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산업 생태계
그의 건물들은 지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미래의 적응적 주택은 단일 생물 개체라기보다는 여러 생물들이 어우러진 생태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개 한 마리보다는 정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컴퓨터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적응적 기술은 처음에는 거대하고, 두드러지고, 중앙 집중적이었다. 그러나 전자 칩과 모터와 센서가 점점 줄어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물러남에 따라 컴퓨터도 융통성을 발휘해 분산된 환경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남게 되었다. 물질은 휘발되어 사라지고 집단적인 행동만을 그 자리에 남겨놓는다. 우리는 그 집단적 행동, 즉 초개체 내지는 생태계와 상호작용한다. 그 결과 방 전체가 적응적 번데기 고치가 된다.
네트워크 문화는 사생활 보호 기술 없이는 번성할 수 없다. 개인 정보 암호화와 위조할 수 없는 디지털 사인 기술 등이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또한 군중의 익명적 특성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와이저의 건물은 기계들의 공진화적 생태계이다. 각각의 장치들은 자극에 반응하고 다른 개체들과 의사소통하는 생물이다. 협동은 보상을 받는다. 대부분의 전자 장치들은 홀로 떨어져서는 별 볼일 없고 사용되지 않아 도태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로 뭉칠 경우 기민하고 강건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 자체로서는 깊이가 없는 각각의 소형 장치들이 공동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건물 전체에 집단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심지어 그 영향력은 인간에게까지 미친다.
공진화적 생태계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한 무리의 생물들이 스스로 다른 생물들에게 환경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생물들은 각자 다른 생물들의 환경이 된다. 그리고 곧 기계들 역시 공진화의 무대에서 그들의 배역을 연기할 것이다.
그런데 기계들이 생태계를 이루게 되면 멍청한 기계들의 제한된 솜씨가 강화된다. 책이나 의자에 장착된 전자 칩은 단지 개미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분산된 존재의 신비한 힘에 의해 개미와 같은 수준의 개체들이 충분한 수로 모여서 서로 연결되어 일종의 집단 지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를 낳는다.
예전에는 모두 각기 다른 인터페이스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서로 다른 사람의 단말기를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공통의 인터페이스, 공통의 문화라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더 많이 닳은 길
닳은 자국은 창발적이다. 그 자국은 무리의 행동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대부분의 창발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닳은 자국 역시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환경 속에서 어딘가에 흠이 생기면 그 주변에 더 많은 흠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다른 대부분의 창발적 속성과 마찬가지로 닳은 흔적도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힐은 물리적으로 사용된 흔적에 의해 알려지는 환경 상태를 사무실 제품들의 생태계에 옮겨 심고 싶어 한다.
힐이 일하는 곳에서는, 그의 연구실을 거쳐가는 모든 문서들은 다른 사람 또는 기계들이 그 문서와 상호작용한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어떤 텍스트 파일을 읽기 위해 불러오면 화면 위의 얇은 그래프 위에 다른 사람들이 해당 부분을 몇 번 읽었는지를 조그마한 체크 표시로 알려준다. 한눈에도 다른 사람들이 여러 번 읽은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사용 흔적’이 통제되지 않는 집단적 평가에서 창발된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닳은 흔적은 연합에 대한 멋진 비유이다. 닳은 흔적 하나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여러 개가 모이고 공유하게 되면 모두에게 값진 것이 된다. 더 많이 유통될수록 더욱더 가치가 높아진다. 인간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혼자 있기 보다는 무리 짓고 싶어 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기계들의 공동체 또는 생태계에서 어떤 기계들은 특정 기계들과 더 많이 교류하는 경향이 있다.
적절한 통찰력을 발휘하면 이 굳건한 산업 생태계는 생물권의 자연 생태계가 확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무의 섬유질은 나무에서 목재로, 목재에서 신문으로, 종이에서 퇴비로, 퇴비에서 다시 나무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더 큰 지구적 메가 시스템 안에서 자연의 영역과 산업의 영역을 쉽게 오간다.
