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뇌에 대한 더없이 흥미롭고 유익한 아홉 번의 강연
정재승
"뇌과학 강연을 듣고 싶어요." 뇌과학자로서, 대중강연에서 만난 일반인 청중들에게 자주 듣는 얘기다. "저도 KAIST 학생들처럼 뇌과학을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어요."라며 진지하게 열의를 보이는 청중들도 생각보다 많다.
살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저들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부모 또는 자녀와 갈등이 있거나, 배우자나 친구와 말다툼이라도 하면 더욱 그렇다. 또 SNS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세상엔 참 독특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뇌과학을 찾기 십상이다. 도대체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길래!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저들의 행동은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인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지는 순간,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마지막 배출구인 '뇌'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진다. 나와 내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지적 욕구니까.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우리 모든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근사한 선물이다. 뇌과학의 최전선에서 활발히 연구하는 학자가 마치 나에게만 특별히 들려주는 강의처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뇌과학의 정수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는 뇌과학 지식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이런 뇌를 품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도 조언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수업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는 내가 존경하는 뇌과학자다. 배럿은 정서신경과학(감정의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뇌과학 분야)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의미 있는 가설들을 제안해왔다. 나 역시 연구 과정에서 그의 논문을 여러 편 읽었으며, 그의 전작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배럿은 '인간의 감정은 문화적 환경 속에서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구성되는 생물학적 토대를 가진다'는 획기적인 이론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여섯 가지 기본 감정(슬픔,기쁨,분노,역겨움,놀라움,공포)과 좀 더 복잡한 20여 가지 복합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인데, 배럿은 서양 문화권과 동떨어진 나미비아의 힘바족이 이 여섯 가지 기본 감정을 '기쁨' 대신 '웃는', '두려움' 대신 '바라보는' 등과 같이 좀 더 행동 중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석해보자면, 모든 사람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감정의 지문은 존재하지 않으며, 감정은 문화와 전후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표현될 수 있는 구성된 개념이자 일련의 개체군 사고임을 보여준다. 배럿은 이렇게 가장 원초적인 감정조차도 사회적 구성물임을 주장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마음먹고 일반인을 위한 뇌과학 강의에 나섰다. 원제가 '뇌에 관한 7과 1/2번의 강의'인 이 책은 한 번의 도입 강연과 일곱 번의 본 강연을 통해 뇌과학의 고갱이를 맛보게 해준다. 앞으로 뇌과학을 공부하려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또 과학을 전공하거나 연구하지 않더라도 이 뇌과학 입문서를 읽어두면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을 추천하는 강력한 근거는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미덕에 있다. 우선 뇌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생명체에게 뇌가 왜 필요하며 우리는 어떻게 뇌라는 1.4킬로그램의 기관을 갖게 되었는지'를 근본적으로 설명해준다. 배럿에 따르면 우리 뇌는 '생각하기 위한 이성의 기관'이 아니며, 사실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전에 그 필요를 예측하고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생존을 위해 신체를 제어하는 역할,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기관이다. 다시 말해 뇌는 신체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뇌의 기원을 탐구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가설 중 하나이며, 최근 들어 어둑 지지를 얻고 있다.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리뷰스 뉴로사이언스>는 지난 20년간 뇌과학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학문적 성취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뇌과학 전 분야에서 초대된 세계적인 석학 18명이 답한 글들을 모아 2020년 9월호에 '지난 20년간의 뇌과학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이 손꼽은 주요 성과들이 그보다 앞서 집필된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뇌는 거대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네트워크'라는 사실이라든가, 뇌가 복잡한 네트워크의 유기적 정보처리를 통해 창의성을 발현하는 복잡계라는 사실 등이 그 예다. 또 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만도 아니며, '양육이 필요한 본성'을 가진 기관이라는 것도 중요한 발견이다. 뇌는 그 자체로 '예측 기계'라는 가설도 석학들이 꼽는 주요 성과인 동시에 이 책의 주된 주제다. 한마디로 21세기 뇌과학의 정수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의 미덕 중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점은 뇌에 대한 여러 오해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한 예로, 흔히 '삼위일체의 뇌'라고 부르는 가설이 왜 허구적인 신화에 불과한가를 조목조목 따져 밝혀내는 대목이 있다. 우리 뇌가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인간의 뇌 등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삼위일체의 뇌 가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어왔다. 특히 천문학자 칼세이건이 자신의 저서 <에덴의 용>에 이 개념을 소개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하게 생긴 동물들의 뇌는 모두 공통된 뇌 제조계획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된 직후 배아가 뇌를 형성하고 신경세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정해진 순서를 따르며, 모든 동물은 같은 순서와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다만 종별로 각 단계에 머무는 시간이 달라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뇌가 형성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뇌 가설은 파충류에서 포유류 그리고 인간과 같은 영장류에 이르는 진화적 과정에서 마치 뇌의 층이 하나씩 더해져 우수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우리만의 거대한 대뇌피질을 가져서가 아니라 보편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뇌 구조가 전체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안에는 파충류의 본성이나 포유류의 본성을 담당하는 원시 뇌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 많은 독자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나'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는 데 있다. 내 안에는 어떻게 해서 여러 가지 상충하는 마음이 공존하는지, 나는 내 몸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습관,성격,태도,세계관 등을 갖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도와준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에 대해 독자들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실마리를 얻을 것이다.
