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믿음
Chapter 1 믿음이 우리를 형성한다
사건의 의미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 사건으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날까, 아니면 기존 믿음을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까?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에서 의미 형성 과정을 참고 하면 도움이 될듯. 사회적으로 의미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를 이해하면 도움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당신의 수학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그러한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이러한 믿음을 만들어 내는 사건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영향력을 미치는데, 우리는 대개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수학 문제를 고민 하는 새뮤얼의 경우
첫 번째 경우 : "세상에! 새뮤얼, 너는 수학이 어려운가 보구나."
두 번째 경우 : "세상에! 새뮤얼, 어려운 문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고민하다니 훌륭하구나!"
첫 번째 말은 '수학에 약하다'는 뜻이고, 두 번째 말은 '훌륭한 학생'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말 한마디는 새뮤얼이 자신의 수학 실력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데 손쉽게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경우에는 실제로 문제가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문제 풀기를 회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영원히 수학을 포기할 수도 있다. 반대로 두 번째 경우는 완전히 다른 전개가 펼쳐질 것이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이 계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제를 붙들고 늘어질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동기부여가 된다. 결국에는 그런 학습 태도가 새뮤얼을 좋은 학생으로 만든다.
인간의 뇌는 항상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기회나 위협을 감지한 다음,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반응을 도출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한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감정은 이러한 상황 판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뇌의 자원을 배분한다. 상황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원을 많이 배분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자원을 적게 배분한다. 나아가 이러한 감정 반응에 따라 '회피' 또는 '참여' 행동을 활성화한다. 만약 새뮤얼이 스스로 수학을 잘 못한다고 믿는다면 '여기에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인지 평가에 따라 더 적은 자원을 쓰게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은 신경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회피 행동을 활성화한다. '수학을 멀리하고 수학 공부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이제 새뮤얼은 수학 공부에 투자할 뇌의 자원을 줄이고, 수학은 회피 대상이라는 사고 방식을 활성화한다. (믿음과 사고방식의 차이 참고)
반대로 새뮤얼이 스스로 훌륭한 학생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평가는 수학 공부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고 참여 행동을 활성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새뮤얼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이렇듯 전혀 다른 행위의 결과를 초래한 계기는 스쳐 지나가는 교사의 말 한마디다. 이처럼 우연한 사건들이 우리의 통제 밖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무의식중에 자아를 형성한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한 믿음을 만든다. 이 과정은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선택보다는 '발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되새겨 볼 때, 애초에 어쩌다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뇌가 새로운 정보를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 정보를 근거로 한 행동이나 사고방식도 통제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우리는 믿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새뮤얼이 이 사건을 오래도록 기억할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자기 수학 실력에 대한 믿음이 이 사건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할 가능성은 더더욱 적다. 어떤 사건이 우리를 변화시킬지, 나아가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사건이 미치는 영향력 또한 항상 의식하고 있지 않다.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반응할 뿐이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 또다시 반응한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간다. 평범해 보이는 수많은 사건이 우리를 형성 한다. 이러한 사건 중 대다수는 우리의 의식 아래에서 스쳐 간다.
새뮤얼이 미약하나마 자신의 수학 실력에 대한 믿음을 이미 품은 상태였다면, 교사의 말이 새뮤얼이 원래 지니고 있던 자신의 수학 실력에 대한 믿음과 일치한다면, 그 믿음은 입증된 셈이고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반면 원래 지니고 있던 믿음과 반대된다면, 권위자의 예상치 못한 발언은 원래의 믿음을 뒤집을 만큼 새뮤얼에게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렇게 형성된 믿음은 새뮤얼 본인의 사고과정을 거쳐 의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이미 각인된 프로그램
주변 환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능력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예측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죽는다. 중추신경계의 목표는 예측 가능성을 최대화해 놀라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삶이 예상한 대로 흘러갈 때 비로소 우리는 환경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놀라움은 우리 존재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놀라움은 뇌에 큰 충격을 준다." -미셀 비트볼
인간의 뇌는 안전하고 생산적이며, 예측 가능한 장소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주변 환경을 파악하도록 각인되어 있다. 기회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접근 대상과 회피 대상을 어떻게 구분할까? 살아 있는 유기체는 자극을 기억하고 그 자극에 적응해 반응하는 자극-반응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유기체는 기억력이 필요없다. 하지만 움직이는 존재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왜 어떤 대상에 다가서고, 어떤 대상에서는 멀어지는가? 움직임에는 동기가 필요하다. 기회에 이끌리면 번성하고, 위험에 이끌리면 죽는다. 하지만 움직임에 앞서 기회와 위험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먼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구분할 가치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은 이를 위해 발달한 것이다.
꿀벌은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도파민 전달 체계와 유사한 전달 체계를 가지고 있다. 보상(꿀)을 감지하면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하는 체계는 기본 행동을 변경한다. 도파민은 보상을 좇도록 꿀벌을 조종한다. 꿀벌은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상태로 이미 각인된 의사결정 체계를 거쳐 선택을 내린다.
