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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경제에서 상호작용이 중요한 이유

9. 행운의 행위자 - 경제에서 상호작용이 중요한 이유

 

경제학이 정말 물리학의 정확성과 확실성을 따라갈 수 있을까?

 

에지워스에 따르면, "쾌락"은 쾌락주의적 "꽃마차"를 움직여주는 힘이고, (그의 독특하게 화려한 상상력에 따라)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원자처럼 서로 상호작용하는 사회의 행위자(에이전트)이다. 그는 사람을 "물리학의 균일성을 뒷받침해주는 원자의 집단"으로 취급하는 경제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케인스를 가르쳤던 마셜이 경제학에서 이룩한 업적은 확대경을 들이대고 미시적인 규모에서 입자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밝혀내려고 시도했던 맥스웰과 볼츠만이 열역학에서 이룩했던 것과 같았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의 바탕이 되는 미시경제학의 시작이었다.

 

물리학자들은 평형 상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들도 안정된 시장이 무작위적인 잡음에 의해서 가볍게 흔들릴 뿐이라고 믿고 싶어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다루는 계는 평형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움직이는 입자의 이미지를 도입함으로써 은연중에 자신들도 물리학에서처럼 대상을 바닥으로부터 설명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합리적 행위자

20세기의 과학계는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은 자기 분야도 물리학과 같은 수준의 지적 깊이와 수학적 능력과 확고한 기초를 갖추게 되기를 바랐다.

 

경제학에 대한 마셜의 접근 방법 역시 기본적인 가설에서 이론이 개발된다는 점에서는 자연과학과 많이 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경제학은 끊임 없이 변화하는 미묘한 인간 본성을 다루기 때문에 엄밀한 자연과학과 비교할 수 없다."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욕심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의 구성 요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즉 물리학자의 입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선택"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물론 인간은 선택을 하지만, 입자는 그렇지 않다는 하일브로너의 주장은 옳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입자도 선택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사회과학에서 집단의 거동에 대한 모델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런 비결정성 때문이 아니다. 초기의 통계자들은 개인적인 동기가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크 집단에서는 규칙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일브로너는, 많은 경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은 아주 자유롭게 선택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예측이 가능한 패턴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인간 오솔길" 시뮬레이션에 등장하는 보행자가 열린 공간의 어느 지점에 무작위적으로 도착한 후에 다른 무작위적인 점으로 건너간다면 아무런 패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질서가 나타나려면 입구와 출구에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의 행위자들은 자유의지를 행사하지만, 한정된 범위의 상품을 사거나 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

 

시장이 얼마나 심하게 요동치는지를 경험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경제학이 진정한 과학인지에 대한 하일브로너의 경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경제학은 정반대의 극단을 선택했다. 이론학자들은 절망에 빠져서 인간 행동의 변덕스러움을 모델에 포함시키는 일을 포기하는 대신 사람들이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합리적인 자동 기계처럼 행동한다는 가정을 도입했다. 

 

도대체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인간을 자동 기계장치로 여기게 되었을까? 그것이 경제학 모델을 만드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히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인간 행동의 불확실성을 취급할 만한 분명한 방법이 없었다.

 

초기의 경제학자들은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철학자라고 믿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20세기의 에지워스를 비롯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더욱 정교하고 추상적인 수학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모델에는 실제 세계의 지저분함이나 시끄러움을 고려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모델에 잡음을 포함시키는 것은 시장의 지적 능력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이유가 무엇일까? 행위자들은 각자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완벽하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런 목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행위자들은 완벽한 정보를 가진 "합리적 극대화자"이다.

 

그런 가정은 행위자의 다음 행동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준다. 그런 행위자의 행동은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예정되어 있다.

 

가격이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변한다고 해서, (전통적인 이론의 범위에서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산가격의 변화는 가격을 결정하는 "기본 가치"의 (예츠할 수 없는)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기업의 기본 가치는 기업이 지급할 미래의 배당금 총액이 된다. 기업의 주식가격은 그런 가치를 반영한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실은 좀 이상하지 않을까? 기업의 부와 그에 따른 배당금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도대체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전통적인 미시경제학 이론을 수학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허용했던 믿음의 비약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본 가치에 대한 정보가 시장의 모든 행위자들에게 동시에 제공되면서 순식간에 자산 가치에 포함된다는 것이 두 번째 비약이다.

