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비판적 고찰 : 혼란과 쿠바의 자동차
역사적으로 과학은 우주를 가능한 한 가장 작은 조각으로 쪼개는, 위에서 밑으로의 요소 환원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여 은하수 수준에서 시작해 원자핵을 이루는 아원자 입자들로 이동하면서 궁극적인 법칙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산타페 연구소 과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접근법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은 그 성질상 복잡계 또는 복잡 시스템들로서 집단적이고 창벌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으므로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유기체를 연구하는 화학에서 하듯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그룹은 판단했다. 유기체는 요소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전체가 개별 요소들의 합보다 더 큰, 복잡 시스템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에 답하려면 유기체를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수십억 개의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해 생명이라는 복잡한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아래에서부터 위로 가는 방식의 이해가 필요하다.
뇌, 생태계, 인터넷, 그리고 인간 사회를 비롯한 광범위한 현상들에서 이렇게 전체는 구성 요소들의 단순한 합보다 더 크기 때문에 앞서 말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고 이 그룹은 느꼈다.
리드는 산타페 연구소에 대한 애덤스의 설명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1987년 리드와 시티코프는 경제학에 관한 학제적인 워크숍을 지원하기로 했다.
거장들의 충돌
미팅 한쪽 편에는 케네스 애로를 팀장으로 한 10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진을 쳤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필 앤더슨을 팀장으로 물리학자, 생물학자, 그리고 컴퓨터 과학자 등 10명이 배치됐다. 나중에는 쟁쟁한 학자들이 더 참가하였다.
양쪽은 각각 해당 분야의 현재 동향을 설명한 다음 열흘 동안 경제적 행태, 기술 혁신, 경기 사이클, 그리고 자본 시장의 작동 등에 관한 논쟁을 펼쳤다. 경제학자들은 물리과학자들의 아이디어와 기법에 흥분했지만 과학자들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순진하고 약간은 거만하기조차 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과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수학적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동시에 경제 문제의 어려움에 진정으로 놀라워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정말 충격을 준 것은 경제학이 또 다른 시대로 후퇴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물리학자에게는 바로 쿠바 자동차와 유사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과학자들 눈에 경제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적 진보와의 접촉 없이 그 자신의 지적 엠바고 아래서 나름대로 이론을 수정, 확장 또는 갱신하면서 굴러온 것처럼 보였다. 물리학자들이 본 것은 바로 발라와 제번스의 유산들이었다. 경제학에서 패커드와 데소토 같은 수학적 유물들을 100년 전에 물리학 교과서에서 한계주의자들이 차용하였던 바로 그 방정식과 기법들이었던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단순화시킨 가정들을 자신들의 모델에 사용하는 방법에 또 한 번 놀랐다. 갈릴레이 시대 이후부터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분석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완벽한 구, 이상적인 기체와 같은 단순화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것이 현실 세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할 정도로 신중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또 이 가정들이 자신들의 이론에서 도출된 결론에 중요한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검정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과학자들이 보기에 극단적으로 가정을 활용하거나 가정에 너무 의존했다.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 중 하나는 경제학자들의 완전 합리성 가정이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이 모든 정보들을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계산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토대로 기초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함으로써 인간 행태를 단순화했다.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충격을 받았다. 가정에 대한 테스트는 현실과 부합하느냐가 아니라 이 가정이 이 분야의 공통적인 흐름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필 앤더슨이 "경제학자들 당신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궁지에 몰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가정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곧바로 응수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당신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가정들
푸앵카레는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은 인간을 무한히 이기적이고 무한히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첫 번째 가정은 그런대로 인정될 수도 있지만 두 번째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시 선도적 과학자들은 경제학이 보다 수학적이고 엄격해지려고 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방정식을 풀릴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을 던져 버리는 것은 가야 할 길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런 비판들을 무시했으며 신고전파 경제학을 구축하는 프로그램은 빠른 속도로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밀턴 프리드먼은 이 논쟁을 다시 촉발시켰다. 경제 이론에서의 비현실적 가정은 그 이론이 예측을 정확히 하는 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몇 년 후 허버트 사이먼은 이에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과학적 이론의 목적은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하는 데 있다. 예측은 이 설명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대한 테스트다. 그러나 테스트하려면 궁극적으로 도출된 결론만이 아니라 설명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를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판가들의 눈에는 전통 경제학의 많은 가정들이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적합한 큰 단위의 지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발라와 제번스를 시작으로 경제학자들은 완전한 합리성, 신과 같은 경매자의 존재 등과 같은 가정들을 임의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오로지 균형이라는 수학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너무도 단순한 세계, 굉장히 영리한 인간
