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를 만드는 브랜드, 브랜드를 만드는 신화
옮긴이의 말
심지어 소비자들은 자신들조차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데 대한 숨겨진 감성적 이유를 때로는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종종 제품 관련 이유와 감성적, 심리적, 사회적 이유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자는 신화라는 독특한 영역을 빌어 소비자의 숨겨진 제품 동인과 관련한 잠재적 무의식을 탐구하고 있다.
광고의 고유한 힘은 소비자의 가치, 꿈, 그리고 환상을 반영하는 지각적 실체를 창조함으로써 브랜드를 지속시키고 성공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즉, 고아고는 우리의 가치, 감성과 생활 양식을 형성 및 반영하는 브랜드 신화를 창조하고 영속케 한다.
숨겨진 신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신화의 논리로서 나타난 이항대립이 현대의 신화인 광고에도 똑같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광고와 신화는 완전히 동일한 관계 체계를 보여 주며, 구성상의 기본 원칙 또한 동일하다. 신화는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속에 반영되어 있는 진리인 동시에 현대인들의 삶과도 관련이 있는, 인류 전체의 경험에 대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신화는 우리가 자신의 얼굴만이 아닌 인류의 모든 얼굴을 비춰볼 수 있는 소위 ‘영원한 거울’ 인 것이다. 그리고 신화적 경험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경험이다. 영혼의 무의식에 대한 이해는 신화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브랜드는 소비자 마음속에 자리한 지각적 실체다. 광고는 이러한 지각적 브랜드 공간을 채우고 꿈과 공포, 환상이 투사된 신화의 상징적 세계를 창조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추천의 글
살 란다조는 브랜드가 우리의 무의식적인 자아, 즉 ‘우리의 의식적이지 않은; 자아에 중요하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제품은 우리의 의식적인 마음에 논리적인 소구를 해서 팔릴 수도 있지만, 브랜드는 개별적인 제품과는 전혀 다르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성적으로 구축되고,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성의 조류를 타고 우리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온다. 바로 이 부분에서 브랜드는 신화로 무의식의 공백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화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는 ‘치장된 현실’이다.
머리말
동일한 신화는 시간과 서로 다른 많은 문화에 걸쳐서 순환한다는 신화의 보편성은 신화가 우리 내면의 어디인가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심리학자인 칼 융이 말하기를, 신화는 진정으로 꿈처럼 영혼이나 무의식적인 정신으로부터 분사되는 투사물이라고 한다. 신화는 인간 속성의 집합적인 꿈, 본능적인 열망, 느낌, 그리고 사고의 패턴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인간에게 있어서 틀에 박힌 듯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형성하는 본능과 같은 기능을 하기도 한다.
제품을 신화화하거나, 우리의 꿈과 환상으로 포장하여 제품을 판다. 때때로 광고는 우리의 문화적 신화, 즉 우리의 삶과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 동일한 가치와 감성을 반영한다. 제품은 그것들이 신화적인 세계로 포장된 채 등장하거나 영웅적인 인물에 의해 일체화될 때 더 큰 호소력을 가진다.
융은 개인적인 이력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과거의 동떨어진 이미지와 사고의 유형들을 표현했던 정신병 환자들을 다룬 그의 작업에서 신화와 무의식적 정신과의 연관 관계를 밝히고 있다. 융은 신화, 연금술, 그리고 다른 고대의 신화를 이루는 (영혼이 느껴지는) 근원들에서 그와 동일한 또는 유사한 이미지를 발견했다. 융의 작업은 항상 환상이나 환영의 형태를 띠었던 ‘무의식에 대한 대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융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이미지와 실체에 직접적으로 대항했다.
프로이드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인간 정신의 무의식적인 구성 요소를 밝혔다. 그러나 융이 그랬던것처럼,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에도 이 낯선 저승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가능하다. 그것은 악한, 악마, 그리고 모든 유형의 낯선 실체들로 가득찬 세계, 즉 신화적 영역이다. 융은 무의식적인 정신이 신화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내면의 세계에 끌렸다. 무의식적인 정신은 신화가 발생한 근원이면서 동시에 창조성-예술, 시, 그리고 음악- 의 원천이다.
들어가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에 대한 정의는 ‘잘 말하여진 진실’이다.
광고의 고유한 힘은 소비자의 가치, 꿈, 그리고 환상을 반영하는 지각적 실체를 창조함으로써 브랜드를 성공적이고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광고는 제품을 신화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제품을 의인화하고 그 제품에 우리 자신을 반영하는 차별적 정체성, 개성과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브랜드로 만든다.
매디슨 애비뉴는 종종 꿈을 파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말해지곤 한다. 광고인들은 ‘꿈을 팔린다.’라는 강력한 진실을 발견해 왔다. 광고인들은 그들 제품을 우리의 꿈과 환상으로 포장하면 판매 소구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광고업계의 안팎에서 우리의 꿈, 즉 우리의 개별적이고 특유한 꿈이 아니라 집합적인 꿈, 미국의 꿈, 세계의 꿈을 이해하고자 많은 시간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신화의 영역이다.
신화와 꿈은 같은 곳(무의식적인 정신)에서 비롯된다. 신화는 문자 그대로 꿈-인류의 꿈-의 작품이다. 할리우드처럼 매디슨 애비뉴는 신화를 창조하는 일을 하는 곳이며, 우리의 가치, 감성과 생활 양식을 반영하고 형성 짓는 신화를 창조하고 영속케 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1부 새로운 시각
1장. 브랜드
브랜드가 물리적인 차원과 정신적인 차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의 고도의 경쟁과 새로운 통신 수단을 활용하는 마케팅 환경에서 더 나은 쥐덫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브랜드 정의
브랜드의 제품 측면
소비자들이 제품 신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최초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잠재적 제품 신화는 종종 소비자의 제품에 관한 지각 및 제품을 사용하는 그들의 동기에 대하여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잠재적 제품 신화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강력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브랜드 신화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샴페인과 향수와 같은 제품을 살 때, 그들은 제품만큼이나 매력적인 환상을 사는 것이다.
브랜드의 심리적 내용
브랜드는 심리적인 공간, 즉 소비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말보로 맨은 말보로 브랜드를 규정하는 신화적인 브랜드 캐릭터의 좋은 예이다.
브랜드는 투사물의 분사체로서의 기능을 하는데 이를 통해 광고주들은 소비자의 가치와 감성, 또는 상징, 즉 우리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표현하고 강화하는 방식을 투영한다. 모든 브랜드는 이미지, 심벌, 느낌과 연상에 대한 그 자신의 독특한 지각적 목록을 지닌 고유의 브랜드 신화를 갖고 있다.
브랜드 신화
브랜드 신화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브랜드가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브랜드에 관한 독특한 지각적 목록으로부터 나오며, 소비자 마음속에서 집합적으로 브랜드를 정의하는 심상, 심벌, 느낌과 가치의 복합체다.
광고는 이야기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즉 가상적인 인물, 장소, 상황 등을 활용하는 이야기체의 소설과 같은 기능을 한다. 광고는 이러한 기능을 통해 소비자를 끌어 들여 그들을 즐겁게 하고, 브랜드의 속성과 편익(물리적이면서 정서적인)을 전달 하며, 소비자 마음속에 브랜드를 지각적으로 정립시킨다. 광고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다가가서 그 속에 매력적인 신화적 세계와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게 한다. 광고를 통해 창조되고, 전달된 모든 이미지, 심벌, 느낌과 연상은 브랜드의 지각적 목록의 일부가 된다.
