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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성장과 모양에 대하여

5. 성장과 모양에 대하여 - 모양과 조직의 창발

전통적인 통계역학이 현대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라는 미국의 과학자의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통계역학의 기본 원리>(1902)는 클라우지우스, 맥스웰, 볼츠만, 반데르 발스의 결과를 바탕으로 기브스는 열역학을 완벽한 일관성을 갖추도록 만들어서 열역학 법칙이 계에 대한 미시적 설명으로부터 어떻게 출현하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밝혀냈다.

 

기브스는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최소화"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은 방해받지 않으면 가능한 한 낮은 곳으로 움직여서 그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그것은 모든 자발적 변화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눈송이의 경우에는 수증기에서 시작해서 얼음으로 끝난다. 두 평형 상태는 상전이에 의해서 분리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이, 열역학이 설명하려고 하는 플라톤식의 평형 상태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는 언덕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가면서 멋지게 생긴 바닥을 채우고, 빗물에 의해서 끊임없이 채워지는 강물처럼 진행중인 과정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과정은 평형 상태에 있지도 않고, 적어도 우리의 평생 동안에는 영원히 평형 상태에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열역학이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반대로, 열역학은 놀라울 정도로 유용하다. 예를 들면, 열역학은 변화의 방향은 물론이고 어떤 조건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를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해수면의 높이에서는 물이 섭씨 0도에서 어는 이유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평형 상태에 대한 열역학을 이용하면, 살아 있는 세포나 발전소에서 에너지가 생산되는 과정과 땅속에서 광물이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컴퓨터에서 열이 방출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하고 변화하지 않는 평형 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변화와 성장의 과정과 모양을 설명하려면 다른 것이 필요하다.

 

역사가 중요하다

 톰프슨의 <성장과 모양에 대하여>는 분명한 과학 분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대신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우리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심오한 아름다움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톰프슨은 자연선택을 도입할 필요 없이 기하학, 수학, 물리학, 공학만을 근거로 자연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장과 모양에 대하여>는 시대를 너무 앞선 책이었다. 그 책의 많은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비평형" 성장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적인 모양을 다루고 있다. 1917년에는 동물학자는 물론이고 열역학의 창시자들까지도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변화에 대한 개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스 온사거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기본적인 열역학의 단점을 알아낸 최초의 과학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열역학은 스스로를 평형 상태에만 한정함으로써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평형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열역학은 물이 어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줄 수 없다.

 

고전 열역학은 천재적인 속임수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변화가 아주 느리게, 엄밀하게 말해서 무한히 느리게 일어나는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면 모두 안정한 평형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형 상태에서는 계가 어떤 거동을 보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다음과 같은 기브스 조건이다. 계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구성 성분을 배열시킨다는 것이다. 강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강이 평형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쪽의 둑 사이에 비교적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는 곳의 물은 정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살아 있는 세포 역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폐기물을 만들어내면서도 정체성과 기능을 유지하는 "동적" 정류 상태에 있다. 비평형 정류 상태는 소용돌이, 달리는 자동차,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비롯하여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온거사는 평형에 가까운 경우의 추진력을 계의 엔트로피 생성 속도와 관련짓는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1968년 노벨상 수상) 그러나 비평형 열역학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브스 형 원리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런 법칙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질서를 가진 비평형 정류 상태의 고전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앙리 베르나가 1900년에 발견한 것이다. 구리 접시에 담긴 얇은 액체층을 가열하면 대류가 일어난다. 바닥에서 가열되어 밀도가 낮은 액체는 위로 올라가서 차갑고 밀도가 큰 액체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 경우, 액체는 위치에 따라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비평형 계가 된다. 평형 상태에서는 모든 곳의 온도가 같아져서 대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계는 아래쪽에서 공급되는 열 때문에 평형에서 멀어지고, 열이 공급되는 동안에는 (위쪽의 표면을 통해서 열이 방출되기 때문에) 평형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아주 느린 속도로 가열하면 대류가 생기지 않는다. 유체를 통한 전도를 통해서 열이 재분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름은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질서정연한 대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왜" 그런 모양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대류 패턴에 대한 더 좋은 이론적인 설명은 1960년대에 등장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주어진 조건의 실험에서 어떤 패턴이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확실하게 예측해주는 이론은 없다. 비평형 패턴 형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브스 형의 기준이 없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조건이라도 준비하는 방법이 바뀌면 레일리-베나르 대류 패턴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험적인 예측 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헛수고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가열 속도나 젓는 방법이 달라지면 똑같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패턴도 달라진다. 비정형 정류 상태는 "역사"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레일리-베나르 대류 패턴은 "무산 구조"의 예들이다. 무산 구조는 비평형 계에서 에너지를 흩뜨림으로써 (예를 들면 대류 패턴은 일정한 속도로 열을 공급해주어야 유지된다) 엔트로피를 생성하는 조직화된 배열을 뜻한다. 프리고진과 그의 동료들은 비평형 계를 "가지치기 점"이락 부르는 위기 상황에 이르게 하면 무산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제안했다.

