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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극장 01~03

 

 

"내 활동을 키워주지도 않고

내게 직접 활기를 불어넣지도 않으면서

단지 나를 가르치려고만 하는 모든 것을

나는 증오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서문 마음의 극장, 정신의 미궁

니체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듯이 앎의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했다.

칸트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해 망망대해 너머에 남겨두었던 사물 자체의 본모습을, 다시 말해 이 세계가 숨겨둔 '비밀'을 어떻게든 알아내야고야 말겠다는 투지로 불탄다.

 

"우리는 대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건너온 다리를 태워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뒤에 남아 있는 대지까지 불살라버렸다! 자, 작은 배여, 조심하라. 대양이 너를 도처에서 둘러싸고 있다." <즐거운 학문>

 

니체는 칸트가 안전하게 머물던 순수 지성의 섬을 불살라버리고 무서운 대양으로 배를 띄운다. 칸트의 섬에 남아 있어서는 삶의 비밀을 발견할 수도 없고 삶의 진수를 향유할 수도 없다. 편안하게 늙어 죽어가기를 원한다면 남아 있어라. 그러나 삶이 감추어둔 것을 찾아내고 정복의 기쁨을 느끼려거든 모험에 뛰어들어라.

 

"그러므로 나를 믿어라! 존재를 최대한 풍요롭게 실천하고 최대한 만끽하기 위한 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는 대양으로 너의 배를 띄워라!" <즐거운 학문>

 

"너 앎을 찾는 자여! 지배자나 소유자가 될 수 없다면, 약탈자, 정복자가 되어라." <즐거운 학문>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걸맞은 적을 찾아내어 일전을 벌여야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권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전투다. 내가 너희들에게 권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승리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명분은 전쟁까지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고 너희들은 말하려는가? 그러나 나는 말한다. 훌륭한 전쟁은 모든 명분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도록 하라! 오랜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사상의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스는 것은 광기다." <아침놀>

 

새로운 사유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그러므로 기존 질서의 반격과 응징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이 새로 찾아낸 사유가 진리가 아니라면 어떡할 것인가.

 

"모든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인간들이 겪었을 가장 쓰라리면서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누가 감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아침놀>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 척도(절도)를 세우기에는 너무나 의지가 약하고 너무나 퇴락한 자들이 욕구와 싸울 때, 그들은 거세외 멸절이라는 수단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우상의 황혼>

 

강한 정신은 열정을 근절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최대한 끌어올려 극단에 이르게 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무서운 의지로 절도를 부여하는 것이다. 

 

니체는 고통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고 성장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고통이 지나고 나면 니체는 다시 새로운 삶을 의욕했고, 창조의 의지로 불탔다.

영웅주의는 우리를 통계학의 숫자로 환원해버리는 이 평균성의 세계를 뚫고 솟구치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다.

 

니체의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 안에 있는 창조적 힘을 자극한다. 

니체의 영웅주의는 한편으로는 자기 정복과 자기 창조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정복과 세계 창조로 나타난다.

 

니체에게 창조란 무엇일까?

"나는 창조하는 자가 아닌 한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모른다고 가르침으로써 그 졸음을 물리쳤다. 창조하는 자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창조해내는 자, 이 대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자다. 바로 그가 사물 안에서 선과 악이라는 성질을 창조해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이 세상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한 걸음도 순응하지 말라!"

 

"조국에 매여서는 안된다. 연민에 매여서는 안 된다. 학문에 매여서는 안 된다. 자신의 미덕에 매여서는 안 된다." <선악의 저편>

 

승화란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을 사회가 용인할 만한 것들로 변형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가 수용하지 않는 파괴적 열정과 어두운 충동을 예술의 형식으로 바꾸어 표현할 때 이 변형을 두고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주판치치가 말하는 승화는 

승화의 진정한 기능은 어두운 열정과 충동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는 무대를 창조하는 것이다. 승화의 무대는 그동안 가치 있다고 인정받지 못했던 것들, 우리의 현실 원칙이 그 가치를 평가하지 않았던 것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도덕과 비도덕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고, 그리하여 기존의 가치들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세워 보옂는 것이 승화의 무대인 것이다. 