잠재적 제품 신화 대 브랜드 신화
요구르트의 건강, 편익, 즉 요구르트를 먹는 사람들(구소련의 그루지아 공화국에 있는)이 더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 신화를 창조하고자 했다. 이 브랜드 신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바로 요구르트를 둘러싸고 있는 사실, 민속, 신념 등과 같은 잠재적 제품 신화로부터 나온 것이다. (동유럽의 역사와 민속에서는 요구르트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거뜬히 100살 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브랜드 컨셉트
브랜드 컨셉트는 제품 구성 요소(제품 속성과 제품 면익)와 지각적 구성 요소[사용자 이미지, 정서적/심리적 편익, 브랜드의 혼, 브랜드 개성,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브랜드 포지셔닝]로 나뉘어진다.
브랜드 컨셉트: 제품 구성 요소
구체적인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다.
하나의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구별하는 제품/서비스 속성은 이상적으로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것이어야 하고, 그러한 속성은 믿을 수 있고 동시에 동기를 부여하는 직접적인 제품/서비스 편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제품군에서 제품과 서비스가 매우 유사해서 독특하고 차별화되는 제품 속성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브랜드 컨셉트: 지각적 구성 요소
사용자 이미지는 광고주들이 그들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리고 싶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다.
브랜드 영혼
브랜드의 일반적인 정체성 또는 이미지 및 개성은 브랜드의 영혼과 일치해야 한다.
한 개인이 어떤 제품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때때로 그 개인에 대한 타인의 반응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력이 없는 물체도 사회적 가치 시스템 구조내에서의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역동적이고 감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위 ‘영혼’ 이라는 명확한 심리적 내용을 갖고 있다. [ 어떤 종류의 소유물이든 정말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힘의 확장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소유는 우리가 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을 어느 정도 보상해 준다. … 소유물들은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가 벌거벗은 우리의 왜소한 골격 이상의 것이라고 느끼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는 것에 대한 실체적인 표현물로 그 소유물들에 집착한다. 작은 아이가 온힘을 다해, 한 조각의 천이나 한 인형에 집착하는 것을 볼 때, 비로소 당신은 소유의 힘을 이해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디히터 1960 ]
브랜드 개성
브랜드 개성은 제품을 의인화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소비자들은 캠벨 수프하면 ‘모범적인 미국의 전형적인 엄마’, 즉 따뜻하게 보살피고 양육하는 엄마로 인식한다.
브랜드 개성은 종종 브랜드 정체성 또는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관되면서도, 때로는 이들과 혼동되기도 하는 개념이다. 그 둘은 관계는 있지만 다르다. 브랜드 개성은 브랜드 전체의 정체성이나 이미지의 한 측면일 뿐이다.
종종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개성을 놀랄 만큼 자세하게 묘사해 나갈 수 있다.
개성의 자각은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그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독특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브랜드를 의인화하는 것은 제품을 인간화하고 개인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보다 쉽게 제품과의 정서적 유대를 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
브랜드 이미지는 제품 구성 요소와 지각적 구성 요소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캠벨 수프의 이미지는 품질이 좋은 제품, 건강함, 엄마, 아이들, 미국적이라는 감정을 연상케 하는 신뢰받는 브랜드 이름일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는 강력하고 오래 지속하는 브랜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브랜드 이미지’와 ‘브랜드 정체’라는 용어는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 정체성이 없다면 제품은 독특한 브랜드라기보다는 단순히 제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랜드 정체성이 없다면, 캠벨 수프는 하나의 수프로 지각될 뿐 브랜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캠벨 수프로 연상되는 심상, 지각, 그리고 느낌이야말로 캠벨 수프에 캠벨 고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이라는 특성이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브랜드 정체성과 브랜드 개성은 표적 소비자들의 구체적인 가치, 생활 양식과 감성을 대변하거나 또는 이러한 요인들이 나타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반영하여야 한다. 우리의 표적 소비자에게 소구하지 않는 브랜드 정체성과 브랜드 개성은 기껏 해봐야 브랜드를 위해 그 어떤 무엇도 하지 못한다.
비틀의 이미지와 개성은 반문화적인 사람들의 가치 및 감성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 당시 비틀은 마케팅이 만들어낸 대단한 성공이었다. 1970년대 들어 폭스바겐은 래빗을 출시했는데, 폭스바겐이 소비자에게 보다 나은 차를 제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적합한 이미지와 개성을 창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투영된 브랜드 정체성과 브랜드 개성이 소비자들이 그들 자신을 보는 방식이나 그들 자신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방식과 일치하지 않을 때, 소비자들은 인지적 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정보가 우리의 현재 가치 및 신념과 일치하면, 현재의 인지적 구조와 조화를 잘 이루어 쉽게 동화된다고 한다.
만약 정보가 우리의 현재 신념 및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인지적 부조화 상태를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정보와 현재의 신념 및 가치 사이의 부조화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소비자들은 심리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와 개성에서 편안함을 느낄 필요가 있다. 이런 까닭에,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 자신의 개성, 신념, 그리고 가치나 이상적인 소견 등과 동일시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어떤 수준에서 소비자들은 그들이 선택하는 브랜드를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에르 마르티노는 “… 단순한 유기체적인 행동을 제외하고, 인간 행동의 모든 행위는 자기 표현의 한 형태다. 그것은 내면적 자아의 상징적 표현이다. 나는 나의 동기력을 만족시키고 나의 자아 개념과 상징적으로 일치하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에 드는 적절한 브랜드 정체성은 당신의 제품을 인간화하고 개인화한다.
소비자와 제품 간의 정서적 유대 형성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래 학자 제프 할렛은 소비자가 ‘당신의 브랜드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브랜드 포지셔닝
지각적 포지셔닝이 심리적 공간(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광고주들은 소비자의 정서적/심리적 편익을 아울러 약속하는 지각적 포지셔닝을 창조하기 위해서 물리적 제품 속성과 편익 그 이상의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해병대라는 브랜드는 ‘엘리트 군대/전사 조직’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해병대를 입대를 고려하는 강력한 이유는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성적인 것이다. 여러분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여러분이야말로 ‘소수의 자랑스럽고, 용감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될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해병대들은 그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용기, 조국에 대한 의무에 바탕을 둔 자랑스러운 전통, 그리고 전사의 신화를 갖고 있다. 광고는 미 해병대의 강하고, 감성적인 포지셔닝을 전달하고 강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력하고, 매력적인 전사 신화’를 전달 하고 있다.
바다는 유사 이래로 사람들의 매혹을 끄는 것이었으며, 빠져들 듯한 강하고 풍부한 매력을 지닌 신화다.
“광고는 생명력 있는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신화와 심벌의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2. 신화적 영역
신화에 대한 정의는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우리가 형식적으로 신화라고 간주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을 신화화하거나 치장하는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 모비 딕은 신화이며, 지난밤에 본 버드와이저 맥주 광고도 또한 신화인 것이다.
신화로서의 모든 것
프랑스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신화를 소위 ‘연설의 형태’, ‘기호학적 체계’, 그리고 ‘의미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가정하였다.
“레슬링이 가지는 최대의 가치는 그것이 굉장한 구경거리라는 점이다.” ‘고통, 패배, 정의와 같은 그 대단한 구경거리’가 주는 줄거움에 비하면, 레슬링에서 이기고 지는 것 또한 그것이 각본에 의한 것인지 또는 각본에 없던 상황인지에 관한 의문은 대중들에게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신화라는 바르트의 말은 칸트의 발자취에서처럼 객관적인 현실은 존재치 않고 다만 모든 것은 지각적인 것이라고 믿었던 포스트 모던의 감각과 일치하는 것이다. 칸트는 사람은 지식을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지식을 해석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설명적이다.
반면 가장 의미가 있을 법한 신화는 단순히 현실을 변형시키거나 치장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들이다. 신화는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중심이 잡힌듯한 느낌을 주며, 우리의 삶을 구체화하고 영혼을 살찌우는 데 도움을 준다.
