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한 연구는 곧바로 반론이 나왔는데도 오랫동안 인용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엄정한 기준을 충족한 연구 결과일지라도 믿고 싶은 것과 반대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후 변화, 평평한 지구, 인류는 달에 간적이 없다. 와 같은 현상.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위협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함으로써 믿고 싶은 현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는 수없이 많다. 자신이 지지하는 성향의 뉴스만 보는 등.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확증하는 정보만 선택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정보를 잊는 데 매우 능숙하다.
'정보 회피'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사례는 정보를 획득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정보 회피 전략을 구사한다. 우리는 이전에 학습된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차단하고, 현재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선별된 정보와 대화만을 받아들인다. 개인적인 철학이나 경험과 일치하는 정보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현재 자기 행동과 믿음을 정당화하는 정보만 선별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정보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증해주는 정보를 원한다. 과학자들조차 편견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도 자기합리화를 한다.
자신의 뒤통수를 보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확증편향 역시 알아차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매우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확증편향은 직립보행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증거로 이 결론에 다다랐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음이 먼저고 증거는 나중이다. 우리가 지닌 세계관은 개인적인 관점과 역사와 경험 그리고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이 합쳐져 형성된 한 가지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적 편향 감지하기
"설탕과 과잉행동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을까, 없을까?"
먼저 어느쪽이 맞는지 생각을 해본다음 아래 글을 읽을것.
연구 1 : 실험적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1986)
"상관관계 연구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설탕 섭취는 부적절한 행동의 비율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식이요법에 관한 연구 결과는 일관성이 없고 결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설탕 섭취와 관련된 결과를 발견하지 못했고, 결과를 발견한 소수 연구에서는 설탕이 행동을 악화시키는 것만큼이나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 2 : 9년 뒤 (1995)
"현재까지 연구를 메타분석해 종합한 결과, 설탕 섭취는 어린아이의 행동이나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두 사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부모의 확고한 믿음은 기대와 공통된 연관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설탕이 미치는 작은 영향이나 일부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연구 3 : 최종 연관성 (2016)
"현재까지 대부분의 연구에 따르면, 설탕 섭취와 과잉행동 사이에 연관성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회귀 프로토콜 표준분석에서, 일부에서는 즉각적 연관성이 나타나고 많은 경우에는 지연된 연관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 결과, 지연 행동 평가와 난동을 포함할때 설탕 섭취(원인)와 과잉행동(결과) 사이에 강력한 인과관계를 발견했다."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어떻게 느꼈는가? 내적 편향이 작용하는 것을 느꼈는가? 느꼈다면 매우 드문 경우다. 대부분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므로, 의식적으로 편향이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이 연구 결과를 요약한 내용을 읽어 내려갈 때 이미 당신은 믿음이 형성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믿음으로 확증편향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면 내가 그 믿음을 깨부수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본능적으로 기억이나 경험을 더듬어 반박할 증거를 찾아내려 했을 것이다. 반대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면 익숙한 연구 결과에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기 확증에서 오는 약간의 도파민 분출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잠깐! 이 연구는 30년도 더 된 연구잖아요.",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라네요." 라며 반박할수도 있고, 일부 어린아이에게서 과잉행동이 나타났다는 결론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구3을 읽고 나서는 마침내 바라던 증거를 손에 넣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마지막 연구에서 '회귀 프로토콜 표준분석'이라는 아주 복잡한 방법을 이용한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 철저한 연구 설계로 지연반응까지 포함하니 마침내 확실한 연관성이 밝혀진 것이다.
연관성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고작 이 연구 하나일 뿐이잖아.' 아무리 우세한 증거일지라도 소용없다. 결국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불분명해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연습의 목적은 우리 안에 있는 확증편향의 '밀고 당김'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본능적으로 일어난다. 우리가 최종 연구로 제시한 연구 3은 가짜다.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어 날조해야만 했다. 자 이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여러분의 확증편향은 어떤 상태인가?
믿음이 형성되고 나면, 뇌는 자동으로 이를 뒷받침할 확증적 증거를 찾는다. 증거를 찾으면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 때문에 작은 신경학적 분출(도파민)이 일어난다. 이러한 자기가치확인 피드백 고리는 자신감을 한껏 높여준다. 개인적 믿음은 뇌에 들어오는 매우 모호하고 복잡한 자극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확실한 방법을 제공한다. 확고한 믿음은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불확실한 환경에 의미와 통제력을 부여한다.
