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좋아하는 책들

#13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집단적 영향과 사회 변화

13. 결정의 계곡에서 나타나는 다중성 - 집단적 영향과 사회 변화

 

한 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와 사고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한정된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개인은 그가 속한 집단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 집단의 사고방식에 따라 생각한다. - 칼 만하임(1936)

 

투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우선 개인주의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선택이 정말 독립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대량 광고의 홍수에 묻혀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투표 예측을 실패하는 것은 선거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가장 애매한 경우를 상대해야 할 뿐이다. 사람들이 여론조사에서 하는 말과 실제 선거에서 하는 행동은 정반대일 수 있다. 유권자의 의견은 마지막 순간에 당 대표의 연설에 의해서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 하나가 상당한 비율의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심리적 변덕스러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행동에 대한 모델이 다양한 수준의 민주주의가 허용되는 사회의 특징인 정치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 중요한 사실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상인들은 위험을 감수하지만, 쉽게 결정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들 중에는 단순히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이 그런 경우까지 고려할 수 있을까?

 

물리학이 의사결정에 대한 사회과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완벽하고 정확한 이론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무시되었거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요소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요소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즉 상호작용의 영향이다. 제한된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행동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구성 요소의 특징만으로는 시스템의 전체적인 상태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심리학으로부터 집단의 행동을 알아내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 물리학이 사회과학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20세기를 통틀어서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대한 것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집단의 행동을 기존의 문화적 기준의 범위 안에서 선험적으로 가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기준이 개인적인 선택과 개인 간 거래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떻게 나타나고 변하는지를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의존하는 결정의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사회의 지도자, 관습, 유행, 문제가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투표하기

 만약 투표가 완벽하게 무작위적인 과정이라면, 즉 투표자의 선택이 주사위 던지기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가우스 형 분포를 기대할 것이다.

 

물론 유권자들이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이 어떻게 투표하는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많은 수의 유권자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는 모두가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결과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가우스 형의 분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투표의 통계는 멱법칙을 따랐다. 더욱이 이 멱법칙의 지수는 자기 조직화 임계성의 경우에서 보았던 -1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서, 득표율 P인 후보자의 수가 P에 반비례한다는 뜻이다. 똑같은 멱법칙 관계는 주별 투표에서도 나타났다. 전체 유권자의 소집단에서도 언제나 똑같은 결과가 얻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결과는 투표 과정에서 독립된 유권자 수백만 명이 근본적으로 무작위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멱법칙은 일반적으로 어떤 과정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의사결정" 행위자들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징조이다. 자석의 임계점에서는, 각각의 스핀이 이웃한 스핀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원자의 스핀들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섬의 규모가 멱법칙 분포로 나타난다. 가상적인 모래 더미에서도

 

그렇다면 선거 통계에서 나타나는 멱법칙도 역시 유권자들이 서로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식에 대한 이징 모델의 경우처럼 유권자들을 격자를 구성하는 "스핀"으로 보았다. 각각의 격자점은 유권자이고, 그 "스핀"은 후보자 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방향을 향할 수 있다. 자석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배열시키는 힘이 있는 것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이웃 유권자들의 의견을 배열 시키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여론이 충분히 모아졌을 때, 즉 부분적인 의견에 대한 "임계 질량"에 이른 경우에만 일어난다. 한 사람의 독립된 이웃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없지만,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집단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컴퓨터로 그런 선거 모델을 검토해본 연구진은 여러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포가 실제 선거 결과에서 나타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멱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멱법칙 그래프의 기울기도 같았다. 선거는 집단의 결정인 듯 보인다.

 

물론 우리가 친구나 동료나 이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조금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사람들 하고만 영향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다. ...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 그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민주주의와 선택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유권자의 결정이 서로 의존한다는 사실은 특별한 사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후보자 인지도의 작은 불균형이 언제나 유권자의 선택에서도 작은 차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단순히 그런 분위기를 느끼거나에 상관없이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가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은 수많은 독립적이고 무작위적인 결정의 결과였다고 보기 어렵다.

