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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기업의 성장

11. 여러 사람들의 일 - 기업의 성장

어떤 규모가 적절할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규모의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 슈마커(1973)

 

푸줏간을 하는 브라이언 키록에 따르면, "세이프웨이는 브레콘 사람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이미 아홉 곳의 푸줏간이 있다. 소비자들은 아홉 곳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의 가능성이 없어진다. 어물전은 이미 문을 닫았다. 의류점도 문을 닫았다. .... 리오민스터로 가보라. 그 고약한 것이 들어오고 나서 그 도시는 죽어버렸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

 

소규모 상점들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단순히 슈퍼마켓과 연쇄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곳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점점 더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액스민스터의 솜머세트를 자전거로 둘러보면, 일요일 오후에 차 한 잔을 사마실 수 있는 곳은 도시 바깥에 있는 세인스버리 슈퍼마켓뿐이다. 소규모 찻집들은 경쟁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큰 기업은 소규모 기업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세이프웨이가 1999년에 했던 것처럼 빵을 8펜스(대략 14센트)에 팔 수 있는 지역 빵집이 몇 곳이나 있겠는가? 그런 가격은 원가에 훨씬 못 미치지만 슈퍼마켓은 주요 상품을 위해서 모험을 한다. 엄청나게 싸다는 인상을 심어주어서 끌어들인 고객들이 더 비싼 상품도 살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한다. 1978년 영국 정부의 녹색 보고서(정책 문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경쟁자들의 상호작용은 경제적 자원의 배분, 가격, 품질, 물질적 발전에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우리의 민주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공한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유시장을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삼켜서 몇 사람의 주요 선수들이 지배하는 균일한 거래시장을 만들어버린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몬비오트는 거대 기업의 성장이 지역사회의 결속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만으로도 기업의 확장과 쇠퇴를 결정하는 요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법칙이 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만약 그런 법칙이 존재 하더라도, 그런 법칙이 어떤 형식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업에 대한 일종의 "보편적" 원리가 등장한다는 징조가 있다. 제철, 출판, 제빵 등의 분야에 상관없이 기업의 성장은 소기업, 중기업, 대기업의 분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철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상한 사실이다. 경제계가 소수에 의해서 지배되는 형태로 바뀐다는 많은 징조가 있지만, 세계화에 의한 분명한 불평등의 확산이 전부는 아니다. 대기업이 제품의 선택과 과고에서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여전히 대기업보다는 소기업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소기업들은 기회가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많은 개별 기업들이 요동치는 행운 속에서 기업의 성장을 지배하는 확실한 법칙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경제계를 재단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법칙들을 확인하고 이해하기 전에는 꿈을 꿀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우리가 대기업의 규모를 제한하거나, 소기업의 규모를 확대하려는 압력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면, 우리가 적용하는 법이나 상거래 규제의 결과를 예측해줄 수 있는 기업 성장의 모델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자유 거래를 허용하는 시장에서는 소수의 대기업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기업 지키기

고대 세계의 놀라운 무역망은 장인들이 개별적으로 자신들의 제품을 상인들에게 파는 것으로 유지되었다. 상인들은 머나먼 이국에서 수입된 그런 상품을 이국적인 수입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윤을 붙여서 팔았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에 필요한가? 중세의 장인들이 집단 조직의 혜택을 발견했다. 무역조합은 회원들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고, 회원들이 체결하는 계약에서 임금 수준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집단 노동의 가장 큰 장점이 드러나게 된 것은 산업혁명 덕분이었다. 기계화에 의해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이익은 주로 소수에게만 돌아갔다. 산업화는 노동자보다는 자본주의적 지배자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큰 기업에서 생존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대체로 산업화된 경쟁자들과 경쟁할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전통적인 장인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 노동자들은 빵을 구하기 위해서 줄을 서야 했지만, 노동자로 변신하지 않은 전통적인 장인들은 굶주려야 했다.

