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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물 동맹 #2 ANT에 대한 노트

 

제1부 ANT 해부하기

제2장 ANT에 대한 노트

- 질서 짓기, 전략, 이질성에 대하여  (존로)

 

서론

종종 우리는 건재하다고 믿었던 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다. 늘 당연히 있으리라 여겨지던 조직 혹은 기관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았다. 소련의 인민위원이나 경제계의 거물들 역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같은 역사의 위험한 순간들은 단순히 정치적 가능성 이상을 의미한다. 기존의 체계가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 동력이 변화를 몰고 올 때, 새삼 우주만물의 주인도 결국 깨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기존 체계가 영구할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이러한 체계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다른 것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했던 것일까? 그들은 어떻게 현재의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이며, 그들을 더 일찍 붕괴시킬 수도 있었을 저항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믿음에 동조하게 된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사회학에서, 혹은 이 논문의 주제인 ANT에서도 매우 중요한 질문들이다.

 

번역의 사회학이라고도 불리는 ANT는 권력 행사의 역학에 관한 이론이다. ANT는 권력자에 대한 분석이 다른 이들에 대한 분석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권력자가 막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그들은 막강하다. 그렇지만 사회학적으로는 그들이 서로 다른 종류가 아니라고 간주한다는 뜻이다.

 

지금부터가 핵심 주장이다. 어떠한 조직이나 권력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려할 때, 우리는 우리가 설명하기를 원하는 것을 가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회를 바라볼 때, 한편으로는 거시적 체계가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서 파생된 2차적인 미시적 체계가 존재한다고 구분지어서 보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간주하면, 권력과 조직의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깨끗한 백지상태에서 분석을 시작해야 한다. 

 

일례로, 우리는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 다음,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상호작용밖에 없다고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특정한 종류의 상호작용이 안정화되고 스스로 재생산함에 있어 다른 것들에 비해 더 혹은 덜 성공적인지, 어떻게 그것이 여러 가지 저항을 이기고 '지배적 체계'가 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익숙한 권력, 명성, 규모, 조직 등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즉, 나폴레옹은 보잘것없는 노숙자와 다를 것이 없고 IBM도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ANT의 핵심 가정이다. 만일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비해 더 커진다면, 어떻게 그 규모, 권력, 조직 등이 발생되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ANT의 핵심 논지인 이종적 네트워크의 비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종적 네트워크란 사회, 조직, 행위자 등이 모두 단순한 인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질료로 이루어진 패턴화된 네트워크로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네트워크의 공고화에 대해 살펴볼 것인데, 특히 어떻게 네트워크들이 하나의 단일 행위자처럼 보이게 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네트워크의 다양한 부분과 조각들을 고려하는 대신에 '영국 정부'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한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네트워크 질서의 특성을 살펴보고, 네트워크 질서는 완결된 명사의 형태라기보다, 다소 불확정적이고 지속적 변화의 과정을 겪는 동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의 질서를 이루는 요소들과 전략을 살펴보고, ANT가 제공하는 조직적으로 유의미한 발견들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특히, 네트워크의 패턴화가 위계질서나 권력처럼 조직이나 기구가 나타내는 효과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종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사회

ANT의 저자들은 과학 기술의 사회학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지식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들은 '지식'을 이종적인 질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지식뿐 아니라 행위자, 사회 기관, 기계, 조직들의 경우에까지 자신들의 설명을 일반화했다.

