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매일 새로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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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든보는 '더 많은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통신수단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사실 소통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1979년 아이젠슈타인의 <변화의 매개체로서의 인쇄기>가 출간되기 전가지 인쇄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에 필수적인 통신 혁명이었음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필사에서 인쇄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15세기 유럽 도시들에서 인쇄소가 늘어났으며, "데이터 수집과 저장 그리고 검색 시스템과 통신 네트워크"의 변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이젠슈타인은 독자들에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의 탄생이라는 근대 초기 유럽의 변화에서 인쇄가 필수적인 역할을 했음을 각인시켰다. 인쇄의 발명은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인쇄는 근대적 정신을 형성했다.
인쇄기의 진정한 힘은 텍스트를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젠슈타인은 "필사 문화는 부식과 부패 그리고 망실로 인해 끊임없이 약화되었다."라고 썼다. 인쇄는 믿을 수 있고, 확실하며, 항구적이었다.
아이젠슈타인은 역사학이 일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브라이든보는 문제를 정확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망각이 문제라고 생각한 브라이든보는 "내가 보기에 인류는 기억상실에 다름없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여기서 기억이라 함은 역사이다." 아이젠슈타인은 선배 역사학자들을 매우 곤란하게 만든 똑같은 새로운 정보기술을 보면서 상반된 교훈을 이끌어냈다.
과거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잘 접근할 수 있고, '더' 잘 볼 수 있게 변하고 있었다. "미케네 그리스어를 해독하고 사해문서를 발견한 시대에 '인류의 기억상실'을 걱정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기억 회로의 과부하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이는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처한 곤경에 대한 오독이다. 현재의 어려움은 기억상실증의 엄습이 아니라 이전의 어떤 세대들이 경험한 것보다 더 완벽해진 기억 능력에서 기인한다. 망각이 아닌 안정적인 기억 회복, 기억상실이 아닌 기억의 축적이 현재의 난국을 초래했다.
아이젠슈타인이 보기에는 500년 동안 지속된 의사소통 혁명은 아직도 탄력이 붙고 있었다.
"회로의 과부하"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새롭게 느낀 감각을 표현하는 꽤나 새로운 비유였다. 넘치는 정보는 항상 새롭게 느껴졌다.
버튼은 정보 과잉을 새로운 것으로 생각했다. 즉, 불평이 아니라 그저 경이로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반발이 뒤따랐다. 라이프니츠는 "계속 늘어나는 끔찍한 양의 책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야만으로의 회귀를 우려했다. "결국 무질서는 거의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포프는 "그때, (신의 섭리가 식자들의 죄에 대한 천벌로 인쇄의 발명을 허락한 이후) 종이는 너무나 사지고 인쇄업자들은 너무나 많아져서 저자들의 홍수가 땅을 뒤덮었다"라고 비꼬았다.
수많은 그럴듯한 이야기들 속에서 진실을 찾기란 더 어려워 보인다.
'정보이론'이 등장한 이후 '정보 과부하', '정보 과잉', '정보 불안', '정보 피로'가 등장했다. 2009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정보 피로'를 등재한다.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됨으로써 나타나는 무감각이나 무관심 혹은 정신적 소진, 특히 미디어나 인터넷 혹은 일에서 접하는 과도한 양의 정보를 소화하려는 시도가 초래하는 스트레스." 때로 정보 불안은 지루함과 공존하면서 특히 혼란스러운 조합을 이룬다.
2007년 월러스는 "완전한 소음"이라는 더 불길한 이름을 붙였다. 월러스는 정보의 홍수에 따른 익사와 자율의 상실 그리고 '정보를 얻는' 데 따른 개인적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모든 정보를 따라잡으려면 대리인과 하청인이 필요하다.
불안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은 정보와 지식 사이의 격차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데이터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식은 계몽이나 지혜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오래된 깨달음이었지만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특히 모든 비트가 동일하게 생성되고 정보가 의미와 결별한 세상에서 다시 언급되면서 등장한다.
인문주의자이자 기술철학자인 루이스 멈포드(1970)는 이렇게 다시 언급했다. "안타깝게도 '정보 검색'이 제아무리 빠르다해도 직접 개인적으로 조사해서 이전까지는 결코 알지 못했던 지식을 발견하고, 이렇게 자신의 속도에 맞게 관련 문헌을 더 세밀하게 찾아가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 멈포드는 "도덕적 자기 훈련"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한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자기들만의 학문적 방법론으로 정보 과부하를 연구하면 엇갈리는 결과가 나온다. 일찍이 1963년 두 명의 심리학자는 임상적 진단과정에서 추가 정보가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하려 시도했다. 이들은 예상대로 "너무 많은 정보"가 종종 판단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리학자들은 논문에 "때로 아는 것이 지나칠 수도 있는가?"라는 제목을 붙이고 다소 유쾌하게 다른 제목들을 덤으로 나열했다. "절대 너무 많은 것이 너무 적게 일하게 하지 마라.", "지금 더 얻지만 덜 예측하고 있나요?", "너무 많은 정보는 위험하다".