전통 경제학의 모든 가정 중에서 아마 가장 강력하고,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델이다. 종종 완전한 '합리성'을 가리키는 이 모델은 두 가지의 기본적인 가정 위에 세워졌다. 첫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그 이기심을 대단히 복잡하고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제학자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사람들이 계산해 정보를 처리한다고 가정한다는 이야기.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종종 불완전하거나 모호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또 정보가 더 필요한 경우 시간과 돈을 들여야 그것을 얻을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복잡한 논리적 계산에는 사실 꽤 서툴지만 패턴을 재빨리 인식하거나 모호한 정보를 해석하고 학습하는 데는 매우 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잘못하기도 하고, 편견 때문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사이먼이 말한 "적당한 만족"에 관심이 있다. 즉, '절대적인 최선'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결과를 찾는다는 얘기다. 정보가 그 획득에 비용이 들고, 불완전하며,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우리의 뇌가 '완전한 최적'보다는 '충분히 좋은' 것을 빨리 고르는 의사 결정 쪽에 맞추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최근 들어 주류 경제학자들도 전통 경제학자 가정들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연구 결과들을 동시에 수렴해 정말 현실 세계에서 현실적인 사람들을 전제로 한 모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균형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한두 개의 가정을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균형 수학의 한계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진실로 현실적인 모델을 원한다면 전통 경제학의 이론적 틀로부터 보다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
전통 경제학이 균형을 위해 지불한 또 다른 대가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이다. 대부분의 전통 경제 모델은 실제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는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순간적으로 이동하며, 균형 간의 이행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고 간단히 가정해 버린다.
그러나 시간은 현실 세계의 경제 현상에서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중요한 변수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수송하고, 팔고, 정보를 얻고,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젊은 경제학자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20달러짜리 지폐를 보고는 "저기 보세요. 20달러짜리 지폐가 땅에 떨어져 있어요!"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노숙한 경제학자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돼. 만약 20달러 지폐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면 누군가가 벌써 주워 갔을 거야."
물론 그동안 동적인 측면을 전통 이론에 도입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 행동에 관한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동적인 측면과 현실 세계의 시간 척도를 전통 경제학의 균형 개념과 결합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외생 변수로 돌려라
전통모델이 시간에 관한 명시적 개념을 포함하지 않고 경제의 변화를 어떻게 다루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단순화를 위해 하나의 외생적 투입 요소로서 인구 전망표를 만들고는 끝내 버린다. 전형적인 외생 변수로는 소비자 취향 변화, 기술 혁신, 정부의 새로운 조치, 기후 등이다.
하나의 충격이 가해지면 새로운 균형이 생기고, 또 다른 충격이 가해지면 또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경제는 하나의 임시적 균형에서 또 다른 임시적 균형으로 이동해 간다.
그러나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하나의 피난용 비상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자들은 이런 접근 방식을 이용해 가장 어려우면서도 종종 가장 흥미로운 궁금증들을 경제학의 경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술 변화를 돌발적인, 외부의 힘(기후처럼)으로 취급하면 기술 변화와 경제 변화 간의 상호 작용에 관한 근본적인 이론은 필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경기 사이클도 외부의 힘, 예컨대 소비자 신뢰의 변화라든지 뉴스에 따른 주식 시장 폭락 등과 같은 신비스러운 바깥의 힘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내생적인 요소들이 정말 중요한 경제적 행태를 몰고 온 것처럼 보인다. 내부적인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 못 하면 시장 붕괴나 침체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어디엔가 모델의 경계선을 그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 전통 경제학이 균형이라는 엄충한 굴레에 묶이는 한, 모델들은 가장 흥미롭고 근본적인 의문들을 외생이라는 이름의 담장 밖에 방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뚜껑을 덮어라
전통 경제학 이론은 장기 개념을 들고 나와 이 기간 내에 모든 수확 체증이 스스로 소멸되면서 경제는 안전하게 균형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장기라는 게 끝내 끝나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한 패션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패션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어찌 되는가? 누군가가 웹을 서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구글을 만들어 내면 어떻게 될까? 어떤 투자가들이 여전히, 심지어 버블 붕괴를 목도한 이후에도 자신들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또 어떻게 될까? 경제와 같은 시스템에는 항상 활기를 북돋울 양의 되먹임을 불러오는 새로운 원천들이 있다. 현실 세계에는 장기란 없다. 케인스는 이런 유명한 표현을 했다.