 

규모의 경제는 몇 가지 방법으로 이룩된다. 대기업들은 개인이 부담할 수 없는 값비싼 기계를 구입할 수 있다. 분업화함으로써 효율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분업은 모든 분야에서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그리고 대기업은 수없이 많은 소규모 거래 대신 몇 건의 대규모 거래로 업무 비용도 줄일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강압적인 고용시장이 적절한 환경으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온정적인 대기업들은 직업 안정성과 함께 건강보험, 교통이나 주거와 같은 혜택은 물론 동료들 사이의 따뜻한 분위기와 때로는 연금도 제공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것에 대한 장밋빛 그림을 믿거나 말거나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개별적인 노동보다는 집단적인 노동력의 일부가 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업에 대한 전통적인 이론에서는 행위자와 노동자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개발된 이 이론은 행위자들이 규율에 익숙해진 계산된 관계를 추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문제를 단순화시켰다.

 

이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의 문제는 19세기 경제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금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일해줌으로써 고용주에게 제공하는 "잉여 가치"가 곧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고용주는 일부의 노동을 "대가 없이" 착취하고,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만들어낸다. 그런 주장은 착취당하는 노동자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미지와 들어맞는다. 더 오랜 시간을 일하는 노동력이 줄어드는 현재의 환경에서는 마르크스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유시장의 힘이 작동하는데도 회사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내기는 어렵지 않다. 회사는 반드시 가장 값싼 제품을 찾으려고 하는 대신, 그들이 "최선"이거나 가장 훌륭하다고 믿는 것을 추구할 것이다. 사람들은 최신 유행의 상표 이름에 특별한 값을 지불할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완벽한 경쟁에 대한 가정은 한 기업의 결정이 다른 기업의 상품가격 책정이나 수익성에 영향을 받는다는 고약한 사실을 피해가는 방법이다. 

 

통상적인 신고전적 기업 이론은 두 가지 극단적인 시나리오에만 들어맞는다. 완벽한 경쟁의 조건에서 개별 기업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정해진 특성을 가진 시장 안에서 운영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생산원가, 판매가격, 제품의 품질들 사이의 관계는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들의 평균 거동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말 그대로 서로 상호작용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상호작용 자체를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독점은 시장의 작동 방법을 규제하는 구체적인 법률이 존재하기 때문에 분명히 특별한 경우가 된다.

 

진실은 대체로 대등한 많은 수의 기업들이 완전경쟁의 조건에서 작동하는 자유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서로 겹치더라도 반드시 대등하지는 않은 제품들을 가진 다양한 규모의 많은 회사들이 존재한다. 통상적인 이론이 무너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 좀 더 제한된 경우인 과점을 설명하는 데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과점 상태에서는 기업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가격 결정과 수익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격 인하는 완전경쟁 시장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오지만 선수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 사이의 피드백이 훨씬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물리학에서 강한 상호작용의 징조로 여겨지는 일종의 불안정성과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격 전쟁이 심화되면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가격이 갑자기 심하게 떨어진다. 그런 다툼은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소비자들은 원가보다 훨씬 낮은 값을 지불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선수들이 제거되므로 선택이 줄어들고, 결국 시장은 독점을 향해 무너져버린다. 

 

경제학자들은 과점의 모형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상호작용을 포함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과점이라고 반드시 경쟁적인 것은 아니다. 높은 가격으로 담합하는 것은 기업에게 이익이 된다. 그런 상황은 카르텔을 만들어낸다. 카르텔은 불법으로 규정한 국가도 있지만 소비자의 부담으로 담합을 막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부 큰 체인점들이 실질적으로 지역 내에서 독점권을 행사하는 것은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다."

 

카르텔은 가격 인하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지 않는 회원들의 게임에 의해서 유지된다. 협동적인 이익과 변절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유혹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은 제17장에서 설명하는 게임 이론의 분석적 방법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런 방법은 경제학에서 담합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과점을 분석하는 경우에도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방법들 중 어느  것도 시장이 정말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다시 말해서 기업들의 규모가 어떤 분포를 가지게 되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완전경쟁, 독점, 과점이 모두 예외적인 경우가 된다. 실제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기업들이 존재한다. 소기업들이 과점의 거동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대기업들이 소기업의 경쟁력을 제한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거의 확실히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개별 기업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한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점유율이 수익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이익이 아니라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도 있다. 노동력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기업도 있다. 주주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기업도 있다.

