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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임계 상태와 직선의 위력

10. 희귀한 비율 - 임계 상태와 직선의 위력

 

세상의 상당한 부분은 평균만이 아니라 분포의 "끝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평균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에 의해서, 일정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앙에 의해서, "중산층"이 아니라 최고 부자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평균"의 사고방식에서 스스로 벗어나야만 한다. - 필립 앤더슨(1997)

 

사실 요즘은 지진, 진화, 산불, 심지어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명단과 세계대전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서 임계점을 찾아내는 일이 유행이다. 그런 주장의 설득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요동에 대한 극단적인 민감도, "무규모" 사건들, 특히 확률 분포의 특별한 형태를 비롯한 임계 현상의 특징들 중 많은 부분이 자연과 인간 세계에서 폭넓게 발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생활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불예측성과 규칙성의 이상한 조합에 대해서 임계점은 적어도 훌륭한 은유이고 때로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칼날 위의 물리학

반 데르 발스의 이론은 물질의 액체와 기체 상태의 구분이 사라지는 임계점의 존재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임계점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선 임계점에 가까운 유체는 뿌옇게 보인다. 임계 유백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한 가지 실험적 특징은 임계점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민감성이다. 임계 상태에 가까이 있는 시스템은 작은 교란에 극단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질을 압축하면 부피가 줄어든다. 기체는 일반적으로 액체보다 훨씬 더 쉽게 압축된다. 액체와 기체의 임계점에서는 유체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압축된다. 사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압축된다.

 

그런 사실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험적으로는 물질을 임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일은 절대 관찰할 수가 없다. 임계 상태가 너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계점에 다가가면서 압축도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물질의 열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시스템의 온도를 높이려면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한다. 온도를 1도 높이기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열 에너지의 양을 "열용량"이라고 부른다. 물은 비정상적인 큰 열용량을 가지고 있다. 물을 끓이려면 많은 열을 투입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임계점에서는 물질의 열용량이 무한대가 된다. 물질이 일종의 무한 열흡수기가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가열해도 온도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임계점은 극도로 차가운 액체 헬륨과 초유체라고 알려진 이상하면서 점성이 없는 상태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절대 온도 0도보다 2도 정도 높은 온도에서 액체의 열용량이 갑자기 증가하는 것은 초유체로 상전이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확실한 흔적이다.

 

이런 이상한 거동을 "발산"이라고 한다. 물질의 어떤 성질이 임계점에서는 무한대로 발산한다는 뜻이다. 반 데르 발스의 이론은 임계점에서 유체의 압축도와 열용량이 발산한다는 사실을 예측한다. 그곳에서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런 발산의 속도를 나타내는 "임계 지수"라는 편리한 양이 있다. 

 

과학자들은 온도가 임계 온도에 가까워지면서 열용량과 같은 양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는지를 측정함으로써 임계 지수를 쉽게 계산할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 임계 지수가 "모든" 유체에서 똑같다는 것이다. 압축도의 발산을 나타내는 임계 지수는 열용량의 임계 지수와 다르지만, 역시 모든 유체에서 같은 값을 얻었다. 액체-기체의 임계 지수는 "보편적"이다.

 

임계 지수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수학이 필요하다. 지수는 두 가지 양 사이의 멱법칙이라는 수학적인 관계를 정의해준다. 어떤 양 y의 값과 다른 양 x의 값이 멱법칙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x의 값을 두 배로 늘릴 때마다 y의 값이 일정한 배수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멱법칙의 지수는 그런 배수가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숫자이다. 예를 들면, 지수의 값이 2이면, x의 값을 두 배로 할 때마다 y의 값은 네 배가 된다. 지수가 3이면, y의 값은 여덟 배가 된다. 

 

이런 관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간단하다. 예를 들면, 육면체의 모서리 길이와 부피 사이에는 멱법칙 관계가 있고, 그 지수는 3이다. 모서리의 길이를 두 배로 하면, 육면체의 부피는 여덟 배로 늘어난다.

