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장 홍수 이후
바벨의 거대한 앨범
모든 책 안에 다른 책이 있고,
모든 페이지에 있는 모든 글자에
다른 책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들 책은 책상 위에서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
지식이 정수로 축소될 수 있고,
그림과 기호 안에 담기고,
어디에도 없는 장소에 담긴다고 생각해보라.
힐러리 맨틀(2009)
(다른 사람들이 우주라고 부르는) 이 도서관은 모든 정보를 소장한다. 하지만 모든 지식이 모든 오류와 함께 나란히 꽂힌 채 거기 '있기' 때문에 어떤 지식도 발견할 수 없다. 거울의 회랑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반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고,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완벽한 정보 과잉의 사례는 없다.
우리는 나름의 창고를 만든다. 우리 시대 특유의 정보의 지속성, 망각의 어려움으로 혼란이 커진다. 아마추어들이 협력하여 만드는 위키피디아라는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이 분량과 포괄성 면에서 세상의 모든 인쇄판 백과사전들을 따라잡기 시작하자 편집자들은 너무 많은 표제어들이 다양한 뜻으로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의성해소는 계속해서 가지를 친다. 우리는 수많은 바벨의 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훨씬 앞서 보르헤스는 "<영미 백과사전>으로 잘못 불린" 백과사전에 대해 썼다. 이 백과사전은 사실과 뒤섞인 허구의 토끼 굴, 또 다른 거울들과 오자들의 방, 자신의 세계를 투사하는 순수하고도 불순한 개설서였다. 이 세계는 틀뢴으로 불린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썼다. "이 멋진 신세계는 천문학자, 윤리학자, 화가, 기하학자 등으로 구성된 비밀 모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이 계획은 너무나 방대해서 각 저자의 기여도는 극히 적다. 처음에 틀뢴은 단순한 카오스이자, 상상력을 무책임하게 허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코스모스로 알려져 있다."
보르헤스에 훨씬 앞서 찰스 배비지는 또 다른 바벨의 도서관을 상상했다.
우리가 숨 쉬는 이 광활한 대기는 얼마나 이상한 카오스인가!.... 공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며, 공기의 페이지들 위에는 지금까지 남자들이 말하고 여자들이 속삭인 모든 것이 영원히 적혀 있다. 거기에, 변할 수 있지만 틀림없는 글자들 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최초의 한숨과 최후의 한숨이 뒤섞이고, 영원히 기록되며, 이행되지 않은 맹세와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인간의 변덕스러운 의지와 증거인 각 입자들의 통일된 운동 안에 영원히 남는다.
베비지와 포는 새로운 물리학의 정보이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라플라스는 완전히 뉴턴의 기계적 결정론에 빠져 있었다. 라플라스는 뉴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느 것도 우연에 좌우되지 않는 태엽 장치 같은 우주를 주장했다.
이 존재는 우주의 가장 큰 천체들의 움직임과 가장 작은 원자의 움직임을 같은 공식으로 아우른다. 이 존재에게는 어느 것도 불확실하지 않을 것이며, 미래는 과거처럼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라플라스의 이 사고실험은 신의 의지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지도 쓸모없게 만들었다. 과학자들에게 이 극단적인 뉴턴주의는 낙관적인 전망의 근거로 보였다. 배비지에게 만물은 갑자기 거대한 계산기관, 자신이 만든 결정론적 기계의 거대 버전으로 보였다. "몇 개의 톱니바퀴를 병렬해 얻은 이 단순한 결과에서 눈을 돌리면, 광대하고 훨씬 더 복잡한 자연현상이 이와 비슷한 추론을 적용할 수 있음을 알 수밖에 없다."
각 원자는 일단 흔들리면 그 운동을 다른 원자들에게 전달해야 하고, 결국 공기의 파동에 영향을 미치며, 어떤 충격도 영원히 완전하게 소실되지 않는다. 모든 카누의 흔적은 바다 어딘가에 남는다. 두루마리 종이에 기차의 이동 내력을 펜으로 그리는 기록 장치를 만들었던 배비지는 이전에는 사라져버렸던 정보를, 존재했거나 보존될 수 있는 일련의 물리적 흔적으로 봤다. 배비지는 대기를 의미를 가진 운동기관으로 보았다.
배비지는 이렇게 썼다. "모든 원자는 철학자와 현자들이 전해주고, 또 무가치하고 천한 모든 것과 수천 가지 방식으로 섞이고 합쳐진 말로부터 좋고 나쁜 영향을 받는다." 지금가지 발화된 모든 말은 청중들이 들었든 아무도 듣지 않았든 간에, 절대 공기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아울러 인간의 말은 운동 법칙에 따라 암호화되어 완전히 기록되는데, 이론상(충분한 연산력이 있다면) 복원될 수 있다.