헤이지그는 ‘신화화하기’는 “삶의 경험에 대한 보편적이며, 집단적이고 순환적 형식의 정신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든 형태의 상징적인 가공의 이야기, 또는 영혼이라는 관점에서 본 인간에 대한 묘사다.”
‘신화화하기’ 에 대한 정의는 특히 광고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광고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목표 소비자의 가치,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감각들을 반영하는 일종의 이야기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조셉 캠벨은 상이한 수준에서 신화의 기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신적 기능
“… 우주가 얼마나 경이로우며, 당신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깨닫고, 이러한 오묘함 앞에 경외심을 경험하는 것”
우주론적 기능
“우주와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
사회적 기능
“특정의 사회 질서를 지원하고 정당화함”
교육학적
“어떤 환경하에서도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
현대 인류의 신화적 경험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신화들은 기본적으로 해설식의 이야기 형태다. 이러한 이야기 형태는 신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주와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헝가리 사회학자 케리니는
[ 우리는 영혼의 위대한 실체, 즉 완전히 진정한 신화가 속하는 세계에 대한 즉각적인 느낌을 상실해 왔다. 이러한 상실은 정확히 말하면 너무나도 자발적이고, 유용한, 그리고 효율적인 과학 때문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컵 안에 든 마실 것에 대해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기 때문에, 오랜 경험을 통해 음료수를 마셔왔던 사람들보다도 그 음료에 대해 훨씬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기까지 해야만 한다. 즉, “어떤 의미에서든 여전히 신화에 대한 즉각적인 경험과 즐거움이 가능한가?”라고 ]
칼 융은 어떤 면에서는 왜 신화적 접근이 과학적인 접근에 비해 월등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 마음속의 모습으로 비추어볼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며 영원의 모습을 가진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는 오로지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신화는 보다 개인적이며, 과학에 비해 훨씬 정확하게 삶을 표현한다. 과학은 평균의 개념을 주 대상으로 다룬다. 그러나 평균의 개념은 지나치게 일반적이어서 개인적 삶의 주관적 다양성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자연, 즉 산과 강, 나무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더 이상 가지질 않는다. 숲은 더 이상 요정이나 님프를 만날 수 있는 매혹적인 장소가 아니다.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을 영혼의 깊은 곳에서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경험한다.
신화적 경험의 근원
캠벨은 신화는 글자 그대로 꿈을 만드는 재료라고 말한다.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비롯된다. … 신화는 세계의 꿈이며…, 삼라만상의 노래다.” 칼 융은 신화는 정신적인 투사물이라고 말한다. “신화는 제일 먼저 영혼의 속성을 드러내는 정신적인 현상이다..”
바꾸어 말해, 고대 그리스의 신화는 단순히 오락적인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들은 아주 먼 예전부터 모든 문화권에 걸쳐 존재해 왔던 인간 경험의 전형적인 유형들을 그리고 있다.
캠벨은 소위 “영감은 무의식에서부터 온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의식적 정신세계
집단적 무의식은 개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는 것이다.
원형
..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집단적, 보편적, 비개인적 본성이라는 제2의 정신체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집단적 무의식은 개별적으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는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형식인 원형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원형들만이 이차적으로 의식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원형들은 특정의 정신적 세계의 내용들에 대한 명확한 형식을 갖게 해준다.
융의 제자인 에리히 노이만은 “삶의 여정에서 모든 사람은 인류의 삶 속에서 의식의 진화를 결정하는 똑 같은 원형적 단계를 걸쳐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노이만은 그의 저서 ‘위대한 어머니’에서 초기 인간의 삶 속에서의 원형적 이미지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초기의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대상에 투영하는 원형적 이미지를 형성함으로써 그 세상을 신화적으로 인식했다. 예를 들어, 아이는 그의 어머니에게 대모의 원형, 즉 모든 일에 있어서 아이가 의지하는 강력한 초자연적인 여성의 실체를 경험한다. 또한 아이의 개인적인 어머니라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후에 아이의 자아와 의식이 보다 발전되었을 때, 아이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역사적인 여성이 되고 아이는 이를 경험한다. ]
모성은 대모의 원형으로 크고, 따스하게 자신을 돌봐 주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영원한 존재다.
전사의 원형 : 힘, 독립심, 용기
무의식과의 대면
환영은 신화를 창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꽤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무의식 내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세계의 존재에 대해 거의 깨닫지 못하거나 때로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로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며,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믿고 시어한다. 통제 불가능한 인간 정신세계에 위력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일 수 있으며, 때때로 공포감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현실과 꿈을 혼돈하는 일은 흔한 현상이다. 11세가 될 때까지 아이들의 사고는 대단히 정확하고 상세하게 시각적 이미지를 회상하는 강력한 능력을 갖는 특징이 있다.
어린 그레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있는 동안 형은 “그들이 다가 오고 있어, 그레이! 그들이 다가 오고 있어.” 라고 낮은 소리로 말하곤 하였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막연히 ‘그들’이라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어린 동생의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해서 스스로 상상을 시작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융 학설의 분석가인 제임스 헤이지그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어떠한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 그것은 어떤 힘에 의해 미지의 통제 불가능한, 그렇지만 두렵고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매혹적인 일상적 자아를 차지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완전히 다른 존재여서 우리의 언어로 그것을 거부할 때만 비로소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창조적 힘으로서의 무의식적 정신세계
예술가들의 신화 창조적 상상력들을 자기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시인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강한 이미지와 비유적 표현들을 종합하여 의미 있게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잡을 수 없는 삶의 환영적 이미지”다.
[ 모비딕을 찾아 헤매는 것은 초자연적인 전원시로 잃혀지는데, 다시 말해 광활한 바다가 인간의 거울 이미지의 역할을 하는 나르시수스 신화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세이코 계곡으로 시작되는 전원시에서는 ‘완전한 황홀경에 빠지게’ 도니다. –소나무가 어느 목동의 머리 위의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있고,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황홀경은 다시 나타난다. 악몽이나 백일몽, 또는 마법에 걸린 상태를 오가며 이 책은 계속해서 황홀경을 제시한다. 이러한 것은 다시 반복된다. –비버]
무의식의 신화적 영역으로부터 나온 듯한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마왕>이다. 이것은 1815년에 슈베르트가 겨우 18세 때 만든 독일 민요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를 그의 음악에 실었다. 그 시는 요정왕에 관한 전설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요정의 손길이 닿는 것은 모두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창조적이고 위대한 작품들 중 다수가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신화적 경험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경험이다.
케리니는 무의식이라는 영적 경험을 신화적 경험이라는 것과 결부시켜 생각한다. 케레니는 신화적 경험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영혼의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의 경험을 의미하며, ‘신’ 과의 대면을 뜻한다.
왜 사람들은 신화를 필요로 하는가?
무의식적 정신세계는 궁극적으로 신화적 경험에 대한 원천과 보고가 되기 때문이다. 신화의 힘, 그리고 원형적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상징들은 무의식적 정신세계 –즉 우리의 원시적, 본능적 영혼- 로부터 나온다. 신화에 투사된 일반적 이미지와 인간 행동의 양식은 무의식적 정신세계에서 발생하며, 인류의 세상에 대한 영적 경험을 드러낸다. 신화와 상징은 지식이라는 장벽을 깨고 나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데에 그 힘이 있다.
신화는 대개 영원히 끊이지 않는 실존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즉,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무엇이 중요한가? 신화는 사람들이 세계와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이해하기 위한 고뇌에 해답을 던져준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고뇌를 겪어온 사람들을 묘사하는 신화를 통해 위안을 얻고 밑거름으로 삼는다. 궁극적으로 신화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정체성의 문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기 쉬운 현대 사회에서 더욱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가고있다. 이제 사람들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신적 안정을 찾아야 한다.
