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작은 세상 - 우리를 결합시켜주는 네트워크
사회생활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만든 개념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훨씬 더 근원적인 원인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유익한 것이고, 그런 원인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집단을 이루는 방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에밀 뒤르켕
케빈 베이컨 게임은 주어진 영화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 가장 짧은 경로인 최소의 케빈 수를 찾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베이컨일까? 그는 수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여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영화를 통한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유명 배우와 무명 배우를 연결시켜주는 적임자가 된다.
이 게임의 결과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네트워크가 지극히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많은 수의 수학자들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자의 사회과학자들에 대한 거대한 연결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과학계에서는 공저자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가 고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과학자라도 유명한 사람으로부터 몇 발자국만 떨어져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친구와 아는 사람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세상이 좁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고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왔다. 지난 몇 년 동안에 그런 "작은 세상" 거동을 보여주는 네트워크에 대해서 연구하던 물리학자들이 몇 가지 기본적인 특성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런 연구는 사회동력학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서 뇌의 신경망, 몸에서 일어나는 서로 연결된 대사 과정의 생화학적 반응, 전력 공급망처럼 광범위한 시스템의 네트워크에서 똑같은 특징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형식의 네트워크에는 일종의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주 간단한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그런 네트워크 중의 하나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겉보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스템과 과정들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육촌
1970년대에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사회과학자 마크 그래노베터는 친구 관계의 "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정말 친한 관계는 확인하고 기억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네트워크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의 "친한 관계" 네트워크는 서로 비슷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네트워크는 사람들의 집단을 서로 뭉치게 만든다. 그러나 그래노베터에 따르면, 전체적인 네트워크를 서로 결합시키는 것은 그런 집단들을 연결해주는 훨씬 약한 "아는" 정도의 관계이다. 그는 그런 특징을 "약한 결합의 힘"이라고 불렀다. 더 중요한 링크가 바로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훨씬 전부터 사회적 관계와 네트워크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치학자 풀과 수학자 코헨은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어떻게 권력을 확보하는지를 파악하려고 했다. 대통령의 친구들은 대통령에게 몰래 다가가서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친구의 친구들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까? 실제로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일까?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권력에 얼마나 가까워야 할까?
풀과 코헨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이론을 정립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게 연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려고 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임의의 사람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다른 사람과 평균 5단계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링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심오한 생각일까? 세상에는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놀라운 이유는 이상하거나 당혹스러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통찰력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도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대대적인 광고 활동이 아니라 입소문 때문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화, 책, 연극, 음악들이 있다. 똑같은 입소문이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크게 기대했던 영화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문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전 지구적 정보 시스템의 시대에서 문화 상품과 아이디어의 전파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고나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세계화의 동력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정보교환의 네트워크가 핵심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질서와 혼돈 사이
파울 에르되시는 무작위적 그래프라고 부르는 네트워크의 성질을 밝혀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그래프는 수직축과 수평축, 그리고 흩어진 점들을 연결하는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에르되시와 레니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그래프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래프는 단순히 선으로 연결된 점이 뿐이다. 점은 "꼭짓점"이라고 부르고, 선은 "모서리"라고 불렀다. 그런 추상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꼭짓점은 도시이고, 모서리는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그래프는 수송도로 네트워크가 된다. 꼭짓점이 영화배우이고, 모서리는 함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관계를 나타낼 수도 있다.
꼭짓점이 도시이고, 모서리가 도로일 경우에는 그래프의 규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그래프는 지도가 된다. 도시를 나타내는 꼭짓점들 사이의 거리와 방향은 일반적으로 지리학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영화-배우의 그래프에서는 규칙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면, 모든 모서리를 같은 길이로 만들고, 방향에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규칙은 사용할 수가 없다. 함께 출연한 두 배우를 일정한 길이의 모서리로 연결하면 그래프의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꼭짓점 사이의 연결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을 제대로 연결해주기만 한다면 영화-배우 그래프를 어떻게 그리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중요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수학자들이 "위상 구조"라고 부르는 연결 시스템이다. 종이에 그렸을 때 다르게 보이는 그래프들도 위상학적으로는 똑같을 수가 있다. 거리와 방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종류의 그래프는 꼭짓점들 사이의 관계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계" 그래프라고 부를 수 있다. 그와는 달리, 도시 네트워크는 거리와 위치가 실제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간" 그래프가 된다. 물론 도시 그래프를 반드시 공간적인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래프는 그리기 쉽게 만들고, 사람들이 그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공간적 그래프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꼭짓점들이 서로 연결된 그래프는 완전히 연결된 것이라고 부른다. 완전히 연결된 그래프에서는 연결선을 통해서 언제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일 수 있다. 런던 지하철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사회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그런 네트워크가 위상학적으로 무작위적 그래프로 표현될 것이라고 가정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지만, 그런 가정은 근거가 되는 구조에 대한 중립적 가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구의 출발점으로 적정할 것으로 보인다. 연결은 순수하게 우연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성질은 모두 통계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꼭지점이 100개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꼭짓점을 무작위적으로 연결해서 똑같은 그래프가 두 번 이상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기체에서 각각의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는 평균과 분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작위적 그래프에서도 꼭짓점당 평균 연결 수나 그런 수의 확률 분포와 같은 성질만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에르되시와 레니는 그런 확률 분포가 이미 익숙한 종 모양의 가우스 형 곡선임을 밝혀냈다.