 

여기서 '지식'을 인용부호와 함께 사용한 까닭은 그것이 항상 물질적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화, 회의발표, 논문, 혹은 특허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또는 과학자나 기술자에 내재된 테크닉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즉, '지식'은 다양한 물질적 형태로 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ANT는 지식이란 시험관, 시약, 유기체, 과학자/기술자의 숙련된 손, 현미경, 컴퓨터 같은 이종적인 요소들이 중첩되면서 그들 자체의 저항을 극복하는 패턴화된 네트워크로 발전한 최종 결과라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지식은 물질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질료들을 조직하고 질서에 따라 배열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ANT는 과학이란 사회적, 기술적, 개념적, 텍스트적인 요소들을 적합하게 맞춰서 과학적 결과의 집합으로 변형하는(즉 '번역'하는) 부분들 간의 이종적 상호작용의 과정을 의미하며, 이것은 다시 이종적 성질을 가진 과학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여기까지가 과학에 대한 얘기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과학이 특별하지 않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종 네트워크는 과학뿐 아니라 다른 기관들, 즉 가족, 조직, 컴퓨팅 시스템, 경제, 기술 등 사회 영역의 다양한 기관들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기관들 역시 다양한 저항을 이겨내고 이종 네트워크의 질서를 이루어낸 사례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ANT 이론가들의 핵심적 주장이 담겨 있다. 즉, 사회적인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이종적인 질료 간의 질서 있는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네트워크가 인간뿐 아니라 그 밖의 기계, 동물, 문서, 돈, 건축물 등과 같이 당신이 언급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즉 사회를 구성하는 질료는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라 그 외 다른 모든 물질들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ANT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종적 네트워크가 없다면 사회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학이 할 역할은 이종성을 지닌 네트워크의 특성을 밝혀내고 이러한 네트워크들이 어떻게 조직이나 불균형, 권력 등의 일정한 패턴을 지니게 되었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단순히 먹고, 생활하고, 기계로 물건들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과정은 다양한 종류의 매개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나는 문자를 통하여 당신에게 말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며, 우리의 의사소통은 컴퓨터, 종이, 인쇄기 같은 다양한 물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인 우편 시스템에 의해서도 중재되어 진다. 즉 ANT의 주장은 이러한 다양한 네트워크가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종적 네트워크는 당신이 지금 이 논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며, 무엇보다 저자와 독자라는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수업 시간에 나는 강단 위에 서 있고, 학생들은 계단식으로 배열된 책상에 앉아 종이와 필기구를 가지고 나를 향해 있다. 그들은 필기를 하고 나를 보고 들을 수 있다. 혹은, 내가 프로젝터 위에 놓은 슬라이드를 응시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교실의 배치 형태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터도 나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을 구성하는 데 동참한다. 물체들은 우리의 의사소통을 비대칭적인 형태로 이어준다. 즉, 학생들이 내가 얘기하는 것에 대해 대답하고 반응할 기회가 거의 없이 듣기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계는 비대칭적인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는 물론 이러한 상황이 정반대일 경우도 있다. 즉, 학생들이 강단과 프로젝터를 장악할 수도 있다. 또는 내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학생들은 완전히 나를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프로젝터는 우리의 교수와 학생이라는 사회적 관계 형성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즉 프로젝터는 사회적인 것의 일부분이 되어 교수와 학생의 행위에 각각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상호작용 가운데 물체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마도 섹스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ANT의 주장은 바로 만일 인간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물체들과도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어떠한 선호도를 갖고 있듯이 사회의 이종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물체들 역시 그러하다. 기계, 건축물, 의복, 문자 모두 사회의 질서에 기여한다. 본 논문의 주장은, 이러한 물질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가 사회 질서라 부르는 것들도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ANT는 질서란 이종적인 질료들에 의해 생성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장이 나누어진다. 사회를 이루는 물질의 질서에 대한 주장은 환원주의적 방법으로 다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는 기계 혹은 인간, 이 둘 중의 하나가 최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를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두 종류의 환원주의가 주장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만, 그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우선 그들은 인간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을 분류해서 이 둘을 서로 다른 무리로 본다. 둘째, 그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움직인다고 본다.

 

ANT는 이러한 환원주의를 거부한다. ANT는 물체나 인간 중 어느 하나가 사회의 변화나 안정의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미리 가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기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경험적이며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위너가 언급했듯, 물체에도 정치적인 것이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체가 갖는 정치의 성격, 그리고 물체가 결정적 역할을 얼마나 하는 지, 또한 사람과 기계의 역할을 일단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는 모두 경험적으로 판단할 문제인 것이다.