마치 생물계가 스스로 생성한 것을 스스로 처리하듯, 산업계가 지금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들 것 스스로 고쳐나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자연에서는 쓰레기 처리 문제를 찾아볼 수 없다. 아무것도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자연 따라하기’라는 과제는 고립되고 경직된 기계에게는 실행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점차로 적응적 행동, 공진화적 동력, 전역적 연결과 같은 속성을 지닌 기계와 공장을 발명해나감에 따라서, 일종의 산업 생태계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산업이 자연을 정복하는 패러다임에서 산업이 자연과 협력하는 패러다임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자연 시스템의 체계적인 설계를 모델 삼아 산업의 체계적인 설계를 이루어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의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과 자연이 더욱 바람직한 모습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
이제 제품이 수명을 다한 후 그 사체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책임지지 않고서는 라디오든 운동화든 소파든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닫힌 고리 시스템은 같은 물질을 계속해서 재활용하고 또 재활용한다.
상당 부분의 물질은 ‘닫힌 고리’ 안에서 순환한다.
‘닫힌 고리’ 기술은 장연 속 식물 공장의 닫힌 고리 시스템을 그대로 반영한다.
제조 공정의 순환 고리를 아무리 빠져나갈 틈 없이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에너지나 재활용할 수 없는 물질이 생물권으로 버려지게 마련이다. 이 불가피한 엔트로피의 영향은 기계 시스템이 폐기물을 자연 시스템의 속도와 역량에 맞을 정도로 방출할 경우 생물 영역에서 흡수할 수 있다.
자연은 변이나 희석된 것을 다루는 데 인공물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네트워크에 좀 더 기반을 둔 ‘유연한 생산 시설’은 적응성 있는 기계 장치를 운영하거나 더 다양한 종류의 제품에 대해 더 적은 단위를 생산하는 식으로 자원의 변덕스러운 속성에 대처할 수 있다.
산업 활동이 점점 더 유기적이 되어갈수록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지속 가능’해진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생명은 탄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생성되었지만 탄소를 원료로 삼지는 않는다.그러나 탄소는 산업 발달의 연료였고 동시에 대기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연료에서 진짜 에너지를 내는 것은 탄화수소 가운데 탄소가 아니라 수소 부분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볼 때 순수한 수소야말로 이상적인 ‘청정 연료’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 불가피하게 생물학적 방법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l 생물학적 방법은 같은 일을 하는데 더 적은 물질을 들이고도 더 잘 해낸다. 오늘날의 자동차, 비행기, 주택, 컴퓨터 등은 20년 전에 비해 더 적은 물질을 소비하면서 훨씬 더 좋은 성능을 보인다.제조업자들은 자연의 생물학적 절차를 경쟁력 있고 영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결과 제조 공정에서 생물학적 해법을 지향할 것이다.
l 인공물의 복잡성이 이제 생물학적 복잡성 수준에 이르고 있다. 복잡성의 최고 관리자인 자연은 어지럽고 반직관적인 그물망을 다루는 데 필요한 값진 지침을 제공해준다.
l 자연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을 수용해야 한다.
다음 세기가 우리를 안내할 곳은 모두가 떠들어대듯 실리콘의 시대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 즉 쥐, 바이러스, 유전자, 생태학, 진화, 생명의 시대일 것이다.
자연 그 자체가 되는 컴퓨터를 설계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연의 진화는 항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연산 절차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여러분의 거실, 사무실, 차고의 가장 놀라운 제품은 이 선구적 학회에서 논의된 아이디어들에 기초하여 탄생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바나의 수렵 채집을 하는 인간을 낳았다.수렵 채집을 하는 인간이 농업을 낳았다. 농사를 짓는 인간이 산업을 낳았다. 산업화된 인간이 지금 현재 출현하고 있는 탈산업화된 무엇인가를 낳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알아내려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의 결합이라고 믿는다.