네트워크 연구에 사용되는 또다른 종류의 그래프는 무작위적 그래프의 반대쪽 극단에 해당한다. 똑같은 꼭짓점들이 똑같은 모서리에 의해서 연결된 규칙적인 격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절서정연한" 그래프는 수학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쉽다. 무작위적 그래프와 질서정연한 그래프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질서정연한 격자의 한 꼭짓점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꼭짓점으로 가려면 이웃한 격자들을 조금씩 지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지나간 꼭짓점의 수로 표현되는 경로의 길이는 매우 길다. 그러나 무작위적 그래프의 경우에는 출발점 근처의 어느 꼭짓점이 목표 꼭짓점 근처에 있는 점까지 "장거리"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해서, 지름길이 많이 존재한다. 겉으로는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꼭짓점 사이의 경로가 매우 짧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두 꼭짓점 사이의 평균 경로 길이가 얼마인지를 물어보는 것이 바로 그런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고유 경로 길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스탠리 밀그램의 소포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필요한 우송의 평균 수에 해당하는 통계적 성질이다. 질서정연한 그래프에서는 고유 경로 길이가 길며, 그 길이는 꼭짓점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길어진다. 무작위적인 그래프에서는 고유 경로 길이가 짧다.
그런 사실을 근거로 하면, 영화-배우 그래프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는 무작위적 그래프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사람들과의 사회적 거리가 생각보다 짧다는 작은 세상의 핵심ㅇ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러나 1988년에 코넬 대학교의 두 과학자들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무작위적 그래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회적 네트워크는 무작위적 그래프의 완전한 무질서와 규칙적 격자의 완전한 질서 사이에 위치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네트워크를 작은 세상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허브가 발생하는 이유로 볼 수 있을듯)
동굴인과 전자 담화실
친구 관계는 대체로 상호적이다. 내가 앤디와 베티를 알고 있으면, 앤디와 베티도 서로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내 친구와 나는 일종의 사회적 집단을 만든다. 물론 그런 집단은 다른 집단과 상당히 많은 링크를 가지게 된다. 무작위적 네트워크에는 그런 집단의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위상학적으로 무작위적인 네트워크에서는 내가 앤딩와 베티를 알고 있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질서정연한 격자에서는 각각의 꼭짓점이 바로 인접한 이웃과만 연결되어 있고 멀리까지 연결된 경우는 없기 때문에 집단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잘서정연한 격자로 연결된 친한 친구들은 서로에게 친한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던컨 와츠는 1990년대 말에 그런 집단 만들기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이 처음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인간의 사회구조가 아니라, 귀뚜라미들이 함께 우는 것처러 동물들이 함께 행동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과학자들이 연구하던 뒤엉킨 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두 가지 극단적인 사회를 상상했다. 첫째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나누어져서 집단 내의 사람들과는 사귀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사귀지 않는 경우이다. 서로 떨어져 살면서 동굴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거의 모든 일을 함께 하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동굴인들의 세계가 좋은 예가 된다.
홉스의 시대에는 마을의 농부들이 대부분 그런 종류의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런 경우는 내부적으로는 고도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외부와는 전혀 연결이 없거나, 드물게 연결된 작은 그래프들로 표현된다. 그런 그래프는 질서정연한 것은 아니지만, 집단 만들기의 수준이 높고 고유 경로 길이가 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시모프의 1957년 소설 <벌거벗은 태양>은 사람들이 로봇과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솔라리아에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이웃과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쉽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상적인 우정은 너무나도 약하고 피상적이어서 새로운 우정이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사회의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친구로 사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집단이 전혀 없는 무작위적 그래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이미 어느 정도 그런 특성을 가진 사회적 네트워크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인터넷 대화방에서는 사람들이 링크를 만들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투자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무작위적으로 드나들게 된다.