성장과 물질적 이윤을 계속적으로 증가시키려 하는 소비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소를 띠고 반짝이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세일즈맨이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의 지향으로 탄생한 현대 서구 문화에서, 신화로부터 얻는 정신적인 이익은 이전의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화는 인간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일조한다. 신화는 원형적이거나 또는 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양식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청사진을 제공한다.
삶은 영웅적 여정이다. 그들은 태어나려고 애쓴다. 그들은 일생을 통해 자신의 행로를 찾으려 애쓰다 죽는다. 그들은 어떤 도움을 받기도 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 신화는 에토스(민족 정신)를 제공하며, 우리의 문화를 정의하는 신앙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이러한 정의는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가, 즉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데 유용한 잣대가 된다. 신화 없이는 도덕적 규범도, 가치도 우리를 인도하는 신앙도 있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현대인들은 점점 탈신화적, 탈마법적 세계에 살게 되었다. 메이는 미국 사회에서 폭력이 증가하는 것과 돈에 대한 집착이 증가하는 원인은 그들의 ‘신화 상실’에 있다고 본다.
현대에서 신화를 가꾸고 보존 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할 일이다. “예술가들의 역할은 우리의 환경과 세상을 신화화하는 것이다.”
브랜드는 심리적인 공간에 –즉, 소비자의 마음속에 – 살아 있는 인지적 존재다. 광고는 이러한 인지적인 브랜드 공간을 채우고, 인간의 꿈과 공포, 환상이 투사된 신화- 상징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무의식적인 세계와 직감, 그리고 본능적인 영감을 살펴서 창조해야 한다.
제품을 신화화함으로써 그러한 감정적 유대를 창조한다. 제품을 의인화한다. 그러한 제품에 그것만의 정체성과 개성, 그리고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말이다. 광고는 소비자의 꿈과 환상으로 브랜드를 포장함으로써 이를 신화화한다.
2부 신화
3. 여성 신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표적인 소비자에 대해 감정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성 정체성
성 정체성이란 성에 관련된 개개인의 정체성 또는 자아 개념의 측면들을 말한다. 개개인의 정신 발달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무의식적 존재로부터 자아(에고)를 인식하는 존재로까지 나아간다. 사람이 점점 성장하고 자아의식이 생기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가, 즉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자아의식이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성 정체성(남성의식/여성의식)은 한 개인의 전체적인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광고 상표들은 소비자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이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신화를 창조해 낸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광고주들이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자아의식을 지배하는 성 정체성(남성과 여성)을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여성 사용자의 이미지와 여성 신화가 의도된 표적 여성들의 가치, 감정,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과 동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 제품은 소비자들에 의해 거절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사용하는 강력한 자극이 될 수 있는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에 대한 소비자의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성 특수적인 광고를 채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은 소비자들이 그 특정 브랜드를 사용하게 하는 강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들에게 중요한 것들, 즉 그들의 유사성과 차별성, 그들의 신화, 그리고 그들의 신화가 어떻게 그들의 지각과 그들의 삶을 형성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추적 접근
여기서 부터는 유추적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지난밤의 파티가 어떠했는가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은 “그것은 마치 장례식 같았어.” 또는 “지옥의 파티 같았어.”라고 말할 것이다. 유추는 그것들을 유사한 것들과 연계시킴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표현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 지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더 길고, 더 느리고, 더욱 끈기가 요구되는 이성적 조합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와 같은 힘과 신속함을 갖고 횡단하는 더 짧은 상상의 통로다. 그 상상력이 고대 유물과 직접적으로 부딪혔을 때, 상상(환상)은 어떤 중간 매개가 필요 없이 단 한번에 진리를 사로잡아 버린다. 즉, 두번째의 방법으로 획득된 지식은 이해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더욱 생생하고 대단히 다채로운 것이다.]
[무의식의 방식은 다르다. 상징은 설명되거나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것들 주변에서 형성된다. … 각각의 상징은 이해 대상의 또 다른 본질적인 측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또 다른 의미의 일면을 지적한다. 이렇게 문제의 축으로 모이는 상징들의 정전은 응집적 상징 그룹으로 그 상징들이 가리키는 것과 그것들이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신화, 그리고 신화를 만들어내는 그 밖의 자료들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 재료는 종종 전통적인 조사 기법들로는 할 수 없는 통찰력과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융에 의하면, 모든 상징적 재료는 원형적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더한층 깊은 차원에서 나온다.
[상징은 암시를 불러일으키지만, 말은 단지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상징은 한 번에 모든 인간 정신 속에서 수많은 것들을 뽑아내지만, 말은 한 번에 하나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상징은 영혼의 가장 비밀스러운 심연에 뿌리를 두지만, 언어는 부드러운 미풍처럼 이해의 표면을 스쳐간다. 상징은 내부를 향하여 말하지만, 언어는 외부를 향하여 말한다. ] 그리고 노이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징은 유추다. 이는 하나의 등식이라기보다 동의의 개념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넘칠뿐 아니라, 애매한 의미들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모순적인 유추들이 모여 있는 일단의 상징들만이 미지의 것과 의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의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여성성의 측면
모든 신화의 핵심에는 본질적으로 신화를 끌어내어 사람들의 삶을 형성하는 상징, 즉 원형의 이미지가 있다. 무의식적 정신은 신화의 뿌리가 되는 인간 사고의 유형과 상징적이고 원형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말을 한다. 융은 무의식이 남성, 여성 모두에 존재하고 있고,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모두의 측면을 나타내는 원형을 포함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은 모두 전사의 원형이 나타내는 투쟁적인 본능, 즉 공격적 본능을 갖는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모두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에 의해 상징되는 모성 본능인 양육 본능을 갖는다.
어떻게 문화적 신화가 삶을 형성하는가
존 웨인 신화는 전사의 원형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의 덕목은 용기, 독립, 그리고 힘이었다. 존 웨인 신화에서 남성들은 존 웨인이 영화에서 연기했던 인물들과 동일시 된다. 즉, 터프하고 감정을 드러내거나 울부짖지 않는 강하고 조용한 인물이 된다. 도나 리드 신화는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 덕목은 양육과 보호, 그리고 사랑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주부들을 겨냥한 수많은 광고물들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하는 ‘모성애’, 즉 모성 본능을 상징하는 이미지인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에 기초하고 있다. 원형적 이미지는 사람들이 의식의 상태에서뿐만 아니라 더욱 심오하고 본능적이며 감정적인 차원에서도 그 같은 원형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원형에 대해서 인간은 거의 대부분 정서적으로 반응한다.
‘여성’ 원형
힐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모두에 대해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정적인 남성다움과 동적인 남성다움”, 그리고 “정적인 여성다움과 동적인 여성다움”으로 구분한다.
정적인 여성: ‘위대한 어머니’
에리히 노이만은 여성 이미지의 정적인 측면(뉴만은 기본적 특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은 무엇인가를 ‘담는 것’이라 설명한다. 노이만에 의하면 여성적 상징의 대표적인 것은 배다. “기초적인 상징적 등식, 즉 여성=몸=배는 아마도 여성두움에 대해 인류(남성뿐 아니라 여성)가 경험하는 가장 기본적인 등식일 것이다. 그리고 힐은 “여성 본질의 정적인 측면은 자궁-촉촉하고, 비밀스러우며, 그 안에 잉태하고 있는 것을 둘러싸 꼭 붙들고 있는-에서 그 기본적인 이미지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여성의 정적인 측면은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위대한 어머니는 영원한 요람이며 양육자로 여성에 관한 보편적인 이미지다. 이는 모든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태고 적부터 존재해 왔던 여성의 이미지다.