 

네트워크로서의 행위자

조금 더 분명하게 하자. ANT가 논리적으로 급진적인 또 다른 이유는 이 이론이 기존의 도덕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이론들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ANT는 인간과 물체가 서로 다르다는 인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이론에서는 인간이 물체에 비해 꼭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ANT는 사람들이 인간이라고 이야기할 때의 인간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질문부터 다시 제기한다. 따라서 ANT는 기존 인본주의의 윤리와 존재론에 경고음을 울린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설명하고 그 후에 주장을 제시하겠다.

 

우선 분명히 할 점은 이것이다. 나는 윤리와 사회학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들은 서로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과 물체 사이에 근본적 차이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회학의 분석론적 입장이지 윤리적 입장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기계처럼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우리가 인간에게만 부여하는 고유의 권리, 의무, 책임감 등의 가치들을 부인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ANT는 놀라운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 등과 같이 오늘날 쟁점이 되고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정교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분석적 입장은 여러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사회학자 울거와 기술 심리학자 터클이 주장했듯이 인간과 기계, 동물 간의 경계는 협상에 의해 가변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계나 동물은 독립성, 지능, 책임성 등의 인간적 속성을 새로 부여 받거나 상실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이 기계나 동물의 속성들을 부여받거나 상실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위와 다른 방법으로 주장을 펴고자 한다. 즉, 분석적으로 봤을 때 인간이란 이종적인 물체들이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로 인해 생성된 존재이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설명한 과학적 지식과 사회에 대한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에 대한 주장에서도, 인간이란 이종적 질료 간의 패턴화된 네트워크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만일 나에게서 컴퓨터, 동료 연구자들, 사무실, 책, 책상, 전화 등을 빼앗아간다면 나는 더 이상 논문을 집필하고, 강의를 하고, 지식을 생산해내는 사회학자가 아닐 것이다. 나는 다른 무엇인가가 될 테고,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분석적으로 중요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단순히 지식, 기술, 가치 등을 지닌 육체를 갖고 있어야만 행위자인가? 아니면 인간의 육체적인 것을 뛰어넘어 그 외의 물체들과의 네트워크까지도 포함해야 과연 참된 행위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고프만은 도구들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윤리적, 정신적 측면들은 감히 도구적인 것들로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한다. 상징적 상호 작용 이론처럼 ANT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ANT 역시 인간과 신체의 밀접한 연관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또한 고프만이 정신 병원 환자에 대해 보였듯이 인간 고유의 내면적인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ANT는 사회적 행위자들이 절대로 육체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행위자란 이종적인 물질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규칙적 네트워크임을 주장한다. 

 

즉, 사고하는 것, 행동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사랑하는 것,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 등 우리가 주로 인간에게 부여하는 특성들은 인간의 신체를 넘어 네트워크를 통해 생성되는 것들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행위자네트워크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행위자는 언제나 행위자인 동시에 네트워크다.

 

위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일반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계 역시 이종적 네트워크이다. 기계는 기술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조작자, 사용자, 보수자 같은 인간의 역할도 있어야 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문서도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회적인 것에 참여하는 네트워크들이다. 기관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로 사람, 기계, 문서, 건축물 등에 의해 유지되는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결절과 자원

왜 우리는 행위자나 기관 조직 뒤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은 비교적 단순한 하나의 물체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것이 고장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텔레비전이 전자부품과 인간이 개입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규모의 사업가에게 BCCI는 하나의 조직화된 은행으로만 인식되었지만, 1991년 금융사기가 발각된 이후로는 여러 부정 금융거래로 이루어진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로 인식된다. 또한 건강한 사람에게는 자신 내부의 다양한 신진대사가 잘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픈 사람, 혹은 의사들에게 신체는 인간적, 의학적, 약학적 과정들이 어우러진 복잡한 네트워크다.