 

유권자들이 몇 개의 정당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로버트 액설로드 연구진의 지형 모델과 같다. 지형의 모양은 여러 가지 의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호도에 의해서 정의되고, 정당들은 그런 지형 중에서 여러 가지 의제에 대한 자신들의 "강령"을 나타내는 깃발을 세울 적당히 매력적인 언덕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정당들은 거의 벌거숭이로 가능하면 많은 수의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정책을 수정한다. 물론 정당들은 여론의 스펙트럼에서 자신들이 출발하는 위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투표의 공간 모델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이해하려는 정치학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예를 들면, 공간 모델은 정치적 입장의 대립과 수렴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하고, 양당제와 다당제의 차이를 비교하고, 단일 의제 정치의 결과를 연구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가장 놀라운 결과 중의 하나는, 민주적 선거에서 반드시 "최선"의 승리자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선거제도에서는 다수가 좋아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정책을 가진 정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론의 공간에서 그런 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결정할 수가 없다.

 

어떤 선거 메커니즘도 모든 논리적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는 조금 놀랍지만,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로 증명된다.

 

애로 역설의 의미는 "독재에 대한 완벽한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지배가 (불안정성을 포함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단순 다수 지배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투명하게 공정하고 조작될 수 없는 방법은 찾기가 정말 어렵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는 매우 불안정한 개념이다.

 

"가장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부패의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스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모든 결론은 유권자들이 각각 "독립적" 인 선택을 한다는 모델에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까?

우리는 사회적 규범 때문에 더 이상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우리의 용모, 행동, 활동의 모든면에 대해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법률은 대체로 자발적으로 진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사회의 규범을 존중한다.

엡스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생각할 필요를 최소화하도록 사회를 구조화했다. 사회적 관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에만 생각하면 된다. 규범이 강화될수록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줄어든다. 규범을 지키라는 요구는 사회 전체만이 아니라 특별한 집단 안에서도 존재한다. 외부인에게는 아무리 이상해 보이더라도 집단의 구성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규범을 따른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규칙은 거의 없다. 모두가 학습을 통해서 익혀야 한다. 어린아이들이나 관광객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 자주 부딪히게 된다.

 

엡스타인은 그런 학습 과정에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확인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사람들의 행동이 다양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펴보아야만 무엇이 "정상" 인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집단은 제한되어 있다.

 

엡스타인은 그런 시스템에서 어떻게 규범이 등장하게 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행위자(개인)들이 한 줄로 서서 원을 만들고 있는 경우를 생각했다. 각각의 행위자들은 이웃의 동의를 근거로 이것 또는 저것의 이중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모형에서 개인적인 결정은 단순한 규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행위자들은 가능하면 생각을 적게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철학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가장 적은 수의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싶어한다. 한 샘플에서 얻은 합의가 다음 순서의 더 큰 샘플에서의 합의와 같아질 때까지 그런 일을 반복한다.

 

이 행위자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샘플의 규모를 작게 만드는 방법도 찾아낸다. 이번에는 일단 합의된 입장을 발견하면 샘플의 규모를 조금 줄인 후에 여전히 같은 합의가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한다.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샘플의 규모를 줄인다. 샘플의 규모는 최소이면서도 "더 넓은 세상" 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런 과정을 반복한다.

 

어떤 특별한 규범이 원의 넓은 범위에서 자리를 잡으면, 행위자들은 마음이 좁아져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이외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게 된다.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원형으로 배열된 많은 행위자들에게 선택의 가능성을 무작위적으로 배열하면, 원은 곧바로 어느 하나의 가능성이 지배하는 구역으로 갈라진다. 

