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성의 행진 - 집단적 거동에서의 우연과 필연
1990년대에 박테리아 패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물리학자 에셀 벤-야콥은 다세포 군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목적을 알아내고 싶었다. 벤-야콥은 박테리아의 정교한 장식 격자가 무기물 세계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과정의 지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이 멀고 아무 감각도 없으면서 기체 입자처럼 움직이는 살아 있는 세포가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도 실제로 그렇게 단순할까?
벤-야콥 연구진은 바실루스 세포의 성장 패턴을 결정하는 요인을 찾아내는 일에 착수 했고, 곧 형태 그림이라는 모양의 지도에서 새 영역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레벤후크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했다. 덩어리들이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소용돌이 형태형이라 이름 붙인 박테라아들은 본래 균주의 돌연변이로 유전적으로 원 모양으로 굽어지며서 자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개의 세포를 분리해서 새로운 군체로 배양하면 역시 소용돌이 모양의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연구진을 놀라게 만든 것은 세포의 움직임이 마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기로 합의한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체 입자들이 공간에서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세포들이 우뭇가사리 겔 위에서 무작위 걸음을 걷고 있다고 가정하면 마츠시다가 보았던 가지 패턴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휘어지거나 소용돌이 모양으로 자라는 성장 패턴에는 일종의 조직화된 "집단"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종류의 복잡한 행동 패턴이 복잡한 동기와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뇌가 없는 박테리아는 복잡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도 없다. 그들의 움직임을 결정해주는 대장 박테리아도 없다. 그런데도 회전하는 움직임의 조화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런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런 의지가 없어도 움직임의 패턴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사람들도 언젠가는 어떤 계획이나 의도에 의하지 않고 비슷한 패턴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집단의 안무
미생물 세계에서 바실루스 박테리아가 특별한 그룹 활동의 성향을 가진 이단자는 아니다. 자연에서 집단적인 거동은 일상적인 현상이고, 그런 협동의 곡예가 때로는 단순히 둥글게 모여 수영하는 정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미생물 세계의 홉스는 자신의 리바이어던, 즉 "여럿이 합쳐진 사람"을 찾아내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딕티오스테릴움 디스코이데움이라는 단세포 유기체는 환경이 좋아서 먹이와 물이 풍부하고 날씨가 따뜻할 때는 각자의 길을 간다. 그러나 점균 세포들은 가뭄, 기아, 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면 서로 의자히게 된다.
점균류들이 세포 덩어리로 뭉쳐지고, 각각의 세포들은 굶주린 농부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처럼 머리를 안으로 들이민다. 수만에서 수십만 개의 세포들이 뭉쳐지고 나면, 하나의 다세포 유기체인 민달팽이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민달팽이는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인다. 그리고 결국에는 뿌리를 내리고 모양이 바뀐다. 이제 민달팽이는 가는 줄기와 과실체라고 부르는 솜사탕 모양의 머리를 가진 기괴한 식물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과실체에는 영양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좋은 환경이 돌아올 때까지 견딜 수 있는 포자로 변해버린 세포가 들어 있다.
그것은 홉스가 "공화국의 핵심" 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똑같다. "서로 간의 상호 계약에 따라 한 사람의 엄청나게 다양한 행동들이 모든 사람들을 스스로 창조자로 만들어주고, 결국에는 한 사람이 평화와 공동이 방어를 위해서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모두의 힘과 부를 이용하게 된다."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세포들이 어떻게 그런 "상호 계약"을 맺게 될까? 딕티오스텔리움의 경우에도 일종의 후각을 통해서 의사 전달이 이루어진다. 고등동물이 짝을 유인하기 위해서 페로몬을 분비하는 것처럼 다른 세포들을 "유인" 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어떤 텍티오스텔리움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유인물질을 분비하는 "심장 박동 조절장치"가 되고, 근처의 세포들은 그런 파동이 일어나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화학적으로 유도되는 그런 세포의 움직임을 화학주성이라고 부른다.