무의식적인 감정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간의 행동을 유도한다. 우리도 경험에 따라 행동하는 호불호(접근 또는 회피) 의사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학습의 본질이다. 도파민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요소를 단순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평가한다.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후속 행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성공하려면 상황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은 우리를 인도하는 충동 욕구이면서 믿음을 형성하는 전조가 된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 있는 대상에만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감정적 패턴이 반복되면 믿음이 된다. 믿음은 행동을 이끌고, 우리는 행동하면서 믿음을 재입증한다. 이러한 순환이 계속된다.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초기 인류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본능적으로 검은색 열매에 접근한다. 예전에 먹었을 때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녹색 열매는 회피한다. 예전에 먹고 배탈이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각 데이터가 들어오면 뇌는 패턴을 발견하거나 생성한 다음, 해당 패턴에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은 의미를 형성하도록 진화된 생물로, 우리 뇌는 이러한 패턴을 이용해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믿음은 기억과 비슷하다. 사건이 일어나 자극이 발생하면 신경망이 활성화되고, 기억이 형성된다. 신경망이 활성화될수록 기억은 더욱 강렬해진다. 기억은 익숙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자동화된 반응을 생성한다. 그리고 서로 연결된 기억은 믿음을 형성한다.
뇌는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 외부 세계의 본질을 추측한다. 미래에 일어날 결과를 가정하고 예측하는 정신적 모형, 즉 믿음을 형성한다. 이렇게 믿음은 우리가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도록 안내하고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억력이 발달해 더 정확한 결과를 예측하게 되면, 믿음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새로운 정보가 주입되는 즉시 다음 행동에 필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믿음이 우리 행동을 제약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누군가가 청포도를 건낸다면 '모든 녹색 열매는 피해야 한다.'라는 믿음을 일반화해 버린 당신은 청포도를 거절한다. 이처럼 믿음은 일단 형성되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약한다.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그 행동을 설명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 제약의 존재를 깨닫는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 외제차를 타는 사람, 변호사 등을 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믿음을 시험한다
뇌는 감각 자극이 도착하기 전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려고 끊임없이 활동한다. 다시 말해, 뇌는 문제를 소리 없이 아름답게 해결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 우리를 안내한다. 인지철학과 교수 앤드루 클라크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주변 환경에서는 항상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뇌는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하기 일쑤인 복잡한 환경에 적응되어 있다. 지적 생명체인 인간은 감각 자극을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시험하며 불완전한 모형을 경험에 적용한다. 마치 과학자처럼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시험하며 예측이 올바른지, 조정이 필요한지를 확인한다.
뇌 구조상 외부 세계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연결망보다 내부 신경 세포를 잇는 연결망이 훨씬 더 크다. 뇌는 모호한 감각 정보를 나름대로 이해해서 머릿속에 있는 불완전한 그림의 세부 사항을 채워 넣는다.
우리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에만 관심을 보인다. 대신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예측 가능한 사건에서는 멀어진다.
자신에 대한 믿음 검증하기
가짜 볼링공에 놀라면 다시 집어 들어서 시험하면 된다. 감각으로 인식하는 외부 세계에서는 종종 경험한 것을 객관적으로 시험하고 검증해볼 수 있다. 반면 믿음으로 인식하는 개인적인 세계에서 자아개념을 검증할 때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달리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놀라운 사건이 어떻게 인생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요소와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 자아개념과 연관된 놀라운 사건을 겪으면 새로운 믿음이 형성되는데,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맞거나 틀렸다고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내부적 믿음을 검증한다.
만약 스스로 옷을 잘 입는다고 믿는다면, 거리를 거닐 때 무심코 마주치는 시선이 감탄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할 것이다. 반면 스스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믿는다면, 똑같은 시선을 마주해도 혐오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할 것이다. 스스로 내부적 믿음을 검증 한 것이다. 이러한 자체적인 검증은 언뜻 보기에 정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믿음에는 많은 증거가 필요하지는 않다. 내 의견에 수긍하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놀라움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면 과학, 절묘한 타이밍, 언어 구조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믿음은 패턴에서 진화한다
우리 뇌는 데이터가 들어오면 패턴을 발견하거나 생성하고, 실제 세계와 상호 작용하면서 연관성을 찾아내도록 진화했다. 이는 생존 본능이다. "사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뇌는 우리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도록 진화했다."
인간은 통제력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뇌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생성하고자 패턴을 찾아낸다. 뇌가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찾아낼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호랑이 패턴 인식의 경우 처럼 호랑이가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소한 오류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
뇌는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다른 패턴과 연관 지어 놀라움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예측 기계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잡음이 많고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인식한 것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그것을 일반화하도록 적응한 것이다.
패턴에서 이야기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패턴을 찾으려고 한다. 어떤 일을 경험하면 그 경험에서 패턴을 찾아 설명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숲에서 뱀을 보았기 때문에 뛰어올랐다고 생각한다. 의식이 생각은 쉽게 인식하지만 그보다 앞서 드는 감정, 즉 두려움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반응이 뛰어오르는 행동을 촉발했다. 뱀이나 호스가 갑자기 움직이자 몸이 먼저 반응했고, 이 사실을 의식한 것은 그다음이다. 이 차이는 매우 미묘하지만 아주 중요하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동안 우리는 주변 환경에서 그 상황을 설명할 단서를 찾는다. 설명을 찾거나 만들어낸 다음에 단서들을 연결한다.
만약 호스를 뱀으로 착각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이 오솔길에 뱀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심지어 1년 내내 단 한 번도 뱀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여전히 그 길에 뱀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일단 자신이 찾은 단서를 연결하고 나면 믿음은 견고하게 유지된다.
무언가를 의식하는 과정은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따라서 의식에 들어왔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 맥락에 집어넣는 능력 덕분에 이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았다. 학자들은 이 맥락을 가리켜 '이야기'라고 부른다.
