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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지위 게임 :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

29.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

지위가 주는 즐거움은 삶의 규칙에 따라 게임에 참여하고 얻어내는 상이다. 자연은 온갖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쇼를 펼치면서 우리가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행위를 견디도록 뇌물 공세를 펼친다.

 

인생의 게임에는 숨은 규칙과 함정이 있다.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 살면서 마주하는 온갖 문제는 결국 현실과 환상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발생한다. 뇌의 속임수로 우리는 우리 집단의 신화와 편견을 믿고, 스스로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이야기의 도덕적 영웅이라고 믿는다.

 

이 꿈의 설득력이 이렇게 강력한데 우리가 제대로 된 게임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게임을 하는 동안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유해한 꿈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음 일곱 가지 규칙을 명심해야 한다.

 

1. 따뜻함과 진심과 능력을 실천하기

수렵채집 시대 이래 명성은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자유로이 부여하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게임을 위한 세 가지 차원을 정리할 수 있다. 따듯함과 진심과 능력이다. 이것은 인간 행동의 신성한 3요소를 이룬다.

 

인간의 게임에는 지위를 얻기 위한 세 가지 주요 경로가 있다. 우선 지배 행위로 지위를 쟁취할 수도 있고, 도덕성이나 성공을 보여주어 우리 집단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 따뜻함을 보이는 것은 상대를 지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진심을 보이는 것은 남을 속이지 않고 공정하게 게임을 치른다는 뜻이며, 능력을 보이는 것은 지위를 위한 경쟁에서만이 아니라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능력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규칙은 조금 다르다. 따듯함은 엘리트층을 상대할 때 적절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을 대표하여 게임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지도자들은 우리 집단이 더 높은 지위를 누려야 마땅하고 그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오면 승리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성공했다. 다만 이런 복음주의적 열정이 오만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거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작은 명성의 순간 만들기

사실 삶에서 작은 지배의 순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쉽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국지적인 차원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경쟁에 열을 올린다. 지배 게임으로 넘어가려는 충동을 의식적으로 누르고, 대신 명성 게임으로 넘어가서 상대의 노고를 존중하고 칭찬해주면 된다. 당장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해도 결과적으로는 적어도 모두가 우리를 한 인간으로서 더 좋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배가 아니라 명성이 쌓이면 평판이 월등히 좋아지고 보상이 따를 수도 있다.

 

우리는 남들에게 지위를 줄 수 있고, 그러는 데 비용도 들지 않으며, 지위가 다 떨어져 바닥날 리도 없다는 점을 쉽게 잊는다. 작은 명성의 순간을 만든다는 말은 항상 명성을 사용할 기회를 찾는다는 뜻이다. 남들에게 지위가 높아졌다고 느끼게 해주면 그들도 우리의 영향력을 인정할 가능성이 커진다.

 

부하 직원에게 부탁을 하든 업무를 맡기든 미묘하게라도 지배의 신호를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들이 압박감에 짓눌리지 않고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다. 어던 사안에서 자기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가 하는 행동을 좋게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상기시키는' 방법이 상대를 설득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버스 요금을 빌려 달라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거절할 수 있다"고 알렸을 때 부탁을 들어주는 비율이 높아졌다. 나는 이것이 지위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추정한다.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 아무리 부드러운 압박이라도 지배에 순응해 행동하는 게 될 뿐이다. 반면에 자유롭게 결정했다고 생각한다면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나약하지 않고 도덕적이며 따라서 너그러운 행동의 대가로 정당하게 보상을 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3. 게임의 위계질서를 이용하기

인생의 게임에서 가장 큰 위험 요인 중 하나는 독재다. 특히 오늘날처럼 물리적 영역만이 아니라 심리적 영역에서도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에 독재자들은 우리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식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미 품은 믿음을 말해주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독재자들의 주장은 '도덕적으로' 일리가 있다. 