생명 현상은 모든 복잡성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필연성, 거의 수학적 확실성이다.
결국 생물 논리가 항상 이긴다.
11. 네트워크 경제
나는 컴퓨터의 미래는 숫자가 아닌 연결에 있음을 깨달았다.
네트워크화된 컴퓨터가 의사소통 기계로 사용됨에 따라 향상된 세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른 논리로 전복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 논리는 바로 망의 논리이다.
실리콘 칩의 진짜 힘은 숫자들을 이리저리 조작해 우리 대신 생각하도록 하는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 조작된 스위치를 이용해 우리를 연결하는 신비스러운 능력이다. 우리는 사실 이 기계를 컴퓨터(연산 기계)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커넥터(연결 기계)라고 불러야 옳다.
네트워킹은
l 무엇을 만드는지
l 어떻게 만드는지
l 무엇을 만들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l 그것을 만드는 경제 환경의 본질
등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종류의 혁신적 상품을 더 빠르고 더 유연한 방식으로, 또한 고객의 요구에 더욱 잘 부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미 네트워크 논리가 제품의 형태를 규정짓게 되었고 그것이 비즈니스의 형태를 규정하게 되었다.
기업이 시장에서 상호작용하는 모든 대상을 포함하도록 기업의 내부 네트워크를 외부로 확장하라. 직원, 공급자, 규제자, 고객 등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망을 짜라. 그들은 모두 당신 회사의 집단적 존재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들이 바로 회사이다.
고객의 구매와 주문과 생산이 이토록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고리로 돌아가다 보니 또 다른 고도의 네트워크화된 의류 생산업체인 베네통은 그들이 생산하는 스웨터는 공장 문을 나서기 직전까지 염색하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베네통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덕스러운 패션계의 폭풍 속에서 건재해왔다고 할 수 있다.
분산 : 기업은 이제 어느 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지 않다.
분권화 : 과거의 ‘악덕 기업가’들은 자신의 산업의 모든 핵심적이고 부속적인 측면을 통제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강철 회사는 광물이 매장된 곳을 직접 소유하고, 직접 석탄을 캐고, 직접 철로를 놓고, 필요한 장비를 직접 만들고, 직원들이 거주할 집도 직접 짓는 등 거대한 기업의 경계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것이 천천히 돌아가던 시절에 그와 같은 노력은 멋진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경제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생산 과정 전체를 소유하는 것은 기업에게는 부담이 될 뿐이다.
기술 정보 및 회계 정보가 전자적 방식을 통해 다량으로 교환됨에 따라서 대규모의 아웃소싱을 조율하는 비용은 점점 줄어들어왔다. 간단히 말해서 네트워크가 아웃소싱을 가능하게 하고 이익이 되고, 경쟁력 있게 만들어준다.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해나감에 따라서 그 비용은 매일매일 낮아지고 있고, 중앙 집중화된 기업에서는 누릴 수 없는 적응성에서의 이익, 즉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작업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필요한 작업을 재빨리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크다.
100% 네트워크화된 기업이란, 다른 독립적인 집단들과 네트워크 기술로 연결된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사무실을 이용하는 기업.
적응성 : 제품에서 서비스로 초점이 옮겨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자동화가 물리적 재생산의 비용을 계속해서 낮추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훌륭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시대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정보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네트워크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제품에 투자된 지식의 양에 따라 제품의 가치가 증가하고, 제품의 가치가 증가하면 그에 따라 지식을 낳는 네트워크의 가치 역시 증가한다.
네트워크 경제의 우려사항
l 우리는 이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l 우리의 통제력의 상당 부분을 잃어 버린다.
l 이 시스템은 최적화되기 어렵다.
우리가 극도로 복잡한 사물을 아무 결함 없이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분명한 것은 기업의 활동이 점점 더 복잡한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함 없는 복잡성을 창조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복잡한 시스템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연속적인 것과 불연속적인 것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산 네트워크, 그리고 대부분의 비비시스템들은 불연속적인 시스템이다.