 

임계점에서 발산하는 유체의 성질은 모든 유체에서 같은 값을 가진 임계 지수에 의해서 정해진 속도로 발산한다. 어떤 성질은 임계점에서 무한대로 커지는 대신 0으로 줄어든다. 액체와 기체 사이의 밀도 차이가 그런 경우이다. 퀴리 점에서 자석의 자화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도 역시 그런 성질들이 0으로 줄어드는 독특한 속도가 있다. 그런 속도에 대한 임계 지수도 정의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지수가 음의 값을 가지게 된다.

 

반 데르 발스의 이론에 따르면, 그 값은 -0.5가 되어야 했다. 실제 값은 -0.343이다. 이런 차이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임계 지수가 모든 유체에 "보편적"이라면, 그 속에는 물질의 본질에 대한 지극히 근본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반 데르 발스의 이론에 무엇이 빠져 있기 때문에 임계점에서의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주지 못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흔들리는 균형

반 데르 발스 이론이 밝혀내지 못했던 것은 임계점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거동의 핵심이 요동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임계점은 선택을 해야 하는 갈라진 길을 나타낸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것이 바로 얼거나 녹는 것과 같은 1차 상전이와 임계 상전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액체가 어는 점 근처에 도달하면, 액체의 모든 부분이 고체가 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그러나 유체를 임계 온도를 통해서 냉각시키면, 유체는 갑자기 액체나 기체의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되고, 그 확률도 똑같아진다. 자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임계 온도(퀴리 온도) 이하에서는 이징 모형의 원자들이 자석 바늘(스핀)을 두 가지 반대되는 방향 중에서 어느 쪽으로도 향할 수 있다. 두 가지 이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임계점은 공이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계곡을 가진 언덕 위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공은 두 계곡 중의 하나로 굴러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런 선택은 요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론적으로는 초임계 상태의 유체는 전체적으로 같은 밀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원자들의 무작위적인 움직임에 의한 우연한 요동 때문에 어느 곳은 순간적으로 밀도가 더 커지고, 다른 곳은 밀도가 더 작아지기도 한다. 유체를 임계 상전이 상태를 지나서 냉각시키면 밀도가 더 높은 곳은 이미 액체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액체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밀도가 더 작은 곳은 기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무작위인 선택은 어느 쪽이나 영원히 지속된다. 그런 사실은 자석의 경우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스핀이 같은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는 영역에서는 경계 부근의 스핀도 이웃한 스핀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배열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은 무작위적인 요동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진다. 아주 작은 우연에 의한 선호가 균형을 깨뜨린다. 그런 불안정성은 임계 상태를 언제나 이쪽 아니면 저쪽 계곡으로 굴러내려갈 위험이 있는 매우 불확실한 상태로 만든다. 물질을 임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모든 방향에서 한꺼번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바늘을 세우려는 것과 같다.

 

기본적인 특이성은 요동에 대한 극단적인 민감성 때문에 나타난다. 시스템의 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 거의 순간적으로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스핀의 방향이 직접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스핀의 상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계 물리학의 표현을 사용하면, 시스템에 장거리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임계점에서는 한 입자가 다른 입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표적인 거리에 해당하는 상관 범위도 역시 무한대로 발산한다.

 

그런 극도의 민감성은 집단적인 효과이다. 시스템의 두 입자나 스핀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미치는 영역이 임계점에서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징 모델에서는 가장 가까운 이웃까지가 그 한계이다. 그러나 그런 상호 작용이 열운동의 무작위화 효과에 의해서 압도당하지 않고 먼 거리까지 전달된다. 임계점에서는 입자들이 함께 행동한다.

 

문제는 각각의 입자가 다른 모든 입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따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계 상태에서는 영역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고, 각각의 조각은 우연에 의해서 생기는 국부화된 불균형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 영역은 하나의 입자에서부터 전체 시스템을 포함할 정도로 큰 집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영역에는 어떤 특징적인 규모도 없다. 모든 가능한 길이 규모가 다 나타나고, 끊임없이 형성되었다가 풀어지며, 자랐다가 줄어들기도 한다. 따라서 임계 상태는 열잡음에서 생기는 독특한 요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어떤 가능한 규모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거동이 임계점에서 유체가 우유처럼 변하는 임계 유백의 원인이다. 그런 영역은 우유에서 떠 있는 미시적인 지방 입자와 마찬가지로 빛을 심하게 산란시킨다. 그래서 유체가 진주 빛의 불투명한 모습으로 보인다.

