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통 경제학 : 균형의 세계
1984년 존 리드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시티코프의 회장이자 CEO로 선임되었다. 리드가 알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이런 위기가 발생했고, 어떻게 일어났으며,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시티뱅크와 다른 대형 은행들의 최고 브레인들은 어떻게 그토록 위험을 잘못 판단할 수 있었을까? 왜 아무도 그런 대출로 초래될지 모를 위험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멕시코 현지에서 일어난 일련의 국지적 사건들이 어떻게 글로벌 위기로까지 연쇄 파장을 몰고 온 것일까?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정부라는 존재는 그런 위기에 대해 왜 그토록 무력했을까?
리드는 이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세계 금융 시장에 관한 한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요정들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고 리드는 결론 내리고... 경제학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
지난 10년에 걸쳐 경제 이론에 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다. 존 캐시디는 경제학이 데이터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은, 그리고 비현실적인 가정들에 둘러싸인, 고도로 이상적인 이론의 상아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경제학이 거대한 학술적 게임이 돼버렸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론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 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던 앨런 그린스펀조차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말로 몰라.... 옛날 모델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어." "놀라운 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 모델과 현실 세계를 제대로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거지."
경제학이 시장의 효율성에서 자유 무역의 이익과 개인 선택의 중요성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아이디어를 생산해 냈다는 점을 인정한다.
현대 경제학의 발전에 가장 핵심이 된 일련의 아이디어들을 집중 조명해서 그 장점과 약점을 따져 봄으로써 2부에서 우리가 살펴볼 복잡계 경제학의 토대를 만들려는 게 주된 목적이다. 경제학이 앞으로 갈 길을 모색하려면 우선 지나온 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전통 경제학인가
앞으로 지난 세기 동안 경제 이론을 지배해 왔던 일련의 아이디어들을 '전통 경제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무엇이 전통 경제학인지 그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핀 만들기와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의 영향력은 우리 논의의 출발점이 될 만큼 크다. 그는 프랑스 여행에서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의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정부가 경제에 대한 간섭을 제한하고 대신 시장에 대부분을 맡기라는 과격한 아이디어를 가진 부류의 학자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학자들이 씨름을 해왔던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는 어떻게 창출되는가, 다른 하나는 이 부가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것이다. <국부론>에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다 다루었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간단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경제적 가치는, 사람들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원료를 가져다가 노동력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으로 변환시킬 때 창출된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스미스의 가장 큰 통찰력은 바로 부의 창출 비밀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한 점이다. 보다 높은 생산성의 비밀은 노동의 분업과 이로 인해 가능한 전문화에 있다고 보았다. 스미스는 핀 공장을 예로 든다. 핀 제조 공정의 한두 단계에 전문화를 통해 근로자 1인당 4,800개의 핀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노동의 분업이 없었다면 이 공장은 하루에 단지 20개의 핀만 만들어 냈을 것이며, 숙련되지 못한 근로자들이라면 핀을 아예 하나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스미스는 추정했다.
인구 증가로 인해 가용 노동인력이 늘어나면 사회의 부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1인 기준으로 부를 늘리려면(개인 삶의 수준을 높이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전문화가 필요하다. 바로 이 논리는 스미스를 경제학의 두 번째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즉, 무엇이 한 사회에서 부와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가? 바로 그 의문이다.
부의 창출이 전문화를 요구한다면, 그 전문화는 거래를 필요로 한다. 여러 생산업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상품을 갖고 나와 거래를 할 경우 이 상품들이 배분되는 방법은 누가 결정하는가? 핀 몇 개가 과연 1부셸의 밀과 같은 것일까? 목공이 만든 의자를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고기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누가 더 부자가 될까? 핀 생산업자일까, 아니면 어부일까?
도덕철학자이기도 한 스미스에게 이 문제는 단순히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는가'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개인, 또 사회 전체적으로 공정하고 적정한 자원 배분은 어떤 것인가?
스미스는 자원을 배분하는 가장 공정한 메커니즘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최고의 판단가라는 얘기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최상의 자원 배분은 자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사회가 달성 가능한 부를 감소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설파했던 허치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관한 견해는 당시로 보면 과격했다. 다시 말해, 경쟁적인 시장이야말로 사회의 자원을 배분하는 데 가장 도덕적으로 공정한 메커니즘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내버려 두면 이기심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기대하는 저녁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에서 나온다."