사회가 '위험하다'고 규정하는 욕망들 자체를 다른 눈으로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무대 공간을 창조하는 것, 그리고 그 무대 공간에서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승화다.

 

크레온의 국법이라는 기존 가치에 맞서 안티고네의 무분별한 열정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공간의 창조가 없었더라면, 안티고네의 열정은 아무것도 환기시키지 못하고 아무런 새로운 것도 창출하지 못한 채 그저 무분별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열정이 새로운 공간 속에 놓여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될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판치치가 라캉에게서 찾아낸 승화의 개념이다.

 

니체의 작품이 만들어낸 공간은 현실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파괴적이고 비도덕적인 열정들이 날뛰는 공간이다. 비도덕적인 것들이 비도덕적인 것 그대로 이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공간에 함께 입회하여 비도덕적인 것들과 대면하고 그것들의 가치를 재평가할 기회를 얻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상연장이 시민과 관객의 동참과 몰입 속에서 삶과 운명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듯이...

 

"나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 이 말은 니체의 혼을 걸고 전심전력을 다해 썼음을 알려준다.

 

"가장 나쁜 독자는 약탈하는 군인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 몇 가지만 취하고, 나머지는 더럽히고 엉클어뜨리며 전체를 모독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이 세상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한 걸음도 순응하지 말라!"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궁극적 해방자다. 이 고통만이 우리를 최후의 깊이에 도달하게 한다." <즐거운 학문>

 

 

 

PART 1 젊은 철학자

01 쇼펜하우어 숭배자

"만약 네 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하지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고 싶다면, 질문하라."

 

그가 쓴 첫 책이 '자서전'이었다. 니체에게 '나'는 철학의 주제였고 과제였고 목표였다.

슐포르타 시절에 니체의 삶과 정신을 규정할 본질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전 연구에 파묻힌 삶이 없었더라면 니체의 사상도 관점도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니체에게 고전 문헌은 사유의 원천이었고 사유의 무기였다.

 

슈만이나 쇼팽 같은 전통 음악에 편안함을 느꼈던 니체에게 바그너는 바로 받아들여 즐기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음악이었을 것이다.

지식에 대한 니체의 욕망이 폭발한 곳도 슐포르타였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관습과 편견의 굴레에 매여 있어서, 그때의 인상으로 지성의 발전이 가로막히고 종교와 기독교에 대해서 당파심을 벗어나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각을 취하려 할 때는 마치 죄를 범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시도는 하나의 과제다. 단지 몇 주 만에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과제다. 나침반도, 조타수도 없이 의심의 바다로 배를 띄우는 것은 미숙한 인간들에게는 죽음과 파멸로 나아가는 길이다. <운명과 역사>

 

'관습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각'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일이 '죽음과 파멸'의 위험을 동반하는 거대한 모험, 일생이 걸릴지도 모를 모험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볼 수 있다.

 

만일 신이 없다면, 만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만일 성령과 계시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종교적 환상을 빼고 나면 어떤 실제적인 것이 남을 것인가? 신을 통해서 모든 것이 의미와 목적을 얻게 되는데, 만일 신이 사라진다면 자연과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의미와 목적이 사라지고 만다. 신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삶의 의미와 목적'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야말로 니체의 가장 절실한,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기독교가 부정되고 기독교 신이 퇴출된다면 그동안 유럽의 정신과 문화를 지탱했던 토대가 무너진다는 뜻을 품고 있다. 니체는 기독교 붕괴와 신의 죽음이 결정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절감하게 된다. 니체의 후기 철학은 바로 이 문제와 벌인 집요한 대결이었다.

 

니체는 <운명의 역사>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정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답한다. 삶을 창조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을 상승시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니체는 자기 삶을 창조하고 자기 삶을 예술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바이런의 삶의 연출에 열광했다.