 

반 데르 발스 이론에서는 임계 상태의 요동에 대한 미시적인 구조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임계 지수가 틀릴 수밖에 없었다. 반 데르 발스 이론에서는 임계 상태를 평균적으로 어느 곳이나 똑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런 경우에는 입자가 불연속적인 이웃의 "흰" 성질이나 "검은" 성질을 보지 못하고 다른 모든 입자들에 의한 평균적인 "회색" 성질만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평균장 그사이다. 반 데르 발스의 평균장 이론은 자세한 부분에서는 실패했지만, 임계 상태를 설명하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실제 유체의 경우 이론적으로 그 값을 예측하려면 온사거의 분석을 3차원으로 확장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시도가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론물리학자들에게는 3차원 이징 모델과 같은 모델에서 임계 지수의 "진짜" 값을 짐작할 수 있는 묘수가 있다. 재규격화라는 방법으로, 임계점에서 규모에 상관없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 재규격화는 임계 상태를 곁눈질로 들여다보는 수학적인 방법으로 작은 구조는 회색으로 처리하고, 큰 구조만을 남겨 두는 "선택적" 제거 방법에 해당한다. 그런 재규격화 과정을 점진적으로 큰 규모에 적용함으로써 임계 지수의 진짜 값을 계산할 수 있다. 이 방법을 3차원 이징 모델에 적용하면 실제 유체에서 실험적으로 얻은 것과 거의 같은 값을 얻는다.

 

격자에서 채워지거나 비어 있는 상자로 이루어진 유체의 이징 모델은 실제 유체에 대해서는 매우 엉성한 근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3차원에서 임계 지수는 액체나 기체에서 실험적으로 측정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런 결과도 역시 보편성의 개념을 확인시켜준다. 임계 거동에 관한 한 자세한 정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스템의 광범위한 성질만이 임계 거동에 영향을 미친다. 

 

유체가 질소이거나 아이소펜테인이거나, 자성 금속이거나, 또는 다른 것의 엉성한 모델이거나는 상관이 없다. 입자가 2차원 또는 3차원에 존재하느냐와 장거리 또는 단거리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을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이런 종류의 차이는 두 가지 시스템을 서로 다른 "보편적 집단"으로 분류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집단에 속한 시스템들은 모두 같은 임계 지수를 가진다. 겉으로 서로 다르게 보이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차이가 없으면 임계 상태에서는 똑같은 것처럼 보인다.

 

 

임계 붕괴

아길라가 1999년에 발표한 논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금융 붕괴를 시스템의 모든 부분이 협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작은 외부의 동요가 무한히 증폭되는 통계역학의 임계점과 비슷한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다."

 

아길라가 1995년에 빠졌던 유혹이 바로 그것이었다. 금융 붕괴가 소위 로그 주기적 거동을 보이는 특별한 종류의 임계 전이에 해당한다는 제안은 있었다. 그런 임계점은 통계물리학의 일부 모델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종류의 시스템은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진동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적 의미에서는 주기적인 경기 순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로그 주기적 변동은 빛이나 소리굽쇠의 규칙적인 진동과는 다르다. 오히려 파동의 최고점과 최저점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임계점에서는 두점이 완전히 겹쳐져버린다. 따라서 최고점과 최저점이 점점 더 짧은 간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런 임계 전이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점점 더 빨라지는 진동이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그런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임계점의 징조 때문에 금융 붕괴가 정말 로그 주기적 임계점이라면 경제지표의 독특한 진동을 확인해서 서로 겹쳐지는 점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대규모 붕괴가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998년 벨기에의 물리학자 아우스로스  붕괴 직전의 변동을 분석한 그들은 변동을 근거로 붕괴가 일어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진동은 붕괴 직전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붕괴에서 멀리 떨어진 기간에는 가격이 몇 분 내에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투자회사에는 그런 정보가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임박한 붕괴에 대한 징조는 시장의 거동에서 몇 주가 아니라 몇 달 또는 몇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경제물리학자들도 있다.  그런 방법이 다른 붕괴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붕괴가 일어나기 몇 년 전의 시장 상황이 붕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로그 주기적 임계점 이론과 실제 자료가 잘 들어맞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숨겨진 요인"은 어떤 경우에도 의심스럽다. 이미 알려져 있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예측"이 정말 객관적일 수 있을까? 소르네트는 아쉽지만 미래의 붕괴를 확실하게 예측하려는 노력은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1. 아무도 예측을 믿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이 붕괴한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 예측을 믿은 투자자들이 공포 속에서 사고파는 과정에서 붕괴를 일으킨다. 즉 예측이 스스로 현실이 되어버린다.