더구나 이윤 동기와 경쟁의 결합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개인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자본(봉급)이 얼마든 간에 가장 유리한 일자리를 구하려고 계속 노력한다."
스미스는 개인들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 이 사회를 전반적으로 윤택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은 그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 행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자신이 애초 뜻하지 않았던 목적(사회적 이익)의 달성을 촉진하게 된다. ...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사회적 이익을 촉진하려고 하는 경우보다 더 효과적이다.
이 사회에 효과적인 자원 배분이라는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경쟁적인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다.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공급이 너무 적다면 가격은 올라가게 되고, 그 경우 생산자는 생산을 늘리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게 된다. 반대도 가능. 이렇게 해서 어떤 지점에 이르면 시장은 상호 반대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가격에 도달한다. 즉,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고 시장은 깨끗이 정리된다.
건강한 균형
경제가 자연스럽게 수렴되면서 균형점을 갖는다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 경제학의 핵심 개념으로 남아 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경제에 서로 상충하는 힘 또는 긴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17세기 금융가 캉티용에게, 경제의 핵심적인 긴장 관계는 인구와 가용한 토지 사이에서 비롯됐다. 캉티용은 과잉 인구와 기아라는 야만적인 메커니즘이 임금과 가격을 스스로 조정되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균형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18세기 프랑스의 지식인 케네에게 핵심적인 긴장은 농업, 제조업 그리고 토지를 소유한 상류 귀족 사회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경제표'(본질적으로 경제의 흐름도를 나타낸 것)를 가지고 경제를 균형 상태로 만들 가격과 생산 수준을 계산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18세기 의학에서 체액들이 균형 상태에 있으면 몸이 건강하다고 했듯이, 균형 잡힌 경제는 건강한 경제를 의미했다. 스미스는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비롯되는 핵심적인 긴장, 즉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고 봤다.
스미스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달성하는 데 시장의 역할을 설명해 냈지만 이기적인 공급자들의 공급량과 이기적인 소비자들의 수요량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자크 튀르고는 루이 15세 정부의 각료를 지냈으며, 이른바 자유방임주의, 즉 정부는 시장의 작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튀르고의 이런 견해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정부는 경제 운용에 매우 많이 간여하고 있었다. 당시 튀르고가 맡은 임무는 식량 부족 문제를 다루는 일이었다.
농부가 씨뿌리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땅을 갈면, 훨씬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농부가 땅을 열심히 가꾸면 가꿀수록 그가 얻게 될 수확량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농부가 투입한 추가적인 노력의 단위에 비해 그가 거두게 되는 수익은 점점 적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관찰에 기초해서 오늘날 '수확 체감의 법칙'을 설명해 냈다.
무엇이든 간에 대부분의 생산 과정에 한 특정 요소(노동, 원료, 기계류)를 보다 많이 투자해도 어떤 수준에 이르면서부터는 들어가는 돈(투입)에 부합되는 가치(산출)가 점점 더 적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수확 체감의 법칙은 경제가 균형을 달성하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가격이 주어지면 생산자는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말해 산출물 한 단위를 더 늘리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입보다 커질 때까지 투입을 계속 늘려 생산을 확대할 것이다. 튀르고의 법칙은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우선 공급과 생산자 비용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개념을 제공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수요 측면에서 튀르고와 비슷한 중요한 업적을 만들었다. 벤담은 이기심의 추구는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계산법을 토대로 한 합리적인 활동이라는 논리를 폈다. 벤담은 개인의 즐거움과 고통을 측정하기 위하여 '효용 utility'이라는 하나의 양적 지표를 생각해 냈다. 그는 경제적 선택이란 어떤 행동이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들의 계산 결과라고 주장했다. 당시 효용주의자들은 사회는 집단적 효용, 즉 행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조직화돼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하인리히 고센은 벤담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튀르고 법칙의 반대쪽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튀르고가 생산을 증대시켜도 이익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듯이, 고센은 소비를 증대해도 효용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배고파서 도넛을 하나 산다면, 그 소비는 꽤 큰 만족, 즉 큰 효용을 가져다 줄 것이다. 두 번째 도넛을 샀다면 이 또한 만족감을 주겠지만,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그 효용은 처음보다는 작을 것이라는 의미다. 마치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생산을 늘리고,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을 줄이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더 먹을 가치가 없다며 소비를 중단하는 바로 그 수준도 가격에 따라 더 높아지거나, 더 낮아진다. 따라서 수요는 가격이 오르면 떨어지고, 그 반대면 올라간다. 또 한계 수익 체감이 농부로 하여금 무한대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만들듯, 한계 효용 체감은 소비자들이 무한대의 도넛을 소비할 수 없게 만든다.
