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좋아하는 책들

인간 사물 동맹 #1 프롤로그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래프, 설계도, 표본, 표준, 기관, 병균과 같은 '비인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 간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비인간과 어떤 동맹을 맺는가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형성이 '번역'(translation)이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테크노사이언스는 비인간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바꾸어주는 인간의 활동이다. 더 많은 행위자들을 포함하고 더 오래 지속되는 네트워크를 건설한 자가 그만큼의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기술은 권력을 생성하는 데, 따라서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테크노사이언스의 핵심은 인간-비인간으로 구성된 세상을 움직이기 쉽고 표준화된 지식 요소로 바꾸는 작업이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만들어지는 변덕스러운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실패한 기술과 사회적 요소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흥미로운 성과를 냈고, 불확실이고 유동적인 세상을 분석하기를 원하는 의료사회학, 지리학, 조직이론, 경영학, 정보기술이론, 이론금융학 등으로 점차 확산되었다.

 

1장 7가지 테제로 이해하는 ANT(actor-network theory)

하나, ANT는 경계 넘기를 꾀한다

유사존재, 유사주체, 매개자와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단어와 개념은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무력화하는 효과를 위해 고안된 기구들이다. ANT는 사회가 과학 기술을 구성한다는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ANT가 묘사하는 세상은 복잡하고, 항상 요동치며, 서로 얽혀 있고,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면서 변화하는 잡종적인 세상이다.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잡종적인 존재들에 힘입어 자연, 사회, 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만들면서 동시에 구성된다.

 

둘, ANT는 비인간에 적극적 역할을 부여한다

ANT가 경계를 부정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것은 경계를 무력화하는 비인간 존재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은 비인간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이렇게 생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종류의 비인간을 동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이미 비인간과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비인간의 복합체이다.

 

테크노사이언스는 인간 행위자가 비인간 행위자를 이해하고, 조정하며,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수단이다. ANT에서 비인간은 인간과 마찬가지 행위자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위를 바꾸는 것처럼, 비인간도 우리 인간의 행위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의 행위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ANT의 행위자는 개인, 그룹, 조직처럼 사회과학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행위자 개념과는 다르다. 

 

셋, ANT의 행위자는 곧 네트워크이다

행위를 하는 '나'라는 인간 행위자를 생각해보자. 나는 나를 만드는 숱한 비인간 행위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메모를 보면서 컴퓨터 스크린을 주시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나는 내가 파악한 ANT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고 있는 중인데, 이는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이 없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책은 내 이력의 일부가 되며, ANT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을 만들어내고,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를 새롭게 구성한다. 지금의 나는 내게 연결되어 있는 숱한 인간 행위자, 비인간 행위자의 이종적인 네트워크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나의 행위능력이란 나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숱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관계적 효과'로 볼 수 있다.

 

내가 그러하듯이 비인간 행위자들도 이종적인 네트워크이다. 자동차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인 엔진이 발명되어야 했다. 엔진을 만들기까지에는 숱한 발명가들이 관여했으며, 여기에 열역학 지식과 이 지식을 만든 과학자들이 기여했다. 발명가는 연료를 주입하는 카뷰레이터를 만들어 내연기관과 연결하고 여기에 자동차 바디를 얹어서 지금의 자동차의 원형을 만들었다. 헨리 포드는 수백 개의 특수 공작기계와 수천 명의 노동자를 컨베이어 벨트로 엮어서 수작업으로 생산되던 자동차를 대량생산으로 조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하나하나의 과정은 숱한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

 