"사실이 발생하고 나서 그것에 관한 이론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과거 사건을 허위로 꾸며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가?" 가짜 흉터 실험으로 증명
대화 중에 시선을 돌리는 것은 일반적인 행동이지만 보통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이 실험에서는 상대방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따라서 평소 같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시선을 돌리는 행위가 참가자의 의식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지닌 믿음 가운데 많은 부분이 우리의 기대에 맞춰 만들어지고, 그 믿음이 사실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한 과잉경계로 이어진다.
또 우리가 몸에서 얻은 정보로도 이야기를 엮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에피네프린 주사 투여 실험, 비타민 주사라고 투여 하고 한쪽에는 주사의 부작용을 다른 한쪽에는 부작용이 없다고 이야기 했을 때 반응 결과.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 이유를 설명하려한다. 해결책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없으면 만들어낸다. 부작용에 관한 경고를 들은 첫 번째 집단은 주사 때문이라는 해결책을 빠르게 찾았다. 그러나 부작용을 몰랐던 두 번째 집단은 주변에 보이는 단서들을 연결해 연구원과 상호작용한 결과로 교감신경계가 흥분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만들었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경험할 때도 이와 비슷한 전개가 펼쳐진다. 강렬하게 놀라면 교감신경계도 흥분한다. 깜작 놀라게 되면 예상치 못한 사건을 해결하고자 신경학적으로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는 세상이 예측대로 흘러갈 때 심리적으로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인지에 장애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제 교사가 된 샘은 어릴 적 선생님께 들은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어떻게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었는지 말해주었다.
"샘,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발언 횟수도 높고 수업 참여도도 높단다."는 선생님의 말은 샘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었고 그 이후로 샘의 관점과 태도는 바뀌었고, 공감과 깨달음을 의무가 아닌 강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샘은 공감과 깨달음이 나약함의 표시라고 믿어왔다. 샘이 놀란 이유는 사회 교사의 말이 이러한 믿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샘이 느낀 놀라움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믿고 따르던 선생님께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듣자, 새로운 방식으로 단서들을 연결해 '공감과 깨달음은 긍정적인 특성이다.'라는 믿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믿음은 무의식에서 작용한다
여러분의 마음은 감각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그 모든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하고, 유사한 데이터는 '믿음'으로 묶은 다음, 이 믿음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눈앞에 30가지나 되는 서로 다른 맛의 도넛은 즐거움과 보상을 좇도록 유도하는 도파민 신경계를 활성화한다. 당신이 도넛을 선택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신경계가 먼저 작동한다. 뇌는 의식적인 생각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평가한다. 과거에 느낀 즐거움과 보상에 관한 기록은 우리가 할 행동을 예측한다. 그렇다면 더 복잡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자동차 구매 실험
단순한 설명서, 복잡한 설명서 그룹
다시 반으로 나누어 꼼꼼히 숙지를 요구 그룹, 단어 퍼즐을 제공 해서 꼼꼼히 숙지 못하게 한 그룹
결과는 명확했다. 단순한 설명서를 받은 집단에서는 단어 퍼즐을 푼 참가자들보다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한 참가자들이 더 좋은 차를 선택했다. 그러나 복잡한 설명서를 받은 집단에서는 주의가 분산된 참가자들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 추가 실험으로 신중하게 구매 결정을 내린 고객은 단순한 물건을 구매할 때 만족도가 높았다. 반면 복잡한 물건을 구매할 때는 의식적으로 많이 고민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린 고객 집단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인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인지과학자들은 의식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수많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한다.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할 때는 불필요한 특징은 무시하고 특정 기능의 중요성만 부풀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따라서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가용성 편향'이라는 심리 현상이 있다. 이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뜻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식적 사고는 스포트라이트와 같다. 의식적 사고는 문제를 밝게 비추지만 특정한 좁은 측면만을 강조한다. 그래서 처리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에 무의식적 사고는 아이 방에 있는 수면 등과 같아서 특정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전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희미한 빛을 비춘다." 다시 말해, 무의식적 사고는 관련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고려한다.
Chapter 2. 믿음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인간은 타인의 말을 신뢰하는 성향을 타고났으며, 모든 정보에 일일이 의문을 제기할 시간이 없다."
- 앤드류 뉴버그<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 이유> 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먼저 믿고, 그다음에 의심하도록 진화했을까? <믿음의 탄생>의 마이클 셔머의 사고 실험을 보자. 30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의 풀숲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를 포식자로 인식한 인류와 그렇지 않은 인류 중 누가 생존 확률이 높았을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 풀숲에서 들려온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포식자라고 믿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진화에서 최우선 과제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유입된 정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 즉 일단 믿고 보는 성향이 생존에 엄청 유리했다. 조상들은 작게 무리 지어 살면서 자신의 감각을 믿었고, 부모와 지도자를 비롯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믿고 따랐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믿음을 토대로 살아가는 데는 유리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실패와 좌절이 만연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즉 낙관주의는 주도성과 혁신과 창의성을 길러준다. 어린이가 저글링이나 악기 연주 등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들은 언젠가는 자신도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연습한다.
불신은 믿음의 반대말인가?
믿음과 불신은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믿음이 기본값이라면 불신은 단지 믿음의 반대말일까? 아니면 아예 다른 인지 과정일까?