 

평형에 가까운 계에서는 별로 특별한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베나르 접시에 담긴 유체는 열을 전달할 뿐이고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지치기 점에서는 계의 상태가 갑자기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가지치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주어진다. 동일한 두 가지의 "전체적"인 상태가 존재하는 셈이다. 두 가지 중의 어느 하나가 어떤 근거로 선택될까?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리학자들이 흔히 "잡음"이라고 부르는 "요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잡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절대 온도 0도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열 에너지에 의해서 원자들이 흔들린다. 그런 움직임은 모든 물질에 존재하는 무작위적인 배경 "잡음"을 만들어낸다. 온도가 올라가면 잡음은 "더욱 커진다." 무질서의 힘이 끊임없이 작용하게 된다. 원자 운동에 포함된 그런 우연함 때문에 모든 과정에는 무질서한 작은 변이 또는 요동이 들어 있다. 

 

초정밀 측정을 일상적으로 하는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그런 양이 언제나 평균 값을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요동의 영향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지치기 점에 있는 비평형 계는 면도날 위에 세워진 것과 같다. 어느 쪽 길을 선택할까?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극도로 작은 요동이 균형을 깨뜨려서 계의 미래 운명을 돌이킬 수 없도록 결정해버린다.

 

프리고진은 "가지치기 점 부근에서는 요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서 계가 따라가게 될 '가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비평형 과정의 추진력을 가지치기 점을 넘어서 더욱 증가시키면 다른 정류 상태, 즉 두 번째 가지에 해당하는 다른 패턴으로 바뀌게 된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비평형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가지치기 점들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각각의 가지치기 점에서 주어지는 선택 가능성은 분명하지만, 선택은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시작할 때는 완전히 똑같았던 두 개의 계가 똑같은 추진력을 경험하더라도 각각의 가지치기 점에서 다른 경로를 따라가기 때문에 전혀 다른 가지에 도달한다.  "시간은 무한히 많은 미래를 향해 영원히 갈라진다."

 

실제 계들은 앞에 놓인 여러 가지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없이 많은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가지치기 점은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다루는 과학 분야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여겨지던 '역사'의 개념을 물리학과 화학에도 도입시켰다."

 

기브스의 결정론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지면 역사적인 우연에 밀려나게 된다.어쩌면 비평형 열역학에 대한 최소화 원리를 찾으려던 프리고진의 시도를 방해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평형에서 떨어진 "어떤" 정류 상태에서는 계의 구성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인 조건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조건에 도달하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비평형 가지치기와 평형 상전이 사이에는 놀라우면서도 중요한 닮은 점이 있다. 가지치기는 새로운 정류 상태를 향한 갑작스럽고 전체적인 변화이다. 사실 가지치기 점은 자석에서의 퀴리 점 같은 임계점과 많이 닮았다.

 

금속을 퀴리 점을 통해서 냉각시키면 비자석에서 자석으로 바뀐다. 비자기 상태에서는 모든 원자 "나침반 바늘"이 무작위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고, 자기 상태에서는 규칙적으로 배열된다. 따라서 그런 임계 상전이는 "규칙화" 과정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접시에 담긴 액체를 대류가 일어나는 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그런 비평형 가지치기가 유체를 두루마리 단위 구조로 규칙화시킨다. 물리학자들은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대칭성 파괴"가 일어난다고 한다.

 

왜 대칭성 "파괴"라고 할까? 질서와 패턴이 대칭성과 관계되고, 무작위성은 대칭성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무작위성도 특유의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구성 요소들이 무작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계는 평균적으로 볼 때 구성 요소들이 어떤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계보다 훨씬 "더" 대칭적이다. 