초기의 남성들이 어머니와 그 아이 사이의 사랑이 각별하다는 사실에 감여을 받았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바호펜이 지적하였듯이, 초기의 남성들은 신체적으로 더욱 강했음에도 여성을 경외시하고 숭배하였다. 실제로 헬레니즘 이전의 문화들은 모두 여신을 숭배하였고 모계사회였다. 즉 모든 부와 권력이 어머니에게서 딸로 상속되었다.
정적인 여성을 나타내는 위대한 어머니 원형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위대한 어머니 원형은 인생의 최초의 요람, 생명의 기여자, 양분, 따뜻함, 그리고 보호를 상징한다. 융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원형이란 “…발생의 장소, 즉 자연을 가리킨다. … 그것은 또한 무의식과 우리의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삶, 심리적인 영역, 즉 우리가 살고 담겨 있는 몸을 의미한다. 또한 ‘어머니’는 자궁이며, 속이 텅 비어 있는 것, 즉 운반하고 양분을 주는 그릇이기 때문에, 따라서 심리적인 의식의 기초를 상징한다.
다른 모든 원형들처럼 위대한 어머니는 스스로 상징적 표준을 갖고 있다. “깊은 것은 무엇이든-심연, 계곡, 땅과 바다, 그리고 바다의 밑, 샘, 호수, 연못, 대지, 지하세계, 동굴, 집, 도시,- 모두 이 원형의 일부다.” 위대한 어머니와 대지 사이에는 매우 분명한 연계가 있다. 대개 기술 이전의 문화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대지의 여신을 숭배하였다. 대지는 땅의 모든 창조물들을 풍요롭게 하고 유지시키는 위대한 어머니로 인식되었다.
남성들은 여성의 성이 갖고 있는 유혹적인 힘, 출산력, 그리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여성의 신비성을 숭배하는 동시에 두려워하였다.
초기 모계사회의 여신 문화는 남성이 지배하였던 남성의 전사 문화로 대체되었다. 한편으로 남성은 여성의 성이 가진 유혹적인 힘에 굴복당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자연의 도구가 되어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 한편으로 남성은 그가 여성의 성욕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두려워한다. 즉, 남성은 여성이 다른 남성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성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암내 나는 여성’ 이 그를 배신하고, 어떤 그럴듯한 남성과 짝을 맺음으로써 자신이 부정한 아내의 남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두려워한다. 그녀는 다른 남성에 의해 임신을 하고, 그에게 그의 아이라고 믿게 함으로써 그를 속일 수도 있다. 남성은 실제로 그들의 아이들이 실제 자신의 아이들인지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성을 믿지 못할 존재로, 배반할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가부장제적인 유대-기독교 신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이브가 여성의 성욕, 즉 자연적인 여성의 본능을 따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남성은 수많은 종교적, 사회적 제도, 즉 남성이 만든 법률과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다 이용하여 여성의 성욕을 통제하려 하였다.
위대한 어머니는 또한 성장하는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출생과 죽음의 끊임없는 순환을 갖는 늪지의 원시세계-를 지배한다.
어머니와 딸
정신분석학자들은 어머니-딸의 관계가 어머니-아들의 관계와는 매우 다르다고 설명한다. 아들은 남성이기 때문에 일찍이 그는 어머니와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그는 그 자신만의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어머니로부터 그 자신을 격리시켜야만 한다. 다른 한편으로 딸은 그녀의 어머니와 계속해서 동일시 한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딸을 그녀 자신의 확장으로서 본다. 딸은 그녀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 그녀는 어머니가 되어야만 한다. “원형적 차원에서 볼 때, 아들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녀 내면의 탐색 이미지를 가지지만, 딸은 그녀 자신의 확장이다.”
무시무시한 어머니
위대한 어머니로 상징되는 여성 원형의 정적인 측면은 부정적인 측면 또한 갖고 있다. “커다란 그릇, 이것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빠르게 담아내어 이를 변치 않는 존재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으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것은 그것에 속하며 그것에 종속된다. 그리고 그 개체가 독립적으로 될지라도, 원형적 여성은 그의 독립을 그녀의 영속적 존재의 하찮은 변형으로 귀결시킨다.”
위대한 어머니 원형이 갖고 있는 무시무시한 어머니의 측면을 그토록 불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녀가 매력적이며 유혹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성의 옷(실제로 아직도 카톨릭 사제들이 입는 옷에서 볼 수 있음)을 입음으로써, 거세된 사제는 그의 남성성을 거부하고 그 자신을 위대한 어머니에게 완전히 맡긴다.
위대한 어머니의 부정적인 측면은 뱀으로 된 머리카락, 수염, 그리고 돌출된 혀로 괴물들을 집어삼키는 날개 달린 고르곤 등으로 종종 표현된다. 모든 영웅 신화는 무시무시한 어머니의 유혹적인 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인간의 투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를 얻기 전에 메두사를 죽여야만 한다. 페르세우스는 무의식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인간의 영웅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영웅 신화다.
‘동적인’ 여성: ‘처녀/아가씨’
처녀 원형의 예는 문학의 뮤즈신, 요정,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은 남성이 위대해지도록 고무하는 매혹적인 여성 창조물들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여성성의 아주 중요한 측면이었다. 여성의 미는 여성의 자기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과 연결되어 있고, 또한 남성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젊은 소녀들은 그들이 남성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닫는다.
카밀 패글리아는 여성들은 강하고 고집이 세지만, ‘매우 섹시’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패글리아는 도나 밀스를 보고 “동시대에 살고 있는 여인으로서 완벽한 여성 실업가는 빈틈없고, 정신적으로 기민하고, 예민하며, 게다가 매우 섹시하기까지 하다. …”라고 하였다.
십대 소녀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십대 소년들과 소녀들이 집착하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의 시간, 에너지, 돈의 대부분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서슴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보이는가(외모)에 대해 집착하고 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쇼핑하고, 그들의 외모를 좋게 보일 수 있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한다고 답하였다. 이 같은 대답은 일반적으로 십대 소년들이 자동차나 스포츠에 집착할 것이라는 소녀들의 믿음과 대조적인 것이다.
동적인 여성 처녀 원형의 부정적인 면: ‘처녀’ 또는 ‘창녀’
처녀/아가씨의 원형의 극단적 측면은 창녀 또는 매춘부다.
고전 신화에서 동적인 여성 처녀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닉시(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나 사이렌들, 그리고 젊은 남성들을 유혹하여 그들로부터 생명을 빨아들이는 나무 요정들에서 따온 것이다. 라인강에 거주하며, 사공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배를 바위에 부딪치게 하는 매혹적인 여성적 창조물인 로렐라이는 처녀/창녀 원형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예이다.
어떤 고대 성서에 따르면 이브가 아닌 릴리스가 실제 최초의 여성이었다. 릴리스는 여호와를 거부하였고 성교하는 동안 아담의 밑에 눕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 그녀는 아담과 동등하다고 믿었고, 그가 바라는 것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릴리스는 종종 악마 또는 마녀로 묘사된다. 고대 수메르 문화에서 또한 원형적인 릴리스 캐릭터에 대한 설이 있다. 즉, 미혼의 길들여지지 않은 여신인 이난나는 전쟁 일으키기를 좋아하고 사랑에도 잘 빠졌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용하고 버리기를 즐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난나는 남성들을 이용하고 버리기를 즐겼다. 그녀의 미와 신비적인 여성적 매력은 대개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며, 남성에 대해 최면적이고 유혹적인 힘을 갖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스파이였던 이국적 댄서인 마타하리는 당대의 유명한 요부다. ‘벨벳과 같은 눈을 가진 스파이’로 알려진 그녀.