ANT에서는 행위자와 행위소를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행위자는 행위소에 네트워크의 효과로 인한 여러 속성이 덧붙여진 존재를 의미한다. 또 ANT에서는 이종적인 네트워크가 하나의 행위자나 대상으로 축약되는 것을 결절(punctualization)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해서 하나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블랙박스라고 부른다. ANT는 사람들이 블랙박스의 내용 속에서 원래의 네트워크를 보지 못하고 이것을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점을 주목한다. 블랙박스가 더 닫힌 것이 될수록, 즉 더 무관심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그 블랙박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의 엔진이 갑자기 정지하면 운전자는 그 차를 더 이상 하나의 블랙박스로 보지 않고, 이것이 숱한 부품과 이종적인 네트워크들로 구성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블랙박스화된 대상이 다시 원래의 네트워크로 펼쳐지는 속성을 네트워크의 가역성이라고 하며, 이것이 원래 네트워크로 펼쳐지지 않을 때의 속성을 비가역성이라고 한다.

 

넷, 네트워크 건설 과정이 번역(translation)이며, 번역을 이해하는 것이 ANT의 핵심이다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는 역동적이고, 소멸되기 쉬우며, 이종적이다. 네트워크에는 상이한 인간만이 아니라 상이한 비인간들이 함께 공존하며, 이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는 끊임없이 타협의 과정을 거치며 절충된다. 따라서 행위자네트워크는 항상 불안하고 불안정적이며, 소멸되기 쉽다. 네트워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신의 특성을 재정의한다. 이를 유지하고 확산하는 데에는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며, 이러한 전략을 잘 작동시킨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에 비해서 더 큰 권력을 얻게 된다. 

 

서로 다른 행위자들의 협상에는 이들을 중재하는 요소가 있게 마련인데, ANT는 중재의 과정에서 자신도 변화하는 중재자를 매개자로, 자신은 변하지 않고 중재만을 담당하는 것을 중간자로 구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번역은 행위자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과정으로, ANT의 '꽃'이다. 원래 번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풀이해내는(치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과정은 다른 두 개의 언어를 동등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어떤 두 언어도 동일해질 수는 없으며, 번역 과정에서 두 언어의 차이는 항상 새롭게 만들어진다. 즉 번역은 같게 만드는 동시에 차이를 창조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ANT에서도 번역의 햄심은 한 행위자의 이해나 의도를 다른 행위자의 언어로 치환하기 위한 프레임을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다른 행위자들의 의도가 결코 완벽하게 같아질 수는 없고, 같아지는 순간에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낸다. 번역, 즉 네트워크의 건설은 결과가 아니라 끝없는 과정이며,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번역의 과정은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창조적파괴, 혁신, 엔트로피를 낮추는 과정)  한 행위자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이미 유지하던 네트워크를 끊어버리고, 이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유혹해서 다른 요소들과 결합시키며, 이들이 다시 떨어져 나가려는 것을 막으면서 이종적인 연결망을 하나의 행위자처럼 보이도록 한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이를 수행한 소수의 행위자는 네트워크에 동원된 다수의 행위자를 대변하는 권리를 갖게 되며, 이전에 비해서 더 큰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성공적인 번역 과정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며, 왜 세상에 더 큰 권력을 가진 행위자들이 존재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같은 네트워크 속에서 권력을 가진 행위자와 그렇지 못한 행위자들은 점유하는 위치가 다른데, 전자가 더 큰 네트워크를 동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큰 네트워크란 지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더 많은 행위자가 더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ANT 이론가 미셸 칼롱은 번역이 4개의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는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들을 정의하고 이들의 문제를 떠 맡으며 기존의 네트워크를 교란시키는 '문제제기', 다른 행위자들을 기존의 네트워크에서 분리하고 이들의 관심을 끌면서 새로운 협상을 진행하는 '관심끌기', 다른 행위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주어진 역할을 맡게 하는 '등록하기',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면서 자신의 네트워크로 포함시키는 '동원하기' 등의 과정이다. 물론 이러한 단계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는 경우도 있다.

 

한 행위자가 기존의 네트워크를 교란시키고 다른 행위자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들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다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상에서 반드시 거쳐 가게 함으로써 행위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존재를 '의무통과점'이라고 한다. 또 번역의 과정에서는 기록을 하고, 이런 기록이 결과나 행위자를 여기저기로 이동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다, 이를 치환이라고 한다.

