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복잡성의 조립
이전에 문명의 모든 발걸음은 자연을 지배하고 억제하는 쪽으로 걸어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오히려 원하지 않았던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며 세를 확장해나갔다. 뭔가가 빠진 것이 분명했다.
예컨대 핵심이 되는 어떤 종이 빠진 것이 분명했다. 그 종은 다름 아닌 불이었다.
임의적 생태계는 아무 문제없이 안정화 되었습니다. 시스템이 모두 지속적인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지속적 상태는 시스템당 하나씩 나타났습니다.
지속적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개의치 않는다면 안정적인 생태계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결정론적 시스템들은 대개 초기 조건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차이 하나가 시스템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얻은 안정성은 그와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시작하더라도 나중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제대로 된 구조를 이룬 상태에 도달했던 것이지요.
“습지를 만들고자 할 때 그저 땅을 물에 잠기게 한 후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5. 공진화
스스로 변화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다시 반응하는 카멜레온은 인간 사회의 유행이라는 현상에 대한 기발한 유추이다. 유행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집단 마음이 자신의 이미지에 반영되어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세 시대 사람들의 삶은 자기 도취와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아주 어렴풋한 개념만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반사된 모습을 통해서보다는 의식이나 전통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했다.
반면 현대 세계는 사방이 거울로 도배되어 있다.
우리의 집단적 행위의 사소한 측면까지도 모두 다시 반사해 비춰준다. 쉴 틈 없이 전달되는 각종 고지서, 성적표, 급여 명세서, 카탈로그 따위가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디지털화가 한층 더 만연해질 미래는 우리에게 더욱 명확하고 신속하고, 어디에나 널리 존재하는 거울들을 약속한다. 우리가 물건을 하나 살 때면 그 행위로 인하여 우리는 동시에 반영하는 것과 반영되는 것, 원인과 결과가 된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와 유사한 상호 의존성을 낳게 된다.
“(생물의 유전자 패턴은) 새끼 고양이가 어떻게 생쥐를 잡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학습 메커니즘과 유희를 좋아하는 경향을 함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새끼 고양이에게 생쥐를 잡는 방법의 미세한 세부 사항을 가르쳐주는 것은 다름 아닌 생쥐이다.”
“종의 진화는 그 종을 둘러싼 환경의 진화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무너져간다고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상호 의존적이다.
‘쇠뿔아카시아’는 한 종의 개미들에게 자신을 독점적 먹이로 내주면서 대신 그 개미로 하여금 다른 모든 포식자들을 잡아 죽이거나 내쫓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화의 역사에서 생물의 사회성이 증가함에 따라 공진화의 사례 역시 증가해왔다. 생물의 사회적 행동이 풍부하면 할수록 그 생물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호작용에 빠지게 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10억 년이 지난 후 지구상의 생명은 기생과 공생으로 가득한 고도로 사회적인 형태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또한 연합과 동맹의 네트워크가 세계 경제의 주된 형태를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진화가 지구 전체를 채우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구상의 생명 네트워크는 다른 모든 분산된 존재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생명의 총합을 넘어선다. 그리하여 그 생명은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가 전 행성을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 엮어 넣으면서 암석과 기체와 같은 무생물의 세계까지도 터무니 없는 공진화 과정에 옭아매버린다.
열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구 대기의 높은 산소 농도는 산소 기체가 지구 표면의 고체들을 산화시킴에 따라서 급격히 떨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 마치 지구 표면 전체가 광범위하게 불안정한 화학적 비정상 상태를 나타내는 듯하다.
어떤 행성이든 생명이 살고 있다면 그 행성은 화학적 상태가 기묘한 불균형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산소 농도 20%는 바닷물이 거의 완전히 산소 결핍 상태가 되는 것과 지나친 독성 내지는 유기 물질에 쉽게 불이 붙는 위험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대체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센서나 자동 조절 장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렇게 따지고 보자면 보일러는 또 어디에 있는가?
생명이 없는 행성은 지질학적 흐름에 따라 평행 상태를 찾는다.
만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사라져버린다면 지구의 대기는 금성이나 화성처럼 지루할 만큼 예측 가능한 지속적인 평형 상태에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분배 작용이 존재하는 한 지구상의 화학 물질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에 머무른다.
그러나 불균형 상태 자체가 균형을 추구한다.
이 아슬아슬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야 말로 생명의 명확한 특질이라고 보았다.
바다 속의 플랑크톤이 만들어내는 기체(황화디메틸)가 산화되어 미세한 황산염 입자를 만드는데, 이것이 구름을 형성하는 작은 물방울들을 응집하게 해주는 핵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심지어 구름과 비마저도 생물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가이아가 진짜 생물이라고 주장하던 그는 여전히 지구가 생명의 속성을 가진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수만의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주식 시장에서도 상충하는 이해 속에서 특정 가격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자리잡는다.