경험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가 경험을 만든다
인간은 직관적으로 자신이 지닌 믿음 체계를 검증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이는 마치 좁은 열쇠 구멍에 필터까지 더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믿음은 그 믿음이 진실인 것처럼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그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를 마주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다음 사례는 질의 이야기다. 고민에 빠져 있던 질은 할머니 말에 깜짝 놀란다. 할머니 말을 듣고 놀라움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믿음의 방어 체계가 일시적으로 무너지면서 사고방식이 변화한다. 질은 할머니의 말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이후 질이 요리하면서 이룬 모든 성공을 축하하고, 실패는 최소화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 오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질은 '울트라 초콜릿 칩 쿠키'를 굽기로 결정 했다. 자신의 요리책을 찾지 못해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맙소사! 초콜릿 칩을 깜박하고 말았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속상한 얼굴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레시피를 못 찾아서 그냥 기억나는 대로 만들었어요. 근데 제일 중요한 재료를 빼먹고 말았어요."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할머니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셨다. "질, 이건 내가 먹어본 쿠키 중에 최고야! 넌 훌륭한 요리사구나. 너만의 요리책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초콜릿 칩 없이 초콜릿 칩 쿠키를 만들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나 좀 엄청난데?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재빨리 쿠키를 집어넣었다. 이럴 수가! 할머니 말씀이 옳았다. 역사상 최고의 쿠키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요리책에 나오는 레시피를 따라 하지 않았다. 내 재량껏 만들었다. 그렇게 내 손끝에서 수없이 멋진 요리가 탄생했고, 식탁에 올리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개중에는 강아지 입으로 들어가는 요리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레시피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질은 할머니의 말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사고방식을 수정할 기회의 창이 열렸다. 질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시도했다. 이후 질은 새로운 사고방식이 성공했음을 강조하며, 실패는 축소하고 무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질은 레시피를 꼼꼼하게 따르지 않아서 자신이 더 나은 요리사가 되었다고 믿는다. 요리가 성공하건 실패하건 이 새로운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과거에 질은 실수할까 지레 겁을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실수를 피할 수 없는 학습 과정으로 여긴다. 질은 레시피를 따르지 않을 때 더 나은 요리사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뿐 아니라, 실제로 더 맛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는 뇌가 쉽게 속기 때문이다.
기대가 현실과 어긋날 때 뇌가 개입해서 고통을 경감해주는 화학 물질을 방출해 고통의 기대치를 맞추거나 적어도 기대치에 가깝도록 맞춰준 것이다. 바로 여기에 수많은 플라세보 효과의 핵심이 있다. 바로 당신의 뇌가 현실을 기대치에 맞추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정당화하여 승리하라
확증편향은 인간이 지닌 고유한 특징이다. 인간이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추론하도록 진화했다면, 왜 확증편향과 같은 심각한 설계 결함을 발전시켰을까?
진화 과정에서 확증편향이 살아남은 것은 모종의 적응 기능 때문이다. 우리는 동맹을 결성해 자신을 보호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는 진실을 찾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논쟁에서 이기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과사회성'에서 확증편향 기능이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에 따르면, 추론 능력은 믿음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진실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설득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은 진화론적으로 중대한 설계 결함처럼 보이지만, 적응에 유리한 몇 가지 이점이 있다. 타인의 견해가 정확하든 부정확하든, 그 견해에 동조할 때 사회적 유대가 형성된다. 우리는 협력하고 협동하고 동맹을 맺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상들이 살던 시대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위협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들은 성공에 대한 과신 혹은 순진한 낙관주의로 혁신과 창조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확증편향이 보장하는 거짓 안정감은 엄청난 역경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라. 아마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엄청난 좌절감과 불안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공격당하면 입장을 바꿔라
사람들은 종종 정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을 때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버린다. 반박이 통하지 않으면 아예 주제를 바꿔 개인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누군가와 말다툼하다가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같은 주제의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 적이 한번은 있지 않은가?
공격당한다고 느끼면 투쟁-도피 반응이 그의 변연계를 자극한다. 격양된 감정은 방어적인 자기합리화를 유발해 어떠한 합리적 사고도 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종종 피해자는 자기 행동을 너그럽게 해석한다. 심지어 내가 인신공격했으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합리화도 서슴지 않는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반칙 혐의는 이제 부차적인 일이 되었고, 곧 잊힐 것이다. 하지만 암시적 거짓말에서 오는 분노는 계속 남는다.
영리한 정치인은 감정이 이성적인 논쟁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감정을 앞세워 사실을 무시하는 것을 보며 비웃는다. 하지만 비웃는 우리도 정작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자신이 감정을 앞세워 사실을 무시할 때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누군가 "이봐, 사실은 당신이 틀렸어."라고 지적하면 우리는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달라."라고 말한다. 정치인들도 자신이 할 때는 옳고, 상대 정당이 똑같이 하면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내 안의 편향 성찰하기
인생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인생은 흘러가고 우리는 그저 도전과 기회가 닥치면 그때그때 처신하며 살아갈 뿐이다. 성찰은 본질적으로 사실이 있고 나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현재에 몰두하거나 미래를 계획하기 때문에 성찰하는 성향을 타고나진 않았다. 성찰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깊은 생각에 빠질 때면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일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 믿음과 상충하는 이전 믿음을 경시하는 성향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도구인 성찰의 역할 또한 무시해버린다.
왜 그렇게 행동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재빨리 자신의 행동을 합리하하는 설명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우리의 행동을 촉발하는 기폭제 중 대부분은 무의식에서 발생한다.