어느날 갑자기 우르르 쾅 하고 무너진다. 시스템이 폭발하거나 뭔가 새로운 것이 창발한다!
일본의 고전적인 오류 방지 수단은 바보도 틀릴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객체들은 레고 블록과 같다. 그러나 이들은 제각기 아주 적은 양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
객체 지향 프로그램들은 소프트웨어에 미약한 분산된 지능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분산된 존재와 마찬가지로 오류에 대한 회복력이 뛰어나다. 빠르게 회복되고, 하부 단위를 조립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신경의 경로는 끊임없이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다. 최적화와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가재의 꼬리에 있는 신경세포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그 신경 회로가 어찌나 투박하고 조약한지를 놀라움과 함께 보고했다. 조금만 궁리를 해도 그보다 훨씬 더 경제적인 회로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보다 훨씬 중복이 많은 가재 꼬리의 신경 회로에는 결함이 없다.
무결함 소프트웨어가 치러야 할 대가는 과잉으로 설계되고, 과잉으로 구성되고, 지나치게 부풀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산의 효율성을 얻기 위해 실행의 효율성을 대가로 치루는 거래이다.
새로 떠오르는 네트워크 경제의 특성
분산된 중심
적응적 기술
유연 생산
맞춤형 대량 생산
산업 생태계
전 지구적 차원의 손익 계산
공진화하는 고객
지식 기반
공짜 대역폭
수확 체증 :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가진 것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누는 자가 더 갖게 될 것이다.
디지털 화폐
지하 전자 경제
네트워크 경제에서 고객은 더 빠른 속도와 더 많은 선택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한편 고객으로서 더 큰 책임을 갖는다. 공급자는 모든 기능이 더욱 분산화되고 고객과의 공생적 관계가 더욱 확대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무한한 의사소통의 혼란스러운 그물망 속에서 적절한 고객을 찾아내는 일이 새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중심 활동은 모든 것을 모든 것에 연결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대담한 과학자, 기술주의자, 경제학자, 철학자들이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을 방대하고 복잡한 망을 통해 서로 연결하는 길에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 거대한 망이 인공 세계를 관통해나감에 따라 우리는 그 망에서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 일별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갖고 있고, 영리하며, 진화하는 기계이다. 그것이 바로 신생물학 문명이다.
또한 네트워크 문화에서 지구 전체에 걸친 집단적 마음이 창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 집단적 마음은 컴퓨터와 자연, 예컨대 통신 기술과 인간 두뇌의 결합물이다. 이것은 또한 스스로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통치되는 무한한 형태의 거대한 복잡성이다. 인간은 전 지구적 집단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설계 자체가 부분으로 하여금 전체를 이해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집단 마음의 특정 생각,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은 통제할 수 없으며 우리의 이해 범위를 벗어날 것이다.
12. 전자 화폐
“중세에는 길드가 정보를 독점했습니다. 길드 바깥에서 누군가가 가죽이나 은 따위를 가공하려고 하면 왕의 군사들이 와서 다 때려부숴버렸죠. 왜냐하면 길드가 왕에게 특별 세금을 냈으니까요.
중세의 길드를 무너뜨린 것이 인쇄술입니다. 인쇄술이 도래하자 이제 누구든 가죽을 무두질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죠. 인쇄술의 시대에는 기업들이 특정 전문 지식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암호화 기술이 전문적 지식에 대한 기업의 독점을 침식해 들어갈 것입니다. 기업들은 비밀을 간직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파는 일이 너무나 쉬워질 테니까요..”