 

그런 믿음은 자산 가치가 기본 요인들이 변화해서 새로운 정보가 제공될 때만 변화한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근거가 된다. 그런 정보는 모든 행위자들에게 제공된다. 모든 행위자들은 자신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정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수가 없다. 결국 시장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는 셈이다.

 

그런 가정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다만 그런 단순함이 문제가 되는지가 의문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훌륭한 과학의 상징이다.

 

합리적 개인이 효용성과 이익을 극대화하고, 완벽한 통찰력으로 움직인다는 개념이 신고전주의 미시경제학이라는 전통적인 미시경제학을 지배한다. 그런 개념은 시장의 상승과 하락을 설명하려는 소위 실물 경기 변동 이론(RBC)에서 빛을 발휘한다. 경기 변동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요인은 시장의 외부로부터 기술 발전에 의한 무작위적인 충격의 형태로 나타난다. 시장은 단순히 그런 충격에 반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론의 가장 심각한 단점은 우리가 공급한 것에 대해서만 다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격 변동의 통계적 성질은 충격의 무작위성에 대한 우리의 가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통계가 잘못된 것이다.

 

1980년대에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가 자산 가치는 반드시 RBC 이론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균형 상태의 시장에서 가지게 되는 가상적인 "진짜" 가치에 해당하는) "기본" 가치외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그런 이론은 더욱 심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가격은 기본 가치보다 훨씬 더 심하게 변화한다.  기본 가치는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산 가치가 변한다면 그런 변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바탕이 되는 가치가 변하지 않았는데도 행위자들이 다른 가격을 지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사실은 행위자가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생각과는 맞지 않는다.

 

사실 가격이 기본 가치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서 "과대평가" 되는 것은 구매를 하지 말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구매를 한다. 그런 구매가 순간적으로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한다. 비합리성이 전파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경제학자들에게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완벽하지 않고, 사람들이 합리적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운 결정을 하고,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고, 서로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무지와 믿음

사람은 정보를 근거로 합리적이고 완벽하게 결정한다는 조건 그것부터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비평가도 있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것의 본성에 대한 확률을 저울질함으로써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선의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행위자와 기업이 직면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최적"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대신 어떤 기준을 근거로 "충분히 좋은" 결정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제 결정은 극대화가 아니라 "만족화"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시 결정은 비록 현실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케인스는 사람에게 최적이나 또는 특별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긍정적인 활동 중에서 많은 부분은 수학적인 기대가 아니라 자발적인 최적화에 의해서 결정된다. ..... 대부분의 결정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행동하려는 자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고, 정량적인 이익에 정량적인 확률을 곱한 가중 평균의 결과는 아니다.

 

결국 행위자를 포함한 우리는 대부분 케인스가 동물적 영감이라고 불렀던 본능과 직감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다. 채용, 투자, 다각화, 또는 특성화와 같은 기업의 정책에 대한 최고위 경영정책의 결정은 상당 부분이 그런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경제학적 합리성의 수학보다는 최고 경영자의 오랜 경험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학에 대한 이런 입장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미국의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그는 기업의 세계를 야만적이라고 할 만큼 비합리적이라고 보았다. 그런 세계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계획과 논리보다는 관습과 어리석음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는 기업가들이 시장의 불예측성을 긍정적으로 환영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런 불예측성이 안정된 시장에서는 불가능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행위자에게 요구되는 과감성이 냉정한 계산을 무시하는 충동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거래 행위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 요소를 설명하는 가장 생산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비합리성은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시장에는 "불균일성"이 있다. 모든 행위자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무엇이 최선의 길인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몇몇 경제학자들이 그런 면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산 선택 이론"에서는 행위자들이 각자 정해진 확률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가능한 행동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시장의 행위자들은 누구나 예상하지 못했던 이익이 가득한 길을 찾게 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나름대로의 꾀와 술수를 부리면서 살아간다. 그들은 시장도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키르망은 미시경제학에 불균일성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행위자들의 비합리적인 성향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몇 가지 가능성이 주어지는 경우에 우리의 선택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다. 기존의 신고전주의 이론에서 가장 확실하게 제외시켰던 요인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 요인을 고려하면 경제학은 통계물리학의 영역에 포함된다. 그 요인이 바로 "상호작용"이다.

 

이웃을 따라 하라

경제 시스템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상호작용이 심하다. 행위자들은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상호작용을 무시하는 미시경제학은 폭락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변동에 의해서 일어나거나, 또는 행위자들이 동시에 독립적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행위자들은 간접적으로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선택은 가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그것은 다시 다른 행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공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강한 "피드백"이 작용한다. 