 

이러한 번역의 전략을 관장하는 지점이 한 곳에 있을 수 있는데, 이때 이 지점은 '계산의 중심' 혹은 '번역의 중심'이라 불린다. 번역의 중심에 위치한 행위자는 멀리 떨어져 있는 행위자들에 대해 장거리 지배력을 행사하는데, 이럴 때 지리적으로 먼 거리를 쉽게 돌아다니면서 번역의 중심이 지배력을 유지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불변의 가동물'이라고 한다.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역할을 부여한다. 이렇게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들에게 시키는 일의 목록은 문서로 기록될 수도 있고, 기계의 구조 속에 체화될 수도 있고, 네트워크의 배열에 숨겨질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의 목록을 ANT에서는 기입(inscription)이라고 한다. 

 

ANT가 과학자의 연구를 분석할 때 과학자의 쓰는(inscribing) 행위와 그 결과에 주목하는 것은, 과학자가 무엇을 쓰는 과정이 결국에는 실험실 안팎의 행위자들에게 나름대로의 역할을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논문에는 과학자가 이종적인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를 적절하게 네트워킹한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비슷한 의미로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혁신적인 인공물(제품, 아이디어)을 만드는 행위는 그 인공물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자신의 목표에 따라서 원하는 방식대로 배열(조립)하는 일종의 기입행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입 때문에 비인간 행위자는 인간 행위자를 포함한 다른 행위자들에 대해 이렇게 하라, 또 이렇게 하지 말라는 '처방'을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꼭 기입한 대로 처방이 나오는 것은 아닌데, 인공물(제품, 아이디어)은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발적 현상, 예측하지 못한 결과) 새로운 역할이 나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네트워크와의 결합이 중요한것 같다. 다층구조를 가짐으로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값이 나오는 현상과도 비슷. 뇌가 동작하는 방식이나 유전자가 동작하는 방식처럼

 

기술과 같은 인공물은 죽은 존재가 아니라 그 정체성이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ANT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스트 연구자 도너 해러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ANT에서 기술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인 것이다.

 

다섯, 네트워크를 잘 기술(description)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론이다

행위자가 기입한다면, 연구자는 기술(description)한다. ANT 연구자가 이미 소멸되었거나 블랙박스화된 네트워크에서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를 판별해내고 이들이 보여준 합종연횡의 궤적을 기술해낸다면, 이는 원래의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는 것이 된다. 

 

기술은 기입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ANT 연구자들은 연구의 대상이 되는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안정화되었는지(혹은 어떻게 해체 되었는지)를 연구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를 정확하게 판별해내고 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행위를 해왔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네트워크는 왜 강력하게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구축되고 어떤 네트워크는 왜 그렇지 못했는가에 대한 설명은, 네트워크를 구성한 행위자와 그 형성과 소멸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과정에서 행위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중요한 것은 ANT가 네트워크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소에 의한 네트워크의 형성(혹은 소멸)과 같은 사회학적인 설명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설명하려는 대상과 그 외부에 존재하는 기준(사회적,경제적,정치적 요소) 사이의 위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전자는 유동적인 것이며 후자는 고정된 것이라는 이분법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설명은 분석자의 기준이 아니라 분석자가 찾아낸 이종적 행위자들의 행위와 이들의 연합의 궤적인 네트워크에서 자연스럽게(거의 자동적으로) 얻어진다. ANT에 따르면 최고의 이론적 설명은 가장 정확한 서술이며, 이러한 서술은 설명보다 더 어렵다. 외부에 존재하는 기준도 비인간 행위자가 될 수 있는것이 아닐까? 왜 사회학적 설명을 시도하지 않을까??? 이해가 안됨

 