네트워크는 통제의 중심이 없고 명확한 경계도 없는 분산된 시스템이다. 경계가 없는 것을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만일 여러분이 단지 이메일로 소개한 이름만 아는 누군가와 사업상의 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그의 신원이 합법적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좋은 사회는 단순한 익명성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 온라인 문명은 온라인 익명성, 온라인 신원 증명, 온라인 평판, 온라인 신탁 소유자, 온라인 서명, 온라인 프라이버시, 온라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열린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사이퍼펑크의 목표는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는 사회에서 쓰이는 사람들 사이의 관습적 도구에 해당되는 디지털 도구를 만들어 공짜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암호화가 널리 퍼지게 되면 우리 사회의 추진력 중 하나인 경제 활동을 중앙 집중적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암화화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낳는다.
암호화가 언제나 승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망의 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어느 상원 의원이 이메일로 질문에 답변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답변 내용을 변조해서 뉴욕타임스에 투고한다면 어떨까요? 디지털 인증, 디지털 서명 등의 기술은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프라이버시 거래가 정부의 사무실이 아니라 시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분산된 열린 망의 네트워크에서는 중앙 집중적인 정부는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사물이 연결되어 있는지 연결되어 있지 않은지를 더 이상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전기의 사용에도 정액제를 밀어붙였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사용량에 대한 요금을 계산하는 것이 전기 사용량의 차이가 빚어내는 비용보다 더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 정책은 경제적으로 효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처방이 전기 계량기이다. 그런데 계량기는 성능이 변덕스럽고 실용적이지 못했다. 겨울에는 얼어붙었고 때로는 완전히 거꾸로 돌아갔고 고객들이 계량기를 읽을 수 없거나 회사의 계량기 검침원을 신뢰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계량기를 통하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전기를 구매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정보업계는 여전히 정보 계량기를 갖지 못한 상태이다.
암호화 계량기는 마치 도시 상수도처럼 정보를 자유롭게 흐르고 어디로든 퍼져나가게 하면서 동시에 사용 가능한 덩어리로 계량한다.
우리의 디지털 사회는 복제 기계의 슈퍼 네트워크를 이루어 왔다.
놀랍게도 한쪽 구석에서 창조된 정보는 다른 구석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길을 재빨리 찾아낸다. 우리의 과거의 경제는 희소한 상품 위에 구성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의 복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정보의 타고난 다산성과 싸워왔다. 우리는 거대한 병렬 복제 기계를 갖고서 복제 활동의 대부분을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금욕주의적 체제가 그렇듯 그와 같은 노력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free’, 즉 무료라는 의미에서 좀 더 미묘하게 ‘사슬이나 감옥과 같은 속박 없이’라는 의미로 변환되었다.
만일 사용자가 객체를 활성화할 때마다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프로그래머는 충분히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사람들은 정보 시대의 상품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어떤 유통 수단을 통해서든 자유롭게 얻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접근법을 콘텐츠의 초 유통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소프트웨어를 쉽게 복제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 되고 있지만 초유통은 그 점을 오히려 자산으로 만들어 준다. 소프트웨어 판매자들은 소프트웨어를 세상에 알리는 데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하지만 초유통은 소프트웨어를 세상에 내보내 스스로 자신을 광고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사람들은 아직 보지 않은 정보에 돈을 미리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막상 돈을 내고 봤더니 별로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일단 본 정보에 대해서도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신은 영화를 다 본 다음에 돈을 내라고 하면 내고 싶을까? 아마도 사람들이 미리 보지 않고도 기꺼이 구매하고자 하는 유일한 정보는 의료 지식이 아닐까 싶다. 사용자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어야 한다.
이 예견된 정보 경제와 네트워크 문화에는 여전히 한 가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주머니의 현금이 기관의 돈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형태를 벗어던지고 디지털화될 때 우리는 정보화된 화폐의 가장 심원한 결과를 경험할 것이다. 연산 기계가 기관 밖으로 나와 각 개인들이 그 기계에 연결되고서야 비로소 사회를 재구성하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 사이의 모든 소액 현금 거래가 디지털화되어야 비로소 전자 경제의 완전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직불 카드나 신용 카드의 궁극적 약점은 신문 가판대에서 어린이집에 이르기까지 앨리스가 구매하는 모든 상점마다 개인의 구매 기록을 남겨놓는 몹쓸 습관이다.