나쁜 일들이 누적된 상태에서 아들의 실수를 대할 때와 좋은 일들이 누적된 상태에서 아들 실수를 대할 때의 차이.
바이러스나 야수라는 은유가 범죄 해결책을 고안할 때 영향을 미치는 연구 결과.
편향에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아니, 싸워야만 하는가?
처음 배운 방식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만약 나중에 쉽게 배울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확증편향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오래된 신념의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그저 항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적중한 것만 기억하고 빗나간 것은 잊어버린다. 식량을 찾고 포식자를 피하고 기회를 얻는 등 예상이 적중했을 때 훨씬 더 큰 보상이 따르므로, 예상이 빗나간 경우보다 예상이 적중한 경우를 훨씬 더 많이 기억한다.
일부 매우 중요한 믿음에서도 같은 확증편향이 작용한다. 권총을 소유하는 편이 더 안전할까?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까? 오염물질이 기후 변화를 유발할까?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더라도 당신의 견해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정보가 기존의 믿음을 뒷받침한다면 그 믿음은 강화된다. 반면, 반박하는 추가 정보는 폄하되거나 무시당한다. 역화 효과를 기억하라. 기존의 믿음을 반박하는 정보가 오히려 그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수도 있다. 편향은 우리를 도와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더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싶다면, 먼저 편향이 본능적으로 인간의 인식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편향과 싸우는 일은 본능에 반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편향은 인식의 외부에서 발생하며, 경계심을 일깨워줄 감각적 증거가 없어 훨씬 어렵다. 그렇지만 싸울 만한 가치는 있다. 직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버린다면, 우리는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직관, 맞을까 틀릴까?
카너먼은 직관을 "왜 알고 있는지 모른 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카너먼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직관이 '틀릴 수 있다'고 믿는다. 첫 번째 조건은 '규칙성'이다. 체스 게임은 규칙성이 있지만 주식 시장은 규칙성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니 주식 시장에서만큼은 직관을 피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수 많은 연습'이다. 세 번째 조건은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자신의 직관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체스 마스터는 어떤 수가 성공적이었는지를 빠르게 학습한다.
주의 해야 할 점은 직관을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도, 제1종 오류인 긍정오류(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있다고 진단하는 것)는 저지르는 편이 더 낫다. 만약 밤늦게 여행 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막한 주유소에 도착했다. 깜깜하고 안개가 자욱하다. 간판이 깜박이는 불빛과 함께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그렇다면 직관을 의심하지 말고 당장 도망쳐라.
편향과 공존하기
광고 대행사들은 어떤 주장이나 암시가 반복되면 대개 믿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브랜딩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주장을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서 옳은 주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입소문'으로 퍼진 믿음 가운데 대다수는 도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이 정확하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균형 잡히고 사려 깊은 판단력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편향이 우리를 구성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편향은 다른 사람의 견해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견해도 왜곡할 수 있다. 인간은 편향될 수밖에 없다.
CIA가 훈련 시킬 때 사용하는 8가지 전략.
- 대안적 관점을 개발하는 데 능숙해져라.
- 다른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 가정하지 말라.
- 거꾸로 생각하라. 현재에 자신을 놓고 미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하는 대신, 미래에 자신을 놓고 잠재적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어떻게 흘러갈 수 있을지 설명해보라.
- 현재 가지고 있는 믿음이 틀렸다고 가정한 다음, 그러한 상황을 시나리오로 만들어보라. 이렇게 하면 자신의 믿음이 지닌 한계를 볼 수 있다.
- 다른 사람이 가진 믿음을 실제로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에 옮겨보라. 이렇게 하면 자신만의 믿음에 갇혀 습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해 소수의 관점을 옹호해보라. 그러면 다른 가정이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보이게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 브레인스토밍을 하라. 아이디어의 양은 질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오래된 신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다양한 배경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라.
정신적으로 지쳤는가? 인식은 위대한 첫걸음이다. 자신의 편향을 알아차리고 맞서 싸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편향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편향을 지적하는 순간 상대는 필연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정체성을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논쟁이 붙으면, 문제는 거의 해겨되지 않는다. 확고한 믿음은 이를 반박하는 정보로부터 자신을 방어한다. 일반적으로 논쟁을 할 때면 상대방이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에 반박하는 정보를 퍼붓곤 하는데, 그러면 상대방은 이 정보를 수용적으로 처리하기보다 방어적으로 회피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믿음은 언제 바뀌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믿음을 형성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기존 패턴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턴을 구축할 수 있다. 다른 관점을 가진 문화에 노출되면 사회적 압박만으로도 믿음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놀라움이다. 믿음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작업이지만, 놀라움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는 누구나 믿음을 바꿀 수 있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은 기존의 믿음을 둘러싸고 있는 무장을 즉시 해제시키도록 진화했다.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면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해주는 편향을 우회해, 즉각적으로 새로운 믿음을 지지하는 편향이 생겨난다. 이 모든 과정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며, 인식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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