 

존케이는 "시장 구성원들의 행동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자세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물리학이 미시경제학 모델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을 통제하는 요인에 대한 통찰력이 아니라, 그런 요인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다. 물리학자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계를 한 세기 이상 연구해왔다. 그런 수단이 경제학 용어로 곧바로 옮겨질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물리학에서 잘 이해되고 있는 현상이 경제학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역시 놀라운 일이다.

 

미시경제학에 상호작용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물리학과 경제학 이론에 익숙한 수학자였다. 한스 푈머는 자석에 대한 이징 모형의 원리를 이용해서 "상호작용 행위자" 모형을 개발했다. 자성 원자들은 모두 규칙적인 격자에 위치하고, 자신의 스핀이 향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런 선택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원자들의 자기장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원자의 선택은 이웃의 선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푈머의 모형에서 원자는 거래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행위자를 나타낸다. 모형의 예측은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규칙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브록과 스티븐 더라우프는 자기 현상 모형과 같은 방법으로 두 가지 선택의 가능성을 가진 상호작용 행위자 모형을 만들었다. 퀴리-바이스 모델은 원자가 바로 이웃한 원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원자가 만들어내는 평균 효과의 영향을 받는다는 평균장 근사법을 이용했다. 물리학에서 그런 가정은 너무 지나친 단순화이기 때문에 임계점 근처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전반적" 상호작용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

 

통신기술 덕분에 뉴욕이나 도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영향도 받는다. 결국 경제학 모델에서 평균장 이론은 지극히 현실적인 근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평균장 가정은 경제학에서도 완전하지 못하다.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행위자는 없다.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국지화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알랑 키르망은 거래소에서 정보가 어떻게 전파되는지에 대한 문제에 집중했다. 그에 따르면, 핵심 문제는 정보 네트워크 구조이다. "시장이 어떻게 조직화되는지를 이해하려면 경제 네트워크가 어떻게 진화하는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상호작용 행위자에 대한 몇 가지 미ㅣㅅ경제 모델에서는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를 무작위적인 것으로 가정한다. 개인들은 자신과 연결된 다른 사람들의 영향만 받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각 행위자가 거래 집단의 다른 무작위적인 구성원과 "연결"될 확률은 동일하다. 키르망은 1983년에 그런 종류의 네트워크를 제시했다. 상호작용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외부와는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집단을 형성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앞으로 그런 네트워크 구조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집단화만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서로 흉내내는 무리 짓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가격 처럼.

 

여기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다시 등장한다. 1930년대에 그는 시장을 당시 대중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미인 대회에 비유했다. 독자들에게 선택된 "미인"을 소개한 후, 그중에서 다른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을 후보를 짐작하도록 요구한다. 그런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투표할 것인지에 대한 직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최고의 미인"을 선정하는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케인스는 그런 종류의 경쟁이 무리 짓기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다.

 

1980년대에 로버트 실러는 무리 짓기가 시장의 동력학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바탕에 깔려 있는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 변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무것도 근본적이 아니다

수천 명의 행위자들의 활동에 의한 경제지표의 변동은 단순히 행위자들 각자가 느끼는 무작위적인 힘이 증폭된 결과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물리학자 미켈레 마르체시는 1998년에 원리주의자와 헌장주의자들에 대한 알랑 키르망의 모델을 이용해서 자산 가치가 변화하는 원인을 분석했다. 헌장주의자들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서 자산을 추가로 구입하는 낙관주의자와,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헌장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팔아버리는 회의주의자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헌장주의자의 두 그룹은 모두 계산을 할 때 다른 행위자의 행동을 고려한다. 헌장주의자들은 낙관적인 전망과 회의적인 전망 사이를 오가면서 다수의 의견에 의해서 결정되는 무리 짓기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헌장주의자들이 낙관적일 때에는 회의적인 사람들도 태도를 바꾸는 경향이 나타난다. 더욱이 어느 그룹에 속하거나 상관없이 헌장주의자들은 경우에 따라 원리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행위자들은 그 시점에서 가장 이익이 많은 전략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서 집단을 선택한다. 다른 집단이 더 성공적일 경우에는 그런 집단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모델에서 자산 가격의 변화는 보통의 거래에서 나타나는 공급과 소비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원동력은 기본 가치의 변화이다. 룩스와 마르체시는 그런 변화가 가우스 형이라고 가정했다. 여기서 실제로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시험하려던 것은 가격의 변동이 기본 가치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는 기존의 미시경제학 이론의 핵심 개념이었다. 그런 개념이 성립된다면, 모델에서 얻어지는 가격 변화도 역시 가우스 형이어야만 한다.