딕티오스텔리움 세포들은 자신들의 요새로 모여드는 단계에 이르면 바실루스의 소용돌이 형태형과 비슷한 회전하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종류의 움직임은 물고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물고기는 화학주성을 통해서 서로의 의사를 교환하지는 않는다. 물고기는 서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물고기는 작기는 하지만 뇌를 가지고 있어서 환경에 대해서 훨씬 더 크고 정교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점균류와 물고기에서 똑같은 집단 거동의 형식이 발견되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많은 종류의 동물이 구체적이고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함께 움직이는 그룹으로 뭉친다. 그룹을 형성하면 공격당하기 쉬운 새끼를 보호할 수 있고, 숫자 덕분에 포식자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다. 벌 떼는 체온을 이용해서 벌집의 온도를 조절한다. 개미는 대규모로 움직여야만 효율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모든 동물 집단이 기능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 패턴과 구조가 ... 개체들이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 상관없이 비선형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서 동물 집단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패턴과 집단성에 대한 "생물학적"(적응적) 설명에서는 그런 상황의 "물리학"에서 나타나는 결과를 우연에 의한 것으로 주장할 위험이 있다.
목적에 대한 의문을 제쳐두더라도 동물들이 "어떻게" 거동과 움직임의 조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모든 새들이 동시에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벌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과학이 자연의 심오하고 신비로운 면을 간과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할 일이 많은 문제이다.
이런 설명에 필요한 추가적인 요소는 결국 생물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밝혀내게 되었다.
뉴턴의 꼭지두각시
쥐빠귀 떼 새들이 무슨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훗날 그의 기록에 따르면 "새 떼들의 움직임이 각각의 새들이 세상에 대한 국부적인 인식만을 근거로 하는 개별적인 행동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했다." 그는 "국부적 인식"이 핵심이라고 느꼈다.
한 마리의 새가 새 떼의 다른 모든 동료들이 하는 일을 미리 예상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근처에 있는 새들의 움직임에는 아주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의식이 있는" 대상을 "입자"라고 부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레이놀즈는 "보이드"라는 말을 만들었다. 각각의 보이드는 자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안에 있는 다른 모든 보이드의 움직임에 반응하게 된다. 그런 공간을 지역 구라고 불렀다.
움직임을 결정하는 법칙은 다음과 같았다. 각각의 보이드는 지역 구 인에 있는 다른 보이드의 평균 속력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려고 하며, 다른 보이드와 충돌하지 않으려고 한다. 속도와 방향에 대한 조건은 보이드들을 서로 뭉치게 만들어준다. 즉 보이드들이 움직이는 동안에 서로 가까이 붙어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무리의 전체적인 거동을 결정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룹의 한쪽에 있는 보이드들이 다른 쪽에 있는 보이드들의 움직임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없다. 그런 법칙에는 무리가 일관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내재된 경향이 담겨 있지 않다.
그렇지만 보이드들의 움직임은 진짜 새들의 움직임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레이놀즈는 영구적인 장애물이나 (새로운 보금자리나 먹이가 있는 곳처럼) 어떤 특정한 위치로 가도록 만드는 경향을 포함시켜서 새들의 움직임에 추가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는 그런 방법으로 진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무리의 움직임을 흉내낼 수 있었다.
폰 노이만은 복잡을 복사하고 증가시킬 수 있는 사고력을 가진 기계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폴란드 수학자 울림이 그에게 추적이 가능할 정도로 간단한 과정을 소개해주었다.