 

그렇다면 왜 이런 네트워크가 평상시에는 숨어 있거나, 보이지 않는것인가. 왜 어떤 상황에서는 더 잘 보이는 것일까. 동어반복처럼 들리겠지만, 어떤 행위자가 단일 개체처럼 보이고 네트워크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은 단순화에 있다. 모든 현상은 이종적 네트워크의 산물이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세분화된 네트워크를 직접 대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네트워크의 복잡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네트워크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행동한다면, 그 네트워크는 하나의 단순한 행위자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어떤 행위자가 생성되는 과정도 눈에 띄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잘 작동하는 텔레비전, 은행, 건강한 신체와 같이 매우 단순해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 이들을 이루는 네트워크를 대체하는 것이다.

 

ANT 이론가들은 이러한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단순화를 결절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규칙화는 사회를 이루는 네트워크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앞서 나는 사회를 거시적 체계와 미시적 체계로 나누는 분석적 구분을 반대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나는 또한 어떠한 네트워크들은 다른 것들보다 일반적이며 광범위하게 작동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연결점이 있다.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네트워크들은 주로 규칙화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네트워크들은 이종적 엔지니어링의 과정에서 무리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상화된 네트워크 꾸러미다. 바꾸어 말하면, 이들은 자원으로 여겨질 수 있다. 즉, 행위자나 도구, 문서, 표준화된 조직 관계, 사회적 기술, 규약, 조직 형태 등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종적 네트워크의 설계자는 네트워크가 예상대로 작동할 것이라고는 절대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규칙화는 늘 저항세력과 대면해야 하고, 실패한 네트워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다. 반면에 규칙화된 자원은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바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끌어 모을 수 있다.

 

 

번역 : 가변적 과정으로서의 사회적 질서

앞서 주장했듯 결절은 과정이지만 단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ANT에서 사회 구조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사회 구조는 건물의 뼈대처럼 계속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과정 속에서 되풀이되고 재생산되는 갈등의 장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강조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조직, 행위자 등의 어떠한 사회적 질서도 절대로 완성된 것이라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독재자와 몇몇 규범적 사회학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구심점이라든지, 혹은 하나의 안정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질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로 존재하는 질서들이 있을 뿐이며, 또한 이에 대한 저항들도 존재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ANT는 일반적 의미의 다원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ANT는 힘이나 질서의 중심이 여러 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ANT는 권력이 관계적이고 분배적 맥락에서 생성되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고전 사회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질서와 권력은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앞서 나는 인간과 기계에는 각자의 선호도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선호도가 저항이며, 질서의 다원적 특성이다.

 

즉, 질서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노력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이러한 한계를 수용하거나 뛰어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질서를 이루기 위해 일시적으로 소집되어 있는 부분과 조각들은 따라서 언제든 붕괴될 수 있으며 스스로 소멸할 수 있다. 따라서 ANT에 있어서는 질서를 향한 갈등에 대한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ANT의 목표는 규칙성, 사회적 조화, 질서와 저항에 과정들에 대해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구, 행위자, 기관, 조직 등과 같이 질서를 생성하는 번역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은 변환(transformation)과 등가(equivalence)의 가능성, 즉 하나(예를 들어 행위자)가 다른 하나(예를 들어 네트워크)를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사이다.

 

바로 이것이 ANT의 핵심이다. 즉 어떻게 행위자와 조직이 그들을 이루는 부분과 조각들을 동원하고, 배열하고, 하나로 유지할 수 있는지, 또한 어떻게 부분과 조각들이 자신의 선호를 따라가다가 결국 행위자와 조직이 해체, 소멸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막을 수 있는지, 따라서 어떻게 그들이 번역의 과정을 숨기고, 다양한 부분과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종적 네트워크 대신 규칙화된 행위자로 보이게 할 수 있는지가 ANT의 주요 연구 관심사이다.