 

그런 모델은 거시경제학 용어로 아주 좋은 거동을 보여주었다. 장기간에 걸쳐 시장은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단기간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가격 변동을 반영하는 수익은 결정적으로 비가우스 형으로 변했다. 다시 말해서,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가우스 형 "입력"을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극단적인 변화가 훨씬 자주 나타나는 전혀 다른 통계적 특성을 가진 "출력"(가격 또는 수익)으로 변환시켜버렸다. 더욱이 단기간에 대한 비가우스 형 통계 분포가 장기간에서는 실제 시장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가우스 형으로 변한다.

 

룩스와 마르체시는 일종의 휘발성 무리 짓기가 실제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헌장주의적 전략이 지배하는 경우에는 시작이 불안정해져서 거래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모형에는 안정을 되찾는 보상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다. 변동이 클 경우에는 가격이 기본 가치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보다 크게 다를 수 있다. 헌장주의자는 당시의 지배적인 경향을 그대로 믿어버리지만, 원리주의자들은 그런 차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전략을 구사한다. 따라서 원리주의자의 전략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고, 실제로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헌장주의자들은 마음을 바꾸게 된다. 그런 변화가 시장이 마구잡이로 바뀌는 것을 제한한다.

 

룩스와 마르체시는 시장의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 시장의 독특한 변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폴 오메로드는 "상호작용 행위자"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에서 독립적인 행위자는 개인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기업이다. 시장의 행위자들이 서로의 활동을 주시하듯이 기업도 그렇게 한다.

 

앞에서 우리는 기존의 실물 경기 변동 이론이 그런 변동에 대해서 잘못된 통계적 성질을 예측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만약 오메로드의 모델에서 기업 규모의 분포를 바꾸어주면, 변동의 통계적 특성은 바뀌지 않고 크기만 달라진다. "산악 지방"은 더 밋밋하지만 굴곡이 심해진다. 몇 개의 대기업이 지배적일 경우에는 진폭이 더 커지고, 중소 기업의 비중이 늘어나면 변동이 덜 심해진다. 그런 결과는 작은 회사들이 몇 개의 큰 기업에 의해서 압도되어버리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런 경제에서는 경기 후퇴가 더욱 깊고 심각할 것으로 예상해야만 한다. 적어도 그런 뜻에서는 "건강한" 시장은 다양성을 갖춘 것이다.

 

쉽게 변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이기도 한 시장 행위자나 기업의 믿음을 고려해서 모델을 만드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맹목적인 믿음, 희망적인 기대, 조심스러운 자료 분석, 과거의 경험 등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것이 분명한 그런 믿음에 숨겨진 심리학은 아마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적어도 수학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경제학에서의 "복잡성"에 대한 워크숍을 조직했던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는 "각 행위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행동하는 과정에서의 상호작용 구조에 더 크게 의존한다. 누가 누구와 어떤 규칙에 따라 의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상호작용 행위자 모델이 보여주는 것은, 일단 합리적 최대화자라는 개념이 사라지면 균형 경제에 대한 미신도 역시 사라지면서 실제 세상과 훨씬 가까운 것으로 대체된다. 실제 시장은 훨씬 심하게 변동하고 붕괴될 가능성도 높다. 

 

예를 들면, 아서와 그의 동료들은 불균일한 행위자들이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광범위한 전략과 기대를 바탕으로 거래를 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성공적인 전략은 유지되고, 성과가 나쁜 전략은 폐기된다. 행위자들이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경제는 합리적인 신고전주의 이론이 예측하는 것과 비슷해진다. 그러나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현실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바꾸면 시장은 실제의 경우처럼 산만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서, 경제는 그렇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그대로 놓아두어라?

행위자들이나 기업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시장의 급격한 상승과 폭락을 설명해줄 수 있다면, 변동을 인위적으로 오나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조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믿는 정부도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경제에 해롭지는 않더라도 아까운 자원의 낭비만 초래할 것이다.