생산에서의 한계 수익 체감과, 소비에서의 한계 효용 체감을 결합하게 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가격이라는 균형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가격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결론적으로, 경제학의 고전파 시대는 시장이 어떻게 소비자의 수요와 생산의 경제학이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양쪽을 만족시키는 어떤 지점에 이르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어떤 상품과 효용 구조, 그리고 생산 과정이 모두 주어졌다고 가정할 때 가격은 정확히 얼마인가? 우리는 이 가격을 계산해 낼 수 있는가? 또는 예측할 수 있는가?
새로운 과학을 향한 꿈
고전파 경제학의 연구에 뒤이어 등장한 것이 이른바 한계주의자 시대다. 이 시기의 핵심 인물은 레옹 발라다. 대단한 과학 숭배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19세기에는 두 가지 큰 도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완전한 이론의 창출과 경제학에 관한 과학적 이론의 창출이었다. 발라의 아버지는 미분학을 경제학에 응용할 경우 '천문학적인 힘에 관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힘에 관한 과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발라는 이 영감을 기반으로 1872년 <순수 경제학 요론>을 완성했다. 그 동안 경제학은 수학적 영역이 아니었다. 발라와 그의 동료 한계주의자들은 이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그들은 위대한 진보의 시대에 살았다. 17세기 뉴턴의 기념비적인 발견에 뒤이어 라이프니츠, 라그랑주, 오일러, 해밀턴 등 일련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미분 방정식을 이용한 새로운 수학적 언어를 개발하여 놀라울 정도로 넓은 영역에 걸쳐 자연현상들을 설명해 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인류를 좌절케 했던 문제들, 예컨대 행성의 이동에서부터 바이올린 줄의 진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가 갑자기 풀려 버렸다. 이런 성공은 과학자들에게 어떤 자연현상도 방정식으로 설명해 낼 수 있다는 무한한 낙관론을 갖게 했다. 똑같은 수학적 기법을 응용할 경우 경제에서도 인간 심리의 움직임을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발라는 경제 시스템의 균형점과 자연에서의 균형점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자연의 많은 시스템들은 균형점을 갖고 있다. 수학을 경제학에 도입한 발라의 의도는 경제 시스템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불안정한 균형은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조그만 변화가 와도 시스템을 흔들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이 여러 균형점들을 갖고 있을 경우 그 시스템이 어떤 균형점에서 머물게 될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고, 많은 경우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발라는 예측 가능성을 원했다. 그것은 그가 단일의 안정적인 균형점을 필요로 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발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 상징적으로 물리적 균형 시스템에서의 힘의 균형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마치 공이 그릇의 매끄러운 바닥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듯이 시자에서의 가격도 하나의 균형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일부 비판가들은 물리학에서 균형을 차용한 것이 경제학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과학적 실수였다고 이야기 한다.
제품들은 저마다 효용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거래를 원하게 된다. 발라는 거래에 대한 이런 욕망을 시스템이 균형에 있지 않다는 하나의 신호로 간주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만족하는 상품의 배분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처음 상태에서 보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옮겨 갈 수 있도록 거래를 위한 가격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렇게 이동한 새로운 상태는 균형을 이룰 것이다.
발라는 경매 과정을 탐색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타톤망이라고 불렀다. 경매인이 서로 다른 제품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가격들을 시험해 보면서 일반 균형점을 모색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효용을 가지며, 또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서 효용을 최대화할 것이라는 발라의 가정을 수용한다면 수학의 정밀성을 활용해 사람들이 어떻게 거래를 할 것인지와 경제에서 설정될 상대 가격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과 같은 경매인의 존재, 그리고 어떻게 개인들의 효용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등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발라는 이런 이슈들은 미래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쨌든 발라가 수학적인 예측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상추 관계를 적극적으로 설정한 것은 다음 세기에 걸쳐 경제학자들이 따르는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력과 같은 수준의 예측 가능성
당시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겠다는 영감을 가지고 물리학을 파고든 경제학자는 발라뿐이 아니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경제학이 하나의 수리과학이 될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제번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중력과 매우 흡사한 하나의 힘으로 보았다.