이 장기란 것은 현재의 일들을 자칫 오도하는 역할을 한다. 장기로 가면 우리 모두는 죽고 없다. 경제학자들은 지금 폭풍우 치는 계절에 폭풍이 지나간 뒤 한참 시간이 흐르면 바다가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는 정도를 말할 수 있는 너무도 쉽고, 쓸모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세계 경제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균형이라는 박스 안에 집어넣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증거 없는 전제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경제 시스템처럼 보이는 모델을 만들려면 최근까지도 전통 경제학이 전혀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특별한 개념, 즉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성 테스트
많은 사람들은 경제학의 과학적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 성장, 이자율,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같은 것들에 대한 예측에서 보여 준 너무도 나쁜 성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과학에 대한 보증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설명하는, 다시 말해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 주는 능력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과학은 연구자들이 반드시 정확한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고 또 그 설명의 타당성을 검정할 수 있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생물학자는 단백질의 굴곡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물리학자는 요동치는 유체의 정확한 움직임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연속적인 학습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설명들의 주장은 검정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거들이 축적된다. 과학은 다양한 설명을 제안하고 검정이 가능한 방법으로 엄격히 표현하며, 검정에서 떨어진 이론은 제거당하고, 이를 통과한 이론은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 보자. 전통 경제학의 예측은 데이터에 의해 얼마나 잘 뒷받침되는가? 대답은 "별로"다. 키르망의 지적처럼 전통 이론이 데이터와 모순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많은 이론들이 적절한 검정을 받은 적이 없다. '계량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경제학의 한 영역도 통계적 상관관계는 현상들에 대한 인과적 상관관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종종 이론을 테스트해 볼 적시에 이용 가능한 데이터가 없고, 이용 가능한 데이터들이 있다고 해도 잡음이 끼여 있거나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 경우가 빈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분야에서 전통 이론은 엄격한 테스트를 거쳤다. 우선 하나는 금융 이론이다. 금융 시장에서 매분 나오는 데이터와 엄청난 계산 능력은 전통 이론에 대한 전례 없는 수준의 검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통 경제학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데이터와의 만남을 계기로 전통 이론들이 제시했던 기초적 예측들을 반박하는 일련의 연구들이 계속 쏟아지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실험 경제학이다. 실험을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 전반에 걸쳐 실험을 행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소규모로 경제에 관한 실험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연구자들은 협상, 경매, 게임, 가상 주식 시장에서의 투자, 가상 상점에서의 쇼핑, 기타 인위적으로 만든 모든 종류의 상황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인간 행동의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한다. 그 결과 풍부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데이터와의 만남은 전통 경제학의 많은 핵심적 아이디어에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공급과 수요, 법칙인가?
전통 경제학의 가장 오래된 원칙 중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현실에 대한 1차 근사적 차원에서 보면 이 이론은 꽤 잘 작동한다. 그러나 보다 세밀한 수준으로 들어가면 현실 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같아지는 상황에 결코 있지 않으며 시장은 거의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은 결국 법칙이 아니다. (최소한 과학적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보다는 '공급과 수요에 대한 개략적인 근사적 표현' 정도가 적절하다.)
일물일가 법칙
수송 비용과 거래 장벽이 없다면 동일한 제품들은 모든 시장에서 같은 가격에 팔려야 한다는 법칙이다.
유럽 연합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유로가 도입된 이후 가격 차이는 더 벌어졌다. 유로 지역 내 가격의 표준 편차는 1999년 12.3%이던 것이 2003년에 13.8%로 증가했다. 일물일가 이론의 예측과는 정반대가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소비자들이 합리적이지 않은 탓으로 돌렸다.