`960년대에 정보 부하와 정보처리의 관계는 대개 "뒤집힌 U자 모양"을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초기에는 많은 정보가 도움이 되지만 이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나중에는 사실상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실험을 토대로 "최적을 넘어선" 정보 부하는 좋지 못한 성과를 낸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정보 부하가 큰 상태에서도 피험자들이 여전히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가 되자 연구자들은 "정보 부하 패러다임"에 대해 대담하게 이야기했다. 이 패러다임은 사람들이 제한된 정보량만을 '흡수'하거나 '처리' 할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다양한 연구자들이 정보 과잉은 혼란과 좌절뿐만 아니라 관점을 흐리게 하고 부정직함을 야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정보 과잉으로 인해 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지장을 받는다고 느꼈다. 연구의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정보 과부하는 실재한다. 또한 '코드 프레이즈'인 동시에 미신이다. 연구는 계속 진행될 뿐이다.
찰스 베넷이 "우리는 신문을 받아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지, 신문을 가져가라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정보를 부담으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혼란스럽다. 그러나 연산의 열역학은 맥스웰의 도깨비가 오늘 일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을 어제의 신문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현재 경험도 똑같은 사실을 가르친다. 망각은 결점, 낭비, 노쇠의 징조였다. 하지만 이제 망각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망각은 기억만큼 중요할지도 모른다.
사실들은 한때 값이 비쌌으나 지금은 싸다. 이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것은 태어날 대 갖고 태어나는 권리로 여겨졌다. 마침내 모든 정보를 가졌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비평가 알렉스 로스는 "충만의 자리에 불안이 들어서고 갈망과 불쾌의 중독적인 주기가 형성된다. 한 경험이 시작되자마자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이 끼어든다." 풍요로움의 낭패.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또다시 떠오르게 한다.
여기서 대응 전략들이 등장한다. 근본적으로 필터와 검색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정보에 잔뜩 지친 소비자는 필터를 이용해 쭉정이와 알맹이를 분리한다. 선택은 신뢰와 취향의 문제를 제기한다. 풍부한 정보의 경이로움을 다룬 모든 사고실험에는 필터의 필요성이 개입한다.
데닛은 자신의 완전한 시 네트워크를 상상하면서 이 문제를 개달았다. "집단 밈 연구에서 명백한 역가설이 등장한다. 이런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좋은 시를 찾는다고 엉터리 시로 가득한 수천 개의 전자 파일을 힘겹게 읽을 시 애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필터, 즉 편집자와 평론가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들은 지성 사이의 전달 매체가 무엇이든 간에 공급이 달리고 지성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번창한다." 정보가 저렴해지면, (특정 정보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이 비싸진다.
같은 이유로 검색 메커니즘(사이버공간의 '엔진들')은 짚더미에서 바늘을 찾는다. 이제 우리는 정보가 '존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파일"은 원래 16세기 영국에서 보관하고 참고하기 위해 전표나 청구서, 메모, 편지를 매다는 선이었다. 그러고는 파일 폴더, 파일 서랍, 파일 캐비닛이 등장했고, 이후 전자시대에도 이 모든 것들과 똑같은 이름을 쓴다. 불가피하게 모순이 생겼다. 정보의 어떤 단편이 '파일'에 들어가면 통계적으로 다시 눈에 띌 가능성이 아주 낮다.
드 모르간은 모든 책에게 도서관은 폐지 창고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가치 있고 유용하며 접근하기 쉽지만, 단지 도서관에 있다는 이유로 그 작품이 알려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원할 경우 신청할 수 있지만 그 전에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서관을 샅샅이 뒤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보가 너무 많고, 또 너무나 많은 정보가 분실된다. 색인이 없는 인터넷 사이트는 도서관의 잘못된 서가에 꽂힌 책과 마찬가지로 연옥이다. 정보 경제에서 성공하고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필터링과 검색을 기반으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 위키피디아도 검색과 필터링이 결합된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 구글에 의해 진행되는 검색과, 올바른 사실을 모으고 잘못된 사실을 차단하려는 방대하고 협력적인 필터의 결합이다. 검색과 필터링은 이 세계와 바벨의 도서관 사이를 가르는 모든 것이다.
새로운 정보기술이 기존 환경을 바꿀 때 단절이 일어난다. 관개와 수송의 흐름을 재설정하는 새로운 물길과 댐이 생기는 것이다. 창조자와 소비자, 즉 저자와 독자, 화자와 청자 사이의 균형이 흔들리고, 시장의 힘은 혼란에 빠진다. 정보는 너무 싸 보이면서도 너무 비싸게 보일 수 있다. 지식을 정리하는 옛날 방식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누가 검색할 것인가? 누가 여과할 것인가? 단절은 두려움과 뒤섞인 희망을 낳는다. 라디오가 막 등장했던 시절,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라디오에 깊이 빠져들었던 블레히트는 이런 감정을 금언처럼 표현했다. "할 말이 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는 화자는 서글프다. 자신에게 해줄 말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청자는 더 서글프다." 셈법은 언제나 바뀐다. 블로거와 트위터러들에게 물어보라. 너무 많은 입과 너무 많은 귀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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