어떤 차원에서 보면 요부는 원시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위대한 어머니의 음탕하면서도 무감정적이며, 생식력을 가지는 힘에 사로잡힐 것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상징한다. 패글리아는 북미 인디언들의 이가 있는 질에 관한 신화를 지적 하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것은 여성이 갖고 있는 힘과 그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섬뜩할 정도로 직접적으로 나타낸 신화다. 남성이 여성의 몸 안으로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은유적으로 모든 질은 불가사의한 이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관계를 가질 때 남성은 그를 잡고 있는 무시무시한 이빨의 힘에 의해 소모되고, 다시 풀려진다.”
원형적 여정
삶은 성스러운 여정이다. 우리는 모두 순수를 상징하는 어린이 원형으로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고아의 원형으로 옮아가며, 이윽고 그 밖의 다양한 원형들을 거친다. 캐롤 퍼어슨은 ‘그 안에서의 영웅’에서 주요 원형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원형에는 세계관과 다양한 삶의 목적과 삶의 의미에 대한 지론이 담겨져 있다. 고아들은 안정을 추구하고, 누군가에게 이용되고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순교자들은 구원받기를 바라며, 세상을 선(보호와 책임)과 악(이기심과 착취) 사이의 대결로 본다. 방랑자들은 자립하고자하며, 무엇인가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 전사들은 강해지고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자, 그리고 유능하고 적극적으로 되고자 노력한다. 마법사들은 그들 내면의 지혜에 충실하고 우주 삼라만상의 에너지와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들은 불확실한 것과 피상적인 것들을 피하려고 한다.]
남성들은 매우 어린 나이에 전사의 원형을 주입 받는다. 어린 소년들은 강하고 독립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키워진다. “강해져라, 울지 말아라, 단단해져라.” 남성들은 아주 일찍부터 아이의 양육에 관여하지 말 것과 감정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말 것을 학습해 왔다. 이러한 것은 남성답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들은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 즉 희생자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어린 소녀들은 예의바르고, 섬세하고, 친절하고, 누군가를 돌보도록 교육받는다.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은 결혼에까지 이어지는데, 여기서 여성들은 어머니 원형(보호와 양육이 다시 요구되는)을 받아들인다. 남성들이 자신들로 하여금 누군가를 돌보고 양육하는 측면을 드러내게 하는 원형들을 피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까지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전사적 원형을 멀리한다. 여성운동의 매우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여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여성의 원형들’로부터 벗어나 전사와 방랑자로서의 삶을 경험하도록 고취시켰다는 것이다. 동시에 전통에서 벗어난 역할을 하는 여성들을 목격하는 일은 남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으로 오직 여성에게만 연상되어 왔던 돌보는 사람의 원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양육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지각하도록 고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여자 전사-영웅은 많이 있다. 잔다르크 등.
그러나 동시대 서구 문화에서 자라고 있는 대부분의 어린 소녀들은 전사-영웅 역할의 원형(모델)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반면에 남성 역할 모델은 거의 전적으로 전사-영웅 원형에 기초하고 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원형적 전사 영웅, 고독한 방랑자, 슈퍼맨 형태의 초영웅들이 다른 원형 모델보다 본질적으로 더 훌륭한 것이라 믿게끔 인도되어 왔다. 이것은 어디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것이 표현하는 고독한 방랑자 신화나 전사-카우보이 정신은 일본에서는 평가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일본은 카우보이-영웅 원형에 의해 상징되는 공격적이고 ‘거친 개인주의’에 비해, 조화와 공동체의 강력한 인식을 중히 여기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역할 모델 문제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광고주들은 여성을 위한 전사-영웅 역할 모델(지금의 사회가 그렇듯이)을 더 많이 만들어내도록 노력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인이 그들의 문화적인 가치를 공격과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도록 변화시켜, 여성 원형적 가치들인 동정, 친절, 보호에 동등한 가치를 두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전사-영웅 가치들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인류는 공격과 적대심이 가득 찬 세상에 남겨지게 되었다. 퍼어슨은 관심과 사랑을 주는 원형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 초기 가부장제 사회에서 전사로서의 남성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관심과 사랑을 주는 여성들의 역할에 의해 균형을 이루었다. 부분적으로는 여성들이 사회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기능들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는 데에서 지금의 여성운동이 고무되었지만, 그러한 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존경받거나 보상받지 못한다. 많은 여성이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더 큰 보상을 주는 역할을 찾으려고- 남성들은 그 빈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를 느낀다. 누가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 누가 우리의 가정을 유지할 것인가? 누가 나이든 사람들을 돌볼 것인가? 누가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 이 나라에서는 공격과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고 말해 부모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는 아이들이 적어도, 동정과 보호를 배울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아마조니즘
아마조니즘은 여성전사에 대한 극단적 표현이다. 아마존이라는 단어는 ‘젖가슴이 없는’이란 뜻을 의미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아마존 여성들은 활을 잘당기기 위해 한쪽 젖가슴을 잘랐다고 한다. 실제 아마존 여성들이 존재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정신에 아마존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호펜은 램노스 여성들에 관한 신화의 상징적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아프로디테는 램노스의 여성들이 그녀의 무의식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적대심을 가졌다. 그 의미는 명백하다. 램노스의 여성들은 여성의 임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아마존의 호전적인 삶에서 더 큰 행복을 찾았다. 따라서 아프로디테의 법칙(즉,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여성 제1의 의무)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호전적인 용맹성이 모성보다 우선시되었다. … 호전적인 용맹성은 모든 여성의 매력을 소멸시킨다.]
아마조니즘 현상은 <셀마와 루이스>, <원초적 본능>에서 보여진다.
변화하는 여성의 역할
현대 사회는 여성들은 집 밖에서의 평생직업을 추구하고 있고, 오직 남성들에게만 개방되었던 일과 전문직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다.(( 동양은 조금 늦다. 동양의 사상 때문이지 않을까?))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수용
여성들이 그들의 남성적인 면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인다. 남성들이 그들의 남성다움에 확신하고 있는 것보다 여성들은 그들의 여성다움과 여성성에 더욱 확신을 가진다. 게다가 여성은 그들의 남성적인 측면을 개발함으로써 여성들은 점점 더 넓게 세상을 품게 되고 권력을 갖게 된다.
사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은 점점 슈퍼우먼 신화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다. 머독은 여성들이 그들의 여성다움과 거리가 먼 남성의 세계에서 남성들처럼 너무 바쁘게 경쟁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신화를 추구하는 여성들
여성운동에 의해 자극을 받게 되면서, 여성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구시대적인 낡은 정의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공신력 있는 새로운 정의를 개정하고, 새로운 여성 신화를 이룩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현재 십대 소녀들이 ‘여성적’ 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미국 이야기겠징..--))
여성 신화가 없게 되면, 많은 십대 소녀들은 소년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을 해야 한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믿음은 매체에 의해 더욱 강화되면서, 여성들이 점점 폭력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십대 소년들은 여자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을 소녀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더욱 사내답고 폭력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특유한 여성적 능력과 다시 조우해야 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새로이 출현하는 여성 신화
새롭게 출현하는 여성 신화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더 큰 변화와 다양성에 있다. 전사, 방랑자, 마법사 같은 원형에 기초한 여성의 형상까지 확대될 것이다.
새로이 출현하는 여성 신화는 여성의 삶의 행동에 더 큰 자유와 다양성을 가져다줄 새로운 사조 또는 일련의 지도적인 신념을 창조할 것이다.
새로운 여성 신화는 사람들이 예전에 보아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다양하고 분화된 생활 양식과 감각들을 내포하게 될 것이다.
4장 남성 신화
의식의 여명
초기의 인간들에게 세상은 두려운 장소이었음이 틀림없다. 노이만은 인간 자의식 출현의 무력과 연약함, 그리고 인간이 세상 밖과 세상 안의 안쪽에서 직면하는 공포를 잘 묘사하고 있다.