전통 미시 경제학의 이론적 세계에서 그런 기회는 즉각 차액을 노린 거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차액 거래의 기회를 발견하고 왔다 갔다 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실제로 그런 거래를 할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며, 또 차액 거래를 하는 데 여러 가지 거래 장벽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장벽이건 거의 존재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가격 수렴을 둘러싸고 과학적으로 제기되는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차액 거래를 하려는 유인과 변화하는 다양한 장벽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가이다. 그러나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이 요구하는 수학적 조건들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이런 복잡성을 떼어 내버리고 일물일가 법칙이라는, 예측력이 의문스러운 이런 '법칙'만 남겨 둔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균형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예측은 전체 경제 어디에선가 균형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경제가 균형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균형에 머무르는 시간은 또 얼마일까? 스카프의 연구 결과를 사용하면 경제가 외부 충격을 받은 후 균형에 도달하기까지는 4.5 x 10의 18승 년이 걸린다. 이 우주가 나이로 따질 때 약 120억 년밖에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나는 셈이다.
비랜덤워크
전통 금융 분야에서 잘 알려진 예측 중 하나는 주식 시장이 '랜덤워크'를 따른다는 이론이다. 랜덤워크란 가격의 움직임에는 어떠한 패턴도 없으며, 과거의 가격을 보더라도 미래의 가격과 관련한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수십 년간 연구자들은 가격은 실제로 랜덤 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보다 좋은 데이터, 보다 강력한 도구를 활용한 최근의 분석들은 가격이 랜덤워크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주식 가격 데이터에는 확실히 동적인 구조와 정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정보로부터 누가 체계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없는지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전통 경제 이론의 예측들이 대개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공급은 근사적으로 보면 수요와 일치한다. 가격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때로 수렴한다. 시장은 현실적으로 보면 결코 균형에 도달할 수 없지만 마치 균형이란 형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다. 시장이 더 이상 조용하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 때까지는 마치 랜덤워크를 따르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나타난다.
프리드먼의 대항마로서 허버트 사이먼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이 고도로 복잡한 수학적 법칙들의 구성체로 발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법칙들은 실증적인 현상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그것도 대개 정성적인 관계만을 보여 줄 뿐이다.
전통 경제학은 취약한 가정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으며, 따라서 여기서 나온 결론도 똑같이 취약하다.
잘못된 은유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데 뛰어나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 대해 이해를 하거나 논리를 펼 때 은유법을 활용한다. 과학도 은유법을 활용한다. 창의성을 자극하거나 복잡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발라가 푸앵소의 물리학 교과서를 읽고 나서 물리 시스템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에 관한 개념과 경제 시스템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에 관한 개념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은유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학의 균형 개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학과 경제 시스템 간 피상적인 유사성에 기초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경제 시스템은 정말 말 그대로 균형 시스템인가? 그렇다면 균형 시스템들의 보편적인 특성들을 과연 공유하고 있는가? 달리 말하면 전통 경제학에서 균형이라는 이론적 틀은 단지 하나의 은유에 불과한가, 아니면 과학인가?
설익은 물리학
불행히도 발라가 경제학을 과학으로 바꾸겠다는 사명을 가졌을 당시의 과학은 중요한 개념들이 아직 나오지 않은 때였다.
전통 경제학은 흔히 가치를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되는 고정된 양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뀐다는 것은, 예를 들어 자원이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이 돈으로 교환되며, 돈이 다시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이 소비되고 효용을 창출한다는 그런 의미다. 그러니까 새로운 부는 창출되지 않는다.
발라와 제번스에게 은유적으로 영감을 주었던 열역학 제1법칙의 유산은 오늘날 전통 경제학에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러나 제1법칙은 열역학 얘기의 단지 반에 불과한 것이다. 그 시기에 물리학에서 빠져 있던 제2법칙 엔트로피가 발견되면서 물리학이 우주를 보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열려라 참깨
열역학의 1,2법칙에 대해 이해하면 또 다른 개념으로 옮겨 갈 수 있는데, 이 역시 발라나 제번스 시대에는 없었다. 바로 닫힌 계와 열린 계 개념이 그것이다. 닫힌 계는 어떤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이나 소통이 없는 시스템이다. 닫힌 계에서는 어떤 에너지, 물질 또는 정보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닫힌 계다.
두 번째 행태의 시스템은 열린 계다. 에너지와 물질이 들어가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열린 계는 에너지와 물질을 활용, 일시적으로 엔트로피와 싸우면서 한동안 질서, 구조 그리고 패턴을 창조한다. 우리 행성은 하나의 열린 계다.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에너지의 강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런 에너지의 흐름은 크고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 내고, 이는 생명을 가능하게 하며, 질서와 복잡성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생물권 창조로 이어진다.