각각의 사각형(세포)에 자동장치가 설치된 장기판 우주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세포 자동장치들은 각각 몇 가지 다른 상태 가운데 하나로 존재할 수가 있고, 그중의 어느 상태를 선택하는지는 인접한 세포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장치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된다. 실질적으로 각각의 자동장치들은 정보를 담고 있는 일종의 기억 소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컴퓨터 기억 소자는 "온"과 "오프"가 있는 스위치와 마찬가지로 1과 0의 두 가지 이진법 상태 중의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 폰 노이만과 울람은 정보의 패턴이 격자 위에서 어떻게 복사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세포 자동장치에서 한 세포가 인접한 다른 세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하는 규칙에 따라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다. 1960년대 말 케임브리지 수학자였던 존 호턴 콘웨이가 생명 놀이라는 일종의 장기판 모양의 세포 자동장치 놀이를 고안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세포나 유기체가 번성하는 방법에 대한 초보적인 모델이었다. 혼자 있으면 죽고, 공동체 속에서는 자라서 증식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너무 과밀해지면 식량과 자원 부족으로 죽어버린다. 생명 놀이에서 각각의 세포는 살아 있거나 죽은 상태가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세포는 살아있는 세포 둘 또는 세 개와 인접해 있으면 살고, 인접한 세포가 그보다 적거나 많으면 죽는다. 정확하게 살아 있는 세포 세 개와 인접하게 되면 죽어 있던 세포가 되살아난다.(빈칸이 다시 채워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콘웨이의 생명 놀이는 "인공 생명" 연구의 원형이다. 생명 놀이가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세포 뭉치의 모양과 거동의 엄청난 다양성은 전설적이다. 뭉치가 격자를 통해서 뱀처럼 꿈틀거리거나 새처럼 활강하면서 전파되기도 한다. 다른 뭉치를 잡아먹기도 하고, 새로운 뭉치를 연속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풍요와 놀라움이 가득한 이상한 세상이다. 세포들 사이의 국부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몇 개의 간단한 규칙으로부터 그런 모든 것이 생겨난다.
크레이그 레이놀즈의 보이드는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고, 격자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 자동장치였지만 역시 규칙에 의해서 견고하게 한정된 똑같은 자동장치들이다. 보이드는 살아 있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현상을 재현해주는 최초의 인공 생명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보이드는 "창발"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복잡성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연구 목록의 대표적인 상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떼를 짓는 행동은 보이드의 거동에서 저절로 창발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다. 규칙은 개체의 움직임만을 결정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개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에 관련된 무엇인지가 일종의 일관된 그룹 거동을 만들어낸다. 창발적 성질은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복잡성"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하버드의 생물학자 윌슨은 "창발성 그 자체는 계의 역학에 대한 통찰력이 없으면 도무지 아무 설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보이드를 비롯하여 개미 군락에서 초원의 소 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적 동물의 거동을 대상으로 하는 훌륭한 컴퓨터 모델들 전부가 물리학자들이 비평형 통계물리학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첨단 기술을 이용한 거실용 놀이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집단행동에 대한 물리학
비첵도 확산에 의해서 지배되는 응집으로 만들어지는 가지 달린 뭉치의 경우처럼 비평형계의 성장과 형태에 대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소용돌이 박테리아를 지배하는 법칙은 반드시 단순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테리아는 기체 입자와 비슷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박테리아가 특유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테리아는 영양분을 태워서 얻은 에너지를 이용해 단백질로 만들어진 프로펠러 모양의 편모를 움직여서 주변의 세포들을 함께 끌고 간다. 서로 충돌하는 기체 입자들은 뉴턴 법칙을 따르고 (대체로) 모멘텀이 보존된다. 그러나 박테리아는 그런 조건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멈추거나 더 빨리 움직인다. 그런 자체 추진력 때문에 박테리아 군체는 비평형 계가 된다. 연료를 연소시키는 세포는 평형 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에 있게 된다.
1994년에 비첵은 박테리아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각각의 박테리아 세포를 맥스웰의 춤추는 기체 입자의 하나와 같으면서도 스스로의 자체 추진력과 움직임을 조절하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갖춘 "자체 추진 입자"로 취급했다. 프로그램에서는 모든 세포가 똑같은 속력으로 움직이고, 각각의 세포는 일정한 거리에 있는 다른 세포들이 움직이는 평균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 규칙은 레이놀즈의 보이드를 지배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비첵과 치록은 박테리아의 움직임에는 무작위적인 요소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도 가정했다.