해리스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뇌를 촬영하면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명제를 제시한 후, 그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물었다. 참가자가 참이라고 믿는 명제를 받았을 때는 특징적인 뇌 활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는 추론, 정서적 보상, 학습 관련된 영역만 잠깐 깜박였다. 반대로 거짓이라고 믿거나 진위를 알 수 없다고 믿는 명제를 받았을 때는 심사숙고, 의사결정, 혐오와 관련된 뇌 영역이 더 오랜 시간 강하게 활성화되었다.
불신 상태에 도달하려면 뇌는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불확실 상태에서는 오류 감지, 갈등 해결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믿음은 빠르고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지만, 의심이나 거부는 천천히 깊이 고민해야 도달할 수 있다는 가정을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명제의 진리를 참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 때, 부분적으로 맛이나 냄새가 좋은지를 판단할 때 작동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생각 구려"라고 흔히 표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믿음을 형성하는 인지 과정이 더 원시적인 감각과 지각 시스템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과학계에서는 이 연구 결과가 뇌의 기본값이 '수용'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고 해석한다. 즉 믿는 것은 쉽고 의심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믿음을 신뢰한다
인간은 줄곧 자연스럽게 상황을 수용하지만, 때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사색할 때, 무엇이 이러한 유형의 사고를 유발할까? 인간의 사고는 어떤 체계를 따르는 것일까? '추론'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과 느리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과정일까, 아니면 같은 정신 활동의 두 가지 측면일까? 둘 중에 어떤 사고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언제, 어떤 사고 과정이 발생할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에 의해 알 수 있게 되었다.
빠르게 본능적으로 혹은 느리게 의식적으로
카너먼 교수는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 체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시스템1'과 '시스템2'라고 명명했다. 시스템1은 빠르고 직관적이며 감정에 충실하다. 시스템2는 느리고 의식적이며 논리를 중요시 여긴다. 시스템1은 의식적인 노력을 거의 혹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 없이 자동으로 신속하게 작동한다. 평소 익숙한 출퇴근에는 시스템1이 가동된다. 시스템2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때 활성화된다. 당신은 시스템2 덕분에 눈보라 속에서도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판단의 대다수는 얼핏 선택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시스템1에 자극이 가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노력을 최소화하고 성과를 최적화하고자 두 시스템은 상호보완적인 방식으로 협업한다. 시스템1이 익숙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과 단기적인 예측은 대부분 정확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초기 대응 역시 신속하고 적절하다. 시스템2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집중하거나 시스템1이 응답하지 않을 때 활성화된다. 요컨대 우리가 놀랄 때 시스템2가 작동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주의력이 급증한다. 시스템2는 시스템1이 예측하고 관리하는 세상 모형에 들어맞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때 활성화된다. 시스템2는 시스템1이 빠르게 대충 만들어낸 불완전한 현실 세계의 초안을 별다른 의심 없이 믿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 시스템2의 역할은 시스템1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세상 모형을 천천히 분석하는 것이지만,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완벽히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그편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믿음은 '생각' 없이 빠르게 형성될 수 있다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처벌과 보상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 만약 교육이 목적이라면 처벌은 효과가 없다. 학생에게 처벌은 행동을 교정하는 수단이 아니라 적대적 행위다. 처벌받은 학생의 몸에서 도파민의 분비가 조금 감소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 것. 조심하라.'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제 이 학생은 수업 시간에 불안해하며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리게 된다. 처벌받은 이후 학생의 주의는 학습에 대한 흥미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분산된다.
지름길이 정확도보다 중요하다
뇌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인간은 인지 자원을 아끼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들어오는 모든 감각 정보를 처리할 수는 없다. 뇌는 연산 부담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자 규칙을 정해놓고 자동으로 응답한다. 일상적인 문제 대부분은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므로, 이러한 경험법칙에 근거한 판단이 직관을 끌어낸다. '직감'이라고도 하는 직관은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유용한 도구다.
과학자들은 세상을 더 쉽게 살아가기 위해 복잡성을 줄이고 요점만 추리는 이 과정을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휴리스틱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이자, 우리가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게 해주는 판단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휴리스틱은 인지적 수고를 줄이고 의사결정을 단순화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요점만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그래서 결론은 뭔가요?",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의 핵심은 무엇이죠?" 등
휴리스틱은 대부분 성급한 어림짐작인 탓에 근거가 빈약하고 틀릴 때도 많다. 휴리스틱은 고정관념과 비슷하다. 쉽게 말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인류의 일상적인 추론 능력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도록 진화했다. 생존에 유리하다는데 몇 번 실수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즉 정확성은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기능이 정확도보다 중요하다
처음에 신디는 읽는 속도가 느린 탓에 자신이 바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은 신디를 불안하게 했고,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시간만 주어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새로운 믿음은 끈기와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집념의 특징이다. 신디는 이제 성공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가리켜 '성장형 사고방식'이라고 부른다.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제대로 기능하면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믿음은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변덕스러운 믿음 체계는 정서적 혼란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기능적이면서도 강력한 믿음을 갖는 것이 좋다. 옳고 그름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자기손상화 성향'은 부정확한 믿음이 잘 기능하는 또 다른 사례다. 누구나 자기손상화 전략을 이용한다. 실패에 대비해 미리 핑곗거리를 만들어놓는다. "나한테 크게 기대하지 마. 두 달 만에 치는 거니까.", "나흘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공부했더니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시험을 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이야.", "우리 팀 에이스인 마커스가 독감이 완전히 낮질 않아서 오늘 밤은 여간해선 이기기 힘들 거야."