 

니체가 열광했던 인물들을 살펴보면, 횔덜린의 경우에는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숨겨진 힘이 있고, 바이런의 경우에는 예술가적인 삶을 밀고 나가는 힘이 있으며, 나폴레옹의 경우에는 마력과도 같은 정치적 힘이 있다. 이 모든 경우에 공통으로 '힘'이 등장한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이 힘이 뜻하는 바다. 성숙기의 니체는 이 세 사람에게서 공히 나타나는 힘을 삶 속에서, 특히 사상 속에서 관철하려 분투한다.

 

사상의 힘으로 세상을 태워버린다는 환상과 욕망이 니체 안에서 벌써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해부에 대한 욕망, 곧 한 인간의 머리와 육체를 철저하게 파헤쳐 알고자 하는 욕망도 드러나 있다. 독한 '앎의 의지'다. 이 앎의 의지는 가공할 폭력성으로 니체 삶 전체를 관통하게 될 것이다.

 

니체의 삶을 요약하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투쟁일 것이다. 아니, 투쟁보다는 전쟁일 것이다.

니체는 세계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의 무기는 사상이었다. 니체는 삶을 끝없는 상승 혹은 도약으로 보았다. 

니체는 한없이 높이 올라가고자 했고, 그러자면 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의 모든 저작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것이 이 상승 의지다. 상승은 초월이고 자유다.

 

우리가 배워온 모든 것들, 우리 안에 점차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 주위 사람들이나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 게다가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북돋아 주는 것들, 이러한 것들을 진리라고 간단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것이 정말로 정신의 독립에 따르는 위험 속에서 용기가 꺾이고 양심마저 흔들리는 위기를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항상 진리와 미와 선을 목표로 삼아 관습과 투쟁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까?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과 세계와 화해에 대한 특정한 견해에 도달하는 것만이 정말로 가장 중요한 일일까? 혹, 진정한 탐구자는 자신의 물음이 가져올 결과에 상관없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가 물음을 던질 때 그것이 휴식과 평화와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실, 그것이 극도로 추악하고 불쾌할지라도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은총을 주는 것은 믿음이지, 믿음 뒤에 있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다. 모든 진실한 믿음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믿을을 지닌 자가 믿음 안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을 얻게 해주지. 그러나 진실한 믿음은 객관적 진리를 입증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길이 나뉜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보을 원한다면, 믿어라. 하지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고 싶다면, 질문하라. 

 

니체는 진리를 향해 나아갈수록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추악하고 불쾌한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 추악한 것들과 함께 끝까지 간다. 

 

니체에게 일상적인 삶은 무의미했으며, 일상적 관계는 아무런 자극도 관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지적인 자극, 창조적 충동, 삶을 흔들어놓는 정신적 도취가 아니면 그를 오래 붙잡아둘 수 없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

쇼펜하우어는 자신이야말로 칸트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칸트의 본체계와 현상계, 즉 '사물 자체'와 '현상'은 쇼펜하우어에게 와서 '의지의 세계'와 '표상의 세계'가 됐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현상 세계가 '표상의 세계'이며, 인식할 수도 지각할 수도 없는 '사물 자체'의 세계가 바로 '의지의 세계'다. 쇼펜하우어에게 의지의 세계가 본질적인 세계이며, 표상의 세계는 표면적인 세계이다. 이 표상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지성 활동이다. 지성은 이차적이며, 본체계에 속하는 의지가 일차적이다. 지성과 의지는 절대적으로 대립한다.

 

의지는 생명의 일차적인 힘이고 우주를 운행시키며, 문자 그대로 '세계를 돌아가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중력과 같은 물리적 힘, 동물의 본능들, 식물계의 맹목적 충동들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지성은 '의지'의 도구로 진화해왔으며, 따라서 의지에 비해 이차적이다. 그러나 개체들은 지성을 발전시켜 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의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지성은 쇼펜하우어는 '천재'라고 부른다. 

