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패러다임의 이동
1.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부의 미스터리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부'라는 것은 고정된 개념이 아님을 보여 준다. 가치는 누군가가 특정 시점에 이를 얻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것에 달렸다는 것이다.
부는 맨 처음 어디에서 오는가? 이마의 땀과 머릿속의 지식이 어떻게 부의 창출로 이어지는가? 세계는 왜 시간이 갈수록 부유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소를 교환하다가 마이크로 칩을 교환하는 데까지 이르게 됐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우리는 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떻게 보다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이르게 된다.
"우리 사회의 부를 어떻게 더 증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경영자들은 어떻게 회사를 성장시켜 더 많은 일자리와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정부는 어떻게 부를 증대시키고 가난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전 세계의 모든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교육과 건강, 기타 중요한 목표를 위해 필요한 자원을 방출할 것인가? 그리고 세계 경제는 어떻게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부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난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이 탐색하고자 하는 문제, 즉 "부는 무엇인가? 부는 어떻게 창출되는가? 부를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는가?"는 오랜 경제학의 질문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 특히 진화 이론과 '복잡 적응 시스템'은 앞에서 지적한 오랜 경제학적 숙제에 대해 과격할 정도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의 가장 복잡한 창작품
모든 활동의 복잡성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 전체를 다루기 위한 리스트는 과연 어떠할지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럼에도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바닥에서부터 스스로 조직화되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는 정말 경이로울 만큼 복잡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를 설계하지 않았다. 운영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경제의 특정 부분을 관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36조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경제 전체를 바라보면 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경제가 여기에 이르게 됐는가? 과학은 우리 역사가 자연의 상태, 말 그대로 우리 몸에 걸칠 셔츠 하나도 없는 그런 상태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주고 있다. 인류는 어떻게 자연 상태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기 조직화된, 복잡한 지금의 글로벌 경제로 옮겨 온 것일까?
250만 년의 경제 역사
사람들은 인류경제의 발전이 천천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실상은 이와 다르게 훨씬 극적이다.
첫 번째 인류의 경제 활동은 주로 가까운 친척들로 이루어진 유랑민 사이에서 식량을 구하거나 기본적인 도구를 제작하는 일에 국한됐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3만 5천 년 전쯤에 이르러서야 무덤, 동굴 벽화, 장식품 등 좀 더 정착된 생활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초기 인류들의 '집단 간' 거래의 증거를 보기 시작한다.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큰 이익 중 하나가 전문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친척들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협력적인 거래는 인간만의 독특한 활동이다. 그 어떤 종도 이방인과의 거래와 노동 분업의 결합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인간 경제의 특징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능력인 거래는 다른 원시 종족들과의 경쟁에서 큰 우위로 작용했고, 그 결과 우리 조상들은 생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두 부족 이야기
두 부족이 있다. 하나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경계에 있는 석기 수렵,채집민인 야노마모족이고 다른 하나는 휴대폰을 쓰고 카페라테를 즐기는 뉴요커들이다. 이 두 부족은 똑같은 약 3만 개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양식은 엄청나게 다르다.
평균적인 뉴요커들의 경제적 선택의 수는 엄청나다. 뉴욕과 야노마모 경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지 1000배나 차이 나는 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과 야노마모 경제 간의 수억 배 차이 나는 복잡성과 다양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 25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현상이 무엇인지 감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추가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 경제처럼 복잡하고 고도로 구조화된 체계가 어떻게 창출될 수 있고 또 어떻게 자기 조직화되고 상향식으로 작동될 수 있는가?
- 경제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시간에 따라 증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경제의 복잡성과 경제의 부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부의 증가와 복잡성이 완만하게 증대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부는 무엇이며, 어떻게 창출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라면 이런 질문들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는 진화한다
현대 과학은 바로 그런 이론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부를,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한 3단계 공식, 즉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공식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진화는 하나의 '알고리즘'이다. 이는 혁신에 이르는 만능의 공식, 다시 말해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가는 공식이다. 진화는 DNA라는 특정 기질에서만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처리와 정보 저장의 특성을 갖는 모든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요약하면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간단한 처방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한 형태로 새로움과 지식, 성장을 창조하는 프로그램이다. 진화는 정보 처리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정신, 인간 문화, 경제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경제를 진화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최근의 연구는 은유법보다는 진화의 보편적인 알고리즘이 어떻게 인간 경제 활동이라는 정보 처리 기질에서 실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물학적 시스템과 경제학적 시스템이 진화의 핵심 알고리즘을 공유하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고 있지만 진화의 구체적 실현은 사실상 서로 매우 다르다. 때문에 각각의 상황을 감안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글로벌 경제를 은유적인 진화 시스템으로 보는 것과, 말 그대로의 진화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경제 시스템이 생물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반면 경제 시스템과 생물학적 시스템 모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진화 시스템의 부분 시스템이라고 보는 것이 과학적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이 가진 특징들을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자연스러운게 좋은 거야 라는 의미)
경제가 정말 진화 시스템이고, 또 진화 시스템의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면 일반적인 경제학적 법칙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것은 많은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제학적 법칙이 있다는 말이 우리가 경제에 대해서 언제나 완벽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19세기 후반에 철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을 사회, 경제적 영역에 무턱대고 적용하려고 했다.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원칙을 계급 불평등, 인종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기타 사회적 불공정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우리가 논의할 경제적 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옛날의 사회적 다윈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왜냐하면 경제 발전에서 협력은 적자생존이라는 개인주의만큼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리로 어떤 이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른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 변혁이 초래한 수많은 재앙들을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논의할 새 이론은 경제 현상이 왜 예측하기 어려운지, 동시에 사회 변혁을 위한 대대적인 시도가 왜 역사적으로 실패했는지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최적 디자인의 창조
진화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진화에 대해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을 만드는 다목적용 알고리즘이라고 말한다.