자기손상화는 단순히 실패를 축소하거나 성공을 미화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부도덕한 관행이 횡행하는 조건을 만들 수도 있다. 연구 결과, 참가자들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면 이를 보상하고자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임의로 바꿀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 자체가 탄탄하다면 자금 출처가 의심 되는 곳에서 연구 지원금을 받아도 괜찮은가? 같은 논문을 서로 다른 저널에 중복해서 게재해도 괜찮은가? 실제로 연구에 참여 하지 않았는데 공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려도 괜찮은가? 와 같이 참가자들이 자기 분야와 자신이 불리한 입장이라고 생각할 때,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
그렇다면 이러한 내재적 성향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첫째, 자신에게 본능적으로 구실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확히 아는 것은 문제 해결의 열쇠다. 기능이 정확도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자기손상화 만들기를 경계하라. 둘째, 그 과정에서 운과 기회가 따랐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마지막으로, 스스로가 도덕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양심적으로 행동하라.
믿을 게 없을 때는 만들어서라도 믿는다
인간의 정신은 미스터리를 너무나도 싫어해서 합리적인 설명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그 공백을 메우고, 그것을 믿는다. 일단 믿음을 형성한 뒤에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설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설명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기에 믿었다. 안 믿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 설명이 정말 정답이었을까? 그저 스스로 이해가 되니 믿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또 다른 설명을 만들어 믿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잘하게 놀라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최선의 추측을 바탕으로 상황을 이해한 뒤에 자기 생각을 믿고 살아간다. 놀라움 -> 설명 -> 믿음 -> 반복. 놀랄 때마다 일상을 중단한 채 일일이 설명을 찾아 나설 수는 없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오늘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 보는 게 도움이 될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일단 믿음을 형성하고, 본능적으로 그 믿음을 방어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풍요와 결핍의 주기 가설을 조사하려고 했다면, 검색창에 뭐라고 입력했을까? 필연적으로 금식 후에 절식이 어떻게 열량을 저장하라는 신호를 보내는지를 설명하는 수많은 증거를 찾았을 것이다.(내가 믿는 것을 찾는것) 그러고 나서 결국 내가 옳았다고 결론 내리고, 믿음을 강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를 곧바로 찾지 못했다면? 증거를 찾을 때까지 인터넷을 뒤졌을 것이다. 이는 확증편향이 작용한 결과다. 사실 내가 검색창에 입력한 질문 자체가 이미 편향된 것이다. 짜잔! 결국 내 생각이 옳았다. 더 이상 찾아볼 필요도 없다.
이는 우리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일단 형성된 믿음을 어떻게 확증하는지, 이렇게 급하게 생겨난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놀라움 -> 설명 -> 믿음 -> 반복' 이 과정을 온종일 반복하며 살아간다. 매 순간 하던 일을 중단하고 설명을 찾으려면 엄청난 인지 자원이 필요하다. 만약 자신이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꾸며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연구자들처럼 다른 설명을 찾아보라. 주변 친구들에게 의견을 말하고 심사를 받아보라.
Chapter 3. 강력한 믿음 유지하기
"믿음은 진화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이 미지와 위협으로 가득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심지어 미신적인 믿음조차 말이다. 조상들의 가정은 정확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믿음은 두려움을 줄이고 집단을 결속시키는 가치를 전수하게 해주었다."
-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 이유>중에서
믿음은 한 번 확립되면 놀라운 지속력을 보여준다. 1975년,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은 자살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는 유서를 두 개씩 나눠준 뒤에 하나는 진짜고, 다른 하나는 가짜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진짜 유서와 가짜 유서를 가려내도록 했다. 이 연구의 진짜 목적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참가자들의 믿음에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점수를 통보 했다. 일부는 자신이 구분하는 일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다른 일부는 이 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 단계가 끝나고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사실은 점수가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실험의 목적은 참가자들이 이 일에 자신이 '재능이 뛰어나다.' 혹은 '재능이 아예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두 집단 모두 비슷한 점수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이어서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참가자들이 스스로 맞았거나 틀렸다고 생각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또한 거짓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몇 쌍의 유서를 올바르게 식별했는지,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몇 쌍을 올바르게 식별했는지를 추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높은 점수를 통보 받았던 집단의 학생들은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점수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이후였는데도 말이다.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그러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반대로 낮은 점수를 통보받았던 집단의 학생들은 평균보다 매우 낮은 점수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또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연구는 믿음이 반박당할 때조차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적절하게 수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는 당시에는 큰 충격을 주었지만 우리는 이제 사람들이 '사실을 무시하는' 현실을 봐도 더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수많은 후속 실험에서도 이 사실이 재차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음이 이성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고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는 <이성의 진화>에서 사회적 지지가 진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존은 동맹과 협력을 요한다. 인간은 협동 능력이 있어서 다른 종보다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책에서 인류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진화했으므로, 그 맥락에서 우리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협력은 생존에 유리하지만 확립하고 유지하기 어렵다. 그들은 이성이 동맹을 협상하고 구성원들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설득하는 메커니즘으로써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진화했다고 결론 짓는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개념처럼 종교적 믿음의 핵심 교리와 모순되는 증거에 직면할 때, 수많은 복음주의자는 의도적 합리화로 인지부조화를 최소화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진화론을 살면서 얼굴 볼 일 없는 '진보적 엘리트'가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믿는 것이 평생 얼굴 보며 살아온 모든 사람이 틀렸을 가능성에 직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인간은 신뢰하는 사람을 믿도록 진화했다. 추상적인 문제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은 조상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사회적 지위와 권위는 중요했다. "명확한 추론에 따르는 이점은 거의 없지만 논쟁에서 이기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믿음은 우리가 속한 집단에서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믿음을 가졌는지에 기반한다.