 

무작위적인 상태에서는 어느 한 방향이 다른 방향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류가 일어나고 있는 두루마리 단위 구조 상태에서 두루마리 방향과 평행인 방향은 두루마리와 수직인 방향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두루마리는 공간에서 특별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균일한 유체를 두루마리 단위 구조로 대류하도록 변환시키면 일부 대칭성이 사라진다. 즉 대칭성이 파괴된다. 자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늘어선 스핀은 공간에서 특별한 방향을 향하게 되고, 비자석의 경우에는 그런 방향이 없다.

 

임계 상전이에서의 그런 선택은 가지치기 점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석이 한쪽보다 다른 쪽을 더 좋아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계의 한 부분에서, 우연에 의해서 한 가지 스핀이 조금 더 많아지면 균형이 깨진다. 그래서 임계 상전이를 일으키는 계는 요동에 지극히 민감하게 된다. 나중에 우리는 그런 사실 때문에 임계점에서 매우 특별하면서도 기막힌 거동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대응이 평형계의 통계역학과 비슷한 비평형 통계역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 진실은 훨씬 더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상전이와 비평형 가지치기의 변환은 근본적으로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현상은 모두 많은 수의 개별 요소들이 서로 국부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집단적" 현상이다. 평형 상태에 있든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그런 상호작용이 계의 한 부분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민감하게 만들어주는 조건이 있다. 갑자기 모든 입자들이 서로 연결된 정교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다른 모든 입자들과 연결된다. 그렇게 되면 느닷없이 새로운 정류 상태가 창발된다.

 

문화의 모양

사회의 물리학을 정립하려면 터무니없는 이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과감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입자가 사람이 될 것이다. 

 

박테리아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박테리아가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원시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을 뿐인 박테리아 세포도 비평형 성장 과정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집단적 거동의 패턴을 보여준다. 마츠시다도 비평형 성장의 통계물리학을 배경으로 생명과학 분야에서 성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라고 있는 바실루스 수브틸리스 박테리아 군체의 복잡한 가지 모양을 본 그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큰 규모에서 나타난 구조가 점점 더 작은 규모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프랙탈이었다. 마츠시다는 그것이 확산 한계 응집(DLA)이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종류의 프랙탈 가지치기 패턴이라는 사실도 인식했다.

 

예를 들면, 그런 패턴은 소금물에 넣은 음으로 하전된 전극에 금속이 모이는 전해 석출에서도 볼 수 있다. 전해 석출과 같은 비생물학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프랙탈 모양을 처음 연구하던 1980년대 초에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런 패턴들이 자연의 "유기적" 형태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바위에 광물질이 석출되어 가지가 달린 프랙탈 구조를 이루고 있는 모양을 양치류 화석으로 잘못 인식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츠시다의 연구실에서 발견된 것은 진짜 생물학적 프랙탈이었다.

 

DLA 석출의 프랙탈 모양은 지극히 혼돈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똑같은 모양으로 석출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가지들이 매우 높은 효율로 허용된 공간을 채운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조가 아무리 크게 자라더라도, 언제나 가지 달린 구조의 내부까지 깊숙하게 파고들어간 빈 공간의 "피요르드"가 존재한다. 

 

공간을 채우는 효율을 수학적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프랙탈 차원"이다. 모든 DLA 성장 패턴은 똑같은 프랙탈 차원을 가진다. 프랙탈 차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성장 구조들을 구별해주는 이름표와 같다.

 

1984년에 마츠시다는 그런 DLA 모델에서 나타나는 뭉치들이 편평한 그릇에서 전해 석출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정확하게 똑같은 모양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바실루스 수브틸리스 군체는 DLA 뭉치와 비슷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프랙탈 차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 두 경우의 형성 과정이 동일한 핵심적 특징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뭉치의 가장자리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무작위적인 요동 때문에 끝이 일정하게 갈라진다는 사실이다.

 

 DLA는 비평형 과정이고 프랙탈 패턴은 비평형 성장의 주제곡 중 하나이다. 자라나고 있는 뭉치의 어느 곳에 충돌하든 상관없이 입자들이 곧바로 비가역적으로 달라붙으면 가장 안정한 평형 구조를 찾아갈 여유가 없게 된다. DLA 뭉치는 역사의 사건들이 얼어붙어서 만들어진 지도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만약 프랙탈 박테리아 군체를 평형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추진력을 변화시키면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했다. 그래서 성장 과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요인들을 변화시켰다. 물의 비율을 변화시킴으로써 세포의 이동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양분을 변화시킴으로써 군체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인 "건강 상태"도 조절할 수 있었다.