폰 노이만은 이와 같은 게임에서 최적의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졌다.
노이만은 궁극적으로 네 가지 종류의 상호 추측 게임을 분류해냈다. 이 네 가지 단순한 게임들은 전문적 문헌에서 ‘사회적 딜레마’라고 불리는데 사실상 복잡한 공진화 게임을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 구성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치킨 게임, 수사슴 사냥, 교착 상태, 죄수의 딜레마가 그 네 가지이다.
치킨 게임
수사슴 사냥 : 사냥꾼은 협력(큰 보상)에 걸 것인가, 아니면 배신(작지만 확실한 보상)에 걸 것인가?
교착상태 : 상호 배신이 가장 큰 보상을 가져다 주는 지루한 게임
죄수의 딜레마 : 두 명의 죄수 모두 자백을 하지 않으면 모두 무죄 석방 한 사람만 자백할 경우 자백한 사람은 보상을 받지만 다른 한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
반복적으로 게임을 할 경우
‘미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게임을 단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할 경우 나중에 상대방이 협력할 것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지금 상대에게 협력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행동이 된다.
‘과연 어떤 조건이 이기주의자들의 세계에서 중앙 권력 기구의 존재 없이 협력을 탄생하게 할까?’라는 질문에 천착하게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서 이에 대한 답은 1651년 토머스홉스가 천명한 정치적 추론이 정석으로 여겨져 왔다. 오직 온화한 중앙 권력 기구의 도움에 의해서만 협력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향식 통제를 하는 정부 없이는 오직 집단적 이기주의만 존재할 것이라고 홉스는 주장했다. 따라서 어떤 경제 체제이든 강력한 손이 정치적 이타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으로 촉발된 서양의 민주주의는, 원할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는 강력한 중앙의 통제 없이도 협력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협력은 이기주의에서도 출연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적 기구인 인터넷 등은 공진화적 협력을 낳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강화시켜왔다.
다양한 보상구조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다.
탐험과 이용 사이의 선택 문제
만일 병원이 모든 환자들에게 기존의 약 중에 가장 좋은 약만을 준다면 새로운 약은 결코 개발될 수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결코 탐험 쪽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어느 정도의 실험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소음-전혀 예측할 수 없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선택- 없이는 점점 상승하는 진화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탈 수 없다. 실수는 공진화적 관계가 서로 너무 밀접하게 꽉 달라붙어 죽음의 나선으로 빠져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즉 실수는 공진화적 시스템이 수면 위에 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대중문화 속을 파고들어온 게임 이론의 개념 중 하나는 제로섬 게임과 넌제로섬 게임의 차이일 것이다.
체스, 선거, 운동 시합 등은 제로섬 게임이다. 승자의 이익은 패자의 손실에 기인한다.
한편 야생의 자연, 경제, 마음, 네트워크 등은 넌제로섬 게임이다. 곰이 산다고 해서 울버린이 꼭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고도로 연결된 공진화적 충돌의 고리는 전체 구성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뭐든지 상대방에게 해가 되는 것은 나에게 득이 됩니다. 반면 넌제로섬 게임에서는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득이 되거나 둘 다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공진화, 즉 변화하는 자신에 대응하여 일어나는 변화에서는 상대방을 이기지 않고서도 우승을 거둘 수 있다. 기업 세계의 거만한 최고 경영자들도 이제 네트워크와 연합의 시대에는 기업이 상대를 밟지 않고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신의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교훈은 공진화하는 세계에서 통제와 비밀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통제는 불가능하고 숨기는 것보다는 드러내는 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이 항상 자신의 전략을 숨기려고 합니다.”“그러나 넌제로섬 게임에서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전략을 드러내서 상대방이 그것에 적응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기생 관계에서 동맹에 이르기까지 공진화적 관계의 근본은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속적인 정보 교환이 그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옭아넣는다. 동시에 정보의 교환은 그것이 모욕이든, 도움이든, 단순한 뉴스이든 간에 협력, 자기 조직, 긍극적윈윈의 승부를 낳을 수 있는 공동의 기반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지금 막 발을 디딘 네트워크의 시대에 왕성한 의사소통은 창발적 공진화, 자발적 자기 조직, 상승하는 협력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인공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 시대에는 솔직함이 승리하고 중앙 통제는 패배한다. 또한 끊임없는 실수와 오류가 만들어내는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역설적으로 안정성을 만들어낸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넘었는데 현재의 시대를 대변해주고 있네요. 이렇게 미래예측을 잘한 책은 보기 드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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