진화는 시행착오를 통해 디자인을 창조한다.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디자인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디자인들을 만들어 해당 환경에서 시험해 보고, 여기서 성공적인 디자인은 살아남아 반복되는 실험을 거쳐 수용되는 반면, 성공적이지 못한 디자인은 버려진다.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특정한 목적과 환경에 적합한 디자인이 나온다.
그리고 진화는 과거의 성공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의 디자인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적당한 조건이 충족되면 유한한 자원을 놓고 디자인 간 경쟁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조가 더 커지고 복잡해진다. 때때로 놀라울 정도로 변화한다. 진화는 수많은, 거의 무한대의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색해서 특정한 목적과 환경에 적합한 극소수의 디자인들을 찾아낸다.
진화는 가능성이라는 건초 더미에서 좋은 디자인이라는 바늘 몇 개를 발견하는 알고리즘이다.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합리성과 창의력이 부를 창조하는 주된 동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익숙해 있다. 부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 제품과 서비스를 생각해 내는 똑똑하고 혁신적인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판매하는 많은 노력들에 의해 창출된다.
인간의 합리성과 창의력이 부의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합리성과 창의력은 경제에서 진화 알고리즘의 작동에 영양분을 주고 그 형태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의 디자인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수많은 디자이너들은 셔츠는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이미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합리성과 창의력을 활용해 모든 다양한 종류의 셔츠를 창안해서 밑그림들을 그린다. 그다음에는 스케치를 보고 소비자들이 좋아할 디자인들을 골라내 샘플들을 만든다.
이 샘플들을 경영진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그중에서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으로 보이는 디자인들을 추려 낸 뒤 제조를 지시한다. 제품들을 만들어 여러 소매업자들에게 보이면 그들이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는 디자인을 골라낸다. 이 과정을 거쳐 주문을 토대로 생산을 늘려 소매업자들에게 셔츠를 공급한다.
그 뒤 당신이 이 가게에 들어와 다양한 셔츠들을 둘러본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산다. 이는 디자인의 차별화, 적합도의 기준에 따른 선택, 그리고 성공적인 디자인의 증식 또는 확산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당신의 셔츠는 디자인된 게 아니라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당신의 셔츠가 디자인된 게 아니라 진화된것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모든 가능한 셔츠 중에서 당신이 과연 어떤 종류의 셔츠를 선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힘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에서의 예측은 매우 단기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경제적 의사 결정을 할 때 두뇌를 가능한 한 최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실험을 하고 개선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헤쳐 간다. 그 과정에서 유용한 것은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도, 합리성, 그리고 창의성은 경제의 동력으로서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다 큰 진화 과정의 부분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경제적 진화는 단일 과정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된 다음 세 가지 과정들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기술의 진화다. 기술은 역사적으로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다. 진화경제학자 리처드 넬슨은 사실 두 가지 기술이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물리적 기술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기술이라고 생각해 오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기술이다.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법들이다. 정착 농업, 법규, 화폐, 회사, 벤처 자본 등이 그런 예들이다. 넬슨은 물리적 기술들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적 기술도 똑같이 중요하고 이 두 가지는 서로 공진화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은 모두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상호 작용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춤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의 공진화도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아직 하나가 더 있다. 사실 기술은 아이디어나 디자인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실제로 공장이라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누군가는 혹은 일단의 사람들이 물리적, 사회적 기술들을 개념이 아닌 현실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 영역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물리적, 사회적 기술을 함께 융합시켜 제품과 서비스라는 형태로 만들어 낸다.