그런 무작위성은 질이 나쁜 음향 녹음에서 신호음을 방해하는 백색 잡음과 같은 일종의 바탕 잡음이 된다. 잡음이 너무 크면, 신호가 망가져버린다. 그런 경우에는 세포 움직임의 무작위적 요소가 세포들이 조화롭게 움직이려는 경향을 압도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컴퓨터를 통해서 박테리아 자동장치의 움직임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곧바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잡음이 충분히 작으면 세포들은 집단적인 거동을 나타낸다. 즉 모든 세포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각각의 세포들은 지역 구에 속한 입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룹 전체가 하나인 듯 움직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잡음이 커지면 조화의 정도가 줄어든다. 어떤 결정적인 잡음 수준에서는 일관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비첵과 치록은 우연히 온도 변화에 따른 자석의 거동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낮은 온도에서는 모든 자기 스핀이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되고, 원자들의 자기장이 합쳐져서 전체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높은 온도에서는 바늘이 무작위적인 방향을 향하게 되고, 자기장은 서로 상쇄되어버린다. 임계 온도에 도달하면 자기서 상태와 비자기성 상태 사이의 중간에서 상전이가 일어난다. 스스로 추진하는 입자에서는 배열된 상태에서 배열되지 않은 상태로 비정상적인 상전이가 일어난다. 평균 속력은 자기장의 역할을 하고, 잡음은 온도의 역할을 한다. 연구자들은 박테리아의 움직임을 이런 현상과 대응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스스로 추진하는 입자들의 배열이 "비평형" 전이라는 사실과 관계된 몇 가지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과정 사이의 수학적 동등성을 증명할 수 있다. 모두가 "보편적" 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집단 법칙
토머스 홉스는 "사회적 동물"의 협동 행동을 놓치지 않았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람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수학적인 모델로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각각 독특한 형식의 수천 가지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면 인간의 활동을 이상화할 필요가 있겠는가?
복잡한 궤적을 가지고 있는 모델을 개발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모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내가 입력한 것과 거의 같을 것이다.
1971년 헨더슨은 그런 고약한 개별성을 넘어서더라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룹에서 하는 행동에서 정량화할 수 있는 "통계적"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복잡한 거리를 걸어가는 행인들에게는 어떤 일반적인 규칙, 어떤 제한 조건, 어떤 경향이나 평균이 있다. 그는 그런 성질이 맥스웰-볼츠만의 기체 운동론을 따르는지 알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보도를 따라 걷는 사람의 속도 분포가 맥스웰이 도입했고 볼츠만이 증명했던 종 모양의 곡선에 맞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는 움직이는 집단을 살펴보녀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했다. 모든 경우에 속도가 맥스웰-볼츠만 곡선에 아주 잘 들어맞았지만, 이상한 차이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속도를 나타내는 곡선에는 조금 다른 평균 속력을 가진 두 개의 맥스웰-볼츠만 입자들의 분포가 서로 겹쳐진 것처럼 두 개의 분명한 피크가 있었다. 헨더슨은 두 개의 피크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남자와 여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핸더슨은 집단의 움직임을 흩뜨리면 집단의 "전반적" 인 상태에 변화가 생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체를 압축했을 때 액화가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집단에게도 상전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그는 실제로 그런 종류의 상전이를 관탈했다는 보고를 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말 집단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헬빙은 그런 설명이 실제 보행자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행자들의 의도가 무엇이었고, 그들이 주위의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요인들이 포함된 모델이 있어야만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복잡한 행동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헬빙은 개인의 움직임은 "개인적인 목표나 관심" 같은 내적 영향과 "상황과 환경에 대한 인식" 같은 외적 영향의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행동에 대한 외부적 영향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1945년에 심리학자 카렌 호니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는 "다가가기", "멀어지기", "대항하기" 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유명인사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매력 덕분에 팬이나 추종자들을 불러모으게 된다. 그러나 집단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움직이면서 뭉치게 될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낯선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상호작용은 인력이나 반발력과 비슷하다. (호니의 "대항하기"는 좀 특별한 경우이다. 공격이나 충돌에 의해서 발생하는 의도적인 방해를 뜻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호니가 묘사했던 일종의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상호작용을 사회과학에서 광범위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빈에 따르면, 개인은 생각, 믿음, 습관, 개념 등으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힘 장 속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힘 장은 개인이 경험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서 다듬어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어떤 경향을 가지게 된다.