효용은 한쪽에는 원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원하는 물건이 있을 때만 발생한다. ..... 물체의 중력이 질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의 질량들, 그리고 상대적인 위치와 거리 등에 의존하듯이 효용도 원하는 존재와 원하는 물건 사이의 끌어당김이다.
제번스는 벤담의 효용 개념과 고센의 한계 효용 체감 이론을 소비에 적용했고, 1871년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물리학의 '장이론'으로부터 유래된 방정식을 사용해 철학적 개념에서 나온 벤담과 고센의 아이디어들을 수학적 모델로 바꾸어 놨다.
요약하자면 제번스는 인간의 행동을 중력처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떤 물체가 중력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예측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 그리고 그 물체의 이동과 관련한 제약 조건의 형태가 그것이다.
제번스의 개념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바로 그 중력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복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한 자원을 가진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제약 조건이 된다. 따라서 유한한 자원이라는 제약 조건에서 우리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조합을 찾아내는 요령이 필요하다. 발라의 모델은 거래를 통해 바로 그런 조합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와인과 치즈라는 두 가지 상품으로 구성된 경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 각자는 와인과 치즈의 전체 양이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한 가장 큰 만족을 제공하는 와인과 치즈의 양을 보유할 때까지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경제적 선택을 제약 조건하의 최적화, 다시 말해 여러 제약 조건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화 문제로 표현한 것도 제번스의 업적이다. 즉, 가용한 양이 주어지면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줄 상품들의 조합을 계산해 낼 것이라는 얘기다. 제번스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개인 간 효용의 차이는 거래를 위한 일종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저서 <경제학의 이론>에서 "우리의 과학(경제학)에서 가치의 개념은 기계학에서의 에너지 개념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릇에 있는 공이 그릇 표면들이라는 제약 조건하에서 최소한의 에너지 상태를 찾아가듯이 인간들은 유한한 자원이라는 제약 조건하에서 최대한의 행복 상태를 추구하며, 그런 행복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거래를 한다.
팡글로시안 경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을 균형 상태, 즉 모든 가격이 조정되면서 거래가 이루어져 시장이 깨끗이 정리되는 안정 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발라는 이런 균형 상태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하나의 균형점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제번스는 사람마다 효용이 다르고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각자 자신의 행복을 최대화하려고 불가피하게 스스로 거래에 나서면서 시장은 균형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사실은 더 멀리까지 나갔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 이기심이 시장을 균형으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이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파레토는 당시 물리학에 대해서는 발라와 제번스만큼이나, 아니 그들보다 훨씬 정통했다. 파레토는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파레토 최적'에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붙임으로써 경제학의 세계에서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이래로 경제학자들은 내내 경쟁적 시장이 사회적 후생을 정말 최대화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제번스가 효용에 관한 이론적 분석을 크게 발전시켰지만 효용은 측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사람들의 두뇌 안에 들어가 효용을 측정하고 또 이를 합산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적 후생이 정말 상승했는지, 또는 최대화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파레토는 독창적인 논리적 주장을 펴면서 이 문제를 극복해 냈다. 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래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윈윈 거래로서,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 이득을 보는 경우다. 이 경우 후생은 증가한다. 두 번째, 한쪽은 이득을 보고,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지 않는 거래다. 이 경우에도 후생은 증가한다. 세 번째, 누구도 이득을 보는 이가 없는 가운데 특정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경우다. 이 경우 후생은 감소한다. 네 번째, 어떤 이는 이익을 보고 어떤 이는 손해를 보는 거래다.