 

개별적 의지는 악이며 부정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판단에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단일한 본체적 세계인 의지는 '개별화 원리'에 따라 조각조각 나뉘어 다수의 '의지들'이 된다. 이 개별 의지로서 개체들은 가능한 한 오래 존속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의지란 바꿔 말하면, 삶에 대한 욕망, 곧 살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체는 모든 사물들과 모든 사람들을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마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사물들과 사람들을 이용하낟. 그러지만 다른 모든 사물들과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느끼기 때문에 결과는 보편적인 갈등이다. 갈등은 불행을 양산하며, 의지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고통이 있다. 의지의 본성은 노력하는 것이며, 이러한 노력은 언제나 투쟁을 양산하고, 불행은 언제나 행복을 능가할 것이다. 

 

삶이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며, 이런 사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정'이다. 곧 그는 '의지를 부정하며',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직 삶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행자나 성자가 된다. 죽음만이 유일하게 실제적인 선이다. 따라서 죽음 이전에 가능한 좋은 삶이란 천재의 한 유형인 성자의 삶이다. 그에게는 '오직 인식만이 남고 의지는 사라진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이며, 이 지점에서 그의 철학은 다른 철학들과 구별된다.

 

니체는 10년이 지나서야 이 철학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났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사상에서 니체가 찾아낸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귀족주의였다.

우연으로 점철된 문헌학 공부가 젊은 시절을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니체철학은 그토록 독특한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의 양심은 뭐라고 말하느냐? '너는 반드시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즐거운 학문>

 

<이 사람을 보라>의 부제로 사용한 것도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였다. 니체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자 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했으며,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런 충동 혹은 노력 끝에 그가 도달하고자 한 것이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니체의 일생이었다.

 

자신이 쇼펜하우어에게 긍정적으로 느꼈던 것들을 바그너에게서도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감히 이 음악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정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네. 내 몸의 모든 신경과 근육이 떨렸다네. 나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의 전주곡을 들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지속적인 황홀경을 지금껏 경험해본 적이 없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음악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다. 음악만이 세계의 본질인 '의지' 자체와 직접 교감하며 의지 자체를 직접 드러내고 구현한다고 강조했다. 

 

음악은 결코 다른 예술들처럼 이념의 모상인 것이 아니라 '의지' 전체의 '직접적인' 객관화와 모사이며, 그런 점에서 세계 그 자체와 같고, 곧 다양하게 현상하여 개체의 세계가 되는 이념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의 효과는 다른 예술들의 효과보다 훨씬 강하고 감명 깊은 것이다. 다른 예술은 그림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음악은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결코 현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현상의 내면적인 본질, 즉 의지 그 자체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음악은 이것저것의 개별적인 일정한 기쁨이나, 이것저것의 비애, 고통, 공포, 환희, 흥겨움, 평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 '그 자체', 비애 '그 자체', 고통 '그 자체', 공포 '그 자체', 환희 '그 자체', 흥겨움 '그 자체'를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추호의 추가물도 없이 따라서 또한 동기도 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렇게 정제된 진수로 이들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한다. 우리들의 공상이 아주 쉽게 음악에 의해 자극되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활발하게 움직여 직접 우리들에게 말을 해오는 영혼의 세계를 만들어, 그 세계에 살과 뼈를 붙이는 것, 그리하여 유사한 실례를 구체화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것이 언어를 동반하는 노래의 기원, 결국에는 오페라의 기원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니체를 특히 괴롭힌 것은 문헌학이라는 따분한 실증적 학문이 창조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었다. 그가 보기에 우리를 계몽시키는 사상은 소수의 천재적인 사상가들이 제시해주는데, 이런 창조적 사상가는 문헌학적이고 역사학적인 작업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창조적인 정신의 불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헌학에 종사하는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흥미로운 대상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래야만 고전적인 사상으로부터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것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전래의 사상이나 사건, 그리고 인물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시적인 작업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친구 로데에게 보낸 편지에 니체의 복잡한 심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간이 됐네.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찾아왔고, 내일 아침이면 나는 멀리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새롭고 낯선 일자리로, 의무와 일이 있는 까다롭고 답답한 환경으로 출발해야만 하네, 다시 한 번 나는 안녕을 고하네. 자유롭고 구속 없는 황금 같은 시간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됐고, 엄격한 여신과 같은 매일매일의 의무가 지배하기 시작하네, .... 이제 나는 속물이 되어야 하네! ..... 직위와 영예는 값을 치르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네. 유일한 문제는 그 속박이 강철로 되어 있느냐, 실오라기 하나 정도냐 하는 것이지, 그리고 나에겐 필요하다면 그 결합을 끊을 수 있는 용기가 여전히 남아 있네.