이것은 하나로 취합되어 너무나 간단히 그녀에 대한 매우 정확하고 극도로 효과적인 마케팅 자료로 탈바꿈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하드웨어적 격리는 전자 화폐가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어왔다. 또한 직불 카드는 개인 사이의 지불 수단이 되지 못한다.
세계 경제가 분산된 지식과 분산된 통제에 기초하고 있는 네트워크 세계에서 전자 화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암호화가 승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망의 멋대로 폭주하는 연결 경향에 맞서기 위해 꼭 필요한 대항력이기 때문이다. 망은 그대로 두면 모든 이들을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들을 모든 것들에 연결시켜 버릴 것이다. 망은 말한다. “무조건 연결시켜라!” 그에 대항하여 암호 기술은 말한다. “단절시켜라!” 어느 정도의 단절의 힘이 없다면 이 세계는 무차별적 연결과 선별되지 않은 정보로 과부하가 걸리고 얽히고 설킨 덩어리로 고착될 것이다.
네트워크 시스템이 낳은 꽉 막히고 정체된 지식과 데이터의 산사태를 암호 기술이 문명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3. 신의 게임
당신은 백성들에게 자동차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그러나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발견’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조종법이다.
기계들은 수많은 작은 행위자들에 의해 움직인다. 행위자들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호작용 하고, 우리가 오직 간접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결과를 낳는다.
이차적 동기를 모두 제거해버리면 모든 종류의 중독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심시티>는 게임으로서는 <심어스>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제품입니다. 왜냐하면 게임하는 사람이 변화를 줄 때마다 더욱 즉각적이고 명확한 되먹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 결과 게임하는 사람은 자신이 더 큰 통제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심시티>의 성공은 그것이 군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병렬적으로 활동하는 풍부하게 연결된 자율적이고 지역적인 행위자들의 집단, 그것이야말로 모든 비비시스템들이 기초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게임도 다 만들었는데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섬을 건설하는 쪽이 섬을 때려 부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 그 대답이었습니다. 곧 나는 새로운 도시를 창조하고 생명을 부여하는 데 매혹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먼저 맨 아래의 물과 땅의 지리적 기초를 만들고 그것이 도로, 교통 시설, 전화 시설 등의 하부 구조를 떠받치고 그것이 주민들이 사는 주택을 떠받치고 그것이 주민들을 떠받치고 주민들이 시장을 떠받치는 식이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하루 중 상당 부분을 하이퍼리얼리티 안에 푹 빠져 지낸다. 전화 대화, 텔레비전 시청, 컴퓨터 스크린, 라디오 청취 등은 모두 일종의 하이퍼리얼리티이다. 우리는 이러한 활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게임을 광적으로즐기는 47명에게 배틀테크에서 바꾸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현실감을 개선해야’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두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대신 대다수가 가격이 더 낮아지고, 소프트웨어가 안정적이고, 현재 요소들의 양을 더 늘려주기를(메크의 수를 더 많이, 영토를 더 넓게, 미사일을 더 많이) 바랐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시뮬레이션 세계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망의 요구이다. 계속해서 참여자를 늘려라.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될수록 나의 연결은 더욱 값진 것이 된다. 이 강박적 게임 참가자들이 환경의 시각적 해상도를 높이는 것보다 네트워크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쪽이 ‘현실감’을 더해준다고 느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실은 일차적으로 공진화하는 동력이다. 그리고 600만개의 픽셀이라는 사실은 단지 부차적인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신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면 적어도 창조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통제권을 버리고 불확실성을 끌어안아야 한다. 절대적 통제는 절대적으로 지루하다. 새로운 것, 예기치 않았던 것, 진정으로 신기한 것을 낳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진정한 놀라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통치의 권좌를 저 아래 군중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엄청난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신 역할 놀이에서 이기는 방법은 손에 쥔 것을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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