 

러시아 민중에 대한 잔혹한 착취를 종식하자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었을까? 독일의 경제와 국가의 자부심을 회복하고 위험한 공산주의를 제거해준다는 데 누가 반박할 수 있었을까? 아동 학대와 맞서 싸우자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었을까?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옳고 도덕적 영웅이며 높은 지위를 약속하는 땅으로 가는 영광의 길에 올라섰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믿는 꿈을 경험했다. 스스로 선의 편에 서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이런 게임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이룬다면, 우리는 자신이 유혹에 넘어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지위를 얻는 방식을 관찰하면 우리의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파악할 수 있다. 

 

독재는 지배-도덕 게임이다.

  • 일상의 행위나 대화의 상당 부분이 복종과 신념과 적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 당신이 참여하는 게임이 게임 안에서든 밖에서든 사람들에게 게임의 규칙과 상징에 순응하라고 강요하는가?
  • 당신의 게임이 이념의 적을 침묵시키려 하는가?
  • 당신의 게임이 계급 질서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기 집단만 신성시하고 공동의 적을 악마화하는가?
  •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신성한 믿음에 집착하는가?
  • 그들이 신성한 믿음에 대해 반복해서 말하면서 탐욕스러운 즐거움을 느끼고, 그 시념에 대한 믿음이나 적극적인 믿음으로 중요한 지위를 얻는가?
  • 당신의 게임이 대체로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마음을 동반하며 타인의 삶을 해롭게 하거나 파괴하려 하는가?
  • 그리고 이런 공격성을 미덕으로 느끼게 하는가?

이것이 독재다.

 

무서운 사촌들이 우리의 뇌 속에 있다. 진심으로 '다시는' 독재를 허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독재는 '좌파'

의 것도 '우파'의 것도 아니고 그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독재는 열 맞춰 거리를 행진하면서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우리를 유혹한다.

 

독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은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세뇌당한 듯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한 가지 게임에 몰아넣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한 가지 게임에 전념하면서 거기서 관계와 지위를 얻으려고 애쓴다. 특정 게임 안에서 그것이 주는 지위를 유지하려면 게임의 꿈이 아무리 비현실적 망상이라고 해도 그 꿈으로 자신을 채울 수밖에 ㅇ벗다. 그래서 남들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스스로 파멸할 수도 있다.

 

게임이 실패하거나 게임에서 추방당하면 정체성(자아)이 붕괴한다. 따라서 다양한 정체성으로 다양한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정체성이 붕괴할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안정된 정서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간절히 원하는 명성을 얻으려면 그 게임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 더 끈기 있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삶은 게임의 위계질서에 따라 정렬된다. 

 

4. 도덕 영역 줄이기

어떤 지위는 다른 지위보다 손십게 얻을 수 있다. 당신은 그냥 남들을 판단하기만 하면 된다. 지위는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남을 깎아 내리면 내 마음속에서나마 내 지위는 올라간다.

 

스마트폰과 SNS로 인해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따르는 세계적인 도덕 게임이 우리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지금은 이렇게 '평가'로 도덕적 지위를 얻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해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대가가 따라서, 이 지위로 남들을 비참한 처지로 떨어트릴 수 있고, 특히 지배 행동이 결합되면 과격해지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도덕의 영역을 의식적으로 줄이면 도움이 된다. 남들을 판단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그래서 값싸고 오염된 지위를 얼마나 얻는가? 도덕 영역을 줄인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서 남들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관심을 둔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우습게 보고 증오하기 쉬운, 우리와는 동떨어진 꿈을 꾸는 사람들을 무심히 비난하는 행동을 멈춘다는 뜻이다.

 

5. 균형있는 사고방식 기르기

도덕은 공감을 오염시킨다. 우리의 꿈은 지극히 실제적이고 진실해 보이기 때문에 그 세계의 도덕적 확신도 실제적이고 진실해 보인다. 하지만 도덕적 '사실'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우리의 도덕적 현실이 진정한 현실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현실은 거짓이어야 한다. 따라서 남들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악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두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민자나 신자유주의나 종교가 선이냐 악이냐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두 순전히 지위 게임이다. 이런 복잡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두 게임이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하나는 희생되는, '상충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두 게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지위 게임에 영향을 끼치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혼재된 집합체다.