ANT가 부정하는 것은 사회과학적인 설명이라는 방법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NT는 기존의 사회과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거시/미시의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시/미시를 구분할 때 사람들은 한 요소가 이 둘 모두에 걸쳐 있거나 이 둘을 넘나드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네트워크는 길거나 짧을 수 있고 혹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거나 약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크다거나 작다거나 할 수는 없다. 뇌의 뉴런 구조를 참고하면 이해가 될 수 있을듯  하나의 미시적인 행위자나 대상도 무한히 복잡한 네트워크일 수 있으며, 거시적이고 구조화된 네트워크도 하나의 블랙박스로 응축될 수 있다. ANT에서 중요한 것은 생성과 소멸(1 과 0, 접근 / 회피, 즉 디지털적 접근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이지, 미리 정해진 규모에 맞추어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이유로, 네트워크에 주목할 때 우리는 어떤 대상의 내부/외부를 나눌 필요가 없어진다. 네트워크에는 위상기하학적인 표면과 달리 안/밖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지점이 경계지점이기 때문이다.

 

ANT는 이론이라 불리지만 사회과학의 다른 이론들과 달리 잘 짜여진 체계가 없다. 아니, 사실 ANT에는 이론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다. ANT는 사례에 대한 경험적 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ANT에서는 일반화나 미래에 대한 예측을 추구하지 않는데, 모든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특이성들을 갖고 있고, 나름대로 독특하며,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하고 프로토타입이나 모델 수준에서 종료된 사례들을 분석한 ANT 연구들에 따르면, 이러한 실패가 기술적인 혁신을 도모하는 작은 네트워크와 이를 지원하고 정당화하는 더 큰 네트워크 사이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이유에 기인한다는 정도의 일반적인 '설명'은 가능하다. 

 

 

여섯, ANT는 권력의 기원과 효과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통상적으로 권력이란 한 행위자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다른 행위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ANT는 이러한 권력이 이종적인 네트워크 건설의 결과로 생겨난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권력이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이 나오는 네트워크는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이고, 어떤 의미로는 인간은 다양한 비인간을 어떻게 조직하고 통제하는가에 따라서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연구소, 기업, 정부조직들, 군대 등 권력을 수반하는 조직들은 네트워크의 건설을 방해하는 저항세력을 무력화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지속시키며 필요에 따라 권력이 공간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기제를 만들고, 네트워크에 복속된 다수의 행위자를 잘 대변하며, 미래의 네트워크의 변화 가능성을 예측함으로서 권력을 유지, 강화시킨다. 라투르가 파스퇴르에 대해서 분석했듯이, ANT와 그 사례들을 잘 살펴보면 성공적인 권력자가 어떻게 힘을 획득했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ANT는 권력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하면 그것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재분배할 것인가를 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번역의 과정을 이해하면, 권력자의 권력이 하늘에서 부여했다거나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이 일부를 양도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ANT 이론가들이 즐겨 얘기하듯이, 발가벗겨 놓으면 나폴레옹이나 거리의 노숙자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힘이 있는 인간 행위자나 기업, 정부와 같은 권력 기관은 이종적인 네트워크를 건설한 결과 권력을 얻었고, 이들의 권력은 다양한 이해 관계를 협상할 수 있었던 번역의 능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과학기술은 이 과정에서 비인간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따라서 과학기술의 민주화는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은 과학자가 대표하고 사회는 정치인이 대표한다는 식의 기존의 대의 민주주의 원칙만으로는 부족하며,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집단이 문제에 대한 조심스러운 숙의와 탐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행위자들의 재조직화가 일어나야 한다.