 

 

번역의 전략

다양한 물질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행위자, 조직처럼 보이고, 행동하는 권력을 어떻게 해서 갖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다양한 저항들은 이기는가? 이글의 서론에 ANT가 던졌던 질문처럼, 어떻게 사람들은 소련과 같은 세상의 권력들 역시 유한하며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ANT는 권력에 대한 이론인 것이다. 이것은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과도 통하는 점이 있지만, 공시적인 연구를 피하고 번역의 과정에 대해 경험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ANT는 푸코 이론과 구분된다. 실제로 ANT 이론가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병법과 권력의 전략에 대한 분석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번역에 대해, 또 저항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ANT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경험주의적 접근을 하며, 이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한 경험주의적 결론은 번역이 우연적이고 국지적이며 또한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를 염두에 두고 번역에 대한 더 일반적인 네 가지 발견들을 소개한다.

 

1. 첫 번째는 어떤 물체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영속성이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연속체를 상상해보라. 생각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며, 말도 오래 지속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생각과 말을 무생물체인 문서와 건축물 등에 담는다면 훨씬 오래갈 것이다. 따라서 좋은 전략은 영속적인 물체에 일련의 관계들을 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네트워크는 영속적인 다양한 물체에 포함되어 행사되어지는 네트워크이다. 스마트컨트랙트가 더 발전된 개념이겠네

 

위의 이러한 주장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지속성, 영속성 역시 관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영속성은 자연적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어떤 물체가 영속성을 갖고 있다면, 이것 역시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벽은 죄수의 탈출을 막을 수 있지만, 이것 역시 교도관이 있을 때만 유효한 것이다. 영속적인 물체들은 다른 새로운 관계가 있는 네트워크에서는 다른 영향력과 결과를 갖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속성에 대한 주장은 매력적이며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보다 주의 깊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영속성에 대한 신중한 접근: 따라서 어떤 물체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그 물체가 항상 안정적이거나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체의 영속성은 주변의 여러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를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만일 위의 영속성이 시간에 따른 질서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동성은 장소에 대한 질서이다. 특히 그것은 장거리 작용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중심과 주변 역시 지휘와 통제에 의해 생성되는 결과이다. 여기서 푸코와의 유사점이 다분히 엿보이지만, ANT의 접근은 다소 다르다. 특히 ANT는 물체들과 소통의 과정들, 예를 들어 글쓰기, 전자소통, 재현의 방법, 금융시스템, 그리고 근대의 무역 경로 등과 같은 현실적, 일상적인 것들을 연구한다. 즉 라투르가 신용장, 군령, 포탄 등과 같이 '불변의 가동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전파되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번역에 대해 연구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할 점은 이동성 역시 불안정한 관계적 영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의 '시스템 건설'이나 '장기 지속'을 주장했던 아날학파의 유물론적 역사관 같은 역사적 연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네트워크 내에서 '이동성'과 '영속성'이라는 개념이 각각 시간과 장소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고, 이 둘이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1. 이동성과 장소의 질서:

   - 영속성이 시간이 지나도 물체나 관계가 지속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이동성은 장소의 변화와 질서를 만드는 것과 관련됩니다. 이는 네트워크 내에서 정보, 물체, 명령 등이 장거리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중심과 주변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 예를 들어, 중심과 주변이란 단순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정보나 명령이 어떻게 이동하고 전파되느냐에 따라 생성되는 결과입니다.

2. ANT의 접근 방식:
   - 여기서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은 이동성과 관련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물체들과 소통 과정에 관심을 둡니다. 예를 들어:
     - 글쓰기와 문서: 명령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문서
     - 전자소통: 이메일이나 데이터 네트워크처럼 현대적인 소통 방식
     - 금융 시스템과 무역 경로: 돈과 자원이 장거리로 이동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
   -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이동성과 연결성을 가능하게 하며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지를 연구합니다.

3. '불변의 가동물':
   - 라투르는 신용장(금융 문서), 군령(군사 명령), 포탄(군사 장비) 등과 같은 '불변의 가동물'(immutable mobiles)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이는 멀리 이동하면서도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잃지 않고 유지되는 물체들을 뜻합니다. 이러한 물체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명령이나 정보를 멀리까지 전달하면서 이동성을 만들어냅니다.