[ 자아의식은… 스스로를 작고 미약하며, 가려져 있고, 무력할 정도로 의존적이며 태초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작은 섬으로 느낀다. 이 단계에서 의식은 아직 무의식적인 것에 눌려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 … 인간은 세상의 어두운 측면의 에너지와 무의식에 노출되어 있다는 면에서, 초기의 인간은 삶을 통해 계속적으로 위태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시시대에 정신적으로 조화를 이루던 삶은 오히려 온갖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삶이다. 다시 말해 질병과 죽음, 기아와 홍수, 가뭄과 지진 등을 통해 외부 세계의 악이 흔히 말하듯 내부 세계를 오염시키게 되면, 그 재앙의 정도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아진다. 우연이라는 비합리적인 것에 의해 지배되고 인과법칙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줄어들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공포는 죽은자들의 영혼이나 악마, 신, 마녀, 그리고 마법사들로 인해 더욱 심해진다.]
초기 남성은 성교의 결과로 임신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임신이 신이나 어떤 신비로운 힘, 즉 땅의 풍요를 주관하는 어떤 힘에 의한 작품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초기의 남성들은 여성을 자연과 묘하게 연결된 존재로 보았으며, 자연은 남성이 두려워하면서도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힘의 존재였다.
정적인 남성: ‘위대한 아버지’
정적인 남성의 성격은 로고스(질서와 이성)로, 그리고 위대한 아버지와 세넥스 원형으로 대표된다. 세넥스란 라틴어로 ‘나이든 사람’이란 말이며 ‘오래되고 정돈되어 있으며, 안정적인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위대한 아버지의 원형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의 특징은 규율과 법, 그리고 계급 체계를 조직하고 확립하는 것이다. 위대한 아버지는 누군가를 부양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징후는 왕, 선생/스승에서도 드러난다.
바호펜에 따르면 인간의 문화는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되었다.
1. 지구적 단계 : 이는 결혼하지 않은 어머니들을 의미.
2. 달 또는 가모장의 단계 : 모계 사회
3. 태양 또는 가부장의 단계 : 부계 사회
아버지와 아들
할례와 같이 신체적으로 고통이 가해지는 성년식에서 할례는 진정한 남성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소위 ‘남성 재탄생’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대개의 문화권에서, 젊은 남성들은 전쟁 중 자신의 용맹을 드러내 보이거나, 위험한 육식동물에 맞서는 것을 통해 전사의 세계로 들어간다. 따라서 남성은 위대한 어머니 앞에서 그들의 남성다움을 증명해 보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남성들 앞에서도 그들의 남성다움을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
남성 세계로의 진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신의 보호 아래 두고, 아들의 스승이자 역할 모델이 된다. 어깨를 맞대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활을 만드는 법과 자동차 수리, 또는 낚시의 정교한 기술 등을 가르친다. 아버지는 로고스(질서와 이성)와 가부장적 의식을 의미한다. 아들은 가모장적인 의식으로부터 가부장적인 의식으로 전환을 이루어야만 한다.
과거에는 어떠했는가?
셔우드 앤더슨의 한 수필에서 자신의 “고요하지만 격정적이었던” 남성 세계로의 진입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 수필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가슴 저미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 아버지의 지독한 슬픔을 제대로 포착해 낸 멋진 작품이다.
[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던 그날 밤
어느 날 밤이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는 집에 돌아왔지만 혼자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2주 또는 3주 동안이나 집을 나가 있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아마도 그날 밤 어머니는 교회로 갔었던 것 같다. 나는 부엌의 식탁에서 책을 읽으며 집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빗속을 걸어오셨고 그래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앉아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날 밤에 지금까지 그 어떤 인간의 얼굴에서도 볼 수가 없었던 가장 슬픈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에서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슬퍼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니 나도 슬퍼졌다. 아버지는 옷에서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빗속에서 꽤 오랜 동안 걸어왔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얘야 나를, 나를 따라 오렴.”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갑자기 낯선 사람처럼 느껴져서 의아했지만 겁은 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거리를 따라 한참 내려가 도시를 빠져나갔다.
마침내 우리는 연못에 다다랐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연못가에 서 있었다.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치고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입을 열었고 어둠과 빗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려왔다. 아버지의 그 말은 우리가 집을 나온 뒤 나에게 한 단 한마디의 말이었다.
“옷을 벗어라.” 아버지가 말했다. 여전히 의아해 했지만 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번개가 쳤을 때 나는 아버지가 이미 알몸인 것을 보았다.
알몸이 되자 우리는 연못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떤 말이나 설명도 하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서 그는 나를 연못가에서 내려오게 한 다음 연못안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너무 겁이 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밤하늘 아래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지금까지의 그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나는 끊임없이 자문했다. 남자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그리던 아버지 상은 아니었던 나의 아버지는 불현듯 나를 압도하는 힘을 발휘했다.
나는 두려웠지만 바로 그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 연못은 아주 컸고 나는 수영을 잘 못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를 그의 등에 태웠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계속해서 밤을 가르며 헤엄쳐 나갔다.
아버지는 아주 커다란 어깨 근육을 갖고 있었고, 힘차게 수영을 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는 퍼부어 내렸고 바람이 불었다. 천둥이 한 번 칠 때마다 번개가 따라다녔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수영을 했고 얼마나 오랫동안 수영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내 생각으로는 몇 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비는 우리 얼굴을 때렷고 가끔씩 아버지는 돌아누워서 배영을 했다. 아버지가 배영을 할 때, 그는 그의 크고 억센 손으로 내 손을 잡고서 내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얹을 수 있도록 나를 잡아당겼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번개가 칠 때 그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은 내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부엌에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그 얼굴이었다. 바로 슬픔에 잠긴 얼굴이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내가 그날 밤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친밀감이었다. 그것은 낯선 그 무엇이었는데, 마치 나 자신으로부터, 초등학교 소년의 세계로부터,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판단해 왔던 곳으로부터 나와 갑자기 휙 던져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진정한 아버지가 되었다. 어둠 속에서 힘차게 수영하는 아버지와 그에 매달려 있는 소년인 나. 우리는 길을 따라 집으로 되돌아 왔다.
나에게는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가 그렇게 수많은 밤을 앉아 있었던 작은 현관이 앞에 있었다. 우물 옆에는 나무가 있었고 뒷마당에는 헛간이 있었다. 부엌에는 램프가 있었고, 우리가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섰을 때 거기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 나를 “얘들아.”라고 불렀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엄마가 물었지만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날 밤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고 나서는, 생각건대 새롭고 이상야릇한 위험을 띈 채 그 방에서 나가셨다.
아버지는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계단을 올라 그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나도 계단을 올라가 나의 방으로 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옷을 벗고는 침대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날 밤 그 연못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그 이상한 감정에 젖어 있었다. 나는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자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나는 내가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림이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두운 방 안에 있는 내 침대 속에서 나는 다시는 다른 아버지 상을 꿈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성의식과 의례의 소멸
수많은 남성의식과 의례가 소멸되었다. 군 복무가 남성들의 의례로 작용했던 적도 있었지만, 사실상 미국 문화에는 남성의 의식과 의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편 부정적인 측면으로 남성의식과 의례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도심의 남성들 간의 ‘갱’ 가입(대체로 폭력적인) 의식이 전통적인 의식과 의례를 대체하는 갱 문화 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남성다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그것은 성취되는 것이다.), 젊은 남성이 성인이 되는 관문을 확실하게 인정해 주는 남성의식과 의례가 필요하다. 남자가 되는 과정은 어렵고 그 과정에서 이탈할 수 있는 함정이 있다.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고통을 드러내서도, 울어서도, 그리고 그의 감정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들은 다른 사내아이들에게 나약함을 비치는 표시가 되며, 이는 곧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나약해 보이는 남성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강하고 다소 거칠어 보이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이 왜 감성적일 수 없는지, 왜 더욱 섬세할 수 없는지를 의아해 한다. 어린 사내아이들은 남성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데 블라이에 따르면, 이러한 입문은 한 남성, 즉 아버지나 아버지 상에 의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 가입 의식은 여자아이보다 사내아이에게 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 자체가 여자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여성이 되지만, 사내아이는 남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어야만 한다. 월경을 시작하면서, 여자아이들은 여성이 된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그녀가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내아이는 처음에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쓰면서, 새로이 출발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젊은이여, 당신의 아버지를 찾아 떠나라.”는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셉 캠벨]
아버지를 찾아 가는 여행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행은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웅적인 모험이다. 그것은 당신의 삶이 어떤 것인지, 당신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의 근원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모험이다.” 캠벨은 “아버지를 찾는 것은 자신의 신분과 운명을 찾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신분은 아버지로부터 유전되는 것이며, 육체와 정신은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신비로운 것은 당신의 신분이며, 그 신분은 곧 당신의 운명이다. 따라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곧 당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을 상징한다.”라고 말한다.