3. 예측을 믿은 투자자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함으로써 붕괴를 예방한다. 즉 예측이 스스로를 부정해버린다.

 

자기 조직적 시장

붕괴에 대한 로그 주기적 모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 동력학이 임계 상태와 같은 거동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주장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경기 변동의 통계학이 가우스 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히려 변동은 규모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모든 규모의 변동이 발견된다. 통계적으로 확률 분포의 "살찐 꼬리"에 담겨진 경제 자료는 임계 거동의 특징인 멱법칙 분포와 일치한다.

 

멱법칙은 주어진 규모의 변동 확률을 알려준다.가장 가능성이 높은 수익은 0이고, 큰 수익이나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도 비교적 작다. 점차 규모를 늘려나가면서 변동의 상대적인 빈도를 측정하면 확률이 멱법칙에 따라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임계점에 있는 시스템이 외부의 간섭에 대해서 모든 규모의 요동으로 반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시장에서의 변동 확률의 분포도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임계 상태와 비슷하고, 확률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무작위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예측 불가능한 충격이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임계 상태는 극도로 불안정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어느 쪽으로든지 무너져버린다. 1987년 브룩헤븐 국립연구소에서 일하는 물리학자들은 우연히 이상하고, 기적과도 같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임계 상태로 재조직화하는 시스템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런 현상을 자기 조직적 임계성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임계점을 연구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정형 고체에서 전자들이 가끔씩 전하밀도 파동이라는 형태로 이동하는 난해한 문제를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상관된" 움직임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의 전자들은 전류가 흘러가는 보통의 금속 도선에서처럼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한 전자의 움직임은 다른 전자들에게 심한 영향을 주어서 서로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여러 개의 상호작용하는 입자들이 짝을 짓고 있는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러 개의 흔들리는 진동자가 스프링으로 연결된 경우를 전하밀도 파동의 엉성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두 시스템은 전혀 닮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진동자가 단순한 주기적 운동이 관련된 모든 과정에 대한 훌륭한 모델이 되는 것처럼 두 시스템 사이에도 닮은 점이 있다.

 

뉴턴 운동 방정식을 만들어서 컴퓨터로 풀어본 연구자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짝지은 진동자들 중에서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스프링을 통해서 에너지가 전달되면서 다른 진동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어떤 범위로도 확장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진동자가 바로 인접한 진동자들만을 진동하게 만든다. 

 

그러나 전체 시스템에 "사태"가 일어나서 수천 개의 진동자가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사태가 얼마나 큰 규모가 될 것인지는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확률과 규모를 그래프로 그려본 퍼 백 연구진은 멱법칙을 발견했다.

 