당신이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친구에게 '근거 없는' 믿음을 설득한다. 그러면 친구는 또 다른 사람에게 '근거 없는' 믿음을 설득한다. 당신이 퍼뜨린 믿음은 대중화되고, 당신의 목표는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믿음은 의도적 합리화로 손쉽게 무너진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도파민은 당신이 이 즐거운 일을 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도파민은 당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를 바란다. 뇌는 우리가 논쟁에서 이겼을 때 보상을 주는 것이지, 정확할 때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하더라도 그 지속력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기능적이다. 안정적인 믿음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자극에 질서와 체계와 일관성을 부여한다. 일관성 없는 정보에 반응해 믿음이 시시각각 바뀐다면, 질서와 예측 가능성에 대한 감각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안정적인 믿음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견고하지만 지나치게 견고하진 않다
안정된 믿음은 편안함을 주지만, 변화에 완전히 저항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유창한 설득에 넘어가 잘못된 믿음을 받아들인다. 잘못된 믿음은 비효율성과 부정확성을 낳거나, 때로는 심각한 위험을 불러오기도 한다.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표백제를 마시는 행위처럼 말이다.
잘못된 믿음에 뒤따르는 높은 잠재적 비용을 고려해, 인간은 새로운 정보를 마주하면 동화하는 능력을 개발했다. 새로운 믿음은 언제나 경험과 설득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일단 형성되고 나면 본능적으로 변화에 저항하게 된다. 믿음을 바꾸는 것은 믿음을 수정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경험과 설득으로 끊임없이 믿음을 수정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믿음을 보완하는 새로운 경험이나 지식을 얻으면 별다른 저항 없이 본능적으로 동화하여 원래 믿음을 수정하거나 업데이트 한다. 업데이트된 믿음은 더 복잡해지거나 강력해진다. 그러나 믿음을 바꾸는 일은 훨씬 어렵고 일반적이지도 않다.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강력하게 설득하려면 강렬한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회의 창을 제공하는 신경학적 메커니즘이 있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은 즉각적인 믿음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건은 사고방식을 수정하는 빠른 경로로 저항을 피해간다.
잘못된 믿음이 역기능을 낳는다면 바꾸고 싶을 수 있지만, 유익한 역할을 한다면 바로잡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 믿음의 목적은 행동을 인도하는 것이지,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제나는 여덟 살 무렵 선생님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글을 깨치지 못한 건 명백히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었지만, 결국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영원히 글을 깨치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두려웠다. 평균적으로 글을 깨칠 나이가 훨씬 지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과연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엄마는 아홉 살 혹은 열 살까지 기다렸다가 그 이후에 글을 깨치는 것이 훨씬 좋고, 실제로 늦은 나이에 글을 깨친 학생들이 어려서 압박 속에 글을 깨친 학생들보다 훗날 더 우수한 독해 능력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찾았다고 말씀해주셨다. 덧붙여서 뇌 발달에는 순서가 있고, 나는 그 순서에 맞게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에 일단 그 순간이 오기만 하면 나머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도 하셨다. 엄마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평생 잊지 못할 대화였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큰 안도감과 용기를 얻었는지 모른다.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얼마간 학업의 자유를 보내며 어린이 잡지를 탐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마침내 그 순간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무의식중에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오는 기사를 술술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신기했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내 미래를 장기적인 결과까지 정확히 예측하셨던 걸까? 그 이후로 매년 주 단위로 실시하는 독해능려경가에서 꾸준히 97퍼센트 백분위 수에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열렬한 독서가가 되었다.
이때가 엄마의 가르침이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가 이 순간을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그날 내게 한 말을 진심으로 믿으셨다. 이제는 나도 안다. 엄마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연구 결과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 순간 내가 엄마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 덕분에 글을 깨치는 것에 대한 태도를 재정립할 수 있었고, 더 큰 어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제나의 엄마는 가짜 연구 결과를 만들어 딸이 놀라움을 느끼고 가짜 믿음을 형성해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믿음이 일반적인 저항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제나가 엄마의 의견을 긍정적인 격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인 엄마가 일반적으로 증거 능력을 지닌 '연구 결과'를 언급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연구 결과는 과학자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므로 사실이 틀림없다.
