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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The Society of Mind

CHAPTER 11. 공간의 형상 [마음의 사회]

11.1 붉은색 보기

 

낱말은 의미를 갖는다. 당신이 '붉은'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당신의 성대는 당신의 두뇌에서 작동하는 '발음하는 행위자들'에게서 주어진 명령에 복종한다.

 

색을 인지 하는 기계는 목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기계는 색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짜임새, 형식, 그 외 너무나 많은 다른 요소들에 대한 의미를 갖지 않고서는 우리가 갖는 이미지나 사유의 질을 거의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성숙한 마음 사회의 모든 세부 사항을 재현해 낼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 그러한 복잡한 일들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그들 자신의 내부 세계를 탐색할 수 있게끔 하는 언어적인 책략 외에 다른 길이 없다.

 

11.2 공간의 형상

 

두뇌는 촉각을 갖지 않는다. 그 표면은 촉각을 느낄 수 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피부에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두뇌는 볼 수도 없다. 그저 눈에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세계로부터 두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눈과 귀, 피부로부터 들어오는 신경 다발들이다. 그러한 신경들로부터 들어오는 신호들이 어떻게 '외부 세계 내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일으키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는 외부 세계와 결코 그 어떤 직접적인 접촉도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두뇌 안에서 건립하는 세계에 대한 모형들을 다룬다.

 

당신의 귀를 만져라.  당신의 귀를 두 번, 그리고 또 당신의 코를 만져라.

 

'단일한 감각' 그 자체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데 반해, 비교 가능한 경우 말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수학에서 하나의 '완전한 점'을 어떻게 취급하는가를 비유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점의 형태에 관해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점은 형태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을 형태를 가진 것으로 여기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점들'이라 하듯이 둥근 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점의 크기가 언급되리라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점들은 정의상 전혀 크기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쨌든 '그 점들은 아주 작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상, 단일한 하나의 점에 관해 그것이 다른 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무시해버리면 그 점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그것들이 너무 단순해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점이 그 자체로 어디에 있는가를 말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어디'라는 것은 공간에서 다른 점들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점들이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고 다른 점들과의 관계에서만 현존한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근접성의 광범위한 사회 이상의 무엇이 아닌지를 물을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단일한 만짐'에 관해서라든가 그 어떤 단일한 감각-탐색의 행위자가 하는 일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둘 또는 그 이상의 피부의 만지는 관계들에 관해서는 말할 것이 많다. 

 

 

11.3 근접성

 

각각의 감각 경험은 많은 다른 감각기들의 활동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동일한 자극이 감각기들을 일깨우는 범위가 크면 클수록, 그 자극들이 산출하는 부분적인 정신 상태들은 더 많이 비슷해진다. 그리하여 그 자극들은 더 많이 유사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그것은 그 자극들이 유사한 정신적 결과들을 이끄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면, 적절하게 설계된 하나의 행위기구가 일종의 지도를 만들어, 피부 위에서 어느 지점들이 함께 모여 있는지를 나타낼 수 있다. 

 

지도를 만드는 행위기구는 위의 그림에서 서로 교차되어 생겨나는 일종의 교란을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아이에게 있어서, 피부를 넘어서 펼쳐지는 공간적인 세계에 관해 학습하는 것은 수년에 걸친 여행이라 할 것이다.

 

 

11.4 타고난 지리학

 

하나의 사물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지면 그 사물의 형태(shape)에 관해 알게 된다. 

계속되는 아이의 손동작은 피부 감각기의 신호들의 계열을 산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지도를 만드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이 신호들의 정보를 피부 지점들 중 어느 것에 가장 근접한가를 배우는 데 활용한다. 나중에는 지도를 만드는 행위자들의 층들이 더 많이 생기면서 피부의 어느 지점들이 어느 다른 지점들 사이에 놓여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공간 자체가 어떤 장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근접 관계들로 된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가 피부의 공간 구조를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이다. 이 모든 것은 수학의 기초 원리와 조화를 이룬다.

 

근접성에 관련된 국소적인 정보에 의거해 당신은 그 세계의 전반적인 배치를 그려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지점들의 짝들이 서로 가까이 있는가에 관한 힌트만으로 공간의 전반적인 지리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지도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게다가 두뇌가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조성되는 여러 층들은 마침내 여러 규모의 지도 계열들을 끌어모아 여러 세부적인 수준들을 재현할 수 있다.

 

'왜 우리 모두는 공간적인 외부 세계가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걸까?' 왜 각기 다른 사람들인데 공간을 다르게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는가?

 

 

11.5 유사한 것 감지하기

 

생각의 방식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장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맨 처음 우리 두뇌의 연결 회로가 어떤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 같은 미세한 특징들이 어떻게 작동하여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까? 우리의 생각은 가장 유사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해 주로 형성된다는 것이 그 답이다.

 

어떤 색깔들이 가장 닮아 보일까? 어떤 형태와 어떤 모양,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어떤 음색과 어떤 음높이가, 어떤 고통과 아픔이, 어떤 감정과 어떤 감각이 가장 유사하게 여겨질까? 이러한 판단은 정신이 성장하는 단계마다 크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가는 우리가 어떻게 분류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눈에서 작동하는 감각 검사기들도 붉음이 우리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없다.