기업은 그 자체가 디자인의 한 형태다. 기업의 디자인은 전략, 조직 구조, 경영 과정, 문화,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다른 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다. 기업 디자인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별화-선택-증식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진화한다. 이때 시장은 그런 디자인이 적합한지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경제에서 변화와 성장의 패턴을 보여 주는 기업 디자인, 이 세 가지의 공진화 현상이다.
복잡계 경제학
경제를 하나의 진화 시스템으로 보는 개념은 급진적 아이디어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진화 이론과 경제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인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 진화론적 사고는 주류 경제학 이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이후 경제학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은,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 특히 정지 상태의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경제학자들이 영감을 얻은 곳은 생물학이 아니라 물리학이었다. 그중에서도 운동과 에너지의 물리학이다.
지난 100년 동안 경제학의 주류 패러다임은 경제를 하나의 균형점에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 정치, 소비자 취향의 변화, 그리고 다른 외부적 요인들 때문에 새로운 균형점으로 이동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묘사해 왔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의 관심은 그런 균형 상태와는 거리가 먼, 역동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단 한 번도 정지 상태에 접어들지 않는 시스템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형태의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요약 하자면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수많은 요소들 혹은 입자들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그런 시스템에서 요소들이나 입자들의 미시적 차원의 상호 작용들은 거시적 차원의 행태 패턴으로 나타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고립되어 존재하는 물 분자는 좀 지루하다. 그러나 수십억 개의 물 분자를 모아 놓고 에너지를 가하면 소용돌이라는 복잡한 거시적 패턴이 나타난다. 이런 형태의 소용돌이는 개별 물 분자들 간 역동적인 상호 작용의 결과다. 하나의 물 분자로는 이런 소용돌이를 만들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물 소용돌이 시스템 그 자체의 집단적인 또는 창발적인 특성인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 과학자들이 복잡계의 행태에 대해 보다 많이 알게 되면서 이들의 관심도 그쪽으로 옮겨 갔다. 이들은 물 분자들처럼 고정된 형태를 갖는 단순한 것들이 아니라 지능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그런 시스템에 흥미를 갖게 된다. 물 분자들은 그 행태를 환경에 맞춰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개미들은 그럴 수 있다. 이들은 다른 개미와 주변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그에 따라 행태를 바꾸어 나간다.
하나의 물 분자처럼 개미 한 마리 그 자체로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수천 마리의 개미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그들은 서로 상호 작용도 하고, 화학적 신호를 통해 의사소통도 한다. 또한 정교한 개미탑을 쌓거나 공격자들의 공격에 대비해 복잡한 방어벽을 구축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들의 활동을 통합, 조정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정보를 처리하고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요소나 입자들을 '행위자'라고 부르고, 이 행위자들이 상호 작용하는 시스템을 '복잡 적응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 면역 체계 내의 세포들, 생태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유기체들, 그리고 인터넷 이용자들도 복잡 적응 시스템의 또 다른 사례들이다.
과학자들이 이 시스템을 더욱 잘 이해하자 이런 시스템들이 공통점을 많이 갖는 하나의 보편적 그룹을 형성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회과학자들 역시 경제도 복잡 적응 시스템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경제의 가장 확실한 특성은 서로 교류하고, 정보를 처리하며, 행동을 환경에 맞게 적응시키는 인간들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 연구자들은 전통적 모델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경제 현상 모델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델들은 경제를 정태적인 균형 시스템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균형은 보이지 않고, 역동적인 활동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는 마치 '꿀벌 통'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물 분자의 상호 작용으로 소용돌이라는 형태가 일어나듯, 현실 경제에서도 수많은 행위자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경제에 흥망성쇠의 복잡한 패턴, 그리고 혁신의 파고 등이 일어난다는 점을 이 모델들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렇게 경제를 하나의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노력들은 지난 10년 동안 급속히 증대되었다. 나는 이런 작업들을 '복잡계 경제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말을 붙였다고 해서 복잡계 경제학에 대한 유일하고 종합적인 이론이 현재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통합된 이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이정표
경제가 정말 복잡 적응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이는 네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지난 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으로 경제를 잘못 분류했다.
둘째, 경제를 복잡 적응 시스템으로 보는 것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도구, 기법, 그리고 이론을 제공해 준다.
셋째, 부는 진화의 산물이다. 경제적 진화 역시 자연 상태에서 출발해 새로운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증대시키면서 지금의 글로벌 경제로 이끌어 냈다.
넷째,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이론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 진동은 학계 차원을 훨씬 뛰어넘었다. 애덤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19세기 자유 무역의 증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의 전망은 혁명에 영감을 주었고 사회주의의 등장을 가져왔다. 신고전 경제학은 20세기 후반 수십 년 동안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상과 일치한다.
끝으로, 우리가 부의 창출 과정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지식을 활용해 경제 성장과 보다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복잡계 경제학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인류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듯이 경제 현상에 대해서도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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