잘못 형성된 선입견을 뒷받침하려고 빈약한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고 흔하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감각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감각은 정확하다.(정확해 보이는 것일 뿐) 이 냄새는 꽃향기고, 저 구름은 먹구름이며, 큰 바위는 무겁고, 그의 미소는 호감을 의미하는 등 우리의 감각은 대개 정확하다. (정확하기 보다는 보편적으로 인지 된다고 봐야 할듯, 실제 향기, 시각 등의 정보가 왜곡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정보를 받아들이며, 믿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거나 우리를 지지하고 혜택을 가져다주는 발언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식과 믿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지 과정은 원시 문화에서 미신적 믿음을 생성하고, 확인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원시 부족민으로 저녁 시간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야생동물 때문에 위험하다. 이 부족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 혼자 외출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누군가 보름달이 뜬 밤에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면, 부족민들은 자연스레 특별한 부적이나 기도나 자애로운 신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존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미신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도 동일하다. 바로 '긍정적 사례의 오류' 때문이다. 기존의 믿음을 확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반대로 기존의 믿음에 반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무시하거나 이례적인 현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우리의 믿음이 곧 우리'라고 느낀다. 감정은 믿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관을 위협하는 다른 믿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보통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먼저 그 사람을 무시한다. 뇌는 우리가 믿어야 할 것과 믿으면 안 되는 것을 확립하는 데 이미 큰 노력을 기울여왔고, 신경 회로도 이미 형성된 상태다. 믿음은 개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믿음이 반박당하면 우리는 위협을 느낀다. 때때로 격렬한 적대감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감정은 믿음을 치열하게 보호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과 믿음
감정은 생존과 기회와 번식을 촉진한다는 목표 아래 행동을 이끄는 의사결정 알고리즘으로 진화했다. 이를 위해 감정은 인지 기능의 문지기 임무를 수행한다. 주의력과 작업 기억과 추론 능력은 비교적 일관되며 큰 변동이 없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감정은 생물학적인 온도 조절 장치라고 생각해보자. 감정은 주의력을 활성화하고, 이어서 문제 해결 및 반응 체계를 활성화한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믿음이다. '주의'는 뇌를 이끄는 지도자다. 주의가 향하는 곳이면 뇌는 어디든 따라간다. 놀라움은 주의를 납치해 즉각적인 해결을 요구한다. 우리는 놀라움이 해소될 때까지 주의를 집중한다.
위험이나 기회가 발생하면 감각 정보가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켜 뇌의 나머지 영역 중 어떤 부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때로는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주변 환경에서 유입되는 감각 정보를 끊임없이 평가한다. 감정이 의식으로 편입되면 우리는 이를 느낌이라고 부르는데, 감정 대부분은 의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과거의 반응을 기반에 둔 채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인간은 매우 적은 정보를 기반에 두고 매우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 장치를 발전시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를 '찰나의 판단'이라고 부른다. 감정은 의식 아래에서 정교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우리를 위험에서 구하며, 목표를 설정해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마크 험프리스 박사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당신은 수 많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선택지마다 주어진 증거를 따져보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저것은 호랑이인가, 아닌가? 햄버거를 먹을까, 핫도그를 먹을까?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은 카누인가, 아니면 유리 섬유로 만들어진 또 다른 스포츠용품인가? 뇌는 이 작업을 아름답고 조용하게 수행해낸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뉴런들은 여러 증거를 종합해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낸 뒤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려준다. 감정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생을 구제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리고 충동 구매를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믿음은 '생각'에서 방향을 잡지 않는다. 정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교한 생각을 무의식에 맡길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감정이 먼저 목표를 설정한다(시스템1에서).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시스템2에서) 합리적인 하드웨어가 작동한다.
감정은 목표를 제시하고, 정신이 계획을 세워 목표를 실행할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이성적 사고 과정은 어떻게 할지를 결정한다. 당신은 바비큐 맛 감자칩을 선호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일단 과자가 진열된 선반을 흝어본다. 하지만 먹고 싶은 과자를 찾겠다고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조사하지는 않는다. 바비큐 맛을 선택하고 싶은 감정적 충동을 느꼈는가? 이 처럼 인간은 매일 사소한 결정을 수백 수천 번씩 내린다. 하나하나 생각해야 한다면 얼마나 지칠지 상상해보라. 도무지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감정적인 어조를 유발하더라도, 우리는 이성적인 생각이 감정적인 반응보다 먼저 일어난 것처럼 설명하곤 한다. 감정적 자극은 매우 미묘해서 대개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심사숙고는 의식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기 전에 먼저 생각했다고 믿는다. 감정이 의식의 문턱을 넘을 때조차 감정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다시 한번 사고에 명백한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저녁 먹고 영화 한편 어때?" (이미 당신은 피자와 서부 영화로 마음을 정한 상태다) "나 2주 동안 한 번도 안 먹었거든." 덧붙여서 "<타임스>에서 리뷰를 봤는데 새로 개봉한 서부 영화가 끝내준다더라. 조스 피자 먹고 영화보러가면 좋을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이처럼 본능적으로 친구를 조종하는 과정은 감정이 의식에 작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당신이 심사숙고 끝에 도달한 결론만을 들은 친구처럼, 우리는 무의식적 충동의 결과만 알 뿐 그 과정은 알지 못한다. (친구가 심사숙고한 계획을 믿고 결정 하는 행동과 무의식에서 감정에 의해 결정한 내용을 내가 고민해서 내린 결정과 유사하다는 이야기) 감정은 무의식 수준에서 충동을 일으켜 눈치껏 그 충동을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행동은 충동의 결과일 뿐이다.
믿음이 실질적인 지배자인 까닭은 무의식중에 충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충동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충동을 따르는 것은 자동적인 반응이지만,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서 습관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을듯. 습관이란 노력으로 자동화 시켜 놓는 행동이라고 봐도 될듯)
믿음은 단순히 행동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집중하고 선택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권총을 소지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면, 이 믿음을 뒷받침할 수만 가지 이유를 떠올릴 것이다. 반면에 권총이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총기 소지를 반박하는 모든 의견에 자연스럽게 끌릴 것이다. 또한 믿음은 우리 믿음에 도전하는 모든 주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평가절하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이 모든 과정이 즉각적으로 일어나고, 우리는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편향된 증거를 가진 개인적인 믿음을 뜻한다.