 

이런 시스템에 무작위적인 요소(잡음)를 도입하는 일시적인 "충격"을 주어서 모든 행위자들이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선택을 하도록 만들면, 원은 새로운 배열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나 사건이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선입견을 혼란시켜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결과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 본성의 변덕스러움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충격이 가해지기 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흰색"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역시 아무 생각 없이 "회색"을 선택하게 된다. 엡스타인은 많은 사회적 규범과 믿음이 그런 식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엡스타인은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것은 자신들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던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델에 약간의 무작위적인 잡음(약간의 "혼란"이나 행위자들의 선택에 대한 임의성)을 넣어주어도 여전히 영역은 분리가 되지만 영역들 사이의 경계는 이동성이 커진다. 원의 어떤 영역에서 다수의 의견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순간에는 많은 수의 "최소한으로 생각하는" 순응자들로 구성된 넓은 영역과 경계 부근에서 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 이 모델은 사회적 의사결정에 대한 은유로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전혀 다른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이라는 셸링의 책은 사회물리학의 주춧돌 중 하나이다

물리학에서는 흔히 무의식적 시스템이 의도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서 비눗방울이 표면적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거나 빛이 가장 빠른 경로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그런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들이 어떤 양을 최대화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세상의 경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런 표현에 목적론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감춰진 손"이 상품을 효율적으로 공급하고 운반시킴으로써 시장을 최적화해준다고 본다. 셸링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쨌든 모든 행동이 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을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택시가 있다. 비행기에서 점심 식사로 먹을 버터와 치즈도 있다. 비행기에 사용할 연료를 생산하는 정유공장도 있고, 그것을 운반할 트럭도 있고, 활주로를 만들 시멘트도 있고, 에스컬레이터를 작동시킬 전기도 있고, 무엇보다도 비행기가 가는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승객이 있다.

 

만약 경제가 그런 방법으로 작동한다면, 다른 인간 행동에는 왜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사회의 모든 일이 법칙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조직화 능력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를 200년 동안 연구해서 비교적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시장이 개인들을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유리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면, 경제학의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사회적 행동에서도 똑같은 결론이 적용된다고 생각해야 할까?

 

여기서 셸링은 모든 것에 대한 결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행동의 핵심적인 면은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불완전한 지식을 근거로 자신의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런 상호 의존 때문에 집단의 행동을 개인의 행동으로부터 단순하게 유추할 수 없게 된다.

 

셸링의 접근은 통계물리학의 방법과 통찰력을 요구한다. 그는 서로 다른 행동양식 사이의 상전이를 보여주는 모델을 제시했다는 뜻이다. 셸링이 훗날 "미시적 동기" 모델 연구자들에게 전해준 중요한 시나리오는 인종 분리 현상이다.

 

한때는 서방 국가의 "다문화주의"가 환영을 받았지만, 그런 낙관적인 표현속에는 통합이 아니라 분리가 숨겨져 있었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런 종류의 분리가 "현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인종에 따라 분리되기 전의 영국에서는 계급이나 심지어 종교에 따른 구분이 있었다. 폴 오메로드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인종적 또는 문화적 소수가 되는 지역에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상호작용-행우자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셸링의 모델에 따르면, 정반대로 인종 분리에 대한 예상 밖의 강한 집단적 경향이 존재한다. 모델에는 인종, 민족, 또는 다른 차이를 나타내는 두 개의 "색깔"로 표현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행위자가 포함되어 있다.

 

셸링은 혼합지역에서 이웃의 3분의 1이상이 자신과 다른 "색깔"에 속하면 이사를 가게 된다는 규칙을 도입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처음에는 두 가지 행위자들을 균일하게 섞어두더라도 곧바로 분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물리학에서도 점진적으로 두 개의 층으로 "상분리"가 일어난다.

 

문화적 분리는 다른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떨어뜨려서 결국에는 두려움과 적대감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주 작은 선호도의 차이가 골 깊은 편견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용 자원을 이용해서 분리를 막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분리의 결과로 나타나는 멀리 떨어진 사회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문화적 혼합을 강요하던 (학교와 같은) 사회적 환경에 선택권과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면 분리가 급속하고 극단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제한의 선택권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또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분리를 일으킨다.