뇌과학자들에게 '뇌과학의 정수를 알려주세요'라고 요청했을 때 과학자들은 대개 이 책과 같은 강연을 구성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매우 개성 있는 강연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배럿의 이 강연이 개성 있는 이유 몇 가지를 꼽으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심리학자인 배럿이 '복잡계 네트워크로서의 뇌'를 강조한 건 이례적이다. 특히 뇌의 복잡성에 주목하고 그것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서술한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짐작건대, 그가 몸담고 있는 노스이스턴대학교에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버트 바라바시 교수가 이끄는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센터'가 있으며, 이곳은 복잡계 네트워크로서의 뇌를 연구하는 훌륭한 연구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배럿 교수도 다양한 연구방법론을 사용하는 학자로서 이 연구센터의 걸출한 연구 성과를 통해 '복잡계 네트워크로서 뇌'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 책에도 상당 부분 반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서를 연구하는 학자인 저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뇌, 감각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반응하는 뇌, 감정을 기반으로 한 생존기계로서의 뇌를 강조한 것도 흥미롭다. 만약 의사결정이나 추론을 연구해온 학자였다면 우리가 어떻게 물체들을 범주별로 나누고 일반화해서 세상을 이해하며, 어떻게 감각을 바탕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서술할 수도 있다.
또는 언어나 종교, 아니면 좀 더 추상적인 행위를 연구하는 학자였다면 인간의 추상적 사고와 의식에 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을 것이다. 뇌가 생각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에너지(신체예산)를 적절히 배분하고 조정하는 기관이라는 주장도 정서를 연구하는 그의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개성 넘치는 뇌과학 강연 시리즈를 이 책을 통해 듣게 된 것이리라.
배럿 교수는 감정이 사회적 구성물임을 강조하는 학자다. 개인의 감정 경험이 개인의 행동들을 통해 능동적으로 구성되며, 우리 스스로를 능동적인 감정 설계자로 규정한다. 이런 감정 경험들이 모이고 사람들 사이의 집단지향성을 통해 사회적 실제로서 현실이 창조된다. 우리가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동물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체로서 미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지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배럿은 이런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감정의 생물학적 매커니즘 연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의식을 확장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양육의 필요한 본성' 이라는 뇌의 기본 계획을 어떻게 일상에서 발전시켜나갈 것인지 살펴보고, 문화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 신경과학에서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아직 이런 주장을 자세히 다룬 책들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각별히 유익하다.
물론 배럿이 신체예산을 운영하거나 예측을 하는 뇌에만 관심을 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장이기도 한 7장 '인간의 뇌는 현실을 만들어낸다'에서는 우리 뇌가 어떻게 감각을 추상화하고 의사소통과 모방, 창의성과 협력, 그리고 압축 과정을 통해 현실을 창조해내는지 흥미롭게 서술한다. 이처럼 우리가 아직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뇌의 작동원리'를 대담하게 제시한 대목은 이 책의 탁월함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이 책을 다 읽을 즈음 독자들은 깨달을 것이다. 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쉼 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고마워하게 된다. 복잡하면서도 체계를 가진 네트워크로서 뇌는 끈임없이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다른 뇌와 상호 작용하며, 여러 가지 마음을 만들어내고 통합하면서 내 몸을 조정하고 세계를 인식하게 해주는 동시에 현실을 창조해낸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에 살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며, 감각 경험들은 새로운 미래를 인식하고 창조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일 자세를 가다듬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열린 태도로 삶을 살아갈 채비를 갖춘다.
이제 독자들인 이 책에서 펼쳐질 강연들을 통해 이 모든 것이 1.4킬로그램의 뇌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만끽하실 것이다. <마무리 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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