 

 

일곱, ANT의 '사물의 정치학'은 민주주의를 위해 열려 있다

어떤 네트워크가 공고화되고 안정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할 때 가능하다. 우선 그 네트워크가 원래 느슨했던 초기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저항하며 두 번째로는 대안적인 네트워크나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번역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때가 그것이다. 근대적인 테크노사이언스는 인간-비인간의 이종적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그 이유는 테크노사이언스가 비인간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통제하며 예측하는 전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민주적으로 분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학문과 담론의 차원에서, 인간/사물, 자연/사회, 인간/자연, 문화/과학, 주관/객관, 사실/가치를 넘나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분리는 힘 있는 행위자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공고화하는 것을 은폐하는 도구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잡종적인 존재를 만들어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네트워크를 비판하려는 시도는 경계 속에 가두어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서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끊임없이 변하고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는 불안정한 잡종적인 네트워크로 만들어져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지배적인 네트워크에 맞서서 대안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이 야기한 사회적 논쟁들은 대안적인 네트워크가 작동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산화탄소와 지구온난화, 프리온과 광우병,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와 같은 새로운 질병, 핵폐기물처리장을 둘러싼 논쟁 등, 우리 사회는 기술적 위험과 관련된 크고 작은 논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비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했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들인데, 기존에 권력을 가진 전문가나 정치인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과학기술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잘 작동하던 시기에 배운 전략에 따라 대응한다.

 

즉, 사실의 문제는 과학기술자들 같은 전문가들이 밝혀내고, 당위나 정책의 문제는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는 대부분이 배제되어 있으며, 이산화탄소, 프리온, 가축, 폐기물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의 목소리도 배제되어 있다. 또 전통적인 전략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 다수의 행위자를 배제시킨 채로 소수의 행위자만으로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네트워크는 협상을 이루어내는 데 한계를 보인다. 이러한 논쟁들이 종결되지 않고 소모적ㅇ로 지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첫 걸음은 행위자와 행위자의 상호작용에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 논쟁은 인간 행위자와 이전에는 없던 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에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고 결과가 무엇으로 귀결될 것인가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에서는 과학자가 비인간을 충분히 대표하지 못하고, 정치인이 시민을 충분히 대표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새로운 대표 체계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비인간 행위자를 대변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과학기술자 같은 전문가가 포함되어야 하며 전통적인 대변인인 관료나 정치인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대표집단이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은 물리학자가 뉴턴 역학의 문제를 푸는 식의 과정이 아니라, 해답을 알 수 없는 장기간의 실험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실행에서는 관련된 행위자 모두를 참여시키거나 대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결정이나 정책의 진행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실천에서 대안 네트워크의 가능성이 찾아진다.

 

 

 

ANT는 등장하자마자 사회구성주의 과학기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에 대응하면서 자신들의 이론의 정당성을 옹호해야 했고, 과학자들과 합리주의 과학철학자들의 인신공격성 비판에도 맞서야 했다. 이들의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ANT는 이러한 논쟁을 겪으면서 더 성장했고 정교해졌다. 최근에 ANT 이론가들은 지리학, IT이론, 조직연구, 금융이론, 위험연구, 예술이론 등의 각 분야에서 흥미로운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책의 독자인 여러분들도 한번 ANT의 태제들을 자신의 관심 분야에 적용해보기 바란다. 아마도 비인간 행위자에 주목하는 순간, 생명이 없이 둔탁하기만 했던 기계들이 갑자기 살아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세상의 경계와 기존 학문의 범주들이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할지도 모르니.

 

 

 

 

 

복잡계에서 출발한 여정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까지 오게되었네요. 개인적인 느낌은 복잡계에서 발전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현대 시대의 끝판왕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 결국 입자들도 관측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현상 처럼 서로 관계를 맺고 있어야 존재하는 네트워크로 이해할 수 있고, 뇌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뉴런의 연결로 자아, 의식, 생각이 발생 한다는 쪽으로 나오고 있기에 인간도 네트워크라고 이해가 됩니다.

사회나 국가, 민족 또한 서로 관계를 통한 네트워크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은 네트워크인가? 라는 말도 안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개인적 목표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기에 저에게는 많은 깨달음을 주는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