4. 관계적 영향과 불안정성:
   - 이동성 역시 불안정한 관계적 맥락 속에서 작동합니다. 즉, 이동성이 단순히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의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군사 명령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으며, 금융 시스템은 특정 지역의 네트워크가 붕괴되면 전체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5. 역사적 연구와의 연결:
   - 라투르의 연구는 미국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의 '시스템 건설'이나, 아날학파의 장기 지속 구조와 같은 역사 연구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이동성과 영속성이 단순히 기술적,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된 관계의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 요약:
이동성과 영속성이라는 개념이 모두 네트워크 내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ANT는 이러한 이동성과 영속성을 구체적인 물체와 과정(문서, 무역, 금융 등)을 통해 연구하며, 이를 통해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3. 만일 번역할 물체의 반응을 미리 예측할 수만 있다면 번역은 더욱 효과적이다. 비록 ANT가 기능주의나 기술결정론에 반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측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측의 중요성은 이미 마키아벨리식 정치학과 기업사에서 주요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ANT는 이러한 것들을 특징짓는 기능주의나 기술결정론에 반대하며, 대신 라투르가 '번역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것을 관계적인 결과로 이해하고, 그러한 결과들이 생기고 다양한 저항들이 효율적으로 제지하는 조건과 물체들에 관해 연구한다. 

 

따라서 ANT는 몇몇 역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기초해서 한편으로는 문맹률과 행정, 인쇄술, 복식 부기, 새로운 전자기술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의 결과를 예견하는 역량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적합한 관계적 상황 하에서 혁신은 결과를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주며, 이것은 다시 네트워크의 공고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역시 관계적 상황이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웨버가 앞서 잘 이해했듯이 계산력, 예측력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예측은 일련의 사회적 방법 혹은 관계다. 더구나 예측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체에만 해당되는데, 그러한 물체는 지휘와 통제의 산물이며 이 역시 관계적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 '불변의 가동물'을 대표하는 대의제 역시 불안하다. 특히 정치에서의 대의제가 가진 문제와의 유비는 대의제의 약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준다. 번역의 다른 형식과 마찬가지로 대의제는 오류를 범하기 쉬우며 과연 대변인이 대표하고자 하는 것들을 성공적으로 대변하는지의 여부를 예측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상과 정치적 제도를 이해할 때, 단순히 계산하거나 예측하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

1.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 예측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와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어떤 현상을 예측할 때, 그 예측은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구조, 맥락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예측은 고립된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2. **예측의 한계**: 예측이란 눈에 보이는, 명확히 측정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만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또는 사회적 현상들은 눈에 보이는 물체처럼 명확하지 않고 복잡한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결과**이기 때문에, 단순히 예측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3. **정치적 대의제의 불안정성**: 대표자를 선출해 특정 집단을 대신하게 하는 **정치적 대의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대표자가 진정으로 그 집단의 의사를 반영하는지, 잘못된 예측과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지를 보장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수치와 예측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사회 현상과 정치적 제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4. 끝으로 질서 짓기의 범위에 대한 이슈가 있다. 나는 이제껏 질서의 범위가 국지적이라는 주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번역의 다소 일반적인 전략들을 네트워크의 속성으로 귀속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번역의 전략들은 푸코의 담론처럼 네트워크의 다양한 범위와 장소들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만일 번역의 전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소 암묵적인 형태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명시적인 전략적 계산은 번역의 중심이 이미 성립되었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서가 형성되는 범위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번역’의 역할을 설명.