효용을 직접적으로는 측정하지는 못하지만 효용의 순 증가 내지 순 감소 등 그 영향이 어떠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파레토는 거래에 동의하는 두 명의 사람이 있을 경우, 또 그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그들은 윈윈 또는 최소한 한쪽이 이득을 보더라도 다른 한쪽은 손해를 안 보는 거래에만 관여할 것이고, 그 결과 참여자들의 전체 후생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래는 후에 '파레토 우위' 거래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파레토는 자유 시장에서 모든 파레토 우위 거래가 소진될 때까지 사람들은 거래를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손해를 보게 되면 그 지점에서 거래는 멈출 것이고 시장은 하나의 균형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다. 이 균형점을 '파레토 최적'이라고 불렀다. 파레토 최적은 어느 누군가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는 균형점을 가리킨다.
한계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시장 경제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가용한 자원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한 만족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자유롭게 거래를 한다. 이런 거래를 통해 경제는 자연스럽게 정지 지점인 균형에 이르게 된다. 발라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의 순수한 경제학 이론은 모든 면에서 물리수리과학과 닮은 과학이다." 제번스는 자신이 '도덕적 결과에 대한 계산법'을 만들어 냈다고 믿었다. 그리고 파레토는 이렇게 선언했다. "경제과학의 이론이 이로써 합리적인 기계학의 엄격함을 획득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한계주의자들은 경제학을 진정한 수리과학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신고전파적 종합
20세기에 들어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신전은 한계주의자들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더욱 굳건해졌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제번스의 고립된 단일 시장 모델(부분 균형)과, 서로 연결된 시장을 대상으로 한 발라의 모델(일반 균형)을 연결시켰다. 마셜은 또 공급과 수요 곡선을 그래프로 처음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후 미국인들과, 히틀러의 유럽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의 세대가 오늘날 '신고전파적 종합'이라고 불리는 현대 경제 이론의 핵심을 만들어 낸다. 그 시대의 가장 저명한 두 명의 인물은 폴 새뮤얼슨과 케네스 애로다.
새뮤얼슨은 본질적으로 힉스의 종합 이론을 채택하고, 여기에 자신의 독자적인 창의력을 추가함으로써 현란한 수학적 이론을 완성했다. 이는 바로 시장의 작동에 관한 표준 모델이 되었다. 새뮤얼슨이 만들어 낸 핵심적 돌파구 중의 하나는 벤담 이래로 경제학자들을 괴롭혀 왔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사실 효용은 경제 이론의 핵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고, 관찰할 수 없으며, 측정할 수 없는 양적 개념이었다. 파레토와 힉스는 효용은 단지 상대적인 의미, 예를 들어 '나에게 사과는 오렌지에 비해 효용이 두 배다'라는 식의 의미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상대적인 효용조차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새뮤얼슨이 내놓은 답은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며 효용을 직접 측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선호를 드러낸다고 새뮤얼슨은 생각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 행동이 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는 가정뿐이라고 했다.
사과는 오렌지보다 효용이 두 배다 라는 식의 얘기는 못해주지만 그 사람이 '사과를 오렌지보다 선호한다'고는 분명히 알려 준다. 새뮤얼슨은 수요 이론을 정립하는 데는 이런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새뮤얼슨은 사람들의 선호에 순서를 매기는 기본적이고 논리적인 규칙들을 가지고 기존의 효용 이론을 대체시켰다. 이 규칙들은 전통 경제학에서 소비자 행태 이론의 기초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경제적 선택을 할 때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개념의 중추가 되었다.
애로와 드브뢰는 일반 균형에 대한 발라의 개념과 파레토의 최적성 개념을 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일반 균형에 대한 신고전파 이론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정리를 통해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시장들은 경제 전체적으로 파레토 최적인 가격 체계 위에서 함께 자동적으로 조정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는 시장에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도 마찬가지임을 증명했다. 이런 자동 조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시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들은 다른 제품들의 대체재 역할을 할 능력을 갖고 있고, 또한 다른 제품들이 이 제품의 보완재로서 함께 소비되는 경향도 보인다.
이는 상품들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애로와 드브뢰는 가격은 경제 전반에 걸쳐 공급과 수요에 관해 신호를 보내는, 마치 신경 체계와 같이 움직인다고 봤다. 그리고 이기적인 인간은 그런 가격 신호에 반응하게 되고, 이것이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최적인 균형점으로 유도해 간다는 얘기다. 보이지 않은 손은 정말 강력하다.