브룩헤븐 연구진은 그런 짝지은 거동에 대한 더욱 직관적인 새로운 모델을 개발했다. 그들은 진동자와 스프링을 한 더미의 모래로 대체했다. 테이블 위에 모래를 한 알씩 떨어뜨린다고 생각해보자. 서서히 무더기가 만들어져서 작은 모래 산이 된다. 경사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꼭대기에 떨어뜨린 모래 한 알이 사태를 일으킨다.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래알들이 서로 간의 마찰에 의해서 경사면에서 흘러내리지 않고 정지해 있다. 어떤 각도가 되면 마찰이 더 이상 움직임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사태가 시작된다. 한 알의 모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른 모래알과 충돌하면서 사태가 시작된다. 한 알의 모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른 모래알과 충돌하면서 일종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모래알의 움직임이 충돌에 의해서 짝을 짓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십여 개의 모래알이 굴러내리고 나면 곧 힘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거의 모든 경사면이 사라질 정도로 계속되는 재앙적인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모래알을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의 더미에 떨어뜨릴 때 그것이 몇 알의 모래알만을 움직이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모래 더미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의 사태를 일으킬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이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징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모래 더미 실험에 대한 간단한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서 컴퓨터로 연구했을 때도 역시 사태 규모의 분포가 멱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큰 사태는 작은 사태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모든 규모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래 더미의 요동은 규모에 상관이 없다. 모래 더미는 임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사태는 모래 더미의 "긴장"을 해소시켜서 경사각을 줄이고 안정성을 되찾아준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사태는 단순히 모래 더미를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로 되돌려놓기 때문에 바로 다음 모래알이 더해지면 다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모래 더미는 불안정한 안정성의 상태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의 모래 더미가 아니라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임계 상태가 끊임없이 복원된다. 그것이 바로 임계 상태가 자기 조직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이와는 달리 액체나 기체의 임계 상태는 조금만 방해를 하면 전혀 다른 안정한 상태로 변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래 더미 모델은 비평형 상황을 설명해준다. 여기서 임계 상태는 시스템이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류 상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모래알이 계속 더해지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 평형 상태는 아니다. 모래 더미 위에 모래알을 떨어뜨리는 것은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원동력이다. 자기 조직적 임계성은 비평형 상태의 특징이다.

 

자기 조직적 임계성은 지난 20년 동안 통계물리학에서 이루어진 몇 안 되는 진정한 발견들 중의 하나이고, 놀라울 정도로 유용한 개념으로 밝혀졌다. 퍼 백은 자기 조직적 임계성이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멱법칙 요동을 경험하는 광범위한 자연현상들을 발견했다. 오래 전부터 지진도 멱법칙 확률 분포를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즉 지진의 확률은 규모가 커지면서 멱법칙에 따라 줄어든다.

 

백과 그의 동료들은 지진의 발생이 지질학적 단층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자기 조직적 임계성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지각의 움직임이 계속해서 암석 형성에 스트레스를 주면 결국에는 미끄러짐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다시 안정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다시 압력이 쌓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는 조금씩 방출되어서 작은 지진을 일으킨다. 그러나 가끔씩은 재앙적으로 방출되어서 로스앤젤레스나 고베 같은 도시에 심각한 재앙을 일으키기도 한다. 

 

백은 산불에서도 자기 조직적 임계성을 발견했다. 넓은 산림지역은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대부분 그 규모가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산불이 산림 전체로 퍼져나가기도 한다. 백에 따르면, 화산 활동, 태양 플레어, 중성자 별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천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성진", 화석에서 멸종의 형태 등이 모두 자기 조직적 임계성의 멱법칙 지문을 보여준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모래 더미 자체는 전혀 자기 조직적 임계 상태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베젠펠트가 처음 만들었던 수학적 모델에서는 흘러내리는 모래알의 에너지가 충돌 과정에서 소진되는 방법을 비롯해서 실제 모래 더미의 중요한 특징을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자기 조직적 임계성(SOC)은 알갱이 더미에서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은 듯하다. 쌀알의 경우에는 SOC가 나타나지만, 모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알갱이의 모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는 SOC가 "자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백의 주장을 약화시킨다. 그런 정도의 보편성을 주장하기에는 충분히 일반적이고 확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요동의 멱법칙 확률 분포와 "긴장을 해소시켜주면서" 시스템을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되돌려놓는 재앙적 사건과 같은 SOC의 기본적인 특징은 광범위한 현상을 이해하는 강력한 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떤 면이 그런 현상에 포함된다는 것이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강성 경제학

마이클 우드퍼드와 호세 샤인크만은 자기 조직적 임계성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경제도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연구하고 싶어했다. 일부 괴팍한 경제학자들은 이미 카오스 이론의 개념을 경제학에 적용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샤인크만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주류에서 확실히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우드퍼드와 샤인크만은 전통적인 경제학 모델에서는 무시되었던 "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을 허용한다는 이유 때문에 백의 이론에 더 많은 흥미를 느꼈다.