 

 

 

02 바그너의 사도

"학문과 예술과 철학이 지금 내 안에서 함께 자라고 있으니

언젠가 나는 켄타우로스를 탄새시키게 될 걸세."

 

니체는 바젤의시민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경험은 하나의 깨침이었다. 니체는 인간의 본성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위대함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그는 천재와 의지의 강인함이 의미하는 바를 배웠고, 자신이 생생한 느낌 없이 줄곧 사용했던 표현들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 지상에 출현한 가장 변덕스럽고 규정하기 힘든 사람 가운데 하나인 바그너를 가까이에서 관찰함으로써 니체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거대한 예술 작품들이, 본질적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욕구, 곧 타인에 대한 지배 욕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권력의지' 이론의 맹아가 된 결정적인 통찰을 얻었다."

 

나는 그 쇼펜하우어에게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저 교육자와 철학자를 발견했음을 예감했다. 그렇지만 단지 책으로 발견했을 뿐이었다. 바로 그 점이 커다란 단점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는 책을 샅샅이 통독하고 생생한 인간을 상상해보려 애썼다. <반시대적 고찰>

 

바그너를 만나고서야 니체는 그렇게 관념으로만 존재했던 쇼펜하우어적 천재가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 말 걸어오는 것을 느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 철학에 탐닉하듯 바그너라는 인간에게 탐닉했다.

 

바쿠닌의 과격성은 전류처럼 바그너 내부의 과격성을 자극했다.

"나는 이것이 모든것과 모든 사람을 없애겠다고 하는 바쿠닌의 미치광이 같고 어린아이 같은 소원이 바그너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바쿠닌은 바그너의 무의식을, 무의식 내부의 파괴 욕망을 자극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태워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다는 광포한 열망, 거의 무의식적인 파괴와 창조의 의지, 바로 이런 의지를,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의지를 니체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과 가장 닮은 자에게 끌리는 법이다. 자신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의 무의식적 욕망을 닮은 자, 그 욕망을 건드리는 자에게 매혹된다. 바쿠닌과 바그너는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과격했지만, 니체의 경우엔 오직 사상 속에서만, 글 속에서만, 자신이 쓴 책 속에서만 과격했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된 것은 바그너 생애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동안 나는 일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고 9월 26일에 <라인의 황금>의 정서된 초고를 완성했다. 평정하고 고요한 내 집에서 이제 나는 책 한 권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의 연구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 책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였다. 

 

살아오면서 위대한 열정이 일깨워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처럼 행동할것이고, 무엇보다도 먼저 쇼펜하우어 체계의 최종 결론을 읽으려고 할 것이다. 그가 미학을 다룬 방식, 특히 음악에 대한 놀랍고도 중요한 개념은 내게 아주 흡족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가 저작의 정점에 두는 도덕 원리에서는 불안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세계와 상대할 때 개인을 제약하는 데서 구원받을 진정한 수단은 의지의 파괴와 완전한 자기 부정뿐이라고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철학 속에서 이른바 '자유로운 개인'을 대표하는 정치적,사회적 선동을 위한 정당성을 찾으려는 이들이 섭취할 자양분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여기서 요구하는 바는 인간적 인격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방법을 철저하게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이 주장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즐거운' 그리스식 세계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나를  더 깊이 숙고하게 만든 것은 헤르베크였다. 그는 외형적 세계의 본질적인 무를 꿰뚫어보는 이 직관이 모든 비극의 뿌리에 놓여 있으며, 모든 위대한 시인과 위인까지도 그것을 직관적으로 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 니벨룽 시를 보고, 놀랍게도 지금 내가 이론적으로 도저히 소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쇼펜하우어의 바로 그 내용이 내가 갖고 있던 시적 개념 속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게 익숙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에야 나는 나의 보탄(니벨룽의 반지의 신들의 왕)을 이해하게 되었고, 큰 충격 속에서 쇼펜하우어 책을 더 면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 책은 내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고, 그다음 해 여름에는 벌써 그것을 네 번째 읽고 있었다. 그것이 점진적으로 내게 끼친 영향은 엄청나게 컸으며, 어느 모로 보든 나머지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바그너 자서전>