엔트로피는 어디로 가버린 게 아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고장이 나거나 쇠퇴하고, 모든 유기체들은 궁극적으로 죽는다. 그러나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항상 새로운 질서의 창조에 동력을 제공한다. 열린 계에서는 에너지의 힘에 의한 새로운 질서 창조와 엔트로피에 의한 질서 파괴 사이의 끝없는 싸움이 있다.
자연의 계산법은 매우 엄격해서 열린 계에서 질서가 만들어질 때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질서가 창출되면 다른 어딘가에서 질서가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순 효과는 엔트로피의 증가, 다시 말해 질서의 감소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는 에너지를 수입하고 대신 엔트로피를 수출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에너지의 일부를 엔트로피와 맞서 싸우는데 투자해 집을 깨끗이 치우기로 결정한다. 고도로 질서가 집힌 그런 상태로 당신 집에 유입된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이 사용하는 모든 기기들이 열을 환경 속으로 방출할 때 이 우주는 엔트로피를 다시 얻게 된다. 더구나 당신이 이용하는 전기는 발전소에서 폐열과 굴뚝을 통한 가스 배출을 수반한다. 그리고 물질은 당신 집에서 다시 나와 쓰레기 형태의 무질서한 상태로 밖으로 배출된다.
정리하자면, 당신의 집이라는 시스템이 에너지와 물질을 도입하면 이는 다시 그 한계 범위 내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데 쓰이고, 그다음에 열과 무질서한 물질로 바뀌어 우주 속으로 다시 나간다. 다시 말해 이런 과정을 통해 엔트로피를 내보내는 것이다.
이 개념을 이용하면 시스템이 균형에 이른다면 그 시스템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를 잘못 분류하다
제2법칙을 몰랐다는 것은 한계주의자들과 그들의 계승자들이 근본적으로 경제를 잘못 분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불균형 시스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잡 적응 시스템이다.
닫힌 균형 시스템에서는 순간적으로 자기조직화를 하는 일도 없고, 또 패턴이나 구조, 복잡성이 발생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새로움이란 게 창조되지도 않는다.
(우주는 닫힌 계인데 창조가 되는데 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회 시스템은 경제학자들의 마음속이나 교과서의 방정식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수학적 모델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시스템들은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 들로 이루어진 현실적인 물리적 시스템들이다. 실물경제는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엄청난 에너지를 매일 그 속에 쏟아붓고 있다. 이 덕분에 경제가 작동한다.
에너지는 경제에 들어와 엔트로피에 대항할 힘을 주고 질서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제2법칙에 순응한다.
경제는 단순히 은유적으로만 열린 계와 비슷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열린 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에 속하는 한 시스템이다. 누가 경제에 공급될 에너지를 끊어 버리면, 다시 말해 음식물, 석유, 가스, 그리고 석탄 등을 끊어 버리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저항자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경제는 정말 균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고립될 때 이런 상황을 본다.
엔트로피가 이기기 시작하면서 경제는 쇠퇴를 피할 수 없고, 결국 비참과 기아의 균형으로 향한다. 반면 성장하는, 활기 있는 경제는 정의상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부를 창출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은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물질과 정보의 조작에 관계한다. 경제적 활동은 현실의 물리적인 세계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있고, 따라서 경제 이론은 열역학 법칙들을 피할 수 없다.
과학이 서로 다른 현상들에 대해 서로 다른 수준의 추상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이 물리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그리고 물리학의 법칙에 대한 명시적인 참조 없이 높은 수준의 추상화를 통해 만들어 낸 개념들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경제 이론은 기본적인 물리적 법칙과 불일치할 수 없다.
수학은 언어의 한 형태이고, 현실 세계를 상징적 시스템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 이 수학을 활용한다.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음. 전통 경제학은 닫힌 계로 가정하고 있지만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일 수 없다. 그래서 틀렸다.
나는 믿는다. 전통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신고전파 모델은 잘못된 은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다.
발라의 대성당을 넘어서
과학은 한 세대가 아이디어를 만들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교체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경제학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발라의 대성당'을 만든 사람들이 남긴 유산을 가장 빛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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