 

이런 종류의 모델 연구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허용하는 자유방임 자세를 옹호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 더욱 신중히 생각하게 하고,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제로 가능한 방법을 알아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한 분리가 반드시 극심한 편협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 셸링의 연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일반적 교훈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성향이 반드시 집단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학을 더욱 과학적으로 만들려는 과학자에게는 특별히 강조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단순히 개인적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너머 자연선택에 의해서 우리의 뇌에 새겨진 근본적인 경향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목표이다. 이 책에 소개한 것을 포함한 많은 모델에서 인간 행동에 대한 상식적이지만 결국에는 무작위적일 수밖에 없는 가정(또는 선입견)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셰링 모델에서 어느 정도 너그러운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적절하게 혼합된 이웃이 아니라 고도로 분리된 사회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분포만을 근거로 판단한다면 사람들의 본성을 오해할 수도 있다.

 

범죄와 형벌

사람들은 범죄 때문에 이사를 가기도 한다. 범죄는 사회적 상실감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추락의 원인이 된다. 

 

많은 범죄학자들은 그런 "합리적 결정"을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익과 불이익을 냉정하게 평가한 후에 저질러지는 범죄는 거의 없다.

 

범죄자의 입장에서 범죄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사회적 압력은 아직까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던 문제이다. 일본도 범죄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범죄자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사회적 외면이 일본의 거리와 공원을 놀라울 정도로 안전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경제학자 마이클 캠벨과 폴 오메로드는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한 범죄 행위에 대한 모델을 개발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범죄에는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비용"이 있다고 가정했다. 거리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둑이라면 자신이 도둑이 되더라도 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위험이 없다. 실제로는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소수의 패배자가 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모두가 사회의 기둥이라면 범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이 더 클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상실감이 늘어나면 실제 범죄자의 비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 압력으로 작용하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사회적 어려움과 실제 범죄 발생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모델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상실감에 대해서 높은 범죄율과 낮은 범죄율의 두 가지 경우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광범위한 조건에서 나타나는 유일한 안정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상태는 "역사"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회정책이 초기 조건에 따라서 범죄에 대해서 전혀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액체와 기체가 서로 변환되는 조건을 연구하고 있었다. 유체의 압력을 바꾸어주면 똑같은 종류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유체는 압력에 따라 액체나 기체로 존재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상전이는 원동력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범죄 모델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저범죄와 고범죄 상태 사이의 "평형" 전환점은 두 가지가 겹치는 영역의 중간 근처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전환점을 지나가면 언젠가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준안정 상태를 깨지게 만드는 것은 "핵 생성" 이라는 현상이다. 준안정 상태에서 더 안정한 상태의 영역이 우연히 만들어지면, 그것이 전체 시스템을 삼켜버릴 수 있다. 따라서 어는점 이하로 냉각시킨(과냉각) 액체에서 아주 작은 고체 결정이 액체 전체를 얼게 만드는 핵이 될 수 있다. 비유적으로 저범죄 가지의 끝 쪽에서 범죄율이 높은 집단이 범죄를 전체 시스템으로 확산시키는 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거동은 범죄 정책에서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상전이와의 비유를 인식하고 나면 그런 관계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래드웰의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상전이도 작은 효과에 의해서 일어나는 큰 변화이다. "뉴욕의 범죄율을 떨어지게 만든 모든 가능한 이유들은 아주 작은 규모의 것이었다."

 

연결 줄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멀리 갈 수가 없다. 게리 베커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부부는 미혼 가정보다 전문화를 통해서 더 높은 효율을 달성한다고 주장했다. 결혼은 그런 방법을 통해서 충실한 합리적 시장 행위자와 마찬가지로 "효용성을 극대화"시켜준다.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결혼 시장의 참여자들은 가능한 상대에게 기대할 수 있는 효용성에 대해서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가정에서의 모든 결정이 비용편익 분석을 설명하는 복잡한 미분방정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베커의 분석을 너무 지나친 합리주의라고 비웃기는 쉽다. 