 

케인스는 심각한 장기 침체기에는 시장을 다시 성장세로 되돌리도록 자극하기 위해서 정부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케인스는 그대로 놓아두면 경기가 더욱 침체되고, 결국에는 완전히 얼어붙어버려서 정상적인 경기 순환 주기로 회복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정부의 개입이 경기 후퇴를 막아주는 해독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케인스 식의 개입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아니면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자금 공급의 증가와 그것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 사이의 시간차, 통화 공급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의 문제, 개입주의적 정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기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경기 후퇴는 극단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일이다. 그런 변동은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경제를 미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실업자의 일시적인 불행을 오나화시켜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런 변동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더 잘 이해한다면 정부는 일시적인 경기 후퇴로부터 이익을 챙기려는 야당의 기회주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패배주의가 아니라 자원의 효과적인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단기적인 경기 회복을 자신들의 공로라고 자랑하는 것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어떠한 간섭도 배척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믿음에도 심각한 위험이 있다.

 

자유방임적인 경제정책의 매력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찰스 데브넌트는 "거래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것이어서 스스로의 길을 찾기 때문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했다. 유체역학적인 은유를 통해서 가격이 스스로의 수준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이다.

 

스미스는 거래가 기본적인 정의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정의의 모든 규칙을 만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자유방임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보수적인 에드먼드 버크에게 거래에 대한 모든 규제는 "무의미하고, 미개적이고, 실제로 사악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익 경제학자들의 입장보다 결코 더 극단적이지 않다.

 

이제 우리는 균형 시장의 개념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제멋대로 변동하는 과정이나 시스템이 균형과 같은 상태에 도달할 수는 없다. 미시경제학자의 상호작용 행위자 모델은 경제가 근원적으로 불안정한 것임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시장은 유연하고, 빨리 반응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중에도 순간적으로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다시말해서, 시장은 순간적으로 효율이 가장 높은 방법으로 상품을 분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의 "효율적 시장"이라는 개념에 대한 반박도 있다.

 

슈거스케이프라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상호작용 행위자 모델은 무한한 지식과 다른 모든 행위자들과의 접촉이 불가능한(전능하지도 않고, 어디에나 있지도 못하며,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하는) 현실적인 행위자들만으로 한정될 경우에는 상품의 분배가 어쩔 수 없이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서, 필요하면서 부담할수 있는 상품을 조달하지 못하는 행위자가 생긴다는 뜻이다.

 

더욱이 슈거스케이프 모델에 따르면, 거래가 상품의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서 더 많은 인구를 지탱해줌으로써 지역의 "환경 용량"을 증가시키지만, 부의 분배에서는 더 심한 불평등을 가져오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거래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부를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어버린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지불해야 할 대가일 수도 있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소련처럼) 경직된 방법으로 규제된 경제는 국민의 복지와 효율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물리학의 결과이다. 세계적 수준에서 부의 평등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전체적으로 부를 소멸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상호작용 행위자 모델에 따르면, 거래를 심하게 제한하는 "사회주의적" 경제는 대부분의 부가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버리는 상태로 붕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경제는 부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패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실패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경제 시스템에 따라서 부패가 쉽게 확산되는 조건을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을 듯하다.

 

극단적인 자본주의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장이 세계화되면 모든 부가 한곳으로 집중될 위험이 커진다. 그런 상태는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장에도 위험하다. "부의 집중"이 부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 것보다 훨씬 더 재앙적으로 붕괴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극단적인 자본주의와 극단적인 사회주의는 모두 비생산적이고 재앙적일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자. 모든 정부의 간섭이 시장의 자기 조절 능력을 비롯한 긍정적인 기능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고집하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제는 그런 주장이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정부와 과세와 입법의 역할에 대한 선입견을 근거로 만들어진 믿음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오늘날 미국의 경제학 이론에는 자유시장 철학이 너무 깊이 파고들어서 지금도 빠르게 진행되는 재앙적인 주식시장의 폭락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은 몇 사람의 부패한 기업가와 정부의 정책, 변덕스러운 소액 투자자, 노동조합,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좌익 비평가, 그리고 시장 자체를 비난한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행동한다면 주식가격은 영원히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호황기에는 그렇게 명백한 엉터리 주장도 설득력을 발휘한다. 경기가 탄력을 받을 때는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믿는다. 불황은 다음 거품이 터질 때까지는 과거의 일로 돌려버린다. 

 

그러나 진실은, 경기의 호황과 불황은 자본주의 게임의 고유한 특성으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경제의 자연적인 규칙의 일부이며, 아직 우리가 모든 것을 밝혀내고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규칙은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