파에톤의 신화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전차를 몰고 싶어하는 아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는 통과 의례를 둘러싼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이 신화는 소년소녀는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는 교훈을 전해 준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소년은 결국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전해야만 한다. 레드베터는 아들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통과해야만 하는 세 가지 단계를 묘사하고 있다.
l 1단계 : 아버지는 완벽한 모습이다.
l 2단계 : “아버지는 옳지 않아.”라고 모든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한다.
l 3단계 : “아들들은 아버지의 얼굴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때 아버지에게 돌아온다.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둘은 하나가 되는 듯하다.”
형편없는 아버지
고전적 신화 속의 크로노스-새턴으로 상징되는 형편없는 아버지는 탐욕스러운 아버지로, 자신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인물이다.
역동적인 남성 : 전사-영웅
남성다움의 변형적/역동적인 측면은 전사-영웅 원형으로 드러나는데, 독립성과 용기, 그리고 힘이 이러한 원형의 긍정적인 특징이다. 훌륭한 전사는 이기심 없이 진실과 정의를 수호하는 자이며, 자신의 신념과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역동적인 남성의 특성은 돌출 시키고 ‘관통하는 것’이다. 남성의 돌출시키는/관통하는 특성은 자신의 성기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남성의 성기는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고, 여성을 관통하는 데 이용된다. 남성다움의 ‘역동적인’ 또는 ‘변형적인’ 측면은 공격적이고, 정력이 넘치며 목표 지향적이다. 제우스는 아버지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전사의 모습이었다.
전사-영웅은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해 싸울 용기, 그리고 필요하다면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용’과 대결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지킬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사 원형은 정당한 이유가 없이 적의를 가지거나, 폭력, 살인, 강간, 그리고 전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근본적인 남성의 역할
근본적인 남성의 역할은 여성을 임신시키는 것이며, 여성이 맡은 근본적인 역할은 임신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남성의 돌출적인 특성은 또한 그의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려는 보다 직접적인 욕구에 의해 발생된다.
[여성성은 연결성으로 정의되는 반면, 남성성은 독립으로 정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성은 분리, 즉 떼어놓음에 의해 위협을 받지만, 남성이라는 성은 친밀감에 의해 위협받는다. 따라서 여성들은 개체화(개별화)에 어려움을 갖는 경향이 있고, 반면 남성들은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남성의 상호 교류는 소위 ‘계급 서열적’인 경향이 있다. 남성들은 하나의 우두머리로서 지배권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자궁 속의 근원적인 어둠 속에서 각자 이러한 최초의 어둠을 재경험한다. 여성다움과는 대조적으로, 어둠을 뚫고 나타나는 한낮의 햇빛과 같이 남성다움은 종속적인 것이다. 즉, 남성은 여성에게서 태어나고 그의 남성다움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입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전사-영웅 원형의 확장 : 오디세우스
“또 어떤 점에서 오디세이는 다른 모든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또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들은 어머니를 돕고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아직 어렸기 때문에 침입자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윽고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난다. 조셉 캠벨이 말하기를
[영웅이 신화적인 모험에서 보통 겪게 되는 과정은 통과 의례적 관습이 확장된 것이다. : 독립-출발-귀환 : …일상의 세계로부터 초자연적 불가사의의 세계로 향하는 영웅의 모험들 : 가공할 세력들과 대면하게 되고 결정적으로 승리를 획득한다. : 영웅은 신비한 모험을 통해 그의 동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줄 수 있는 힘을 갖고 귀환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오디세이는 궁극적으로 가부장적인 환상/신화다. 즉 이 신화는 남자가 원하는 모든 것이다.
l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강하고 용감한 전사가 되는 것
l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찬양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
l 당신이 되돌아올 때까지 영원히 기다릴 아름답고 충실한 아내를 소유하는 것
l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위대한 이름을 이어받을 충성스러운 아들을 갖는 것
l 거대한 저택과 재산을 소유하는 것
l 심지어는 20년 동안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충성스러운 개를 소유하는 것
최후의 대결
여성들은 싸울 필요가 없다. 싸움을 거절하는 것이 젊은 여성에게는 창피한 일이 아니다. 여성은 쉽게 그것이 숙녀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남성에게 있어서 싸움을 거절하는 것은 창피하고 거세당하는 경험인 것이다.
실제로 남성의 상징적인 거세를 의미하는 최고의 악몽은 당신의 여자 친구 앞에서 다른 남성에 의해 비굴해지는 것이다.
미식축구가 그들을 붙잡아 두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성과 경쟁성이다. 사람들은 미식축구든, 하키든 아니면 권투든 간에, 커다란 몸집의 사람들이 서로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보면서 흥분을 느낀다.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 이기려는 욕구인 경쟁 본능은 남성 정신의 저 깊은 곳에 자리해 있다. 수많은 정자들이 난자를 향해 종횡무진 움직이지만 단지 하나의 정자만이 승리할 것이다.
5장 브랜드 신화
l 브랜드 신화는 신화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창조되었다.
l 브랜드 신화는 신화적인 장소를 중심으로 창조되었다.
l 브랜드 신화는 신화적인 순간/상황/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창조되었다.
브랜드 신화의 분석
브랜드 신화의 기반이 되는 신화적 상징 이미지를 분석하고, 이러한 브랜드 신화의 기능을 분석한다.
브랜드 신화의 효과
문화적 신화들처럼, 브랜드 신화 역시 다양한 수준에서 기능을 할 수 있다. 초창기 많은 브랜드 신화들은 다소 기초적인 수준에서 기능을 하였다. 즉, 이러한 신화들은 특별한 브랜드의 속성과 편익을 전달한 동시에,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쟁적인 환경에서 대부분의 브랜드 신화는 단순히 제품 중심의 속성과 편익을 전달하는 이상의 역할을 넘어서 그들은 중요한 심리적, 정서적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좀더 정서적/심리적 수준에서 기능을 하고 있다.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브랜드 신화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사로잡아 즐겁게 해줌으로써 소비자의 주위를 끄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수준에서 브랜드 신화는 소비자에게 본래 제품의 속성 또는 편익을 전달하고 알리는 기능을 한다. 브랜드 신화는 소비자의 가치와 감성을 반영하고 이를 강화시킴으로써 종종 개인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감각을 제공한다.
신화적 인물을 둘러싸고 창조된 브랜드 신화들
강력한 심리적/정서적 편익은 물론 제품의 가장 중요한 속성과 편익을 담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광고가 신화적 인물들을 이용해 장수 브랜드로 이끈 성공적인 예는 너무도 많다. 이러한 신화적 인물의 대다수는 소비자들에게 매우 잘 인식되고 브랜드와 매우 강력하게 부합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브랜드의 본질적인 특성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같은 인물들은 대중문화에 기여하는 이미지로 지속되면서 광고의 우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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