 

베커는 이렇게 무의미하지 않은 언어를 통해서 가족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슈의 핵심을 확인했다. 어쨌든 관습과 사회적 규범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런 것들이 때로는 공정하지 않거나, 낡거나, 억압적일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사회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베커의 분석 자체는 합리적인 행위자가 독립적으로 효용성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신고전주의적"이다. 신고전주의적 접근은 상호작용이라는 핵심적인 요인을 무시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진실만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부부 간의 선택

우리는 결혼 모델에서도 범죄 모델에서와 똑같은 특징을 기대할 수 있다. 위쪽과 아래쪽 곡선 사이에서는 평형 전이가 일어나고, 준안정 상태에서 더 안정한 상태의 핵 형성이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 의존성도 나타난다.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들은 상호 인력이나 반발력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유체의 입자들이 나타내는 모든 거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결혼이나 범죄와 같은 인간의 행동이 처음으로 통계적 법칙과 규칙성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회현상의 범주에 포함되었을 때 사람들은 감탄과 기븜과 실망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소수의 지배

유권자들은 자신이 다수에 속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하다. 범죄나 결혼과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했던 사회적 상호작용도 역시 규범적인 행동양식을 이끌어내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래서 결혼을 "규범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한다.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는 "소수의 문제"를 발견했다. 그가 엘파롤 문제라고 이름 지은 그 문제는 저녁 시간을 어떻게 즐기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좋은 밤"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엘파롤에 가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집에 머무를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거나 상관없이 소수가 승리자이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이 문제에는 "정답" 이나 "연역적으로 합리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예감이나 직관을 근거로 추측하는 것뿐이다. 선택은 다른 사람들이 선택할 것으로 생각하는 행동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만들어진다.

 

아서와 같은 경제학자들에게 그런 상황은 익숙하다. 시장의 행위자들은 시장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상품을 사고 판다. 지배적인 느낌이 낙관적인지(다른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니면 비관적인지(모두가 팔고 싶은)에 따라 선택을 한다. 그러나 실제 가격의 변화는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려지는 결정에 따라 정해진다.

 

아서는 행위자들이 잘 정의된 문제의 답을 근거로 결정하는 연역적 합리주의를 따른다는 경제학자들의 전통적 믿음과는 달리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별로 쓸모가 없는 소급적 정답 이외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주관적인 판단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귀납적인 논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아서는 "경제학자로서 우리는 귀납적 논리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위자들은 다양한 경험 법칙을 이용해서 술집의 손님 수를 예측하고, 그것을 근거로 술집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 법칙들은 과거의 손님수를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행위자들은 손님의 수가 "지난 주와 같을 것" 이라거나 "지난 4주 동안의 평균과 같을 것" 이라고 믿을 수 있다. 각 행위자들은 그런 몇 가지의 규칙 중에서 자신의 경험상 가장 정확하다고 믿는 것을 근거로 선택한다.

 

아서는 그런 모델에서 얻은 손님의 수는 끊임없이 변화해서 어떤 패턴도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행위자들 중에서 30퍼센트만 술집에 간 날도 있고, 90퍼센트가 간 날도 있었다. 그러나 손님의 평균 수는 대략 60퍼센트였고, 20퍼센트 이상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시 말해서, 손님의 수가 어떤 특정한 값으로 수렴되지도 않고, 늘어나고 줄어드는 규칙성도 볼 수 없었지만, 평균값은 일정했다. 아서는 그런 현상을 나무가 자라고 죽으면서도 가장자리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숲에 비유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60퍼센트인가?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이 바로 아서가 선택한 허용 한계였기 때문이다. 손님의 수가 60퍼센트를 넘어서면, 술집이 너무 붐비기 때문에 집에 머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행위자들은 그것을 보장하는 규칙은 없지만 평균적으로 적정한 손님의 수를 자동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1997년 물리학자 다미앵 샬레와 이쳉 장은 엘파롤 문제를 더 연구해서, 행위자가 소수 집단에 속하면 "이기는" 소수 게임을 만들었다. 아서의 모델에서는 각 행위자들이 어느 정도 임의적인 전략을 이용해서 결정했다. 

 

각 행위자는 과거의 선택에서 (집에 머물거나 술집에 가는)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떤 선택이 다수 집단으로 끝났는지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과거 세 차례의 선택에서 손님의 수가 소수였다면 다음 선택에서도 엘파롤에 가야 한다는 것이 전략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각 행위자는 몇 가지 전략을 사용할 수 있고, 선택을 할 때마다 과거에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증명된 전략을 사용한다.