 

우리의 결론은, 경제학에서 관찰되는 대규모 변동은 경제가 지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 충격이 모든 규모의 사태(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자기 조직적 임계 상태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변동은 피할 수가 없다. 이자율이나 다른 방법의 규제를 통해서 경제를 안정시키고 변동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기 조직적 임계 경제학의 개념은 흥미롭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대 더미 모델과 마찬가지로 방향은 맞지만 세부적인 사실은 틀린 것처럼 보인다. SOC의 핵심은 멱법칙에 의해서 설명되는 규모에 상관없는 거동이다.

 

자기 조직적 임계성이 시스템의 변동에서 드물더라도 극단적인 사건들의 자연적인 면을 잘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법칙의 정신

(가우스 형 변동과는 달리) 극단적인 사건들을 차별하지 않는 멱법칙 확률 분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조직화하는 방법에 포함된 특징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물리학자 시드니 레드너는 1998년 통계학이 멱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레드너는 1981년에 발표된 거의 80만 편의 논문을 살펴본 결과, 인용 통계가 멱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겨우 몇 번만 인용되지만, 소수의 논문들은 많은 수의 인용문 목록에 등장한다. "과학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기어간다"는 테니슨의 주장은 옳다.

 

그런 멱법칙 관계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큰 지진은 작은 지진보다 드문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멱법칙은 더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사건이 커지거나 더욱 극단적이 될 때 그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감소하는 특별한 방법을 보여준다. 네 번 인용될 확률이 두 번 인용될 확률의 1/8이 되어야 하고, 여덟 번 인용될 확률도 역시 네 번 인용될 확률의 1/8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사건의 규모를 두 배로 하면 확률이 일정한 비율로 줄어들어야 한다는 선험적 이유는 없다. 멱법칙의 일반적인 의미는 사실 직관적으로 분명하다.

 

마크 뷰캐넌은 저서 <유비쿼터>에서 역사도 역시 자기 조직적 임계 상태에서 작동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분쟁과 전쟁이 바로 국제 관계를 재앙 직전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긴장의 결과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결국 단순한 다툼에서 세계대전에 이르는 모든 규모의 전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전쟁과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세계대전은 모두 하나의 멱법칙을 만족시킨다.

 

뷰캐넌의 소박한 결론에 따르면, 작은 요동에서 얼마나 큰 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알아낼 수 없다. 뷰캐넌이 주장하는 것은 그런 경우처럼 복잡한 시스템에 "긴장"이 생기면 작은 사건이 어울리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일

미국의 사회과학자 조지 킹즐리 지프는 1949년에 발간된 <인간 행동과 최소 노력 원리>를 통해서 사회의 자연법칙에 대한 계몽적 믿음과 진정한 과학적 사회학의 가능성을 되살리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지프의 핵심적인 주장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한 방법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프는 그것을 19세기 수학자 해밀턴이 주장했던 물리학 원리와 대등한 사회학적 원리로 여겼다. 해밀턴은, 어떤 물체가 힘을 받아 움직이는 방법은 "최소 작용 법칙"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턴이 밝혀낸 역학 법칙에는 물체가 움직이는 경로에 따라 결정되는 역학적인 양인 "작용"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테이블 위에 정지해 있는 공이 바닥에 정지한 상태로부터 움직일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만이 움직임의 작용이 최소가 되고, 바로 그것이 공이 모서리를 따라 움직이는 경로가 된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작용을 계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에 필요한 "노력"을 정량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에너지, 시간, 불편함, 돈 등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주어진 일을 하는 방법이 다르다.