그런 주장은 대체로 인성에 대한 홉스의 기계론적 인식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본 헬빙과 몰나르는 일종의 그룹 동역학적 특성이 자발적으로 창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로의 중심을 따라 설치된 기둥이나 나무와 같은 장애물이 그런 흐름을 만들도록 촉진시킨다.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하지 않아도 그렇다. 보행로는 자발적으로 조직화되지만,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행로를 차지하게 되는지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다.
선도자가 문을 통과하고 나면 몇 사람이 뒤를 따르게 된다. 다른 그룹은 뒤로 물러나서 이들이 통과하도록 기다린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예절은 사실 서로 가까이 접촉하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이 모델은 보행로의 불편과 혼잡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둥을 세워서 복도에 구획을 만드는 것도 흐름을 개선하는 방법이 된다. 문 때문에 생기는 혼잡을 줄이려면 문을 넓게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문이 넓어지면 반대 방향의 흐름이 번갈아 나타나는 일이 잦아질 뿐이다. 두 개의 문을 만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어느 방향의 문인지를 분명하게 표시하지 않더라도 집단은 자동적으로 두 개의 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지나가는 두 개의 흐름으로 조직화된다. 따라서 두 개의 문은 두 문의 폭을 합친 것과 같은 폭을 가지 ㄴ하나의 문보다 더 효율적이다.
이 보행자 모델로부터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열린 공간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길이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알아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길이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풀은 일정한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길은 결국 사라져 버린다.
처음에는 피플로이드들이 여러 목적지 사이의 최단 경로를 비교적 잘 따라갔다. 그러나 상당한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최단 경로가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 최단 경로를 따라가려는 경향과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조화를 이룬 길이 만들어진다.
설계자가 당초에 만들었던 본래의 길을 사용하도록 노력했지만 실패한 경우를 보았다. 보행자들이 모두 그런 의도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드링 좋아하는 길을 다시 만들어버렸다.
공간의 언어
공원의 열린 공간에서는 보행자들이 공식적인 보행로를 무시하고 집단적으로 만든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도시나 건물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도시와 건물의 공간도 사람의 필요와 요구에 맞도록 설계할 수 있을까?