 

우리의 도덕적 진실을 실체가 있는 현실로 보거나 절대적 진실로 존중하려 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사고 방식을 길러야 한다. 세상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협상하고 거래하는 집단으로 보자는 것이다. 적의 게임을 이해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면서, 그 게임의 타당성에 설득되지 않더라도 지위를 생성하는 그들만의 기준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심각한 갈등 상황에 놓였더라도 각자의 이야기에는 진실의 한 조각이 담기기 마련이다. 신좌파와 신우파의 충돌에서도 양쪽 모두 진실이기도 하고도 거짓이기도 한 각자의 꿈을 만들었다. 결국 양쪽 모두가 심각한 편견과 싸워야 한다.

 

이민자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각기 다른 집단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뿐이다. 지혜를 모으고 단순한 도덕 논리를 넘어 세상을 용과 용의 처단자가 득실거리는 곳이 아니라 협상하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본다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6. 다르게 살기

지위 게임에서의 삶은 고단하다. 특히 오늘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이런 세상에서는 우리도 달라진다. 실패를 알리는 주변의 신호에 더 민감해지고 그래서 더 완벽주의자가 되어 간다. 우리는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높아서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집단의 중요한 행동 기준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작은 비순응의 활동을 하여" 성공을 위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독창성은 다른 경쟁자들이 따라 잡기 힘들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완벽해지기 위해 실패에 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소식이다. 더 나은 전략은 종종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7.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지위 게임은 우리가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기 위해 참여하는 공모의 장이다. 생존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나면 이제 남는 것은 경쟁이다. 무엇을 위한 경쟁일까?

 

우리는 마법처럼 무한한 지위의 상징을 만들어 낸다. 존경, 영향력, 돈, 아첨, 눈 맞춤, 복장, 보석, 직위, 오렌지 주스의 양, 비행기의 왼쪽이나 오른쪽.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인생에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살면서 날아오르고 추락하고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치명적인 패배도 겪고, 때로는 자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죽음의 쓴맛이 실패보다는 달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해도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새롭고 더 나은 게임을 찾는 편이 낫다. 인생의 후반전에는 전반전보다 더 의미 있게 탐험할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상상의 중심에는 늘 지위를 건 싸움이 있다. 내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이 싸움이 시작된다. 이제 나는 이런 과정을 알아채서, 이것이 시작되지 않게 막고, 이 게임의 밖으로 빠져나가고, 조금이나마 합리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위험한 환상에 쉽게 휩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만큼 집단이 위험한 환상에 휩쓸려 압도적인 위력을 발산하는 것도 안다. 나날이 양극화되고 분노가 격해지는 시대의 서구 사회에서 나는 게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새롭고 거친 게임의 꿈이 사회 전반에 형성되고 대중을 현혹시키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집단이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믿는 그 황당한 무언가가 옳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의 이런 인식을 더 자신할 수 있다. 믿는 이들의 수가 많다고 해서 그들의 믿음이 더 진실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힘이나 플랫폼이나 지적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엘리트와 그들의 게임은 인류 역사 전반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왔다. 그리고 이 흐름이 우리 시대에 갑자기 멈출 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게임의 압박이 극심해지는 순간을 알아채는 법을 터득했다. 이처럼 이상하고 불안정한 꿈의 세계에서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새로운 상징이 계속 출현하는 순간이다. 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런 상징의 수가 많은 만큼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구도 세상의 모든 사람과 경쟁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상기한다.

 

약속의 땅은 신기루다. 가장 힘든 순간에 꿈의 진실을 떠올려야 한다.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라 결승선이 없는 게임이라는 진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누구도 지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의미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