 

샬레와 장은 평균 손님의 수가 50퍼센트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간단히 말하면 행위자들은 절반 이하의 행위자들로 구성된 소수 집단에 속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처음에는 행위자들이 스스로 상당히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어떤 "집단적"인 계획을 찾아내지는 못하지만, 평균적으로 "소수 집단"은 최대한 커진다. 다시 말해서, "소수 집단"의 수는 "다수 집단"의 수와 같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게임이 정말 얼마나 "효율적"인가? 역시 손님의 수는 평균의 양쪽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 변동이 클수록 게임은 더 "비효율적"이 된다.

 

연구자들은 과거의 선택을 더 많이 기억할수록, 다시 말해서 행위자들의 기억력이 더 좋아지거나 더 똑똑해지면 변동이 적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이 행위자들이 가장 성공한 사람은 남고, 최악의 선수는 빠지는 다윈의 방식으로 "진화하면" 변동의 폭이 줄어들어서 게임의 효율이 개선된다.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게임을 더 잘하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다.

 

소수 게임과 경제시장의 닮은 점은 무의미하고, 은유적일 뿐이다. 실제로 무리 짓기 경향에서 보았듯이, 행위자들은 다수 집단에 속하려고 노력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수 게임은 경쟁과 "이기적" 행동, 경험적 시험과 다양한 전략의 사용, 한정된 정보를 근거로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을 비롯한 실제 시장의 특징들을 충분히 담고 있어서 경제현상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샬레와 장은 자신들이 모델을 시장에 더 잘 맞도록 개량해서 "잡음 거래"와 내부 거래 등의 효과를 연구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내부" 정보와 같은)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는 경우에는 선택되는 전략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모두가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는 불가능한 "최선"의 게임 방법이 등장하게 된다.

 

로봇과 같은 자동장치에 불과한 행위자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창발된다는것이 사회의 물리학에서 발견한 정말 놀라운 발견들 중의 하나이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그런 절차가 매우 결정적인 행동을 낳게 만든다. 행위자들은 변함없이 역사를 따르거나 무시하는 극단적인 두 집단으로 나뉜다. 다시 말해서, "언제나 계산이 추천하는 것을 따른다" 또는 "반대로 선택한다"가 전략이 된다. 그러나 호드와 나카르는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에 대한 보상이 다를 경우, 다시 말해서 이긴 사람에 대한 보상이 진 사람에 대한 손실보다 더 클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출근에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교통 혼잡에 갇혀서 지각을 하게 만드는 나쁜 선택은 중유한 회의를 놓치거나, 심하면 파면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선택은 하루가 평상과 같아진다는 뜻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부진한 시장에서의 행위자들은 좋은 선택으로 얻는 것보다 나쁜 선택으로 더 많은 것을 잃어 버리게 된다

 

결과가 불평등해서 더 많은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에는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조심스럽고 안전한 선택이 최성의 전략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소수 게임의 행위자들이 우유부단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언제나 특정한 전략을 선택하는 대신 둘 중의 하나를 같은 확률로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으로 보상은 줄어들지만, 그와 함께 위험도 줄어든다. 그러나 극단적인 거동에 직찹하는 행위자는 평균적으로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잃게 된다. 

 

우유부단하고 제한적인 행동이 개인에게는 최선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이다. 소수 집단에 속하는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면, 엘파롤 술집에 가는 손님의 평균 수가 이상적인 규모보다 훨씬 적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체적으로는 각 행위자가 순전히 무작위적으로 결정할 때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쁜 성과를 기록하게 된다. 귀납적 추론에 의해서 결정하는 시도는 집단 전체의 효율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사실 소수 게임에서는 행위자들이 경험을 근거로 결정한다는 능력 이외에는 개별적인 심리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모델에서 나타나는 집단행동의 범위는 놀랍고, 미묘하고, 때로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소수게임 모델은 집단의 결정에 미치는 복잡한 심리학적 동기를 연구하기 전에 결정의 과정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설명에서 어느 정도의 복잡성이 창발될 수 있는지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대해서 "확실한 것" 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