감정은 무의식에서 작업 기억과 주의력과 추론 능력을 변화시킨다. 이렇게 인지 기능을 제어함으로써 경험상 가장 생산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편향시킨다. 대부분 과거의 경험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믿지만, 기억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 현재의 마음이라는 필터를 거쳐 과거의 경험에서 핵심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마음이 바뀌면 필터도 바뀌고 기억도 바뀐다.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믿음을 업데이트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추적 관찰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세부 정보를 축적한 뒤, 대부분의 정보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린다. 조지프 던스무어는 '감정적인 사건을 겪고 나면 실제로 기억이 바뀔까?'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의미 있는 사건이나 감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과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넘겨버린 정보도 선택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감정적 사건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전 기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충격 기억 실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 결과는 기억 체계가 적응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 사건을 회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보나 세부 사항을 새롭게 학습하면 이전 기억까지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기억력 강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곧 역행성 기억 강화가 장기 기억 저장을 촉진하면서 발생한다는 의미다.
1986년 나사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한 다음 날, 설문지 조사로 사고가 발생한 날에 어디서 누구와 있을 때 그 소식을 처음 접했는지를 설문지에 적어 제출하게 한 실험. 3년 뒤 같은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다양하게 변형된 대답을 내놓았다. 일부 학생은 완전히 다른 기억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3년전 작성한 답변이 날조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파탄 난 관계에서 자주 발생하곤 한다. 다툼으로 점철된 이별의 먹구름이 추억을 덮어 아름다웠던 모든 시간이 쓸쓸한 사건으로 전락해버린다. 함께했던 경험 자체는 망가지지 않지만 기억은 망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에게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믿음이 한 번 수정되면,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던 메커니즘이 수정된 믿음을 확정한다. 이제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 이 새로운 사고방식에 따르는 새로운 필터를 거치게 된다. 이전에 지녔던 믿음은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믿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믿음의 변화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우리는 변화된 믿음에 즉각 적응하기 때문이다.
강렬한 감정적 반응처럼 극적인 표시를 남기지 않는 한, 대부분은 믿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믿음의 전환은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 과거 기억에 영향을 미치거나 업데이트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그 순간에 발현된 것이다. 관점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실제로 무엇이 옳은지보다 옳다고 느끼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믿음은 언제나 옳다, 적어도 내 믿음은
트럼프가 당선되리라곤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수백만 미국인이 이제는 이렇게 주장한다. "난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럴 조짐이 보였다니까?" 새로운 지식이 기존의 지식을 즉각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나면 과거의 지식이나 믿음이 변화하는 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이 남는데, 여기서 정신 능력의 한계가 드러난다. 일부일지라도 일단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그 즉시 이전에 믿었던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대부분 손상된다.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본능적으로 이전에 느꼈던 놀라움을 축소해버린다.
현실에 비추어 과거의 믿음을 수정하는 경향은 강한 인지적 착각을 유발할 수 있다. 과거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비로소 이해되고, 과거에도 충분히 예상했다'고 믿고 싶은 강렬한 인지적 충동을 억누르기 어렵다.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증폭시킨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금융전문가가 예이다. 하지만 일어난 일에 이유는 잘 만들어낸다.
인간은 종종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을 편향된 시선으로 본다. 성공은 내 능력 덕분이고, 실패는 외부 사건 탓이다. 중요한 사실은,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면 기쁨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러한 감정적 보상이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해 다음에도 정확하게 예측하라고 유도한다. 우리는 보통 빗나간 예측을 빠르게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거나 합리화한다. 믿음은 우리가 예측 능력이 뛰어나다고 착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더 뛰어나게 만든다.
믿음은 모든 면에서 나를 더 뛰어나게 만든다
일이 잘못되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뭐가 발에 걸리는 바람에 넘어졌어." "네가 우유를 꺼내놓는 바람에 흘렸잖아." "차가 엄청 막히는 바람에 늦었어." 끝이 없다. 반대로 일이 계획대로 풀려 원하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는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린다. 우리는 결과가 좋을 때만 자기 능력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 하면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런 일이 발생 하지 않으면 자신의 예측이 틀리지만 않았다면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올테니 자신의 능력 덕분이 맞을 수도.
본질적으로 당신은 항상 옳거나, 적어도 거의 항상 옳다. 믿음은 옳다. 그저 혼란스러운 상황이 훼방을 놓을 뿐이다.
이는 우리가 일관되게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일이 잘 풀리면 의도한 것이고 내 덕이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우리는 의도한 것이 아니고 남 탓이다. 이러한 불균형한 추론으로 대개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한다. 직장인들은 회사 일을 거의 다 자기가 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는 확증편향의 한 형태다. 첫 번째 이유는 스스로 가장 중요한 기준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게 기준을 설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키가 작고 빠른 선수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키가 크고 느린 선수는 리바운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흔히 잘나갈 때는 우연이 아니라 노력이 보답받았다고 믿는다. 반면 경쟁자가 잘나갈 때는 운이 좋았다고 치부한다. 이러한 경향을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할 때는 개인적 특성을 과장하고 상황적 요인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자기 자신에게는 정반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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