 

"노력"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소 노력의 법칙은 매우 불안한 원리임에 틀림없다. 개념은 그럴듯하지만 핵심적인 파라미터는 전혀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시의 사회과학자들은 가우스 형 분포의 통계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프가 확인한 자료의 중요성은 통계물리학의 핵심에서 멱법칙 거동이 밝혀진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끌게 되었다. 2002년에 사망한 퍼 백은 자기 조직적 임계성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 작동 방식"이라고 믿었고, 지프는 자신의 멱법칙 그래프가 "사회의 작동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은 가우스 형 통계가 아니라 멱법칙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믿었다. 잉제 우리는 멱법칙이 자연세계에서도 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프는 오늘날 자기 조직적 임계성의 증거로 여겨지는 기울기가 -1인 특별한 멱법칙을 사람들이 개인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는 집단으로 행동하는 현상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대체로 사회현상에서 상호작용의 역할을 이해한 수준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상호작용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현상에서 멱법칙 분포는 "평균" 거동, 즉 케틀레의 "평균 인간"의 개념을 무너뜨렸다. 결국 멱법칙은 가우스 형 분포에서는 무시할 수 있는 변이로만 여겨지던 극단적인 사건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파레토가 물리학에서 그런 법칙이 알려지기 전에 사회과학에서 멱법칙을 처음 도입했다. 그는 1897년에 부유한 사람들의 수입 분포가 멱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인구의 1퍼센트가 부의 40퍼센트를 가지고 있고, 인구의 5퍼센트가 부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파레토는 그런 불균형을 80퍼센트의 부를 20퍼센트의 인구가 가지고 있다는 소위 80:20 규칙으로 표현했다. 그는 그런 수입 분포가 정치구조나 세금 체제에 상관없이 여러 나라에서 성립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결국 80:20 귳ㄱ은 경영 판단의 경험 법칙이 되었다. 수익의 80퍼센트가 지출의 20퍼센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성과의 80퍼센트가 직원의 20퍼센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핵심을 흐리게 만든다. 예를 들면, 노력과 보상 사이의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분포"가 멱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직선 멱법칙 그래프의 기울기와 같은 숫자는 바뀔 수 있다. 언제나 80:20 규칙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직선 모양이다. 폐허가 된 도시 아케타텐의 주택 규모 분포를 분석해보면, 그런 종류의 분포가 기원전 14세기의 고대 이집트에서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훗날 파레토의 수입 분포는 19세기 초에 가우스 형 분포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기본적인 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신봉되는 형편이었다. 1940년에 경제학자 칼 스나이더는 "파레토의 곡선은 인간 지식의 위대한 일반화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그 "법칙" 이 얼마나 잘 맞는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우선, 수입 분포를 정확하게 결정하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

 

어느 사회에서나 적어도 고수입자들에게는 멱법칙 분포가 성립한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멱법칙 직선의 "기울기"는 수입의 양극화 정도를 반영한다. 기울기가 클수록 부의 분포가 양극화되고, 더 많은 극빈자가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부를 누리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평균 통계는 그 바탕이 되는 통계를 알기 전에는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솔로몬은 쾰른 대학교의 즈펑 황과 함께 규제가 없는 시장에서의 거래는 파레토 직선의 기울기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빈부의 격차를 끊임없이 확대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들 중의 하나가 시장 변동이 증가해서 불안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빈자들의 부를 늘려주려는 목적의 사회정책은 "단순히 인도적인 의무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의 필수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질서

마르크스 이후 시대에 "체계적인 사회과학이 객관적인 사회공학을 가능하게 만들 것" 이라는 조지 지프의 꿈은 조금 겁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공학"을 정보를 근거로 한 기획 이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그 이상이었다. 

 

진정한 계몽주의 정신에서 지프는 인간 사회의 핵심에서 (어디에나 존재하는 멱법칙과 같은) 질서의 발견은 인간 의지를 넘어서 작동하는 자연적 설계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프는 그것이 합리적 사회과학의 등장을 촉진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생활의 일상적인 현상에서 통일성과 질서와 균형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궁극적인 합리성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런 생각은 피타고라서의 신비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원자의 성질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여러 가지 면을 조직화하는 보편성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흐르는 강물의 소용돌이를 성스러운 설계의 증거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그런 주장을 "종교과학" 이라고 외면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큰 수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런 법칙 덕분에 두려울 정도로 다양한 세상에서 질서와 규칙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