1. **질서 짓기의 범위에 대한 논의**:
   - 저자는 **질서가 형성되는 범위가 국지적**(지역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즉, 질서란 특정한 장소나 상황에 따라 형성된다는 것.
   - 하지만, **질서를 더 넓은 네트워크 차원에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며, 이러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번역’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번역 전략과 네트워크**:
   - 여기서 **‘번역’ 전략**이란 특정한 의미나 명령을 여러 곳에서 받아들여 **재해석하고, 그에 맞게 변형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속성**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생각이나 명령이 다양한 장소에서 조금씩 다르게 재해석되고 실행되면서 확산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 이는 푸코의 담론처럼, **네트워크 내 여러 위치에서 확산되고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서가 네트워크 전체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이런 번역 전략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3. **암묵적인 번역 전략**:
   - 번역 전략은 보통 **암묵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명시적인 계획이나 지시가 아니라, 네트워크 내 각 부분에서 자발적이고 은밀하게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 명확하게 드러난 전략적 계산은 번역의 중심(중심적인 명령이나 구조)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중심이 없을 때는 암묵적으로 각자의 이해에 따라 번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요약:
**질서 형성이 국지적인 범위를 넘어서 네트워크 내 다양한 위치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암묵적인 번역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번역 전략이란 네트워크 내에서 특정 의미나 명령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질서가 여러 위치로 퍼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전략은 어떤 형태일까? 이것 역시 경험적 문제이다. 하지만 어떠한 질서도 완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전략들이 공존하며 상호작용하리라는 것이 몇몇 ANT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최근 나는 경영분야 연구에서 다전략 행위자의 조직, 그리고 기관 간 업무 교류를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사업기획이나 행정, 사명, 비전 같은 여러 범위의 전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주장은, 조직이란 일련의 전략들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러한 전략들은 네트워크 연속성, 공간적 이동성, 대의제와 계산성 등의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다시 모든 조직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비대칭과 위계질서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론

본 논문에서 나는 ANT에 관해 설명하고, 이 이론이 행위자와 조직, 도구들을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보는 관계적이며 과정 중심적 사회학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결과물들이 생성되는 경로에 대해 언급하고, 그들의 이질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논쟁적 특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특히 사회 구조는 명사보다는 동사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백하게 ANT는 다른 사회학과도 몇몇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ANT가 강조하는 관계적 유물론은 다른 접근들과 구별된다. 유물론은 사회학에서 새로운 개념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유물론과 사회적 관계론이 항상 서로 쉽게 어울리지는 못했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 같은 괜찮은 사회학에서는 이 둘이 서로 연관을 갖기도 했으나, 여기서도 이들 둘은 종종 연속성보다는 이원성을 갖는 서로 다른 종류로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사회학에서 이원성이 붕괴되면서, ANT는 다소 급진적 입장을 갖고 사회학에 합류하게 되었다.

 

ANT는 행위자와 구조 간의 분석적 구별과 더불어 거시적, 미시적 사회체계의 구분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사람, 기계, 아이디어 등과 같이 서로 다른 것들을 근본적으로 주요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이해할 것을 종용한다. 따라서 ANT는 행위자에 대한 이론이며, 동시에 지식에 대한, 기계에 대한 이론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하게는, ANT는 우리가 구조, 권력, 조직의 방법에 관한, 즉 "어떻게"에 관한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형태에 관계없이 사회적 결과물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는 이종적인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가 계속적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한다는 것이 그 근본 주장이다. 사회학이 인간들을 포함하듯이 기계들과 건축물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재생산의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ANT는 조직사회학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가. 이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ANT가 말하는 조직사회학은 조직의 불안정한 작동을 연구하기 위한 문제들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의도했듯 이러한 연구문제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조직을 이루는 질료들에 관한 질문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의 전략에 관한 질문들을 구분해서 다루는 것이 편리하다. 조직의 특성에 관해 연구할 때에 ANT는 이것을 결과, 즉 질료들과 조직의 전략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조직과 그 조직을 이끄는 권력자들에 관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동원되고 나열된 다양한 이종적인 부분과 조각들은 과연 어떤 것들인가?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은 나열되었는가? 어떻게 저항들을 이겨내었는가? 사회적 관계가 조직화되기 위해 필요한 물질의 연속성과 이동성을 어떻게 갖추게 되었는가? 이를 위해 어떠한 종류의 전략이 사용되었는가? 이러한 전략은 얼마나 멀리 전파되는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행사되는가? 이러한 전략들은 어떻게 서로 교류하는가? 조직의 계산은 어떻게 시도되는가? 어떻게 그러한 계산의 결과가 행위로 이어지는가?(혹은 번역되는가?) 조직을 이루는 이종적인 부분과 조각들이 중심과 주변이라는 비대칭적 관계를 어떻게 생성하게 되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중심이 주변을 대표하게 되고 주변으로부터 이익을 얻게 되었는가? 어떻게 경영자는 경영을 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조직은 성취물이며 과정이고 결과물이자 극복되어진 저항인 동시에 가변적 결과물이다. 위계질서, 조직 배열, 권력 관계, 정보 흐름 등 조직을 이루는 각 부분들은 이종적인 물질들의 질서로 인해 성성된 불확정적 결과들이다. ANT는 바로 이것들을 분석하고 설명하려 한다. 바로 권력자들이 가진 권력의 신비성을 없애고 해명하려 하는 것이다.