애로와 드브뢰가 일군 일반 균형 이론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이렇게 강력한 결과들이 몇 가지 공리를 토대로 나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가정들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정리는 모든 사람은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을 최소한 어느 정도씩은 갖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또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선물 시장이 존재한다는 가정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의사 결정 대안들을 따질 때 지극히 합리적이며, 미래에 일어날 모든 상황에 대한 확률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들은 단순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며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다루어질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몇 가지 간단한 공리들만 가지고 엄격하게, 수학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결과, 즉 경쟁적인 시장에서 작동하는 합리적인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를 최적 상태로 이끈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는 점이다.
1954년 두 사람의 정리가 발표됐을 때 경제학자들은 큰 돌파구가 마련됐다며 매우 환호했다. 이 정리는 시장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수학적 증명으로 해석됐다. 애로와 드브뢰의 모델이 현실 경제를 고도로 단순화한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모델은 독점적 산업, 노조, 정부 규제, 세금 등 현실의 경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빠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가 왜곡이나 간섭 없이 완전 경쟁이라는 이상적인 상태에 가까이 도달할수록 최적 균형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는 점이다.
1960~1970년대에 밀턴 프리먼, 로버트 루카스와 같은 이른바 시카고 경제학자들은 신고전파 미시 경제학의 기법들을 거시 경제학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소비자들이라든지 최적 균형과 같은 개념들이 전통적인 거시 경제 이론에서도 핵심 부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분배에서 성장으로
1장 전반부에서 경제학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큰 문제, 즉 부는 어떻게 창출되며, 그 부는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해 쭉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시대에서 새뮤얼슨과 애로의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실 첫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에 의해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발라, 제번스, 그리고 파레토의 모델들은 경제는 이미 존재하고, 생산자는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들 모델들이 다룬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주려면 경제에 존재하는 유한한 부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유한한 자원의 배분에 초점을 맞춘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물리학에서 차용한 균형 방정식의 경우 배분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는 이상적이었지만 이를 성장에 적용하는 것은 그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균형은 그 정의상 정지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성장은 변화와 역동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균형과 성장 사이의 모순을 인식한 중요한 인물은 바로 조지프 슘페터였다. 슘페터는 부의 배분에 관해 동시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균형 개념에 대해 동조적이었지만 성장의 문제를 답하는 데도 이것이 딱 맞는 이론적 틀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생산에 대한 신고전파적 견해는 매우 정태적이었다. 기업들의 기술 및 제품 세트는 고정적이라 가정했다.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생산량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슘페터는 경제 성장은 단순히 이미 생산되고 있는 제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관찰해 냈다. 즉, 혁신의 역할이 있다는 얘기다.
신고전파는 혁신을 외부적인, 또는 외생적인 요소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연구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는 임의의 변수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슘페터는 혁신을 경제의 내부적이고 내생적인, 그리고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슘페터는 성장이 일어나려면 "달성될 수도 있는 모든 균형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 경제 시스템 내에"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슘페터에게 그런 에너지의 원천은 기업가였다. 기술 진보는 일련의 돌발적인 발견들로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들을 상업화하려다 보면 자금 수요에서부터 견고한 관습과 고정관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슘페터의 이론에서 기업가는 댐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혁신의 홍수를 터뜨리고 이를 시장으로 쏟아 보낸다.
이렇게 성장은 지속적인 흐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슘페터의 유명한 표현처럼 '질풍처럼 밀려오는 창조적 파괴' 형태로 경제에 다가온다. 그러니까 슘페터식 부의 창조는 포드, 에디슨, 잡스 같은 사람들이 악조건과 싸워 기술을 마침내 상업화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킬 때 일어났다.
슘페터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역사의 이론'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단지 기술적으로만 표현했을 뿐 엄밀한 수학적 형태로 바꾸지 못했다. 이는 슘페터의 아이디어가 수학적인 신고전파의 분석 틀과 융합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런 수학적 결여로 인해 솔로가 나타날 때까지 40년 동안 성장 이론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솔로는 신고전파 이론의 예측 가능성, 다시 말해 그릇 안에 있는 공의 사례와 같은 그런 예측성과 성장 문제를 융합하려고 했다. 성장에 관한 초기의 수학적 연구는 꽤 단순했다. 자본의 생산성, 즉 투자가가 도구, 기계 그리고 장비와 같은 자본재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수익은 일정하다고 가정했던 것이다. 이 가정은 명백히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변화는 자본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혁신을 균형을 파괴하는 힘으로 보았던 슘페터와 달리 솔로가 제시한 모델은 신고전파 이론과 일치하고, 경제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혁신을 설명하고자 했다.