 

우리의 붉음, 만짐, 또는 치통 등의 행위자들이 신호들을 두뇌에 보낼 때, 각각의 행위자 자체는 "내가 여기 있소." 하고서 말할 뿐이다. 그 신호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그 신호들이 우리가 갖추고 있는 다른 모든 행위기구들에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달려 있다. 

 

두뇌에 전달된 신호들의 '질'은 오로지 관계에 달려 있다.

당신의 치아가 아파할 수는 없다. (단지 신호들을 보낼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이 갖춘 상위 수준의 행위기구들이 그 신호들을 해석했을 때, 그때 당신만이 아파할 수 있다. 각각의 분리된 자극들은 가공되기 전에 각기 나름의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가공됨으로써 가공되기 전의 특징을 넘어서는 성격 또는 질을 갖는다. 그런데 가공됨으로써 갖는 성격 또는 질의 그 모든 다른 측면들이 어떤가는 전적으로 그 각각의 자극이 우리 마음의 다른 행위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달렸다.

 

 

11.6 중심적인 자아

 

우리는 어떻게 해서 피부의 배치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공간의 세계에 관해 배우게 되는 진전을 이루는 것일까?

 

'간단히 보다'라는 언뜻 듣기에 쉬워 보이는 어구에는 너무나도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숨겨져 있다. 당신이 하나의 물건을 바라볼 때, 그것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빛이 당신의 눈으로 들어와 거기에 있는 어떤 감각기들을 자극한다. 그러나 당신의 몸, 머리, 눈의 모든 움직임은 당신의 눈에 맺히는 영상에 격렬한 변화를 일으킨다. 모든 일들이 그렇게 재빨리 변할 때 어떻게 유용한 정보를 추출해 낼수 있을까?

 

두뇌가 발휘하는 그 놀라운 능력들은 다음의 경우와 유사하다. 하나의 사물은 방향을 달리 해서 보더라도 동일한 것으로 인지되는데, 이 사실은 아예 시각적으로 현존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가 공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일단 이 과정이 확립되면 그 네트워크는 계속 확장되어 새로운 장소들과 관계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천문학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세계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상상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여느 다른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정지해 있는 우주 속에 있다고 여기면서 그 우주 속에서 자신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 한다. 그 단계에 도달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심지어 사춘기가 되어서도 어떻게 해서 사물이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가를 상상하여 파악하는 능력들을 개선해 나간다.

 

 

11.7 예정된 학습

 

만약 행위기구가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하도록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것을 배운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이러한 유형의 활동을 '예정된 학습'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모든 아이들은 결국 음식에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다가가는-행위' 경험들의 역사를 통해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왜 두뇌는 지루한 학습 절차를 활용할까? 두뇌는 왜 유전적으로 건립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한 가지 이유는 학습이 상당히 경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각각의 분리된 신경세포로 하여금 정확하게 연결을 이루도록 강제하는 것은 거대한 유전 정보의 저장고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 반면에 덜 강제된 디자인의 결과로서 생겨난 어떤 불규칙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해독해 낼 수 있도록 고안된 학습 기계를 그때그때 지정해서 구성하는 데에는 훨씬 더 적은 정보가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지닌 공간 개념은 획득된 것인가, 아니면 타고난 것인가?"라고 묻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타고난 것에 의해 결정된 절차들에 따라 배워 나가는 행위기구들을 활용함으로써 공간 개념을 획득한다. 이 행위기구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

 

복잡한 행위기구는 타고난 유전자들에 의해 직접 건립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 각자는 각기 나름으로 여러 비교들을 표상하는 방법들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똑같은 최종적인 성과에 도달한다. 추정컨대, 유전적인 지침들이 대략 그러한 시점과 장소에 새로운 층들의 행위자들을 공급함으로써 이를 도와주었음에 틀림없다.

 

 

11.8 반쪽-두뇌들

 

우리의 마음은 짝을 이루는 대립되는 원리가 만나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한쪽에 논리적인 것이 다른 쪽의 비논리적인 것을 마주하여 서 있다. 좌뇌는 합리적이고, 우뇌는 정서적이다. 이러한 사이비과학의 도식에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정신세계를 복숭아처럼 산뜻하게 두 쪽으로 잘라낼 수 있다고 하는 케케묵은 생각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각각의 두뇌가 단지 두 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지 않고 많은 부분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좌뇌와 우뇌 사이의 교차 연결들이 파괴되었을 때를 가정한 이론

우리는 생의 초기에 양쪽에 유사한 행위기구들을 갖고서 출발한다. 나중에 우리가 더욱 복잡하게 성장함에 따라 유전적인 효과와 환경적인 효과가 조합을 이루면서 양쪽 각각이 서로 통제하게 된다.

 

 

11.9 역기 이론

 

각각의 낱말이 세계의 어떤 측면을 대립적인 극으로 분할하는 것은 우리 언어 습관의 한 특징이다.

 

물리적인 - 정신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