방문자들은 중앙에서 고전 작품과 영국 작품이 전시된 왼쪽 방을 현대 작품이 전시된 오른쪽 방보다 더 선호했다. 방문자들이 현대 작품보다 고전이나 영국 작품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을까? 연구자들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술관의 모든 방이 방문자들에게 똑같이 "매력적" 인 경우에도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똑같은 좌-우 비대칭을 보여주었다. 방문자들은 방이 배열된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선호도를 따르고, 현대 작품이 전시된 방의 구조가 더 복잡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 관람자의 행동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관이 작품을 어떻게 배열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모델을 이용하면 기존의 길이나 건물 설계에서 나타날 만한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과제는 보행자들이 주어진 공간을 사용하는 "규칙", 즉 힐리어의 공간 논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힐리어는 공간의 시각적 언어에서는 시각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런 언어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ㅕㄴ 힐리어의 피플로이드들이 공간에서 이동하는 더욱 현실적인 길을 보여주도록 프로그램할 수가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도시 개발 모델이 도입되기까지는 도시화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화하고 다양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왔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도시 개발 모델은 집단행동을 방해하고 사람들이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사회적 접촉을 줄이고, 지역을 분화시키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고층 빌딩 지역은 생활 공간을 밀집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연대감을 만들어내는 접촉의 빈도를 줄이도록 만들었다. "고층 건물들이 실패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규모를 줄이려는 감추어진 목적에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힐리어와 핸슨의 주장이 옳다면, 멋진 도시 계획에서의 장애물은 단순히 사람들이 공간을 어덯게 사용하는지를 몰라서 설치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어진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어떻게 돌아다니고 싶어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며 예측할 수 있고, 공간이 수용해야 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델화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더 긴장을 풀고, 편안하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곳을 만들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빠른 출구
비첵 연구자들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산만해지면 (너무 "잡음이 심하면") 복도에서 혼잡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리학의 문제로 생각하면 이런 상황은 직관과 반대되는 결과이다. 피플로이드의 움직임을 더 산만하게 만드는 것은 입자들로 구성된 집단의 온도를 높여서 더 심하게 흔들리게 만드는 것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결과는 군중이 "얼어붙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유체"는 "가열하면" 얼어붙어버린다. 물과 같은 정상적인 유체는 냉각시켜야 얼게 된다.
비첵은 지나치게 흥분한 군중에 의한 혼잡이 공황의 효과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들은 공황이 일반적인 움직임과 다른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향이 더 이상 움직임을 지배하지 못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게 되면, 움직임이 제한을 받는다. 지나치게 밀집된 군중 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지나쳐갈 수도 없고 몸을 돌릴 수도 없다. 사람들 사이에 움직임을 방해하는 일종의 마찰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사포가 붙여진 당구 공처럼 피플로이드에게 마찰 특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가하는 압력이 너무 커지면 그 사람은 부상을 입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가정했다. 연구자들은 부상을 당하게 되는 압력의 수준을 추정함으로써 밀집된 군중에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희생자가 생기는지의 기준을 얻고 싶어했다.
실험에서 반대쪽 벽에서 불이 지속적으로 번지게 했다. 피플로이드들이 두려움을 억누르고 초속 1.5미터 이하의 차분한 속도로 움직이면, 질서정연하게 방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피플로이드들이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려고 하면, 결과는 놀랍게 달라진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고 군중은 공황에 빠지고, 혼잡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막힘 효과는 익숙하다. 소금병의 구멍보다 작은 소금 알갱이가 구멍을 막아버리는 것도 같은 경우이다. 알갱이들은 상호 마찰 때문에 구멍에 아치를 형성해서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하게 된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 더 느리게 되는 셈이다. 평상의 상태와 공황 상태 사이에 일종의 비평형 상전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빠른 속도가 더 느린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더 위험하기도 하다.
작은 무리는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작은 무리는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누군가가 출구를 찾아내면 다른 사람들도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 효과는 한번 나타나면 스스로 강화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무리 짓기는 거의 모든 사람을 하나의 출구로 모여들게 하고, 다른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다른 출구를 찾으려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무리짓기는 처음에는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무리 짓기 수준을 넘어서면 역효과가 빠르게 확신된다. 한곳의 출구는 무리를 따라온 사람들에 의해서 막혀버리고, 다른 출구들은 전혀 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출구의 가장 효율적인 활용은 적당한 수준의 무리 짓기에서 이루어진다. 무리 짓기 수준이 너무 높거나 너무 낮으면 출구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
군중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전체 계획 수립 과정이 훨씬 더 유연해진다. 연구진에 따르면, 예측은 처방과 함께 혼합될 수가 있다. 계획은 위에서부터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쌍방향적인 방법으로 결과와 서로 엮이게 된다. 보행자의 움직임에 대한 이런 모델에서는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들이 접하는 제약 조건에 대한 간단한 몇 가지 가정을 근거로 사람들이 무엇을 "하게 될 것" 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목표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물리학의 진정한 정신이다.