스토로가츠와 와츠는 동굴인의 세계와 솔라리아 세계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 사람이 서로 사귀게 될 가능성을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공동의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동굴인 세상에서는 서로 공동의 친구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같은 집단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솔라리아에서는 많은 공동의 친구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될 가능성은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가능성보다 결코 높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마도 이런 두 극단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 해당할까?
이들은 완전히 연결된 질서정연한 그래프를 단계적으로 변환시켜서 (솔라리아와 같은) 완전히 연결된 무자위적 그래프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것을 무작위적인 재연결이라고 부른다. 질서정연한 격자에서 시작하여 무작위적으로 꼭짓점을 선택한다. 그것과 연결된 모서리를 무작위적으로 선택해서 단절시킨 후에 그래프에서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다른 꼭짓점과 다시 연결(재연결)시킨다. 재연결을 계속하면, 그래프에서 멀리 떨어진 부분들을 단번에 연결시키는 지름길이 점점 더 많이 생기면서 그래프는 점점 더 무작위적으로 된다.
기대할 수 있듯이, 질서정연한 격자에서 재연결이 늘어나서 집단화가 줄어들고 지름길이 생기면 L과 C는 모두 감소한다. 그러나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첫째, 거의 모든 움직임은 처음 몇 번의 재연결에서 나타난다. 꼭짓점의 10퍼센트가 재연결되면, 그래프는 무작위적 그래프와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둘째, 질서정연한 그래프에서 무작위적인 그래프로의 변화가 매우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와츠는 그런 변화를 통계물리학에서의 상전이에 비교했다. 마치 질서정연한 "고체형" 그래프가 무질서한 "액체형" 그래프로 녹아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연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L과 C가 한꺼번에 바뀌지 않고, 서로 다른 단계에서 변한다.
마지막 과정은 정말 이상해 보인다. 아직도 상당한 수준의 집단화(C가 큰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데도 고유 경로 길이는 무작위적 그래프의 값으로 떨어져버린다. 그런 후에 재연결을 조금 더 진행하면 C도 역시 작아진다. 따라서 비록 재연결의 정도가 좁은 범위이기는 하지만 L의 값은 작고, C의 값은 큰 상태가 존재하게 된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를 작은 세상으로 만들어준다. 예를 들면, 친구 관계의 작은 세상에서는 집단화의 정도는 높지만, 집단들 사이에 수많은 지름길이 있기 때문에 평균경로 길이가 짧아져서 "육촌의 거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스토로가츠와 와츠는 이런 잠정적인 그래프를 "작은 세상 그래프"라고 이름지었다.
내가 당신을 아나요?
실제 세상에서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무작위적 재연결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은 세상 그래프와 같은 모양일까?
케빈 케이컨 게임에서 특징적 경로 길이 L이 짧고(평균 베이컨 수가 작다), 집단화의 수준도 높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국적을 가진 배우들은 집단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집단은 리야오룽(홍콩), 제라르 드파르듀(프랑스), 궁리(중국)와 같은 문화 간 연결 고리에 의해서 서로 연결된다.
영화-배우 네트워크는 그런 수준에서 작은 세상에 버금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의 위상 구조는 어떨까? 네트워크에서 멀리 떨어진 꼭지섬 사이에 몇 개의 지름길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꼭짓점 수축 파라미터라는 것을 정의하면 어느 정도 비교할 수는 있다. 이 숫자는 모든 네트워크에 대해서 계산할 수 있고, 원형 그래프에서는 재연결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커진다. 스토로가츠와 와츠는 꼭짓점 수축 파라미터를 이용해서 영화-배우 네트워크와 같은 작은 세상 재연결 네트워크의 두 그래프가 위상학적으로 어느 정도 비슷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두 네트워크 특징적 경로 길이 L과 집단화 계수 C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재연결 모델이 동굴인 네트워크나 솔라리아 네트워크보다 영화-배우 네트워크의 계수를 더 잘 흉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가장 뜨거운 문제는 게빈 베이컨이 정말 영화계의 중심일까 하는 것이다. 만약 케빈 베이컨이 네트워크의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라면, 다른 모든 배우들은 평균적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그와 가까워야만 한다.
케빈 베이컨이 네트워크의 가장 중요한 허브가 아닐뿐더러, 최고 1,000명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케빈 베이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에는 작은 세상에 대한 핵심이 담겨 있다. 그런 네트워크에서는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보다 "중심"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우리 사회의 중심으로 보이는 몇 사람에 대해서 샘을 내거나 친구가 없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회 네트워크의 구조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작은 세상 특성을 연결 고리 형성에 이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의 심리학을 무시하고는 사회물리학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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