지나치게 난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배비지가 논문을 발표한 바로 그해 파리의 화가이자 화학자인 루이 다게르는 은박판에 시각적 이미지를 완벽하게 담아낸다. 경쟁자였던 영국의 윌리엄 폭스 탤벗은 이를 "발광 그림 기법 혹은 햇빛을 이용하여 자연물의 그림이나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법"이라고 불렀다. 탤벗은 밈과 같은 것을 보았다. "화가가 그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계 장치를 통해 그림이 '그 자신'을 만든다." 이제 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을 고정하고, 물질에 새기며,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이 있고 훈련을 받은 화가는 눈으로 본 것을 오랜 시간 작업을 통해 채색이나 그림을 재구성한다. 반면 은판사진은 어떤 의미에서 사물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사물 자체를 순간적으로 저장한 정보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혼란을 일으켰다. 일단 저장이 시작되면 어디서 멈출 것인가? 배비지는 모든 말이 공기 중 어딘가에 기록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어쩌면 모든 이미지 역시 영원한 흔적을 남길지도 몰랐다. 어딘가에 말이다.
사실상 바벨의 거대한 앨범이 존재한다. 하지만 또한 태양의 중요 업무가 기록원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가 지닌 모습의 인상, 우리가 하는 행동의 그림을 남기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래서 ... 우리 모두가 아는 것과 달리 다른 세상은 어쩌면 사람들의 이미지가 살고 행동하며, 이런 이미지에서 그리고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온 거래로 이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체의 보편적인 본질은 그저 소리와 이미지의 구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 혹은 앨범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따라서 컴퓨터를 닮게 된다. 튜링은 컴퓨터를 우주처럼 상태의 집합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고, 모든 순간의 기계의 상태는 다음 순간의 상태로 이어지며, 다라서 기계의 모든 미래는 최초의 상태와 입력 신호로부터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주는 자신의 운명을 연산하고 있는 것이다.
튜링은 완벽함에 대한 라플라스의 꿈이 우주가 아니라 기계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유는 한 세대 후에 카오스 이론가들에게 발견되고 나비효과로 불리게 될 현상 때문이었다.
'전체로서의 우주' 계에서는 초기조건의 아주 작은 실수가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어느 순간에 하나의 전자를 수십억분의 1센티미터만 이동시켜도 1년 후 어던 사람이 눈사태로 죽거나 아니면 탈출하는 그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우주를 컴퓨터라고 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그 메모리에 접근하려고 애쓰는 것일 수도 있다. 배비지는 이 정보 저장고를 "카오스"라고 불렀다.
위키는 자신을 창조했고, 적어도 자신을 유지했다. 위키피디아는 집단 지성 개념의 시금석이 되었다. 사용자들은 학위도 없고, 신원 확인도 안 되며, 어떤 편견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권위적인 투로 작성한 항목들의 이론적, 실제적 신뢰성을 놓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위키피디아는 반달리즘으로 악명이 높았다. 또한 분쟁이 일어나고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중립성과 의견 일치에 이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혹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과정은 소위 편집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따금 소동이 벌어지고 나면 항목들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일종의 평형상태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역동적이고 불안정하다. 위키피디아 우주에서 현실은 변경 불가능한 최종적 상태가 없다. 최종적이라는 관념은 가죽과 종이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의 고체성 대문에 생겨난 환상이다.
<브리태니커>가 권위를 지녔기 때문에 뉴턴의 중력이론은 아직 지식이 아니었다. 위키피디아는 이런 종류의 권위를 거부한다. 연구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위키피디아를 불신한다. 그래도 권위는 생긴다. 항목은 날마다 바뀐다. 위키피디아 전체가 그렇다. 매 순간 독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진실 중 하나의 형태를 볼 뿐이다.
위키피디아는 여러 방향으로 새로운 가지를 뻗으면서 나뭇가지 모양으로 진화한다. (이 점에서 우주를 닮았다.) 그래서 삭제주의와 포괄주의는 통합주의와 점증주의를 낳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파벌주의로 이어지고, 파벌들은 '삭제주의자 위키피디아인 연합'과 '일반 범주에 속하는 항목의 가치성에 대한 폭넓은 판정을 싫어하며, 일부 매우 부실한 항목들의 삭제를 지지하지만 삭제주의자는 아닌 위키피디아인 연합과 협력하는 포괄주의자 위키피디아인 연합'으로 분열한다.
이름은 특별한 문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똑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뜻이 다르고, 이름의 복잡성 그리고 이름들 간의 충돌로 인해 특별히 중요해진 것이다. 거의 무한하게 정보가 흘러가면서 세상의 모든 항목들이 단 하나의 경기장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현대 세계에서는 이름이 바닥나고 있다. 가능한 이름의 목록은 무한해 보이지만, 수요는 훨씬 더 크다.
의약품 명칭은 좀 특별하다. 그 과정이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보와 관련된 모든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정보의 척도는 기하급수적인 규모로 커졌다.
한때 인류가 생산하고 소비한 정보는 소멸해버렸다. 이게 정상이고 기본이었다. 눈에 보이는 광경과 소리, 노래, 발화된 말들은 그냥 사라졌다. 돌과 양피지 그리고 종이에 새겨진 표시는 특별한 경우였다. 소포클레스의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그의 희곡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연극을 즐겼던 것이다. 이제 이런 기대는 뒤집어졌다. 모든 것들이 기록되고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 모든 입자가 갖는 모든 수준의 자유"를 감안할 때 우주는 현재 10의 90승 비트 정도를 담을 수 있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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