 

 이제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쇼펜하우어의 철학 원리를 활용했다.

 

니체는 바그너의 그 의지가 예술 영역에서 나타나는 방식으로 눈을 돌린다.

 

그의 삶을 지배하는 생각, 즉 비교할 수 없는 영향, 모든 예술의 최대 영향이 바로 극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내부에서 싹텄을 때, 그런 생각으로 그의 존재는 대단히 격렬하게 격앙되었다. 이것으로 그의 계속된 욕망과 행위에 관한 분명하고도 명백한 결단이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은 처음에는 단지 유혹적인 형태로서, 즉 지칠줄 모르고 권력과 명예를 갈망하는 저 어두운 개인적 의지의 표현으로서 나타났다. 

 

영향, 비할 데 없는 영향, 무엇을 통해서? 누구에게? 이것이 그때부터 그의 머리와 심장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고 탐구였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예술가도 해내지 못했던 만큼 승리하고 정복하고자 했고, 또한 자신을 그토록 어둡게 내몰았던 저 강압적인 전지전능함에 단숨에 도달하고자 했다. 

 

극적인 합창이 고양될 때마다 거대한 대중에 의해 생산되는 저 영혼의 광포한  폭풍우, 숭고하고 완전하고 자신을 잊은 듯 갑잡스럽게 퍼져가는 저 마음의 도취, 이것이 바로 바그너의 고유한 경험과 느낌의 반향이었고 거기서 그는 최고의 권력과 영향에 대한 불타는 희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대형 오페라를 자신의 지배적 사상을 표현해낼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했다. 그의 욕망은 대형 오페라를 갈망하게 했고, 그의 시선은 오페라의 고향을 향해 있었다. <반시대적 고찰>

 

니체는 바그너라는 인간을 통해 권력의지의 실체, 살아 움직이는 권력의지를 보았다.

 

자기를 지배하는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 예술가는 일부러 그렇게 하려 하지도 않는데 모든 다른 예술가를 자기에게 복종시킨다. 복종자들, 즉 그의 친구와 신봉자는 그에게 위험이나 제약이 되지 않는다. 이와 하찮은 인물은 친구에게 의지하려 하기 때문에 친구에 의해 자유를 상실한다. 다음과 같은 점이 아주 놀랍게 여겨진다. 즉 바그너는 그 어떤 당파도 만들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예술의 단계마다, 언뜻 보기에 그를 그 단계에 붙잡아두기 위해서였던 듯, 일군의 추종자들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항상 그들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으며 결코 구속받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길은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한 개인이 처음부터 그와 동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그 길은 이상하고도 험난했기 때문에, 가장 충실한 자도 한 번은 숨을 헐떡그렸을 정도다. ...... 바그너는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반감을 가장 많이 품고 있던 자마저도 예속시켜버렸다. <반시대적 고찰>

 

 바그너는 니체가 자신의 음악 사업을 철학적으로 지원하고 보증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애국심은 그의 청년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동기들 중 하나였다.

 

전쟁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분출로 보았고,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느낌을 체험하려 했다는 것이다. 끔찍한 존재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진실의 순간을 접해보고자 열망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평화의 세계가 아니라 전쟁의 세계가 존재의 본질, 삶의 진실을 더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