집단 움직임의 변화는 개인적인 의도가 점진적으로 변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창발될 수 있다. 뜻하지 않은 결함도 있다. "여러 규칙들이 실제와 같은 그룹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그럴듯한 결과가 실제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경우도 있다. 창발적 성질로부터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도시의 한계
현대의 도시는 결국 살아 있다.
1990년 대에 마이클 배티는 도시의 꼴사납고 불규칙적인 외곽선이 마츠시다 미츠구가 박테리아의 성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확산 한계 응집(DLA)으로 만들어지는 입자 뭉치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LA로 만들어지는 뭉치로 보면, 도시는 합리적인 설계가 불가능한 스스로의 생명을 가지고 자라는 진정한 유기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멈퍼드의 유명한 표현에 따르면, "혼돈의 결정화"가 바로 그것이다.
배티와 그의 연구원 폴 롱리는 도시의 모양을 설명하기 위해서 유전체 붕괴 모델이라는 DLA 형 성장 이론을 이용했다. DLA 뭉치들은 분명하지 않은 가장자리에 입자들이 달라붙으면서 성장하지만, DBM에서는 울퉁불퉁한 모서리들이 주변의 매질 속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전진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모델이 도시 팽창에 대한 더 현실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스 연구진은 "상관 스며들기" 모델을 도시의 성장에 적용했다. 개발 지역들도 역시 서로 상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주택이나 상업 지역이 있는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새로운 주택이나 상업 지역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들은 도시의 성장을 DLA와 같은 형식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즉 도시의 성장은 일반적으로 가장자리에 새로운 입자("개발 단위")가 달라붙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DLA 입자들은 무작위적으로 달라붙지만, 상관 스며들기 모델에서는 다른 입자들이 있는 곳에 달라붙을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이 모델에서는 주된 뭉치에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도 새로운 개발 중심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했다.(물론 상관을 통한 영향은 미친다)
결과적으로 얻는 모양은 그런 상관관계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범위의 상관 강도에서는 자라나는 뭉치들이 실제 도시와 많이 닮았다. 더욱 정확한 정량적인 비교를 하는 방법은 주된 도시 부근에 얼마나 많은 작은 마을이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정부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게 된다." 그런 집단적인 과정은 모양과 형태에 대한 스스로의 물리적 법칙을 만들어낸다.
도시 구조에 두 가지 구별되는 종류가 있다. 한 종류는 비교적 "열린" 구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많은 축선들이 전체 도시 공간을 가로지른다. 방콕, 에인트호벤, 시애틀, 바르셀로나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그룹은 짧은 축선들이 밀집된 것으로 런던, 홍콩, 아테네, 다카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첫 그룹에 속하는 도시들의 성장은 대규모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전반적" 도시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두 번째 그룹에 속하는 도시들은 "국부적" 도시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긴 도로와 같은 "도시적 규모"의 특징이 적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학자 사이먼은 핵심적인 도시 계획이 없다고 해서 도시가 나쁘게 "설계"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상품의 운반이나 주거, 상업, 공업 지역의 분포, 그리고 작은 지역에 알맞은 활동이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인 (또는 과거에 그랬던 적이 있는) 곳들도 있다.
눈송이의 경우처럼 도시에서 저절로 패턴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도시가 성장할 것이라면, 어떻게 성장을 막을 것인지보다는 어떻게 하면 살기에 더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 것인지에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의지만 있다면 훌륭한 대중교통과 서비스, 저공해 차량, 보호된 녹색 공간, 다양한 지역 상점, 매력적인 건물들이 모두 가능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미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곳에 대한 쓸모없는 설계를 하려는 거대한 계획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경제계의 불확실한 숨겨진 손 (0) | 2025.02.21 |
---|---|
#07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냉혹한 교통의 동력학 (1) | 2025.02.21 |
#05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성장과 모양에 대하여 (0) | 2025.02.21 |
#04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어떤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유 (0) | 2025.02.21 |
#03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무작위성에서 시작되는 규칙성 (1) | 2025.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