 

ANT는 최후에는 권력자와 비권력자 사이의 다른 점과 구분선이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ANT는 또한 최후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권력자와 비권력자 간의 차이점이 극명히 존재하며, 그들을 형성하는 데 동원된 도구와 물질들 사이에는 다른 점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도구와 물질들을 연구하고, 어떻게 이것들이 현실화되는지를 이해하며, 또한 그러한 현실들이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이 사회와 조직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 이론이 어떻게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권력, 조직, 그리고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1. **ANT의 기본 개념**:
   - ANT는 **사회와 조직을 고정된 개념으로 보지 않고,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하는 과정**으로 봅니다. 사람, 기계, 생각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며, 이 모든 것이 네트워크의 일부로 작용합니다.

2. **사회 구조에 대한 ANT의 시각**:
   - 사회 구조를 **고정된 형태(명사)가 아닌 변화하는 과정(동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는 단지 인간의 활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물리적 도구, 기술, 건물 등의 요소들도 함께 작용하여 사회를 구성합니다.

3. **ANT와 유물론의 관계**:
   - ANT는 **관계적 유물론**을 강조하며, 이 점에서 전통적인 사회학과 차별화됩니다. 사회는 특정한 요소(사람, 기계 등)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연결되는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4. **조직을 이루는 전략과 물질의 상호작용**:
   - ANT는 조직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물질과 전략이 상호작용한 결과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조직의 전략, 경영 방식, 정보 흐름 등은 모두 사람과 물질이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5. **권력자와 비권력자의 관계**:
   - ANT는 궁극적으로 **권력자와 비권력자 간에 명확한 구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권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도구와 물질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변화 가능성에 대한 주목**:
   - ANT는 우리가 현재 존재하는 조직이나 사회 구조가 **항상 지금의 모습일 필요는 없고,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따라서 ANT의 과제는 권력과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그 형태가 어떻게 다르게 될 수도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 요약: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이 조직과 사회 구조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 **가변적이고 관계적인 결과물**로 본다고 설명합니다. ANT는 사람뿐 아니라 기계, 도구, 건축물과 같은 물질들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합니다. 이 이론은 권력의 본질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와 도구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그 구성 방식이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2가지 중요한 요소가 믿음(신화), 질서(관료)인데 ANT는 질서에 좀더 치중되어 있는듯한 느낌이 드네요. 신유물론이라 불리우는 이론임으로 이전 유물론의 잘못을 따라가지 않아야 하기에 이 이론을 공부하는데 주의해야 할것 같네요. 기존 유물론이 가지고 있었던 환원성을 많이 보강을 했지만 너무 질서에 치우치는 느낌이 드는건 쩝.. 물론 블랙박스 개념으로 믿음도 행위자로 동작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믿음 = 신화(종교) = 블랙박스 = 창발성(자기조직화) = 마음(정체성)

 

질서 = 관료(제도, 사회구조) = 네트워크 = 관계(피드백) = 몸(신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