 

마츠시다 연구진은 두 가지 조절 인자를 변화시키면 군체의 성장 모양이 가지가 달린 DLA 구조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양분이 많을 때는 군체의 밀도가 높아지고, 가장자리에만 살찐 손가락 모양의 가지가 만들어졌다. 그런 모양은 수학자 에덴이 1961년에 암 종양의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했던 이론적 성장 모델에서만 만들어지는 것과 닮았다.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세포들이 만들어지면서 군체가 커진다. 그러나 겔이 더 부드러워서 세포가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 영양분이 부족할 경우에는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얇은 가지가 만들어지고, 영양분이 풍부하면 에덴 형의 동심원 고리가 나타난다. 박테리아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면 대략 원형으로 빠르게 자라나서 군체의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눈으로 겨우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결국(조절 인자인) 겔의 단단한 정도를 수평축으로 하고, 영양분의 양을 수직축으로 하는 "공간"은 각각의 특징적인 성장 패턴을 가진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의 변화는 비교적 갑자기 나타난다. 즉 조절 인자 중의 어느 하나를 아주 조금만 바꾸어주면 된다. 연구진에게는 그런 특징이 온도와 압력을 두 축으로 하는 공간에서 물질의 기체, 액체, 고체 상태를 구분해주는 "상 경계"와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상 경계를 넘어가는 것은 상전이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군체 모양의 변화를 "엄밀한" 의미에서 상전이와 비교할 수는 없다. 우선, 계가 평형에 있지 않다.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는 복잡한 다른 성장 패턴을 보여주고, 역시 성장 조건을 바꾸어주면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그런 패턴들도 세포들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인자들에 대한 간단한 가정을 도입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각각의 세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결정하는 간단한 "규칙"으로부터 나타나게 될 전체적인 패턴을 유추할 수 있다.

 

얼음 꽃

연구자들은 공기 온도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변하면 눈송이의 모양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겔의 굳기와 영양분의 양이 박테리아의 모양에 영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도와 습도가 눈송이의 "형태 공간"을 그려주는 조절 인자가 된다.

 

박테리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눈송이는 없지만, 눈송이들을 성장 패턴에 따라 분명한 "클래스"로 정의할 수가 있고, 서로 다른 클래스는 형태 전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는 다양하게 보이는 모양에 일종의 질서가 숨겨져 있다. 각각의 성장 패턴은 독특하게 장식이 되더라도 주어진 성장 조건에서는 우리가 플라톤적 형식이라고 볼 수 있는 필연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눈송이의 성장에 대한 실험이 재현 가능하다는 것도 바로 그런 뜻이다. 즉 세부적인 사실은 다를 수 있지만, 형식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그런 개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성은 비평형 성장의 우연성을 보여준다. 성장 과정에서 어떤 요동이 바로 그 단계에서 새로운 가지가 만들어지도록 해주기 때문에 눈송이의 가지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생기게 된다. 눈송이는 무작위적으로 생기는 작은 혹을 새로운 가지로 증폭시켜주는 소위 성장 불안정성을 경험한다.

 

DLA 과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서 마츠시다의 박테리아 군체에서 볼 수 있는 가지가 달린 프랙탈 패턴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눈송이는 그렇게 무작위적이 아니다. 눈송이에 나타나는 육각형 대칭성 때문이다. 그런 육각형 대칭성은 얼음을 구성하는 물 분자의 규칙적인 배열에 의한 것이다. 결정 격자가 공간에서 6개의 "특별한" 방향을 선택한다. 결정형 얼음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지들이 그런 방향으로 자라난다. 결국 결정의 성장은 바탕이 되는 육각형 격자에 의해서 제한을 받는다.

 

분자 수준에서의 기하학적 규칙성이 훨씬 더 큰 규모의 눈송이 전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규칙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눈송이 성장에서의 우연성과 규칙성의 그런 상호 관계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세부적인 사실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미묘한 문제이다.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성장 과정에 숨겨져 있는 대칭성의 영향은 육각형 격자 무늬가 새겨진 겔 위에서 자라나는 프랙탈 박테리아 군체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나타난다. 격자가 가지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군체는 눈송이처럼 보이게 된다.

 

평형에서 떨어진 계에서 만들어지는 구조와 패턴은 대부분 복잡하고 매우 미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형 통계물리학에서 개발된 도구와 개념을 비평형 상태에도 적용하거나 변형해서 사용할 수 있다. 비평형 상태라고 해서 거동의 예측 가능성과 규칙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회물리학이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들의 대부분이 비평형 현상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은 우리에게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