솔로는 경제 역시 성장을 하더라도 균형 상태에서 평형을 이루는 것으로 봤다. 그는 자신의 모델에서 두 가지 중요한 변수를 외생 변수로 놓았다. 인구 성장률과 기술 변화율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성장률을 좌우한다. 비유를 하자면 이 두 가지는 사람이 페달을 밟는 에너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솔로는 저축률과 자본 총량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은 인구 성장과 기술 변화에 반응하여 자동적으로 이에 균형을 맞추어 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치 서커스 배우가 균형을 잡기 위해 장대를 이동하듯이 말이다.
솔로 모델에서 균형을 잡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역할은 바로 노동과 자본 시장이 떠맡고 있다. 이들 두 시장은 경제가 성장할 때에도 모든 것이 파레토 최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도록 작동한다.
솔로의 모델은 국가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본이 얼마나 생산적이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솔로에 따르면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은 기술이다. 기술 향상이 자본을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것이 다시 높은 저축률로 이어져 보다 많은 자본 투자를 하게 하는 그런 선순환을 통해 부유해진 것이다. 기술 진보가 없다면 자본은 단지 인구에 비례해서 증가할 뿐이고, 1인당 부는 똑같을 것이다. 오늘날의 지식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기 오래 전인 1956년에 솔로는 이미 지식 경제를 발견했던 것이다.
1980년대 경제학자 폴 로머가 이끄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은 솔로 모델에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이끄는 기술이 외생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로머 역시 성장을 위한 에너지는 경제에서 내생적인 변수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0년에 발표된 로머의 한 논문은 '내생적 성장 이론'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로머는 성장을 위한 에너지의 원천을 영웅적인 기업가가 아니라 기술 그 자체의 특성에서 찾았다. 기술은 누적이고, 가속화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의 지식 기반은 더욱 확대되고 다음에 올 발견으로 얻게 될 수익도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지식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수확 체증 현상'을 말한다. 18세기에 자크 튀르고는 대부분의 생산 공정은 '수확 체감'이라는 반대의 특성을 보여 준다고 했다.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간에 대부분의 생산 공정을 보면 많이 투입할수록 한계 수익은 점점 더 적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술을 생산하는 경우에는 이 논리가 뒤집어진다고 로머는 주장했다. 즉, 지식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식이 누진적으로 축적되고, 그리 되면 수익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로머는 자신의 모델에서 이른바 '양의 되먹임 고리'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일종의 '선순환'으로 사회가 기술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사회는 더 부유해지고 수익도 더욱 많아져 기술에 더 많이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결과는 '무한대의 기하급수적 성장'이다.
전통 경제학의 유산
20세기말쯤 신고전파 패러다임은 완전히 전통 경제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합리적이고 최적화하려는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진 경제 세계에서 선택을 하고, 이런 선택들은 수확 체감에 의해 제한을 받는(기술 투자는 예외적이지만) 개념들이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과 제약 조건은 경제를 파레토 최적에 해당하는 균형으로 이끌게 된다.
경제적 분석의 방법론으로는 수학적 증명이 지배적이었다. 솔로가 개척한 '신성장 이론'은 부의 창출에 관한 큰 의문에 답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애로와 드브뢰의 신고전파적 일반 균형 이론도 부의 배분에 관한 의문에 표면상으로는 답을 내놨다.
결론적으로 20세기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작동을 묘사할 수 있는 엄격하고, 잘 정의된 수학적 모델들을 창출하겠다는 야심을 실현했다. 미시와 거시적 관점들을 신고전파 패러다임 아래 완벽히 통합하겠다는 꿈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일관된 하나의 분석 틀과 가정으로 개인들의 의사 결정에서부터 국가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전통 패러다임은 의심의 여지없이 공공 정책, 기업, 그리고 금융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 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자,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전통 경제학과 모델에 의존하여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큰 영향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힐덴브란트는 일반 균형 이론을 '고딕 대성당'에 비유한 적이 있다.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뛰어난 건축가'라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성당은 너무도 불안한 기반 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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