 

단순히 사람들이 주어진 한경에서 다양한 동기로 행동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에 아무런 패턴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업도 역시 개별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통계적인 규칙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사업의 법칙

지브라는 기업은 무작위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주어진 순간의 성장 속도는 당시 기업의 규모에 의해서 증폭된다고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이제는 유명해진 지브라의 비례적 성장 법칙이다. 그는 그것을 기업의 세계에 적용되는 일종의 뉴턴 법칙이라고 믿었다. 기업이 클수록 우연히 부닥치는 기회에서 수익을 남길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지브라의 "법칙"은 로그 정규라는 수학적 형식의 규모 분포를 만들어낸다. 1940년대에 이르러 지브라의 모델은 높이 평가되었고, 지금까지도 기업 성장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의 벤치마크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모델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고, 누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시장 구조의 진화는 복잡한 현상이고, 하나의 모델로 관찰된 통계적 불규칙성을 모두 포용하겠다는 것은 적절한 목표가 아닐 수 있다."

 

확실한 원리들

물리학자들은 멱법칙을 상호 의존의 보편적인 증거라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멱법칙은 개체들 사이의 집단적인 거동에서 창발되고, 그런 과정에서 지역적인 상호작용이 서로에게 장거리 영향을 미치도록 발전한다.

 

그런 사실은 1990년대 후반 미시경제적 기업 성장 이론에 의해서 다시 확인되었다. 그의 모델에 의하면, 기업들은 서로 상호 작용하는 많은 노동자("행위자")의 집단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노동자들은 각자의 목표를 추구한다. 집단화는 집단 노동을 유리하게 하는 규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액스텔의 모델은 다른 "기업 이론"과는 달리 기업의 목표나 거동에 대해서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이 시작하낟. 실제로 행위자들이 억지로 집단화해서 기업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 행위자들은 최선의 이익을 고려해서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들은 "합리적 극대화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탐욕스러운 "이익 극대화자"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이 행위자들을 행복하게 만들까? 그것은 행위자에 따라 다르다. 그들은 각각 돈과 여가라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돈과 여가에 대한 상대적 선호는 행위자 집단 안에서도 크게 다르다. 

 

결국 각각의 행위자들은 노동과 여가에 대해서 자신이 원하는 균형을 뜻하는 행복의 척도인 "효용성"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델에서 행위자들이 도대체 왜 기업에 합류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서로 독립적으로 거래를 하는 개인들만으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를 연구했다.

 

코스의 결론은 거래의 비용 때문이었다.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어쩔 수 없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흥정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을 집행하는 재정적 부담을 포함한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셜은 1920년에 조직화된 노동의 핵심은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 집단적으로 노력하면 같은 양의 노력으로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으로 일하는 과정에서의 분업, 재정 비용의 공동 부담, 전문화가 부분의 합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하도록 해준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규모가 더 클수록 더 생산적이라는 뜻에서 수익체증 효과라고 부른다.

 

표준 기업 이론에서는 수익체증 효과 때문에 기업이 성장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액스텔의 모델에서는 그렇지 않다. 개별적인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면 같은 노력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주장할 뿐이다.

 

이런 모델에 대한 심각한 의문들 중 하나는 모든 행위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할 수 있는 안정한 상태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내시 균형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자들은 모델에서 내시 균형을 찾고 싶어한다. 그런 상태가 실제 세계의 거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액스텔의 모델에는 안정한 내시 균형이 없다. 다시 말해서, 변화하지 않는 상태가 존재할 수 없다.  액스텔의 모델은 비평형이고, 그래서 기업 성장에 대한 대부분의 미시경제학 모델과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고 시스템에 대해서 확실한 것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통계적인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성장과 쇠퇴

기업은 왜 망할까? 액스텔의 모델에는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거나 재앙적인 붕괴가 일어난다. 그런 붕괴는 기업의 성공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충분히 성장한 기업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익을 챙기는 불로소득자의 천국이 된다. 결국 기업은 점진적으로 게으름쟁이들의 차지가 된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직장을 위해서 떠나기 때문에 망하게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잘 운영되는 기업은 이익을 가장 많이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의 수명은 생산적인 노동자를 영입해서 지키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기업은 이익 마진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게으름쟁이들이 파고들기 때문에 망하게 된다.

 

액스텔의 모델은 행위자들에게 일종의 자유의지를 허용하는 범위에서는 노동자의 선택이 직접적으로 기업의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기업 이론은 미래가 절대 확실하지 않은 비평형 이론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