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메이션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
감수의 글 (김상욱)
비트에서 존재로
우리는 모두 지금 세상에 무엇인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정체에 대해 이미 수 많은 논의가 있었다. 우리 시대를 규정짓는 '정보화시대'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그 중심에 '정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보란 무엇일까. 정보가 무엇인지 누구나 알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기는 쉽지 않다. 정보는 자료이며 데이터이고 상태이자 지식이다. 그렇다면 정보의 어떤 측면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가.
<인포메이션>의 저자 제임스 글릭은 '정보'를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에 대한 답을 구한다. 역사, 이론, 홍수가 그것이다. 글릭은 아프리카의 북소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정보의 역사를 찾아 상형문자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자의 발명은 단순히 구어가 활자로 기록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자로 쓰인 텍스트는 범주화, 일반화, 논리 같은 사고체계를 만들었다. 문자화된 언어는 그 자체로 진화하고 갈래 쳤다. 이를 정리하기 위해 사전이 탄생했다. 사전의 발명 역시 단어가 가진 의미를 단순히 정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추상적 개념들이 분화되어 구체화되고, 이를 통해 지식이 체계화되었다. 인쇄술의 발명은 단순히 책을 만드는 속도의 향상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인쇄술이 야기한 정보의 광범위한 유통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견인하여 서구사회를 근본부터 변화시킨다.
전신의 발명은 정보의 전달속도를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전신의 역사에서 전기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글릭은 오히려 정보의 전달 매체보다 정보를 기호화하는 방법에 주목한다. 결국 모든 정보를 0과 1의 1차원 배열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보의 역사에서 분기점이 된다. 모든 정보는 수로 표현 가능하다. 수는 문자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자 정보의 중요한 형태이다 수를 다루는 학문을 수학이라 한다. 수학은 논리의 언어로서 철학의 가장 단단한 기반이기도 하다. 이제 수는 수학의 도구만이 아니라 정보를 표현하는 궁극의 기호가 되어, 수학 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낸다. 바로 수학적 공리체계 자체의 불완전함을 보여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이다.
괴델의 정리가 제시한 "모순"은 수학 체계가 스스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과 외부의 도움 없이는 자신이 모순이 없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논리적 오류나 잘못된 계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형식주의의 이상(모든 참은 증명 가능하다)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괴델, 튜링, 섀넌과 같은 정보과학의 대가들의 생각은 하나로 수렴한다. 세상의 모든 사고와 논리는 정보처리에 불과하며, 정보는 수로 나타낼 수 있다. 결국 사고와 논리는 계산이고, 계산은 알고리즘이다. 그렇다면 기계가 그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어를 이용한 기계식 계산기를 처음 만든 것은 찰스 배비지였지만, 이런 생각이 제대로 구현된 것이 바로 전자시대의 컴퓨터다.
이쯤해서 글릭은 정보의 이론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모든 과학이론은 정량화, 수량화로부터 시작한다. 역학은 시공간의 정의와 단위로부터, 열역학은 에너지와 열의 정의로부터, 전자기학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정량적 측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보는 어떻게 정량화하는가? 아니, 정보는 어떻게 축정하는가? 이는 정보이 정의 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보를 정량화하는 것은 정보의 시작이자 끝이다. 섀넌은 정보를 '엔트로피'로 정량화한다.
섀넌의 정보에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미를 버림으로써 정보를 정량화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섀넌의 엔트로피는 크다. 엔트로피는 앎의 척도가 아니라 무지의 척도이다. 또한 무질서한 것, 복잡한 것은 엔트로피가 크다. 이런 역설은 우리에게 무질서가 무엇인지, 아니 질서가 무엇인지, 복잡함과 단순함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수학자 콜모고르프는 복잡성의 정의를 내놓았으나, 아직까지 복잡계 전문가조차 복잡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놀랍게도 섀넌의 엔트로피는 열역학을 다루는 통계물리학의 엔트로피와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열역학의 엔트로피는 엔진이 작동하거나 화학반응의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실제적인' 물리량이다. 하지만 섀넌의 엔트로피는 정보를 정량화한 것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여기에는 '맥스웰의 도깨비'라는 150년 가까운 역설이 숨어 있다. 물리학에서 지식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로써 정보이론은 물리학이 된다.
정보의 비용:
도깨비가 분자의 속도를 "관찰"하고, 이에 따라 문을 열거나 닫으려면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분자의 속도와 위치를 관찰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정보는 도깨비의 메모리나 처리 시스템에 저장됩니다.
정보물리학이 양자역학을 만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름하여 '양자정보'이다. 이제 세상은 0과 1의 두 수가 아니라 큐비트라 불리는 0과 1의 중첩 상태로 기술된다. 중첩이란 0과 1이 동시에 될수도 있는 상태이다. 논리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면 하나의 문장이 동시에 참이며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이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롤프 란다우어의 "정보는 물리적이다."를 만나고, 결국 존 아치볼드 휠러의 "비트에서 존재로"에 이른다. 이렇게 우주는 정보가 된다.
정보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생물학적이다. 현대생물학은 DNA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DNA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결정적인 국면은 생명의 핵심이 정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았다. DNA는 네 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정보테이프에 불과하다. 결국 생명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기물이 아니어도 정보를 전달하는 다른 '것'도 생명처럼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행운의 편지, 유행이나 종교 등도 일종의 생명이 아닐까. 리처드 도킨스의 '밈'이다. 정보는 이렇게 생명을 넘어선 생명까지 포괄하게 된다.
정보가 생명이라기 보다는 생명도 네트워크이고 행운의 편지, 유행, 종교, 밈들도 네트워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듯. 그럼 모든 것이 정보가 될 수 밖에 없음.
이런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저자는 흔치 않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글릭은 이미 그의 출세작 <카오스>를 통해 이런 일의 적임자임을 제대로 보여준 바 있다. 글릭은 과학자가 아니라 기자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엄청난 자료와 수많은 과학자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다. 정보를 주제로 물리학자들이 쓴 책들도 제법 있지만 이만큼의 넓이를 갖지 못한다.
나와 글릭은 인연이 깊다. 양자역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물리학을 공부하던 나의 진로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글릭의 <카오스>였다. 덕분에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카오스를 양자역학으로 다루는 '양자 카오스'가 되었다.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경계에 있었다. 카오스는 그 경계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경계 문제에 천착하던 내가 결국 깨달은 것은 경계 문제의 핵심에 정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2003년부터 나를 괴롭혔던 문제의 정체가 '맥스웰의 도깨비'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 5년이 걸렸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정보의 열역학'을 내 핵심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인포메이션>은 바로 그런 나의 생각을 훨씬 멋지게 정리한 것 같은 책이다.
21세기의 일반인에게 정보는 홍수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정보를 개인이 열람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정보가 전달된 적도 없었다. 인류역사상 이렇게 세상이 긴밀하게 얽힌 적도 없었다. 문자, 인쇄술, 전신, 컴퓨터의 발명이 그랬듯이 우리는 정보의 입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저자는 미래에 대해 섣부른 예측은 삼간다. 미래 예측의 성패는 과거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당신은 오롯이 정보의 관점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보게 된다. 내 생각에 이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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